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절 왜 지장 신앙의 실천인가
제 2절 지장 신앙이란 무엇인가
제 3절 지장신앙의 사상적 기초
제 4절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제 5절 지장경의 사상과 가르침
제 6절 지장신앙의 신행과 실천
제 7절 지장신앙의 의례와 기능
제 1절 왜 지장 신앙의 실천인가?
불교의 가르침은 참으로 광대하고 넓어서 그야말로 거대한 가르침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가르침은 질서정연한 사상적 틀을 구성하고 있으며 받아들이는 그릇에 따라 근기에 맞게 설해져 있다. 예를 들자면 인과(因果)의 가르침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보게 하는 가르침이다. 또 반야사상은 나를 진리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지혜를 주는 가르침이며, 법화와 화엄의 사상은 우리 스스로가 보살과 부처로 살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가르침이다.
이렇게 다양한 불교의 사상과 가르침 속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과(因果) 사상과 업보윤회(業報輪回) 사상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인과를 믿지 않고 윤회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문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이것만 보아도 인과의 가르침이 불교의 기본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인과(因果)란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인과법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사슬을 이루고 우리의 삶을 지배함을 말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과거의 나를 알려거든 현재의 나를 보고 미래의 나를 알려거든 현재 자신이 행하는 행위를 보라고 했다. 곧 인과란 자신이 지은 행위에 의해서 자신의 삶과 운명이 결정됨을 말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인과란 바로 과거를 보고 현재를 알며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시작은 인과를 깨침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인과의 법칙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업(業)이다. 업이란 내가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내가 선한 행위를 하면 그것은 선업(善業)이 되는 것이며 악한 행위를 하면 악업(惡業)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업에 의해서 일가친족 관계, 사회관계, 국가와 세계와의 관계가 결정되어진다.
이처럼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 되는 인과의 가르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전이 바로 지장경이며, 인과법을 믿고 참된 행위와 실천을 강조하는 신앙이 바로 지장신앙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지장경의 가르침과 지장신앙으로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올바른 신행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제 2절 지장 신앙이란 무엇인가?
1. 지장보살의 개요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하신 뒤에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無佛時代)'의 교주이다. 지장경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받는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라는 유촉을 내리고 계신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서 윤회하는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우시고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보살행을 실천하고 계신다. 특히 지장보살은 가장 고통이 가혹한 지옥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 한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원(悲願)을 세우신 보살님이다.
일반적으로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 삶의 목표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중생을 위해서라면 대승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성불마저도 기꺼이 포기한 보살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화려한 보살의 모습이 아닌 머리를 깎고 석장을 짚고 있는 평범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조성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지장신앙의 발생
지장보살이 하나의 대승보살로 신앙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무렵으로 중앙아시아의 타림분지에서부터 출발한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과 《지장보살본원경》을 중심으로 한 지장신앙이 대중적인 신앙으로 널리 신봉되기 시작한 곳은 바로 중국이다. 지장신앙이 발전할 당시 중국은 국가권력에 의한 극심한 불교 탄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부처님의 법이 멸할 지도 모른다는 법멸(法滅)의 위기의식 속에서 말법(末法) 사상이 널리 퍼져나갔다. 이 같은 말법사상과 함께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지장신앙은 재래의 명부시왕 신앙과 습합하여 민간 대중신앙으로 널리 신봉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명부시왕과 결부되어 망자의 천도와 복을 빌어주는 신앙으로 정착해 왔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명부전의 주존(主尊) 보살로 모셔져 있으며 영가천도의 주존으로서 관음신앙과 함께 우리나라 양대 신앙으로 널리 신봉되고 있다.
제 3절 지장신앙의 사상적 기초
1. 말법사상
불교의 시간관 가운데 삼시(三時)사상이라는 것이 있다.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시대로 흘러 가면서 점차 정법이 쇠퇴해 간다는 사상이다. 이 가운데 말법(末法)시대란 부처님의 가르침은 존재하지만 이에 따라 수행하는 자도 없고 또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시대를 말한다. 이러한 말법 사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법이 점점 쇠퇴해서 마침내 법이 없는 암흑기에 들어간다고 본다.
중국에서 이 말법사상은 574년 북주 무제의 파불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는 곧 법이 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왔고 지장신앙은 이처럼 법이 멸하리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시절에 널리 신봉되기 시작했다.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의 교주'로 인식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무불(無佛) 시대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점차 없어져 가는 말법시대라는 인식을 낳았다. 그래서 지장삼부경의 내용에서도 말법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2. 인과응보와 지옥사상
미혹의 세계에 속한 중생들 가운데서도 특히 지옥·아귀·축생을 일컬어서 삼악도(三惡道)라 한다. 이 삼악도란 자신이 지은 온갖 악업(惡業)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는 세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이 스스로 지은 죄업의 대가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 사상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지장보살은 바로 이렇게 자신이 지은 과보로 인해 지옥고를 받는 지옥중생의 구제를 서원한 보살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유명교주 지장보살(幽冥敎主 地藏菩薩) 즉 '어두운 세계의 교주'로 신봉되고 있다.
지장경에 따르면 지옥은 극락과는 반대방향인 인간세계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즉 인간세계의 동쪽에 대 철위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어둡고 깊어서 해와 달빛이 없다. 그곳에는 무간지옥, 아비지옥 등 수 많은 지옥이 있고 그 곳에서 많은 중생들이 자신들이 지은 업보(業報)에 따라 벌을 받고 있다고는 한다.
이처럼 지장경은 지옥의 가혹한 고통을 설명하면서 인과응보의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지장경에서는 착한 업을 쌓으면 착한 과보를 받고 악한 업을 쌓으면 악한 업을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人惡果)'라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지옥이라는 세계를 통해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자신의 업보로 인해 고통받는 중생들이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석장으로 지옥문을 열고 보주에서 나오는 빛으로 지옥의 어둠을 밝혀주신다고 한다.
3. 지장보살의 본원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고 중생의 처지에서 그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것을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한다. 이는 대승불교 보살정신의 보편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서도 지장보살의 동체대비 사상이야말로 가장 절박하고 위대하다. 왜냐하면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지옥 중생들과 자신을 하나로 보는 자비관(慈悲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중생의 입장으로 내려오는 것은 모든 보살이 공통적으로 세운 총원(總願)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이에 더해서 지장보살만의 서원 즉 별원(別願)이 있다. 지장은 '미래세가 다하도록 죄고에 빠진 중생을 먼저 제도하여 보리에 이르도록 하지 않으면 끝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이것은 부처님에게서 수기를 받아 나중에 부처님의 자리를 오르는 '보처보살(補處菩薩)'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성불을 포기한 보살이 된다. 바로 이같은 지장보살의 비장한 서원이 바로 지장신앙의 출발점이 된다.
