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우리 시대 리더의 조건 : 배철현] 리더를 만드는 내러티브의 힘

rainbow3 2021. 10. 6. 03:19

[우리 시대 리더의 조건]

리더를 만드는 내러티브의 힘

리더는 내러티브로 대중을 지배한다!

최초의 내러티브 ‘독수리 전승비’ 읽기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수메르 지도자 에안나툼의 승리를 기록한 ‘독수리 전승비’에 새겨진 그림. 왼쪽이 전면, 오른쪽이 후면이다.

리더는 무엇으로 대중을 지배하는가? 바로 이야기, 즉 내러티브(narrative)다.

리더는 대중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통해 리더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시킨다. 그 이야기의 내적인 힘은 성찰 없이 상황에 따라 하는 말이나, 권력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빈말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리더는 자신의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통하는’ 사람이다. ‘소통’이란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관심과 바람이 유사하여 유대관계를 형성할 때 가능하다.

리더는 대중의 희망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이 아직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희망을 걸 만한 화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가 대중이 원하는 염원에만 집중한다면,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예술 분야의 리더는 자신의 에토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대중을 감동시키고 심지어는 영감을 준다. 리더가 보이는 최선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는 상태가 감동이라면, 영감은 리더의 모습이 자신의 삶의 최선을 발견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수련이라 할 수 있다. 연주자는 자신의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무용가는 자신의 몸짓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과학자는 자신들이 속한 분야의 상징을 통해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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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소통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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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단순한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변신시켜 소통한다. 이 소통하는 깊은 차원의 이야기가 ‘내러티브’다. 이야기를 음식을 위한 원재료 정도로 비유한다면, 내러티브는 사람들이 먹고 자양분을 취할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이다. 리더는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내러티브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행동으로 옮겨 그의 삶을 관찰하는 대중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는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우스나 조선시대의 영웅 이순신의 경우 그들이 보여준 삶 자체가 이야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들의 삶 자체가 내러티브다.

그들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후대인들에게도 전달된다. 이 전달되는 힘, 인간의 이성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내공이 바로 에토스다.

 

미국 교육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리더의 유형을 둘로 구분한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링컨처럼 그들의 결정이 대중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직접적인 리더’가 하나다.

또 하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생물학자 찰스 다윈처럼 대중의 삶에 미친 영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운 ‘간접적인 리더’다.

 

후자의 대표적 인물이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말한 E=mc2의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골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한 ‘사고실험’을 통해 이전에 과학적 진리로 여겨지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폐기시키고 상대성이론을 확립하였다. 대중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상대성이론은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인터넷, 우주 개발, GPS 등의 기초를 닦았다.

 

간접적인 리더들이 자유롭게 드러나는 국가가 바로 선진국이다. 간접적인 리더들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유레카(eureka)를 경험한다. 이들은 겸허하면서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발견을 사회와 공유한다. 그가 속한 선진사회는 개인을 소중한 공동체 자산으로 보호한다.

1943년 11월 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유레카 정상회담’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리고 소련 총리 이시오프 스탈린이 함께 앉아 토의했다. 독일 히틀러에 대한 연합군의 전선, 폴란드·프랑스·터키·중국에 대한 정책, 전쟁 후 나치스에 대한 재판, 일본에 대한 처벌 등이 논의됐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은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1905년 특수 상대성이론,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그때까지 가졌던 공간, 시간, 중력에 대한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그는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알렸다. 즉 다량의 우라늄에서 핵연쇄반응을 일으킨다면, 이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폭탄 제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이에 기반해 미국은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에서 원자탄을 개발하였다.

핵무기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러니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사람을 단 한 명만 뽑으라면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그의 ‘골방 연구’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시켰고,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여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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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도시 리더의 승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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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에 대한 정의는 흔히 문학비평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러티브는 인간 문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 문자와 문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한 주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다른 객체에게 ‘소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서양인들은 기원전 12세기경 내러티브가 처음 등장했다고 본다.

성서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그리고 인도의 ‘라마야나’나 ‘바그바드 기타’처럼 구전으로 먼저 등장하고 후에 문자로 옮겨졌다고 판단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내러티브의 시작을 알리는 부조물이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문자를 발견한 까마득한 시기인 기원전 2460년경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이다. 바로 수메르 도시 라가쉬(Lagash)의 리더인 에안나툼(Eannatum)의 ‘독수리 전승비’다.

