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예수의 위대한 질문⑪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누가복음 22장 47절)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
<유다복음서>는 21세기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 유다에게 새로운 의미 부여하는 등 종교의 다양한 가치 증언하는 귀중한 복음서로 자리매김
2006년 4월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에서 공개된 <유다복음서>. <유다복음서>는 서기 300년경에 쓰인 것으로 1978년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됐다.
기독교에서 가장 미움을 받았던 배신의 아이콘 가롯 유다.
그는 1978년 발견된 <유다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위대한 마지막 길’을 밝혀준 유일한 제자로 재평가된다. 기독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억압해온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그와 함께 부활한다.
여성·노인·장애인·식민지인과 같이 소외된 자들이 그 약자의 이름이다.
기원전 44년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의 암살자 중 한 명인 브루투스의 얼굴을 새긴 로마의 은화. 브루투스가 시저 암살을 통해 로마공화정 수호에 성공한 것을 기념해 주조했다
이 주화는 서양 고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배신 사건을 묵묵히 증언한다. 기원전 44년에 일어난 한 암살사건을 기념하여 주조된 은화다. 주화의 한 면에는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한 암살자들 중 한 명인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옆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의 프로필은 전형적인 로마 장군의 모습이다.
튀어나온 눈두덩이와 묵직한 코와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커다란 귀와 툭 튀어나온 울대뼈까지 전형적인 로마 남성상이다. 동전의 다른 면에는 모자를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단검이 양쪽에 서 있다. 모자는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로마인에게 주어지는 하사품으로 자유를 상징하고 두 단검은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단검이다.
이 상징 그림 밑에는 ‘EID.MAR’라는 라틴어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에 일어났던 시저의 암살사건을 증언한다. 브루투스는 줄리어스 시저가 로마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로마제정으로 체제를 변화시켜 스스로 자신을 황제로 임명한 결정에 분노하여 로마원로원과 모의하여 시저를 살해한다.
브루투스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이 주화를 주조했다. 로마공화정에서는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동전에 새겨 넣지 않는다. 신격화된 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전에 통치자의 모습을 넣은 행위는 로마공화정의 정신을 위배하여 독재정치인 왕정을 용인하는 셈이다. 실제로 수년 전 줄리어스 시저는 자신의 형상을 동전에 새겨 넣어 로마원로원이 그를 암살할 결정적인 빌미를 주었다. 여기서 브루투스가 시저의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012년 개봉된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의 암살 장면. 시저는 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가 암살에 가담한 것을 알고 저항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너마저, 브루투스여!”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형상 주위에는 라틴어 명문이 기록되었다. ‘BRUT IMP L PLAET CEST’. 이 단어들은 다른 로마 명문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문장이 아닌 약자다. 본래 문장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Brutus, Imperator, Lucius Plaetorius Cestianus’.
여기서 뒤에 등장하는 표현 ‘루키우스 플라이토리우스 케스티아누스’는 이 동전을 생산한 노동자들을 관리한 주조 공증인이다. 그의 이름이 동전의 가치를 보장하는 표식이다. 그의 이름 앞에 ‘브루투스 임페라토르’라는 문구를 대략 번역하자면 ‘군대 사령관 브루투스’다.
브루투스는 로마 원로원들과 함께 자신의 동지인 시저를 암살하려 한다. 이들은 스스로 ‘리베라토레스’ 즉 ‘해방자’라고 불렀으며 시저를 암살한다면 왕이 통치하는 독재의 위험으로부터 로마공화정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기원전 44년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로마원로원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평생 통치자임을 스스로 선포한 시저를 암살하자고 결의한다. 암살되기 3개월 전에 시저는 자신의 이미지를 로마 동전에 넣음으로써 절대 권력자임을 선포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시저의 통치를 반대하는 로마원로원은 폼페이 극장에서 검투사 경기를 개최한다. 시저가 폼페이 극장을 지나려는 순간 원로원들이 그를 납치하여 동편 현관에 위치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브루투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이 시저를 23번 이상 칼로 찔러 시저는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시저를 암살한 후 브루투스는 로마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도망한다. 그는 여기서 은화를 발행하고 자금과 용병을 모아 다시 로마로 입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년 후인 기원전 42년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시저파 군인들에게 필립피 전투에서 패한 후 브루투스는 자살한다.
