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시아의 밀서
다음 이야기는 1899년에 한 시간 동안에 쓰여졌다. 저자 앨버트 허버트는 매우 쉬운 문체로 쓴 것이지,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기본적인 교훈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일찌기 1913년에 원본이 4천만 부나 인쇄되고 있었다. 노일 전쟁중, 전선으로 향하는 러시아 병사는 모두 '가르시아에의 밀서'를 한 권씩 휴대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포로인 러시아 병사로부터 몰수한 그 책을 즉각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 천황의 칙명에 따라서, 무관이나 문관을 가리지 않고 모든 관리에게 한 부씩 주어졌다. 이 이야기는 이제까지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터키어, 힌두어,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아마도 이 밖에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것이다. 그 교훈은 당연하면서도, 글 쓴 당시의 시세에 맞는 것이었지만, 오늘날도 아직까지 귀가 따가울 만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고 있다.
<가르시아에의 밀서>
쿠바식으로 말한다면, 나의 기억의 지평선에 근일점의 화성처럼 빛나는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반란군의 지도자와 즉각 연락을 취할 일이 생겼다. 가르시아는 쿠바의 어느 깊은 산속에 있다.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편이나 전보로 연락될 까닭도 없었다. 대통령은 그의 협력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긴급하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게 말했다. "가르시아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로원이라는 사내일 겁니다." 로원이 불려와서 가르시아 앞으로 된 편지가 맡겨졌다. '로원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어떻게 그 편지를 받아들고, 기름칠한 포대에 넣어서 밀봉한 뒤, 심장 위에 달아매고, 4일 뒤에 어둠을 타고 작은 보트로 쿠바의 해안에 상륙하여 정글을 통해 적국을 도보로 종단해서 가르시아에게 밀서를 전하고, 3주일 뒤에는 이 섬의 한 쪽 해안에 나타났는가를 여기서 상세하게 이야기할 생각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맥틴리 대통령이 로원에게 가르시아 앞으로의 밀서를 맡겼을 때, 로원은 그 밀서를 받아들고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묻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그 모습을 불멸의 청동으로 조각해서, 그 동상을 전국 대학에 세워 둘 인물일 것이다.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탁상의 학문도, 이런 저런 지식도 아니고, 등뼈를 똑바로 뻗게 하여 일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뢰에 보답하고, 신속하게 행동하고, 정력을 집중해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2의 가르시아에게 밀서를 전할 것이다. 가르시아 장군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가르시아는 수없이 많이 현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대사업을 수행하려 해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평균적인 인간의 무능함에 아연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가지 일에 집중해서 그것을 수행하는 능력, 또는 의욕이 부족한 것이다. 거치른 도움, 어리석은 부주의, 자신과 상관없다는 식의 무관심, 게다가 건성으로 하는 것이 성격인 듯한 행동이 나타난다. 속이거나, 달래거나, 겁주거나 해서 남이 도와 주도록 강요하거나, 돈으로 사는 수밖에 없는 한, 혹은 은혜로운 신이 기적을 내리시어 빛의 천사를 도우러 보내 주시지 않는 한 아무도 성공은 바라지 못한다. 자, 그러면 시험을 해 보자. 지금 당신은 사무실에서 6명의 부하를 통괄하고 있다면 그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을 불러 어떤 일을 해 보라고 부탁을 한다. "백과사전을 뒤져서, 코레조의 생애에 대해서 간단한 메모를 해 줄 수 있겠나?" 그 부하는 조용히 "네"라고 대답하고 일을 시작할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상한 얼굴을 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틀림없이 할 것이다.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백과사전에 있습니까?" "백과사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비스마르크에 대한 것이 아닙니까?" "찰리에게 시켜도 되지 않습니까?" "엣날 사람입니까?" "바쁘십니까?" "그 책을 찾아 드릴테니 손수 찾아 보시지 않겠습니까?" "왜 아시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 정보를 얻는 방법이나, 당신이 그것을 알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한 뒤에, 그 부하는 십중팔구 다른 부하에게 가르시아를 찾는 일을 전가시킬 것이다. 그리고 상사에게 돌아가서 "그런 인물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내기에 질지도 모르지만 평균법칙에 따르면 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현명하다면, 보좌역에게 코레조의 색인은 K가 아니고 C라고 일부러 설명할 필요없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젠 됐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직접 찾아 볼 것이다.
