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또 묻고 … 모든 문제 다 담은 인생 백과사전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⑪ 유대교 제2경전 『탈무드』
바빌로니아 탈무드(솔로몬 벤 삼손이 만든 필사본, 프랑스 1342)
한국에는 불교·기독교 신자들이 많지만, 집집마다 탈무드가 한 권쯤 있다.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탈무드를 읽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인 예디오트 아하로트가 “한국인들은 왜 탈무드를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2011년 5월 12일)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정작 탈무드의 종주국인 이스라엘에서는 탈무드가 위기에 빠졌다.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으로 손꼽힌다. 학생들은 ‘따분하다’ ‘생활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같은 이유를 댄다. 미국에도 탈무드가 뭔지 모르는 유대인이 많다. 유대인의 가치관·세계관,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가 담겨 있는 탈무드가 유대인들에게 차츰 외면당하는 이유는 탈무드가 어렵고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읽는 탈무드는 쉽고 재미있는 어린이용 탈무드, 이야기 탈무드, 탈무드 해설서다.
영문판 탈무드 선집(펭귄 클래식 2009)
매일 한 장씩 공부하면 7년 반 만에 완독
배움·가르침·연구라는 뜻의 탈무드는 히브리어로 된 미슈나(Mishnah)와 히브리어와 같은 셈족언어인 아람어로 된 게마라(Gemara)로 구성됐다. 미슈나는 말로 내려오던 율법을 글로 적은 것이다. 기원전 1200년께 모세 시대에도 미슈나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략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200년까지 기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록·완성·전통을 뜻하는 게마라는 미슈나에 대한 랍비들의 주석과 해설이다.
탈무드는 두 종류가 있다. 팔레스타인 탈무드(350~500년)와 바빌로니아 탈무드(500~600년)다. 더 권위가 있는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250만 단어, 6000페이지 분량이다. 팔레스타인 탈무드의 4배다. 1923년 시작된 ‘다프 요미(Daf Yomi)’라는 탈무드 학습법에 따르면 매일 한 장씩 공부하면 7년 반에 탈무드를 완독할 수 있다.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400만. 세계 인구의 0.2%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1901년부터 2012년까지 노벨상의 22%를 휩쓸었다. 탈무드가 성공 비결로 종종 지목된다. 그러나 얼핏 보면 탈무드는 체계가 없어 보인다.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담에서 여담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과연 탈무드가 비결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면목이 드러난다. 탈무드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우선 탈무드는 법전이다. 유대인들의 ‘하느님의 법’을 담았다. 정통파와 보수파 유대교는 탈무드에 토라(모세5경) 못지않은 권위를 부여한다. 탈무드는 모세5경의 부록이자 유대교의 제2경전인 것이다.
랍비들이 저술한 탈무드는 후세의 랍비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탈무드는 유대 율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산물이다. 상충되는 내용을 포함해 다양한 시각을 그대로 실었다. 탈무드에는 신(神)의 계시를 이성으로도 알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렸다. 탈무드는 진리라고 알려진 것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의문을 제기하며, 문제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 유대인들의 대기록이다. 탈무드를 통해 종교적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론이 개발됐다. 종교를 과학으로 바꿔도 통했다. 탈무드에는 세속의 학문과 과학 방법론으로 끌어다 쓸 내용이 풍부했다.
탈무드에는 ‘심판의 날’에 누구나 응답해야 한다는 질문이 나온다. 몇 가지는 종교적·윤리적 내용이다. “정직하게 장사했는가” “성경 공부할 시간을 따로 두었는가” “가정을 꾸렸는가” “메시아의 구원을 믿었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탈무드의 친(親)학문적·과학적 성격이 부각되는 것은 다음 두 질문이다. “지혜를 추구했는가.” “한 명제에서 또 다른 명제로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는가.”
“기술 안 가르치는 건 산적질 가르치는 것”
탈무드에는 없는 게 없다. 법, 철학, 신학, 윤리, 예식, 의학, 과학, 천문학, 역사, 위인 전기를 다뤘다. 꿈 해몽, 마술, 속담, 전설, 우화, 민담도 나온다. 2011년 출간된 색인에 따르면 탈무드에는 6600개 주제와 2만7000개 하부 주제가 있다.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인생 백과사전이다.
