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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의 時令사상과 음양오행론

rainbow3 2019. 9. 19. 23:18


<회남자>의 時令사상과 음양오행론*

 

 

李錫明**

 

Ⅰ. 머리말
Ⅱ. 時令사상의 철학적 배경
Ⅲ. 時令的사유의 전통과 흐름

Ⅳ. 음양오행론의 적용과 자연 현상에 대한 시령적 이해
Ⅴ. 맺음말

 

 

•국문 초록

 

이 논문은 회남자에 나타나는 時令사상을 살펴보고, 시령사상과 음양오행론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시령사상의 철학적 배경으로는 당시에 유행한 氣化宇宙論과 天人感應論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시령사상의 초보적 형태는 시경의 豳風․七月이나 대대례기의 夏小正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이들 자료는 여씨춘추의 十二期에서 종합적으로 수집 정리되어 일정한 체계를 갖춘 ‘月令’을 형성하게 되었다. 회남자의 時則은 바로 이러한 '십이기' 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시령에 음양오행론을 결합시켜 ‘五時令체계’를 확립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제어
시령, 음양오행, 기화우주론, 천인감응론, 오시령 체계

 

* 이 논문은 2007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7-361-AL0003).
** 전북대 HK교수.

 

 

Ⅰ. 머리말

 

노자가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1)라고 말함으로써, 도가철학에서 인간은 천지 즉 자연을 본받고 따라야 할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노자에서 ‘천지는 不仁하므로 성인 또한 不仁해야 한다.’라든가 ‘천지의 도는 無爲하고 無私하므로 성인 또한 무위하고 무사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을 어떻게 본받을 것이며 자연의 무엇을 따를 것이냐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노자는 무위할 것을 주장한다. 천지자연이 무위하니 인간 역시 자연을 본받아 무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는 그 개념 자체가 매우 애매모호하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어느 선까지가 무위이고 무위가 아닌가? 무위의 반대 개념은 ‘유위’인가 ‘인위’인가? 문명의 발전과 무위는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런 점들은 노자 당시나 현대나 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거리였다. 그것은 ‘법자연’의 문제에 있어 노자의 답이 그만큼 추상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한다.

 

선진도가의 이러한 추상성에 비해 黃老學은 한결 구체적이다. 일단 氣化宇宙論을 통해 우주자연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주만물의 형성, 자연의 변화 현상, 생명의 구조와 특성 등을 모두 氣에 의해 설명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인간이 자연을 본받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인간이 본받고 따라야 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天文을 관찰할 것을 요구하였고, 또 그 관찰의 결과를 人事에 반영할 것을 요청하였다. 즉 그들은 天體의 흐름과 천문 현상들을 자세히 살펴, 자연의 흐름에 상응하는 삶을 살고 때에 맞는 정치를 시행할 것을 위정자들에게 요구하였다. 그러한 요구의 대표적인 형태가 이른바 ‘時令’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에서는 漢代황로학의 대표 문헌인 회남자를 통해 당시 한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시령 사상’, 즉 자연의 시간적 흐름을 파악해 그것을 인간의 삶 특히 현실 정치에 적용하려고 하였던 그들의 사유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시령 사상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기화우주론’ 및 ‘천인감응론’을 검토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령 사상의 대원칙인 ‘자연과 인간은 하나다.’라고 볼 수 있는 철학적 배경지식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회남자에서 시령 사상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시령적 사유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詩經․ 大戴禮記․ 逸周書․ 管子, 呂氏春秋 등에 실려 있는 시령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비적 검토가 끝나면 회남자 의 時則편 및 기타 시령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논자는 당시에 유행한 음양오행론이 시령 사상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또 그것이 시령과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노자 25장, “人法地, 地法天…….”

 

 

Ⅱ. 時令사상의 철학적 배경

 

1. 氣化宇宙論

 

동양의 전통사상에서 우주만물의 본질은 ‘기’로 간주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 사물은 ‘기’로부터 나왔다가 ‘기’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존재하는 것,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현상이 나타나는 것, 심지어 인간의 정신 작용까지도 모두 ‘기’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면 이처럼 ‘기’를 통해 세상의 여러 현상들을 바라보는 사유는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 기원은 아득히 멀리 중국의 上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殷나라의 갑골문에도 이미 ‘기’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의 최초의 의미는 단지 ‘수증기’나 ‘아지랑이’ 정도의 의미만 지녔다. 이후 인간의 사고가 발전되고 복잡해지면서 점차 ‘기’를 만물 생성의 원질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戰國시대에 이르면 ‘기’를 통해 세상 만물의 모든 현상과 작용을 바라보는 기론적인 사유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전국시대가 끝나고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秦漢제국의 시대가 열리면서, 氣論에 의해 우주 만물의 기원과 사물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회남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회남자에서 우리는 이전의 그 어느 문헌에 비해 우주생성론 즉 천지만물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잦은 발언들을 발견하게 된다. 俶眞․ 天文․ 精神․ 詮言등에서 총 5회 이상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중 특히 천문 편에 실려 있는 다음의 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하늘과 땅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단지 어지럽게 뒤엉킨 기운만 무성할 뿐 아무런 형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를 太昭라고 말한다.

 

道는 虛霩에서 시작되는데, 허확은 宇宙를 생성하고 우주는 氣를 생성하였다.

기에는 일정한 구별이 있으니, 맑고 가벼운 기운은 위로 얇게 퍼져 하늘이 되었고, 탁하고 무거운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맑고 은미한 기운은 하나로 합치기 쉽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응결되기 어렵다. 때문에 하늘이 먼저 이루어지고 땅이 나중에 안정되었다.

땅과 하늘의 정기精氣가 쌓여 음양이 되었고, 음양의 정기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으로써 사계절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사계절의 정기가 분산되면서 만물이 형성 되었다.

陽氣가 쌓이면 熱氣가 형성되고 그 열기에서 불이 생겨나는데, 불의 정수가 바로 해다.

陰氣가 쌓이면 寒氣가 형성되고 그 한기에서 물이 생겨나는데, 물의 정수가 바로 달이다.

그리고 해와 달에서 흘러 넘쳐 난 정기가 별들이 되었다.2)"

2) 회남자, 天文,

“天墜未形, 馮馮翼翼, 洞洞灟灟, 故曰太昭.

