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잡편) 어부 1 -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
공자가 우거진 숲 속을 가다가 살구나무가 있는 높은 단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타던 곡이 반도 끝나기 전에 한 어부가 배에서 내려왔다. 수염과 눈썹은 새하얗고 머리칼을 풀어 헤친 채 소매를 휘저으며 강가의 둔덕으로 올라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괸 채 듣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자공과 자로 두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공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어부가 물었다.
“성씨가 무엇입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성은 공씨입니다.”
어부가 물었다.
“공씨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자로가 대답하기 전에 자공이 먼저 대답을 했다.
“공씨는 본성이 충성과 믿음을 지키고 있으며, 몸은 어짊과 의로움을 실행하고, 예의와 음악을 꾸며 놓고, 인륜을 정해 놓았습니다. 위로는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공씨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부가 다시 물었다.
“그는 영토를 가지고 있는 임금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럼 제후와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자 어부는 웃으며 되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어진 것이 어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몸은 화를 면하지 못하겠구나.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아아! 그는 도에서 멀리도 떨어져 있구나!”
♣ 장자(잡편) 어부 2 - 공자 어부에게 가르침을 청하다
자공이 돌아와 공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공자는 거문고를 밀쳐놓고 일어나 말했다.
“그는 성인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뒤쫓아 못 가에 이르니 어부는 막 삿대를 집고 배를 띄우려는 참이었다. 공자를 돌아보고는 몸을 돌려 그를 향해 마주섰다. 공자는 뒷걸음질쳐 두 번 절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부가 물었다.
“내게 무슨 볼 일이 있으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조금 전에 선생님께서 채 말씀을 다 안 해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저는 어리석어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을 모시고 아랫자리에 앉아,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제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허허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는군요.”
공자가 두 번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우기를 좋아하여 이제 예순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가르침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히 마음을 비우고 선생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 장자(잡편) 어부 3 -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어부가 말했다.
“같은 종류 것들끼리 서로 어울리고, 같은 종류의 소리들끼리 서로 화응하는 것이 본래 천지자연의 도리입니다, 내가 터득한 대도는 놓아두고 그대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대가 하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천자, 제후, 대부, 서민 이 네 가지 인간이 스스로 제 위치에 바르게 서는 것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인간이 제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그보다 큰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벼슬아치는 그 직무를 수행하고, 사람들은 자기 일에 편히 머물고 있으며, 위아래가 서로 넘보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밭이 황폐하고, 집이 새며,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세금을 제 때 물지 못하고, 처와 첩들이 화목하지 못하며 어른과 아이간에 질서가 없는 것은 서민의 걱정입니다.
임무를 감당할 능력이 없고, 관청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며, 행동이 청렴하지 못하고, 부하관원들이 일을 게을리 하며, 훌륭한 공적도 올리지 못하고, 벼슬과 녹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조정엔 충신이 없고, 국가는 혼란하며, 장인들의 기술은 보잘 것 없고, 조정에 바치는 공물은 좋은 것이 없으며, 봄과 가을의 조근에는 남보다 뒤지고, 천자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제후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음양이 조화되지 않고, 추위와 더위가 제철에 맞지 않아 여러 가지 사물들이 그로 인해 손상되고, 제후들이 난리를 일으켜 마음대로 서로를 침략하여 백성들을 해치며, 예악이 절도에 맞지 않고, 재정이 궁핍해지고, 인륜이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음란해지는 것은 천자나 그를 보좌하는 재상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지금 그대는 위로는 임금이나 재상의 권력도 없고, 아래로는 대신이나 관리 같은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멋대로 예악을 꾸미고, 인륜을 정하여 여러 백성들을 교화하고 있으니 지나치게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장자(잡편) 어부 4 - 여덟 가지 흠과 네 가지 환란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흠이 있고, 일에는 네 가지 환란이 있으니 그것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닌데도 그 일을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합니다.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도 진언하는 것을 간사함이라 합니다. 남의 뜻에 맞도록 말을 이끌어 가는 것을 아첨이라 합니다. 남의 악한 점을 얘기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해라 합니다. 사귀던 사람을 떨어지게 하고 친한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을 해침이라 합니다. 남을 칭찬하고 속임으로써 남을 악에 떨어뜨리는 것을 간악함이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두 가지 다 받아들이며 얼굴빛을 적응시키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음험함이라 합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 흠이란 것은 밖으로는 사람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자들은 그를 벗하지 않고, 현명한 임금은 그를 신하로 삼지 않습니다.
네 가지 환란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큰일을 해내기 좋아하고 변경을 잘시켜 일정한 것들까지 바꾸며 공명을 얻으려 애쓰는 것을 참람함이라 말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일을 멋대로 하며 남의 것을 침범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탐욕함이라 말합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그 나쁜 짓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포악함이라 말합니다. 남이 자기에게 찬성을 하면 괜찮지만 자기에게 찬성을 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이라도 좋지 않다 하는 것을 횡포함이라 말합니다.
이상이 네 가지 환란입니다. 이 여덟 가지 흠을 버리고 네 가지 환란을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장자(잡편) 어부 5 - 발자국을 없애려고 달려가는 사람
공자는 슬픈 듯이 탄식하며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말했다.