탈무드는 영어에도 영향을 남겼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없다면,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그가 일단 옳다고 여겨라(Give every man the benefit of the doubt)” 같은 표현도 탈무드에서 나왔다.
그러나 탈무드는 유대교·기독교 갈등의 중심에 놓였다. 유럽의 국가와 교회는 수시로 탈무드를 거둬들인 후 불태웠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한술 더 뜨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탈무드가 신을 모독하는 악마의 책이라고 당국에 고발했다. 차츰 탈무드를 둘러싼 유대교·기독교 관계는 긍정적으로 정리됐다. 탈무드가 기독교의 진리를 입증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난해한 구약·신약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탈무드를 연구하는 기독교 학자·신학자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탈무드를 증오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반유대 세력이 의도적으로 탈무드를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상당수 사람들이 탈무드가 시온의정서(1903)의 원형이라고 본다. 시온의정서는 반유대주의자들이 만든 위서(僞書)다. 그들은 시온의정서에 유대인의 세계 정복 계획이 담겼다고 주장한다.
한·중·일 동양삼국에서 탈무드는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별로 없다. 힐렐의 황금률―“네게 싫은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그것이 성경의 전체요 나머지는 설명에 불과하다”―은 공자의 말(己所不欲勿施於人)과 일치한다.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국내의 탈무드 열풍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세상이 종교 없이도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에 탈무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있다. 세속화된 유대인들은 “기도에 대한 응답은 가슴을 손에 담았을 때에만 이뤄진다” “성령은 마음이 행복한 사람에게만 머문다” 같은 탈무드 격언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와 세속, 시대와 지리를 초월한 좋은 말도 많다. 다음 같은 말들이다. “적게 말하고 많이 행하라.” “노동을 사랑하고, 남을 지배하는 것을 혐오하며, 권력자들과 알고 지내려고 하지 말라.” “자식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식에게 산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누구든지 유대 율법을 매일 공부하는 사람은 앞으로 올 세상에서 한 자리가 보장된다.” 탈무드의 맨 끄트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에게 이 말의 함의는 무엇일까. 이 말에서 ‘유대 율법을’ 대목을 빼버리면 보편성이 확보되는 것일까.
공부의 경제학.
노벨상 수상자의 25%가 유태인이다. 이는 유태인은 특별한 종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 규범인 탈무드 영향이라고 한다. 탈무드는 히브리어로 가르치다는 뜻이며, 유태인들은 탈무드를 위대한 연구, 위대한 학문, 위대한 고전 연구라고 한다.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 후 500년까지의 구전(口傳)을 10년간 2천 명의 학자들이 편찬한 책으로 전부 합치면 20권. 1만 2천 페이지. 210만 단어. 중량 75Kg인 유태인의 지식의 집합체다. 탈무드의 뿌리는 구약성서이며, 구약성서를 확대한 것이다. 구약성서가 유대의 역사라면 탈무드는 유대인의 삶의 규범이다. 탈무드는 종교 차원이 아니라 행동 문화면에서 현대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준다. 탈무드를 통해서 경제활동의 지혜를 찾아보자.
탈무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행동 규범이다.
탈무드는 질문과 답이라는 형식으로 전개하며, 모든 테마는 헤브라이어와 아랍어로 되어 있다. 구두점도 없고, 머리말과 맺음말도 없다. 탈무드는 반드시 첫 페이지와 최후의 페이지를 백지로 남겨 둔다. 첫 페이지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고 마지막 페이지는 항상 덧붙여 쓸 여지가 남아 있다는 상징한다. 탈무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탈무드를 제대로 알려면 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 탈무드가 위대한 것은 1000년 동안 구전되던 지혜를 기록하고, 기록을 통해 정신적 구심점인 규범을 만들고, 한번 정한 규범을 행동화 교육으로 대물림하여 따르고, 금욕적인 건강관리와 돈과 경제활동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지혜를 누적하고 연결시키며 적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탈무드는 민족을 응집하고 위기를 극복하게 한 지혜서.