道始于虛霩, 虛霩生宇宙, 宇宙生氣.

氣有涯垠, 淸陽者薄靡而爲天, 重濁者凝滯而爲地.

淸妙之合專易, 重濁之凝竭難, 故天先成而地後定.

天地之襲精爲陰陽, 陰陽之專精爲四時, 四時之散精爲萬物.

積陽之熱 氣生火, 火氣之精者爲日;

積陰之寒氣爲水, 水氣之精者爲月.

日月之淫爲精者爲星辰.”

 

 

이 예문을 통해 우리는 한대인들이 생각했던 우주만물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주만물 생성의 최초의 상태는 ‘태소’ 또는 ‘허확’으로 불려진다. 이것은 일종의 우주의 초기 상태로, 천지의 형성은 물론 아직 시간과 공간도 나누어지지 않은 무형의 기운 덩어리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태는 “아무런 형상도 없고 가물하고 가물하여 아무도 그것을 인식할 단서를 찾을 수 없으며”3), 또한 “너무나도 깊어 그 끝 닿는 데를 알 수 없고, 아득히 펼쳐지고 쉼 없이 요동하여 그 멈추는 바를 알지 못한다.”4)

 

3) 앞의 책, 精神, “惟像無形, 窈窈冥冥, 芒芠漠閔, 鴻濛鴻洞, 莫知其門.”
4) 앞의 책, 같은 글, “孔乎莫知其所終極, 滔乎莫知其所止息.”

 

이러한 최초의 본원자인 ‘허확’이 ‘우주’를 생성하고, 우주가 다시 기를 생성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허확’은 ‘우주’와 어떻게 구분되고, 최초의 기운 덩어리라고 하는 ‘허확’과 우주가 생성하는 ‘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우주’라는 말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 언급되는 ‘宇宙’는 단순히 현대적 의미의 우주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이 점을 우리는 회남자의 齊俗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나간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가리켜 ‘宇’라 말하고, 동서남북의 사방과 위와 아래를 가리켜 ‘宙’라고 한다.”5)

5) “往古來今, 謂之宙; 四方上下, 謂之宇.”

 

요컨대 고대에는 단순히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도 포함하여 ‘우주’로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허확이 우
주를 생성한다.”는 것은 허확의 상태에서 일정한 시간이 흘렀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최초의 기운 덩어리가 공간적으로 확장되어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적으로 오랜 기간이 지나고 공간적으로 널리 확장되면서 점차 개별적인 기운이 형성되어 갔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주는 기를 생성한다.”의 ‘기’는 태초의 기운 덩어리와 개구분되는 것으로, 구체적 사물로 변화되는 개별적 기운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개별적 기가 파생되어 나오자 그 기운의 성향에 따라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즉 맑고 가벼운 기는 위로 올라가 하늘을 형성하게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는 아래로 가라앉아 땅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돈 미분화의 상태에서 있던 기운 덩어리가 ‘우주’라는 틀을 통과해, 즉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원초의 기운 덩어리가 공간적으로 확장되면서 비로소 나뉘어져 하늘과 땅으로 분화된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기운이 응축되고 축적되면서 각각 양기와 음기를 내놓게 되었고, 이후 음기와 양기가 상호 작용하면서 사계절이라는 자연 변화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계절의 기운에 따라 다양한 사물들이 생성되었다. 아울러 양기가 쌓이면서 그것의 응축된 정기가 해로 변하고, 음기가 쌓이면서 그것의 응축된 정기가 달로 변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해와 달이 되고 남은 정기의 기운들이 흩어져 별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회남자'는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우주 생성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화우주론의 세계관에서는 천지자연뿐만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 및 천체 운행 현상까지도 모두 기의 작용으로 이해되고 설명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우주 생성론의 도식이 완성된다.

 

 

 

 

2. 天人感應論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에서 자연과 인간은 한 몸으로 간주되었으니, 이른바 ‘天人合一’의 관점이다. 자연과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상고시대에는 자연을 人格天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종교적 차원에서 ‘천인합일’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하늘의 뜻은 ‘하늘의 자식’ 즉 天子에 의해 인간 세상에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인지가 점차 발달하면서 그리고 기론적인 세계관과 음양오행론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적 관점을 폐기하고 氣論의 관점에서 천인합일을 생각하게 된다. 앞서의 기화우주론을 통해 보았듯이, 자연계나 인간계 모두 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상호 유기적인 통일성과 상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과 인간은 상호 영향을 미치고 반응을 유발한다고 하는 신비주의적인 ‘천인감응론’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런 천인감응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자연계에 모종의 변화가 발생하면 그 영향이 인간 사회에 미치고, 반대로 인간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연계에도 그에 상응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남자의 태족 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나라가 위험에 빠지면 천문이 변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무지개가 나타난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정기가 침해당하면 그것에 의해 서로 움직이기 때문이다.”6) 

6) “天之與人有以相通也. 故國危亡而天文變, 世惑亂而虹蜺見, 萬物有以相連, 精祲有以相蕩也.”

 

'회남자'에는 이와 같은 자연계와 인간계 사이의 상호감응 관계에 대한 기술이 자주 보이는데, 그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연계의 변화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계의 변화가 자연계의 변화를 유발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부터 보도록 하자.

 

'회남자'에서 자연계에 의한 인간계의 변화는 주로 천문 현상에 대한 언급을 통해 거론된다. 천상의 주요 별들을 吉星과 凶星으로 구분해 놓고, 밤하늘에 어떤 별이 나타나느냐에 따라 그것이 인간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고대의 동서양에 보편적으로 유행한 점성술의 일종이다. 고대인들은 밤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의 운행을 관찰해 이를 통해 국가의 운명이나 개인의 길흉을 점치곤 했는데, 회남자에서 언급되는 천문 현상에 대한 기술은 주로 국가의 재난이나 그 해의 豊凶에 관한 것들이다.

 

"熒惑은 …… 이 별은 무도한 나라에 나타나 난리가 일어나게 하고 도적이 들끓게 하며 질병과 사망이 발생하게 하고 기근과 전쟁이 일어나게 한다. 그것의 나타남과 사라짐에는 일정함이 없고, 그 빛깔도 자주 변하여 때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7)"

7) 회남자, 天文,

“熒惑, …… 司無道之國, 爲亂爲賊, 爲疾爲喪, 爲饑爲兵. 出入無常, 辯變其色, 時見時匿.”

