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리더의 조건]
잘못을 신속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리더다
아내를 가로챈 다윗왕 어떻게 위대한 리더로 기록됐을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위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는 150개 이상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페르시아제국의 정치 틀인 ‘왕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형태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자발적으로 소아시아(터키) 해변으로 건너가 집단거주지를 건설한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원전 6세기에 이란에 등장한 페르시아제국과 충돌한다.
페르시아제국은 막강한 왕정과 군사력으로 5세기 초에 이미 중앙아시아, 중동, 소아시아, 이집트 지역을 점령하여 23개 나라를 통치하는 제국이 되었다. 페르시아제국이 그리스인들의 해변도시들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자신들의 통치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제국에 근본적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왕정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인간이 세상에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그 신분은 공동체인 도시(polis)에서 자기 나름의 ‘아레테(arete)’를 실현하기 위한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아레테’는 고대 그리스어로 ‘덕’ 혹은 ‘탁월함’으로 번역한다.
--------------------리더의 자질 아레테 --------------------
‘아레테’는 그리스어에서 ‘선 / 탁월함 / 남성다움 / 힘, 용기 / 덕 / 성격, 명성, 영광 / 위엄’이란 의미뿐만 아니라 ‘기적 / 경의 / 경배의 대상’이란 의미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도자는 아레테를 어김없이 발휘한 자들 중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왕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바바로스’, 즉 ‘야만적’이라고 정의하였다. 영어 단어 ‘바바리안(barbarian)’이 여기서 파생하였다.
즉 ‘야만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아레테가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테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의미한다. 굴뚝의 아레테도 있고, 황소의 아레테도 있고, 사람의 아레테도 있다.
아레테는 그것이 무엇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고유한 아레테가 있기 때문이다. 아레테의 원래 의미는 ‘자신의 삶을 우주의 질서에 맞게 연결시킨 것’이다. 인간 자신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묵상을 통해 깨달아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삶을 바로 아레테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크랫(Aristocrat)’이란 영어단어는 흔히 ‘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숨겨진 본래 의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깨닫고 묵묵히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모두 아리스토크랫이다.
기원전 750년 호메로스는 450년 이상 구전으로 내려온 서사시를 문자로 옮긴다.
고대 그리스에는 다소 난해한 음절문자인 선형문자 A와 선형문자 B가 있었으나, 그들이 수백 년간 노래한 서사시를 기록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이들은 페니키아인들로부터 배운 셈족의 알파벳을 차용하여 이 노래를 적었다.
이 노래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이들은 각각 두 명의 위대한 영웅들의 아레테를 찬양하고 있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바로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 영웅으로 아레테를 발휘한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함락시키러 갔지만, 아킬레우스의 도움 없이는 그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아레테라는 개념은 바로 아킬레우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용맹성’을 의미한다.
후에 등장하는 그리스 교육과 그리스 올림픽은 바로 이 육체적 탁월함인 아레테를 연마하는 장소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는 다른 아레테를 지녔다.
그는 자신의 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말솜씨를 지녔다. 그는 트로이전쟁서 아킬레우스처럼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아타카로 항해하는 동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사이렌과 같은 여신의 유혹을 대화로 설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룬다. 아레테는 육체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언변의 탁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아레테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아레테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노력하는 과정에 서서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레테는 자신이 최선을 이루겠다는 결심과 노력이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속적인 마음이다.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확신,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겸손에서 아레테는 시작한다.
그리스 교육체계는 암기가 아니라 참여다.
매일매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통해 육체를 연마하며 그동안 알지 못하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무아(無我) 상태를 연마하여 정신적인 최선을 지향한다. 거기에는 사지선다가 없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경쟁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것처럼, 시·산문·연극·음악·그림·연설을 통해 아레테를 연마했다.
---------------------------아레테는 어떻게 연마하나 ---------------------------
아레테를 가장 많이 연마한 자들인 아리스토크랫은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정신적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타인의 다양한 마음을 진실로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바로 공부다.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것처럼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여 자연스레 그를 ‘선’과 ‘존경’의 화신으로 여긴다. 이 존경을 그리스어로 ‘티메(time)’라고 부른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최선을 지향하는 노력이 바로 아레테이다. 스스로 최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레테는 떠나버린다. 오랜 연마를 통해 아레테에 이른 이에게 공동체는 존경심인 티메를 선사한다.
티메는 사람이 타인의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무아의 능력으로 그에게 서서히 쌓이는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티메는 지도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는 ‘야만인 지도자’가 많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여러 길 중에 하나는 아레테를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레테를 깊이 연마해야 티메가 오며, 티메를 지닌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집트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인’이란 말의 의미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요즘 용어를 빌리자면 불법체류자들이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집트로 이어지는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떼를 지어 돌아다니던 사람들이다. ‘히브리인’들은 인종적이거나 민족적인 개념이 아니다. ‘출애굽기’ 12장28절에는 ‘온갖 잡족’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왔다고 기록한다.
이들은 경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음식을 찾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배회하던 사람들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이들을 독특한 종교공동체로 만든다.
히브리인들이 만든 이념공동체의 핵심은 ‘나는 내 자신’이었다.
모세에 의해 내려온 이 독립적인 사고는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문제에 봉착한다. 기원전 11세기 고대도시들은 국가라는 새로운 기관을 만든다. 여러 도시들이 협력하여 우두머리를 내정했다. 이 왕이 전체 행정을 관장했다. 이들은 왕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상비군(常備軍) 체계를 갖췄다.
히브리인들은 새로 도착한 땅 팔레스타인에서 막강한 상비군을 갖춘 도시국가들과 대결하여 살아남아야만 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거부하고 탈출한 왕정을 전술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왕 제도는 이들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근간을 훼손하는 제도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왕’의 권한을 제어하기 위해 ‘예언자’라는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왕’이란 단어는 ‘멜렉(melek)’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상의하다/충고하다’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에서 왕을 의미하는 ‘멜렉’은 ‘상의를 받는 사람/충고를 받는 사람’이다.
고대 오리엔트의 통치자들은 절대 권력을 지닌 자였으나, 히브리인들의 ‘지도자’는 성격이 달랐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그곳에 정착하며 살던, 성서에서는 ‘블레셋’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전쟁을 감행한다. 그들은 상비군과 정부조직이 있는 팔레스타인들과 효과적으로 대적하기 위해 상시적이 아닌 임시적인 지도자를 세운다. 이 임시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를 ‘멜렉’이라 불렀다.
멜렉이 다른 제국들의 제왕과 같은 권력을 갖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예언자’라는 특별한 인물을 세웠다. 예언자에게는 왕을 지명할 권한이 있었다. 또 왕의 곁에서 항상 정치를 상의하고 충고하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남성이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을 통일시킨 첫 번째 왕으로 성서의 위대한 영웅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신약시대에 예수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렸다.
무명의 목동이었다가 돌팔매로 골리앗을 살해하여 성공적인 장군이 되고 후에 신을 잘 섬기는 통치자가 된 다윗은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완벽한 삶의 전형이었다.
다윗은 독보적인 ‘알파 남성’으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수퍼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영웅에는 벗어날 수 없는 흠이 있기 마련이다.
다윗 삶의 정점에서 그는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오레스테이아’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영웅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비극’이란 터널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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