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
― 인간 정신의 깊은 바다를 연 한 의사의 삶과 사상 ―
전 철
1. 칼 융과의 만남
저 창 밖의 보름달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겨울밤에 찬바람이 잔잔히 흐르는 들녘에 나와 저 달을 향해 힘껏 후- 하고 따스한 입김을 보내주 었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미한 잔상으로 기억 언저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삶은 그 어린 시절의 따스한 세계를 훨씬 이탈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친화력을 상실해 버린 느낌이다. 이제 나는 융을 만나려 한다. 융과 더불어 저 어두운 그늘에 고여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건져내는 모험을 감행하려 한다. 그리하여 인간 정신의 깊은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나는 1992년 대학 도서관에서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1]을 통하여 융을 처음 만났다. 이 책은 융의 방대한 저서와 깊은 사상을 독자들에게 쉽게 전하기 위하여 융과 제자들이 집필한 책이다. 지금 생각컨데, 그 책에 대한 첫 인상은 여느 책과는 조금은 달랐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책은 다양한 장면을 담은 사진과 그림과 미술작품, 심지어는 만화책에 나올 법한 낙서들 덕분인지, 글자가 정갈하게 배열된 여느 책과는 달리 매우 현란한 잡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앞 페이지에 있는 융의 시선은 나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어디에서부터 홀연히 다가왔는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융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모든 만남은 이렇듯 우연한 만남일까. 그 때부터 지금 까지 융과의 만남은 나의 가슴을 잔잔한 감동과 여운으로 이끄는 소중한 만남이 되었다. 이제 융은 마음의 고향이자 삶의 풍요로운 자양분이 되어주는 커다란 그루터기이다. 그리고 그는 안개와 같은 내면의 세계를 향해 길을 조금씩 열어주는 영원한 유혹이다.
우리가 심리학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십중팔구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를 머리에서 기억해 낼 것이다. 융은 프로이트만큼의 대중적 지명도가 없지만 그 또한 깊은 세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융은 프로이트가 가장 아끼는 동료이자 제자였다. 이후 프로이트와 융이 결별을 선언한 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새 지평을, 그리고 융은 <분석심리학>의 새 지평을 심리학 분야에서 개척하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는 프로이트이고 오히려 융은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의 세계는 프로이트의 세계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융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융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오묘한 진실을 감상하려 한다.
2. 칼 융의 삶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단히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우리가 기억의 그물로 건져낼 수 있는 최초의 경험들은 몇 살부터의 경험들인가?
융은 놀랍게도! 자신이 유모차에 누워서 푸른 하늘과 황금의 햇빛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두 세살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도 팔십 세가 넘은 나이에 말이다. 아무래도 그는 망각의 기능을 상실한 운명을 지닌 사람이었나보다. 그는 역마살과 같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유 때문에, 소년시절에 많은 발작증세를 앓았다. 실로, 마음은 감수성의 크기만큼 세계에 민감하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느낌은 오히려 자기만의 내면의 세계로 발걸음을 인도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융에게 있어서 세계에 대한 고독은 내면에 대한 탐구로 전이되었다.
융은 어느 날, 깊은 숲 속에 숨어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아버지는 아들 융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없앴고, 아들이 평생 돈을 벌 수 없게 된다면 슬픈 일이 될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아버지와 친구분의 대화를 엿들었지만, 융에게 있어서 그 대화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융에게 있어서 그 대화는 현실(現實)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 되었다. 융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 서재로 달려가서 라틴어 문법책을 꺼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발작증세는 융에게 나타났고, 결국 융은 굽히지 않고 발작을 극복하고 끈질기게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이후 융은 발작증세가 사라졌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을 철저하게 엄격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후 융으로 하여금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 칼 융의 사상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그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2]
융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기>Self와 <자아>Ego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는 우리의 생각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세계이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깊이 놓여 있는 세계이다. 또 한 그 세계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자아>는 자기의 세계보다 훨씬 작은 세계이다. 그리고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자아는 자기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 세계는, 의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으로서의 자아는 무의식으로서의 자기를 지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꿈이다.