 

"歲星이 머무는 곳8)에는 오곡이 풍성해진다. 그 반대의 장소를 衝이라고 하는데,9) 衝이 머무는 해에는 재앙이 발생한다. 歲星이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면, 그 나라 임금은 죽고 나라는 망한다.10)"

 

8) 세성이 운행 중 통과하게 되는 星宿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세성이 角이나 亢을 통과할 때, 세성이 머무는 곳은 鄭나라 지역이 된다.
9) 세성의 정반대 편에 머무는 별을 衝辰이라고 부른다. 세성과 충진 사이의 각도는 180도가 된다. 즉 세성과 충진은 일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10) 회남자, 天文, “歲星之所居, 五穀豊昌; 其對爲衡, 歲乃有殃. 當居而不居, 越而之他處, 主死國亡.”

 

 

熒惑’은 현대 천문학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火星이 된다. 서양에서도 화성의 의미를 전쟁과 연관시켜 생각했듯이 고대 동양에서도 화성은 매우 불길한 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화성 즉 熒惑이 어떤 나라의 밤하늘에 나타나면 그 것의 영향으로 인해 그 나라에 전쟁이나 질병과 같은 불길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熒惑이 凶星으로 간주된 것에 반해 歲星은 일종의 吉星으로 여겨졌다. 특히 歲星은 풍년과 관계된 별로 여겨져 歲星이 나타나거나 머물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위의 예문들이 실려 있는 천문 편에는 이들 熒惑과 歲星외에도 鎭星(토성) 太白星(금성) 晨星(수성)의 출현과 그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세상의 변화에 대한 기술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이들 내용을 총괄해 보면 결국 이들 다섯별의 운행과 지상 세계의 길흉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천상의 수많은 별들 중 특히 이들 다섯 별들을 중점적으로 거론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당시에 유행한 음양오행론과 관련이 있다. 즉 한대에는 음양오행론이 널리 유행하여 자연계나 인간계의 것들을 모두 오행에 배당하고, 오행 각각의 성격이나 오행 상호간의 상생 상극 관계에 의해 사물들 상호 간의 현상들을 설명하였다. 한대인들은 밤하늘에서 가장 뚜렷하게 관찰되는 다섯 개의 별을 선택하여, 이들의 성질과 의미를 각각 오행에 배당하여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편, '회남자' 에는 천인감응의 또 다른 형태로 인간세상의 일로 인해 자연계에 모종의 변화가 발생하는 이상 현상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런 현상은 주로 인간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여 발휘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즉 인간이 정기를 온전히 보전하고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할 때, 인간의 정신력이 하늘에까지 미치고 그에 따라 천지신명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남자 남명 편에서는 師曠이 白雪이라는 음악을 연주하자 하늘에서 괴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이 음악을 연주케 한 平公은 중병에 걸렸다는 사례와, 齊나라의 한 평민 여인이 하늘을 향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고 그 나라의 임금이었던 景公이 누대에서 떨어졌다는 사례를 소개한다.11)

이들 사례에서 소개되고 있는 두 고사는 모두 인간의 행위로 인해 자연계의 변화를 일으킨 경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을 인간이 마음을 오롯하게 하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행위에서 찾는다. 즉 “사광이나 평민 여인은 그 지위가 채소밭을 관리하는 관리보다 낮고 그 권력은 새털보다 가볍지만, 이들이 精氣를 오롯하게 하고 뜻을 한결같이 하여 정신을 하나로 모으자, 그 정신이 위로 九天에 통해 하늘의 지극한 정기를 움직였다.”12)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신이 전일하게 보존되어 인간의 내면에서 참된 정기가 발휘되면 그로 인해 육체의 기운이 하늘에까지 통하게 되며, 그 결과 여러 가지 상서로운 자연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한다.13)

 

이렇게 하여 '회남자'에서는 자연의 이상 현상에 의해 인간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든, 또는 인간의 이상 행위에 의해 자연계에 변화가 발생한다고 보든지 간에, 자연과 인간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천인감응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식의 사유는 기존에 전해져 오던 ‘천인합일’의 관점을 기론적인 세계관에 의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화우주론에 의해 만물이 ‘기’라고 하는 공통의 요소를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자, ‘기’를 매개로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상호 유기적인 연결 고리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천인감응론은 이미 전국 말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한대에 들어서면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유로 정착하였다. 시령 사상은 바로 이러한 천인감응론에 직접적인 바탕을 두고, 그리고 기화우주론에 간접적인 토대를 두고 발전하게 된다.

 

11) 앞의 책, 覽冥, “昔者, 師曠奏白雪之音, 而神物爲之下降, 風雨暴至, 平公癃病, 晉國赤地. 庶女叫天, 雷電下擊, 景公臺隕, 支體傷折, 海水大出.”
12) 앞의 책, 같은 글, “夫瞽師庶女, 位賤尙葈, 權輕飛羽. 然而專精厲意, 委務積神, 上通九天, 激厲至精.”

13) 앞의 책, 같은 글, “精誠感於內, 形氣動於天, 則景星見, 黃龍下, 祥鳳至, 醴泉出, 嘉穀生, 河不滿溢, 海不溶波.”

 

 

Ⅲ. 時令的사유의 전통과 흐름

 

1. '여씨춘추' 이전의 時令자료들

 

자연의 법칙과 시간의 흐름을 인간 삶의 준거로 삼는 시령의 흔적은 이미 중국 고대부터 있어왔다. 현존하는 고대 문헌들 중 시령과 관련된 최초의 자료는 '시경'의 豳風․七月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빈풍․칠월 편에서는 7월을 중심으로 여러 달들에 나타나는 천문 현상 및 자연계의 계절 상황 등을 賦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그에 따라 백성들이 행해야 할 농사일 길쌈 일상사 및 제사 등을 노래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식이다.

