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7

rainbow3 2019. 9. 20. 11:52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⑰ 애플

 

 

 

 

애플 컴퓨터

 

애플 컴퓨터 회사의 ‘사과’ 로고는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 로널드 웨인의 생각이었다.

로널드 웨인은 그 다음해에 2300불을 받고 자신의 지분을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팔았다. 로널드는 개인용 컴퓨터의 도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에 한 명인 아이작 뉴튼(1642-1727)의 만유인력의 발견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 이미지는 펜으로 그린 그림으로 아이작 뉴튼이 사과나무에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다. 이 로고의 둘레에는 영국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다음과 같은 시구가 적혀 있다.

 

“뉴튼… 생각이라는 이상한 바다에서 영원히 항해하는 지성.”

 

이 그림은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를 묘사한다. 젊은 뉴튼이 사과나무 밑에서 신비한 우주를 묵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져 그 순간 그는 우주 궤도에서 달이 지구로 지구는 태양으로 ‘떨어지는’ 중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창세기와 사과

 

창세기는 사과와 관련해 수많은 이야기의 원천이다. 창세기에 수록된 오래된 신화에 의하면 최초의 인간들인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 거주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었는데, 신은 그 나무들 중 특별히 두 그루의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 이유는 한 나무는 따먹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열매가 달려있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나무는 삼라만상에 대한 직관력과 분별력을 가져다줘 신과 같이 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영어성서 번역은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다.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에츠 다아쓰 토브 워-라’이다.

한글번역에서는 ‘알게 하는’이라 번역해 그 중요성을 표시하지 못했는데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지식’(다아쓰)이다. 오히려 ‘선과 악’(토브 워-라)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관용적 표현으로 상반된 두 개의 요소를 나열해 전체를 의미한다. ‘선과 악’은 오히려 ‘전부·모든 것·삼라만상’이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지식’(다아쓰)은 지혜와 명철을 배태시킨 우주의 운행원칙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다시 번역하자면 ‘삼라만상의 원칙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의 나무’이다.

 

성서에서 금단의 열매가 이 두 나무 중 어느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신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아마도 아담과 이브가 그 열매를 먹은 ‘모든 지식의 나무’를 지칭하는 것 같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영생을 보장하는 나무를 먹었을 리가 없다. 어쨌든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 금단의 열매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등장하는 금빛 사과의 영향을 받아 ‘사과’로 변신했다.

 

그 결과 사과는 지식, 영생, 유혹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타락과 죄의 상징이 되었다.

영어단어 Melon은 그리스 단어 Melon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배, 사과 등이 포함된 인과류 과실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양·염소’ 혹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과’로 변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라틴어였다.

라틴어에서 ‘사과’에 해당하는 ‘말룸’(Malum, 장모음 a)과 ‘악’에 해당하는 ‘말룸’(Malum, 단모음 a)이 유사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금단의 열매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민간전승에 의하면 인간의 목에 달린 후두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급하게 먹다 걸린 상징이다.

아담과 이브가 이 열매를 먹고 나니 그들의 눈이 열려 자신들이 나체인 것을 알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다. 그리스도교에서 이 이야기는 인간의 하이브르스(Hybris), 즉 불순종과 자만심의 시작이며 첫 번째 죄라고 해석한다.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그 죄의 대가로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남자는 음식을 얻기 위해 노동이라는 수고를 감내하게 했다. 또한 신은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인간을 제한된 시간만 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서양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원죄(原罪)’ 교리를 정교하게 만든다. 특히 4~5세기 살았던 서방 그리스도교 교리의 완성자 어거스틴(기원후 354-430년)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의 원죄는 성교를 통해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유전되며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주장했다.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모든 인간의 목에 걸려있는 ‘아담의 애플’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유대교나 동방 그리스도교는 이들의 원죄가 유전된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의 상징

 

이 오래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덴동산이 아니다.인간은, 모든 동물은 생식을 통해 자식을 낳고 어떤 식으로든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보는 혁신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는 패러다임이 아닐까?

 

‘모든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는 인간은 자신이 비록 파라다이스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들과 사회를 위해 땀 흘려 노동을 하고, 또한 목에 걸려있는 ‘아담의 사과’를 생각하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깊은 묵상을 통해 자신이 꼭 이루어야 할 일을 찾고, 우주 삼라만상에 숨어 있는 원칙인 ‘지식’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은 아닐지. 이것을 간파한 스티브 잡스는 ‘한입 깨문 사과’ 로고를 만들고, 애플을 통해 살 만한 세계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성경 속 선악과, 정말 사과였을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그 정체는 종려수

 

아무리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생명나무 이야기는 안다. 서구의 수많은 문학과 미술 작품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따르면, 에덴 동산 한가운데에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했지만,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열매를 먹고 만다. 이에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인간은 이제 생명나무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창세기 2:4-3:2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아담과 이브.

