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빗살무늬토기 발생 & 전파

rainbow3 2022. 5. 2. 02:33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의 발생 및 전파 이론은

캄케라믹(Kammkeramik,櫛文土器)이 북유럽의 핀란드, 독일 북부일대에서 발생, 성행하여

동쪽으로 전파되어 시베리아 지역, 바이칼호 지역, 연해주 지방을 거처

한반도 동해안으로 유입되어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와 시베리아 <빗살무늬토기>는

그 제작방법과 문양의 구성방법이 세부적으로 다른점이 많이 발견되고,

방사성동위원소 탄소연대 측정치에서

한반도 토기가 더 오래된 시기임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점을 보아,

BC 11,000년경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처음 <빗살무늬토기>가 발생(自生)하여

요하유역, 연해주, 바이칼호, 시배리아를 거처 북유럽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근 탄소연대측정기의 정확도에 따라

인류의 신석기문화는 BC 12,000년경으로 높아졌다.

따라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의 생성연대도

BC 11,000년 경이고 요하 유역 홍산문화는 BC 7/6000년 경 임으로 알려젔다.

 

현대의 탄소연대측정 결과에 따르면

<빗살무늬토기>중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한반도 남부자방 <덧빗살무늬토기> 생성이

가장 오래된 시기로서 BC 11,000년경이고, 

늦은 시기는 BC 3,000년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뒤 BC 100년경에 무문토기가 나타나며 <빗살무늬토기>는 사라진다.

 

이와 같이 <빗살무늬토기>가 수천년 이상 존속했던 변천의 역사로 보아

그 생성시기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 할 수가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분포지역은 한반도 남부지역 제주도 <덧빗살무늬토기>에서 시작(始原)하여

한반도 중부 한강유역, 대동강 지역, 발해만 연안 및 요하지역,

연해주, 캄차가, 알류산열를 넘어 미대륙(미 동부, 카나다)으로 건너 갔고,

몽고지방, 바이칼호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졌고,

우랄산맥을 넘어서 오브강, 예니세이강 유역 일대,

오카강, 볼가강 상류지방에 걸친 북유럽 일대,

서북 러시아의 카렐리아지방에서 북부 독일 일대 및 핀란드, 스웨덴 남부까지 전파되어 갔다.

 

이들 지역의 토기도 나무첸빗 같이 만든 무늬새기개의 끝으로 끌고 눌러서 새기고,

그어서 생긴 선으로 토기 겉면을 장식하고 있고,

토기의 모양면(器形面)에서도 공통되는 점이 많다.

따라서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에서 전래된 동일계통의 토기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유적의 수는 135개에 달한다.

이들은 한반도 전역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고

주로 해안가, 강가, 섬지방의 모래사장이 있는지역에서 발견된다.

 

크게는 대동강, 한강을 포함한 서해안지역,

낙동강을 포함한 남해안지역,

두만강을 포함한 동해안지역의 3개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군 사이에는 뚜렷한 지역차가 있다.

서해안 및 남해안 지역에서는 <뾰족밑빗살무늬토기>를 기본으로 분포된 반면,

동해안 지역에서는 <납작밑빗살무늬토기>을 기본으로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출토 중요 유적지는

제주도 및 남해안의 여천,통영,김해,부산,울산 지역과,

동해안의 선봉,양양 지역,

서해안의 의주,요서,산동 지역,

발해만 유역과 한강유역, 대동강유역,금강유역, 낙동강유역 등이다.

 

일반적으로 <빗살무늬토기>는 해안변의 패총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며,

강변의 경우는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많다.

 

(사진)  빗살무늬토기 유라시아대륙 전파경로 - 가장 먼처 발생 한반도 남부 및 제주도 BC11,000년경.

 

(사진) <빗살무늬토기>로 <한민족문명>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파 - 미국 및 카나다 출토 <뽀쪽밑빗살무늬토기>.

 아메리카인디안들은 대단군조선인들이 이동해 간 <한민족문명>으로 확인. (손성태 교수 논문)

 

(사진) 한반도 신석기시대 유적지 - 제주도 및 남부지방 BC 11,000년 경 발생.

(사진) <빗살무늬토기> 발생지 - 한반도 제주도 및 중남부 지역 - BC 11,000년경 발생.

 

(사진) 발해연안 <빗살무늬토기> 분포도 - BC 7/6,000년경.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의 일반적인 형태는

<덧빗살무늬토기>, 

<뾰족밑빗살무늬토기(尖底櫛文土器)>와

<편평밑빗살무늬토기(平底櫛文土器)>로 나눈다.