 

“7월에 大火心星이 서쪽으로 내려가거든, 9월에는 옷을 만들어 주네. 一陽의 시기(동짓달)에는 바람이 차갑고 二陽의 시기(섣달)에는 기온이 차가우니, 옷이 없고 갈옷이 없으면 어떻게 한 해를 마치리오. 三陽의 시기(정월)에는 쟁기를 수선하고 四陽의 시기(2월)에는 발꿈치를 들고 밭 갈러 나가세.”14)

14) “七月流火, 七月授衣. 一之日觱發, 二之日栗烈. 無衣無褐, 何以卒歲. 三之日于耜, 四之日擧趾.”

(원문 및 번역은 成百曉가 역주한 시경집전․상, 전통문화연구회, 2008,321면을 참조하였다.)

 

당시 농경사회 속에서 백성들이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추어 농사일 등 일상사를 꾸려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빈풍․칠월 편에 언급되는 시령의 내용은 매우 단편적이고 아직 일정한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이후 현재 '大戴禮記'에 실려 있는 夏小正에 이르면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이 차례로 나열되면서 본격적인 시령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한다. 하소정 은 본래 夏나라의 曆으로, 공자가 하왕조의 후예인 杞라는 제후국에 가서 직접 구해왔다고 한다. 물론 당시의 문헌이 '대대례기'에 온전히 실렸을 것으로 믿기는 어렵지만, 후대의 다른 유사한 자료에서와 달리 아직 음양이나 오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이른 시기의 문헌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는 12개월의 時候를 결정하는 표준적인 星象과 기후적 특징 및 동식물의 생태,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수행되어야 할 주요 농사 및 수렵 활동 등이 월별로 기록되어 있다.15) 이는 오랜 세월의 농업 활동으로부터 누적된 경험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모든 백성들이 한 해 동안 수행해야 할 활동의 기준이 된 일종의 농사력으로 볼 수 있다.16)

 

15) 가령 정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땅 속에서 겨울잠 자던 벌레가 입을 연다.기러기가 북쪽으로 향한다. 꿩이 날개를 치면서 운다. 물고기가 뛰어 올라 얼음을 짊어진다. 농사를 짓는 일은 그 쟁기에 얽매인다. 연초에 쟁기를 잘 살펴, 처음으로 사용하여 밭에 있는 잡초를 제거한다. 동산에서 부추를 볼 수 있다. 추운 날에 동도(凍塗)를 씻는다. 들쥐가 나온다. 농부는 밭을 고르게 한다. 수달이 고기를 바친다. 매가 곧 비둘기가 된다…….”
16) 徐復觀, 兩漢思想史․二, 臺灣學生書局, 民國65, 12~13면 참조.

 

한편, '逸周書'의 周月․ 時訓등에서도 시령과 관련된 초기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周月에서는 夏나라 商나라 周나라의 三代상호 간에 진행된 ‘三統’ 체계를 차례로 서술하면서 일 년 12개월의 기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음양의 관념이 출현하고 있다. 徐復觀은 이런 사실에 근거해 이 자료가 周나라 왕실에서 천문을 주관하던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한다. 다음으로 時訓에서는 일 년의 節侯를 기술하면서 달이 아닌 24氣로 단위를 삼고 있다. 여기서는 동식물의 모습들을 통해 節侯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하소정 을 계승한 측면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오행 관념은 나오지 않지만 음양 관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주월 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복관은 시훈 과 주월 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즉 '주월' 은 대략적인 틀을 제시하는 총론으로, 그리고 '시훈' 은 매 달을 2氣로 나누어 상세히 기술하는 각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17)

 

'管子'에도 시령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幼官․ 幼官圖․四時․ 五行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선, 유관 및 유관도 에서는 군주의 일상생활과 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계절 또는 절기에 따라 군주가 따라야 할 복장, 음식, 음악 그리고 그에 따라 군주가 수행할 일들에 관해 언급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시령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군주가 시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될 재앙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시' 에서는 “정령은 때에 따라야 한다”[令有時]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차례로 동․남․서․북의 사방위에 배당하고, 군주는 각 계절의 방위가 지니는 오행 즉 목․화․
토․금․수의 성질에 합당한 정령을 베풀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단 후대의 '여씨춘추'의 '십이기'나 '회남자'의 '시칙' 과 달리, 오행상의 土의 위치를 어느 하나의 계절에 배속시키지 않고 중앙에 위치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土를 중심으로 삼아, 1년 중의 특정 시기와 연관되지 않고 사계절 모두에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18)
그리고 유관 에서와 마찬가지로 제때에 합당한 정령을 내리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될 이상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행' 에서는 동지를 한 해의 기점으로 삼아 1년을 72일씩 5개 단위로 나누어 각각 오행에 배당하고, 천자에게 이 오행의 원리에 따라서 행정을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릴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형태는 '회남자'의 천문 편 및 시칙 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문헌의 선후 관계로 볼 때 '회남자'의 저자가 '관자'의 오행 편에서 차용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오행 편의 이러한 자료는 오행사상이 시령과 결합하는 초기 형태가 된다.

 

17) 앞의 책, 13면.

18) 존 핸더슨 저, 문중양 역, 중국의 우주론과 청대의 과학혁명, 소명출판, 2004, 26~27면.

 

 

2. '여씨춘추'의 '십이기' 와 '회남자'의 '시칙'

 

시령과 관련된 이상과 같은 자료들은 전국 말기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무렵 '여씨춘추'의 '십이기' 속으로 총괄적으로 수집 정리된다. '십이기' 는 우선 '하소정' 의 체제를 기본 틀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소정' 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차례로 나열하고 있듯이 십이기 에서도 12월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십이기 의 월령체제는 하소정의 도식에 비해 현실적으로는 다소 비자연적이지만 우주론적으로는 훨씬 추상적이며, 다루는 내용도 단순히 농업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정치화 되었다.19)

이는 기존에 흩어져 있던 시령 자료들 중 '관자'의 '유관' ․ '사시' 등에 실려 있는 통치자 중심의 '시령' 사상을 종합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나타난 천하 통일의 대세 속에서 앞으로 통일될 천하를 이끌어갈 황제에게 필요한 통치 방안을 제공할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이기' 는 당시의 천문학적 지식 및 자연과학적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12개의 달마다 나타나는 천체 현상, 신, 수, 소리, 맛, 냄새, 동물, 음율, 제물, 의복, 국가적 행사, 금기사항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시하고 있다.