‘et tu Brute!(에 투 브루테)’는 라틴어 문장으로 번역하자면 “너마저, 브루투스여!”다. 이 문장은 시저가 그를 암살하려는 자신의 심복인 마르쿠스 브루투스에게 던진 말이다. 실제로 시저가 급박한 상황에서 이처럼 간결하고 시적인 말을 외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을 오늘날까지 회자되도록 만든 이는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그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가 죽기 전에 던진 말이다. 그 후 ‘에 투 브루테’는 서양문명에서 친구나 가족과 같은 사람의 배신을 상징하는 문구로 자리 잡았다. 줄리어스 시저가 가장 신뢰하는 브루투스는 왜 그를 배신하고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가?
로마 역사가 수에니토스는 시저의 마지막 말은 라틴어 문장인 ‘에 투 브루테’가 아니라 그리스어 문장 ‘카이 수 테크논(kai su teknon)’, 즉 “너마저, 내 아들아!”였다고 전한다. 그는 브루투스가 시저의 사생아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시저는 브루투스의 어머니 세르빌리아 카이피오니스를 다른 여자들보다 사랑했고 신뢰했다.
시저는 브루투스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으며 그를 자신의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러나 수에니토스의 이 문장은 시저와 브루투스의 나이 차이가 15세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마도 ‘카이 수 테크논’이란 표현도 시저와 브루투스의 친밀감을 단적으로 표현한 외침인 것 같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배신이 로마공화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브루투스는 한 사람에게 절대권력이 집중되는 왕정이나 제국의 형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로마인 중 가장 숭고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브루투스가 공화정을 위해 자신의 ‘친구’ 혹은 ‘아버지’를 배신하는 운명을 선택한다.
시저는 원로원 의원들이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강하게 반항했지만, 암살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의 동지 브루투스를 보고 자포자기하여 자신의 토가 겉옷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에 투 브루테”라고 말한 뒤 순수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전한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두고두고 후대 문필가들의 주제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 1498년 완성된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예수는 만찬 도중 가롯 유다의 배신을 정확히 예견한다.
유다는 정말 영원한 저주의 대상인가?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의 맨 밑바닥 아홉번째 장소를 ‘통곡의 강’이란 의미를 지닌 ‘코퀴토스’라고 명명한다. 코퀴토스는 얼어붙은 강이다. 이곳은 배신한 자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다.
브루투스와 함께 코퀴토스에 감금된 자는 다름아닌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이다. 배신한 자들이 목만 얼음 위로 내놓은 채 고통받고 있는 장소다. 사랑과 신뢰를 저버린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단테는 이 아홉 번째 장소를 다음 넷으로 다시 구분한다.
아담과 이브의 첫 아들로 자신의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의 이름을 본떠 ‘카이나’,
자신의 친척과 민족을 배신하여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파괴하게 만든 트로이 왕자 ‘안테노라’,
기원전 2세기 마카베우스 혁명 당시 자신의 장인이며 대제사장인 시몬 마카베우스와 그의 두 아들의 후견인이었다가 그들을 살해한 여리고 장군 프톨레미의 이름을 딴 ‘프톨로메아’,
그리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이름을 본뜬 ‘유다카’다. 여기는 바로 사탄이 거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탄은 세 개의 얼굴과 입을 가지고 있다. 가운데 입으로 유다를 뜯고 손톱으로는 그의 등을 잡아당기고 있다. 그 옆에서는 시저를 배신하여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다리부터 씹히고 있다. 코퀴토스에서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 유다는 정말 영원한 저주의 대상인가?
‘유다’라는 이름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의 하나다. 예수를 배신한 제자는 그의 고향인 ‘카리옷’이란 명칭을 붙여 가롯 유다라고 불렸다. 공관복음서에 등장하는 12제자의 명단에서 유다는 항상 ‘예수를 넘겨준 가롯 사람’이란 설명구가 붙는다. <요한복음>에서 유다는 악마이며 예수를 배신할 인물로 묘사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 하나는 악마다.’
