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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rainbow3 2020. 2. 26. 02:24


우리는 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박 만 준(동의대)



1. 들어가는 말: 불편한 진실
2. 우리는 침팬지와 무엇이 다른가?
   1) 인간의 몸과 뇌
   2) 침팬지에게도 ‘나(자아)’가 있을까?
3. 나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1)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과정
   2) 운동 시스템과 마음
4. 마음은 왜 생각하는가?
   1) 움직이는 것들의 생존 전략과 마음
   2) 생각의 탄생
5.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 불편한 진실


한낱 야생의 짐승에서 오늘의 인간으로 발전해 온 인류의 역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 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혁명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유일한 종으로 진화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위대한 혁명은 다른 혁명들과 달리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아직 우리는 이 물음에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묻는 이 같은 질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가?’ ‘우리는 왜 우는가?’ ‘우리는 왜 웃는가?’ ‘우리는 왜 꿈을 꾸는가?’ ‘우리는 왜 섹스를 좋아하는가?’ 등등.

우리 자신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도 아직 우리는 명확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반복적으로 묻고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1)


물론 우리를 정의해 온 전통적인 정의들이 있다. 사회적 동물, 이성적 동물(혹은생각하는 동물)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고,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는 전형적인 정의들이다. 하지만 한걸음만 더 근원적으로 파고 들면 허약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왜 사회적인 존재가 되었을까? 우리는 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해명조차 담고있지 않는 규정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이 물음의 해답을 찾아가는 단서가 무엇일까? 그리고 어디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할까?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이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출발점은 윌슨의 명제, 즉 인간에 대한 탐구는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탄탄한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2)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제이다.3)
한마디로 다윈의 진화론과 신경과학 및 뇌 과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 아니라,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통해 물음을 구성하고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는 말이다.

둘(진화론과 뇌 과학 및 신경과학) 다 무척 ‘불편한 진실’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침팬지의 생물학적 지위는 생리학적으로나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매우 유사하며, 분자 수준에서도 매우 가깝다.4) 하지만 다윈이 죽은 지 백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들이 우리와 제일 가까운 혈족이라는 사실을 입에 올리기 거북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마지못해 동의하는 사람들도 썩 유쾌한 표정이 아니다.
침팬지에게서 인류의 모습을 찾는 것, 그것이 과연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까?5)

그들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혈족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침팬지의 뇌는 인간 뇌의 3분의 1밖에 안 되고, 성대는 원시 유인원과 같아서 분절된 인간의 말을 할 수가 없다. 조상은 같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현대 뇌 과학은 침팬지와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지위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 뇌 과학자(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은 신경체계에 대한 폭넓은 연구 성과를 내놓았고, 우리의 정신세계가 우리 두뇌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 또한 공통조상에 대한 다윈의 이야기 못지않게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삶과 사랑, 희망, 성공, 꿈, 동경 등,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신경세포와 두뇌의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불편한 진실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진실은 굴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고귀한 존재로 도야시켜 줄지도 모른다. 우주론과 진화론, 특히 신경과학과 뇌 과학을 포함한 현대과학은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어떤 특권적 지위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들 중 한 종이고, 더 나아가 무한히 전개되는 우주 속 사건의 영원한 성쇠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한없이 자유롭게 해주고, 겸손과 자족을 배우게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정말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학문적인 명분이 여기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조지프 르두는 단적으로 이를 ‘위대한 질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이것이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큰 질문이라고 말한다.

Joseph LeDoux, Synaptic Self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이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는가?』, 김봉균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8), 15-16쪽. 앞으로는 조지프 르두(2008)로 줄인다.

2) Edward O. Wilson, on Human Nature ,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1978, p. 7. 앞으로는 Wilson(1978)로 줄인다.
3) 이것은 오늘날 인간 조건에 대한 고찰에서 본질적인 전제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경험적 탐구의 대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물학 없이’ 인간 본성에 관한 논리를 개진한 철학자들의 오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데카르트이며, 그는 인간에 관한 철학적 물음을 ‘과학으로부터 떼어놓았다.’ Gerald M. Edelman,Bright Air, Brilliant Fire: on the Matter of the Mind (제럴드 에델만,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황희숙 옮김, 범양사, 2007), 27쪽 참조. 앞으로는 에델만(2007)로 줄인다. 데카르트 이후 과학자들은 한동안 인간의 본성을 과학의 문제로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 19세기 후반 생리학과 생리심리학이 부상함에 따라 인간에 대한 탐구가 다시 과학의 영역과 연결되었다. 현대 심리철학의 대가로 불리는 존 설 교수는 왜 인간의 문제를 과학적 탐구로부터 떼어놓아서는 안 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Cf., John R. Searle,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Inc., 2004.)
4) Cf., Wilson(1978), p. 25.
5)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하면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 오직 한 길을 걸었던 영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1903-1972), 그리고 그와의 인연으로 평생 침팬지와 고릴라, 그리고 우랑우탄과 함께 지낸 세 여성, 즉 다이앤 포시, 제인 구달, 비루테 갈디카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온다. 정재승,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어크로스, 2012, 262-270쪽 참조.



2. 우리는 침팬지와 무엇이 다른가?


1) 인간의 몸과 뇌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서론의 이야기를 계속 따라 가보자.


"사람과 침팬지의 뇌는 출생 시 무게가 비슷하다. 중요한 차이는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의 뇌는 자궁 속에서 거의 다 발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상당 부분 출생 후에 발달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발달이 출생 후에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6)"


침팬지와 인간의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결국 뇌란 무엇이며, 왜 뇌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물음이다.7)

잘 알려져 있듯이, 뇌의 존재 근거는 ‘멍게의 뇌’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멍게가 유충일 때는 올챙이처럼 척색이 있고 척추신경절도 나 있다. 바다를 헤엄쳐 다니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멍게가 바위에 붙어 자라기 시작해 성체가 될 때 척색과 척수를 삼켜 소화시켜 버린다. 생존 방식이 바뀌면서 뇌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8) 다시 말해서 뇌는 동물의 생존이나 생존 방식과 직결되어 있다.9)


뇌의 일차적 목표는 생존이다.10) 동물들의 뇌가 그 종의 생존 방식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11) 침팬지와 인간의 뇌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어떤 생존방식의 차이에서 생겨났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 몸이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뇌와 마음을 얻기 전에 먼저 몸을 얻었’12)으며, 대니얼 데닛의 말대로 진화는 우리 몸의 모든 부위에 정보를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6) Susan A. Greenfield, The Human Brain (수전 그린필드, 『휴먼 브레인』, 박경환 옮김,사인어스북스, 2005), 170쪽. 앞으로는 그린필드(2005)로 줄인다.
7) 『뇌, 생각의 출현』의 저자 박문호 박사는 우리에게 제럴드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와 로돌프 R. 이나스의 『꿈꾸는 기계의 진화: 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를 함께 읽으면 뇌에 대해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관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문호,『뇌, 생각의 출현』, 휴머니스트, 2008, 65쪽뇌, 생각의 출현』, 휴머니스트, 2008, 164쪽. 앞으로는 박문호(2008)로 줄인다. 이 글에서도 두 저자의 저서를 많이 참조하고 있다.