이후 '십이기' 에 제시된 월령체계는 한대의 '회남자'․ '예기'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후대의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유행한 월령체계의 기본 틀이되었다.

 

'회남자'의 '시칙' 편은 바로 '여씨춘추'의 '십이기' 에 실린 이 방대한 시령 체계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일부 구절을 수정하거나 보충한 형태가 된다. '시칙' 편의 시령에서는 각 달의 천문 현상, 자연계의 여러 징후, 각 달에 해당하는 방위 길일 오행 및 사물들의 특성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들에 근거해 통치자가 수행해야 할 여러 의례와 생활 방식과 정령, 그리고 합당하지 않은 政令을 내렸을 때 발생하게 될 災異현상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시령의 구성체제는 天地人의 三才구조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월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월의 천문 상태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정월에는 招搖가 寅의 방향을 가리키고, 해질녘에는 參宿가 남쪽 하늘 가운데에 나타나고, 새벽에는 尾宿가 남쪽 하늘 가운데에 나타난다.”20)

정월에는 북두칠성의 자루가 寅의 방향 즉 東北東쪽을 가리키고, 28수의 위치를 보면 해질녘에는 參宿가 새벽에는 尾宿가 남쪽 하늘 한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달의 地理 즉 지상에 나타나는 여러 자연 현상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동풍이 얼음을 녹이면 겨울잠을 자던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물고기가 위로 올라와 얼음 밑에서 노닐며, 수달이 제사를 지내듯이 물고기를 늘어놓고, 기러기들은 북쪽으로 날아간다.”21)

봄이 되면서 나타나는 자연계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생물들의 움직임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천문과 지리에 대해 언급한 다음, 이러한 자연계의 상태에 맞추어 진행되어야 할 인간의 일 즉 人事에 대해 언급한다. 이때 人事의 내용은 주로 천자가 행해야 할 일들에 집중된다.

첫째로 天子의 의식주에 대해 언급한다. 천자는 봄의 빛깔인 청색에 맞추어 “청색의 옷을 입고 푸른색의 말을 타며, 푸른색의 옥을 차고 청색의 깃발을 세우고”, 봄의 음식에 해당하는 “보리와 양고기를 먹고 팔풍수를 마시며”, 봄의 방향인 동쪽의 궁궐에 머물고 정월의 명당 거처인 靑陽의 左个에서 봄의 정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22)

둘째로 천자가 행해야 여러 의식 행위들과 시행해야 할 정령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 중 정령을 내림에 있어서 봄의 덕인 木德에 맞추어 덕과 은혜를 베풀고 벌목을 금지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통치자의 행위는 천지의 흐름과 변화에 일치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天文과 地理와 人事의 모든 준칙을 하나의 원리로 관통시키려는 三才論은 전국시대 황로사상에서 제기된 것인데, 진나라의 통일이념과 맞물려 더욱 발전하게 된다.23) 당시 지식인들은 天地人三才의 원리를 파악하고 장악함으로써 통일된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고차원의 통치술을 확보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19) 존 핸더슨, 앞의 책, 37면.

20) 회남자, 時則, “孟春之月, 招搖指寅, 昏參中, 旦尾中.”
21) 앞의 책, 같은 글, “東風解凍, 蟄蟲始振蘇, 魚上負氷, 獺祭魚, 候鴈北.”
22) 앞의 책, 같은 글, “天子衣靑衣, 乘蒼龍, 服蒼玉, 建靑旗, 食麥與羊, 服八風水, 爨萁燧火, 東宮御女靑色, 衣靑采, 鼓琴瑟, 其兵矛, 其畜羊, 朝于靑陽左个, 以出春令.”

23) 김일권, 동양의 천문사상―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237~238면.

 

 

Ⅳ. 음양오행론의 적용과 자연 현상에 대한 시령적 이해

 

1. 시령과 오행사상의 결합

 

중국 고대인들은 자연의 흐름 및 사물의 변화 현상들을 음양오행론24)으로 이해하는 전통이 있었다. 전국 말기에 이르러 하나의 사상집단을 형성하게 된 음양가들은 음양오행론을 통해 우주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우주자연은 일정한 질서를 지니고 있었는데, 만물의 변화는 모두 음양오행의 성질과 작용의 지배를 받아 진행되는 현상이었다.25)
이러한 음양오행론은 점차 시령 사상에도 침투하게 되는데, 특히 오행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고대인들은 천체에 五星이 크게 빛나고 천문의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듯이, 지상에는 하늘의 五星에 감응하여 五時가 순환한다고 보았다. 매달의 변화를 분리하여 인식하기는 어렵지만, 사계절의 변화는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중국에서 일 년의 변화 과정과 그에 따른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해석 범주는 거의 대부분 계절 변화에 기초를 두는 오행사상에 모아져 있다. 때문에 오행사상은 동양의 시간질서를 이해하는 기반이 되었다.26) 이 점을 우리는 '회남자'의 '시칙' 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시칙' 편에 기술되고 있는 12개월의 월령 내용을 각 항목에 따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24) 음양사상과 오행사상은 본래 서로 별도의 체계로 발전해 오다가, 전국 말기에 이르러 추연 등과 같은 음양가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어 음양오행론이라는 하나의 사상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25) 양계초․풍우란 외 저, 김홍경 편역, 음양오행설의 연구, 신지서원, 1993, 305면.

26) 김일권, 앞의 책, 236면 참조.

 

 

<十二月令表>

 

 

앞의 도표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항목이 五行論에 따라 五時令체제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체 22항목 중 ‘12진’ ‘28수’ ‘12율’ ‘관리’ ‘나무’의 5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17항목이 모두 오행론에 따라 오시령 체제로 분류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을 파악하고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도구로 오행론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행론에 따라 분류되고 있는 이들 중 몇몇 주요 항목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과 공간을 결합시키고 있다.

시간상으로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四時가 있고, 공간상으로 보면 동 남 서 북의 四位가 있다. 이들 ‘사시’와 ‘사위’를 결합시켜, 봄은 동쪽에 여름은 남쪽에 가을은 서쪽에 겨울은 북쪽에 각각 배당하고 있다.

