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문화는 적을 위해 눈물 흘린다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들’ * 배철현 *
1. 극장
문자와 도시가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 줬다면, 극장은 인류에게 문화를 가져다 줬다. 문명은 그 기원을 추적하기 힘들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마치 밭에 씨를 뿌리는 작업처럼 시도와 좌절, 그리고 진전의 과정을 거쳐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 문화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시작된다. 문화는 한 지역의 공동체를 하나로 엮어주는 정신적인 띠다.
고대 그리스가 후대 서양 문명뿐 아니라 인류 문명에 끼친 위대한 업적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문화는 연극이다. 고대 그리스 지도자들은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리스인에게 정체성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한껏 고양시켰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한 데서 알 수 있듯, 그들에게 정치란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다. 그의 ‘인간’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은 ‘도시 거주’다. 그리스인들은 도시를 단순한 공간적 의미를 넘어 인간이 수련을 통해 획득해야 할 질서의 상징으로 여겼다.
도시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장소를 그리스어로 ‘코라(chora)’라고 한다. 코라는 흔히 ‘들판’ ‘버려진 땅’으로 번역되며, ‘이해할 수 없고, 익숙하지 않으며, 무시무시해서 혼돈 상태인 공간이자 시간’이다. 혼돈 상태의 인간에게 정체성을 줘 질서 있는 도시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의도적 행위가 바로 문화다.
다른 존재로의 부활
고대 그리스 도시 문화는 극장 문화다. 그리스는 험준한 산과 협곡의 나라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인들은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 특히 와인은 그들의 주요 생필품이자 수출품이다. 와인은 최초의 문화가 등장할 때 중요한 매개가 됐다. 마치 성서에서 노아가 홍수 이후에 와인을 만들어 마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스 비극 공연은 기원전 534년 경 처음 거행됐다. 당시 축제를 ‘디오니시아’라 했다. 이 축제를 관장하던 최초의 사제가 테스피스(Thespis)다. 그는 연극이란 장르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테스피스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의례에 참여한 합창대와 노래를 주고받아 사실상 첫 번째 배우가 됐다. 지금도 서양에서는 배우를 ‘테스피스인(Thespian)’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종교를 귀족을 중심으로 한 아폴로 축제와, 평민과 여성이 중심이 된 디오니소스 의례로 구분했다. 아폴로 축제에선 귀족들이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례를 치른 반면, 디오니소스 의례에선 민중이나 여성들이 현재의 억압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 ‘황홀경’을 경험할 목적으로 와인을 흠뻑 마신다.
3월 첫 2주 동안 거행되는 디오니시아는 디오니소스 신을 섬기는 여성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남근을 상징하는 튀르소이(thyrsoi)라는 커다란 기둥을 함께 들고 행진한 뒤, 희생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취하도록 와인을 마셨다. 디오니시아에 참여한 사람들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이야기에 맞춰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나 ‘일들과 날들(Works and Days)’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내용이었다.
이들은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부활하기 위해 동물의 가죽을 쓰곤 했다. 이는 동물의 힘을 상징적으로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다. 테스피스는 자신으로부터 탈출해 다른 상태로 들어가려는 디오니소스 종교의 엑스터시 경험을 표시하기 위해 가면을 처음으로 고안해 쓰기 시작했다. 배우는 무대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2. 비극
‘비극’이란 단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먼저 비극은 연극의 한 형식이다. 이런 의미의 비극은 인생을 정중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이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대결해 결국엔 재앙을 맞게 되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비극’은 이런 드라마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재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불행이 비극의 한 예다. 후자에서 말하는 비극엔 슬픔과 무기력함이 존재한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도시 아테네에서 상연된 연극 장르로서의 비극은 슬픔이나 불행이라는 주제를 담은 특정한 연극이라기보다는 ‘연극’ 그 자체다. 3월 말,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춘분에 맞춰 아테네의 명망 있는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창작한 연극이 이 축제기간에 상연되도록 디오니시아를 주관하는 관리에게 경쟁적으로 제출한다. 이 관리를 그리스어로 ‘아르콘(arkon)’이라고 불렀다.
半人半獸의 신 사티로스
반인반수의 신 사티로스
그는 경쟁적으로 지원한 수많은 극작가 중 세 극작가의 작품을 선별해 모든 아테네 시민이 볼 수 있도록 무대에 올린다. 세 명의 극작가는 각각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사티로스극’, 모두 네 편의 연극 작품을 창작해 제출해야 한다. 세 편의 비극 작품을 ‘트리올로지(triology)’라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렉스’라는 비극은 다른 두 편과 함께 무대에 오른 트리올로지의 한 편이다.