8) John J. Ratey, A User's Guide to The Brain (존 레이티, 『뇌-1.4킬로그램의 사용법』,김소희 옮김, 21세기북스, 2010), 217쪽(앞으로는 레이티(2010)으로 줄인다).; 박문호, 『뇌,생각의 출현』, 휴머니스트, 2008, 65쪽; Rodolfo R. Llinas, I of the Vortex (로돌프 R. 이나스, 『꿈꾸는 기계의 진화: 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 김미선 옮김, 북센스, 2007),35-41쪽(앞으로는 이나스(2007)로 줄인다) 등을 참조.
9)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도 이 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으며,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고 있다. Cf., Wilson(1978), pp. 2-3.
10) Antonio Damasio, Looking for Spinoza: Joy, Sorrow And The Feeling Brain (안토니오 다마지오, 『스피노자의 뇌: 기쁨, 슬픔, 느낌의 뇌과학』,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2007), 225쪽 참조. 앞으로는 다마지오(2007)로 줄인다.
11) 종들은 저마다 다른 진화적 압력을 받아 왔으며, 그들의 뇌는 다 그 나름의 독특한 진화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조지프 르두(2008), 73쪽 참조. 그리고 그린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닭이나 물고기의 소뇌는 뇌 전체에서 각각 절반 또는 90퍼센트에 해당하지만 사람의 소뇌는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이 정도로 자라지 않는다. 소뇌는 종 사이의 차이가 가장 작은 뇌지만 닭과 물고기의 뇌에서 소뇌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뇌가 기본 틀에서 벗어나서 특정 종에 적합하도록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린필드(2005), 152-153쪽 참조.
12) Daniel C. Dennett, Kinds of Minds: Toward An Understanding of Consciousness (대니얼 데닛, 『마음의 진화』, 이희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9), 45쪽, 56-58쪽 참조. 앞으로는 데닛(2009)로 줄인다.



"고래의 수염에는 고래의 먹이에 대한 정보가, 고래가 그 안에서 먹이를 찾는 액체 매질에 대한 정보가 있다. 새의 날개에는 새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매질에 대한 정보가 있다.

카멜레온의 피부에는 눈앞의 환경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동물의 내장과 호르몬계에는 그 동물의 조상이 살았던 세계에 대한 정보가 듬뿍 있다.13)"


그렇다면 우리 몸에는 우리의 뇌에 대한 어떤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일까? 사실 뇌가 발달하는 기본적인 조절 기제는 모든 종들이 공유하고 있다. 뇌가 성장하는 동안 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신경세포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순서는 어느 동물이나 모두 동일하다. 그러므로 벌레나 물고기, 심지어 파리에 대한 연구도 우리 뇌가 발달하는 유전적, 화학적 과정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14)


인간의 경우 수정 후 10여 일이 지나면 배아 원반의 세포들이 이동하면서 층을 이루고 배아 원반은 세 겹이 되는데, 뇌가 될 기미가 나타나는 때가 바로 이 단계다.
신경세포가 될 신경판 neural plate이 이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3주 이후 이 신경판에서 신경 고랑 neural groove이 만들어지고 한 달이 지나면 원시적이나마 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신경세포의 수가 늘어나면서 뇌가 성장한다.


초기 과정에서 뇌의 형성은 머리뼈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일어나며, ‘뇌가 다 자란 후에야 비로소 머리뼈가 굳는다.’15) 정말 놀랍고 신기한 사실이다. 뇌가 성장하려면 신경세포가 늘어나야 하며, 1분에 최대 25만 개의 세포들이 새로 만들어지는 신경세포의 세포 분열과정을 머리뼈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생존에 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명체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임신 후기가 되면 약 2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1천억 개로 감소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진화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며,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생명체가 된다.16)


9개월이 되면 일생 동안 가지고 살아가게 될 거의 모든 신경세포가 태아의 뇌에 자리 잡게 되지만 출생 후 매우 빠른 속도로 자란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성인의 절반 크기가 되고 만 네 살이 되면 출생 당시의 네 배로 성장한다.17) 침팬지에 비해 우리가 주어진 생존 환경에 ‘놀라운 적응력’을 갖게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18)


이후 성장하면서도 생활 방식이나 환경이 바뀌면 뇌의 신경 회로에도 변화가 생긴다.19) 신경세포를 중심으로 신경 회로가 확립되고,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적 요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더 적절한 신경세포, 즉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신경세포들이 더 많이 연결되어 가장 효율적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그 결과 인간은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데 더욱 능수능란해진다.20)


물론 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이 형성되는 방식을 보면 ‘뇌에 자극을 전달하는 신체 또한 뇌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몸과 뇌는 ‘화학적, 신경적 경로를 통해 완전하게 상호 작용한다’.21)


"매우 단순한 생물인 해양 무척추동물, 오피오코마 웬드티(Ophiocoma wendtti)는 포식자가 다가오면 매우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몸을 피해서 근처 바위 틈이나 움푹 파인 곳으로 숨어버린다. . . . 원시적인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 . 포식자의 패턴이 형성되는 절차는 신경을 활성화하고, 그 결과 피신처를 향해 움직이도록 적절한 운동 반응을 유도한다.
. . . 그것은 갓 생성된 신경 패턴에 기초한 행동이다.22)"


이는 몸에서부터 신경계로 향하는 신호 전달의 계통적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오피오코마 웬드티나 인간이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뇌가 몸으로 하여금 생존에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23)

뇌와 몸의 이러한 상호 작용은 몸이 제공하는 외부 환경의 정보를 가공하여 다시 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 가공과 전달은 신경세포들의 연결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24)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바로 연결이며, 환경에서 오는 자극의 정도에 따라 신경세포들 사이에 연결이 형성되는 방식이 결정되고, 그 결과 개인의 기억이 결정되고, 개인이라는 존재가 결정된다.”25) 이것이 바로 ‘나(자아)’이다.26)


13) 데닛(2009), 137쪽.
14) 그린필드(2005), 154쪽; 레이티(2010), 38쪽 참조.