그런데 오행론에 근거할 때 하나가 부족하다. 오행론에 따르자면 ‘오시’가 되어야 하고 ‘오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季夏’를 새롭게 설정하고, 이것을 공간상의 중앙에 배당하고 있다. 1년을 오행의 원리에 따라 다섯 계절로 분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간의 측면에서는 ‘五時’가 되고, 공간의 측면에서는‘五位’가 되었다.

그리고 이 도표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季夏에 소속되는 항목들이 명확하게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의 '여씨춘추'의 '십이기'에서는 ‘계하’를 설명하면서 앞부분에서는 “其蟲羽. 其音徵. 律中林鐘. 其數
七…….”라고 말하고 있고, 뒷부분에 가서는 ‘계하’를 다시 중앙의 토에 소속시키면서 “其蟲倮. 其音宮. 律中黃鐘之宮. 其數五…….” 라고 기술함으로써 ‘계하’에 소속되는 사물들의 속성을 이중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언급되는 ‘羽’ ‘徵’ ‘林鐘’ ‘七’ 등은 사실상 ‘맹하’ 및 ‘중하’에 배당된 속성들이다. '여씨춘추'에서는 아직 ‘계하’가 중앙의 토로 명확하게 독립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27)

그러나 이 문제는 '회남자'에 이르러, 夏令즉 ‘맹하’ 및 ‘중하’의 속성으로부터 ‘계하’의 속성을 따로 독립시켜 기술함으로써 명확하게 정리되었다.28)

 

27) '여씨춘추'의 '십이기'를 모방하고 있는 '예기', '월령'에서도 마찬가지다.
28) 김일권, 앞의 책, 239면 참조.

 

둘째, 계절의 변화를 오행의 성쇠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봄에는 木德이 왕성하고, 여름에는 火德이 왕성하며, 늦여름에는 土德이 왕성하고, 가을에는 金德이 왕성하며, 겨울에는 水德이 왕성하다는 식이다. 음양오행사상에 의할 때 木은 사물을 생장시키고 기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木의 기운이 왕성한 봄에는 사물이 생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火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듯이 밖으로 드러나고 펼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火의 기운이 왕성한 여름에는 사물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며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土金水모두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29)

그리고 이러한 계절의 변화 과정은 오행의 相生과정과 일치한다. ‘木生火’이므로 봄이 쇠퇴하면 여름이 시작되고, ‘火生土’이므로 여름이 쇠퇴하면 늦여름이 시작되며, ‘土生金’이므로 늦여름이 쇠퇴하면 가을이 시작되고, ‘金生水’이므로 가을이 쇠퇴하면 겨울이 시작되며, ‘水生木’이므로 겨울이 쇠퇴하면 봄이 시작된다고 본다.

 

29) 土는 대지가 안정되어 있듯이 안정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토의 기운이 왕성한 늦여름에는 사물들이 성장을 멈추고 내실을 기하며 안정적인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金은 쇠의 단단함과 날카로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금의 기운이 왕성한 가을이 되면 곡식들이 여물고 서리가 내려 초목을 시들게 한다는 것이다. 水는 차가움과 수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수의 기운이 왕성한 겨울에는 날씨가 춥고 만물이 땅 속으로 갈무리된다는 것이다.

 

셋째,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행동양식을 오행의 속성과 부합되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규제하고 있다. 여기에는 길일, 음악, 숫자, 냄새, 제사, 제물, 악기, 음식, 처소 등 인간 생활의 전반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봄에는 木의 기운이 작용하는 시기이므로 활동하기 좋은 날은 甲日이나 乙日이고, 제사는 방문에서 지내며, 제물로는 비장을 올려야 하고, 먹는 음식으로는 보리나 양고기가 적합하며, 불쏘시개로는 箕나무가 좋고, 사용하는 병기로는 矛가 적당하다는 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속성을 오행에 따라 5가지로 분류해 놓고 인간의 삶의 양식도 이러한 오행의 원리에 맞추길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30)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천자의 거처까지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明堂論’이다. 천자는 봄에는 靑陽에 여름에는 明堂에 늦여름에는 中宮에 가을에는 總章에 겨울에는 玄堂에 거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장소도 매달마다 다시 세분화되어 있다.

 

30) 오행사상에 따른 이러한 분류와 적용은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있다. 예컨대, 동양 전통의 한의학이나 사주나 풍수지리 모두 이러한 오행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상의 분석들을 통해 볼 때, 시칙 편에 제시된 12월령 체계는 사실상 ‘오시령’ 체계로 정리될 수 있다. 이 점은 매 달의 명칭을 1월 2월 3월……로 매기지 않고, ‘맹춘․중춘․계춘’, ‘맹하․중하․계하’ 등으로 춘하추동의 四時로 구분하고, 사시를 다시 오행론에 입각하여 五時로 개조하고 있는 점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시칙 편의 체제는 형식상 ‘12월령’ 체제로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오시령’ 체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씨춘추'의 '십이기' , '회남자'의 '시칙' , '예기'의 '월령' 등에 보이는 이론체계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월령론’ 보다는 ‘시령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월령’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여지고 일반 명사화된 것은, 유학자들에 의해 '예기'가 경전 체제 속으로 포함되면서 그리고 유가사상이 과거 전통사회의 통치이념으로 작용하면서 나타난 유가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자연 현상에 대한 시령적 이해

 

'회남자'에는 '시칙' 편에 나타난 이상과 같은 시령론 외에도 시령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거기에 인간 나름의 해석을 가함으로써 人事에 적용하는 형태들이다. 그 자료들은 주로 천문 편과 시칙 편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회남자'에 기재된 순서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八風에 따른 시령과 관련된 자료다.

천문 편에서는 1년 동안 불어오는 다양한 형태의 바람을 8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이들 각각의 바람이 불어 올 때 통치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을 기술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식이다.

 

“條風이 불어오면 가벼운 죄를 지은 자를 석방하고 감옥의 죄수를 내 보낸다. 明庶風이 불어오면 토지의 경계를 바르게 하고 농경지를 수리한다. …… 廣莫風이 불어오면 관문과 교량을 폐쇄하고 죄수의 형벌을 결정한다.”31)

31) “條風至, 則出輕繫, 去稽留. 明庶風至, 則正封疆, 修田疇…… 明風至, 則出弊帛, 使諸侯. 廣莫風至, 則閉關梁, 決刑罰.”