이것은 시몬 가롯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인데,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예수를 넘겨줄 사람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을 알고 있었다. 40일간의 사막생활을 하면서 우주의 질서를 깨닫고 자신의 가르침과 삶을 닮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쳤던 최고의 가치인 ‘연민’을 충격적이면서 극단적인 행위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로 모두 예루살렘에 모인다.
예수도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에게 강력하면서도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는 운명을 감지한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 성문에서 구름떼처럼 몰려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한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친다. 메시아는 자신들을 로마 정치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군사적 영웅이었던 것 같다. 이런 외침을 빌라도를 비롯한 로마 군인들과 유대교 제사장들이 반겼을 리 없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
예수는 자신을 3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동고동락해온 열두 제자와 마지막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만찬이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이면 로마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란 사실을 깊은 묵상을 통해 알고 있었다. 네 복음서 모두 이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기획한 사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한참 망설이다 발설하고 말았다. 배반할 사람을 미리 알았는지 아니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실행할 사람을 미리 지정하여 알려줬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예수수난 이해의 핵심인지 모른다.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를 마음에 두고 말하는지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 옆에 가까이 앉은 요한에게 눈짓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시킨다. 요한이 예수께 바짝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는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빵조각을 적셔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에게 주었다.
유다는 최후의 만찬 장면 전에는 거의 언급된 적이 없는 제자다. 바로 이 시점부터 유다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둘러싼 비밀을 여는 열쇠를 쥐는 인물로 등장한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빵조각을 적시는 순간에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전한다. <요한복음> 기자는 만찬이 시작될 때, 이미 악마가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집어넣었다고 기록한다.
이 문장은 사실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다. 유대교에서 사탄은 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매개체일 뿐 자기 스스로 어떤 일을 독립적으로 도모하지 못한다.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야훼신이 욥을 시험하라고 허락했기 때문에 욥에게 어려움을 주었고,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사막에서 묵상을 시작할 때, ‘성령’에 이끌려 사막에 가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예수가 빵조각을 베드로에게 주었다면 베드로가 배신한다는 말인가? 혹은 예수가 그 빵조각을 주었기 때문에, 가롯 유다가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예수는 이전에 유다와 사전조율이 있어 그렇게 했다는 말인가?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는 바로 유다에게 단호한 어조로 명령을 내린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다른 제자들은 예수가 유다한테 명령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몇 제자는 유다가 돈을 관리하고 있었으니 내일이면 시작되는 유대 명절을 위해 물건을 구입하거나 혹은 명절을 위해 물건을 사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라는 말로 이해했을 것이다.
유다는 다른 제자들은 모두 앉아 있는데, 어색하게 자신만 홀로 그 만찬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혹은 만찬 전에)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과 만나 예수의 체포를 계획하고 은 30냥을 대가로 받는다.
몇 시간 후에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고 유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깊이 후회하여 제사장들에게 돌아가 돈을 돌려주려 한다. 그들이 유다의 제안을 거절하자, 유다는 은전을 바닥에 내던지고 목매달아 자살한다. 유다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죽는다.
왜 유다는 이런 운명을 져야 하는가? 만일 예수가 나에게 자신을 배신하라고 미리 말하고 그 행동을 빨리 개시하라고 요구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만일 나의 그런 행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 과정의 시발점이라면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아야한다. 유다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것처럼 가장 저주받아 마땅한 인물인가?
이스라엘 감람산 중턱 겟세마네 동산에 세워진 만국교회의 모습. 예수는 제자 가롯 유다의 밀고로 이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군에 의해 체포된다.
예수의 임무 완벽하게 이해한 유일한 제자
지난 2천 년 동안 유다는 그리스도교에서 악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적인 발견으로 유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1978년 이집트의 한 무덤에서 보물을 찾던 농부들이 오래된 코덱스(codex) 하나를 발견했다. 코덱스는 두루마리와는 달리 책의 페이지 숫자가 적혀 있는 일종의 책이다.