15) 그린필드(2005), 151쪽
16) 레이티(2010), 42쪽.
17) 뇌의 성장이 완성되는 것은 16세 무렵이다.
18) 우리의 뇌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해 왔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다. 레이티(2010), 36쪽. 그리고 그린필드는 ‘신경세포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갖가지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그린필드(2005), 175-178쪽 참조.
19) 예를 들어, 한쪽 발을 들어서 수평과 수직을 구별할 수 있음을 나타내도록 단순한 훈련을 받은 고양이가 있다. 뇌를 조사해 보니 그 발의 감각과 관련된 피질의 특정 부위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약 30퍼센트 증가했음이 확인되었다. 그린필드(2005), 179쪽 참조.
20) 진화론의 원리에 따라 자주 사용되는 뇌의 영역은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고 사용되지 않는 것들은 생존에 필요 없는 것들이다. 이를 통해 뇌의 신경계가 보다 정교하게 조직된다. 레이티(2010), 1996쪽 참조. 또한 에델만의 ‘신경 다윈주의 neural Darwinism’를 참조. 에델만(2007), 126-149쪽.
21) 다마지오(2007), 225쪽.

22) 다마지오(2007), 234쪽.
23)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사냥을 하거나 사냥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하거나 흥분하면 원시인이 대초원에 살던 시대부터 필요했던 모든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 실제 싸우거나 도망치지는 않지만 마치 그렇게 하려는 것처럼 신경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취업 면접할 때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은 생존을 위한 활동에 대비해 혈액을 더 빨리 뿜어내고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그린필드(2005),164-167쪽 참조.
24) 우리 몸의 기능들은 신경세포의 연결들에 의존한다. 연결을 끊으면 기능을 잃게 된다. 이것은 시스템들 간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단일 시스템의 기능에도 적용된다. 조지프 르두(2008), 499쪽 참조.
25) 그린필드(2005), 179쪽. 마이클 가자니가의 말대로 ‘뉴런에도 개성이 있다.’ Michael S. Gazzaniga, Who‘s in Charge? : Free Will & the Science of Brain(마이클 가자니가,『뇌로부터의 자유』, 박인균 옮김, 추수밭, 2012), 61쪽. 앞으로는 가자니가(2012)로 줄인다.
우리의 뇌는 약 16년 동안 자라면서 성숙이 완성되는데, 성숙한 후에도 적응력이 조금 줄어들 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환경을 조작하면 성숙한 뇌에서도 실제로 장기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자극이 풍부한 환경일수록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크게 증가하며, 그에 따라 ‘개인별로 독특한 뇌가 만들어진다’. 그린필드(2005), 181-182쪽 참조.
26) ‘시냅스 자아 이론“을 강조하는 조지프 르두는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이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게 되는지에 관해서 방대한 분량의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아는 곧 시냅스다.’(조지프 르두(2008), 18쪽.)



2) 침팬지에게도 나(자아)가 있을까?


우리는 한 거루 나무와 같다. ‘점점 자라나는, 키 큰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뻗어 나와 뿌리와 쌍방향 소통을 유지하는 커다란 나무’와 같다. ‘진화의 역사는 모두 그 나무 위에 씌어 있다’.27)

우리가 우리 뇌에 대한 정보를 우리 몸에서 읽어내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정보는 어떨까? 이미 살펴본 내용에서만 보더라도 ‘뇌와 몸이 없다면 나라는 것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대학원에서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언제 나는 나 자신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실험을 통해 자아 인식과 관련된 뇌 부위를 확인했다. 책임교수는 인지 심리학자 줄리언 키넌(Julian Keenan)이었다.

그리고 쾰른 대학의 카이 포젤리(Kai Vogeley) 교수는 피실험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물음을 던졌다.

즉 나 자신이 어떤 것을 지각하고 그것을 나와 관련시키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나-관점’만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뇌 영역이 존재하는가? 실험은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피실험자들의 인식 활동과 뇌의 움직임은 자기공명단층촬영을 통해 모두 기록되었다.28)

위 실험들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의 뇌에 ‘나-관점’을 관장하는 특별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자신과 연관된 이야기를 할 경우에 자신의 몸과 연관을 짓는다는 것이다.29)

다시 말해서 ‘나’라는 것은 ‘뇌와 신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30) 그렇다면 침팬지에게도 ‘나(자아 혹은 자아의식)’ 가 있을까? 침팬지에게도 뇌와 몸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감각을 지닌다. 그 후 대상들과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유기체와 외부 세계 사이의 차이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 ‘유기체적 경계’가 ‘나’가 생겨나는 가장 일차적인 생물학적 시스템이다. 그래서 마르틴 후베르트는 뇌에서 어떻게 ‘나-관점’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물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뇌라는 시스템이


"감각기관과 기억을 통해 세계에 대한 정합적인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난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온라인 모델이다.

두 번째로 충족되어야 할 것은 그 시스템이 자아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즉 상이한 정보 출처로부터 자신에 대한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 . . 이 그림들이 모두 뇌에서 더 높은 차원의 조직과 결합되면 시스템 모델 같은 것이 생겨난다.31)"


뇌는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통해 단일한 ‘나’를 지각하고 유기체의 내적 세계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낸다. 이는 ‘나-연관’의 다양한 측면을 구체화시키는 여러 뇌 영역들에 실현되어 있다. 우리는 ‘나’라는 것의 이러한 신경 구조를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경험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대면하는 개별적인 인격으로 구분함으로써 ‘내용이 채워진다’.32)

그러므로 침팬지에게는 없는 ‘나’가 우리에게 생겨난 것은 뇌영역에 실현되어 있는 신경 구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뇌가 침팬지와 다른 특정한 ‘신경 상태’를 취함으로써 실현된 것이다.33) 우리가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시스템의 특이한 성질’34)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는 왜 침팬지와 다른 특이한 시스템을 갖게 되었을까?


"자연은 단순히 생명이라는 축복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뒷 궁리를 하고 있는 듯하다. 타고난 생명활동의 조절 기구는 삶과 죽음 사이의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 . .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절된 생명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는 우리 존재의 심오하고도 결정적인 부분인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것은 각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기울이는 가차없는 노력(conatus)에 대해 묘사할 때 스피노자가 직관한 우리 존재의 첫 번째 현실이다. . . .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를 현대 생물학 용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35)"


이 물음에 대해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렇게 대답한다.


