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 八卦와 文字 *
김세환**
〈목 차〉
1. 序 言
2. ≪周易≫八卦와 ‘象數’
1) 象數의 由來와 傳承
2) 作卦의 動機와 기능
3) 陰陽의 변화와 八卦
4) ‘易簡’과 吉凶
3. 문자와 ‘象形’
1) 文字와 ‘依類象形’
2) 六書와 ‘孶乳’
4. ≪周易≫과 ≪說文解字≫
5. 結 語
* 이 논문은 부산대학교 자유과제 학술연구비(2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 序 言
"옛적 蒼頡이 글자를 만드니, 하늘에서는 곡식을 쏟아 내리고 귀신은 밤새 울었다.
(昔者蒼頡作書, 而天雨粟, 鬼夜哭.)1)"
蒼頡이 書契(文字)를 만들자 사람들 사이에 서로 속이는 일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따랐으니, 곧 耕作의 본업을 버리고 사소한 이익에 매달렸다. 이에 하늘이 사람들이 굶을 것을 걱정하여 곡식의 비를 내려 주었다. 또한 귀신은 生前의 일이 기록으로 남아 추궁을 당할까 하여 밤새 울었다 한다.
문자는 이미 그 태생 때부터 이처럼 그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인간의 지능이나 경험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축적하여 문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은 바로 문자에 의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문명과 문화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창힐은 中國에서 ‘文化之祖’, ‘文字始祖’, ‘人文始祖’, 또는 ‘中華文明의 象徵’ 등으로 불린다.
인간이 짐승과 확연하게 다른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문자를 사용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의 발달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문명은 때로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으며, 지금도 우리 스스로가 파괴한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무한한 희생을 담보로 문명이 발달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淮南子≫의 글은 문자로 인해 사람들이 본업을 소홀히 하고 지엽적인 일에 매달리는 것을 우려한 내용이다.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이미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우려는 우리의 문명을 되돌아 보게 한다. 우리는 우리 문명의 역기능 가령 자연환경의 파괴나 오염등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이렇듯 문자라는 문명의 근원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한 일은 없었던 듯하다.
문자로 축적된 지식은 바로 문명의 팽창을 가능하게 했다. 문명의 시각에서 본다면 人智나 문화가 갈수록 발달하면서 지금까지 인류는 팽창의 역사를 지속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팽창은 이제 다른 시대가 올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간하는 ≪Time≫ 잡지는 “2045년이 사람이 不死身이 되는 해(2045 The Year Man Becomes Immortal)”라는 표지 기사를 실었다.2) 이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년 출생)의 주장을 소개한 것으로, 곧 기계(컴퓨터)와 사람이 하나가 되면서 인간의 시대(Human era)가 끝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사람을 죽지 않는 超人(transcendent man)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인데, 즉 사람의 老化는 치유될 수 있는 질병에 불과하며, 몸은 과학 문명(주로 컴퓨터)의 인공부품으로 상당부분이 교체되면서 생물의 한계인 죽음을 치유 또는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기술에 의해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는 순간은 곧 인간의 시대가 끝나고 기계와 사람의 합작품 시대가 도래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로부터 시작된 문명의 극대화된 팽창이 결국은 인간의 종말로 이어지는 것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의 발달이 과연 인간 가치의 구현에 부합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즉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기계와 인간의 합작품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 가치의 구현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1) 劉文典 撰, ≪淮南子鴻烈集解・本經訓≫(北京, 中華書局, 1989), 252쪽. (번역과 설명은 同書의 註釋을 참조함)
2) ≪Time≫ February 21, 2011.
타임지의 기사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명은 어떠한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인간은 먹고 사는 일 외에는 단지 자신의 후손을 갖는 일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이와는 관련 없는 일에 보낸다. 그러한 일들이 인간의 본질과 과연 얼마나 관련이 있는 일인가? ≪淮南子≫에서의 우려는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中國에는 倉頡의 문자 발명에 앞서 또 다른 형태의 부호체계가 먼저 있었다.
"옛날 庖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위로는 천문현상을 살피고 아래로는 地理를 살폈다.
鳥獸들의 모양과 땅의 형상을 보면서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로부터 취하여 처음으로 ≪易≫의 팔괘를 만들어 이의 象을 후세에 전하였다.
神農氏에 이르러 結繩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행정을 보았으나 일이 많아지면서 假飾과 僞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黃帝의 史官이었던 창힐이 짐승들의 발자국을 보고서 그 문양의 차이에 따라 짐승을 구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처음으로 書契(문자)를 만들었다.
(古者庖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
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 於是始作易八卦,以垂憲象.
及神農氏結繩為治而統其事, 庶業其繁,飾偽萌生. 黃帝史官倉頡,見鳥獸蹏迒之迹,知分理可相別異也,初造書契.)3)"
許愼(約58~約147)의 이 글은 ≪周易・繫辭傳下≫를 직접 인용한 것이다.
즉, 창힐이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이미 팔괘와 結繩이 있었다는 것을 ≪周易≫을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원문과 직접 비교를 하면 허신의 의도가 드러난다.
옛날 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위로는 천문현상을 살피고 아래로는 地理를 살폈다.
