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형상도 없고 내용도 없는
순수의식이다.
내가 말하는 순수의식은 우주의 공간과 다를 바 없다.
공간은 존재한다.
공간은 모양이 없다.
공간은 무한하다.
공간은 늘 현존한다.
별들은 태어나고 죽지만 공간은 그대로 있다.
행성들은 오고 가지만 공간은 그대로 있다.
모두가 태어나고 죽지만 공간은 그대로 있다.
영원히.
변함없이.
영향 받지 않은 채.
가장 깊은 수준에서, 당신은 이와 같다.
참 당신은 이렇다.
당신은 순수의식이다.
당신은 고요한 현존이다.
경험들이 온다.
경험들이 간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당신은 그대로 있다.
고요히, 변함없이, 영향 받지 않은 채.
감정들이 일어난다.
감정들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가장 깊은 수준에서 당신은 그대로 있다.
고요히, 변함없이, 영향 받지 않은 채.
삶이 온다.
삶이 간다.
하지만 가장 깊은 수준에서 당신은 그대로 있다.
고요히, 변함없이, 영향 받지 않은 채.
가장 깊은 수준의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이 영원임을 아는 것이다.
가장 깊은 수준의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이 신의 순수의식임을 아는 것이다.
충족
현존하는 순간들이 늘고
현존에 더욱 뿌리내릴 때
당신은 내면 가득 충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정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이 순간에 충족되면 마음이 짊어진 마음의 수준에서는,
공허하다는 느낌이 있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
그래서 당신은 충족되고 싶어하지만, 당신의 밖에서 충족을 추구한다.
당신은 미래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는 없다.
미래의 충족을 추구할수록
충족의 참된 근원인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현존하면 충만함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속에 있을 때 당신은 존재의 풍부함 속에 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당신을 가득 채울 것이다.
태양의 따스함이 당신을 가득 채울 것이다.
산들바람의 애무가 당신을 가득 채울 것이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당신을 가득 채울 것이다.
호흡이 당신을 가득 채울 것이다.
당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순간에서 올라오는 이 충만함뿐.
이 순간의 풍부함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을 내맡겨라.
지금 이 순간은 늘
당신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보물들을
한없이 제시하고 있다.
먼 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새 한 마리.
바다기슭에 찰싹찰싹 부딪치는 파도들.
흐르는 강물.
갓 피어난 꽃 한 송이.
부드러운 빛을 뿌리며 바다 위에 떠 있는 보름달.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
떨어지는 낙엽.
지저귀는 새 한 마리.
천둥과 번개.
지나가는 연인들.
지금 이 순간이 베푸는 모든 것에 완전히 열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충만할 것인가?
미래에 충족되기를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까?
지금 이 순간에 활짝 가슴을 열어라.
자신을 채워라. 지금!
땅 위의 천국
우리가 아는 세계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태초부터 완벽한 상태로 존재했다.
늘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보이지 않는 그 세계.
그곳은 신의 세계다.
땅 위에 있는 천국.
상상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이롭고 놀라운 세계.
신비한 세계.
시간이 없는 세계.
영원한.
완벽한.
그곳은 순간순간
당신과 접촉하며
당신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세계다.
나무들, 꽃들, 새들, 동물들과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모두
당신과 이 완벽한 세계를 함께 하는
사랑하는 친구들로서 경험된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현존으로서,
신의 신성한 표현으로서 경험된다.
내가 말하는 이 세계는 신의 몸이다.
그 세계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절대 현실이다.
나는 그 세계를 체험으로 안다.
나는 나 자신의 권위로써 말한다.
당신에게 그 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곳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
당신은 홀로 가야한다.
신의 세계는 실재한다.
그 세계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 세계는 당신이 아는 세계 속에 숨겨져 있다.
그 세계는 당신이 사는 세계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세계로 가는 입구는
당신 안에 있다.
어떤 점에서는, 당신이 그 입구다.,
1.
우리가 아는 세계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태초부터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다.
나는 당신이 끝없이 재잘거리는 생각과 마음의 미로에서 빠져나와
내면에 있는 깊고 불변하는 침묵의 자리에 이르도록 당신을 안내할 수 있다.
2.
마음속에 있을 때 나는 현존하지 않는다.
나는 기억된 과거나 상상된 미래 속 어딘가에 있다.
그것은 환상이다.
그것을 실제라고 믿으면 환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현존으로 깨어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여기에 있는 유일한 목적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순간순간 당신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참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생각하는 마음의 환상적인 세계에 빠져있을 것인가?