탈무드는 2500년 동안 지속된 가르침을 통해 유태인의 정신적 DNA를 형성했다. 유태인들이 탈무드를 지킨 것이 아니라 탈무드가 유태민족을 지켰다고 봐야 한다. 전통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고 계속 이어가면서 행동 문화를 형성했다. 유태인은 지금도 안식일을 통해 그들의 자녀를 탈무드를 통해 행동화 교육으로 지혜를 전수하고 실제 생활에 응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동일한 행동 규범을 대물림을 통해 반복 교육하여 앞서가는 민족이 되었다. 반면 머리가 좋은 우리민족은 어떠한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민족 전체에게 교훈을 주는 행동 규범이 없다. 우리 역사를 여행해 보면, <산 너머 누구는 우리 집안의 원수다. 00 집안과는 결혼하지 마라. 00의 성씨와는 상종하지 마라. 아무도 믿지 마라.> 등 작은 감정에 묶이어 전체를 보고 생각하는 생활 규범도 없고 상이한 가르침을 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누가 바른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의 분열상이 현실을 말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민족도 역사 속에서 지혜를 정리하여 행동 규범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주제 넘지만..)
기록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배우자.
유태인들에 있어 신을 찬양하는 최대의 행위는 공부다. 공부와 연구가 올바른 행동을 만든다는 말이 유태인의 오랜 금언이다. 유태인들은 인위적인 절대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있어 최고 권위는 탈무드이며,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랍비가 권위자다. 유태인은 자기 아버지 보다 교사 쪽이 중요하며, 아버지와 교사가 같이 물에 빠졌는데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지식을 전하는 교사가 더 중요하기에 교사부터 먼저 구하라고 가르친다. 유태인들은 지혜가 없는 지식은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탈무드는 랍비라는 정신적 지도자가 발전을 시켰고, 지금도 유태인들은 대학원 과정으로 랍비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교사를 포함한 정신적 영역에서 종사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신이 발전해야 물질도 함께 발전을 하는데도 말이다. 어떤 진보적 선구자가 나서서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하면 물매를 맞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신문화는 발전하지 못한다.
규범적이고 금욕적인 건강관리
탈무드의 6부 <순결과 불순>에 보면, 컵에 물을 마실 때에는 사용하기 전에 헹구고 사용한 뒤에도 다시 헹구어라. 자기가 사용한 컵을 씻지 않고 남에게 건네어서는 안 된다. 눈약을 넣기 보다는 아침저녁 눈을 물로 씻는 쪽이 낫다. 의사가 없는 곳에 살지 말라. 변소에 가고 싶을 때에는 한 순간이라도 참지 말라. 유태교는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 전까지 안식일의 계율을 지킨다. 물건을 사거나, 요리를 하거나, 불을 켜는 것도 금지 되어 있다. 담배도 피워서는 안 된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내며 신을 공경하고 아이들 공부를 보아준다. 탈무드의 건강관리는 그냥 몸만을 위한 관리가 아니다. 몸과 정신의 교감과 금욕 속에서의 관리다.
돈은 인간을 축복하는 수단이다.
탈무드에는 돈과 관련된 명언들이 많다. <상처를 입히는 세 가지가 있다. 번민, 불화, 빈 지갑이다. 그 중에 빈 지갑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 몸은 마음에 의존하고, 마음은 지갑에 의존한다. 돈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가난이 바르고, 부자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돈은 착한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를,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결과를 준다. 돈은 결코 모든 것을 즐겁게 할 수 는 없지만, 그렇다고 썩게 하지도 않는다. 돈은 벌기는 쉽지만 쓰기는 어렵다. 돈은 정이 없는 주인이면서 기회를 주는 유일한 도우미다. 돌처럼 굳어진 마음은 황금망치가 아니면 깨기 어렵다. 재물이 많아도 걱정거리가 늘지만, 재물이 없으면 걱정거리는 더 많아진다. 친구를 원수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내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사랑해야 부자가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쓰지 않는 것이다. 현금은 가장 능력이 있는 중개인이다. 좋은 수입만큼 좋은 약은 없다. 빌린 돈을 약속대로 갚으면 신용은 배로 늘고,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다. 가난의 고통은 의술로 치료하지 못한다. 돈은 악도 저주도 아니다. 돈은 인간을 축복해 주는 고마운 것이다. 부유함은 견고한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와 같다. 돈과 물건은 거저 주지 말고 빌려주라. 빌려주면 서로 동등한 입장에 선다. 가난은 수치는 아니지만 명예도 아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믿지 마라.>
안목과 정직만 있으면 상업은 어렵지 않다.