鳥獸들의 모양과 땅의 형상을 보면서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로부터 취하여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어 신명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情狀을 나누었다.
…… 옛날에 結繩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나 후세의 성인이 이를 서계(문자)로 바꾸었다.
(古者庖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于天,俯則觀法于地,
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 于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
…… 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4)
許愼은 팔괘나 결승이 ‘書契’의 기원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書契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팔괘와 결승 같은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 문자의 기능을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다만 허신은 팔괘의 특이한 기능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은 문자의 기능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보아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즉, 팔괘나 서계는 만들어진 과정이 유사하고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인용은 했지만, 팔괘의 특이한 기능이 문자와는 다른 것이어서 서계의 前身이나 기원으로 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생략한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은 분명 문자의 기능을 초월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그 형상과 이치를 취하고 다시 멀리로는 천지만물의 형상과 이치를 따라 팔괘를 만들어 그 象을 나타내었다. 천문지리와 만물의 이치를 팔괘로 집약하였으니 이를 신명의 덕에 통했다 하는 것이며, 이로부터 만물의 情狀(陰陽이나 剛柔 등)에 따라 팔괘의 象으로 분류할 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八卦와 書契는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팔괘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집약하여 상징하는 부호로 만들어진 것임에 비해, 서계는 짐승들의 足跡이 하나하나가 다르듯이 사물의 형상을 따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팔괘와 문자는 기본적으로 ‘象’의 원리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팔괘와 문자는 萬事萬物의 象에 의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표현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두 가지의 動機로 시작하였다. 첫째는 우리의 문명이나 학문이 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想起하고자 한다. 문자는 늘어나는 인식대상에 따라 계속 증가하여 왔다. 즉 통합적인 조화나 방향의 기준이 없이 단지 양적 팽창을 추구해온 문명이나 학문의 역사가 바로 문자의 발달 과정과 유사하다는 점을 상기하자는 의도이다.
둘째로는 ≪周易≫팔괘의 시각에서 문명과 학문에 대한 방향성을 찾아보자는 의도이다.
특히 인문학이 인간 본연의 가치 구현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周易≫을 통한 방법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의 양적인 증가는 과학문명의 지속적인 발전과 팽창으로 이어졌지만, 팔괘는 모든 자연현상과 인간의 활동을 집약하여 이에 관통하는 질서의 원리와 의미를 찾는 방법을 제시해 왔다고 본다. 따라서 문자와 팔괘의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통해 우리의 문명과 학문을 되돌아본다는 의도이다.
3) 許愼 著, 段玉裁 注, ≪說文解字注・敍≫(臺北, 蘭臺書局 影印, 1977), 761쪽.
4) ≪周易正義・繫辭傳下≫(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 350~356쪽.
2. ≪周易≫八卦와 ‘象數’
1) 象數의 由來와 傳承
≪周易≫은 한때 ≪易象≫으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左傳≫에 “≪易象≫과 ≪魯春秋≫를 보고”5)라는 구절이 있다. ≪周易≫은 萬事萬物을 象으로 파악하고 상으로 나타낸다.
≪周易·繫辭傳下≫에 “≪易≫이란 象이며, 象이란 像이다.”라 했다. 이를 孔穎達은 “괘란 만물의 象으로 즉 만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乾卦의 象이 하늘(天)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라 풀이했다.6)
여기에서 인식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사물은 인간과의 의미 속에서 파악된다. 가령 하늘의 천문현상은 단순한 별들의 운행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로부터 역법을 만들어 사용했다.
"(堯帝가) 羲氏와 和氏에게 “경건하게 위대한 하늘을 따라 日月星辰의 법칙을 推算하여 백성들에게 天時(曆法)을 알게 하라” 명하였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歷象日月星辰, 敬授人時.)7)
사람은 하늘로부터 천문의 象을 보았고 다시 역법의 象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시계나 역법은 하늘 천문현상의 상징인 것이다. 이로 보면 인간뿐만 아니라 생물 모두가 하늘과 시간을 함께하는 한 몸이다. 존재의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시간을 결정하는 하늘의 뜻은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춘하추동이 바뀌어 감에 따라 생물은 生長收藏의 주기가 진행된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생물은 없다. 하늘의 象은 이러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이렇듯 만사만물의 상이 모두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설정된다.
5) ≪春秋左傳正義・卷第四十二≫(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 1348쪽.
6) “(是故)易者, 象也. 象也者, 像也.” 이에 대한 疏: “謂卦爲萬物象者, 法像萬物, 猶若乾卦之象, 法像於天也.” ≪周易·繫辭傳下≫, 356쪽.
7) ≪尙書正義·堯典≫(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 33쪽.
그러나 인간의 생활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일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 가령 吉凶禍福 같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파악이 어려운 분야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의 象을 보는 독특한 방식을 개발하여 사용했다.
龜卜과 筮數의 방식이 대표적인 것이며 이 두 가지가 곧 ≪周易≫의 淵源이 되었다.
