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와 염색체 이야기
인류 사회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새로운 과학적 사고에 의해 큰 변화를 이루며 발전해왔다. 1953년 4월 25일에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린 왓슨(Watson)과 크릭(Crick)의 DNA 분자의 이중나선 구조도 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DNA 혁명’ 또는 ‘나선 혁명’이라고도 부르는 이 발견에 의해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세기가 생명과학의 장으로 열리기 시작했으며, DNA를 인공적으로 다루는 생명공학(生命工學) 기술이 개발되어 우리 실생활에 널리 이용되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2013년에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열렸다.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세포를 유전자들이 작동하고 있는 화학공장에 비유해 본다면, 우리 몸은 그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보관하며 이용하는 창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에서처럼 세포 핵 안의 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는 DNA는 복제된 다음 생식과 발생의 과정을 거쳐 후대로 전달되어 발현되는데, 이 발현의 주체도 바로 유전자다. 유전자가 ‘갑’이라면 우리 몸은 ‘을’인 셈이다.
생명의 본질인 DNA의 구조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고 있는 DNA는 염색체에 어떻게 간직되어 있는 것일까?
DNA 발견 60주년 기념포스터
유전물질에 대한 논쟁
1869년에 세포의 핵으로부터 질소와 인을 함유하고 있는 화합물인 ‘뉴클레인(nuclein)’이 추출되었는데, 이 물질이 산성을 띠고 있어 ‘핵산(核酸, nucleic acid)’이라고 명명되었다. 당시 학계에서는 유전정보가 핵산이 아니라 핵의 염색체(染色體, chromosome)에 들어있는 단백질에 간직되어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핵산은 4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인데 비해, 단백질은 20종류의 아미노산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유전형질의 유사성과 다양성의 발현에는 단백질이 적합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핵산은 단지 단백질을 염색체에 고정시키는 물질로 간주되었었다.
1900년에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되며 과학자들의 관심이 멘델이 예측했던 유전물질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1903년 서튼(Sutton)은 유전물질이 세포 내 핵의 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다는 ‘염색체 이론’을 제안하였고, 이는 모건(Morgan)의 초파리 유전 실험을 통해 완전하게 증명되었다.
1909년에 요한센(Johannsen)에 의해 유전자(遺傳子; gene)가 제안되었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은 1928년에 그리피스(Griffith)가 유전자의 본질이 DNA라는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고, 1944년에 에이버리(Avery) 등의 추가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물질일 것이라는 생각이 학계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1952년 허시(Hershey)와 체이스(Chase)에 의한 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se,파지라고도 부름)의 실험으로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들은 파지의 단백질을 방사성 동위원소 S35로, DNA는 P32로 표지해 감염시켰을 때, 다음 세대에서 동위원소가 단백질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DNA에서만 발견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유전물질이 DNA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했다.
생명과학의 오랜 관심사였던 유전자의 정체는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고, DNA에서 RNA로 전달되는 유전정보를 통해 단백질이 만들어져 형질이 발현된다는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확립함으로써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DNA의 구조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탄수화물인 당(糖, sugar)과 인산(燐酸, phosphate)으로 이루어진 골격에 질소를 지닌 화합물인 염기(鹽基, base)가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가지의 물질이 결합된 구조는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고 부르며, 이들이 길게 연결된 사슬이 폴리뉴클레오티드(polynucleotide)이다<그림 1>.
5개의 탄소원자로 이루어진 당은 리보스(ribose)와 리보스에서 2번 탄소에 결합된 -OH기에서 산소가 빠져나간 디옥시리보스(deoxyribose)로 구분이 된다. 그래서 디옥시리보스로 연결된 핵산은 DNA(디옥시리보핵산; Deoxyribo Nucleic Acid), 리보스로 연결된 핵산은 RNA(리보핵산; Ribo Nucleic Acid)라고 부른다.
DNA를 이루는 염기는 퓨린(purine) 계열인 아데닌(A)과 구아닌(G) 그리고 피리미딘(pyrimidine) 계열의 티민(T)과 시토신(C)의 4종류로 구분이 되며, 이들의 배열에 의해 생물의 형질을 발현하는 유전암호가 프로그래밍된다. 두 가닥의 폴리뉴클레오티드가 만나 DNA 구조를 이룰 때 A는 T와 G는 C와 수소결합을 통해 서로 손을
잡듯 결합하여 이중나선 구조를 형성한다<그림 2>.