 

<뾰족밑빗살무늬토기(尖底櫛文土器)>

(전기) <뽀쪽밑빗살무늬토기>는

입부분과 배부분에 각각 다른 문양요소로 토기 겉면 전체에 그려진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입부분에는 평행밀집사단선문,

배부분에는 고기뼈문양이 배합된 것이 기본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무늬를 만드는데

각 부분별 문양요소 설정을 엄격한 규칙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기) <뽀쪽밑빗살무늬토기>는

입부분과 배부분에 각각 다른 문양요소로 무늬를 만든 것은 (전기)와 마찬가지 이지만,

밑부분의 문양 그림이 생략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 배부분에 새겼던 고기뼈문양을 입부분까지 계속해서 그림으로써

동일한 문양으로 그리는 종류가 많아지는데,

여기서도 밑부분의 문양 그림이 생략된 것이 많다.

이것은 (전기)의 겉면 전채에 그려진 전통이나 부위별 문양선정의 엄격한 규칙이

부분적으로 붕괴된 결과에서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후기) <뽀쪽밑빗살무늬토기>는

입부분에만 무늬를 새기고 나머지 부분의 그림이 생략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전기) 이후의 전통이나 규칙이 쇠퇴해

입부분 일부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결과로 생각된다.

 

대단군조선이 멸망되는 시기 북미로 이주해 간 한민족이

아메리칸 인디안들로 다시 태어나,

17세기까지 모래위에서 불을 피우고 남은 잿불에 <뾰족밑햇살무늬토기>를 꽂아서

음식을 끓여 먹었다는 사실을 손성태 교수가 입증한 봐 있다.

 

<뽀쪽밑햇살무늬토기>가 출토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서해안 지역에서 평남 온천군 궁산리,

황해 봉산군 지탑리,

서울 암사동,

경기 광주군 미사리,

경기 부천군 시도(矢島) 패총 등이 있고,

남해안 지역에서 부산 동삼동 패총,

경남 김해 수가리 패총 등이 있다.

 

 

(사진)  BC 6,500년경, 전기<뽀쪽밑빗살무늬토기(尖底櫛文土器)> - 한반도 한강유역 상암동 출토.

 솥(鼎)으로 사용

 

(사진)  BC 6,500~5,000년경, 중기 <뽀쪽밑빗살무늬토기(尖底櫛文土器)> - 한반도 한강유역 출토.

솥(鼎)으로 사용

(사진)  BC 6,000~4,000년경, 후기 <뽀쪽밑빗살무늬토기(尖底櫛文土器)> - 한반도 한강유역 암사동 출토.

솥(鼎)으로 사용

(사진)  BC 3,000~2,400년 , 대단군조선 건국기 <뽀쪽밑무문토기(尖底無文土器)> - 산동반도 출토.

*솥(鼎)으로 사용한, 아사나(阿斯那) 표식이 그려져 있는 대단군조선의 토기.

 

 

 

<편평밑빗살무늬토기(平底櫛文土器)>

<평편밑빗살무늬토기>는 바탕흙(垈土)에 돌을 모래알 만하게 잘게 부숴 섞어 만든 것이 많으며,

출토 갯수는 적으나 조개가루를 섞은 것도 있다.

이는 내화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아 <뽀쪽밑빗살무늬토기>처럼 가열용(솥)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기 겉면의 색은 갈색, 흑갈색 계통이 대부분이고 반들반들하게 닦아서 광택이 나는 것도 있다.

 

겉면 무늬는 무늬새기개를 만들어 긋거나 눌러서 생긴 선과 점을 배합해 토기를 장식하고 있다.

겉면 상반부위에만 무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무늬 종류로는 <뽀쪽밑빗살무늬토기>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무늬 외에

번개무늬와 같이 특징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는 섭씨 600°∼700℃ 정도의 열을 가해 구운 것이다.

토기를 구워낸 가마자리가 확인된 곳은 없지만,

적당한 곳 땅에 구덩이를 파고 별다른 특별한 시설 없이 장작불을 피워 구워낸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의 용도는 크기에 따라 각각 달라,

현재의 독과 같은 대형은 저장용으로,

중형은 취사용으로,

소형은 식기나 음식 준비과정에 각각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평편밑빗살무늬토기> 역시 나름대로의 전통을 가지고 변천하였다.

전 기간을 통해 토기의 입부분에만 그림을 그리는 전통이 지속되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배부분에 고기뼈문양을 그리는 것이 나타나고,

(후기)에는 번개문양과 같은 특징있는 문양도 그려졌다.

 

<편평밑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유적으로는

동해안지역에서는 함북 무산군 서포항(西浦項)패총,

강원 양양군 오산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사진) <편평밑빗살무늬토기> - 강원 춘천 교동 출토

(사진) <편평밑빗살무늬토기> - 함복 경성군 원수대 출토.

(사진) <편평밑빗살무늬토기> - 함북 청진 유판 출토.

 

* 부산 가덕도에서 7천년전 유럽 유골이 발굴 되었는데...  

이 유럽계 사람들의 시기별 유럽까지 이동 경로와  함께 

빗살무늬 토기도 시기별로 다르게 출현 연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