殷墟의 갑골문은 대체로 殷代 龜卜의 기록이다. 도구로는 주로 龜腹甲이나 牛胛骨을 사용했는데, 약간의 가공을 거친 후 뼈에 균열이 생길만큼 불덩이로 지지는 방식이었다. 이때 나타난 균열을 ‘兆’라 하며, 龜卜은 곧 이 兆文을 통하여 물음에 대한 응답의 象을 보는 것이다. 占辭는 바로 占人이 占兆로부터 읽은 象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殷代의 갑골문이 龜卜의 기록이었다면 ≪周易≫은 周代의 筮占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귀복과 서점은 시대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은 竝用된 것으로 보인다.
≪尙書·洪範≫에서 ‘卜筮’가 竝稱되었으며,8) ≪周禮·春官宗伯·筮人≫에서도 筮卜이 함께 쓰였음이 나타나 있다.9) 귀복과 筮占은 사용 도구가 다르고 아울러 시대에 따라 비중이 상대적인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기능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인다.
筮占은 蓍草를 사용한다. 龜卜이 兆文을 통하여 드러난 ‘象’을 읽는 것이라면, 筮占은 ‘大衍之數’10)를 바탕으로 하여 揲蓍를 통해 괘를 얻고 卦象에 나타난 길흉을 보는 방식이다.
"성인이 천하의 현묘한 이치를 보아 그 형용을 나타내었으니, 다만 그 사물에 알맞은 것으로 상징을 하였음이라. 고로 이를 일러 상(괘상)이라 하였다. (聖人有以見天下之賾,而擬諸其形容,象其物宜,是故謂之象.)11)"
≪周易≫은 천지와 만사만물의 현상을 괘로 상징을 하는 체계이다.
즉 괘는 ≪周易≫의 내용이며 표현 방식이다. 아울러 이의 淵源은 龜卜의 ‘兆象’이며 이어 ‘筮數’의 방식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8) “擇建立卜筮人, 乃命卜筮.” ≪尙書正義·洪範≫, 371쪽.
9) “凡國之大事, 先筮而後卜” ≪周禮注疏≫(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 765쪽.
10) ≪周易正義・繫辭傳上≫, 328쪽.
11) ≪周易正義・繫辭傳上≫, 323쪽.
2) 作卦의 動機와 기능
卦란 萬象을 드러내는 부호로 만들어졌다.
"괘라고 하는 것은 ≪易緯≫에 “괘란 건다는 뜻이다. 物象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어서 괘라 일렀다.”라 했다.
그러나 두 획의 體로는 비록 음양의 기운을 상징할 수는 있어도 만물의 상징은 이루지 못하니 괘를 얻지 못한다. 반드시 三畫으로 삼재를 상징하여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상징을 표현해야 괘라 이를 수 있다. 고로 ≪繫辭≫에서 “팔괘가 배열되었으니 상징이 그 안에 있다”라 했다.
그러나 처음에 삼획은 만물의 상징이 되었으나 만물의 변통의 이치에 있어서는 아직 미진하였다.
고로 이를 겹쳐서 육획으로 하였으니 만물의 형상을 구비하였고 천하의 能事를 다하여 이를 육획으로 괘를 이루었다한 것이다.
(謂之卦者, ≪易緯≫云: “卦者掛也, 言縣掛物象, 以示於人, 故謂之卦.”
但二畫之體, 雖象陰陽之氣, 未成萬物之象, 未得成卦, 必三畫以象三才, 寫天地, 雷風, 水火, 山澤之象, 乃謂之卦也. 故≪繫辭≫云 “八卦成列, 象在其中矣”是也.
但初有三畫, 雖有萬物之象, 於萬物變通之理, 猶有未盡,
故更重之而有六畫, 備萬物之形象, 窮天下之能事, 故六畫成卦也.)12)
陽의 상징인 ‘―’의 부호가 있고 陰의 상징인 ‘‑ ‑’의 부호가 있어 이로써 음양을 나타낼 수는 있다. 그러나 萬象을 나타낼 수는 없으니, 天地人 三才를 상징하는 삼획으로 구성할 때 비로소 만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만물이 서로 얽혀 변화하는 이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를 다시 중첩하여 六畫卦로 만들어야 했다. 즉, 음양의 단순한 두 가지의 부호를 여섯 자리로 演繹하여 64괘를 만들었고 이로써 만물과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모두 함축하였다는 의미이다.
陽爻와 陰爻라는 추상적인 부호로 천지의 음양을 나타내고 이 음양의 두 爻를 여섯 자리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여 천지만물의 象과 그 역학관계의 변화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것이 곧 作卦의 동기이자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괘는 글이나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設卦에 의해 변화의 이치를 모두 드러내고자 하는 방법이었다.
"孔子께서 말씀하시길: “書冊으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하였는데 그렇다면 성인의 뜻도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인가?
孔子 曰: 성인은 象을 세워 뜻을 다하고, 괘를 陳設하여 情僞를 다하며, 繫辭로 말을 다하였으니, 이로써 변화에 두루 통하면서 利를 도모함으로 鼓舞하여 그 神命을 다한 것이다.
(子曰: “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則聖人之意, 其不可見乎?