이 코덱스는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인 콥트어로 기록되었다. 학자들은 이 코덱스가 기원후 3∼4세기 것으로 신약성서의 다른 복음서들처럼 기원후 2세기경 그리스어로 기록된 문헌을 콥트어로 번역한 문헌으로 분석한다. 이 코덱스가 발견되었을 때 보전상태가 훌륭했다고 전해지나, 그 후 23년 동안 악명 높은 중동의 고문서 시장을 전전했다.
한 구매자는 이 코덱스를 오랫동안 냉장고에 보관하는 바람에 어떤 부분의 글자는 잉크가 번져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가로로 반이 갈라져 너덜너덜해진 상태가 되었다. 코덱스는 2001년부터 고문서 복원가들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다. 물론 일부는 휴지조각처럼 돼 많은 구절이 복원 불가능하다.
이런 고고학적인 발굴이 등장할 때마다 21세기 성서 학자들은 긴장한다. 이스라엘 사해 근처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이나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낙함마디문헌>은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성립된 기원후 3∼4세기 이전의 글로 그리스도를 다양하게 이해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문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서를 서양교회 교리 중심의 편협한 시각을 통해서만 이해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이 문헌들은 교리가 형성되기 이전, 생기가 넘치고 기발하며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철학과 예수를 연결시켜 이해한, 예수에 관한 기록을 여과 없이 우리에게 선사한다.
1978년 발견된 이 코덱스는 그것을 소유한 프리다, 타코스, 그리고 뉴스버거 세 사람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와 ‘코덱스 타코스’라 부른다. 코덱스 타코스 중 한 문헌이 26쪽으로 된 <유다복음서>다.
이 코덱스는 누가 기록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다에 관한 복음서이며, 우리가 신약성서에서 보았던 유다와는 전혀 다른 인물의 이야기란 점이다. 그는 예수를 은 30냥에 넘겨 죽음에 이르게 한 그리스도교 악의 화신, 단테가 이해한 최악의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지상 임무를 완벽하게 이해한 유일한 제자다.
코덱스 타코스는 다른 낙함마디 문헌처럼 영지주의파라고 알려진 그리스도 한 종파의 글이다. 기원후 2세기 그리스도교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여러 종파가 등장하여 각자가 자신만이 예수로부터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고, 신학적 노선을 달리하면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죄하던 시기였다.
그리스도교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살펴보려면 그 당시 여러 종파의 주장을 깊이 연구하고 어떤 특정한 종파가 자신의 주장을 ‘교리화’하면서 소위 ‘정통’이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그 당시 그리스도교의 특징인 사상의 탄력성, 다양성, 그리고 시의성이 제거되면서 극도로 메마른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교리에 집착하여 매력 없는 종교로 전락했다.
기원후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가공인 종교가 되면서, 다양한 종파가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고 결국 한 종파만 살아남고 그들의 ‘교리’는 정통이 되었다. 이 종파는 사실 신학적으로 ‘중도파’였다. 이들은 유대인의 경전인 히브리 성서와 예수가 선포한 새로운 복음을 둘 다 수용했다. 다른 종파들과 자신을 구분시키는 핵심교리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예수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며, 둘째 인간에게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가 있다.
초대교회 교리가 만들어질 당시 역사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교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의 교리는 수정돼야 마땅하다. 그들은 예수의 언행을 담은 수많은 복음서 중 영지주의 문헌처럼 지식인이나 철학자와 같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일반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네 개 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이것들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다.
“너희들은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독특한 세계관을 지녔다. 그들은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를 무시한다.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도 악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우주를 창조한 신을 악으로 규정한다. 구원은 믿음이나 행동이 아니라 이들에게만 특별히 계시된 ‘그노시스’라고 불리는 비밀지식이다.
<유다복음서>를 이해하는 열쇠는 ‘그노시스’라는 개념의 이해에서 시작한다. 예수는 육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다. 영적인 예수는 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활할 필요도 없다. 영적인 예수는 유다에게 인간의 육체에 감금되어 있는 영적인 그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여 유다는 예수의 요구를 따랐을 뿐이다.