4. 회향(回向)사상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가운데는 말법중생의 하근기 중생들의 해탈을 위해서 자신의 수행 공덕을 끊임없이 회향한다는 사상이 발전했다. 여기서 '회향(回向)'이란 자기가 닦은 일체의 선근 공덕을 남을 위해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지장보살은 말법시대의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공덕을 회향하고 있다.
이같은 사상은 곧 우리불자들도 자신의 기복만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지장의 이 본원 정신을 닮아 스스로 지은 복을 남을 위해 회향할 줄 알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제 4절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보살은 앞서 살펴 본 대로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미륵 부처님이 출현할 때까지 56억 7천만년 동안 이른바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의 교주'이다. 지장보살은 이처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육도에 몸을 나투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운 대원대비(大願大悲)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특히 지옥의 극심한 고통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어두운 세계의 교주(幽明敎主)' 또는 '남쪽을 교화하는 주존(南方化主)'으로 신봉되고 있다. 이런 지장보살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장의 뜻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어 '크시티가르바(Kisitigarbh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다. 크시티가르바란 '대지(大地)의 태(胎)' 또는 '자궁(子宮)'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땅을 감싸고 있는 보살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바로 땅의 보살이며 대지(大地)의 보살이다. 인간을 비롯해서 자연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대지는 많은 덕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물을 생장발육 시키며, 모든 중생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지이다. 바로 이런 대지가 가진 덕성을 일곱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칠지의(七地義)'라고 한다. 칠지의는 지장보살의 위덕을 대지가 가진 위덕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1) 지(地): 칠지의(七地義)
능생의(能生義) - 대지는 능히 일체의 모든 생물을 생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능히 일체 모든 중생을 설법으로 성숙시키는 것을 말한다. 능섭의(能攝義) - 대지는 일체 모든 생물을 섭수하여 자연 속에서 편안히 쉬게 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묘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큰 깨달음의 성(大覺城)안에 편안히 쉬게 함을 말한다.
능재의(能載義) - 대지는 일체의 광식물들을 능히 떠받치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실어 저 피안(彼岸)의 언덕에 이르게 함을 말한다.
능장의(能藏義) -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악으로부터 잘 보호함을 말한다.
능지의(能持義) -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보존하고 지킨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는 것을 말한다.
능의의(能依義) - 대지는 일체만물의 의지처가 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모든 중생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됨을 말한다.
견뇌부동의(堅牢不動義) - 대지는 성품이 견고하고 실다워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세운 지장보살의 심성도 견고해서 감히 파괴되지 않음을 말한다.
2) 장(藏): 삼덕장(三德藏)
지장보살 할 때 장(藏)은 비밀, 포용, 함육(含育)의 뜻을 가지고 있다. 지장보살은 깊은 선정 가운데서 일체중생의 잘못을 멈추게 하고 지극한 선에 나아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올바르게 성숙시키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한다.
장에는 지장보살님이 '갖추고 있는(藏)' 세 가지 덕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지덕(智德)', 모든 무명과 번뇌, 그리고 고통을 끊는 '단덕(斷德)', 모든 중생들에게 대원의 은혜를 베푸는 '은덕(恩德)'이 바로 지장보살에게 갖추어진(藏) 세 가지 위덕이다.
이처럼 '칠지의'와 '삼덕장'을 갖추신 지장보살은 철저한 비원(悲願)을 세우고 지옥을 항상 계시는 곳으로 삼고 육도(六道)를 능히 교화(能化)하시는 자존이다.
2. 성불을 포기한 보살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한 생에 닦은 수행의 결과로만 부처님이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부처님과 같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과거 전생부터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무수한 보살행과 수행을 닦고 닦아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신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되기 전에 깨달음을 위해 보살행을 행하고 수행하던 때의 이야기를 '전생담(前生談)' 이라고 한다. 즉 '전생 이야기'란 뜻이다.
물론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이 되기까지의 전생담이 있다. 지장보살의 전생담을 살펴보면 자신이 지은 죄업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지옥중생들을 모두 다 구제하지 않고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원을 세우고 계신다.
"이 뒤로 백 천만억겁 동안에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三惡道)에서 죄로 고통받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지옥·축생·아귀 등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와 같이 죄의 업보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불한 뒤에야 제가 바야흐로 정각(正覺)을 이루겠습니다."《지장보살본원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스스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비원(悲願)을 세우시고 모든 중생이 다 구제되지 않는 한 자신도 성불하지 않겠다고 성불을 유보했기 때문에 '대비천제(大悲闡提)' 또는 '천제보살(闡提菩薩)'이라고 불린다. 천제란 다른 말로 '일천제(一闡提)'라고도 하는데 '단선근(斷善根)' 혹은 '신불구족(信不具足)'으로 번역한다. 즉 선근을 끊고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천제란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은 왜 성불하지 못하는가? 지장보살은 자신에게 허물이 있어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의 비원을 세워서 열반에 들지 않고 스스로 악취에 머무는 것이다. 이처럼 큰 원을(大願) 세워서 스스로 성불을 포기한 보살이기 때문에 대비천제라고 부른다. 또 모든 중생들이 다 구제된 지극히 선한 세상이 아니면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이를 '극선불성불(極善不成佛)'이라고도 부른다.
3. 업(業)을 소멸시키는 보살
지장보살은 숙업(宿業-오랜 전생에서부터 지어 온 무수한 업)에 의하여 육도를 윤회하며, 삼악도에 빠져 죄고를 받는 중생들의 교주이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운명은 업(業)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불교의 업보(業報) 사상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보(業報)에 의해서 결정지어진 죄고는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업보는 자신이 받는다는 것이 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업설에 의하여 선한 행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행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가 인과응보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지장보살의 구제력을 높이 선양하고 있는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서도 인과의 이치를 믿지 않는 것을 무인(無因)론 이라고 비판하고, 인과를 부정하는 자들을 일컬어서 단멸론(斷滅論)자라 비난하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한번 지은 업보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불법을 믿지 않고 인과법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인과의 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생을 통해 지은 이 인과(因果)의 사슬을 끊고 전생에 지은 모든 나쁜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말미암아 업(業)의 사슬을 끊을 수 있으며, 모든 악업을 참괴하고 참회하는 자는 전생에서 지은 일체의 악업을 모두 소멸하게 되어 남음이 없게된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인과의 사슬이 무겁지만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그 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은 악업을 모두 참회하는 자는 일체의 모든 악업을 소멸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이처럼 스스로 참회하고 견고한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수승한 중생은 이렇게 참회와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시킨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자신의 악업으로 인한 죄장(罪障)을 감내하지 못하는 말법시대에, 그것도 삼악도에 빠진 하근기 뭇 중생들은 어떻게 이 인과의 사슬을 벗어나고 업보를 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불사가의하고 수승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과 비원에 의하여 구제될 수 있다고 지장경은 설한다.