“코나투스는 생명체가 신체 내부의 조건이나 외부 환경의 조건에 직면할 때 생존과 안녕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생물의 뇌 회로에 자리 잡고 있는 경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 . . 혈액으로 운반되는 화학 분자, 신경 통로를 통해 전달되는 전기화학적 신호에 따라 그러한 작업이 수행된다. 수많은 생명 활동이 뇌에 신호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뇌의 특정 부위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회로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지도에 표현된다.”36)


이미 우리는 뇌가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으며, 이제는 생명체 내부와 외부의 환경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고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자연적 도구를 제공하는 것도 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생명 유지가 아니라 그 이상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평가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도구는 곧 우리 몸 전체의 신경 모델이며, 그것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과 지각을 통틀어 조직한다.
그러므로 ‘나’는 ‘환경과 몸의 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뇌가 생산한 구성물’37)이며, ‘더 나은 행위 능력을 갖기 위해’ 뇌가 생산한 것이다.38) 그린필드와 에델만, 다마지오, 윌슨 등을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환경에 대한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강조한 것도 이와 직결되는 사항이며, 마음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 적응력 때문이다.


27) 다마지오(2007), 50쪽.

28) Martin Hubert, Ist der Mensch noch frei? (마르틴 후베르트, 『의식의 재발견』, 원석영 옮김, 프로네시스, 2008), 171쪽 참조. 앞으로는 마르틴 후베르트(2008)로 줄인다. 실험자들은 두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하나는 우리의 지각에서 관점 전환(가령 ‘나-관점’과 ‘그 사람- 관점’)이 일어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관점 전환이 언어적인 이해에 기인하는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29) 마르틴 후베르트(2008), 174-175쪽 참조.
30) 워싱턴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의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교수와 데브라 거스나드(Debra Gusnard) 교수도 스물 네 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나라는 것’을 찾는 실험을 실시했으며, 카이 포젤리 교수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마르틴 후베르트(2008), 159-168쪽,183쪽 참조.
31) 후베르트(2008), 165쪽.
32) 후베르트(2008), 189-190쪽 참조.
33) ‘거울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유인원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인간의 자아에 대한 지각은 질적으로 다르다. Ian Tattersall, The Monkey in the Mirror: Essays on the Science of what makes us Human (이언태터솔, 『거울 속의 원숭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정은영 옮김, 해나무,2006), 80-83쪽 참조. 앞으로는 테터솔(2006)로 줄인다.

34) 후베르트(2008), 183쪽.
35) 다마지오(2007), 47-48쪽.
36) 다마지오(2007), 48-49쪽.
37) 후베르트(2008), 29쪽.
38) 후베르트(2008), 170쪽. ‘나’를 중심으로 ‘행동을 주시하고, 감독하고, 이끌고, 지시하고, 집중시키는 뇌의 영역’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엄청난 차이이다. Daniel G. Amen, Change Your Brain, Change Your Life (다니엘 G. 에이멘, 『그것은 뇌다』, 안한숙 옮김, 한문화, 2008), 165-193 참조. 앞으로는 에이멘(2008)로 줄인다.



3. 나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1)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과정


나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이미 우리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주 넓은 외연의 포괄적인 의미에서 마음의 기원을 암시한 바 있다. 두 가지 ‘불편한 진실(진화론과 뇌과학을 포함한 신경과학)’이 바로 그것이다.

마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와 접목(혹은 통섭)시켜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마음을 자연에서 생겨나는 ‘자연의 한 부분’39)으로 파악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물리적 물질들, 즉 약간의 금속과 탄소, 수소, 산고, 질소, 유황, 인과 같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이 단순한 물질들로부터 마음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일까?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40)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역시 뇌이다. 뇌를 떠나서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과정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마음은 뇌가 아니라 ‘뇌의 작용’이며, 마음은 뇌를 통해 만들어 진다.41)

‘뇌가 하늘보다 넓다’42)는 말이 실감난다. 무한히 넓고 깊어 보이는 마음이 뇌에서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뇌의 물리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능한 한 논지의 일관성을 위해 신경세포의 연결과 뇌의 본질적 기능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


뇌의 본질적 기능은 운동이다. 뇌가 있어야 운동의 결과로 생존이 보장되며, 생존하기 위해 운동한다.43)

‘뇌의 철칙은 생존이 우선’44)이다. 멍게의 생존방식에서 확인했듯이 모든 동물은 뇌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운동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운동을 ‘더 잘 한다.’ 인간은 잘 운동할 수 있는 뇌와 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운동 시스템의 진화 과정은 어류에서부터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섯가지 운동신경 경로, 즉 가장 원시적인 신경 조직인 그물척수로,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전정척수로, 시각을 매개하는 시개척수로, 사지운동을 조절해 주는 적핵척수로, 정교한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피질척수로를 통해 정리될 수 있다.45)


그물척수로는 가장 원시적인 신경 조직으로서 꼬리치는 물고기의 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어류가 물 밖으로 나와 네 발로 버티려고 할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이 균형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전정척수로이며, 균형은 모든 몸동작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육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등장한 것이바로 시개척수로이다. 이른바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원격 감각의 발달과 더불어 사지운동을 관장하는 신경조직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적핵척수로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영장류에게 매우 중요한 피질척수로인데, 인간에 이르러 특별히 발달한 운동 경로이다. 그 결과 인간은 손가락과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움직이는 운동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39) John R. Searle, Mind , Oxford University Press, Inc., 2004, p. 207. 앞으로는 Searle(2004)로 줄인다.
40) Wilson(1999), pp. 112-119. 윌슨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논지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마음이 자연에서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델만은 신경세포에 의해 예증되는 마음을 이루는 물질의 여러 가지 배열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델만(2007), 제3장 참조.
41) Wilson(1999), p. 10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Francis Crick, The Astonishing Hypothesis: The Scientific Search For The Soul , Scribner, New York, 1995. 앞으로는 Crick 1995로 줄인다. Steven Pinker, How the Mind Works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한영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8), 52쪽. 앞으로는 핑커(2008)로 줄인다. Vilayanur S. Romachchandran, The Emerging Mind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이충 옮김, 바다출판사, 2006). 앞으로는 라마찬드란(2006)으로 줄인다. 다마지오(2007), 226쪽. Gary Marcus, The Birth of the Mind (개리 마커스, 『마음이 태어나는 곳: 몇 개의 유전자에서 어떻게 복잡한 인간정신이 태어나는가?』, 김명남 옮김, 해나무, 2005).
42) Gerald M. Edelman, Wider than The Sky: the phenomenal gift of consciousness ,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 2004. 앞으로는 Edelman(2004)로 줄인다.
43) 그린필드(2005), 63쪽.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은 생명체 바깥에 있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 세계와 접속해야 한다. 동물의 경우 그 접속 방식이 곧 운동이다. 데닛이 ‘지향성’을 강조한 까닭이 여기 있다. 데닛(2009), 47-104쪽 참조.
44) 레이티(2010), 222쪽.

45) 박문호(2008), 206-221쪽 참조.



