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11)] 현생 인류 안의 네안데르탈인
무엇이 호모 사피엔스를 생존하게 만들었을까
이종교배에도 호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존… 두 개 종을 하나로 만들지 못한 이유는 DNA가 전혀 다르기 때문
최근까지만 해도 네안데르탈인 하면 야만인의 상징이었다. 고고학자자나 인류학자도 이들을 다른 육식 동물들이 먹다 남은 사체를 처리하는 거의 하이에나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이들은 기껏해야 토끼나 쥐 같은 설치류만 사냥하거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커다란 초식동물의 사체를 찾아다니는 보잘것없는 사냥꾼이다. 전문적인 사냥은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이주하면서 가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기회주의자로 사나운 육식동물이 남긴 사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먹이사슬의 끝에서 연명하는 존재였다.
‘신고고학’ 혹은 ‘과정주의 고고학’의 창시자인 미국의 고인류학자 루이스 빈포드(1931∼2011)는 과거를 해석하는 데 개별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나 유물에 집중했다. 빈포드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다른 동물처럼 자신의 행동을 미리 계획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들이 만드는 도구나 무기는 미래에 다시 사용하기 위해 수리하거나 유지되지 않고 한번 사용 후 바로 폐기했다. 그들이 만든 무기는 생산과 재생산 효율이 제로였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을 에스키모인과 비교하여 설명했다. 에스키모인은 자신이 사용한 무기나 가죽옷을 사냥을 한 야생이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캠프로 다시 가지고 온다. 그리고 다음 사용을 위해 다시 수리한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다.
빈포드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와의 현격한 구분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네안데르탈인은 적어도 20만 년 동안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들은 좀처럼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후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게 밀려 스페인이나 러시아로 이주했다. 이들은 쉐닝겐 나무창에 날카로운 돌을 끼운 가공할 무기를 만들었지만, 두 손이 빙하시대 동물을 찌르는 무기였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먼 거리를 던지거나 화살과 같은 무기를 만들 수 없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의 비교를 통해 유사점과 상이점을 부각시키면서 그 정체성을 찾아갔다. 네안데르탈인은 맨 처음 발굴 당시부터, 인간과는 다른 야만적 유인원으로 그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정말 야만인인가?
샤아프하우젠의 상상력과 네안데르탈인의 발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은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학설로 인간에 관한 가장 혁신적이며 근본적인 연구성과다. 이 책이 출간되기 6년 전, 독일의 한 해부학자이며 고인류학자가 먼저 인간의 기원에 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독일 본 대학 해부학 교수인 헤르만 샤아프하우젠(Hermann Schaaffhausen)이다. 그는 ‘종의 항구성과 전환성’(1853년)이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불변성은 증명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항상 눈앞에 있는 현상의 결과물을 보기 때문에, 그것이 오랜 과정 변화의 산물이란 점을 깨닫지 못한다. 샤아프하우젠은 인간이 태초부터 현재 모습이었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로부터 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 가지 현명한 과학적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전통적으로 수용해 스스로가 ‘과학적인 진리’라고 착각한 의견을 의심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사고로 새로운 가설을 내 놓는다. 그는 거꾸로 인간의 모습이 불변하다는 과학적인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다윈에 커다란 사상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종의 기원> 3쇄본(1861년)에 종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란 새로운 부분을 첨가하면서, 샤아프하우젠의 과학적 가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고백했다.