4. 근기에 따라 제도하는 보살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 윤회하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구제하기 위해 중생들의 근기에 알맞게 몸을 나투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릇에 따라 무서운 마왕의 모습도 필요하고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도 필요하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의 서품에 보면 지장보살은 각기 다른 중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대범왕과 세계를 주재하는 신인 대자재천의 몸에서부터 염마왕의 몸, 심지어는 지옥졸의 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설법하고 있다.
"이 선남자(지장보살)는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이 불가사의한 온갖 공덕과 견고한 서원과 용맹정진을 성취하고는,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시방세계에서 어떤 때는 대범왕(大梵王)의 몸을 나타내어 유정들을 위해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한다. 혹은 대자제천의 몸이 되고, 혹은 염마왕의 몸, 지옥졸의 몸이 되며, 혹은 지옥의 모든 유정들의 몸이 되는 등 이같이 무량 무수한 다른 종류의 몸이 되어 저 유정들을 위하여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고, 그 응하는 바에 따라 그들을 삼승의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편안히 둔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중생구제를 위해 한가지 모습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 요즘말로 하면 눈높이 방식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신다고 볼 수 있다.
《지장보살본원경》'분신집회품'에 보면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수기를 내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각각 차별이 있으므로 여러 몸을 나투어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며 분신(分身)의 까닭은 중생의 근기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지장보살이 서원하시기를
"제가 나타낸 몸이 백 천만 억 항하사 세계에 가득하여, 한 세계마다 백 천만억 몸을 나투고, 한 화신(化身)마다 백 천만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께 귀의 공경하게 하며, 나고 죽음을 영원히 여의고 열반의 기쁨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 원컨대 세존께서는 다음 세상의 악업 중생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장보살본원경》
5.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신 보살
지장보살의 형상은 일반적으로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등 다른 불·보살상이 고대인도 귀족들의 복식을 본떠서 화려하게 조성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장보살은 평범한 중생의 모습에 가까운 소박한 모습을 하고 계신다.
"그 때 지장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신통의 힘으로 성문의 모습을 하고 남쪽으로부터 왔다. … 참 대사인 지장보살은 두타의 공덕을 모두 갖추고 성문의 색상을 나타내고서 부처님께 와서 머리를 조아리다. … 여섯 가지 신통으로 세간을 비추면서 그는 지금 곧 여기 오리니 용맹스런 그의 이름 지장으로서 출가의 위의를 나타내었데."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스스로 중생구제를 위해서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의 '천제보살(闡提菩薩)'로서 뭇 중생들의 처소인 세간에 스스로 머물면서 죄고에 빠진 육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본원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이런 모습은 언제나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보살은 불교신앙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히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적인 수행자상인 성문(聲聞)에 대해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지장보살에 이르러서 조화롭게 화합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대비(大悲)와 대원(大願)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성문과 보살이라는 이승(二乘)의 대립을 탈피한다. 성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살과 성문을 융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중생구제를 위해서라면 모습(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지장보살의 특징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대승의 보살이면서도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그것은 안으로는 보살의 대행(大行)을 가지고 계시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보다 친근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이다. 이처럼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을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나툰 성문'이라는 뜻에서 '응화성문(應化聲聞)'이라고 한다.
6. 인연없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보살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無佛時代)'에 중생을 교화하는 교주로 불린다. 이는 곧 현세의 부처님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오시기 전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란 뜻이다. 흔히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년 후에 오신다고 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육도(六道)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 바로 지장보살님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이름을 지장이라고 하는 보살마하살이 있다. 그는 이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대겁에 다섯 가지가 혼탁한 악한시대(五濁惡世)의 '부처 없는 세계(無佛世界)'에서 유정(有情)을 성숙시켰다." 《지장보살본원경》
"이때 지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백 천만 억 세계에 두루 이 몸의 형상을 나투어 일체업보중생을 구하여 빼내겠습니다. 만일 여래의 큰 자비의 힘이 아니면 곧 이와 같은 변화를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또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으니, 아일다(미륵불)가 성불하여 올 때까지 육도중생을 제도·해탈케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원컨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장보살본원경》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란 오탁악세(五濁惡世)로 인해 중생들의 근기가 둔하여 수행다운 수행을 하는 이가 없고 깨달음을 얻는 이도 없고, 겨우 부처님의 정법만 남아있는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급기야는 법이 소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말법시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지장보살님은 말법시대에 근기가 낮아서 불법에 귀의하지 않고 방황하는 인연 없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다.
그러나 '무불시대'란 단순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라는 시대적인 의미도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가피가 미치지 않는 무자비한 외진 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법을 믿지 않고 온갖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방황한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바로 오탁악세인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그같이 불법과 인연 없는 중생마저도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보살님이다.
7. 사대보살
지장보살은 대승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 분이다. 사대보살이란 큰 지혜로 무명의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이끄시는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 한량없는 행원으로 열 가지 큰 행원을 세우신 '대행보현보살(大行普賢菩薩)', 큰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대비관세음보살(大悲觀世音菩薩)',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신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 바로 불교의 4대보살이다.
이 가운데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지 않고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그 서원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지장보살의 서원을 '대원(大願)'이라고 하며 지장보살을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8. 이미타신앙과 지장신앙
아미타불은 흔히 극락이라고 하는 서방정토에 계시는 부처님으로 중생을 극락세계로 맞이하시는(來迎) 서방정토의 교주이다. 이에 비해 지장보살은 서방과는 반대편인 동쪽의 지옥에 계시면서 지옥 중생들을 구제하는 유명교주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은 정 반대되는 세계의 교주인 셈이다. 아미타불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극락에 계신다면 지장보살은 고통의 현장 바로 그 곳에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 계신다.
지장신앙의 사상적 근거가 되고 있는 지장 삼부경에서도 아미타정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이 두 신앙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약 7세기 경 중국에 와서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이 서로 결부되어 영가를 천도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용문석굴의 명문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장보살은 독립된 명부전의 주존으로 모셔져서 나름대로 독립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은 모두 망자를 제도하는 신앙이라는 공통성 때문에 점차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상호 보완적인 신앙으로 발전해 왔다.
이는 부처님을 모시는 형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곧 지장보살님이 지옥중생을 제도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면 서방정토의 교주이신 아미타불이 맞이하는(來迎)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결국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은 죽은 영가를 천도한다는 측면에서 두 신앙이 기능적으로 서로 통합되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9. 관음신앙과 지장신앙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우리나라 불교의 대중 신앙을 이끄는 두 축으로 발전해 왔다. 관세음보살은 살아있는 현세의 이익을 수호하는 보살로 신앙되고, 지장보살은 사후 세계의 교주로, 지옥중생의 구제자로, 망자 천도의 길잡이로 인식되어 왔다.