꿈은 무의식의 활동이 우리의 인식 속에 지각되는 현상이다.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꿈의 상징들을 통하여 자신의 메세지를 전하려고 한다. 이제 꿈은 자기와 자아가 만나는 접촉점이다. 나를 넘어선 세계와 나의 세계는 꿈을 통하여 이어진다. 그래서 융은, 꿈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3] 그렇기 때문에 꿈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길이 저 심연에서 고요히 놓여있는 자기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기와 자아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사건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한 등산가가 융을 찾아왔다. 그 등산가는 어느 날 밤 높은 산의 정상에서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의 꿈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융은 그 꿈을 다 듣고 등산가의 앞에 닥쳐올 위험을 알았다. 그리고 융은 꿈이 주는 경고를 강조하여 그에게 스스로 등산을 자제하도록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등산중에 발을 헛디뎌 "허공으로" 낙하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아의 미래를 감지하고 그것은 꿈으로 전달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등산가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융은 의식적인 이성이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순간일지라도, 인간의 무의식은 정확히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4]
융에게 있어서 <자기실현>이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자아>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원형의 세계에서 뿜어내는 진실한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 그것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융에게 있어서 삶은 자아가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은 바다 위에서 출렁거리는 파도와 같은 자아가 수 천 해리 깊이를 가진 마음의 중심인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중심으로 향해 가는 과정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다. 특히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현대일수록 자아가 자기를 찾는 여정은 그만큼 힘겨워진다. 왜냐하면 분화된 의식으로서의 자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세계를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징과 신화의 상실은 자기 상실이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를 가로질러 어둠의 세계인 자기의 세계를 빛의 세계인 자아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과정 이 깨달음의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실로 그 깨달음의 과정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만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융은 더 나아가서 인류의 문명 또한 기나긴 깨달음의 과정으로 본다.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인류를 한 개인으로 볼 때, 우리는 인류가 무의식의 힘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과 같음을 알게 될 것이다."[5]
인간은 문명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월들을 거쳐 서서히, 그리고 힘들여 의식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가 온전히 완성되기에는 아직은 거리가 멀다. 저 안개와 같은 인간 본성의 허다한 부분이 아직 어둠에 쌓여 있다. 그 자아의 세계는 빛이 닿지 않는 무한한 자기의 세계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은 자연이 획득한 매우 새로운 것이어서 그것은 아직도 실험적 상태에 있다. 실로 의식은 불완전한 기능이다. 이렇듯 인류는 험난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자아의 세계를 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인류는 무의식의 힘에 의해 이끌리고 있고 무의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융은 원형Archetype,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 개성화Individuation, 그림자Shadow, 아니 마Anima, 아니무스Animus 등, 다양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을 사뭇 조심스럽게 선보인다. 사실 융이 인류를 향해 새롭게 선보인 개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개념은 앞으로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왜냐하면 그의 개념은 이론가의 책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한 숙고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융은 일생동안 수 만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았다. 그리고 융은 분석가나 이론가이기 이전에 '영혼의 의사'로서의 순결한 사명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삶 가운데서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환자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호하고 보존하여 환자가 그의 생애를 그 자신의 뜻의 따라서 살도록 하는 것"[6]이었기 때문이다. 환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병든 의사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융의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렇듯 융의 삶은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삶이었고, 환자의 고통과 같이하는 삶이었다.
한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에 대한 융의 사려깊고 진지한 노력은 그의 삶의 여러 곳에 스며있다. 특히 환자의 꿈에서 드러난 상징을 분석가(分析家)가 해석하는데 있어서, 환자의 <상징>과 분석가의 임상 결과에서 일반화된 <의미>를 쉽게 대응시키지 말라고 융은 당부한다. 융은 상징을 연구하는 데 반 세기 이상을 보내 온 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징과 그 상징의 의미를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분석가 개인의 일반화된 이론을 미련없이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회색 이론은 삶을 찢는다. 오히려 "나는 환자의 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7]는 자세로 환자를 만나야만 한다고 말한다. 환자의 상징은 환자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환자의 삶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야만 그 상징의 의미가 올바로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융에게 있어서 꿈 해석의 보편적인 규칙은 없었다. 환자의 삶만이 유일한 해석의 경전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있어서 환자는 자신의 이론의 적용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만이 유일한 현실이다."[8] 이러한 융의 자세는 이후 프로이트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꿈해석에 있어서 보편적인 이론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면, 융은 인간 그 자체에 관한 이해 위에서만 꿈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해할 수 없는 견해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4. 신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동시성 현상
융의 일생은 정신의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신의 불멸과 맞닿아 있는 '신의 문제'와 정신의 사멸과 맞닿아 있는 '죽음의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1959년, 융은 영국 방송공사(BBC)의 죤 프리만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프리만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질문을 하였다. 영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은 융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하였다. 융은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신을 압니다." 저 대답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의미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 신의 세계까지도 접근해 들어간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바울이 그러하였듯이(갈라디아서 2:20), 융은 자신으로부터 뗄레야 떼어낼 수 없는, 마음 안에 내재하는 신을 경험한 것은 아닐까.