샤아프하우젠은 자신의 새로운 학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한다. 19세기까지 유럽인들은 신의 불변성을 신봉했다. 신의 불변성은 신의 형상대로 한순간에 창조된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샤아프하우젠은 인간의 불변성을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 반박하고 싶었다. 그는 인간이 ‘수이 제네리스(sui generis)’ 즉 ‘자생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로부터 변화되어 진화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생소한 주장을 밝혀 줄 고고학적 증거를 찾고 있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뒤셀강이 흐르는 네안데르 계곡에서 한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있었다. 1856년 8월 이곳에서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건설회사 노동자가 석회암을 채취하다가 동굴 안에서 인간 해골로 보이는 유골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유물을 샤아프하우젠에게 가져갔다. 한 노동자의 우연한 발견은 아무런 의미 없이 잊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샤프하우젠의 혁신적인 가설, 간절함, 그리고 학자로서 명성은 이 유골들을 그의 연구실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샤아프하우젠 연구실 책상 위에 두개골, 다리뼈, 그리고 어깨뼈와 갈비뼈 몇 조각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이것들이 인간 유골이라고 잠정 결론지었다. 그러나 몇몇 뼈는 이상했다. 예를 들어, 두개골은 눈 부분이 마치 뼈로 만든 고글을 착용한 것처럼 눈 주위에 심하게 융기되었다. 이것은 인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그는 이 유골을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불렀다. ‘탈’이란 말은 독일어로 ‘계곡’이란 의미다. 샤아프하우젠은 단순하지만 궁극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인가? 아니라면 다른 속에 속하는 유인원인가?
샤아프하우젠은 1857년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발표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직 발표되기 전, 인간이 다른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생각은 신성모독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가장 전통적이며 ‘과학적인’ 책이라고 여긴 성서에 등장하는 인종 묘사를 축자적으로 수용하였다. <창세기>에 소개된 ‘노아홍수’ 전설에 의하면, 노아가 와인재배를 시작하고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다.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함’(히브리어로 ‘흑인’이란 의미)이 아버지의 나신을 보고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유럽인은 유대인이 속한 셈 족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민족이나 나라가 없이 유럽의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과 아랍인을 하등인종으로 여겼다. 자신들의 경제적인 풍요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유럽 해부학 교수들도 자신들이 속한 유럽인을 가장 숭고한 인종으로 여겼다. 다른 인종, 즉 황인종이나 흑인들을 원숭이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폄하했다. 샤아프하우젠은 혁신적인 과학자였지만, 당시 인종적인 과학 구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은 흑인과 생김새가 유사하다”라고 기록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을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내릴 수 없어 유럽 기원에 대한 전설을 들먹였다. 로마 군인들이 유럽을 점령하러 왔을 때, 그들은 괴물과 같이 생긴 존재들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식인종으로 심지어 자신들의 부모를 먹어치웠고 13세기까지만 해도, 이들은 산림 속에 살면서 인간의 언어라기보다는 짐승 울음소리와 가까웠다”라고 기록했다. 샤아프하우젠의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연관된 유인원이지만, 짐승과 가까운 존재였다.
무기의 혁신, 네안데르탈인의 자루 만들기
샤아프하우젠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해석은 다윈의 <종의 기원> 출판 이후 달라졌다. 학자들은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했던지 아니라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공동 조상 유인원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추측했다.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토마스 헉슬리는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와 같은 인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두터운 이마는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처럼 별도의 ‘종’으로 구분한 학자는 윌리엄 킹이다. 그는 지질학자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은 현생인류와 동일한 속으로 분류할 수 없기에 새로운 용어로 이 화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1863년 학술회의에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란 새로운 종을 소개하였다. 그 이후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들을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고 러시아에서 발굴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들은 20만 년 전부터 가장 최근에는 2만8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며 키는 크지 않지만 육상선수 우샤인 볼트와 같은 골격을 지녔다. 만일 오늘날 네안데르탈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덩치 좋은 격투기 선수와 같았을지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은 처음으로 커다란 동물을 사냥했다. 다부진 체격으로 가공할 만한 무기를 개발했다. 가공할 만한 무기의 원초적인 기술은 바로 ‘자루’를 별도로 만들어 창에 부착하는 형식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사용하던 쉐닝겐창은 거의 3m나 되는 나무 한 자루로 끝을 뾰족하게 깎고 불에 그을려 단련시켰다. 네안데르탈인은 매머드나 곰 같은 커다란 육식동물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쉐닝겐창을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쉐닝겐창은 커다란 동물에 근접하여 찌른 후, 되찾는데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냥감 동물이 창 공격으로 내상을 입고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들은 쉐닝겐창의 양 끝에 자루를 만든다. 손잡이 쪽엔 가죽으로 둘둘 말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동여맸다. 다른 쪽은 동물 뼈나 돌을 날카롭게 갈고 창에 부착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근거리에서 쏠 수도 있고 던질 수도 있었다. 혹은 근접하여 동물을 찍거나 내리칠 수도 있는 용도로 만들었다. 이것은 화살, 창, 손도끼, 그리고 망치의 기능을 모두 더한 복합적이며 효과적인 무기였다. 나무 창의 양 끝에 자루를 섬세하고 강력하게 부착하여 만든 무기는 중기 구석기와 후기 구석기의 가장 흔한 무기가 되었다. ‘자루 만들기’는 기술역사의 가장 중요한 혁신이었다. 인간은 비로소 나무, 가죽, 그리고 돌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서로 엮어 가공할 만한 무기를 제작하였다.