또 한가지 다른 점은 관세음보살은 11면 관세음, 마두관음 등 다양한 변화와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보살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수행자인 성문(聲聞)의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관음보살은 곧 성불하여 부처님이 될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지만 지장보살은 영원히 고통받는 중생 곁에 계시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대비천제(大悲闡提)' 즉 성불을 보류한 천제보살로 신앙되어 왔다.
이처럼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을 가지고 신행되어졌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사의 가장 중요한 두 테마를 중심으로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되어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짐으로서 두 보살님은 현세의 이익과 사후의 구원을 담당하는 보살로 신앙되어져 왔다.
제 5절 지장경의 사상과 가르침
1. 지장경의 종류와 유통
지장신앙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경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전들이 있다. 《지장보살본원경》,《대승대집지장십륜경》,《점찰선악업보경》,《대방광십륜경》,《백천송대집경지장보살청문법신찬》,《지장보살의궤》,《지장대도심구책법》,《불설지장보살다라니경》,《지장보살다라니경》,《지장보살십재일경》등이 유통되고 있는 지장관련 경전들이다.
이 가운데《지장보살본원경》,《대승대집지장십륜경》,《점찰선악업보경》을 지장 삼부경이라고 해서 가장 중요한 지장 관련 경전이다. 이들 경전들은 지장예찬문에 이 세 가지 경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어서 지장신앙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고 나아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지장경의 개괄적 내용
《지장보살본원경》은 총 13품으로 구성된 경전으로 지장삼부경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손꼽히는 경이다. 특히 지장신앙의 핵심이 지장보살님의 큰 원력(大願)이므로 일반적으로 지장경하면 지장보살의 큰 본원을 밝히고 있는 《지장보살본원경》을 말한다.
이 경은 당나라 우진국 삼장 실차난타(實叉難陀) 스님이 한문으로 번역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영조 38년 1762년에 언해본이 처음 나왔다. 이처럼 언해본이 빨리 나온 사실만을 보아도 당시 지장신앙이 얼마나 대중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은 총 8품으로 구성된 경전으로 당나라 영희 2년 현장법사가 한역했다. 《점찰선악업보경》은 신라시대에 널리 독송된 경전으로 특히 점찰법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이 경은 목륜상을 통해서 자신의 업보를 점쳐본 뒤 그 업보를 참회하는 의식인 점찰법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지장 삼부경에서《대승대집지장십륜경》과《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신앙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경전이다. 이에 비해서《점찰선악업보경》은 지장신앙을 실천수행화 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장경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법(因果法), 인과에 따른 지옥의 고통, 지장보살의 광대한 본원(本願), 부모에 대한 효, 선행의 권장, 보시행의 실천, 수지독송의 공덕 등이다. 지장 계통의 경전들은 대부분 인과법과 윤회를 가장 중요한 사상적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지장경의 일반적 내용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법(因果法)을 강조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선업(善業)을 닦도록 실천수행을 제시하는데 있다. 흔히 지장신앙하면 영가 천도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지장경의 내용은 이렇게 인과법에 따라 선행을 강조하고, 참되고 올바르게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지장보살이여 미래 일체 중생들이 불법 가운데서 털끝만한 선근이라도 있다면 버리지 말고 구원하라. 그대의 원력이면 능히 그들을 보호하고 점점 선근을 불어나게 할 것이며, 다시는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이처럼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부촉을 받으시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 인천의 복업을 증진하고 10악의 죄업을 짓지 않게 하고 있다. 또 이미 지은 죄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참회하여 소멸하게 한다. 그러므로 지장신앙은 단순히 지장보살님이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 주실 것을 믿는 타력신앙을 넘어 올바른 실천수행을 제시하고 우리 스스로 선업을 닦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지장신앙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대승대집지장십륜경》이다.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십륜(十輪)입니까? 선남자여! 이 십륜이란 다른 법이 아니고 바로 십선업도(十善業道)임을 마땅히 알아라. 이와 같이 십종륜(十種輪)을 성취함으로써 보살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업도품' 이처럼 십륜이란 바로 '십선업도'를 말하고 있다. 십선업도란 '열 가지 착한 업을 닦는 길'이라는 뜻이다. 십선업(十善業)이란 몸과 말과 뜻(身口意)으로 짓는 열 가지 선업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지장신앙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만 의지하는 타력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보살행을 실천해 가는 실천 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극락왕생이란 지장보살님의 서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열 가지 선업을 닦으면서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것이 지장신앙이다.
3. 중생구제의 비장한 서원
지장경의 출발은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겠다는 지장보살의 광대한 서원에서 시작한다. 이같은 지장보살의 광대한 서원은 지장보살님의 전생담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세세생생 날 때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돌아가신 조상까지 남김없이 천도하는 지장보살.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제도코자 대신 설법해줄 보살로 지장보살을 선택하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보면 지장보살님이 처음 대원을 세우시는 전생담에 대해 설하고 있다. 오랜 옛날 각화정자재왕여래의 상법시대에 한 바라문의 딸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열제리라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삿된 가르침을 믿고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믿지 않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효성이 지극했던 바라문의 딸은 어머니를 위하여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과 절에 공양하고 복을 닦은 공덕으로 지옥고를 받는 어머니를 구제했다.
뿐만 아니라 무간지옥의 모든 죄인들도 그녀의 공덕으로 모두 지옥고를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이에 바라문의 딸은 크게 신심을 내어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상 앞에 나가 "미래겁이 다하도록 죄업으로 고통받는 중생이 있으면 널리 방편을 베풀어서 해탈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큰 원을 세우고 수많은 생을 두고 보살행을 실천해서 지장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생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적에 광목이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살생하고 불법을 비방한 업보(業報)로 인해 큰 지옥에 빠졌다. 이에 광목은 청정연화목여래를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던 물건을 팔아 불상을 그려 모시고 공양하며 공손한 마음으로 예배한 공덕으로 어머니를 제도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죄가 너무 무거워 다시 지옥에 빠지게 되자 광목은 다시 큰 서원을 세워 어머니를 제도하여 마침내 해탈보살이 되게하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서원을 세웠다.
"이 뒤로 백 천만억겁 동안에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의 죄로 고통받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지옥·축생·아귀 등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와 같이 죄의 업보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불한 뒤에야 제가 바야흐로 정각을 이루겠습니다."《지장보살본원경》
이처럼 바라문의 딸과 광목녀가 어머니를 위하여 공덕을 짓고 어머니를 구제한 뒤 자신은 큰 서원을 세워 지장보살이 되었다는 것이 지장보살의 전생담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장신앙이 큰 대비(大悲), 대원(大願)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두 편의 전생담은 모두 여자라는 특징을 보인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모두 네 편의 전생담이 보이는데 남자로 태어나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이 되는 전생담도 두 편이 보인다.