융은 자신의 삶 가운데 죽음을 아주 가깝게 체험하곤 하였다. 실제로 융은 죽은 자를 만나기도 하였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융은 기이한 환상을 경험한다. 융은 밤중에 깨어 전날 장례를 치룬 친구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융은 죽은 친구가 방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친구는 수 백미터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융을 데려갔다. 융은 그 친구를 따라갔다. 그리고 친구는 서재에서 적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가리켰다. 너무도 기이한 체험이어서 융은 다음날 아침 죽은 친구의 서재를 직접 찾아가서, 환상에서 가리킨 적색 표지의 그 책의 제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死者의 유산>이었다.
융은 실제로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說法>[9]을 마흔 한살이 되던 1941년에 개인적으로 내놓았다. 이 설법은 죽은 자들이 질문을 하고 융이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문헌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융은 죽은 자와의 대화를 하였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문헌은 융이 죽기 바로 전에 어렵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결론부에 있는 글자 수수께끼인 아나그람마(Anagrama)는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 암호의 열쇠를 공개하지 않고 융은 죽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 왔었다는 느낌, 혹은 현실에서의 이 순간은 언젠가 꿈에서 한 번 보았던 순간 같은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이러한 기이한 느낌을 자주 체험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체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물론 본인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와 같은 경험을 자주 듣곤 한다. 융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융의 삶의 대부분은 이러한 환상과 희귀한 체험으로 채색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10]
어느 날 융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순간 뒷머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자살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총알은 마침 융이 심한 통증을 느낀 부분에 박혀 있었다. 1918년 융은 영국인 수용소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자기(Self)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像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 그림은 황금의 성 모양을 한 만다라였다. 얼마 뒤에 리햐르 트 빌헬름이 융에게 보낸 책 안에는 융이 그렸던 만다라 그림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융은 이러한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를 동시성(Synchronicity) 이론[11]으로 부르고, 이와 같은 정신현상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한다. 사실 융이 최초로 이론화한 동시성 이론은 우리시대의 양자물리학적 세계상의 정신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12]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들은 융의 저 이론에 대하여 다각도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13] 실로 융에게 있어서 텔레파시나 예언현상은 신비한 체험이나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자명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5. 결론 : 칼 융이 주는 의미
첫째, 융은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중심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문명화된 의식이다. 의식은 자아의 세계이다. 이 <자아>라는 것은 <자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우리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는 우리의 중심인 자기를 향해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는 자아의 세계가 전부로만 착각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의 세계와 같이 설명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해리는 자아의 세계를 전부로 생각하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의 자리에서 노예의 자리로 추방당하였다. 우리는 중심을 상실하였다. 현대인의 마음은 에덴동산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서글픈 운명이 맺혀 있다.
융은 희미한 잔영으로만 남아있는 자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왔고, 오늘 우리에게 그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네주고 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자기의 세계는 너와 내가 서로 넘나드는 화해의 세계이고 통합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보다 보편적이며 진실한 세계이고 영원한 세계이다. 오히려 그곳은 그늘에 가리워진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이다. 그리고 중심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꿈을 통하여, 신화를 통하여, 상징을 통하여 자기의 세계에서 자아의 세계를 향해 건네주는 메세지에 우리는 귀를 모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의식의 치명적인 손실은 꿈에 의해 보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저 깊은 내면의 무의식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하겠다.