子曰: 聖人立象以盡意, 設卦以盡情僞, 繫辭焉以盡其言, 變而通之以盡利, 鼓之舞之以盡神.)13)
書冊이란 말을 기록한 것인데, 말이란 본시 번잡하여, 남북의 音이 다르거나 또는 말만 있고 글자가 없거나 해서 글로는 그 뜻을 다할 수 없다 한 것이다. 말은 또한 뜻을 다하지 못하는데 이는 뜻이 심오하여 말로써 나타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에 성인은 괘로 상을 나타내어 뜻을 다하였고, 繫辭로 말을 다하였다고 하였다.14)
괘는 간단한 부호로 복잡한 언어가 달성할 수 없는 ‘盡意’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괘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물의 개체가 아니고 천지만물 변화하는 이치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언어에 의한 설명이 본래 어려웠던 것이다.
12) ≪周易正義・乾卦下・孔穎達疏≫, 1쪽.
13) ≪周易正義・繫辭傳上≫, 342~343쪽.
14) ≪周易正義・繫辭傳上・疏≫, 342~343쪽.
3) 陰陽의 변화와 八卦
복잡해 보이는 삼라만상의 변화는 사실상 음양의 두 기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이 된다. 팔괘는 음양의 작용에 의한 변화의 이치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하늘에서는 現象이 이루어지고 땅에서는 형체를 이루니 이로 변화가 나타난다.
그런고로 剛柔가 서로 마찰하면서 八卦가 이와 함께 움직인다. 천둥과 번개가 일어나니, 風雨로 윤택하게 되며, 日月이 운행하니 한 차례 춥고 한 차례 덥다.
乾道는 남자를 이루고 坤道는 여자를 이룬다. 乾은 大始를 주관하고 坤은 형체를 만든다.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是故剛柔相摩, 八卦相盪.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乾道成男, 坤道成女. 乾知大始, 坤作成物.)15)"
太極으로부터 음양의 기운에 의해 天地가 이루어지고, 다시 하늘의 현상과 땅의 만물이 이루어졌으니, 팔괘는 “仰則觀象于天,俯則觀法于地”의 과정을 거쳐 작괘한 것이다.
하늘에는 日月星辰의 천문현상 뿐만 아니라 이에 따라 바뀌는 寒暑의 변화나 바람이나 우뢰 같은 수많은 현상들이 일어난다. 아울러 땅에는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이러한 하늘의 현상과 밀접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음양의 剛柔가 서로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니 이를 음양의 효를 쌓아 64괘로 드러낸 것이다. 남녀는 서로 다른 陰陽의 기운으로 생겨난다. 乾道는 만물의 시작을 이루고 坤道는 만물을 키운다. 만사만물의 현상과 변화가 단지 음양 이 두 가지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단순한 두 爻의 변화로 이를 나타낸 것이다.
"易에 태극이 있어 양의를 내고 양의가 다시 四象을 내었으며, 사상이 팔괘를 낸 것이다. 팔괘가 길흉을 정하니 길흉이 대업을 이룬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16)"
≪易≫의 팔괘는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었다. 태극으로부터 음양의 작용이 일어나 천지가 이루어지고 다시 만물이 생기는 과정을 따라 兩儀와 四象 그리고 팔괘로 나타낸 것이다. 즉 팔괘는 자연현상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이로부터 萬事의 길흉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易≫의 글은 (음양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 道를 나타냄에 있어서 수시로 바뀌니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여섯의 빈자리를 두루 돈다. 상하의 자리가 일정하지 않으며 剛柔가 서로 바뀌어 일정한 법도를 내세울 수 없으니 오직 변화를 따라 갈 뿐이다.
(易之爲書也不可遠, 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17)"
만물은 어찌 보면 개별적인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만물은 천지의 운행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과 함께 변화한다. 모든 사물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팔괘는 단지 사물의 유형을 나눈 듯하다. 그러나 64괘로 演繹되면서 모든 존재의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 즉 64괘는 사람도 음양의 이치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실시간으로 함께 변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15) ≪周易正義・繫辭傳上≫, 303~304쪽.
16) ≪周易正義・繫辭傳上≫, 340쪽.
17) ≪周易正義・繫辭傳下≫, 370~371쪽.
4) ‘易簡’과 吉凶
삼라만상의 현상을 모두 음양의 작용으로 비롯된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변화의 근원이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乾은 쉽게 알 수 있고 坤은 簡約하여 만물을 이룰 수 있다. 쉬운 즉 쉽게 알 수 있고, 간약한 즉 쉽게 따를 수 있다. 쉽게 아니 가까움이 있고 쉽게 따르니 功業이 있다.
가까움이 있으니 오래 갈 수 있고, 功業이 있으니 클 수가 있다. 오래 갈 수 있음은 賢人의 德이며, 클 수 있음은 현인의 功業이다.
쉽고 간약하니 천하의 이치를 얻을 수 있고, 천하의 이치를 얻으니 그 안에 位相을 함께 한다.