 

 

선악과는 사과였을까?

 

유럽의 기독교 회화 전통에서는 대개 선악과를 사과나무로 그려왔다. 라틴어로 사과가 선악의 악과 같은 단어(malus)였기 때문에 그런 연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라틴 이전, 구약 성서의 시대에는 어땠을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과를 먹었을까?

 

성경 속에는 히브리어로 타푸아흐(아가 2:5, 요엘 1:12 외)라는 과일이 등장한다. 유럽 사람들은 이 단어를 전통적으로 사과라고 번역해 왔다. 하지만 어떤 연구자들은 성서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사과가 재배되고 있었을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들은 이 단어를 살구나 귤 종류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미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열매 달린 사과나무가 울창한 과수원이 그러져 있다. 사과가 기원전 4000년경 터키 지방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로 전해졌다고 하는 식물학자도 있다. 지금도 시나이 반도 내륙부에는 포도, 석류, 무화과 등과 함께 사과를 재배하는 곳이 있다.

선악과가 사과였다는 문헌상의 증거는 없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창세기를 묘사하면서 사과 모양의 선악과를 상상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는 셈이다.

 

 

생명나무는 종려나무였을까?

 

이번에는 생명나무 쪽을 보자. 열매를 먹는 것 만으로 영생을 누리게 해준다는 나무, 생명나무를 이야기할 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나무를 연상했을까?

 

삼림이 거의 없었던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솟아오른 초록의 레바논 삼나무, 자양분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 올리브나무, 삶의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등은 생명력의 상징이었음에 틀림없다.(호세아 14:6-8 참고) 이스라엘인들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들인도 무화과나 포도, 석류 등을 생명의 신이 살고 있는 성스러운 나무로 그렸다.

한편,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에서는 예부터 종려나무가 생명력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나무였다. 똑바로 솟아 양옆으로 커다란 잎사귀를 펼친 종려나무는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송이 모양의 열매가 익으면 참으로 달고 영양이 풍부한 과일이 된다. 구약성서에서도 종려나무는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유되기도 하고(아가7:8), 그 열매는 중요한 영양분 공급원으로 여겨졌다.(사무엘하 6:19 참고)

 

 

종려나무(windmill palm tree)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이러한 종려나무를 도상으로 즐겨 사용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복판에 종려나무를, 그 양옆에 동물이나 사람, 신령스러운 동물을 배치한 형태를 일반적으로 '생명나무 도상'이라 한다.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이 무늬는 기원전 2000년대 중엽부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도 전해졌다.

 

팔레스타인의 유적에서는 이스라엘 이전 시대 층에서 '생명나무'를 새겨 넣은 문양 토기나 인장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스라엘 시대에도 예루살렘 신전 본전의 벽이나 기둥에 종려나무가 조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열왕기상 6:29 이하)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이나 궁전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 신전에도 종려나무가 실제로 심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시편 92:13-14)

 

또한 사마리아의 궁전 터에서 출토된 상아의 부조에는 신령스러운 동물(케루빔)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한 종려나무를 볼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종려나무 서식지

 

'생명나무 도상'은 단순한 장식 그림이 아니다. 신령스러운 동물이 나무를 지키고, 나무에서 흘러내리는 과즙을 동물들이 받아먹는 형태의 종려나무 그림에는 분명한 종교적•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양쪽에 배치된 동물들은 이 나무에서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려나무는 생명을 기르는 성스러운 힘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보면, 에덴동산에 심어져 있었다는 생명나무는 원래 종려나무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토기에 그려진 생명나무(므깃도, 후기 청동기 시대)(좌측)

생명나무 인장 문양(텔제롤, 철기시대)(우측)

 

덧붙여 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초로 정복했다는 여리고는 다른 이름으로 '종려나무가 무성한 마을'이었다.(신명기 34:3) 예부터 종려나무의 재배가 활발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꿀'은 종려나무 열매에서 받아낸 당밀을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신화는 문화를 반영하고, 문화는 지역의 자연 환경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신화가 처음 전래될 때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수 천 년이 흐른 지금 종교나 신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