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須讀五車書 (남아수독오거서)
남아수독오거서 "남자라면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라는 말이지요.
장자(莊子)의 천하편에 나오는 말로 惠施多方其書五車(혜시다방기서오거)에서 유래한 말로
장자가 친구 혜시의 장서를 보고 박학다식 한 혜시가 많은 책을 읽은 것에 기인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유명 해 지기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題柏學士茅屋(제백학사모옥)에 인용되어 유명 한 구절입니다.
富貴必從勤苦得
부귀필종근고득 - 부귀는 반드시 근면한 사람이 얻으니
男兒須讀五車書
남아수독오거서 - 남자는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하느니라
여기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차 분량의 정보량은 얼마나 될까요?
왜 하필 '남아수독오거서'라고 했을가요?
여자는 글을 읽으면 안될까요?
장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종이에 글을 쓰던 시대가 아닙니다.
죽간이나 목간에 글을 쓰던 시대입니다.
목간 다섯차 분량의 정보량은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초등학생의 교과서 정도밖에 안되는 양입니다.
1년치 신문분량도 안되는 작은 정보량입니다.
현대인이 얼마나 많은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부는 왜 할까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려고요?
자아를 개발하기 위해서요?
그러나 중국인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송나라 3대 황제인 진종의 勸學文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이라 했습니다.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鍾祿)도 같은 의미입니다.
<책속에 천가지 곡식(재물),록(봉록,관직)이 있다는 뜻>
공부를 해야 연봉1억짜리 인간이 된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실리적인 말입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나 자아개발이 아니라 돈 많이 벌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은 사회진출이 불가하므로 남아수독오거서라 한 것입니다.
韋編三絶(위편삼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공자님이 글을 너무 많이 읽어 가죽으로 엮은 죽간이 끊어져서 세번이나 고쳤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근학을 일깨우는 글입니다.
韋編 책을 꿰어 매는 가죽 끈
올 한해 책 많이 읽으셨습니까?
먹고 살기 바빠서 책 살 돈도 없고 책 읽을 시간도 없었다고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책을 읽읍시다
......
韋編三絶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가령
㉢심부름꾼
')">使㉡쓰이다
㉢씀씀이
')">用)했었는 데,
공자(㉡성(姓)의 하나
㉢매우
')">孔㉡자식
㉢첫째 지지
')">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엮어 놓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단 데에서 비롯된 말로,
한 권의 책을 몇 십 번이나 되풀이 해서 읽음을 비유(㉡나란히하다
㉢따르다
')">比㉡깨닫다
㉢비유하다
')">喩)하는 말로 쓰임
고사
공자가 만년에 주역(㉡둘레
㉢주나라
')">周㉡주역
㉢바꿈
')">易)을 읽음에 어찌나 읽고 또 읽고 했던지 대쪽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니
말하기를, "내가 수년 동안 틈을 얻어서 이와 같이 되었으니, 내가 주역에 있어서는 곧 환하니라."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좀 더 일찍 주역을 연구했더라면 많은 사람에게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었을 걸......'하고
주역 연구를 더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장면도 나온다.
공자의 위대한 문화적 업적 가운데는 이 '위편삼절' 같은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는 또 논어에서 '나는 호학(㉡사이좋다
㉢아름답다
')">好㉡공부하다
㉢학자
')">學)하다가 발분(㉡쏘다
㉢일어나다
')">發㉡성내다
㉢분노하다
')">憤)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마저 잊고,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 가는 것도 몰랐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題柏學士茅屋(제백학사모옥) - 두보
碧山學士焚銀魚(벽산학사분은어)
白馬却走身巖居(백마각주신암거)
古人已用三冬足(고인이용삼동족)
年少今開萬卷餘(년소금개만권여)
晴雲滿戶團傾蓋(청운만호전경개) 단.