이 부조물은 원래 위쪽이 둥근 직사각형 흰색 사암이었으나 현재는 7개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1880년대 이라크 텔로(Tello·고대 도시명은 기르수·Girsu)에 위치한 닌기르수라는 천둥신을 위한 신전에서 6개 조각이 발굴되었다. 1900년 대영박물관 측이 마지막 7번째 조각을 발견했는데 6개 조각이 소장돼 있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 마지막 조각도 옮겨졌다. 이 전승비의 높이는 1.8m, 너비 1.3m, 두께 11㎝다.

 

이 부조물은 영토 분쟁에 대한 내러티브다. 기르수라는 도시는 수메르의 메트로폴리스였던 라가쉬의 위성도시다. 당시 라가쉬를 통치하던 리더가 에안나툼이다. 그는 수메르어로 ‘엔시(ensi)’라고 불렸다. ‘엔시’는 흔히 ‘(도시의) 통치자’라고 번역되나 세속적인 의미보다는 종교적 의미의 통치자다.

에안나툼은 기르수의 북서쪽에 붙어 있는 ‘구에덴(Gueden)’이란 기름진 땅을 놓고 또 다른 도시 ‘움마(Umma)’의 통치자와 분쟁하고 있었다. 당시 이라크 지역은 지금보다는 사막화가 덜 진행돼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있었다. 라가쉬와 움마는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옥토 ‘구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러면 이 부조물에 등장한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러티브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 부조물에 묘사된 그림들을 축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림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심오한 의미를 상상을 통해 추출하는 게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그림이나 기호’와 ‘그림이나 기호가 의도한 실제 의미’와는 다르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는 ‘일반 언어학 강의’라는 책에서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의 표현 수단인 ‘말(parole)’은 그 말이 의도한 ‘언어(langue)’와 구별되어야 하며 심지어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유물의 그림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유물을 보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내러티브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유물은 수메르 시대 라가쉬를 둘러싼 영토분쟁과 연계해 해석해야 한다. 동시대 다른 문헌이나 이미지와 비교하면 그 내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 루브르박물관에 보관 중인 ‘독수리 전승비’ 일부. Stele of the Vultures

One fragment of the victory stele of the king Eannatum of Lagash over Umma, Sumerian archaic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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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오던 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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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전승비’의 전면은 두 칸으로 구분된다.

위 칸이 아래 칸보다 2배 정도 크다. 이 부조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위 칸 가운데에 있다.

오른손에 망치를 든 인물이다.

왼손엔 포로들이 잡혀 있는 그물 위쪽에 있는 하이브리드 동물을 움켜잡고 있다. 포로들은 라가쉬와 분쟁 중인 움마의 병사들이다. 하이브리드 동물은 사자 머리를 한 독수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이다.

독수리의 무시무시한 발톱은 서로 등을 대고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자의 등을 위엄 있게 누르고 있다. 이 괴물의 이름은 ‘안주(Anzu)’다. 안주는 라가쉬의 주신(主神)인 닌기르수와 연관된 괴물이다.

후대 신화에 의하면 안주는 우주의 운명이 기록된 ‘운명의 서판’을 훔쳐 달아났다. 닌기르수는 이 서판을 안주로부터 다시 탈취하여 우주의 평화를 가져왔다. 안주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고르곤과 유사하다.

페르세우스가 영웅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고르곤의 머리를 잘라와야 했다. 고르곤과 같은 안주를 왼손에 움켜쥔 에안나툼은 우주의 평화를 회복하는 정복자이자 승리자다.

이 부조물을 제작한 예술가는 위 칸 중앙에 표현된 남성이 닌기르수인지, 아니면 에안나툼인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 인물은 에안나툼이면서 동시에 닌기르수이기도 하다.

 

에안나툼이 오른손에 쥔 망치는 그물에서 삐져나온 움마의 포로 머리를 내리치고 있다. 에안나툼 뒤로 긴 머리를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녀의 왼쪽 위로 안주가 있다.

이 여인의 특징은 그녀가 입은 망토 양쪽 위로 막대기 같은 모형이 세 개씩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모형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의 속성을 나타낸다. 수메르어로 ‘메(Me)’라고 부른다.

‘메’는 고대 문헌에서 발견되는 철학적 개념처럼 한마디로 번역하기 힘들다. ‘메’는 우주 삼라만상이 각자 지녀야 할 본모습이다. ‘메’는 흔히 ‘신을 신답게 만드는 어떤 것, 즉 신성성’이란 의미에서 출발하여 모든 존재가 마땅히 습득해서 완성해야 할 ‘자기다움, 도덕, 에토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해석된다.

‘메’는 후대 부조물에서 신들이 머리에 쓰는 ‘뿔’로 정형화됐다. 신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원초적인 힘을 뜻한다. 이 뿔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왕관으로 둔갑한다. 인간이 지상에서 신 행세를 하기 위해 머리에 쓰는 장식이다. 자신의 망토 위에 메를 지닌 여인은 닌기르수 신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닌후르삭(Ninhursag)’이다.