유태인은 높은 교육을 받았음으로 장사에 재능을 보였다. 유태인이 오래전부터 상업에 눈을 뜬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서기 70년 이후 유태인은 농토를 소유할 수 없었고 제조업자의 조합에도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상인이 되었다. 왕이나 귀족들은 유태인을 지배인으로 고용했다. 장사라는 것은 때를 보는 안목과 정직을 갖추면 어렵지 않다고 가르친다. 순수한 상품, 결함이 없는 상품을 팔고, 어려서부터 큰 숫자와 계산법을 익히고, 납득이 될 때까지 묻고 납득이 되면 거래를 하고, 부자들에게 유행할 것을 팔고, 상품을 상품으로 냉정하게 볼 것을 가르친다. 자영업이 많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다.
탈무드 / 여자에 대한 명언
미인은 바라보는 것이지 결혼 상대는 아니다.
남자는 먼저 집을 짓고 들에 포도를 심어 포도원을 만들고 그런 다음에 여자를 맞이하라 .
이 순서를 어겨서는 안된다.
한창 연애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과 연애하고 있는지, 상대와 연애하고 있는지 생각하여라.
모든 결혼이 다 아름답고 모든 죽음이 다 경건한 것은 아니다.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신혼 때에는 창부처럼, 다음엔 비서처럼,
그 다음엔 간호원처럼 처신하여야 한다.
신은 아내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다.
첫사랑의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만큼 행운아는 없다.
인생에서 늦어도 괜찮은 것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결혼과 죽음이다.
남자가 여자와 관계하여 기쁨과 슬픔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젊었다는 증거이다.
나이가 들면 어떤 여자와도 기쁘게 만난다.
그러나 여자를 만나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되면 이미 늙었다는 증거다.
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자기 아내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쉽다.
남자를 늙게하는 네가지 요소는 불안, 노여움 그리고 아이들과 악처다.
아무리 사랑이 소중해도 사랑하는 상대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여자는 여섯살이거나 예순살이거나 웨딩마치가 울리면 춤을 춘다.
딸을 학자에게 결혼시키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소비하여라.
여자를 재는 세가지 척도는 요리, 복장, 남편인데, 이 모두는 여자가 만드는 것이다.
연애하고 있는 사람은 유리눈을 가지고 있다.
연애에 빠진 딸을 집에 붙잡아 두는 것은 백 마리의 벼룩을 울타리 안에 가두기보다도 어렵다.
탈무드Talmudh
가난한 집안의 아들은 찬미받으리라. 인류에게 예지(叡智)를 가져다주는 것은 그들이므로.
가정에서 부도덕한 일을 하는 것은 과일에 벌레가 붙은 것과 같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퍼져가므로.
갓 열리기 시작한 오이는 그 오이가 장차 맛있게 될지 어떨지 모른다.
강한 사람이란 자기를 억누룰 수 있는 사람과 적을 벗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벌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이다.
껍질만 보지 말라.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라.
결혼의 목적은 기쁨,
장례식의 참석자의 목적은 침묵,
강의의 목적은 듣는 것.
사람을 방문할 때의 목적은 빨리 도착하는 것.
가르치는 목적은 집중(集中).
단식(斷食)의 목적은 돈으로 자선(慈善)하는 것.
고양이로부터 겸허함을 배울 수가 있으며,
개미로부터 정직함을 배울 수가 있고,
비둘기로부터 정절을 배울 수가 있으며,
수탉으로부터는 재산의 권리를 배울 수가 있다.
고양이와 쥐는 먹이가 된 동물을 함께 먹고 있을 때에는 다투지 않는다.
공짜로 처방전을 써 주는 의사의 충고는 듣지 마라.
그 사람 입장에 서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람을 욕하거나 책망하지 말라.
극형(極刑)을 언도하기 전의 판사는 자기 목이 매달려지는 것 같은 심정이어야 한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신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세와 태도,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명확히 알 수 있다.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가 절실한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봐라.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지 마라.