2) 운동 시스템과 마음


여기서 운동이란 ‘뇌의 많은 전기적-화학적 작용들이 통합되어 궁극적으로 표출되는 ’46) 결과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운동을 잘 한다’는 것은 뇌의 전기적-화학적 작용이 발달했다는 말이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와 1천 개에서 1만 개에 이르는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다. 대뇌피질에만 무려 10억의 100만 배만큼의 시냅스가 있다.47)

더욱이 그 정교한 세포 배열과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및 화학적 반응을 고려한다면 필시 뇌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자연 체계’48)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뇌의 구조가 지닌 그 놀라운 복잡성과 다양성이 아니라 오히려 신경세포의 ‘일반적인 구성 원리’이다.


"신경세포는 지형적 지도를 갖는 판(sheet)과 둥근 신경핵으로 이루어져 있다. 층 구조에서 그 지도를 감각 표층과 바깥 신체 및 근육에 연결시키기 위해 신경세포는 많은 신경섬유를 내보낸다. 그리고 그 지도들은 서로에게 지도로 나타난다.49)"


신경세포는 다양하게 해부학적으로 배열되거나 지도로 배열되어 각 장소에서 신호 전달의 특수한 역할을 하도록 조화롭게 조직되므로 지도화(mapping)는 복잡한 뇌에있어 특히 중요한 원리이다. 정보가 뇌에서 어떻게 조직되고 표상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50) 그리고 지도가 구성된 뇌의 구조 자체도 역시 지도화 되며, 뇌의 다른 조직의 영향을 받는다.

뇌 속에서 지형적으로 조직되는 신경 패턴의 시스템은 모두 하나의 조직화 논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은 ‘이 정교하게 구성된 장치의 일부’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기초적인 이미지는 신체적 사건에 대한 이미지’ 이며, 그것은 ‘우리 신체의 조직과 상태를 포괄적으로 표상하는 뇌 지도들의 집합체’ 이다.51)

따라서 ‘몸과 뇌와 마음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며, ‘하나의 생명체가 각기 다른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통찰’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마음과 몸은 서로 평형하며 서로 연관되어 있는 절차로서 마치 한 물체의 양면처럼 모든 측면에서 서로를 모방한다. . . . 이렇게 평행되는 현상의 깊은 내면에는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마음에 표상하는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음과 몸은 같은 발판을 딛고 있다.52)"


왜 마음이 존재할까? 우리의 신경세포와 신경패턴이 ‘잘 운동’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며, 마음도 그 시스템의 일부이고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마음은 몸을 위해, 몸이 잘 운동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한마디로 진화 과정에 마음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이 그 몸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일단 그 내용을 채울 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 . 마음은 몸을 위해 실용적이고 유용한 임무를 수행한다. . . . 몸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모든 종류의 상황과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음의 임무이다.53)"


여기서 우리는 마음이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뇌가 몸으로 하여금 생존에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하듯이, 뇌의 작용인 마음도 동일하다.


또한 뇌의 본질적 기능이 운동이듯이, 마음의 본질도 그렇다. ‘진화적으로 태동되는 순간부터 마음은 운동이 내면화된 것’이다. 운동과 마음은 ‘동일한 과정의 다른 부분’이다.54)


46) 박문호(2008), 105쪽.
47) 라마찬드란(2006), 21쪽. 에델만(2007), 37-38쪽 참조.
48) Elkhonon Goldberg, The Executive Brain: Frontal Lobes and the Civilized Mind(엘코논 골드버그, 내 안의 CEO 전두엽, 김인명 옮김, 시그마프레스, 2008), 34쪽. 앞으로는 골드버그(2008)로 줄인다.
49) 에델만(2007), 43쪽.

50) 예컨대 빛의 자극이 어떻게 뇌에 도달하는가를 보자. 먼저 빛이 망막에서 전기 신호로 바뀌고 막대 세포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돕신 rhodopsin)이 빛을 흡수한다. 빛을 흡수하면 로돕신의 화학 구조가 바뀌고 이어서 막대 세포에서 일련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 연속 반응의 결과로 막대 세포의 전기적 특성이 변화한다. 전기적 특성은 막대 세포에 의해 생성되는 전압이다. 그러므로 안구는 독립된 시각 중추가 아니다. 오히려 안구는 출발점이다. 이곳에서부터 모든 중요한 신호가 뇌에 전달되어 가공된 후 실제 시각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망막에서 시작된 전기신호는 시신경 섬유를 따라 뇌 깊숙한 곳의 시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시상에 도달한 시각 정보가 비로소 대뇌의 시각피질에 전달된다. 이러한 전기적, 화학적 변화 체계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또 어떻게 배열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린필드(2005), 80-81쪽 참조.
51) 다음을 함께 참조하라. 다마지오(2007); Rita Carter, Christopher D. Frith, Mapping the Mind (리타 카터, 크리스토퍼 프리스, 『뇌 : 맵핑마인드』, 양영철 외 옮김, 말글빛냄,2007. 앞으로는 리타 카터(2007)로 줄인다); 다마지오(2007), 다마지오는 뇌의 몸의 지도화가 중단되면 마음도 사라진다고 말한다.; Paul Thagard, The Brain and the Meaning of Life (폴 새가드, 『뇌와 삶의 의미: 뇌과학과 철학의 유쾌한 만남』, 김미선 옮김, 필로소픽, 2011). 앞으로는 새가드(2011)로 줄인다.; 이나스(2007).
52) 다마지오(2007), 251쪽.
53) 다마지오(2007), 238쪽.

54) 이나스(2007), 22-24쪽.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라. 두뇌의 다양한 기능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온다. 당신은 그 정보들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논리를 더하고, 결과를 검사하고, 반응을 지시한다. 이것들은 모두 운동 기능에 기반을 둔다.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운동 행위를 할 때의 신경 네트워크와 같다. 레이티(2010), 207쪽 참조.



4. 마음은 왜 생각하는가?


1) 움직이는 것들의 생존전략과 마음


왜 마음이 존재할까? 운동이 내면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이미 지적했듯이 마음은 몸을 위해 존재하고, 생명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나간다.

그렇다면 마음은 생명체를 위해, 우리의 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세상과 치밀하게 겨루려면 더 빠르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마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하면서 대니얼 데닛은이렇게 말한다.


"소나무에 닿는 빛과 다람쥐에 닿는 빛에는 엇비슷한 정보가 담겨 있지만 다람쥐는 정보를 구하고 나아가 정보를 탐구하고 해석하기까지 한다.