닌후르삭은 자신의 아들 닌기르수가 안주 괴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충고해준다. 이 전승비에서 닌후르삭이 닌기르수 신 옆에 등장하는 것은 오래된 신화의 내용을 재현한 것이다.

 

‘독수리 전승비’ 전면의 아래 칸에 전차가 등장한다.

에안나툼은 사자와 독수리를 합한 하이브리드 괴물이 이끄는 전차 위에 올라서서 달리고 있다. 괴물의 앞발은 사자, 뒷발은 독수리로 각각 하늘과 땅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들이 전차를 몰고 있다. 이 광경을 닌후르삭이 두 손을 모아 지켜보고 있다. 왼쪽 칸 그물 위에 쐐기문자로 적힌 게 있다.

수메르어로 에안나툼의 전쟁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 부조물 초안이 기획될 때 문자 부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부조물을 표현하고 부조물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문자를 적어넣었다.

 

에안나툼은 자기 스스로를 닌기르수 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안주 괴조와 닌기르수 신의 갈등 이야기를 자신이 당면한 영토분쟁 이야기에 접목했다. 그는 닌기르수 신의 어머니인 닌후르삭의 충고, 안주 괴조로부터 ‘운명의 서판’을 되찾는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라가쉬 도시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러티브를 창조하였다.

그는 이웃도시 움마와의 영토분쟁을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 즉 ‘메’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메’의 회복자이며 ‘메’의 화신이다.

 

Fragment of the victory stele of Eannatum (Stele of the Vultures), from Girsu (modern Telloh), Iraq ca. 2600-2500 bce | Art History

 

‘독수리 전승비’ 후면은 네 칸으로 구분해 많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전면보다 복잡하다.

최초의 인류가 군사적인 대결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여기에 이 부조물을 ‘독수리 전승비’라 부르는 이유가 등장한다.

첫 번째 칸 오른쪽을 보면 독수리들이 정복당한 움마 군인들의 머리를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 먹는다. 전체 부조물이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지만, 하늘의 지배자인 독수리가 지상의 전쟁에서 패한 움마인들의 잘린 머리를 쪼는 장면은 ‘독수리 전승비’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한다. 에안나툼이 이끄는 라가쉬가 승리하였고, 움마는 처참하게 패했다.

 

독수리가 묘사된 부분을 살펴보면, 그 아래 쐐기문자로 기록한 부분과 확연히 구분된다. 후면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처럼, 시체를 쪼는 독수리를 맨 위에 표시하였다.

첫 칸은 다시 독수리 부분과 실제 전투 장면으로 구분된다. 맨 앞에 에안나툼이 군대를 이끌고 있다. 군대는 12명이 창을 들고 후대 그리스에 등장하는 밀집 대형인 팔랑스 대열로 전진한다. 이들이 손에 든 창은 공격 형태다. 발로는 쓰러진 적군들을 밟고 있다.

그들 앞에는 양털 옷을 입고 투구 뒤로 망치를 머리에 맨 에안나툼이 있다. 병사들은 에안나툼의 인도에 따라 전진한다. 첫 칸 맨 오른쪽엔 13명의 시신이 쌓여 있다. 에안나툼의 완벽한 승리를 표현하였다.

 

두 번째 칸에는 라가쉬 군인들이 왼편에 묘사되어 있다.

군인들은 오른손에 긴 창을, 왼손에는 전투 도끼를 들었다. 이들은 공격 대형이 아니라 행진 대형으로 전진한다. 군인들은 첫 칸과는 달리 에안나툼이 탄 전차를 따라간다. 전차는 탱크와 같아서 지상전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수메르인은 전쟁을 위해 전차가 필요했고, 전차엔 바퀴가 생명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기술적인 발명은 바퀴다. 후대의 산업혁명도 바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축을 기준으로 원형으로 돌아가는 체계적이며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바퀴는 작은 시계부터 자동차, 제트엔진, 컴퓨터 드라이브 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바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이 수메르인이다. 그들은 기원전 3500년부터 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독수리 전승비’는 바퀴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었나를 분명히 보여준다. 바퀴 기술은 이후 다른 곳으로 전수된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000년,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400년에 등장한다.

 

에안나툼은 왼손에 긴 창을 들고 있다. 전차를 이끄는 네 필 당나귀 앞으로 창이 뻗어나간 것으로 미루어, 창의 길이는 거의 3m 이상이다. 이 전차는 앞면에서 묘사된 전차와는 사뭇 다르다.