 

동지가 지나고 45일 째 불어오는 바람이 條風이다. 이 바람은 艮方의 바람 즉 동북풍을 말하며, 이때는 대략 만물이 소생하는 입춘 무렵에 해당한다. 따라서 條風은 만물의 소생과 관련된 바람이므로 이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의 성격에 합당하게 죄수를 석방하라는 것이다. 반면에 廣莫風은 동지 무렵 坎方에서 불어오는 북풍을 말한다. 따라서 廣莫風은 사물의 蟄藏과 관련된 바람이므로 이 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이 왕래하지 못하게 관문과 교량을 폐쇄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불어오는 바람의 성질에 따라 일 년을 45일씩 여덟 절기로 나누고, 통치자는 각 절기에 합당한 정치를 시행하라는 주장이다.

 

둘째는 음양의 성쇠에 따른 금기 사항을 기술한 자료다.

천문 편에서는 음양의 두 기운이 왕성해지고 쇠퇴함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자연 현상들을 기술하면서 그에 따른 금기사항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가령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하고 양기가 꿈틀거리므로 이 시기에는 바야흐로 생성되는 양기의 기운에 따라 덕을 실행할 것을, 그리고 이때는 만물이 갈무리되고 생물들이 구멍 속으로 숨어들므로 땅을 파거나 우물을 뚫지 말 것을 요구한다.32)

반면에 하지에는 양기가 극성하고 음기가 꿈틀거리므로 이 시기에는 바야흐로 생성되는 음기에 따라 형벌을 집행할 것을, 그리고 만물이 번식하고 오곡이 자라므로 언덕을 평평하게 하거나 지붕 위에 올라가지 말 것을 요구한다.33)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음양 기운의 변화 현상을 잘 살펴, 그에 합당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34)

 

32) “日冬至則斗北中繩, 陰氣極, 陽氣萌, 故曰冬至爲德…… 陰氣極, 則北至北極, 下至黃泉, 故不可以鑿地穿井. 萬物閉藏, 蟄蟲首穴.”
33) “日夏至則斗南中繩, 陽氣極, 陰氣萌, 故曰夏至爲刑…… 陽氣極, 則南至南極, 上至朱天, 故不可以夷丘上屋. 萬物蕃息, 五穀兆長.
34) 그런데 여기서 ‘동지에 덕을 실행하고 하지에 형벌을 집행하라’는 요구는, 음기가 왕성할 때는 형벌을 시행하고 양기가 왕성할 때는 덕을 베풀라는 일반적인 음양론의 관념과 어긋난다. 이 문제는 일종의 ‘비보책’(裨補策)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동지에는 음기가 왕성하고 양기가 미약하므로 양기의 생성을 돕기 위해 덕을 베풀라는 의미로, 하지에는 양기가 왕성하고 음기가 미약하므로 음기의 생성을 돕기 위해 형벌을 집행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는 오행의 절기에 따른 시령을 기술한 자료다.

천문 편에서는 1년을 72일씩 다섯 절기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에 배당하여, 각각의 절기에 합당한 정령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한다.

 

“壬午일이 동지이면 甲子일에 政令을 받으며, 이때는 木의 덕에 따라 정사를 수행하고 (사용하는 불의) 연기는 청색이다. 다시 72일이 지나 丙子일에 政令을 받으며, 이때는 火의 덕에 따라 정사를 수행하고 (사용하는 불의) 연기는 적색이다. …… 매년 6일씩 옮겨지니, 계산해 보면 10년 만에 다시 甲子일로 되돌아온다.”35)

35) “壬午冬至, 甲子受制, 木用事, 火煙靑. 七十二日丙子受制, 火用事, 火煙赤…… 歲遷六日, 以數推之, 十歲而復至甲子.”

 

天干의 甲은 오행상 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甲子일에 政令을 받으면 木德에 따라 모든 일을 수행하며, 木의 색은 청색이므로 이때 사용하는 불의 연기도 청색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때는 목의 기운에 따라 “부드럽고 은혜로운 정책을 시행하고 뭇 금지 사항을 없애버리며, 닫힌 문을 열고 막힌 길을 터주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다.”36) 이후 72일이 지나면 丙子일이 되고, 이때는 丙이 오행상 火에 해당하므로 火에 합당한 정령을 시행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72일 씩 나가면 차례로 ‘土’, ‘金’, ‘水’의 기운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각각의 기운에 합당한 정령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해당 시기의 오행에 어긋나는 정령을 실행하게 되면 커다란 재앙이나 변고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木의 정령을 시행할 시기에 丙의 정령을 시행하면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일찍 나오고 우뢰가 일찍 발생하며,37) 土의 정령을 시행할 시기에 金의 정령을 시행하면 곡식이 여물지 않게 된다.38)고 경고한다.
이런 식으로 1년을 72일 씩 나누어 오행에 배당하고, 각각의 오행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해당된 오행에 합당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1년 을 72일씩 다섯 절기로 나누고 각각에 오행을 배당하는 모습은 이미 앞서의 '관자' '오행' 편에서 본 적이 있다. 따라서 '회남자'에서는 기존에 전해오던 '오행' 편 등의 자료를 기초로 그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36) “行柔惠, 挺羣禁, 開闔扇, 通障塞, 毋伐木.”
37) “丙子干甲子, 蟄蟲早出, 故雷早行.”
38) “庚子干戊子, 五穀有殃.”

 

넷째는 六合에 따라 시행해야 할 정령과 관련된 자료다.

시칙 편에서는 상반기의 6개월과 하반기의 6개월을 차례로 하나씩 대응시켜 6개의 합을 만들어 놓고, 매 달 마다 그 달에 합당한 정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달과 ‘합’의 관계에 있는 6개월 이후의 달에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가령 다음과 같이 말한다.

 

“孟春1월과 孟秋7월이 합이고, 仲春2월과 仲秋8월이 합이며, …… 그러므로 1월에 정치를 잘못하면 7월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2월에 정치를 잘못하면 8월에 우레가 사라지지 않는다.”39)

39) “孟春與孟秋爲合, 仲春與仲秋爲合, …… 故正月失政, 七月涼風不至; 二月失政, 八月雷不藏.”