(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 而成位乎其中矣.)18)"
乾의 이치는 매우 쉬운 것이다. 晝夜나 四時는 자연스럽게 바뀌니 모든 생물이 쉽게 이 변화를 알고 있다. 坤의 이치 또한 매우 간략하다. 하늘의 四時에 따라 만물에게 生長收藏의 터를 제공한다. 乾德을 따름으로서 만물을 키워내는 것이 坤德이라 할 수 있다. 쉽게 알 수 있으니까 가까이 하게 되고, 간단하여 쉽게 따르니 功業을 이룰 수가 있다. 이렇듯 성인은 ‘易簡’의 이치를 터득하여 천하의 이치를 얻고 이로 괘에서 천지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단지 자연스럽고 쉬울 뿐이다. 땅의 이치도 단지 하늘을 따라 만물을 내는 것이니 매우 간단하다. ≪周易≫은 이러한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周易≫을 통해서 보는 사람의 이치는 어떠한가?
"聖人이 卦를 陳設하여 그 象을 보고 卦辭와 爻辭를 지어 길흉을 드러내었다.
剛柔가 서로 밀어 변화가 생기니, ‘吉凶’이란 得失을 나타내는 象이며, ‘悔吝’이란 걱정과 憂慮를 나타내는 象이고, ‘變化’란 進退를 나타내는 象이며, ‘剛柔’란 晝夜를 나타내는 상이다.
이렇듯 六爻의 움직임은 三極(三才)의 道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君子가 머물러 편안한 곳은 易의 次序(卦爻의 순서)이며, 즐거움으로 玩味(玩索)하는 것은 爻辭이다.
때문에 군자는 조용히 卦象을 보면서 爻辭를 玩味하고, 움직일 때는 卦의 변화를 보면서 爻의 占辭를 玩味하니, 하늘이 그를 도와 길하여 불리함이 없다.
(聖人設卦觀象, 繫辭焉而明吉凶,
剛柔相推而生變化. 是故吉凶者, 失得之象也. 悔吝者, 憂虞之象也. 變化者, 進退之象也. 剛柔者, 晝夜之象也. 六爻之動,三極之道也. 是故君子所居而安者, 易之序也. 所樂而玩者, 爻之辭也.
是故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是以自天祐之,吉無不利.)19)"
≪周易≫은 괘상을 통해서 길흉을 밝힌 것이다.20) 강유가 서로 밀어 변화하니 이것이 사람에게는 得失로 나타난다. 이러한 人事 득실의 결과에 따르는 네 가지 현상을 吉, 凶, 悔, 吝으로 나타냈다. 사람의 人生歷程에서 끊임없이 뒤바뀌며 나타나는 변화의 현상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進退의 상을 드러낸 것이다. 剛柔는 晝夜의 象과 같이 단지 음양의 상이다. 64괘에서 6爻는 天地人 三才의 변화의 道理를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도 천지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吉하지 않음이 없는 경지에 오르게 됨을 말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천지의 뜻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乾坤(자연)의 이치는 단지 음양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매우 簡易한 것이며, 사람의 人事 또한 단지 길흉으로 짜이는 단순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18) ≪周易正義・繫辭傳上≫, 304~305쪽.
19) ≪周易正義・繫辭傳上≫, 306~310쪽.
20) “易只是說箇卦象, 以明吉凶而已, 更無他說.” 黎靖德 編, ≪朱子語類四≫(北京, 中華書局, 1986), 1629쪽.
3. 문자와 ‘象形’
許愼은 ≪說文解字≫ 敍文에서 팔괘와 문자의 창제 원리가 같은 것임을 말하였다. 팔괘는 ‘天象’과 ‘地法’을 살피고 鳥獸의 모양과 땅의 형상을 보면서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로부터 취하여 만들었다 했다. 이는 天象으로부터 鳥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치와 사물을 여덟 가지의 부호로 나타냈음을 의미한다. 문자의 造字原理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같은 것이었다.
1) 文字와 ‘依類象形’
짐승들의 발자국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문자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倉頡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대체로 종류에 따라 象形을 하였으니 이를 ‘文’이라 했다.
그런 후에 상형자에 聲符를 더하였으니 이를 ‘字’라 한 것이다. ‘文’이란 사물 본래의 형상이며, ‘字’란 파생되어 점차로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倉頡之初作書, 蓋依類象形. 故謂之文.
其後形聲相益, 即謂之字. 文者, 物象之本; 字者, 言孳乳而浸多也.)"
허신은 ‘象形’을 造字의 기본 원리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첫 단계에서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 ‘文’이며, 다음으로 이미 만들어진 ‘文’을 합하여 또 다른 글자를 만든 것이 ‘字’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모든 문자는 상형자 즉 ‘文’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依類象形’에서 ‘象形’의 대상은 모든 만사만물이다. ‘鳥獸의 足迹’은 단지 상형의 방법에 대한 契機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허신이 서문에서 “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의 ≪繫辭傳≫句를 인용한 것은 이러한 원리가 문자의 상형에도 적용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近取諸身,遠取諸物,”의 원리는 ≪說文解字≫에서 部首를 세운 방식과도 일치한다. 허신은 9353字의 한자 형태를 540자의 部首로 나누어 설명을 했다. 이 540자의 部首는 바로 사람의 몸으로부터 사물에 이르기까지의 유형에 따라 나눈 것이다. 王蘊芳은 이를 몇 가지의 細目으로 나누어 보았다.