‘기술’이란 의미를 지닌 ‘테크닉(technique)’의 어원은 인도유럽어 ‘tek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선별하여 엮다’라는 의미다. ‘혁신적인 기술’이란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서로 상관이 없는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엮어 자신이 상상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과정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나무, 가죽, 그리고 돌을 하나로 엮는다면 자신보다 훨씬 큰 육식동물을 사냥할 수 있겠다는 실현 가능한 상상을 했고, 그런 무기를 만들었다. 자루 만들기 기술은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서 상상력과 마음의 혁신으로 과거 무기를 폐기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열고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한 도구였다.
브뤼니켈 한 여우 동굴의 놀라운 비밀
네안데르탈인은 야만적인 동굴 거주자인가? 최근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고도의 기술과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지녔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편견을 제거할 고고학적 발굴이 있었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브뤼니켈 동굴은 약 4만 년 전부터 1990년, 이 동굴이 발굴될 때까지 인간이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이곳에 네안데르탈인들이 설계-건축한 신비한 원형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이 건축된 시기는 17만 6000년 전이다.
그 당시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기 전으로 네안데르탈인들이 유럽의 유일한 거주자였다. 동굴 입구로부터 수백m 들어가면 복잡한 직사각형 구조물이 등장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이 구조물을 동굴 안에서 자생적으로 자라고 있는 종유석과 석순으로 건축했다. 브뉘니켈 동굴은 후에 등장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구석기 시대 동굴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뼈나 도구,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무기도 들고 가지 않았다면, 이곳은 어떤 장소인가?
그들은 브뤼니켈 동굴 안에 신비스러운 구조물을 가로 4m, 세로 5m로 만들었다. 이런 구조물을 짓는 창조적인 행위를 ‘건축’이라 부른다. 어떤 인위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선,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과 그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을 ‘건축가’ 혹은 ‘창조자’라고 부르고 그의 의도를 ‘건축’ 혹은 ‘창의’라고 부른다. 네안데르탈인은 창의성을 가지고 동굴로 들어가 자신만의 건축을 완성한 예술가다. 영어 단어 ‘architecture’도 이런 네안데르탈인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했다. 앞부분 ‘arch’는 ‘원칙· 의도·상상력’이란 의미고 ‘techture’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엮다’라는 의미다. 그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하나로 엮어 구조물을 만든 ‘건축가’였다.
한 동굴 탐험가가 하루는 브뤼니켈에서 한 여우 동굴을 발견했다. 그는 이 동굴이 다른 여우 동굴과는 달라 보여 3년 동안 굴을 팠다. 그는 마침내 336m를 파고 들어가 동굴 입구에 도달했다. 그 후 고고학자, 동굴 탐험가, 그리고 해부학자들이 팀을 이뤄 이곳에서 발견된 동굴 곰과 다른 동물들의 뼈들을 분석했다. 이 뼈들은 불에 탄 흔적이 남아, 학자들은 인간이 이곳에 의도적으로 들어와 불을 지폈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까지 동굴 안에서 인간의 활동이 감지된 시기는 3만3000년 전이다. 1998년 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에서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벽화가 수백 점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도 종유석과 석순,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제단도 발견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 깊숙한 동굴로 들어와 정교한 의례를 행했던 것이 분명하다. 브뤼니켈 동굴은 호모 사피엔스가 동굴에 그림을 그리기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과 같은 어두운 동굴로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들어와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행위를 했다는 증거다. 호모 사피엔스의 예술성과 창의성은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일부 전수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네안데르탈인은 종유석과 석순을 기하학적인 모형으로 바닥에 배열했다. 그들은 눈비바람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깊은 동굴 안에서 최초의 장식을 시도했다. 그들은 두 개의 고리모양의 구조물과 4개의 작은 종유석 군을 만들었다. 두 개의 고리 모양 중 하나의 크기는 6.7m×4.5m이며 다른 하나 크기는 2.2m×2.1m다. 종유석군의 지름은 0.55m에서 2.6m다. 두 개 종유석군은 커다란 고리 안에 있고 나머지 두 개는 밖에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의례를 하는 인류였을까?