秋水浮階溜決渠(추수부계유결거)
富貴必從勤苦得(부귀필종 근고득)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벽산의 학사가 은어모양의 학사증서 불태우고
백마로 달려서 바위 속에 몸을 숨겼네
옛사람은 겨울동안 독서에 몰두 했다 거늘
그대 젊은 나이에 이제 만 여권을 읽었도다
채색 구름이 집에 가득 차서 둥글게 덮개를 엎어 놓은 듯 하고 ????
가을 물이 섬돌에 넘쳐서 도랑으로 떨어지네
부귀는 반드시 근면한데서 얻어야하고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한다
출전: ≪두시언해(杜詩諺解)≫
巖居 숨어 삶.
晴 갤 청.㉠개다 ㉡(마음이)개운하다 ㉢눈물이 마르다
團 둥글,모일 단.㉠둥글다 ㉡모이다 ㉢모으다 ㉣굴러가다 ㉤지배하다 ㉥통치하다 ㉦둥글게 뭉친 것 ㉧덩어리 ㉨모임 ㉩가게 ㉪점포 ㉫조(組: 군대 조직의 하나)
傾蓋 수레를 멈추고 깁양산을 기울이어 잠시(暫時) 이야기함
傾蓋如舊 ㉡기울어지다
㉢(마음을)기울이다
')">傾㉡덮어 씌우다
㉢숭상하다
')">蓋(경개)는 수레를 멈추어 깁양산을 기울인다(잠시(㉡잠시
㉢별안간
')">暫㉡철
㉢때를 맞추다
')">時) 이야기 하기 위하여)는 뜻으로, 한번 만나보고 친해진다는 말로 잠시(㉡잠시
㉢별안간
')">暫㉡철
㉢때를 맞추다
')">時) 만났어도 ㉡친구
㉢늙은이
')">舊㉡면
㉢탈
')">面(구면)처럼 친함을 이르는 말 : 傾蓋如故
靑雲 ①푸른 빛깔의 구름 ②높은 이상(㉡다스려지다
㉢깁다
')">理㉡생각하다
㉢생각건대
')">想)이나 벼슬을 가리키는 말
傾 기울 경.㉠기울다 ㉡기울어지다 ㉢(마음을)기울이다 ㉣비스듬하다 ㉤바르지 않다 ㉥다투다 ㉦다치다 ㉧잠깐
蓋 덮을 개, 어찌 합 ㉠덮다 ㉡덮어 씌우다 ㉢숭상하다 ㉣뚜껑 ㉤덮개 ㉥하늘 ㉦상천 ㉧일산 ㉨어찌 ㉩대개 ⓐ어찌 (합)
두보(杜甫) 의 생애
생졸년도는 712년~770년이고, 자(字)는 자미(子美)이고, 호(號)는 소릉(少陵)이다.
하남성(河南省)의 공현(鞏縣)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초당기(初唐期)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이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고, 또 각지를 방랑하다 이백 ?고적(高適) 등을 알고
지내게 되었다. 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포로가 되었는데, 탈출하여,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가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라는 관직을 얻었다.
그 후 화주(華州)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는데,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정착하여 교외의 완화계(浣花溪)에다 초가집을 짓고 지냈다.
이 무렵에 성도(成都) 절도사 엄무(嚴武) 아래서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지내는데, 이로 인해
두공부(杜工部)라는 호(號)를 얻었다. 그 후 귀향의 뜻을 품고 성도(成都)를 떠나 방랑하다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동정호(洞庭湖)에서 5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북정(北征)》 《추흥(秋興)》 《삼리삼별(三吏三別)》이 있다.
.....
죽간(竹簡)
- 2세기 초엽,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서사재료(書寫材料).
- 종이 이전의 종이라 할 수 있다.
죽간을 만들려면 우선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 낸 다음 마디 사이의 부분을 세로로 쪼갠다.
이렇게 해서 된 대나무패를 불에 쬐어 기름을 뺀다.
이것은 글씨를 쓰기 좋게 하고 벌레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길이는 20~25cm이며, 너비는 몇 cm로 한 줄밖에 못 쓰기 때문에 여러 장을 합쳐서
가죽 또는 비단으로 된 끈으로 편철(編綴)한다.