습관적인 기도는 참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약은 감탄하는 것이다.
책은 만인의 공유물이며, 만인은 배움의 의무를 지닌다.
친구가 없어도 혼자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런데 친구가 없으면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가 없으면 친구가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친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음식과 같은 친구로 매일 빠져서는 안 된다.
둘째는 약과 같은 친구로 이따금 있어야만 한다.
셋째는 병(病)과 같은 친구로서 이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은, 악에의 충동도 그만큼 강하다.
다섯살 된 자식은 당신의 주인이고,
열살 된 자식은 노예이며,
열 다섯살 된 자식은 동등하게 된다.
그 후부터는 교육시키는 방법 여하에 따라 벗이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있어서 벌꿀처럼 달더라도 전부 핥아먹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혀에게 <나는 잘 모릅니다>라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돈은 사업을 위해 쓰여야 할 것이며, 술을 위해 쓰여야 할 것은 아니다.
돈은 악이 아니며, 저주도 아니다. 돈은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다.
돈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선물을 살 기회를 준다.
돈을 빌려 준 사람에 대해서는 화를 참아야만 한다.
돈이나 물건은 그냥 주는 것보다도 빌려주는 쪽이 낫다.
그냥 얻으면, 얻은 쪽은 준 사람보다 밑에 있지 않으면 안 되지만, 빌려주고 빌린다면 대등하게 대할 수 있다.
돌이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동물은 자기와 같은 종류의 동물들과만 생활한다.
늑대가 양과 섞일 리는 없고, 하이에나가 개와 섞일 수가 있을까.
부자와 가난뱅이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사람은 두 가지 교육을 받고 있다.
그 하나는 교사로부터 받는 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반성하는 자가 서있는 땅은 가장 훌륭한 성자가 서있는 땅보다 거룩하다.
백성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
벗이 화내고 있을 때에는 달래려고 하지 말라. 그가 슬퍼하고 있을 때에도 위로하지 말라.
부귀는 요새(要塞)이며, 빈곤은 폐허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과 자부심은 형제간이다.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 폭만큼의 침대에서도 잠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기 시작하면, 십 미터나 폭이 넓은 침대로도 너무 좁아진다.
부자들이 즐기는 쾌락은 가난한 자의 눈물로 얻어지는 법입니다. - 톨스토이
부친을 존중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은, 부친은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하고, 의복을 주기 때문이다.
불순한 동기에서 생기는 애정은, 그 동기가 사라져 갔을 때에 죽어 버린다.
불타고 있는 장작에 물을 뿌리면, 속까지 차갑게 되지만, 중상(中傷)으로 노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죄해도 마음속의 불은 끌 수가 없다.
비싼 진주가 없어져서, 이것을 찾기 위해 별다른 값어치도 없는 촛불이 사용된다.
사람에게 자신을 갖게 하는 세 가지. 그것은 좋은 가정, 좋은 아내, 좋은 의복.
사람은 세 가지 이름을 갖는다.
양친이 태어났을 때 붙여 주는 이름,
친구들이 우애의 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
그리고 자기 생애가 끝났을 때 획득하는 명성(名聲)의 세 가지이다.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 세 개 있다.
번민, 말다툼, 텅빈 지갑, 그 중에서 텅빈 지갑이 가장 크게 사람을 상처 입힌다.
사람을 알려면, 그의 지갑, 쾌락, 그리고 불평을 보라.
사람을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답게 명예스런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세 가지. 명곡(名曲), 조용한 풍경, 깨끗한 향기.
사랑을 하고 있는 자는 타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상대에게 한 번 속았을 땐 그 사람을 탓하라. 그러나 그 사람에게 두 번 속았거든 자신을 탓하라.
서로 재혼인 사람끼리 결혼하면, 침대에는 네 사람의 남녀가 자게 된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그것은 젊은 때에 결혼하여 살아온 늙은 마누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좋은 아내를 얻은 남자다.
아내를 고를 때에는 겁쟁이가 되라.
아내를 고를 때에는 계단을 한 걸음 내려가고, 벗을 고를 때에는 계단을 한 걸음 올라가라.