앞면 전차는 닌기르수 신, 혹은 신격화된 에안나툼이 타는 전차로 사자와 독수리의 하이브리드가 끄는 천상의 전차인 반면, 여기에서 묘사된 전차는 실제 전투용 전차다. 후대 전차에 사용된 말은 아직 사육화되지 않았다. 말은 아마도 기원전 15세기경 히타이트제국이 야생말을 사육하여 훈련하면서 전차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인도에서는 그런 말을 훈련하는 과정을 ‘요가(Yoga)’라고 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려는 야생말을 훈련하여 전투에 투입 가능한 말로 만들기 위해 ‘멍에’를 채웠다. 멍에가 목에 채워진 말을 전차에 부착하였다. ‘멍에’에 해당하는 ‘요크(yoke)’라는 영어 단어가 ‘요가(yoga)’와 같은 어원에서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안나툼이 탄 전차를 이끄는 동물은 수메르어로 ‘안쉐(anshe)’라고 불리는 당나귀다. 당나귀 네 필이 이끄는 전차는 왕만이 탈 수 있다. 후대 유럽에서 황제만이 탈 수 있는 사륜전차인 ‘콰드리가(quadriga)’의 효시다.

 

세 번째 칸은 후면 첫 두 칸과는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조물을 해석해야 한다.

에안나툼이 왼편을 응시하면서 앉아 있다. 실제 부조물에서는 그의 다리와 치마 일부만 보인다. 발은 특별한 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단을 수메르어로 ‘테멘(temen)’이라고 부른다.

테멘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거룩한 공간이다. 리더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이다. 리더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에 놓고 전쟁의 의미를 신 앞에서 되새긴다. 에안나툼의 좌정한 제단 앞에 황소가 끌려왔다.

황소를 닌기르수 신에게 드리기 위한 희생 제물이다. 그 위로는 한 사제가 나체로 정화의례에 사용되는 대추야자나무에 물을 준다. 사제 밑에는 작은 동물들, 양과 염소들이 도축되어 있다. 도축된 동물들 옆에는 움마인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네 번째 칸에 남아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긴 창을 왼손에 들고 있는데 대머리인 움마인의 머리에 창끝이 닿았다. 그 적은 자신에게 오는 창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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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거룩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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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안나툼은 자신이 왕으로 있는 라가쉬와 이웃도시 움마와의 영토분쟁을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거룩한 전쟁으로 해석하여 이 부조물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전쟁 모습을 돌에 부조물과 문자로 기록하여 남겼다. 이런 부조물을 수메르인들은 ‘나루아(Narua)’라고 불렀다. ‘나루아’를 해석하면 돌로 만든 비석, 즉 ‘석비’다.

고고학자들은 라가쉬와 움마가 영토분쟁을 일으켰던 루에덴에서 에안나툼이 지은 시를 하나 발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닌기르수 신은 주님이시다. 그는 피릭-에덴 수로의 생명이시다. 루에덴 석비는 닌기르수 신이 사랑하는 초원이다. 에안나툼은 닌기르수 신을 위해 이 석비를 세웠다.”

 

에안나툼의 ‘독수리 전승비’는 인류 최초의 영토분쟁을 기록한 석비다. 기원전 25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라 역사적으로 이 사건을 확증한 다른 증거는 없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영토분쟁 이야기를 단순하게 한 번 일어났다 없어지는 이야기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생존했던 수메르 시대의 신화를 이용하여 내러티브로 만들었다. 그 시대의 신화는 동시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감동적인 끈이다.

그는 라가쉬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닌기르수 신과 그의 어머니 닌후르삭 이야기를 포착하였다. 특히 괴조 안주와 연관된 이야기에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일체화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라가쉬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내러티브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감행한 영토분쟁 이야기를 군사적 행위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우주의 ‘메’를 확립하여 평안을 가져오는 전쟁으로 해석한 것이다.

 

리더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내러티브로 만드는 사람이다.

내러티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에토스다.

지금부터 4500년 전 먼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안에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박물관으로 가 이 부조물을 보고 전쟁의 기원, 기술 혁신의 시작인 바퀴의 기원, 그리고 우주의 원칙을 엿보고 싶어한다. 나만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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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lture Stele Translation

 

 

 

:Stele of Vultures detail 01 reverse

 

One fragment of the victory stele of the king Eannatum of Lagash over Umma, called « Stele of Vultures ». Mythological side. Limestone, circa 2450 BC, Sumerian archaic dynasties. Found in 1881 in Girsu (now Tello, Iraq), Mesopotamia, by Édouard de Sarzec.

 

Detail of the "battle" fragment

 

A fragment of the Stele of the Vultures

 

Another fragment

 

Detail of the "battle" frag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