네 번째 창작물인 사티로스극은 앞서 공연된 세 편의 비극과 연관된 관객들이 아는 신화에서 주인공을 끌어온, 길이가 짧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연극이다. 사티로스는 반인반수의 그리스 신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사티로스극은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의 ‘키클로프스’ 뿐이라 그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비극이란 뜻의 ‘tragedy’는 고대 그리스어 ‘트라고디아(tragodia)’에서 유래했다. 트라고디아는 ‘염소-노래’라는 의미다. 일부에선 비극 경연 우승자에게 염소를 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아테네처럼 문화적으로 고양된 사회에서 최고의 작곡가이자 문필가에게 염소 한 마리를 상으로 줬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다. 최근 학자들은 비극의 필수 등장인물인 합창대의 목소리가 염소 울음소리와 같은 불협화음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합창대는 대부분 변성기 청소년들이다. 이들이 높은 음과 낮은 음을 내려고 애쓰는 소리가 염소 울음소리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이 연극들은 아테네 아르코폴리스 근처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됐다. 극장은 오늘날 야구경기장처럼 생겼다. 거기엔 배우가 연기하거나 합창단이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오케스트라, 배우들이 등장하는 무대, 그리고 청중이 앉는 객석이 있다. 배우들은 무대와 붙은 건물들 앞의 반원(半圓) 공간인 오케스트라석에서 공연했다. 건물들은 ‘스케네(skene)’라고 불렸는데, 배우들이 의상을 바꿔 입거나 장면들 사이에 쉬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영화의 장면을 이르는 ‘신(scene)’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오케스트라석은 세 면으로 조성된 관객석에 둘러싸였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위에서 아래로 관조하게 된다.
3. 그리스 3대 비극작가
그리스 비극은 3편으로 돼 있어 관객은 하루 종일 연극을 관람하게 된다. 선발된 네 명의 극작가가 자신들의 비극과 사티로스극을 모두 올려 경쟁하면, 아르콘이 지정한 심사위원들이 우승자를 정한다.
초기 극작가들의 연극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후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언급된 원칙으로 아직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첫째, 연극은 한 주제만을 다뤄야 한다. 한 사건을 언급하고 해석하면서 그것을 관통하는 한 주제가 전체 연극의 핵심이다. 둘째, 연극은 한 장소에서 상연돼야 한다. 후대 극작가들은 이 원칙을 어기고 제2, 제3의 장소를 사용하기도 했다. 셋째, 연극은 하루 안에 일어난 사건을 다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3가지 원칙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의 르네상스 시대에 진입하면서 조금씩 수정됐다고 기록한다. 특히 위대한 그리스 비극 시대를 연 아이스킬로스는 두 번째 배우를 등장시켜 합창단 노래의 역할을 줄이고 배우가 다른 배우와 나누는 대화를 강조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 아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다. 그는 두 번째 배우를 등장시켜 연극이 단순한 노래를 넘어 두 배우 간의 대화와 갈등을 부각하는 ‘드라마’라는 형식을 도입한다. 그는 484년 디오니소스 축제 비극 공연에서 우승했다. 80편의 연극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까지 남은 작품은 7개뿐이다. 7개 작품 중 1개의 주제를 가지고 3편이 이어진 트리올로지가 남아 있다. 아테네가 폭력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평화와 용서, 질서의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한 ‘오레스테이아’가 그것이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68년에 아이스킬로스와 경쟁해 이겼다. 그는 세 번째 배우를 등장시켜 심리적으로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드라마 형식을 고안해냈다. 아이스킬로스가 공적인 주제를 다뤘다면 소포클레스는 개인에 집중했다. 주제는 복잡해지고 인물들 간의 관계가 비극의 핵심이 됐다. 그도 120편 정도의 연극을 남겼지만 지금은 7개만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3부작을 최고의 비극으로 꼽았다.
또 한 사람의 위대한 비극작가는 에우리피데스다. 그는 19편의 비극을 남겼다. 다른 두 명의 비극작가와는 달리 신들을 인간이 가진 사랑과 열정과 같은 감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했다. 등장인물의 심리적 측면을 다뤄 3대 비극작가 중 가장 근대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92편의 작품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18편이다.