이처럼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의 결여, 정신적인 우둔함, 의지의 연약함, 자진해서 기분좋게 맡으려 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진실한 사회인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행동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원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발휘할 것인가? 무지막지한 곤봉을 손에 든 부사장도 한 사람쯤 필요하리라. 토요일 밤에 해고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고분고분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타이피스트의 구인광고를 내걸면, 응모자 10명 가운데 9명 정도는 제대로 철자법도 모르고 구두점도 찍을 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은 몰라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가르시아에의 밀서를 쓸 수 있을까? "저 출납계 말입니다만."하고 어떤 큰 공장에서 감독이 말했다. "그가 어찌 됐나?" "회계로서는 유능합니다만, 시내로 심부름을 보내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중에 몇군데의 술집에 들리고 번화가에 다다르면 무슨 일로 나왔는지 잊고 있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가르시아에의 밀서를 맡길 수 있을까? 나는 요즘, '학대 받고 착취 받는 노동자'나 '올바른 직업을 찾아 방황하는, 의탁할 곳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감상적인 동정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대개 경영자에 대한 심한 말이 따르기 마련이다. 주책없이 쓸모없는 녀석들에게 알맞는 일을 시켜 주려고 헛되이 분투해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늙어버린 고용주 그가 등을 돌리면 게으럼만 피우는 일손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인내심 있게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고용주! 이런 고용주에게 들려 줄 말도 없다. 어느 가게에서도, 공장에서도, 제초작업은 항상 하고 있다. 고용주는 사업의 번영에 도움이 되지않는 능력없는 일손을 끊임없이 해고하고 다시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이 취사선택은 계속된다. 다만 불경기로 직업이 줄어들면 그 선택이 엄해져서 무능하고 쓸모없는 사람은 직장에서 쫓겨나기 마련이다. 적자생존의 원리이다. 어느 고용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가장 뛰어난 인재, 가르시아에게 밀서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키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매우 뛰어난 재질을 갖추고 있지만 자신이 사업을 경영할 능력이 없다. 또한 남에게도 아무 쓸모가 없다. 고용주가 자기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는 가하려 하고 있다는 이상한 의심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며,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가르시아에의 밀서가 맡겨지면 그 대답은 아마도 "당신이 전하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내는 오늘밤도 직장을 찾아서 거리를 해매고 있다. 바람이 그 닳고 닳은 코트를 통해서 자기자신의 무능함을 알리고 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를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항상 사람들의 불만에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떠한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그에게 인상을 심어 주려면, 바닥이 두꺼운 부츠의 발끝으로 걷어차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토록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는 가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대사업의 경영에 노력하고 , 일이 끝난 것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도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 방울쯤 동정의 눈물을 흘려 주자꾸나. 무책임하고 주책이 없는 무능한 패거리, 그리고 배은망덕한 녀석들을 통솔하다가 고생으로 젊은 나이에 백발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사업이 없으면, 이 패거리들은 안락하게 휴식할 공간마저 얻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이 너무 지나쳤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이 노력을 촉구하여 승리를 거두지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안주할 곳과 입을 것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고, 하루하루의 일삯만큼 일을 해왔다.동시에 사람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에 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빈곤 그 자체는 아무런 이점도 없다. 누더기는 칭찬할 것이 못된다. 그리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고결하다고만 할 수 없듯이 모든 고용주가 욕심 많고 강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마음에 끌리는 것은 '상사'가 있을 때는 물론, 없을 때도 자기 일을 끝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르시아에의 밀서를 건네주면 아무 말 없이 그 편지를 받아들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고 곧장 하수도에 버리거나 그 밖에 전달하지 않고 처분해 버릴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일시 해고'는 받지 않을 것이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필요도 없다. 문명은 그러한 사람들을 찾는 기나긴 과정이다. 그러한 사람의 소망은 무엇이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어느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어느 사무소에서나, 가게에서나, 공장에서도 온 세계가 그러한 사람을 부르고 있다. '가르시아에게 밀서를 전할 수 있는' 인물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법정스님) (0) | 2020.04.02 |
---|---|
당신께 드리는 좋은 글 (0) | 2020.03.20 |
꼽추 엄마의 눈물 (0) | 2020.03.10 |
진정한 인간의 길-법정스님 (0) | 2020.03.08 |
마음의 메아리 - 법정 스님 (0) | 2020.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