옛날에 지장보살은 사자분신구족만행여래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큰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때 그 장자의 아들은 부처님의 거룩하신 상호를 보고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거룩한 몸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일체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사람이라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답을 듣고 장자의 아들은 그날 이후 죄고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으며 널리 방편을 써서 저들을 구제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지장보살은 과거 어느 순간 보살이 된 것이 아니라 오랜 과거부터 무수히 많은 세월 동안 보살행을 닦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곳에 모인 대중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느냐?'
'천겁을 헤아려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부처님의 눈으로 보아도 다 알 수 없다. 이들은 지장보살이 구원겁래에 제도하고 제도할 자들이다' "《지장보살본원경》
이렇게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 제도하지 못한 여러 악습중생들을 갖가지 방편으로 교화하고 계신다. 특히 지장보살님은 이렇게 오랜 세원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시어 중생들을 구제하셨다. 지장경에 보면 남자, 여자, 하늘, 귀신, 산림, 용, 제석, 범왕, 전륜성왕, 거사, 국왕,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성문, 보살 등의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4. 인과응보 사상
지장신앙은 지장보살님의 광대한 서원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지장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바로 인과응보 사상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쉽게 말해서 자신이 지은 모든 업(業)은 결국 자기자신이 받게 된다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업(業)이란 일반적으로 나쁜 행위만을 지칭하지만 업은 선업(善業)도 있고 악업(惡業)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착한 행위(善業)를 하면 착한 결과(果報)를 받고 악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因果) 업보사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것은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 스스로도 과거에 닦아온 수많은 정진으로 인해 지장보살의 위덕을 갖추었다고 지장경에서는 밝히고 있다.
"번뇌의 사나온 흐름을 건너는 이를 위해서는 다리가 되고, 열반의 저 언덕으로 가는 이를 위해서는 배가 된다. 이것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은 세 가지 선근(善根)의 훌륭한 과보이며, 세 가지 선근이 끌어오는 한결 같은 인과이니라."《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경에서는 지장보살 스스로도 인과법에 따라 대보살의 위덕을 갖추었다고 밝힘으로써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장경은 단순히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원칙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업을 지으면 어떤 결과를 받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염부중생업감품'에 보면 각각의 악업에 대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이고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살생하는 사람은 단명하고,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은 가난하고, 삿된 음행을 하는 사람은 공작·뱁새·원앙의 과보를 받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권속이 서로 싸우는 과보를 받으며, 훼방하는 사람은 입이 없거나 허는 과보를 받고, 성을 내는 사람은 더럽고 천한 과보를 받고, 간탐하는 사람은 구해도 잘 얻지 못하는 과보를 받고, 음식에 절도가 없는 자는 기갈·목병의 과보를 받고, 수렵하는 사람은 놀래고 미치는 병에 걸리며, 불효자는 전지 재해를 받고, 방화자는 미친 사람의 과보를 받고, 부모에게 악독하게 한 자는 매맞는 과보를 받고, 그물질한 자는 권속이 흩어지는 과보는 받고,
3보를 비방한 자는 벙어리·귀머거리·과보를 받고, 허망한 자는 영원히 악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상주물(사찰의 물건이나 재산)을 파괴하고 함부로 쓰는 자는 억겁 윤회보를 받으며, 범승을 더럽게 한 자는 축생보를 받고, 끊고 흩기를 좋아하는 자는 윤회 속에서 끝없는 갚음을 받고, 파괴범죄자는 금수기아의 보를 받고, 비리 훼용자는 소구궐절의 과보를 받고, 거만한 자는 하천노비의 과보를 받고, 양설자는 무설백설(無舌百舌)의 과보를 받고, 사견자는 변지하천의 과보를 받는다" 《지장보살본원경》'염부중생업감품'
이처럼 지장경에서는 인과응보 사상을 바탕으로 각각의 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업보를 나열하고 있다. 이것은 이런 나쁜 악업을 짓지 말라는 뜻이며 스스로 선업을 쌓으라는 실천수행의 구체적인 방법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5. 선을 권장하고 악을 벌하는 지옥사상
앞에서 언급한 인과응보사상과 깊은 관계 속에 설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지옥사상이다. 지장경에서는 악행의 결과로 어떤 지옥에 떨어지는지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지장경》'관중생업연품'에 보면 다음과 같은 악행을 범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부모님께 불효하고 살생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고, 3보를 비방하며, 경전을 존경하지 않고, 상주물(사찰 소유의 물건이나 재산)을 침범하고, 스님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가람 안에서 음행하고 살생하며, 가짜 스님이 되어 상주물을 함부로 쓰고, 속인들을 속이고, 계율을 어기고, 여러 가지 악업을 지은 자가 지옥에 떨어지고, 상주물을 도둑질하고, 의복, 음식, 곡식 등 한 물건이라도 주지 않는데 취하는 자는 모두 지옥에 떨어져 천 만 억겁에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지장보살본원경》'관중생업연품'
이처럼 지장경에서는 악행의 결과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면서 분명한 과보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옥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극락은 어디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극락이 있고 또 인간 세계의 동쪽에 있는 철위산이라는 지옥이 따로 있다는 '타방(他方)극락'과 '타방(他方)지옥' 이다.
이에 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에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다는 '차방(此方)지옥'과 '차방(此方)극락'이 두 번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다는 심즉지옥 심즉극락(心卽地獄 心卽極樂)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세 가지 견해는 각각 주장하는 바는 다르지만 어쨌든 인과에 의해서 내가 만들고 내가 그 과보를 받는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장경에서 설하고 있는 지옥이 타방에 있든 아니면 이 세상에 있든 또는 우리 마음속에 있든
중요한 것은 지옥과 극락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지은 업에 따라 결정되어진다는 점이다.