“저는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고, 위나라에서는 추방당하고,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넘겨 저를 죽이려 했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겠는데도 이런 네 가지 고통을 겪었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어부는 슬픈 듯이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선생은 정말 깨우칠 줄을 모르시는군요.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그것들로부터 달아나려 했는데, 발을 빨리 움직일 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졌고,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도 그 자신은 아직도 느리게 뛰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질주하다가 결국에는 지쳐 죽고 말았다 합니다. 그늘 속에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리석음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짊과 의로움의 뜻을 자세히 알고 있고, 사리가 같고 다른 한계를 잘 살피고 있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변화를 잘 관찰하고 있고, 받고 주는 정도를 적절히 할 줄 알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고, 기쁨과 노여움의 절도를 조화시킬 줄 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화를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삼가 닦고 그 진실함을 신중히 지켜 명예 같은 외물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아무런 환란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몸을 닦지 않고서 남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으니 이것은 사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장자(잡편) 어부 6 - 자연과 진실함이 귀중한 이유
공자가 슬픈 듯이 말했다.
“어떤 것을 진실함이라 하는 것입니까?”
어부가 말했다.
“진실한 것이란 정성이 지극한 것입니다. 정성 되지 못하면 남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곡하는 사람은 비록 슬픈 척 해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화난 척하는 사람은 비록 엄하게 굴어도 위압을 주지 못합니다. 억지로 친한 척하는 사람은 비록 웃는다 해도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슬프게 느껴집니다. 진실로 노한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압이 느껴집니다.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진실함이 속마음에 있는 사람은 정신이 밖으로 발동됩니다. 이것이 진실함이 귀중한 까닭입니다.
그것을 인간 생활의 원리에 적용시키면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자애롭고 효성스럽게 되며,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충성스럽고 곧게 되며, 술을 마심에 있어서는 기쁘고 즐겁게 되며, 상을 당하면 슬프고 애통하게 됩니다.
충성스럽고 곧은 것은 공로가 위주가 되며, 술을 마시는 것은 즐거움이 위주가 되며, 상을 치르는 것은 슬픔이 위주가 되며,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님 마음에 드는 것이 위주가 됩니다.
일의 공로를 훌륭하게 이룩하는 데 있어서는 그 방법이 일정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을 섬기어 마음에 들도록 해드리는 데에 있어서는 방법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술을 마심으로써 즐기는 데 있어서는 술잔을 이것저것 고를 것이 없습니다. 상을 당하여 슬퍼함에 있어서는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예의라는 것은 세속적인 행동의 기준입니다. 진실함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자연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진실함을 귀중히 여기며 세속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와 반대입니다. 하늘을 법도로 삼지 못하고 사람의 일에 얽매여 고생을 합니다. 진실함을 귀중히 할 줄 모르고 세상일에 따라 세속과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족하지 못합니다.
선생이 일찍이 인위적인 학문에 빠져 위대한 도에 대해 늦게 듣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 장자(잡편) 어부 7 - 어울려 갈 만한 사람과 어울려 간다
공자가 다시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말했다.
“지금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제자처럼 대하시며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댁이 어디십니까. 선생님을 따라가 학업을 닦아 위대한 도를 완전히 배우고 싶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내가 듣기에 함께 갈 만한 사람과는 어울려 오묘한 도에 이르도록 가도 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자는 그런 도를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함께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몸에 아무런 재난이 없게 될 것입니다. 더 노력하십시오. 나는 이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만 작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삿대질하여 배를 물에 띄우고 갈대밭 사이로 사라졌다.
안회가 수레를 돌리고 자로는 손잡이 줄을 공자에게 주었으나, 공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떠난 배가 남긴 물결이 잠잠해지고 삿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다음에야 수레에 올랐다.
♣ 장자(잡편) 어부 8 - 도에 통한 사람이기에 공경을 한다
자로가 수레에 다가서면서 물었다.
“제가 선생님을 모신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사람을 만나 오늘처럼 상대방을 존경하는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만승의 천자나, 천승의 제후들도 선생님을 만날 때는 언제나 뜰에 자리를 함께 마련하고 대등한 예로 대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도 오만한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지금 어부는 삿대를 짚은 채 마주 서 있는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꺾으며 두 번 절하고서야 대답을 하셨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 저희들은 선생님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부에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공자는 수레 앞턱 나무에 엎드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자로를 깨우쳐 주기는 참 어렵구나. 예의에 몰두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비루한 마음이 아직도 다 없어지지 않고 있구나. 어른을 만나서 공경하지 않는 것은 실례다. 현명한 이를 보고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짊이 아니다. 그가 지극히 어진 이가 아니라면 남을 굴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남을 굴복시킨다 해도 정성 되지 않았다면 그의 진실함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함이 통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자신을 손상케 되는 것이다.
애석하다. 사람에게 있어 어질지 못한 것처럼 화가 크게 미치는 것이 없는데도 자로는 홀로 멋대로 행동하는구나. 또한 도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이 이것을 잃으면 죽고, 이것을 얻으면 산다.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이것을 거스르면 실패를 하고, 이것에 순응하면 성공을 한다. 그러므로 도의 존재에 대하여는 성인들도 존중하는 것이다. 저 어부도 도에 있어서는 터득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