1) 人體를 내용으로 한 부수가 197개이다. 이에는 사람의 형상과 관련된 것 83개, ‘頁’과 관련된 부수 18개, ‘目’과 관련된 부수 10개, ‘口’와 관련된 부수 31개, ‘手’와 관련된 부수 29개, 그리고 ‘足’과 관련된 부수 26개가 있다.
2) ‘器用’을 내용으로 한 부수가 180개이다. 祭祀와 관련된 부수 28개, 전쟁과 관련된 부수 19개, ‘衣’와 관련된 부수 24개, ‘食’관 관련된 부수 24개, ‘住’와 관련된 부수 20개, ‘用’과 관련된 부수 36개, 그리고 ‘器用’과 관련된 기타 부수 29개가 있다.
3) 동물을 내용으로 한 부수가 61개이다. 飛禽과 관련된 부수 20개, 家禽과 관련된 부수 13개, 走獸와 관련된 부수 17개, 그리고 爬蟲類와 鱗甲動物과 관련된 부수 11개가 있다.
4) 식물을 내용으로 한 부수가 31개 있다. 초목과 관련괸 부수 9개와 그리고 식물과 관련된 기타 부수 22개가 있다.
5) 자연계를 내용으로 한 부수가 37개 있다. 天象과 관련된 부수 9개와 그리고 地輿와 관련된 부수 28개가 있다.
6) 數字를 내용으로 한 부수가 12개이다.
7) 干支字를 내용으로 한 부수가 12개이다.21)
허신이 ≪說文解字≫에서 말하는 ‘文字’는 기본적으로 “近取諸身,遠取諸物,”에서의 ‘身·物’에 대한 인식과정을 거쳐 ‘象形’을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1) 王蘊芳 著, 〈漢字造字的哲學宇宙觀之我見〉≪吉林師範學院學報·1994年第3期≫(吉林, 1994), 53쪽.
2) 六書와 ‘孶乳’
허신은 다시 이러한 상형을 포함한 여섯 가지의 造字原理, 즉 ‘六書’ 를 내세웠다. 이것은 상형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자의 효용성을 넓히고자 하는 ‘孶乳’의 방식이었다.
"≪周禮≫에 여덟 살이면 소학에 들어가는데 保氏는 먼저 六書로 國子들을 가르쳤다 했다.
첫 번째가 指事다. 지사란 보아서 알 수 있고 살펴 뜻이 보이는 것으로 ‘上’ ‘下’와 같은 것이다.
둘째로는 象形이다. 상형이란 사물을 그림으로 그렸으니 형체를 따라 구불구불한 것으로, ‘日’ ‘月’과 같은 것이다.
셋째로는 形聲이다. 형성이란 事物을 이름 하되 가까운 사물로 비유를 한 것으로 ‘江’ ‘河’ 같은 것이다.
넷째로는 會意이다. 회의란 여러 종류를 함께 묶어 뜻을 합한 것으로 보아서 그 의도하는 의미를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武’ ‘信’과 같은 것이다.
다섯째로 轉注이다. 전주란 같은 部首를 세워 서로 같은 뜻으로 수용하는 것이니 ‘考’ ‘老’와 같은 것이다.
여섯 번째로 假借이다. 가차란 본래 그 글자가 없지만 소리를 따라 事物의 뜻을 나타내었으니 ‘令’ ‘長’과 같은 것이다.
(≪周禮≫八歲入小學, 保氏教國子先以六書.
一曰指事.指事者,視而可識, 察而見意, 上下是也.
二曰象形. 象形者,畫成其物,隨體詰詘,日月是也.
三曰形聲. 形聲者,以事爲名, 取譬相成,江河是也.
四曰會意. 會意者,比類合誼,以見指撝,武信是也,
五曰轉注. 轉注者,建類一首,同意相受,考老是也.
六曰假借. 假借者,本無其字,依聲托事,令長是也.)22)
여기 六書의 설명에서는 몇 가지의 理論이 제기되었다.
첫째 ‘四體二用’의 주장으로 指事, 象形, 形聲 그리고 會意가 造字의 원리에 속하며, 轉注와 假借는 이의 운용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전주와 가차는 글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글자를 운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文’과 ‘字’에 대한 것이다. 文을 ‘獨體文’으로 보아 象形과 指事의 글자가 여기에 속한다 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獨體文만 있다가 후에 合體字가 만들어졌다. 즉 ‘形’과 ‘形’이 합해진 會意字나 ‘形’과 ‘聲’이 합해진 形聲字가 이에 속한다. 이로써 ‘依類象形’으로 이루어진 ‘文’과 ‘形聲相益’으로 이루어진 ‘字’를 구별하였다.