《지장경》'관중생업연품'에 보면 지옥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동쪽에 철위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안에 18지옥이 있고 그 옆에 다시 500개의 지옥이 있으며 그 다음에 다시 천 백 개의 지옥이 있다고 한다. 지장경에서는 이 지옥의 고통에 대해서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간지옥은 그 옥의 성이 순수 철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1만리나 됩니다. 한 점 공간도 없이 불무더기가 주위 만 8천리를 담장처럼 둘러서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철뱀과 철개가 불을 품고 돌아다니며, 그 성중에 큰 평상이 만리나 뻗쳐있어 한 사람이 죄를 받든지 만 사람이 죄를 받든지 각자의 몸이 그 상에 꽉 찹니다. 또한 그 속에는 천 백 야채와 악귀가 있어 칼날과 같은 이빨과 번갯불과 같은 눈, 구리쇠와 같은 손톱으로 창자를 뽑고 끊습니다. 또 야차가 있어 철창으로 죄인의 코와 배를 찌르고 몸을 뒤집고 철솔갱이가 눈을 파먹고 철뱀이 몸을 감아 백 천 토막을 내고 그 몸에 철창을 박고 혀를 빼 보습으로 갈고 죄인을 끌고 다니다가 지치면 구리즙을 먹이고 뜨거운 철사로 몸을 감아 조이되 하루 낮 하루 밤사이에 만 번을 죽였다 만 번을 살리는 고통을 줍니다." 《지장보살본원경》'관중생업연품'
이렇게 고통이 쉬지 않는 지옥이 바로 무간지옥이다. 무간(無間)이란 말 그대로 사이가 없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죄보를 받는 것이 끊임이 없고,
둘째 한 사람이 벌을 받거나 만 사람이 벌을 받거나 그 몸이 지옥 속에 꽉 차서 조금의 간격이 없는 것이며,
셋째 죄를 받는 기구가 한량이 없고,
넷째 남녀노소·빈부격차의 차이가 없고,
다섯째 처음부터 끝까지 죄를 받는 시간에 잠시도 휴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생생히 지옥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결국 선업을 짓고 착하게 살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처참한 고통속에 빠진 지옥중생들을 구제하신다는 측면에서 지장보살님의 본원력이 얼마나 높고 수승한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오히려 지옥이 이렇게 무서우므로 살아 있을 때 죄를 짓지 말고 스스로 선행을 쌓으라는 수행의 지침이기도 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6. 부모를 천도하고 효를 가르치는 경
지장경은 부모은중경과 함께 효사상을 가르치는 대표적인 불경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장보살의 전생담을 살펴보면 바라문의 딸과 광목이라는 여인이 나온다. 그리고 이 두 여인은 모두 어머니가 불법을 믿지 않고 삼보를 비장하고 삿된 믿음을 가진 과보로 인해 지옥에 떨어졌는데 두 여인은 모두 지극한 공덕으로 어머니를 구제하고 다음과 같이 대원을 세우고 지장보살이 되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죄업으로 고통받는 중생이 있으면 널리 방편을 베풀어서 해탈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이것은 지장보살의 대원(大願)이 돌아가신 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출발했다는 사실를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지장보살의 본원이 효사상에서 출발함으로 해서 지장신앙은 돌아가신 망자를 천도하는 신앙인 동시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경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들을 천도하는 사십구제는 《지장보살본원경》에 그 경전적 전거를 두고 있다.
"염부제에서 악을 지은 중생은 처음 죽어서 사십구일이 경과한 뒤 그를 위하여 공덕을 지어 지옥 고난에서 구하여 빼내주는 계사(繼嗣-대를 잇는 자식)가 없거나 또 살아 있을 때 선인(善因)이 없으면 마땅히 본래 지은 죄업으로 인하여 지옥벌을 받게된다." 《지장보살본원경》
49재의 연원은 바로 이 인용문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서 자식들이 공덕을 지어드려야 함을 밝히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지장사상은 철저한 인과응보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본인 스스로 지은 선행이 있다면 지옥고를 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식이라도 대신 선행을 쌓아 공덕을 지어 주어야만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식이 베푼 선행은 단지 죽은 망자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후손이 영가를 위해 49재를 지내거나 공덕을 쌓으면 영가를 위해서도 좋지만 살아있는 후손에게도 큰 공덕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반대로 부모에게 불효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곧 다시 몸이 죽은 후에 49일 안에 널리 여러 가지 좋은 일을 지어주면 능히 저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악취에서 떠나서 태어나게 하며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으며 뛰어나게 기묘한 즐거움을 받게하며 현재의 권속들도 이익이 한량없다."《지장보살본원경》'이익존망품'
7. 보시행의 실천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 중에 하나는 바로 보시행의 실천이다. 그래서 대승보살의 실천행인 육바라밀에도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보시행이다. 이같은 보시행은 지장경에서도 예외없이 강조하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교량보시공덕품'에 보면 적극적인 보살행의 실천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보시공덕의 경중(輕重)·장단(長短)·대소(大小)의 차이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여덟 가지 보시의 공덕을 비교하여 설명하신다.
국왕대신 바라문 등이 빈민 걸인을 위해 보시하면 백 천생 중에 7보를 구족하고 의식이 풍족한 과보를 얻는다. 그들이 부처님의 탑묘를 만나 보시하면 3겁 동안 제석신을 받는다. 부서진 불탑을 수선 보수하면 백 천생 중에 전륜성왕의 과보를 받는다. 노병자와 병자를 위해 보시하면 1백겁 동안 정거천주의 과보를 받는다. 불법 중에 작은 선근을 심더라도 인천의 몸을 얻지 않고 항상 승묘한 복을 받는다. 대승경전의 한 글귀만 듣고 경건한 마음으로 찬탄 공양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대승경전을 편찬 출판하여 보시하면 30생 중에 소국왕의 과보를 받는다. 불법중에 보시 공양하고 탑묘를 수리하고 경전을 보수 보시하면 백 천 생에 최고의 복락을 받게 된다.
이처럼 지장경에서도 보시의 실천과 이타행을 강조하고 있다. 보시행에 관한 지장경의 구체적인 설명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불교 사회복지 사상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이처럼 지장경의 가르침은 단순히 망자를 천도하는 의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선행을 쌓으며 남을 위해 봉사하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경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장경의 가르침 속에서 지장보살님의 위대한 본원을 우리의 본원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스스로가 지장보살처럼 닮아가고 지장보살처럼 남을 위해 이타행을 실천하는 지장보살이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8. 지장경을 독송하는 이익
모든 경전에는 그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면 얻게 되는 공덕을 설명하고 있다. 지장경 역시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면 얻게되는 이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먼저 '지신호법품'에 보면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이익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토지의 풍년, 가택의 영원한 건강, 선망부모의 생천, 현존사친의 이익, 구하는 것을 뜻대로 얻고, 물불의 재앙을 없애고, 헛되이 소모하는 것을 없게 하며, 험악한 꿈을 꾸지 않게하고, 가고 옴에 신장들이 항상 옹호하게 하고, 곳곳에서 성현들을 만나게 한다." 《지장보살본원경》'지신호법품'
이 밖에도 지장경의 마지막 품인 '촉루인천품'에 보면 지장보살의 명호를 념하고 지장보살 상 앞에 공양하며 지장경을 읽고 널리 전하며 중생을 구제코자 지장보살과 같은 원력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28종의 이익과 7종의 이익이 있다고 설하고 있다.