아내를 이유없이 학대하지 말라. 하느님은 그녀의 눈물방울 수를 늘 헤아리고 계시다.
아내의 동의 없이, 아내와 관계를 가질 수는 없다. 아내가 내키지 않는 데도 남편이 손대는 것은 금해져 있다.
선행에 문을 닫는 자는, 다음에는 의사를 위하여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성품이 나쁜 사나이는 이웃 사람의 수입에 마음을 쓰면서 자기의 낭비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세계는 진실, 법, 평화의 세 토대 위에 서있다.
세계에는 올바른 일만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나쁜 일도 하고 있다.
세상에는 너무 지나치게 쓰면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그것은 빵의 이스트, 소금, 망설임이다.
세상은 약하지만 강한 것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다.
첫째, 모기는 사자에게 두려움을 준다.
둘째, 거머리는 물소에게 두려움을 준다.
셋째, 파리는 전갈에세 두려움을 준다.
넷째, 거미는 매에게 두려움을 준다.
아무리 크고 힘이 강하더라도 반드시 무서운 존재라고는 할 수 없다. 매우 힘이 약하더라도 어떤 조건만 갖추어져 있다면 강한 자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섹스는 매우 개인적인 관계로 이루어지고, 매우 친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를 컨트롤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섹스를 행해서는 안 된다.
섹스는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한 사람만 상대하여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섹스할 때에는 본래, 부자연스런 것은 무엇 하나 있을 리가 없다.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가십(gossip)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가십이 들리면 얼른 귀를 막아라.
술이 머리에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밀려 나간다.
시련을 극복하는 자에게 영광 있으리라.
신은 모든 사람을 시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부에 의하여 시험을 당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은 가난에 의하여 시험을 당한다.
부자에게는 그를 필요로 하는 궁핍한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는가를 시험하며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가 불평없이 자기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시험한다.
신은 인간 하나 하나를 시험한다.
곧 부자에게는 부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 시험한다.
부자에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손을 뻗쳐 시험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불평불만 없이 순종하면서 고통을 이겨내는가 시험한다.
실패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더 바보스럽다.
13 세 때부터 인간 속에 있는 나쁜 충동은, 점점 선에의 충동보다도 강하게 된다.
아무리 선인(善人)이라도 입이 나쁜 인간은, 훌륭한 궁전 이웃에 있는 악취가 심하게 풍기는 가죽 공장과 같은 것이다.
아버지가 만약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자리에 자식이 앉아서는 안 된다.
아이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인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떠한 것과 같은 것일까. 이미 많이 씌어진 종이에 여백을 찾아서 써넣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이를 꾸짖을 때에는 한 번만 따끔하게 꾸짖고, 언제나 잔소리로 계속 꾸짖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키울 때 차별하지 말라.
아이는 어릴 때 엄하게 가르쳐야 하나, 아이가 무서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무언가 약속하면, 반드시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어린이는 부모가 이야기하는 모양을 흉내낸다. 성격은 그 이야기하는 모양으로 알 수 있다.
언제나 바르게 행동하라.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특히 바르게 하라. 아이들과 약속한 것을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침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술을 마시며, 저녁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인간은 일생을 간단히 헛되게 만들 수 있다.
악에의 충동은 구리와 같은 것이어서, 불 속에 있을 때에는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
악에의 충동은 처음은 대단히 달콤하다. 그러나 끝났을 때에는 대단히 쓰다.
악은 태아였을 때부터 인간의 마음에 싹터서 인간이 자라남에 따라 강하게 된다.
애써 높은 자리를 잡으려 애쓰지 말고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
남으로부터 '내려가시오'라는 말을 듣느니보다는 '올라가시오'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
신은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며, 스스로 겸양하는 자를 높이 올린다.
야다(YADA)는 창조의 행위이다. 이것 없이는 자기 완성이 얻어질 수 없다. 야다라는 말은 헤브라이어로 섹스라는 뜻으로 상대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야 옳고 훌륭한 삶인가 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우의 머리가 되기보다 사자의 꼬리가 되라.
어떤 남자라도, 여자의 이상한 아름다움에는 저항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젊고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어도 젊다.
여성이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은 퍽 좋은 일이다.
두 잔 마시면 그녀는 품위를 떨어뜨린다.