둘째, 우리의 세계는 설명 가능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세계 안에서의 '이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으로는 마음의 전체성을 결코 파악할 수 없다.[14]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판적 이성이 지배하면 할 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곤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우리가 의식하면 의식할 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삶을 통합할 수 있다."[15] 의식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겸허함을 상실한 채, 이성의 왕국으로만 전진하려는 현대문명의 기나긴 행렬은 사실 막대한 손실을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문명은 합리성에 의하여 바벨탑을 축조하였다. 완고한 탑의 벽돌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합리성의 질료는 비합리성을 신화로 매도하었다. 왜냐하면 바벨탑의 세계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시대는 비합리성이 사멸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비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가. 단지 이성의 등불이 건져내지 못하는 심연의 세계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바벨탑이 감내해야 할 불길한 징후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심연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마치 빛이 소멸하고 어둠에 깃든 저 밤하늘에는 단지 우리 눈에 보이는 저 별만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연은 존재를 망각케 한다. 하지만 존재는 심연에 앞선다. 오히려 존재는 어둠을 품는다. 심연과 어둠에서 있는 존재는, 비록 설명되지 않을지언정, 자명한 존재이다. 그래서 은폐되어 있고 불가해한 존재 (essentia absconditus et incomprehensibilis)는 모르는 존재(essentia ignotus)가 아니다.[16] 사실 '비합리적인 것'은 모르는 것이나 인식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조차도 이름붙일 수 없을 것이다.[17] 이름은 존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실로 융의 동시성 이론이나 죽은 자와의 대화는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빈약한 기능인가를 예증해 준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는 않고 설명되지는 않는 세계가 우리가 까이에 있고, 그리고 그 세계가 우리를 인도한다고 융은 말한다.
셋째, 융은 우리 각자의 生이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 심성의 뿌리에는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 전체의 세계와 닿아 있다. 그렇다면 각자의 生은 결코 가볍거나 보잘 것 없는 生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生은 우주를 닮아 있다. 영원의 세계인 무의식의 현현이 각자의 生인 것이다. 플레로마의 세계에서 클레아투라의 세계로 뛰어든 최초의 사건이 生이다.[18] 우리의 生은 불멸의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세계 속으로 뛰어든 사건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生은 끊임없는 성숙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 지향이 바로 '개성화'인 것이다.[19]
우리는 융을 통하여 살아있음(生)이 결코 예사스럽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제 생은 환희이고 생명은 경이로움이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펄럭거리며 비상하는 저 새를 보자.
새는 날기 위하여 얼마나 지난한 시간동안 새가 되려는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긴 계절을 인간의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백 년의 삶을 만나기 위하여 백 만년 동안, 그 한 순간만을 꿈꾸어 온 존재이다. 백 만년 겨울잠의 기나긴 제의를 통하여 우리의 삶은 주어진 것이다. 우리 삶의 밑둥에는 백 만년의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뿌리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단지 백 년을 사는 삶이 아니다. 우리는 백 만년을 몸으로 살아가는 푸른 생명나무이다. 그 생명나무가 가장 찬연한 열매를 맺는 그 순간, 그 절묘한 순간이 바로 지금의 生이다. 그러기에 生은 저 영원의 빛의 드러남이다. 또한 지금의 生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구현 (Individuation)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꿈은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예언한다. 꿈이란 자기와 자아가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삶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심의 소리이다. 꿈은 삶의 해리를 통합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고백하였다면, 융은 "꿈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지금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꿈을 타고 우리에게 건너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서늘하게 만났던 융에 대한 감정은 이제는 따스한 할아버지로, 예리한 관조의 시선을 통하여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해 주는 영혼의 의사로, 오늘의 가난한 마음과 가난한 문명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하는 천상의 헤르메스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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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마음의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門)이며 그 문은 저 우주의 태고적 밤을 향하여 연다. 그것은 아직 자아의식이 없던 시기의 마음이었고 자아의식이 일찍이 도달할 만한 곳을 훨씬 넘어서 있는 마음이 될 태초의 밤이다.[20]
- 칼 구스타프 융 -
■ 각 주
[1] 융은 1875년 스위스 산간지방인 케스빌에서 태어났다. 이 저서를 쓴 시기가 1961년, 융은 이 저서를 탈고한지 10 일 후 병들어 누워 영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저서야말로 융의 유작이라 할 것이다. 융은 여든 일곱에 이 저서를 기록하였다. 한 생을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 살았던 탁월한 의사요 심리학자로서, 이 저서는 그의 인간이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융에게 있어서 이 저서는 모든 비전문적인 독자들에게 전하는 소중한 삶의 언어이다. 그리고 융의 인간적인 면이 흠뻑 배어나오는 사랑의 언어이다. Man and His Symbols는 국내에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다양한 번역서 가운데 추천할 만한 것은 집문당에서 출판한 이부영 역의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이다. 이부영 교수는 스위스 융 연구소를 직접 거친 독보적인 융 전문가(Jungdian)이다.