"천룡이 호념하고, 착한 일이 날로 불어나고, 성스러운 일들이 모여오고,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고, 의식이 풍족하고, 질병이 생기지 않고, 물과 불의 재난을 당하지 않고, 도적의 액난이 없고, 사람들이 공경하고, 귀신들이 돕고, 여자가 남자의 몸을 이루고, 왕실의 부녀로 태어나며, 단정한 상호를 얻고,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얻고, 제왕이 되고, 숙명통을 얻어 전생의 일을 알고, 구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고, 권속이 좋아하고, 횡난을 소멸하고, 업도를 영원히 없애고, 가는 곳마다 다 통하고, 잠을 잘 자고 꿈이 편안하며, 선망부모의 고통을 없애고, 전생의 복을 다 받으며, 모든 성현들이 찬탄하고, 총명하고 영리하며, 사랑스럽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마침내 성불하게 된다." 《지장보살본원경》'촉루인천품'
또 지장보살의 명호를 듣거나, 지장보살의 형상 앞에 예경하거나, 지장보살의 본원과 그 행을 듣고 수행하고 찬탄하고 우러러 예경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이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속히 성지에 오르고, 악업이 소멸되고, 부처님들의 보호를 받고, 깨달음에서 물러섬이 없고, 본원력이 불어나고, 숙명통을 얻고, 마침내 성불한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지장보살과 같은 원력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자신의 원력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지장보살과 같이 보살행을 행할 때 이 같은 이익이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 6절 지장신앙의 신행과 실천
지장신앙은 지장의 본원력을 믿는 신앙이며 지장보살의 끝없는 구제력에 의지하는 신앙이다. 또한 망자를 천도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지장신앙의 적극적 의미는 우리 스스로가 지장을 닮아가는 신앙이며 지장의 본원을 우리의 본원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지장이 되어가는 신앙이다.
그래서 지장 신앙의 핵심은 막연히 지장보살의 본원에 의지하는 타력신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님의 본원을 따라 보살행을 실천하는데 있다. 이같은 원칙을 근본으로 생각하며 지장 신행의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1. 칭명염불
지장보살의 본원력을 믿고 그 본원력에 의지하여 구제 받고자하는 신앙이다. 이처럼 지장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신행의 형태가 바로 지장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지장정근이다. 지장경에서는 지장보살의 구제력이 필요한 때에는 언제든지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름을 부르고 생각하고 귀경하고 공양하면 그에 상응한 도움을 얻어 구제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어떤 유정이 갖가지 욕구로 근심과 고통이 절박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름을 부르고 생각하고 외우면서 귀경하고 공양하면 구하는 모든 것을 법에 따라 얻게되며 모든 근심과 고통을 떠나게 되며, 그 응하는 바에 따라 천상에 태어나며 열반의 길에 이르게 된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신앙에서 칭명염불은 실제로는 불·보살의 가피를 입고자 하는 타력신앙의 형태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지위고하·수행의 깊고 낮음을 막론하고 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름을 부르는 중생은 누구나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기복을 바라며 지장보살 정근만 한다고 해서 가피를 받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믿음과 참되고 올바른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가피가 있다.
"만일 잡되고 어지럽고 더러운 마음이면 비록 나의 이름을 부른다 하더라도 들었다고 하지 못할 것이요, 확실한 신해(信解)를 내지 못하고, 다만 세간의 선한 과보만을 얻게되며, 광대하고 깊은 미묘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이와 같이 잡되고 어지럽고 더러운 마음은 그 닦아진 일체의 모든 선을 따라 모두 깊고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점찰선악업보경》
이처럼 칭명염불을 통해 크고 광대한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얻기 위해서는 일심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의 수승하고 광대한 본원력을 생각하며 스스로 그 본원을 자기화 하려는 실천적 수행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마땅히 마음을 단단히 잡아매어, 나 지장보살마하살을 공양한 다음에 마땅히 이름을 부르거나 또는 묵묵히 외우고 생각하며 한 마음(一心)으로 나무 지장보살마하살이라고 아뢰야 한다."《점찰선악업보경》
2. 참회와 점찰법회
지장신앙의 발생이 말법시대의 위기감에서 출발했으므로 지장신앙은 참회를 강조한다. 또 지장신앙은 철저한 인과응보의 인과율에 근거한 신앙이므로 죄업을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 신행에 중요한 요체가 된다.
일반적으로 참회는 계율과 관련하여 이를 어겼을 때 행하는 것이다. 인간은 선업을 쌓을 수 도 있고 악업을 쌓을 수 도 있다. 그리고 그 업은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이라는 삼업(三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만일 악업을 지으면 그 업보로 인해서 해탈에 장애가 되므로 이를 청정하게 하기 위한 수행법이 참회이다.
그러나 지장신앙에서 행하는 참회는 말법시대의 근기가 약해진 중생들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마련된 대중적인 참회법이므로 보다 쉽게 구성되어 있다. 즉 점찰법회가 그것인데, 점찰법회는 목륜상(木輪相)을 이용하여 자신의 업보를 점쳐서 그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참회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이같은 점찰법회는 말법 시대의 하근기 중생들에게 보다 쉬운 형태로 자신의 업보를 깨우치고 참회하도록 하기 위한 의식이다. 점찰법회는 자신의 업을 살펴서 악업을 참회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중생의 해탈을 도모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라. 만일 오는 세상의 중생들이 생·노·병·사로부터 제도와 해탈을 구하려고 처음 배우고 발심하여 선정과 형상 없는 지혜를 닦아 익히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은 의례 먼저 지난 세상에서 지었던 악업의 많고 적음과 그 가벼움과 무거움을 먼저 관하라. 만일 악업이 많고 두터운 자가 있으면 곧 선정과 지혜를 배워 얻지 못하니, 당연히 먼저 참회의 법을 닦아야 한다."《점찰선악업보경》
이상의 인용문에서 나타나듯이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지만 그 선행조건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지장신앙이 맹목적인 지장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타력신앙만이 아님을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다. 곧 지혜와 선정을 닦아야 해탈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 전제조건으로 참회를 주장한다. 그러므로 지장행자는 참회를 통해서 지장보살이 구제해 줄 것이라는 타력적 의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3. 회향(回向) - 스스로 지장이 되는 과정
회향(回向)은 자신의 공덕을 다른 사람을 위해 돌리는 것을 말한다. 지장보살은 자신이 갖춘 무량한 공덕을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회향하고 있다. 지장행자의 수행은 지장보살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지장보살님을 자신의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지장보살님이 모든 중생을 위해 자신의 공덕을 회향했듯 우리들도 기도와 정진과 수행을 통해 지은 공덕을 이웃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회향해야 한다. 그것이 지장신앙을 올바로 받드는 길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회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지장이여, 미래세 가운데에 만일 또 착한 남자와 착한 여인이 불법 가운데에 보시·공양하거나 탑사를 보수하고 경전을 잘 꾸며 선근(善根)을 심는다면, 또는 한 터럭 한 티끝, 한 모래알, 한 물방울만큼의 착한 일을 다만 능히 법계에 회향하면 이 사람은 그 공덕으로 백천 생 가운데 으뜸가는 묘한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나 단지 자기 집 권속이나 자신의 이익에만 회향하면 이와 같은 과보는 곧 삼생의 즐거움을 얻는데 그칠 뿐이다. 하나를 베풀면 만가지 과보를 얻는다. 그러므로 지장이여, 보시의 인연 그 일은 이와 같다." 《지장보살본원경》
제 7절 지장신앙의 의례와 기능
지장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의례는 주로 망자의 천도를 기원하는 의례로써 시왕경에 의거한 49재와 예수재가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지장경에서 직접적으로 의거한 지장재일이 있다.