 . . . 동물을 그저 풀을 먹는 초식동물과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동물은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Miller)가 절묘하게 표현한 대로 정보를 먹는 정보 포식자(informavore)이다.55)"


인간도 정보 포식자일뿐더러, 정보 포식자로서의 동물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이다.
신경지도 수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정보의 통합과 조작을 위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마지오의 말대로, ‘뇌의 영역에서 지도화 되는 신체 상태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축적되어 결정적인 수준(critical pitch)에 이르게 될 때’56) 마음이 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뇌의 근원적인 운동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생명체에게 뇌의 운동은 곧 의식이기 때문이다.57) 의식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펜로즈는 ‘마음은 왜 필요한가?’를 묻고,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의식이 그 소유자에게 주는 이익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대자연은 의식이 있는 두뇌를 진화시켰는가?’ ‘의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행동상의 차이는 있는가?’ 를 묻고 있다.58)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아주 유익한 질문들이다. 이는 결국 마음이 어떻게 인간을 ‘잘 운동하는 동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이나스는 ‘움직이는 것들의 생존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생물은 생존을 위해 먹이와 보금자리를 얻고 다른 누군가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지능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여기서 ‘지능적으로(intelligently)’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생물이 기초적인 전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59)"


정보 포식자로서 인간의 마음이 수행하는 정보의 통합과 조작은 결국 이 전략과 연결된다. 전략이란 결국 마음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의 운동 패턴’60)이기 때문이다. ‘신경 활동 패턴이 내부적 중요성을 획득하면, 뇌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 즉 또 하나의 신경 활동 패턴을 만들어낸다.’ 전략은 일종의 ‘내부 표상’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존 전략은 예측, 판단, 조절, 계획하는 등의 능력과 직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이나스는 특히 ‘예측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예측하는 능력은 아주 오래된 진화적 기능이며, 한 생물의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61)


"예측을 수행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는 . . . 첫째, 행동의 수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외부 세계와 유의미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기 위해서이고 . . . 둘째, 지능과 활발한 운동을 통해 외부 세계와 빠르게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생물의 삶은 필연적으로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다.62)"


‘운동’과 ‘인지’는 전략적으로 동일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63)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 전개되는 운동의 조절과 실행 과정에서 마음이 생겨난다. 한마디로 ‘뇌가 조직된 운동을 조절하는 것으로부터 마음과 그 본성이 발생한’64) 것이다. 무슨 뜻일까?


우리가 외부 세계의 정보를 뇌로 내면화하고 이를 행동(운동)으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은 신경세포의 전기적 성질(electric property)의 특성(전기적 성질들의 차이와 연결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뇌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어떻게 유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수행하는지를 보면 운동의 내면화와 마음의 진화적 관계가 드러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마음을 구성하는 것은 곧 ‘뇌의 전기적 사건들’65)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운동이 내면화된 것’이라고 했다. 운동성의 근원적 단계(myogenic stage)에서 ‘내면화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모든 근육세포들은 전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한 근육세포의 수축을 일으키는 전기적 신호는 다른 세포로 빠르게 확산된다. 그것이 순전히 근육세포 자체에서 생겨나므로 운동성의 근원적 단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변형이 일어난다. 척수가 근육세포를 향해 축색을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전기화학적 시냅스를 형성하게 되고, 근육세포의 근원적 운동성이 척수 신경세포 회로의 연결망과 전기적 성질로 변환되어 신경 운동(neurogenic motricity)으로 바뀌기에 이른다. 동물의 외부 성질이 마침내 뇌 안에 내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하는 능력도 바로 이러한 내면화 메커니즘이 진화 발전한 것이다.66)


55) 데닛(2009), 142쪽.
56) 다마지오(2007), 241쪽.
57) 박문호(2008), 327-342쪽과 이나스(2007), 45-70쪽 등을 참조.
58) Roger Penrose, The Emperor's New Mind : Concerning Computers, Minds, and The Laws of Physics (로저 펜로즈, 『황제의 새 마음 : 컴퓨터, 마음, 물리 법칙에 관하여』 하,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4), 622-633쪽 참조. 앞으로는 펜로즈(2004)로 줄인다.

59) 이나스(2007), 45쪽.
60) 이나스(2007), 48쪽.
61) ‘예측하는 능력은 진화과정에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나스는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나스(2007), 48쪽 이하 참조. 예측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미리 내다 보는 것이며, 동물의 왕국에서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예측하는 능력은 광범위한 뇌 기능들 중에서도 가장 궁극적이고 공통된 것이다.’ 이나스(2007), 45쪽.
62) 이나스(2007), 68쪽. 이 외에도 뇌가 예측에 의해 작용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곧 에너지를 보존하여 운동 조절의 엄청난 부담을 덜기 위해서이다. 이나스(2007),69-70쪽 참조.
63) Cf., Gerald M. Edelman, Neural Darwinism : The Theory of Neuroual Group Selection , Basic Books, New York, 1987.; Mountcastle, V. B., Perceptual Neuroscience : The Cerebral Cortex ,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1998.; Changeux J. P. and Deheane, S., Hierarchical modeling of cognitive functions : From synaptic transmission to the Tower of London, Int. J. Psycol. Physiol.35(2000): 179-187.; Changeux J. P., The Neuronal Ma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1996.
64) 이나스(2007), 83쪽.

65) 이나스(2007), 114쪽.
66) 박문호(2008), 293-295쪽, 327-357쪽; 이나스(2007), 3장 등을 참조. 이 논문에서는 상세하게 다룰 기회가 없었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식고고학(Cognitive Archaeology)과 지금의 논지를 결합하면 아주 유익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뇌의 확대와 지능 및 행동 변화의 상관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진다. Steven Mithen, Prehistory of the Mind: The Cognitive Origins of Art, Religion and Science ( 스티븐 미슨,『마음의 역사 -인류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되었는가?』, 윤소정 옮김, 영림카디널, 2001) 참조. 앞으로는 미슨(2001)로 줄인다.



2) 생각의 탄생


내면화 메커니즘의 꽃은 전두엽(frontal lobe)이다. 내면화 메커니즘의 본질이 운동이고, 운동을 다루는 것이 곧 전두엽이기 때문이다.67) 그리고 마음과 생각하는 능력이 곧 내면화 메커니즘이 진화 발전한 것이라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우리 전두엽에 있다.


"비교적 큰 전두엽이야말로 인간이 그들의 덜 발달한 조상 및 다른 모든 동물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해묵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고, 목표에 접근할 단계를 계획하고,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다 전두엽이 급속히 발달한 덕분이다.68)"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인간이 탄생하는 후기 진화 단계에서 폭발적인 팽창을 하며, 뇌에서 가장 진보되고 복잡한 기능, 즉 지휘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을 수행한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지향계’의 발달을 ‘신경계’의 진화로 설명하고,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어떤 이익이 되는가를 분석한 이유가 여기 있다. 왜냐하면 전두엽의 지휘 집행 기능의 핵심적인 내용이 곧 ‘지향성(intentionality)’, ‘목표지향성(purposefulness)’이기 때문이다.