[2] 아니엘라 야훼(이부영 역), {C.G. Jung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 (서울: 집문당, 1989), p.17.
[3] C. G. Jung,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Belief in Spirits, The Collected Works, vol. 8 (New York :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303-4.
[4] C. G. Jung, Answer to Job, The Collected Works, vol. 11, p.386.
[5] C. G. Jung, Man and his Symbols (London: Aldus Books, 1964), p.85.
[6] Ibid., p.58.
[7] 이부영, {분석심리학} (서울: 집문당, 1978), p.196 ; "I have no theory about dreams, I do not know how dreams arise. And I am not at all sure that - my way of handling dreams even deserves the name of a 'method.'" C. G. Jung, The aims of Psychotheraphy, The Collected Works, vol. 16, p.42.
[8] Man and his Symbols, p.58.
[9] {회상, 꿈 그리고 사상}, pp.434-47.
[10] Encyclopaedia Britannica, 15th ed., s.v. "Jung, Carl"
[11] 융은 동시성 개념을 {동시성: 비인과적인 연결원리}(Synchronicity: An Acausal Connecting Principle)이라는 논문에서 발표하였다. 그 논문은 배타원리의 발견자인 볼프강 파울리와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융은 파울리와 함께 무의식에서 보이는 동시성과 양자물리학에서 인과율의 파탄이 일어나는 현상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하였다. 그런데 이 논문은 부분적으로 파울 카메러(Paul Kammerer)의 논문 {연속성의 법칙}(Das Gesetz der Serie, Stuttgart, 1919)에 근거하고 있다. 카메러는 20세부터 40세까지 동시성 현상에 관련한 경험사례를 정리하여 {연속성의 법칙}이라는 저서에 100가지의 사례로 수록하였다. 융의 동시성은 주로 시간적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을 기술하는 반면, 카메러의 연속성은 주로 공간적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을 기술하였다 ; Arthur Koestler(최효선 역), {야누스-혁명적 홀론이론} (서울: 범양사, 1993) 참조.
[12] 융이 깊이 엿본 동시성 현상은 결코 현대과학의 실재관과 유리된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신비적이거나 초월적인 현상이 아니다. 융이 지적한 동시성 현상을 지지하는 실재관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실재관은 실체적 실재관에 대한 관계적-유기적 실재관으로의 전환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첫째는, 화이트헤드의 동시적 세계에 대한 논의이다. 둘째는, 양자물리학에서 비국소장에 관련된 EPR 사고실험이다. 그러나 이 두 실재관은 아직도 현대과학이 해명해야 할 어려운 난제를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 전개에 있어서 우리 언어의 한계는 더욱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동시성 현상이나, 화이트헤드의 실재관이나, EPR 사고실험의 논의는 '정보소통'의 관점에서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야 할 필요가 있겠 다.