석 잔째는 부도덕하게 되고, 넉 잔째에서는 자멸(自滅)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육감이 빠르다.
여자는 남자보다 정이 두텁다.
여자는 불합리한 신앙에 말려들기 쉽다.
여자는 자기의 외모를 가장 중히 여긴다.
여자와 만나보지 않고 결혼해서는 안 된다.
여자의 질투심은 하나의 원인밖에 없다.
질투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하느님이 최초의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않았던 것은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로 만들지 않았던 것도 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늑골로 만든 것은, 그녀가 언제나 그의 가슴 가까이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올바른 자는 자기의 욕망을 조정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자는 욕망에 조정당한다.
요령이 좋은 인간과, 현명한 인간의 차이는 요령이 좋은 사나이는 현명한 인간이었더라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곤란한 상황을 잘 빠져나갈 사람을 말한다.
웨이터의 매너가 좋으면, 어떤 술이라도 미주(美酒)가 된다.
위대함은 그것을 추구하는 자로부터는 도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는 자에게는 따른다.
육체를 쓰는 노동은 사람은 사람을 고귀하고 존귀하게 만든다. 자식에게 육체를 써서 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것은 곧 그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
음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다.
의인은 죽은 후에도 산 자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악인은 살아 있어도 죽은 자라고 불린다.
이름이 팔리면 곧 잊혀진다.
인간에게는 여섯 개의 소용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서 세 개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지만, 세 개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되는 부분이다.
눈, 귀, 코가 앞의 것이고, 입, 손, 발이 뒤의 것이다.
인간은 마음 가까이에 유방을 갖고 있다. 동물은 마음에서 멀리에 유방이 있다. 이것은 신의 깊은 배려이다.
인간은 세 가지 벗을 가지고 있다. 아이, 부(富), 선행.
인간은 20년 걸려서 배운 것을 2년으로 잊을 수가 있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인간은 타인의 사소한 피부병은 걱정해도, 자기의 중병(重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을 끝까지 완결짓지 못해도 좋다. 다만 일을 하다 말고 전부 포기할 생각만은 하지 말라. 당신에게 그 일을 맡긴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하루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틀이 걸린다. 이틀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의해서는 나흘이 걸린다. 1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2년 걸린다.
학교가 없는 도시에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양초에 불을 붙일지라도, 처음 양초의 불빛은 흐려지지 않는다.
한 마리의 개가 짖기 시작하면, 동네 개가 모두 짖기 시작한다.
항상 침묵 속에 있는 사람은 신에 가까이 가기가 쉽다. 그러니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쓸데없이 입을 놀리고, 곧바로 고독과 초조함을 느낀다. 후회할 일을 삼가려는 결심을 하면 진실에 다가선다.
말할 것은 하되, 불필요한 말은 삼가자.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자. 반성과 함께 전진하자.
항아리 속에 든 한 개의 동전은 시끄럽게 소리를 내나, 동전이 가득 찬 항아리는 조용하다.
행동은 말보다 그 소리가 크다.
현명한 사람은 배움을 얻으려 하고,
굳센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풍부한 사람은 자기 소득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향수 가게에 들어가서 향수를 사지 않아도, 나왔을 때에는 향수의 냄새가 나며,
가죽 상점에 들어가서 가죽을 사지 않아도, 대단히 나쁜 가죽 냄새가 몸에 옮겨온다.
훌륭한 사람이 아랫사람의 말하는 것을 듣고 노인이 젊은이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세계는 축복받아야 할 것이다.
훌륭한 사상은 역시 훌륭한 인격에 담긴다. 작은 그릇에는 작은 음식밖에 담기지 않듯이 인격이 왜소하면 큰 사상을 담을 도리가 없다. 작으나 크나 사상이란 그 사람의 인격을 토대로 세워진 하나의 건축이다.
휴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휴일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칼을 갖고 있는 자는 책을 갖고 설 수 없다. 책을 갖고 서있는 사람은 칼을 갖고 설 수 없다.
판사(判事)는 반드시 진실과 평화의 양쪽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진실을 구하면 평화는 혼란된다. 그래서 진실도 파괴하지 않고 평화도 지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타협인 것이다.