1. 지장재일
지장재일은 불교의 중요한 10재일 가운데 하나로 관음재일과 함께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지키고 있는 재일이다. 지장재일을 비롯한 십재일은 팔관재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경전적 근거는 지장경에서 비롯되고 있다.
"만일 오는 세상의 중생이 월 초하루·초여드레·열 나흘·열 닷새·열 여드레·스무 사흘·스무 나흘·스무 여드레·스무 아흐레 내지 그믐, 이 모든 날에 모든 죄를 모아서 그 무겁고 가벼움을 정하고, .... 이 십재일에 불·보살과 모든 현인과 성인의 상 앞에서 이 지장경을 한 번 읽으면, 동서남북 백유순 안에서는 모든 재앙이 없을 것이고, 마땅히 집에 머물면 어른이든 아이든 현재 미래 백천세 가운데 영원히 '악한 것이 원인이 되어 태어나는 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십재일 마다 이 경을 한 번씩 읽으면, 가령 현세에 이 집에 머문다고 할지라도 모든 횡액과 병이 없고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부할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
이처럼 지장본원경에는 지장재일뿐 아니라 10재일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지장경에 따르면 위에서 보았듯이 10재일이 모두 지장신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관음재일, 약사재일과 같은 명칭이 붙어 있지 않다. 결국 이들 10재일은 모두 지장신앙과 관련된 재일이었으나 후대로 오면서 각 날짜마다 해당 불·보살이 정해지고, 지장보살은 십재일 가운데 하루만 배당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장재일은 날짜 면에서 줄어들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결코 퇴색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10재일 가운데 다른 대부분의 재일들은 오늘날 잘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관음재일과 지장재일만은 면면히 내려오면서 아직도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이날 기도법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예수재
예수재(豫修齋)는 말 그대로 '미리 닦는 재'로써 생전에 사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사를 행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사후 중생의 천도를 위해 행하는 의식이 사십구재라고 한다면 예수재(豫修齋)는 살아 있는 동안에 스스로 자기자신의 재를 미리 지내서 죽은 뒤에 극락 왕생을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예수재는 바로 《지장보살본원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만일 어떤 남자나 여인이 살아있을 때에 선인(善因)을 닦지 않고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지었다면, 목숨을 마친 뒤에 그의 멀고 가까운 권속들이 그를 위하여 복되고 이로운 일을 지어주면 온갖 거룩한 일의 칠분의 일은 망자가 얻고 나머지 육분의 공덕은 산 사람 스스로에게 이익이 된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미래와 현재의 선남선녀들이 이 말을 꾸준히 듣고 스스로 닦으면 그 공덕을 몫에 따라 얻게 된다."《지장보살본원경》
여기서 '살아 있을 때의 선인(善因)'이란 일상적인 선행을 말하기도 하지만 바로 '예수재'와 같은 의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념할 것은 예수재가 바로 자신의 사후 왕생극락을 위해서 본인 스스로 행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예수재는 현생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사후의 세계와 윤회의 세계를 믿는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현실의 삶에 집착해서 탐욕과 죄업을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생에서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재를 봉행하는 이상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인과윤회라는 긴 과정으로 보게 되며 그렇게 되면 현세의 삶에 매몰되서 악업을 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예수재를 통해서 불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보고 현재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새롭게 선업을 닦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같은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시왕경에 나타난 예수재에 관한 내용이다. 시왕경에 보면 예수재를 한 달에 두 차례 행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곧 일상적인 수행의 한 과정으로 예수재가 봉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달 두 번 공양올림은 늘상 하는 의식이니 한 때라도 빠뜨리면 그 공덕이 적어져서 중음신도 못 피한 채 명부추달 냉엄하리"《불설예수시왕생칠경》
요즘은 윤달이 드는 해에 즉, 4년에 한번씩 예수재를 행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예수재를 '늘상 하는 의식'으로 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예수재는 단순히 사후의 극락왕생을 위한 재의 차원을 넘어 일상적인 수행과 참회의 의미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3. 사십구재
망자를 위해 행하는 정기적인 의례가 지장재일이라면 망자의 사후에 행하는 대표적인 의례가 사십구재이다. 이는 불자들이 부모나 가족 친지가 사망했을 때 망자의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이다.
지장보살은 육도중생 가운데서도 특히 지옥중생의 구제자로 신봉되어 이른바 유명교주로 불린다. 그래서 망자가 가 있는 유명의 세계를 교화하시는 지장보살님에게 망자의 천도를 기원하며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사십구제는 《지장보살본원경 》'도리천궁신통품'에 그 경전적 전거를 찾을 수 있다.
"염부제에서 악을 지은 중생은 처음 죽어서 사십 구일이 경과한 뒤에 그를 위하여 공덕을 지어 지옥 고난에서 구해주는 계사(繼嗣-대를 잇는 자식)가 없거나 또 살아 있을 때 먼저 지어 놓은 복(先因)이 없으면 마땅히 본래 지은 죄업으로 인하여 지옥벌을 받게된다."《지장보살본원경》
"만일 곧 다시 몸이 죽은 후에 49일 안에 널리 여러 가지 좋은 일을 지어주면, 능히 저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악취에서 떠나서 태어나게 하며,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으며, 뛰어나게 기묘한 즐거움을 받게하며, 현재의 권속들도 이익이 한량없다."《지장보살본원경》'이익존망품'
이같이 망자와 현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곧 현세인에게 망자를 위해 재를 지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곧 죽은 부모를 위해 재를 지내는 효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의 전생인 광목녀나 바라문의 딸은 모두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제하려는 효심으로 재를 올리고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구제한 뒤 큰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이 되었다. 곧 지장보살 본원의 출발은 효 사상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후에 49재를 지내서 망자를 천도하는 것은 결국 효사상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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