4. 군인 아이스킬로스
아이스킬로스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서정적 시라는 장르를 개척함으로써 후대 유럽 문학의 원조가 됐을 뿐 아니라, 후세가 능가하기 힘든 걸작을 남겼다. 그리스 비극이란 장르를 만든 아이스킬로스는 처음부터 극작가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다른 철학가나 역사가들이 모두 그렇듯 그도 군인이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엘레우시스에서 태어났다. 엘레우시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비밀스러운 의례가 1년에 두 번씩 거행되던 도시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연극에 대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활동한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라는 조그만 도시가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델로스 동맹으로 하나가 돼 ‘슈퍼 파워’ 페르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세계의 맹주로 등장한 시기다. 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쟁에 참전해 다리우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인들과 싸웠다. 이 전쟁에서 아이스킬로스의 동생 퀴네게리우스(Cynegeirus)가 전사했다. 그는 10년 후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침공한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 해전에도 참전했다.
그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여겼고 ‘명예’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말년에 이탈리아 시실리아 섬의 남부 도시 젤라에서 거주하다 일생을 마쳤다. 그의 묘비명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이스킬로스, 아테네 사람, 에우포리온의 아들이 죽었다. 겔라의 옥수수밭에 있는 이 무덤은 그를 덮고 있다. 마라톤의 거룩한 들판이 그의 영광스러운 용맹을 말할 수 있고, 긴 머리를 한 페르시아인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
5.최초의 비극 ‘페르시아인들’
묘비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는 군인으로 살았고 군인으로 죽었다.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 군인들이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를 때도 현장에 있었다.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은 인류 최초의 비극 작품이다. 이는 살라미스 전투에 대한 유일한 목격담이다. ‘페르시아인들’ 249~531행에 실제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담겼다.
‘페르시아인들’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그리스 비극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 혹은 헤시오도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화들을 다뤘다.
이 비극은 기원전 472년 연중행사인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아테네 시민들은 8년 전 자신들이 참전한 살라미스 전투를 상기하며 이 비극을 관람했다. 그들은 18년 전 마라톤 들판에서 치른 전쟁도 기억했다. 연극을 보러 온 아테네 시민들은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전쟁 참전용사들이었다. 몇몇은 자신들이 전쟁을 치를 때 착용한 갑옷이나 방패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맨 앞에는 ‘페르시아인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모든 비용을 책임진 젊은 페리클레스(Pericles)와 50대 중반이 된 아이스킬로스가 앉아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기적적으로 승리한 전투 장면이 나오기만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연극의 첫 장면은 마라톤 평원이나 살라미스 해협이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Susa)다. 심지어 그리스인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때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전쟁의 결과가 전해지지 않은 페르시아 궁궐이다. 페르시아 원로들은 합창대가 돼 ‘다리우스 대왕이 인류 최초의 제국을 세웠지만 마라톤 전쟁에서 그리스인들을 정복할 수 없었다’고 덤덤하게 노래한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이 아버지와 같이 위대한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스 정복전쟁을 떠났다.
다리우스의 아내이자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인 아토사가 등장해 원로들에게 자신의 악몽을 말한다. 꿈에 크세르크세스가, 한쪽은 그리스 말이, 다른 쪽은 페르시아 말이 이끄는 전차를 몰다 그리스 말이 날뛰어 전차에 깔렸다. 그 장면을 죽은 다리우스도 목격했다. 그리고 검은 매가 독수리를 공격했다. 아토사는 이 꿈이 나쁜 징조임을 직감한다.
그때 전쟁에 참여한 페르시아 전령이 돌아와 페르시아가 전쟁에서 졌고 크세르크세스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전한다. 그 순간 다리우스가 유령으로 등장해 페르시아가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를 침공하러 떠난 크세르크세스가 소아시아와 서유럽 사이의 ‘거룩한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기 위한 의례를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리우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오만에 빠져 ‘장님’이 됐고, 그 결과 스스로 비극적인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는 ‘복수’를 당했다고 말한다. 마침내 크세르크세스가 돌아왔다. 자신이 오만해 그리스인들을 과소평가했고, 수많은 페르시아 귀족의 시체를 살라미스 해협에 버리고 왔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토사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라고 말한다. 크세르크세스는 용서를 빌면서 흐느껴 울었다.
비극의 시작은 ‘오만’
연극을 관람하던 아테네 시민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몇몇은 아토사와 크세르크세스가 울자 함께 흐느껴 울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서양 문화의 탄생을 의미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위대한 아테네는 적어도 이런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문화는 적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는. 아테네 시민들은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만이 비극의 시작이라는 점을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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