종유석을 모두 합한 길이는 112.4m이며 평균 무게는 2.2t이다. 종류석은 크기와 길이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보아, 누군가 의도적으로 배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종유석들을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화로는 땅 바닥에서 발견되는데, 브뤼니켈 동굴의 불 흔적은 종유석 구조물에 남아 있다. 이 종유석을 이런 배열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 명의 노동이 필요했고 정교한 사회구조가 필요했으며, 전체 노동을 기획하고 관장하는 리더가 필요했다. 이런 기하학적이며 공간적인 배열은 불빛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램프, 횃불, 그리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불을 이용했음이 분명하다. 학자들인 브뤼니켈 동굴을 발견하기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은 불을 초보적인 수준에서 수동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왜 네안데르탈인은 동굴 입구로부터 336m나 떨어진 컴컴한 곳에 이 정교한 구조물을 건설했는가? 화로의 흔적은 바닥이 아닌 구조물 위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네안데르탈인도 상징적인 행동과 의례를 하는 인류였을까?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전역에 거주했다. 특히 스페인 지브롤타 해안의 두 개 자연 동굴인 뱅가드 동굴과 고르함 동굴이 네안데르탈인이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식습관을 혁신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동굴은 나란히 바닷가에 위치하며 높이가 35m, 길이가 20m다. 이곳에는 바다 하구에서 건져온 조개껍데기, 모닥불 터, 석기, 그리고 오징어나 문어와 같은 연체동물을 잡은 흔적이 남아 있다. 빙하로 덮인 유럽 내륙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던 네안데르탈인은 생존을 위해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바다로 나갔다.
이곳은 다른 육식동물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바다가 제공하는 해산물을 주식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간이 잡식성이 된 이유는 생존을 위해 맨 처음에는 식물, 그 후 동물 사체, 그리고 해산물로 음식 영역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거주지는 네안데르탈인에게 중요한 활동을 간직한다. 이들은 먹을 것을 위해 바닷물의 조석간만의 차이를 이해해야 했다. 이들은 달의 모양이 조석간만의 차이를 일으키는 신비한 힘을 지닌 천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달과 해, 그리로 별이 자신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어떤 존재로 여겼다.
이들에게 조개는 먹을 것 이상이었다. 조개는 자신을 생존하게 해주는 생명의 표시이자, 동굴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을 다른 지역의 네안데르탈인과 구분해 주는 표시였다. ‘상징’이라는 그 물건이 물질적으로 표시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 정체성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고 공동체와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해주는 수단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면서 문명과 접촉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색을 칠하거나 조개껍질을 주렁주렁 달아 자기 신분을 표시한다.
스페인 남동쪽에 위치한 무르시아에서 5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특별한 조개껍질이 발견되었다. 이 껍질은 물감을 섞고 보관하는 물감통이다. 인류는 이제 바디페인팅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화장을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파운데이션으로 사용했을 노란색 물감, 그리고 반짝이는 검은색 미네랄 조각과 섞인 붉은색 파우더를 발견했다. 조개껍질은 물감을 담는 용기 이외에 몸에 달고 다니는 장신구였다. 그들은 조개껍질을 조각하고 밝게 칠해 보석처럼 사용했다. 그들은 같은 크기의 조개껍질에 동일한 구멍을 내서 옷에 매달았다. 이 사실 역시 현대인의 편견을 깨는 정보다. 호모 사피엔스만이 치장과 의례를 위해 화장한다고 생각해왔다.