<유다복음서>는 지난 2천 년 동안 배신의 상징이었던 유다를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일 뿐만 아니라 예수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해한 유일한 제자로 묘사한다. 유다의 평가보다 더 충격적 내용은 예수에 대한 묘사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는 진실하고 연민에 넘치는 인간이다.
그러나 <유다복음서>의 예수는 제자를 무시하고 창피를 주는 농담을 일삼는다. 예수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세 번이나 비웃는다.
첫 번째 사건은 제자들이 정성을 다해 유월절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가 웃는다. 신실한 의례행위를 선생으로서 격려하기 위해 웃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비꼬며 웃는다. 기분이 상한 제자들은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행해야 할 의례를 행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는 “너희들은 너희들의 신에게 예배드리고 있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당신은 그 신의 아들이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이때 예수가 정색하고 “너희들이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이 세대에 살고 있는 너희들은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는 자신과 동고동락하는 제자들을 알지 못하며, 그들은 예수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그들이 예수에게 ‘하늘나라’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예수는 다시 그들을 비웃는다. 예수는 그들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도 하늘나라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들이 할 말을 잃는다. 제자들은 예수가 이 세상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믿었다. 예수는 자신의 주장을 약간 수정한다. 소수의 인간만이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 이 소수의 인간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이다. 영지주의자란 우주 삼라만상의 원칙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소유한 인간이다.
<유다복음서>는 예수와 그 제자들의 대화와 예수의 우주창조에 관한 강의로 구성돼 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내용과 전혀 다르다. <유다복음서>의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신은 한 천사를 창조하였고 그 천사가 다른 수많은 천사를 창조한다.
거기에는 12개의 ‘이온’(‘세대’라는 의미를 지닌 시간들)과 72개의 별이 생긴다. 72개 별에는 각기 5개의 창공이 있어 모두 360개의 별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우주가 모두 ‘오염’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구는 난폭한 조물주인 네브로와 그의 멍청한 조수인 사클라스가 만든 작품이다.
이 이상한 문헌이 그리스도교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는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에 그리스도교인을 구속시킨다.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교인은 그리스도교가 종교적으로 개방되어 오늘날 삶에 깊은 성찰과 용기 있는 행동을 유발시키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다복음서>는 21세기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신의 선물이다. 다른 영지주의 문서와 함께 <유다복음서>는 고정된 교리란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교가 탄생할 때 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문헌이 존재하여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예루살렘 인근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쪽에 있는 건조한 평원서 발견된 쿰란동굴. 정통 유대인들은 이곳에 그들의 경전 토라 두루마리 사본을 숨겨 놓았다.
유다 재평가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 죄의식
<유다복음서>는 이 다양성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전달한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인물이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인정하는 수제자로 언급된다.
유다에 대한 재평가는 그리스도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억압해온 집단, 특히 사회의 약자인 여성·노인·식민지인과 같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가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왔다.
유다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유대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예수 사후에 유다는 유대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동료를 배신하고 돈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감행하는 인종의 상징이 바로 유다였다. 유다를 재발견하는 과정은 서구세계가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 죄의식을 느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유다복음서>는 성서에서 악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다를 새롭게 평가하도록 유도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다는 악당인가 아니면 희생양인가?
신약성서에서 유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점점 심해졌다. 네 복음서 중 가장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요한은 유다를 금전과 관계된 인물로 묘사하면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은 공동경비를 훔치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기원전 63년 로마가 유대를 점령했을 때, 로마의 통치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의 제자와 추종자는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학수고대하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라고 믿었다. 로마인이 유대를 점령하고 100년이 지난 기원후 66년부터 73년까지 로마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제국은 유대인의 반란을 강하게 진압했고, 기원전 522년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재건됐던 예루살렘을 다시 파괴했다. 예루살렘은 유대종교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유대 행정과 법률 그리고 유대 랍비문헌의 보관창고였다.