마음은 지금 이 순간으로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실제로 현존하는 것에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당신은 마음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현존하기를 선택한다.
당신은 미래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는 없다.
미래의 충족을 추구할수록
충족의 참된 근원인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베푸는 모든 것에 완전히 열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충만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 활짝 가슴을 열어라.
풍부함은 내면의 느낌이다.
풍부함은 현존의 결과로 일어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찬미이게 하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찬미하라.
3.
친절하지 않게 행동하면 불친절한 사람을 끌어들일 것이다.
화를 내거나 비난하면 화내거나 비난하는 사람을 끌어들일 것이다.
당신이 자상하며 친절하고 너그럽다면
자상하고 친절하며 너그러운 사람들이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당신이 다정하다면 친구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이처럼 단순하다.
유유상종!
4.
우리의 목적은 이원성으로 들어가 이원성을 경험하고
하나임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면
이원성이 우리 안에서 완전히 균형 잡히게 해야 한다.
에고는 지옥과 다를 바 없자만 우리는 점차 에고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생각과 기억, 견해와 믿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통제하고, 통제 당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원적이지만 우리는 이원성 안에서 급격히 균형을 잃었다.
참된 삶으로 깨어나려면 중심으로 가야 한다.
깨어나는 첫 단계는 에고의 영역에 있는 이원적 경험세계가
내면에서 균형 잡히도록 하는 것이다.
판단과 욕망을 초월함으로써 뜨거움과 차가움, 길고 짧음, 행복과 슬픔,
기쁨과 고통, 신뢰와 의심, 받아들임과 거부 사이에 있는 중심점으로 나올 수 있다.
모든 경험은 이원성 안에서 존재한다.
거절당해보지 않으면 어찌 받아들임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슬픔을 모르고서 어찌 행복을 알 수 있겠는가?
5.
영은 낮은 영역들로 가는 문을 열면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영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영은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삶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영적 영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가?
당신이 끊이지 않는 고통과 상처, 분노의 느낌들로 영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당신의 두려움과 걱정의 느낌들로 영에게 보내는 느낌은 무엇인가?
당신이 무력감, 우울과 절망의 느낌들로 영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당신이 탐욕, 경쟁과 질투의 느낌으로 영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은 육체가 없다.
영은 당신이 살고 있는 물질세계를 볼 눈이 없다.
영은 들을 귀가 없다.
영은 물질세계를 맛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을 수 없다.
영은 당신을 통하지 않고는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당신이 여기에서 경험하는 삶과 모든 감정들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영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지만 당신이 실제라고 믿기에
영은 그것이 실제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영은 낮은 영역들로 가는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영은 아래에 있는 이곳에는 지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신이 이제껏 착각했다는 것을 영이 알게 하라.
당신이 환상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영이 알게 하라.
당신이 경험한 것은 실제가 아니라고 고백하라.
이런 식의 교류는 영이 긴장을 풀고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굳건히 자리 잡는다면
영은 당신을 통해 서서히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6.
성장은 시간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기에,
성장은 마음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기에,
그것은 환상의 세계이지만 그 길 밖에 없다.
에고가 가져오는 것은 모두 영혼이 느끼는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에고는 영혼을 대신한 여행을 성공리에 마쳤는가?
이원성은 우리의 교실이며, 삶은 스승이다.
모든 배움은 이원성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영혼은 알고 있다.
고통은 신의 사자다.
고통은 기쁨을 가르치기 위해 당신의 삶에 들어 왔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고통을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이며,
그러면 고통은 당신에게 숨겨진 비밀을 드러낼 것이다.
당신은 기쁨으로 놓여날 것이다.
슬픔은 행복으로 가는 입구다.
그리고 분리는 하나임으로 가는 입구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원성의 양 측면을 함께 껴안아라.
당신의 삶이 균형 잡힐 것이다.
당신은 중심으로 인도될 것이다.
7.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분리의 환상을 만들어내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찌하여 생각하는 마음의 세계에 계속 갇혀 있는가?
이원성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부인하고 긍정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임에 이를 수 없다.
하나임이라는 맥락에서는 긍정성과 부정성은 동등하다.
하나 없이는 다른 하나를 알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이원성이 균형 잡힐 때 당신은 모든 것의 한가운데,
정수에 존재하는 하나임을 드러낸다.
8.
에고는 편히 휴식하며 내려놓아야 한다.