 

1년 12개월은 6개월 마다 하나의 ‘합’을 이룬다는 것이며, 따라서 1년에는 ‘여섯 개의 합’ 즉 ‘육합’이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합을 이룬다는 것은 합이 되는 2개의 달들 사이에 상호 밀접한 유기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1월에 정치를 잘못하면 6개월 후인 7월에 그 달에 마땅히 불어야 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6가지 도구의 특징을 시령과 관련시키는 자료다.

시칙 편에서는 인간 삶에 필요한 ‘먹줄’, ‘수준기’, ‘곡자’, ‘저울대’, ‘직각자’, ‘저울추’의 6가지 도구를 천지와 사계절에 각각 비유하고 각각이 지닌 특징들을 제시하면서, 천자가 명당에 앉아 행할 정치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가령 가을에 해당하는 직각자의 도는 “엄숙하지만 일을 그르치지 않고, 강하지만 사납지 않으며, 빼앗아도 원망을 사지 않고, 안으로 받아들여도 해로움이 없으며, 위엄과 사나움이 있지만 (남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일은 없고, 명령하면 즉시 시행되어 폐지되는 일이 없으며, 죽이고 정벌하는 일을 완수하면 적들은 곧 사라지게 된다.”40)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천자는 가을에 이러한 직각자의 도를 실천하면 그 누구를 죽여도 복종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천자는 고요히 머물 때는 ‘수준기’를 본받고 움직일 때는 ‘먹줄’을 본받으며, 봄에는 ‘곡자’의 도를 여름에는 ‘저울대’의 도를 가을에는 ‘직각자’의 도를 겨울에는 ‘저울추’의 도를 각각 본받아 정치를 행해야 한다41)고 주장한다. 이렇게 6개의 도구로 비유되는 천지의 도와 사계절의 도에 따라 다스릴 때 건조함, 습함, 추위, 더
위가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이르고 단비와 이슬이 때에 맞게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40) “之爲度也, 肅而不悖, 剛而不憒, 取而無怨, 內而無害, 威厲而不懾, 令行而不廢, 殺伐旣得, 仇敵乃克, 矩正不失, 百誅乃服.”

41) “明堂之制, 靜而法, 動而法, 春治以, 秋治以, 冬治以, 夏治以.”

 

이상에서 제시된 자료들은 모두 자연 현상과 시령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자연계에 나타나는 바람의 흐름을 파악하고, 음양 기운의 성쇠를 살피며, 오행의 기운의 변화를 파악하고, 천지 및 사계절의 특징을 이해하라고 한다. 그런 다음 그런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거기에 합당한 정령을 내리거나 행위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대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천인합일의 이념을 실천해 갔던 것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회남자'에 나타난 '시령'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령 사상의 철학적 배경을 검토하였고, 시령적 사유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보았으며,'회남자'에서 시령 사상이 음양오행론과 결합되고 또 그것이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해석 기제로 적용되는 모습들을 확인하였다. 이제 논자는 이상과 같은 시령 사상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검토하면서 이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천인합일’ 이념의 실현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중국철학의 일반적인 흐름은 대체로 천인합일론으로 기울어진다. 즉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인합일 즉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할 때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유가의 경우는 주로 道德天을 상정하여, 인간은 하늘의 본성을 품수했기 때문에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면 궁극적으로 천과 합일할 수 있다고 하는 天人合德의 관점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도가의 경우는 대개 自然天개념을 선호하였는데, 이 경우 천인합일의 근거가 미약하였다.

노자는 천지자연이 본래 무위하니 인간 또한 자연을 본받아 무위하라고 충고하였고, 장자는 坐忘과 心齋를 통해 피차를 구분하고 시비를 판별하는 ‘成見’을 버리고 大道와 하나가 되는 物我一體의 경지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들 모두 비록 천인합일의 관점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근거가 너무 추상적이고 정신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도가철학에 내재된 이러한 문제는 黃老學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 해결을 보게 된다. 황로학에서는 전국말기부터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기화우주론을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연과 인간은 ‘기’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천인합일의 구체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나아가 그들은 천인합일의 이념을 인간의 삶과 현실정치에서 실제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에 그들은 자연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人事를 수행해야 한다는 時令사상을 제시하여 통치자에게 그것의 실천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둘째, ‘法天’ 또는 ‘法自然’의 이념을 황로학의 관점에서 ‘同氣’로 이해하였다. 

'여씨춘추'에서 “帝者同氣”라고 말함으로써 통치자는 천지자연의 기운에 따라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회남자'에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가리켜 “황제는 太一을 체득하고, 왕은 음양을 본받으며, 覇者는 사계절을 따른다.”42)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태일을 체득한다’는 것은 '여씨춘추'에서 말하는 ‘同氣’의 또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과거 단순히 ‘法天’ 또는 ‘法自然’으로 규정되던 통치자의 法天가 '회남자'에서 ‘同氣’․‘法陰陽’․‘則四時’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 또는 음양오행에 의해 구성된 ‘천’은 人格神도 아니고 泛神도 아니며 정태적인 법칙도 아니었다. 이것은 동력이 있고 질서가 있으며 반응이 있는 기의 우주법칙이며, 이로 인해 유기체적 세계관이 형성되었다.43)法天가 관념의 ‘천’은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법칙이니 노장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無니 하는 것보다 당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쉽게 수용되고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농업사회의 광범위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기운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계절의 변화는 농사일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42) 회남자, 本經, “帝者體太一, 王者法陰陽, 覇者則四時.”
43) 서복관, 앞의 책, 79면.

 

셋째, 음양오행론과 결합하여 ‘오시령’ 체계를 수립하였다. 

'회남자'가 성립되던 한대 초기에는 이미 전국 말기부터 성행하던 음양오행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오행론은 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로 자리 잡고 있어 대부분의 인간사나 자연 현상을 오행과 연관시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본래 ‘음양의 성쇠에 따른다.’ 또는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다.’는 소박한 시령론은 점차 오행론과 결합되어 오시령 체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행을 사시에 배합하는 것은 이미 '여씨춘추'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씨춘추'에서는 季夏의 위치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계하’에 火의 성격과 土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모순이 보인다. 그러나 '회남자'에서는 ‘계하’를 따로 독립시켜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위치시키고 土의 성격만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시령은 '회남자'에 이르러 오행론과 명실상부하게 부응하는 오시령 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참고 문헌 -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