이와 같이 몇 장의 간(簡)을 편철한 것을 책(策) 또는 책(冊)이라고 불렀다.
죽간은 그 실물이 20세기 들어와서 중국 북서쪽 볜징(邊京)에서
유럽의 학술탐험대에 의해서 한대(漢代)의 것이 발견되었으며,
1951년 이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등지에서는 그 이전인 전국시대의 죽간도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또 죽간을 모방해서 만든 목간(木簡)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찰(札) 또는 첩(牒)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북서쪽 볜징에서 발견된 것은 거의 목간이었으며,
약의 처방전 등이 적혀있는 죽간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
-- 출처: 두산세계대백과
장자(莊子)의 천하편에 나오는 말로 “남자는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뜻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명한 한자성어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줄여서 ‘오거서’라고 통용되기도 하는데 원래 말은 남아수독오거서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오거서는 말그대로 그냥 다섯 개의 수레를 뜻하니까요.
제가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한자 시간이었는데 그때 한자 선생님이 다섯 개의 수레에 책이 쌓여있었고 그것을 모두 다 읽은 옛날 사람들의 독서력과 학습력을 높이 평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러면서 의례 따라오는 말씀 “너희도 책 좀 많이 읽어라”) 실제로 그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도 “와 다섯 개의 수레에 쌓인 책이라.... 정말 어마어마한 양인걸!”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春秋戰國時代 - 秦 - 漢 -新 - 後漢)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고,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이므로 자연(自然)하다고 본다.
(蔡倫 ?~121?)
후난[湖南] 출생. 종이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궁중의 집기 등을 제조 ·관리하는 상방령(尙方令)으로서, 97년에 검(劍) 등을 만들었고, 그 후 목간(木簡) ·죽간(竹簡) ·견포(絹布) 대신 쓸 수 있는 서재(書材)를 발명했다. 이것은 톱밥 ·헝겊 ·풀 등을 소재로 한 ‘채후지(蔡侯紙)’라는 종이이다. 그는 114년 용정후(龍亭侯)로 책봉되어 장락(長樂:福建省) 태복(太僕:卿)이 되었으나, 안제(安帝) 즉위 후에 정쟁에 말려들어 음독 자살하였다.
그렇다면 장자가 살아있을 때 책이라면 바로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종이로 된 고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쓰는 책의 한자인 冊의 원형이 되었다는것은 다 아는 사실.)
가끔가다 비단을 이용한 백서(白書)가 있었지만 서양중세의 양피지처럼 비싼 가격 때문에 널리 쓰일 수 없었지요. 아주 중요한 사항이나 극비문서에만 쓰였다 합니다. 이런 백서 같은 특수경우를 제외하고, 당시 보편적이었던 목간이나 죽간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이로 된 옛 고서의 책 한권 분량에 이르려면 엄청난 분량이 필요하며, 이를 보관하려면 역시 그에 부합하는 장소가 필요했다는 말인데, 거기다가 무게도 일반책 한권 분량에 이르려면....
(그림3. 죽간)
(그림3. 죽간의 보관법. 돌돌 말아 보관했는데 이 한페이지 분량의 부피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거서에 실린 목간 내지 죽간이라고 해봤자 그 정보의 양은 별게 아니란 것으로 귀결됩니다. 아마 현재로 따지면 문고판 4권도 안 되는 양일 겁니다.(당시 한자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을까요? 음하하핫)
뭐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무조건적으로 판단하는 것 만큼 우스운 것도 없지만 현대인들이 춘추전국시대 장자 앞에서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해도 무방할듯 하군요 ^-^
암튼 서양의 양피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목간과 죽간 역시 일반 서민이 쉽게 접근하고 소유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식자층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HIGH CLASS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채륜의 종이의 발명은 부피가 엄청난 문서를 작은 책으로 줄일 수 있게 하여 학문 등 여러 분야에 지대한 공헌 및 이후 지식이 특수계층만의 공유물에서 일반 서민들로 보편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언어 장벽은 일단 논외로...)
...
한마디..
한문의 서책을 한글로 번역하면 부피가 얼마나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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