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성자도 될 수 있다."
법정스님의 오두막편지 뒷표지에
쓰여있는 이 말이
한 몇 일간 내내 마음속에 은은히 감돌고 있습니다.
수행자의 일상을 어쩌면 이렇게도
짧으면서도 아름다운 어구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참을 되돌아 보게 했습니다.
[입 안에는 말이 적고...]
그러고 보면 말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
하고 나서 곧장 후회되는 말들,
혹은 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뒤 허물을 느끼는 말들,
그러고 보면 참 말 많은 사람입니다.
참 실 없는 사람입니다.
숯한 말이 흐른 뒤에는
늘상 그렇듯 공허함과 후회가 뒤따릅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마구 끄집어 내면 후련해야 하는데
아무리 끄집어 내어 보아도 남는 것은 허한 마음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말로 인해 후회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후회하지만 그놈의 습 때문인지
사람 앞에 서면 또 한없이 늘어 놓게 됩니다.
그러고는 또 한번 '아차' 하는 마음이 들지만 늦었습니다.
그러길 평생 반복하다가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말에는 많은 허물이 따릅니다.
그저 그런 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은
별 일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침묵하지 않고 내뱉는 그것만으로도 작은 허물일 것입니다.
침묵하는 자는 복의 밭을 가꾸는 자입니다.
내뱉어 허물을 짓기 보다
아름다운 침묵이 내 삶의 잔잔한 속뜰이 될 수 있길
오늘은 부처님 전에 고이 기도 드려 봅니다.
[마음에 일이 적고...]
무엇보다도 이 말이 저의 가슴 속에
계속해서 은은하게 맴돌며
그동안의 일 많았던 일상을 채찍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짧았던 그간의 삶에는
온통 정신없던 일 뿐이었던 듯 싶습니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일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한 고개 넘어섰다 싶으면 의례히 또 다른 일이 생기고,
아니 생겼다기 보다는 만들어 낸 것이 많았습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이런 것 같이 느껴집니다.
온통 일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일 없는 것이야 세상 사람 누구나 바라는 바 인데
누군 일이 있고 싶어 있겠느냐 싶겠지만,
사실 '일 있음'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일 없음'에 머무는 것입니다.
조용히 아무것도 안 하고 머물 시간이 주어 지면
사람들은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무언가를 하려고 듭니다.
우린 '일 없음'에 익숙치 않습니다.
일 없는 날에도 마음에서는 한가득 일을 품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도 온전히 쉬질 못하고
복잡한 일을 잔뜩 마음에 품어 마음에서 일을 하며 여가를 보냅니다.
그러니 영혼이 진실로 쉴 수 있는 날이 드뭅니다.
우리의 영혼은 '일 없음'을 필요로 합니다.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살면
우리의 마음엔 무한 에너지가 공급됩니다.
모든 일을 다 하면서도 '일 없이' 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이란 이 긴 기간 가운데
일 없을 날이야 만든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꾸 일을 만들어 내고 삽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만든 일을 가지고 스스로 괴롭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일이 없어야 좋겠다고 하지만
모든 일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본래 일이란 있지도 않습니다.
'작의' '의도'를 짓지 않으면 자연히 일은 사라지게 됩니다.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마음에 일 없는 한가한 수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마음에 일이 적어야 한다는 말을
고이 가슴 한 켠에 화두로 삼을 일입니다.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말을 되새기며
나의 먹는 일상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허겁지겁, 게걸스레 먹고 또 먹고...
그러고 보니 생활의 반은 먹는 마음으로 삽니다.
뱃속 채우는 일
이 가장 원초적인 일에
참 많이도 마음을 쓰며 살아갑니다.
'최소한의 필요'에 의한 음식이면
수행자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정도는 접어두고라도
하루 세끼 밥때를 다 챙겨 먹고도 모자라
빵도 먹고, 음료수도 먹고, 군것질에
'먹고싶은' 마음에 먹는 것이 참 많습니다.
'먹고 싶은 마음'에 먹기 보다는
'먹어야 하는 마음'에 먹고 살아야 합니다.
몸뚱이 이끌고 갈 만큼만 먹고 살면 되는데
참 생각해 보면
먹는 문제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 옛 사람의 조언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맑게 다스리라는
참으로 맑지만 무서운 수행자의 경책입니다.
뱃속에 밥이 적어야
신업(身業), 몸뚱이 착 다스릴 수 있고,
입 안에 말이 적어야
구업(口業) 짓는 일을 줄일 수 있으며,
마음에 일이 적어야
신업(身業)을 맑혀 나갈 수 있는 노릇입니다.
입과 마음과 뱃속을 들여다 보는 하루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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