셋째로는 ‘實’과 ‘虛’의 구분이다. 우주 안에는 ‘事’와 ‘物’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그림으로 실물의 형상을 나타내어 象形이라 했고, 부호로 ‘事情’의 상황을 나타내어 指事라 하였다. 때문에 象形의 글자는 대부분 實體的인 名詞이며, 指事의 글자는 대부분 추상적인 동사나 형용사이다.23)
≪說文解字≫의 문자는 처음 사물 하나에 글자 하나라는 일대일의 대응관계로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사물 하나에 여러 글자를 합하는 방식으로 상형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글자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가령, ≪說文解字≫에서의 象形 글자는 364개로 나타났다. 그러나 순수한 상형글자는 242자이며, 다시 중복되거나 한 개의 형체로부터 演化된 것을 제외하면 단지 110자가 남는다.24)
이는 당시 ≪說文解字≫표제자 9353의 1%를 약간 넘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국의 문자가 상형으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문자는 다양한 운용에 의한 ‘孶乳’의 방식에 따라 증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孶乳 방식은 문자를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1716년에 발간된 淸代의 ≪康熙字典≫은 47,035자를 수록하였다. 현대에는 1994년 中華書局에서 발행한 ≪中華字海≫는 85,568자를 수록하였고, 다시 臺灣에서 2004년에 발행한 ≪異體字字典≫에는 106,230자가 수록되었다. 즉 문자는 거의 무한하게 팽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2) ≪說文解字注・敍≫, 762~763쪽.
23) 林尹 著, ≪文字學槪說≫(臺北, 正中書局, 1971), 56~57쪽.
24) 위의 책, 65쪽.
4. ≪周易≫과 ≪說文解字≫
≪說文解字≫는 中國 최초의 形, 音, 義를 함께 나타낸 완벽한 字典이었으며, 아울러 중국 문자의 造字 및 구성 원리에 대해 매우 명료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허신은 서문에서 말하였듯이 문자의 창제원리가 기본적으로 팔괘와 같음을 주시하였다. 이것은 ≪說文解字≫의 전체 구성과 내용에도 반영되었다.
≪說文解字≫는 전체적으로 ≪周易≫의 체계를 따라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周易≫의 64괘는 모든 존재와 존재의 변화를 하나의 체계로 포괄하는 것이다. 문자도 상형으로부터 시작하여 육서의 원리에 따라 만사만물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9353자의 표제자를 540개의 部首로 나누어 이를 순서에 따라 조직하였다. 이는 〈繫辭傳〉의 “方所에 따라 部類를 모으고 사물에 따라 무리를 이룬다.(方以類聚, 物以群兮.)”와 상통한다. 즉 부수는 類似한 形象들을 같은 부수로 모은 것이다.
540이라는 숫자는 ≪周易≫의 6과 9를 곱한 숫자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6은 地數이며 陰의 極數이다. 9는 天數이며 陽의 極數이다. 540개의 部首는 陰陽의 極數를 곱하여 음양의 두 기운으로부터 생겨나는 萬象을 표현하는 문자의 기능을 상징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540개의 부수는 ‘一’로 시작하여 ‘亥’로 끝난다. ≪說文解字≫에서 ‘一’은 “처음에는 太極이며 道는 하나에서 일어나 천지로 나뉜다. 이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惟初太極, 道立於一, 造分天地, 化成萬物.)”25)라했다.
천지만물이 太極으로 시작되었듯이 문자도 태극에 비유하여 ‘一’ 로부터 순서를 정한 것이다.
또한 部首에서 ‘亥’를 맨 뒤에 두었는데, “시월은 微陽이 일어나니 盛陰을 맞는다.(十月微陽起, 接盛陰.)”26)라 해석했다. 당시의 曆法에서 ‘亥’는 시월을 의미한다. 시월은 陰의 기운이 왕성한 때여서 陰極陽生의 이치에 따라 땅속에서 양의 기운이 발동하기 시작하는 때다.
아울러 ‘亥’의 小篆體에 대해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다. 乙에서 땃고, 웃고 있는 아이를 품은 것을 상형하였다. (一人男, 一人女也. 從乙, 象懷子咳咳之形也.)”27)고 했다. 어린 아이의 형상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나타낸 글자로 부수의 끝을 맺었다.28)
이는 ≪周易≫ 64괘의 끝 괘인 〈未濟卦〉와 공통점이 있다. 즉 이 괘는 각 음양의 효가 不正位의 위치에 있지만 음양이 正應하는 위치에 있어 남녀가 상응하는 의미가 있다. 〈未濟卦〉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說文解字≫는 ≪周易≫의 ‘生生不息’의 사상으로 문자의 전체 체계를 정리한 것이다.
허신은 ‘象’을 바탕으로 하는 문자의 造字原理 자체가 이미 ≪周易≫의 팔괘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六書의 이론을 정리하였다. 즉 팔괘가 64괘로 중첩되어 모든 변화를 드러낼 수 있듯이 문자도 ‘象形’의 중첩을 통하여 늘어나는 만사만물을 나타낼 수 있게 한 것이다.
25) ≪說文解字注≫, 1쪽.
26) ≪說文解字注≫, 759쪽.
27) ≪說文解字注≫, 759쪽.
28) 참조. ≪辞书研究2001年05期≫(上海, 上海辞书出版社, 2001), 姚淦铭 著, 〈说文编纂的易哲学视界〉, 76~78쪽.