당시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이들의 영적이며 정신적인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유대인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인 토라 두루마리 사본과 이마와 손목에 차던 성구함을 사해 근처 동굴에 숨겨놓았다. 이것을 ‘사해사본’ 혹은 ‘쿰란사본’이라 부른다.
정통 유대인으로부터 무시당했던 예수공동체 사람들은 자신들을 유대인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로마인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자신을 유대교와 구분된 ‘로마 종교’의 하나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대인과는 다른 새로운 경전이며 신의 새로운 약속이자 증언인 <신약성서>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인 경전을 더 이상 ‘토라’라고 부르지 않고 ‘오래된 약속’ 즉 <구약성서>라고 불렀다.
1세기에 들어와 유대인들의 경전인 토라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의 약속 성취에 대한 오래된 약속인 ‘구약’이 되었으며 구약성서는 예수의 탄생, 가르침,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을 예언하는 증거자료로 전락했다.
구약성서의 예언은 신약성서에서 완성되었다. 예수공동체가 유대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는 일생을 충실한 유대인으로 살았고 예수의 제자들도 모두 유대인이었는데, 어떻게 이들은 유대인과 자신을 구분하였을까?
예수공동체가 유대공동체와 자신을 구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유다이다. 그는 이 두 공동체를 분리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2세기 소아시아 프리기아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파피아스는 유다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유다는 무시무시한 불신앙의 살아 있는 표상이다. 그는 육체를 입고 세상에 와 마차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공간에서조차 걸을 수 없다. 그의 눈 주위는 퉁퉁 부어 의사조차 돋보기를 가지고도 눈을 볼 수 없다. 그의 성기는 창피할 정도로 크고 흉측하며 그것을 통해 온 몸으로 고름과 벌레들을 내보낸다.”
그리스도교는 2세기에 이미 유다를 유대교와 일치시켜 반유대주의를 시작했다.
반유대주의의 촉매가 된 유다
2011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철로 위에 놓인 추모화.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는 나치시대에 극에 이른 유럽의 반유대주의에 빌미를 준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히에로니무스(기원후 345∼419년)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로마제국에 통치이념을 제공한 라틴어 성서 <불가타>를 완성한 인물이다.
유다를 유대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하면서 “유다는 돈을 좋아하여 예수를 배신하였다”고 설교하였다.
유대인들이 수전노라는 잘못된 전통이 심어지기 시작된 것이다. 1260년 제노바의 대주교 야코부스가 저술한 〈황금 전설〉에 의하면 유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 중세 화가들은 그를 백합과 같은 백인 예수와 비교되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반유대주의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다. 그리스도 감성을 지닌 유럽인들에게 유다의 이미지는 나치가 유대인 인종청소를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국작가이며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딸과 결혼한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1899년 <19세기의 기초들>에서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대 사회에 갈릴리에는 이주해온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예수는 바로 이 이민자의 자손이며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 1940년 나치독일은 독일 국내와 점령지에서의 반유대주의를 고양시킬 목적으로 선전부장관 괴벨스의 기획 하에 <유대인 쥐스>라는 영화를 제작한다. 18세기 뷔템베르크 공작의 재정고문인 유대인 쥐스 오펜하이머가 돈과 계략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다 결국 처형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945년 종전 때까지 2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반유대주의를 심화시켰다.
이 영화 속에서 예수는 기드온 골짜기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에 유다가 사람들을 데리고 등장했다. 그 유다는 로마 군인 한 떼와, 또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이 보낸 성전 경비병을 데려왔다. 어두운 밤에 예수가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유다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다가간다. 그러자 예수는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라고 말한다.
예수가 세상에 보여줄 연민이라는 가치를 가장 충격적이며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악마가 유다의 생각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유다복음서>의 주장처럼 예수의 위대한 마지막 길을 밝혀준 이가 유다는 아니었는지? 단테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 유다와 브루투스가 사탄에게 비참하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신곡>의 ‘지옥편’에 묘사했다. 그런 ‘반(反)유다’ 감정이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을 초래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발견된 <유다복음서>를 통해 유다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조망하는 작업도 가치 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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