판사의 자격은 겸허하고, 언제나 선행을 거듭하고, 무언가 결정을 내릴 만큼의 용기를 가지며, 지금까지의 경력이 깨끗한 사람이라야 한다.
포도주는 새 술일 때에는 신포도와 같은 맛이 난다. 그러나 오래 되면 오래 될 수록 맛이 좋아진다. 지혜도 똑같은 것이다. 해를 거듭함에 따라 지혜는 닦여진다.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벗삼은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선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알려지고, 사람은 일에 의해서 평가된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남에게 자기를 칭찬하게 해도 좋으나, 자기 입으로 자기를 칭찬하지 말라.
남을 헐뜯는 가십(gossip)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으나, 가십은 반드시 세 사람의 인간을 죽인다.
즉 가십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
남의 자비로 사는 것보다 가난한 생활을 하는 편이 낫다.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남자로부터 늑골을 빼앗아 여자를 만들었으므로 남자는 자기가 잃은 것을 되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에 추근거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추근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남자는 자기가 잃은 것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하면, 죄가 불어난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너를 칭찬하고 따르는 친구도 있을 것이며, 너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너를 비난하는 친구와 가까이 지내도록 하고 너를 칭찬하는 친구와 멀리하라.
너의 오른손이 유혹하는 것을 너의 왼손으로 물리쳐라.
노화를 재촉하는 네 가지 원인. 공포, 분노, 아이들, 악처.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 쪽이 두렵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
만약 당신이 악에의 충동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내쫓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하라.
만약 인간에게 악에의 충동이 없으면, 집도 세우지 않고 아내도 얻지 않고, 아이들도 만들지 않고,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친구가 야채를 갖고 있으면 고기를 주어라.
맨 처음에 하느님이 만든 남자는 양성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남자 중에도 여성 호르몬이 있고, 여성 중에도 남성 호르몬이 있다.
명성(名聲)을 구하여 달리는 자는, 명성에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명성에서 도망쳐 달리는 자는, 명성에 붙잡힌다.
모든 병 중에서, 마음의 병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모든 악 중에서, 악처만큼 나쁜 것은 없다.
모든 사람은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톨스토이
몸의 모든 부분은 마음에 의존하고 있다.
물건을 훔치지 않은 도둑은 자기를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 -
물이란 본디 산정상에 머물지 않고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법이다. 이처럼 진정한 미덕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머무르지 않으며 겸손하고 낮아지려는 사람에게만 머무는 법이다.
자기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막연히 바라보는 사람, 어디에 자기가 서 있는지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 그들은 불행하다.
자기를 아는 것이 최대의 지혜이다.
자기의 결점만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인간이 갖는 결점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의 직위를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애쓰는 인간은, 곧 자기 인격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인간이다.
자기 자식에게 육체적인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약탈 강도와 같은 짓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될 자격조차 없다.
자선을 행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리 굉장한 부자일지라도 맛있는 요리가 즐비한 식탁에 소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아(自我)를 부인하는 사람에게만 진리의 가르침이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없다.
장미꽃은 가시 사이에서 피어난다.
전 인류는 단지 한 선조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이 어느 인간보다도 뛰어나 있다는 일은 없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의 인간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 인류를 죽인 것과 똑같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그것은 전 인류의 목숨을 구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한 사람의 인간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그 최초의 인간을 죽였다고 한다면 인류는 오늘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념은 거미줄과 같다. 그것은 처음에는 낯선 손님처럼 보이나 단골 손님처럼 보이고 나중에는 그 집의 주인이 된다.
정열을 위하여 결혼하여도, 정열은 결혼보다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좋은 항아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 날 안에 사용하라. 내일이 되면 깨어질지도 모른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집의 줄처럼 가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배를 잇는 밧줄처럼 강하게 된다.
죄는 처음에는 손님처럼 겸손하다. 그러나 내버려두면 주인을 내쫓고 제가 주인이 된다.
죄는 처음에는 여자처럼 약하나, 내버려두면 남자처럼 강하게 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중상자(中傷者)는 무기를 사용해서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보다 죄가 무겁다. 무기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대를 상처 입힐 수 없으나, 중상을 멀리서도 사람을 상처 입힐 수가 있다.
지식이 얕으면 곧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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