"유기체 안에 신경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몸 안에는 구식 우편망이 있었다. 몸 안을 흐르는 다양한 체액은 생체 제어와 자기 유지를 위해 값진 정보의 보따리를 다소 느리지만 구석구석 실어 날랐다.

이 원시 우편망의 후예를 동물과 식물 모두에서 볼 수 있다.

동물 안에서 상품과 폐품을 수송하는 혈액은 일찍부터 정보 고속도로 역할을 맡았다. . . . 그러다가 정보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 . . 신경계가 나타난다.69)"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는 이 모든 존재를 데닛은 ‘지향계(intentional system)’라 부른다.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과 통하는 개념이며, 뇌의 세 영역인 감각, 운동, 기억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70) 달리 말한다면 지향성이 곧 의식이다.


의식의 지향계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먹이를 나머지 세상과 구별하고, 자신은 다른 지향계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하는 일이다. 이러한 전략은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왜냐하면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집행 기능을 감독하는가 하면,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집행을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수행하고, 장애물이나 실패를 접할 때 경로를 수정하고 대처하며, 외적인 방향이나 구조가 없을 때 성공적으로 행동하는 능력’71)이 곧 전전두엽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전두엽의 기능은 행동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일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태도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실패를 수정하고 대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을 자각하고 과거로부터 벗어나 앞을 내다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뇌는 외부 세계를 단순히 내적 표상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서는, 이른바 창조적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미래의 내적 표상을 그려내지 않고서는 실패를 수정하거나 대처할 길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구 만들기’이다. 도구는 자연 속에 이미 만들어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가진 신경조직인 전두엽’72)은 도구 만들기와 인류 문명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73) 언어 창조의 능력도 마찬가지다.74)


67) 대뇌의 피질 가운데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분으로서 네 개의 주엽(major lobe)으로 되어 있는데, 후두엽은 시각 정보를, 측두엽은 소리를, 두정엽은 촉각을, 그리고 전두엽은 운동을 다룬다.
68) Tali Sharot, The Optimism Bias (탈리 샤롯, 『설계된 망각: 살기 위해, 뇌는 낙관주의를 선택한다』, 김미선 옮김, 리더스복, 2013), 74쪽. 앞으로는 샤롯(2013)으로 줄인다.

69) 데닛(2009), 59쪽.
70)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과 통한다. 데닛(2009), 71쪽.
71) 에이멘(2008), 165쪽.
72) 골드버그(2008), 37쪽.
73)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고 미래를 내다보고 자기를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전두엽이 발달한 덕분이다. 자각 능력과 전망 능력은 둘 다 생존에 결정적인 이익이 된다. 샤롯(2013), 74-75쪽 참조.
74) 언어에 의한 뇌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슨(2001)을 참조하라.



일차적 의식만을 가진 동물들은 기억된 현재, 즉 외부 세계의 실제 시간에서 벌어지는 연속적인 사건들에 강하게 얽매여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기호 기억 때문이며, 이는 곧 언어 능력의 진화적 획득을 의미한다.75)


"고차원적 의식에는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개성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과거와 미래의 술어로 세계를 모형화할 수 있는 능력, 직접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호 기억 없이는 이런 능력들은 발생하지 못한다. 기호 기억의 진화론적 출현을 통해 이런 능력들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해 보기 위해서는 언어가 어떻게 획득되고 진화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76)


인간은 ‘말하는 짐승’이며, ‘언어의 정원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잘 가꿔진 곳이다.’77) 직립하면서 두개 구조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상후두도(supralaryngeal trac)나 상후두강의 진화에 형태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이 진화론적 발생의 일부로 성도가 생겨나고, 성대로 흘러드는 기류를 완전히 조절해서, 결국엔 동시에 명료하게 발음되는 음소(phonemes)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러한 진화와 함께 브로카와 베르니케라는 대뇌피질 영역이 생겨나 뇌의 청각, 운동, 개념 영역을 서로 연결하면서 언어의 생성과 범주화를 조정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이 음소의 순서는 물론이고 음소를 재범주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억을 발생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영역에 의해 마련되는 특수한 기억으로 인해 음운론 단계와 의미론 단계, 구문론 단계들이 직접적으로 상호 작용하게 된다.78)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분절음의 복잡한 서열에 대해 그 어떤 뇌 기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침팬지는 개념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하며, 심지어는 단순한 ‘의미론’까지도 구사하지만 정교한 구문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언어, 즉 말 그 자체를 가지지 못한다.79)"


진정한 언어의 획득은 인간의 개념적 능력을 놀랍게 증가시킨다. 개념 중추들에 특수한 기호 기억이 추가됨으로써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연결하는 능력이 생겨난 것이다. 언어는 ‘마음의 도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언어가 덧붙어 있는 마음과 언어가 없는 마음은 판이하게 다르다.’80)

이는 ‘생각하는 지혜’와 ‘생각하지 않는 지혜’가 다른 것과 같다. 언어로 인해 외부 세계에 대한 인지능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동물 뇌가 주는 제약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뇌와 마음을 설계하는 진화의 역사에서 언어의 발명보다 더 획기적이고 폭발적인 발전 단계는 없었다.


75) 일차적 의식의 신경회로에는 언어가 배제되어 있다.
76) 에델만(2007), 188쪽. 일차적 의식과 고차원적 의식은 차원이 다르지만, 고차원적 의식은 일차적 의식에 도움을 주는 구조가 계속 작동되는 것을 전제한다. 일차적 의식이 생존을 위한 운동의 내면적 메커니즘에서 생겨났듯이 뇌와 마음의 진화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같은 곳 참조).
77) Jean-Didier Vincent, Voyage Extraordinaire au Centre du Cerveau (장 디디에 뱅상,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 이세진 옮김, 해나무, 2010), 585-586쪽. 앞으로는 뱅상(2010)으로 줄인다.
78) 에델만(2007), 189-194쪽 참조. 뇌는 의미론을 음운론적 서열에 반복적으로 연결시켜서 구문론적 대응물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기억 s에서 발생하는 법칙들을 개념적 조작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기억과 이해, 언어의 생성 등은 재입력에 의해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이로써 고차원적 의식의 구조가 생성된다.
79) 에델만(2007), 194쪽.

80) 데닛(2009), 44쪽.



5. 맺음말


이 글은 침팬지에서 시작해서 침팬지로 끝난다. 우리가 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침팬지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실감나게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요지는 이렇다.


1) 우리는 침팬지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의 뇌와 몸은 침팬지와 다르며, 따라서 침팬지에 비해 생존 환경에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게 되었다.


2) 침팬지에게도 자아가 있는가?
침팬지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자아에 대한 지각은 질적으로 다르다.