이렇듯 허신은 ≪周易≫의 체계를 본떠 통합적인 시각으로 ≪說文解字≫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사물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지칭하면서 만들어진 문자지만 이를 삼라만상의 유기적인 통합구조 속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자는 근본적으로 ≪周易≫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즉, 문자는 주로 대상의 외재적 表象이나 대상의 개별적 특징 또는 그 다양성에 중점을 둔다. 또한 문자는 글자의 형태로 사물을 지칭하고 대상을 定義하며, 無形의 대상에 대해서도 글자의 형태로 나타낸다. 다시 말해 문자는 개별적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통합적인 체계로 조직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字書는 점차 ≪說文解字≫의 이러한 구성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허신은 ≪說文解字≫를 통해 이러한 사상을 담아내는 표현 수단으로서의 문자적 의미를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보인다. 다만 문자가 본래 개별적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문자는 갈수록 煩多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괘는 대상의 내재적 본질이나 보편성 또는 전체적인 유기적 연계성에 중점을 두고 파악한다.
팔괘는 삼라만상을 부호로 總括하고, 부호의 변화를 통해 사물의 존재와 변화의 ‘道理’를 상징한다. ‘以通神明之德’은 추상적인 세계의 본질과 規律에 대한 깨달음이며, ‘以類萬物之情’은 구체적인 물질세계의 본질과 규율에 대한 파악이라고 할 수 있다.
≪周易≫은 사람이 자연과 하나임을 보여준다. 占卜 자체가 天人合一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팔괘와 문자는 만상의 象을 보고(觀象) 이에 대해 다시 상(取象)으로 상징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상통하는 표현 체계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반영의 방식과 목적이 있다.
5. 結 語
팔괘와 문자는 ‘象’으로 뜻을 나타낸다는 공통적인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자는 ‘象形’의 ‘初文’을 ‘形聲相益’하는 ‘孶乳’의 방법에 의해 거의 무한대로 불어날 수 있다. 현재 100,000字가 넘는 문자의 數가 이를 입증한다. 문자의 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문자 본래의 기능에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즉, 문자나 글의 간결성과 명확성이 떨어지면서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許愼은 이제까지 한 번도 정리를 거친 적이 없어 산만하게 불어난 문자를 통합적인 시각으로 하나의 체계를 세워 편집하였다.
≪說文解字≫는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허신이 채용한 체계는 ≪周易≫을 본뜬 것이었다.
첫째로, 모든 문자를 통합적인 체계로 정리하였다. ≪周易≫은 만물을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 속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人事의 吉凶禍福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비해 문자는 본래 사물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상형하여 만들어졌지만 허신은 이를 유기적인 통합체로 묶고자 하였다. 문자의 개별적인 한계를 벗어나 천지만물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는 체계를 세우고자 한 의도라 할 수 있다.
둘째로, 팔괘의 연역방식으로 문자의 造字原理를 규명하였다. 즉, 팔괘를 64괘로 演繹한 원리에서 ‘形聲相益’의 방법으로 造字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즉 하나의 部首 안에서의 글자 모두는 상호 유기적인 관련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部首는 다시 ‘一’로부터 시작하여 ‘亥’로 끝나는 통합적인 구성으로 조직되었다.
이렇게 하여 모든 문자는 540개의 부수로부터 ‘孶乳’되었고, 540개의 부수 또한 陰陽의 極數인 6과 9를 근거로 한 것임을 나타냈다.
≪說文解字≫는 이렇듯 문자 하나하나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여 문자 본래의 기능이 단지 사물 하나를 대표하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즉 모든 사물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삼라만상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의미를 문자의 체계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문자가 사물의 표상을 나타낼 뿐 사물 사이의 역학관계나 사람과 천지만물의 관계 등은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을 ≪周易≫의 사상과 형식을 援用하여 보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女’字는 단지 아이를 낳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고,29) ‘男’字는 경작을 하는 모습을 나타낸것이다.30)
그러나 ≪周易≫은 천지와 남녀, 그리고 남녀와 사회의 人事를 집약한다.
"천지가 있고나서 만물이 있으며, 만물이 있고서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고서 부부가 있으며, 부부가 있고서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고서 군신이 있으며, 군신이 있고서 상하가 있고 상하가 있은 후에 예의가 확립된다. (有天地然後有萬物, 有萬物然後有男女, 有男女然後有夫婦, 有夫婦然後有父子, 有父子然後有君臣, 有君臣然後有上下, 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31)"
≪周易≫에서는 人事가 천지만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사회의 규범인 禮義도 이로부터 확립된다. 이렇듯 ≪周易≫은 사물 하나하나를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모두를 하나의 총체적인 유기체로 파악한다.
허신은 ≪說文解字≫의 구성에서 ≪周易≫의 이러한 의미를 살려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점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 후의 字書는 점차 이러한 의미가 사라졌고 이제는 단지 글자나 어휘의 설명에 머물면서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문명도 조각난 형태로 팽창을 할 뿐이며, 인간의 가치와 조화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고 보인다. 특히 문명을 善導해야 할 학문이 오히려 문명에 편승해서 팽창위주로 발달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29) ‘女’字가 무엇을 상형했는가에 대해 ≪說文解字≫의 說解만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김용옥 교수가 이를 ‘애기를 낳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라고 본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김용옥 저, ≪여자란 무엇인가≫ (서울, 통나무, 2002), 118쪽.
30) “从田力, 言男子力於田也” ≪說文解字注·男部≫, 705쪽.
31) ≪周易正義・序卦傳≫, 396쪽.
<參考文獻>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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