에고는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에고는 이해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에고는 자신의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에고는 자신이 분리되어 있으며, 분리를 극복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편히 휴식하며
당신을 지금 이 순간의 진리와 현실로 풀어주는 것이다.
에고는 현존의 진리를 실천할 수 없다.
우리가 길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게 된 것은 에고로 하여금
현존의 진리를 실천하게 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에고는 이원성 안에서 존재한다.
에고의 수준에서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는 이원성 안에서 균형 잡힌 상태이다.
이는 현존으로 가는 문을 연다.
마음의 수준에 있는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드릴 때
그리고 현존으로 깨어날 때 당신의 마음은 점점 균형 잡힐 것이다.
에고는 신뢰와 헌신의 자리로 가야 한다.
9.
우리를 방황하게 하는 원죄는 판단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판단을 초월하는 길고 미묘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판단은 용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최후의 시험이다.
그 시험을 통과하면 판단은 당신을 놓아줄 것이다.
판단을 초월하려면 판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판단하고 있음을 알라.
자신이 판단받고 있음을 알라.
나는 너를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더 이상 너를 믿지 않을 뿐이다.
당신이 판단을 알게 되고 판단을 판단 없이 받아들일 때
판단은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조건 없이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은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존재들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당신에게 고통이 일어나는 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아픔과 슬픔, 상실감이 떠오르면 그 느낌들을 충분히 느껴라.
그런 느낌들은 지금 이 순간의 일부다.
하지만 진정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그 일을 경험한다면,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판단을 했으며,
그 판단으로 인해 당신은 분리될 것이다.
이처럼 단순하다.
10.
마음의 세계로 들어갈 때는 오직 의식적으로 의도하여 들어가되
지나치게 관여함으로써 길을 잃지는 말라.
마음의 수준에 있는 삶의 긍정적인 측면들에 집착하거나
부정적인 측면들을 거부하지 말라.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라.
11.
깨어남의 초기 단계에는 희열에 넘치며 심오한 현존의 깨어난 상태를 경험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현존으로 더욱 깊어지고 지금 이 순간에 더욱 뿌리내리게 될 때
당신이 의식의 빛을 더 많이 마음에 가져갈 때 서서히 전환이 일어난다.
마음은 당신을 즉시 귀환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느슨함과 순종은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날 어떤 에고도 없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집은 마음에서 현존으로 옮겨간다.
당신은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을 마칠 때면 즉각 당신의 새로운 집인 현존의 깨어난 상태로 돌아간다.
이 전환이 일어날 때 당신은 삶에서 주요한 변화를 거쳤다.
당신은 이제 깨어 있다.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
12.
내가 더 이상 두려움과 욕망에 지배되지 않으며
미래에는 충족될 거라는 약속에도 유혹당하지 않는다면
나는 두려움과 욕망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현존하기를 선택하라.
오직 의식적인 의도로써 생각하라.
13.
느낌들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느낌이라는 현상을 통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갖는 것은
육체를 입고 있을 때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존재의 다른 차원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풍부함과 생명력을 가져온다.
하지만 느낌들과 올바로 관계하려면 몇몇 근본원칙을 이해해야 한다.
느낌들은 순간에 떠오른다.
테니스 시합을 하면서 완벽한 패싱샷을 성공시킬 때 일어나는 승리의 느낌은
그 순간에만 속한다.
우리가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반응하고 느낌들을 완전히 느끼도록
자신에게 허용할 때 우리의 몸과 삶은 생명력으로 충만해진다.
느낌들은 시간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 느낌들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라.
그 느낌들을 책임 있게 표현하라.
풍부하게 보상받을 것이다.
느낌들과 감정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느낌들은 순간에 떠오르면 당신을 통해 흘러간다.
감정들은 당신이 집착하여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 느낌들이나
내면에 억누른 느낌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은 내면에 억눌려진 이런 감정들을 놓아 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을 과거 속에 가두고 있다.
일단 과거로부터 온 감정들을 놓아 보내면 당신은 현존 속으로 더 깊어질 수 있으며
느낌들이 순간에 떠오를 때 그것들과 올바르게 관계할 수 있다.
14.
깨어날 때 당신은 참 스승이다.
오직 당신만의.
지금 깨어나라.
당신인
참나로.
15.
삶은 죽음의 자궁이며
죽음은 삶의 자궁이다.
태어난 것은 죽을 것이다.
죽는 것은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시작하는 것은 끝날 것이다.
끝나는 것은 다시 시작할 것이다.
끝 속에 처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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