3) 나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은 침팬지에 비해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이 생겨난 것도 바로이 적응력 때문이다. 마음은 뇌의 물리적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4) 마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은 몸을 위해, 몸이 잘 운동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몸이 ‘잘 운동한다’는 것은 곧 ‘잘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하는 능력은 이러한 운동의 내면화 메커니즘이 진화 발전한 것이다. 생존 전략에서 운동과 ‘인지’는 전략적으로 동일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면화 메커니즘의 꽃은 전두엽이다.


5) 언어는 마음의 도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언어가 덧붙어 있는 마음과 언어가 없는 마음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생각하는 지혜’와 ‘생각하지 않는 지혜’가 다른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이 해답은 철학이 철학 본연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소중한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질문 비판가로서 전문적으로 갈고 닦은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좋은 물음을 찾고 낡은 질문의 관행과 전통을 깨트리는 일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웅대한 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81)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성적 동물)’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다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즉, 바른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바른 마음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이익을 안겨주는 것일까? 철학적 사유의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윤리와 도덕의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지혜란 어떤 것일까? 예술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등등.


이러한 물음들은 철학의 존재 이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적어도 인간학으로서 철학의 위치에서 보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물음들이다. 이 글의 논지에서 보면 이 물음들에 대한 탐구는 특히 ‘자연의 지혜’82)에 대한 보다 더 진지한 접근을 요구한다. 자연의 지혜는 우리의 본성(자연)이 요구하는 지혜이며, 이 시대의 위기와 철학의 위기를 구원하는 길이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81) 데닛(2009), 10쪽.

82) 새가드(2011), 27쪽.




참고문헌 - 제외


안 호 영(동국대)


박만준 교수님(이하 논자로 지칭)은 진화론, 신경과학 그리고 뇌과학 등의 성과를 참조하고 분석하여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검토한 후, 이제 ‘왜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을 얻었으며, 앞으로는 철학적 입장에서 이것에 대해 검토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인간을 생각 또는 마음의 존재로 규정하는 ‘정신주의’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을 주도해왔던 지배적 시각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어렵지만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또 물흐르듯 이어지는 전개 방식에 이끌려 논자가 제시하는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물론 몇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 오르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제시된 다양한 자료에 압도된 나머지 독자들은 논자의 주장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논자는 끝까지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는데, 다루는 내용의 전문성과 난해함을 우려해서인지 ‘맺음말’에 이르러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쏟으며 과학적 설명과 철학적 반성의 만남의 필요성과 그 성과에 대한 논의를 개진해준 논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논평자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자극의 단초를 제기하여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논의의 흐름을 따라 논자의 주장을 재구성해 보려고 한다.


논자는 논의하려는 주제에 쏟아질 부담감 혹은 억측을 ‘불편한 진실’이라는 용어를 통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서 등장하는 ‘침팬지’와 ‘뇌’라는 단어는 그 불편함의 정도를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인 용어임에 틀림없을 것인데, 침팬지와 인간이 최소한 명칭으로나마 ‘뇌’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물질적인 것으로서의 뇌가 ‘무게’, ‘크기’, ‘연결성’ 그리고 ‘개수’ 등과 같은 물리량으로 양화되는 신경 구조의 집합체로 이해하게 될 때, 인간과 침팬지의 다름은 다만 양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대다수의 비판가들이 이 단계에서 매우 불편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그 다름은 질적인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불편하지만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논자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논자는 그 질적인 다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자아)’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도 비판자들은 여기서 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논자가 침팬지와 인간이 과연 ‘나(자아)’라는 용어를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논자는 여기서 침팬지에게는 ‘나(자아)’라는 것이 없다는 주장을 통해 논란의 가능성을 뒤로 미루면서, 논의의 방향을 신경 구조에 대한 문제로 이끌고 간다. 그렇지만 신경 구조가 문제가 될 때, 비록 문제를 양에서 질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현듯 ‘나(자아)의 물질성’을 마주하게 되어, 엄청난 자료들을(A4로 온전히 4쪽이다!) 그 근거로 제시하기는 하지만, 마음 또는 생각 등을 신경생리학적 과정으로 환원한가 에 대한 많은 의구심과 우려를 불러일으킬만한 것이다.


논자는 이제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논자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온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말 그대로 ‘아주 어려운 문제’, 즉, 물질 계에서 마음의 위치이다. 논자는 이원론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기 위해 “마음은 뇌가 아니라 ‘뇌의 작용’이며, 마음은 뇌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제 남은 일은 ‘뇌의 작용’이 진화론, 신경과학 그리고 뇌과학 등의 현대 과학적 성과를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명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학적 결과 진위 여부나 신뢰 정도 등과 같은 의문은 과학 연구의 과정에 대한 믿음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결과를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는 논자의 성실성에 맡겨두기로 하자.

이렇게 할 수 있는 실마리는 논자가 현재까지 주어진 경험적 사실과 충돌하는 도약은 더 이상 ‘철학적’일 수 없으며, 나아가 ‘뇌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뇌를 통한 철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논자가 불편한 진실이라 강변하는 이유는 사변적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뇌의 과학과 철학’은 경험적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비철학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며, 이들에게는 ‘사변(생각)’이야 말로 철학적 사유의 고유한 징표일 것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 결과 논자는 철학적 탐구의 본성과 방향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 같다. 예컨대, 서구의 이성주의, 실재론과 반실재론 문제, 상대주의 문제 그리고 철학적 탐구에서 경험적 지식의 역할 등에 대한 논자의 입장이 궁금하다.


둘째, 우리는 진화의 과정을 되밟을 수는 없지만, 진화의 결과를 모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인공적으로 흉내 낼 수 있다면, 즉 인간을 닮은 두뇌와 신체를 만들어 낸다면, 그 결과로 생각이 출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셋째, 사유 존재로서의 인간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논의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가? 특히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속성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왔던 생각, 마음, 의식 등을 논자는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넷째, 논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종교도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해해야 하고, 또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를 ‘고결한 기계인형’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종교를 적응력의 입장으로 해석하려고 할 때, 이런 해석 자체가 오히려 우리의 적응력을 떨어뜨리지는 않겠는가?


다섯째, 생존 전략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해서, 뇌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고요히 앉아 명상을 함으로써 생존을 위해서 애쓰는 나”와 이런 “나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나를 인식하는 것”도 진화론 및 신경과학의 설명과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즉 과학을 통해서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문제와 실제로 뇌에 근거를 두고 우리가 삶아가는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 질적인 도약을 이룬 인간이기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질적인 새로움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유의미하다면, 그것은 이질적인 새로움에 참여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예를 든다면, ‘경이’, ‘감동’, ‘공감, ‘열망’ 또는 ‘사랑’ 등의 가능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