현대과학은 이제 과거를 연구하는데, 그 화석을 눈으로만 관찰하여 분석하는 과거 연구방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 유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유전구조를 찾아내, 그 숙주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밝혀낸다. 대표적인 학자가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유전학자 스반테 파아보다. 파아보는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그들의 남긴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통해 가려낸다. 그는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굴한 수 만년 전 화석에 남겨진 유전정보를 추출하여 네안데르탈인 게놈 전체를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과학자들은 1997년 화석으로부터 네안데르탈인의 DNA 일부를 처음으로 추출했다. 그 후 네안데르탈인의 뼈들로부터 게놈 전체를 판독했다. 그들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의 비교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늘날 유럽인과 아시아인에 공동적으로 발견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는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에게선 발견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현생인류는 아프리카로부터 유럽으로 이주한 뒤, 네안데르탈인과 이종 교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현생인류에는 1∼3%의 네안데르탈인 DNA가 있다. 이러한 유전적인 유산은 네안데르탈인과 유럽인, 아시아인의 공동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간에 이종교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는 현생인류의 건강, 특히 알레르기와 우울증과 같은 병을 일으킨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아프리카 공동 조상으로부터 6만 년 전에 갈라섰고, 그 이후에 먼저 네안데르탈인이 유럽,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네안데르탈인은 빙하시대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특별한 신체구조로 진화했다. 몸이 다부지고 강력하여 커다란 동물을 사냥할 수 있도록 몸을 최적화했다.
2010년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한 크로아티아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으로부터 네안데르탈인 게놈 60%를 찾았다. 2013년에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에서 발견된 5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 남성 엄지 발가락으로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알타이 게놈 지도에서도 이종교배가 확인되었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아프리카인이 지니지 않는 네안데르탈인 DNA를 소량 지니고 있다. 막스프랑크 연구소의 스반테파아보 박사는 4만 년 전에 이종교배가 일어났다고 추정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성교를 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만일 우리가 ‘생물학적 종개념’을 이 경우에 적용시킨다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속에 속하는 인류다. ‘생물학적 종개념’이란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가 1942년 저술 <동물학자가 본 종의 체계와 기원>이란 책에서 종(種)이란 서로 간 교배를 통해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 이전에 찰스 다윈과 생물학자들은 한 공동의 조상에서 복수의 종이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마이어에게 ‘종’이란 다른 집단을 배제시키고 자신들 가운데서 자손을 배태시킬 수 있는 집단이다. 이 개념은 네안데르탈인을 처음 연구한 샤아프하우젠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더 이상 과학적인 이론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일정기간 유럽에서 같이 살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기 때문이다.
이종교배, 가능하지만 생존율은 낮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많은 동물이 종종 이종교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케냐에는 올리브색 개코 원숭이와 노란색 개코 원숭이가 있다. 이들은 서로 교배하여 오랫동안 지내왔다. 그러면 이 두가지 색깔의 개코 원숭이는 올리브색과 노란색 중간색을 띠는 개코원숭이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난 개코원숭이들은 개별 개코원숭이들만큼 생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식을 덜 생산했거나 오래 살지 못했다. 에른스트 마이어의 ‘생물학적 종개념’에 반대되는 현상이다. 오늘날 올리브 개코원숭이와 노란색 개코원숭이는 개별적인 종으로 생존한다.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현생인류의 DNA 속에 흔적을 남긴 것처럼 간혹 이종교배를 했지만, 두 개 종을 하나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전혀 다른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이란 학명을 만든 윌리엄 킹이 살아있다면 고상한 인류가 ‘야만적인’ 네안데르탈인과 성교했다는 유전자 발견에 놀랐을 것이다. 이러한 이종교배에도 호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존했다. 그 후 2만 8000년경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우리만 생존하게 되었다. 무엇이 호모 사피엔스를 생존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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