1. 폴리뉴클레오티드의 구조. P는 인산기
2.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 염기쌍(A-T, G-C)
DNA의 염기 배열이 바로 생명의 본질인 유전정보이기 때문에 염기쌍의 배열에 따라 유전정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중나선 구조의 핵심이다. 사람의 경우 하나의 핵에 들어있는 DNA의 염기쌍 수는 약 30억 개 정도 된다. 이들 중 수백에서 수만 개에 이르는 염기서열이 단위가 되어 피부나 눈동자의 색깔과 같은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정보의 기능적 단위로 작용한다.
DNA는 염색체에 어떻게 들어있는 것일까?
바이러스나 일부 미생물을 제외한 모든 생물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수는 60조 개나 되며, 모든 세포의 핵 안에는 46개(2n=46)의 염색체가 들어 있다. 한 세포의 염색체에 들어있는 DNA 분자를 일직선으로 펴면 그 길이는 약 1.8m 정도가 된다. 따라서 60조 개의 세포 모두에서 DNA 분자를 분리해 연결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연결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한 상상을 초월하는 길이가 된다.
염색체는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DNA라는 가늘고 기다란 실이 감긴 실 뭉치에 비유해볼 수 있다. 이중가닥 DNA는 지름이 2㎚(1㎚=10억분의 1m)로 지름이 100㎛(1㎛=100만분의 1m) 정도인 머리카락 두께의 5만분의 1에 해당하는 매우 가느다란 가닥이다.
이렇게 가는 DNA 가닥은 히스톤(histone) 단백질에 감겨 지름이 11㎚ 정도 되는 염주 모양의 뉴클레오솜(nucleosome)을 형성하고, 뉴클레오솜들이 뭉쳐 지름이 30㎚ 정도 되는 원통형 섬유 다발을 형성한다.
이 섬유들은 응축되어 지름 300㎚의 염색사(染色絲,chromonema)라고 부르는 끈을 형성하고, 이들이 다시 뭉쳐 700㎚ 굵기의 실 뭉치에 해당하는 염색분체를 이룬다. 그리고 한 쌍의 자매 염색분체가 결합하여 하나의 염색체를 이루게 된다<그림 3>.
3. 염색체의 구조(DNA 이중나선 →뉴클레오솜 → 염색사 → 염색체)
이런 과정을 거쳐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1.8m나 되는 긴가닥의 DNA가 현미경으로나 관찰이 가능한 좁은 공간의 세포핵안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이다.
복제된 두 가닥의 DNA를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Transmission electron micrograph of human DNA from a HeLa cell, illustrating replication forks and the associated replication bubble.
DNA 복제 이야기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60조 개나 되는 세포들의 시원세포(始原細胞)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지는 수정란이다. 수정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한 단순한 하나의 세포로 보이지만, 수정란의 핵은 부모의 모든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23쌍의 염색체(2n=46)를 저장하고 있는 보물창고이다.
수정란은 세포분열을 통해 2세포, 4세포, 8세포...로 빠르게 배가되어 배반포(胚盤胞)를 이룬다. 그리고 줄기세포로 이루어진 배반포 세포들에서 분화가 일어나 조직과 기관이 형성되며, 사람의 모습을 갖춘 태아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모세포(mother cell)인 수정란이 분열해 같은 양의 유전정보(DNA)를 지닌 두 개의 딸세포(daughter cells)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분열을 하기 전에 핵 내에 간직되어 있는 DNA가 정확하게 배가(倍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DNA 양이 반감되어 동일한 양의 유전정보가 후손에게 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세포에 간직되어 있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유전정보가 세포분열 전에 정확하게 배가되는 현상이 DNA복제(複製, duplication)이다.
생명의 영속성 유지의 기반이 되는 DNA의 복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DNA의 반보존적 복제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1953년에 왓슨(Watson)과 크릭(Crick)에 의해 밝혀졌다. 그 후 과학자들의 관심은 이중나선 DNA에 담겨있는 생명의 역사 기록이 어떻게 복제되어 후손에게 전달되는가에 집중되었다.
사람의 경우 세포 하나에 부모로부터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23쌍의 염색체(2n=46)가 들어있으며, 이들 염색체에 30억(109)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DNA가 들어있다. 이렇게 모세포에 간직되어 있는 거대한 DNA 분자가 정확하게 복제되어 딸세포로 전달되려면 고도의 정확성을 갖춘 복제 기구가 필요하다.