첫째, 화이트헤드의 동시적 세계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동시적 세계는 정보소통, 즉 인식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식을 주체와 대상 사이의 정보소통이라고 한다면, 그 정보소통은 시간의 흐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보가 한 계기에서 다른 계기로 전달되는 과정, 즉 시간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는 과거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듣는 소리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방 안에서 듣는 음악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음악이다. 지금 듣는 비행기 소리는 몇 초 전의 비행기가 내는 소리이다. 지금 듣는 천둥 소리는 몇 분 전의 천둥이 내는 소리이다. 우리가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의 태양은 8 분 20초 전의 태양일 뿐 현재의 태양이 아니다. 실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세계는 빛바랜 과거의 세계이다. 우리는 결코 현재를 만날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세계는 동시적인 세계가 아니다. 동시적인 세계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우주의 횡단면(橫斷面)인 동시적 세계 안에 포함된 정보는 결코 (주체에게) 인식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과거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현재의 태양을 결코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우주의 횡단면을 화이트헤드는 지속(Duration)이라고 부른다. 지속은 시간이 개입되지 않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현재의 우주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지속은 우선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의 현재의 횡단면인 지속의 두 성원은 동시적이다.
둘째, 지속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은 과거에 있던가 미래에 있을 뿐이다.
셋째, 지속이란 지속 안 에 모든 성원이 상호간에 동시적인 계기들의 완전한 집합이다. 정보소통이나 세계 인식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 되는 화이트헤드의 동시적 세계에 대한 논의는 '정보'와 '인식'을 더욱 합리적인 언어로 새롭게 해명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둘째, EPR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EPR 사고실험을 통하여, 전자와 다른 전자 사이의 정보소통에 있어서 시간의 개입이 없이도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장소(field)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제자인 포돌스키(Podolsky)와 로젠(Rosen)과 함께 중요한 사고실험의 결과인 논문을 발표하였다 (Einstein/Podolsky/Rosen, Can Quantum Mechanical Description on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Physcial Revier 47(1935)). 이 세 사람의 약자를 띤 실험은 초기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 서로 분리된 양자적 대상인 S1과 S2의 두 체계를 상정하였다. S1과 S2는 물론 공간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이 실험의 요약은, S1에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결과로서 S1이 변했을 때 아무 관계도 없는 S2가 동시적으로 S1의 변화값만큼 변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 쌍둥이 형제 S1과 S2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자. S1은 백록담으로 갔고 S2는 천지연으로 갔다. 백록담에 간 S1이 돌에 부딛쳐 이마에 혹이 났는데, 같은 시각에 천지연에 있는 S2는 돌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이마에 혹이 났다. 이런 상황은 물론 상식적인 거시적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사고 실험이었으나 1982년 프랑스의 아스페(Aspect)의 세 번에 걸친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명된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실재가 알지 못할 상관성이 있고 서로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관계로 직조된 세계라는 것을 밝혔다.
그럼 융의 동시성 현상은 무엇인가. 소련에서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어미 고양이를 바다 깊은 곳의 잠수함에 가두고 지상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인 일련의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는, 지상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순간 잠수함의 어미 고양이는 움찔거리면서 매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의 관계에 보이지 않는 내재적 상호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작용은 동시성의 부분적인 증명사례이다. 우선 동시성은 동일하지 않은 시간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과, 동일한 시간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전자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꿈에서 보았는데 '그날 오후' 그 교통사고가 현실에서 일어난 경우이고, 후자는 부산에서 일어난 아버지의 교통사고가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동시에' 마음에서 스쳐 지나간 경우이다. 특히 여기에서 논의하는 동시성은 후자, 즉 동일한 시간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만을 지칭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 부산과 서울은 동시적 세계이다. 융의 동시성 이론에 의하면 한 순간에 부산에서 발생된 정보가 동시적인 순간 서울에까지 전달될 수 있음을 밝혀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시성 현상의 외양은 EPR의 실재관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만약 부산에서 발생된 정보가 <동시적 시간>에 서울에까지 전달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지상에서 발생된 새끼 고양이에 관한 정보가 <동시적 시간>에 깊은 잠수함에 있는 어미 고양이에까지 전달된다고 할 수 있는가? 정각 12:00:00초에 부산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12:00:01초에 아들이 그 정보를 인식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것은 분명히 일상적인 차원을 벗어나는 현상일 수는 있어도, 동시적 세계에 대한 정보소통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보소통에 있어서 1초라는 단위는 여전히 매개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엄밀하게 말하면, 아들의 인식은 1초 전의 과거의 정보에 대한 인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정보가 1초 전의 과거의 정보에 대한 인식일지라도, 1 초 사이에 서울과 부산의 서로 떨어진 존재가 어떠한 의미있는 감응을 할 수 있음(!!)을 밝힌 최초의 이론이라는 점에서 융의 동시성 이론은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우선 융의 동시성 현상은 결코 현대과학과는 유리된 사각지대의 현상이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동시성 현상의 근거인 실재관으로서 융의 동시적 세계와 EPR 사고실험을 말할 수 있다. 화이트 헤드는 관계가 진정한 실재이며 대상은 추상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EPR 사고실험의 아이디어를 별 무리없이 수긍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엄격히 비교하자면, 화이트헤드의 실재관과 EPR 사고실험의 실재관은 정면으로 대립될 수 밖에 없는 지점이있다. 동시적 세계는 정보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입장과 정보소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바로 그 지점이 된다. 이렇게 두 이론 사이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화이트헤드와 EPR 사고실험은 융의 동시성 이론을 지지하는 실재관으로서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The Free press, 1978), pp.125,168,320 ; 최종덕, {부분의 합은 전체인 가 - 현대 자연철학의 이해} (서울:소나무, 1995년), pp.139-206.