복제 과정에서 100만분의 1의 오류가 일어난다고 가정해 볼 때, 세포가 한 번 분열할 때 마다 3천 번의 실수가 생겨나게 되며 이런 과도한 오류는 유전자 전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DNA의 복제에 대해서는 세 가지 모형이 제안되었는데, 첫 번째 모형은 DNA 이중나선이 통째로 주형(鑄型, template)이 되어 새로운 이중나선이 만들어진다는 ‘보존적 복제 모형’이며, 두 번째 모형은 DNA 이중나선이 풀려 각각의 가닥이 주형이 되어 새로운 이중나선이 만들어진다는 ‘반보존적 복제 모형’이다.
그리고 세 번째 모형은 DNA가 작은 조각으로 잘린 다음 그 조각들이 복제되어 다시 연결된다는 ‘분산적 복제 모형’이다<그림 1>.
1. DNA 복제 모형
이 세 가지 이론 중 ‘반보존적 복제(半保存的 複製, semiconservative replication)’ 모형이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는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이 처음으로 제안한 것으로, DNA가 복제될 때 이중나선 가닥이 풀리고 각각의 가닥을 주형으로 그 가닥에 상보적인 사슬이 만들어져 두 개의 새로운 DNA 이중나선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1958년에 메셀슨(Meselson)과 스탈(Stahl)이 대장균을 대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수행한 DNA 복제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밝혀졌다.
복제의 과정
2. 이중나선 DNA 가닥의 복제 과정
DNA의 이중나선 가닥이 풀리고, 각각의 가닥을 주형으로 새로운 이중나선이 두 개 만들어지는 반보존적 복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DNA 이중나선은 두 가닥의 폴리뉴클레오티드(polynucleotide) 사슬이 아데닌(A)은 티민(T)과 구아닌(G)은 시토신(C)과 특이적 수소결합을 통해 상보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DNA 복제의 첫 단계는 이중나선 가닥이 풀려 분리되는 것이다.
이중나선의 분리는 복제원점이라고 부르는 특정 염기서열 부위에서 헬리카아제(helicase)라는 효소에 의해 DNA 가닥이 풀려 Y-모양의 복제분기점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풀린 DNA 가닥은 단일가닥 결합 단백질에 의해 안정화된다<그림 2>.
DNA의 합성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그림에서처럼 1차적으로 주형 DNA에 프라이머(primer)가 결합돼야 한다. 프라이머의 합성은 DNA 이중나선의 복제원점에서 DNA 가닥이 풀려 한 가닥으로 되면, 이 부위의 염기서열을 주형으로 몇 개의 ‘RNA 프라이머’가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결합은 프라이머 합성효소(primase)에 의해 염기결합의 상보적 원칙에 따라 A-U(아데닌과 우라실), T-A(티민과 아데닌), G-C(구아닌과 시토신), 그리고 C-G(시토신과 구아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RNA 프라이머가 합성되면 DNA 중합효소(polymerase)에 의해 RNA 프라이머 끝으로부터 주형의 염기에 상보적인 뉴클레오티드가 결합되어 선도 가닥이 합성되며 새로운 이중나선으로 신장된다.
그 실례로 상보적 원 가닥 염기서열이 TCATG와 AGTAC인 DNA 이중나선이 풀려 복제가 일어나면 TCATG에는 AGTAC 가닥이, 그리고 AGTAC에는 TCATG 가닥이 결합되며 두 개의 복제 가닥이 생성된다<그림 3>.
3. 이중나선의 원 가닥과 복제된 가닥
DNA 복제의 오류와 복구
모세포의 DNA에 간직되어 있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유전정보가 세포분열을 통해 딸세포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모세포 내에 있는 DNA가 정확하게 복제되어 두 배로 늘어나야 한다. 30억 쌍이나 되는 사람의 DNA가 복제될 때 복제되는 염기서열에 하나의 오류도 없이 복제되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세포가 DNA의 복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그만 오류도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효소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DNA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잘못 연결된 염기를 제거하고 다시 합성하는 과정이 일어나 오류가 복구된다는 것이다.
DNA 복제가 완료된 후에도 잘못 연결된 염기쌍은 특정 효소에 의해 제거되어 원 가닥에 일치하는 가닥이 만들어져 전달이 된다. 따라서 DNA 복제의 오류를 복구하는 효소에 유전적 결함이 생기면 암이나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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