[13] 융의 동료인 폰 푸란츠(Marie-Louise von Franz)는 융의 심리학과 과학과의 관련성을 Man and His Symbols 후반 부에서 개괄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푸란츠에 의하면 융이 전개한 정신현상에 관한 이론과 현대과학은 긴밀한 함수관계를 보여준다고 한다.
[14] C. G. Jung, The Psychology of the Uncounscious, The Collected Works, vol. 7, p.117.
[15] {회상, 꿈, 그리고 사상}, p.344.
[16] Rudolf Otto, Das Heilige (Muenchen : Verlag C. M. Beck'sche Reihe, 1987), p.163.
[17] Ibid., p.164.
[18] 융은 우주의 대극쌍으로서 '플레로마'와 '클레아투라'를 말한다. 융에게 있어서 플레로마는 원형의 세계이고 자기 (Self)의 세계이고 영원의 세계이고 무(無)의 세계이다. 플레로마는 이 세계의 근원이자 뿌리이다. 그리고 플레로마와 대극의 자리에는 크레아투라가 놓여있다. 크레아투라는 자아(自我)의 세계이고 의식의 세계이다. 융은 의식의 기원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충동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해는 지(知)이고 그것은 분별(分別)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무의 세계인 플레로마의 세계에서 분별의 세계인 클레아투라로 나아가려는 것, 그것은 플레로마 자신이 자신을 밝히 드러내어 보이려는 강렬한 의지이고 신념이다. 그런데 플레로마와 클레아투라의 긴장적 대극적 운동은 플레로마의 세계인 무로 와해되는 것, 그리고 클레아투라의 세계인 끊임없는 분열상으로 와해되는 것을 동시에 지양한다. 클레아투라를 통하여 플레로마가 승화되어 드러나는 과정, 혹은 플레로마의 중심인 자기로 향해 가는 과정이 개성화(個性化)이다. 이 개성화의 과정은 자기실현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며 고통을 거치지 않은 깨달음이란 또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레로마의 무로 와해되지 않고 클레아투라의 구별로 와해되지 않는 고양과 상승의 과정으로서의 개성화는, 결국, 세계를 배제하지 않고 수용한다 ; {회상, 꿈, 그리고 사상}, pp.365,466. C. G. Jung(이부영 역), {현대의 신화} (서울 : 삼성출판사, 1993), p.21 참조.
[19] 우리는 개성화(individuation)와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명료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융에게 있어서 개성화는 개인주의와는 분명 다르다. 개인주의는 한 개인에게 부과된 고유한 기질의 단층이다. 또한 개인주의의 기질은 한 개인의 사회적 실현을 간과하거나 혹은 억압한다. 하지만 개성화는 인간의 전체적인 모습을 온전히 실현 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의 특성에 대한 깊은 사려는, 더욱 성숙한 사회적 실현을 추구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 C. G. Jung, The Relations between the Ego and the Unconscious, The Collected Works, vol. 7, p.171.
[20] C. G. Jung, The Meaning of Psychology for Modern Man, The Collected Works, vol. 10, pp.144-45.
■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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