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9)] 요리하는 인간

rainbow3 2021. 6. 11. 03:42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9)] 요리하는 인간

생존의 본능을 의식화해 문명을 일으키다

요리의 발견은 도구·언어의 발견과 함께 인류의 획기적 사건… 불의 발견과 요리의 시작 이후 음식 매개로 한 공동체 형성

#1. 요리는 마술이다

나는 수 년 전 안식년을 맞이해 무언가 신나고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국내 한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 요리학원을 1년 동안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다니지 못했다. 아직도 다니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마음에 남아 있다. 최근 TV에 자주 등장하는 요리사들을 보면 부럽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이외에, 내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와 가족을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노동을 꼽으라면 요리다. 군대에서 운 좋게(?) 1년 동안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요즘 레스토랑에 가면 이전과 달리 부엌이 숨겨져 있지 않다. 공개된 장소로 누구나 조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음식을 먹으러 온 사람들은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식욕을 돋운다. 어릴 때, 어머니가 음식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그들이 부산하게 요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요리는 마술이다. 어머니는 날것으론 먹을 수 없는 재료들을 가지고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고대 그리스어엔 ‘요리사’란 특별한 단어가 있다. ‘마게이로스(mageiros)’다. 이 단어는 ‘요리사’, ‘도살자’, 그리고 놀랍게도 ‘사제’라는 의미도 있다. 이 그리스 단어의 기원을 알면 왜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단어는 현재 이란지역에서 기원전 6세기경 사용되던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서 다리우스가 제국의 왕이 되었다. 중앙아시아 파르티아란 지역의 태수이자 용병이었던 다리우스는 선왕 캠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리아에서 객사하자, 자신이 제국의 왕이 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이전부터 면면히 내려오던 전통종교를 국가종교로 만든다. 이 종교는 기원전 7세기경 짜라투스트라(그리스어 이름인 ‘조로아스터’로 더 알려짐)라는 예언자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다.

조로아스터교의 불 숭배에서 비롯된 요리사의 기원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는 ‘마구스(magus)’라고 불렸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마즈다(Ahuramazda)라는 최고신을 섬기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거행했다. 변화무쌍한 아후라마즈다 신을 표현하기 위해 ‘불’을 선택했다. ‘불’을 아후라마즈다의 현현이라고 여겼다. 마구스는 이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제다. 특히 조로아스터교는 철저한 이원론에 근거하여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정결한 음식과 불결한 음식을 정확히 구분했다. 정결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마구스의 임무였다. 그는 사막지역에서 양이나 염소를 제사를 위해 도살해 신과 인간을 위한 구별된 음식을 마련했다. 그래서 ‘마구스’는 ‘도살자’며 ‘요리사’였다. ‘마구스’는 별을 관찰하는 점성술가이기도 해서, 예수의 탄생을 별 관찰을 통해 알고 페르시아로부터 온 세 명의 사제이기도 하다. ‘마구스’의 복수형은 ‘마기(Magi)’이며 한국어로는 ‘동방박사’로 번역했다.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은 마구스가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공동체의식을 고취했다. 이들은 함께 식사하면서 신앙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영어단어에서 ‘마술사’를 의미하는 ‘매지션(magician)’도 ‘마구스’에서 유래했다. 음식은 우리의 몸으로 들어가 기적을 일으켜 에너지를 만든다.

요즘 TV에서 요리방송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요리’이기 때문이다. 요리에 숨어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향수를 자극한 까닭이다. 요리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이 문화엔 남녀 부부관계를 통해 가족의 등장, 남녀 노동의 분화, 식사공동체를 통한 가족의 등장,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 공동체의 등장과 같은 것들이다.

#2. 요리의 문화적 의미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발견하였다. 특히 지상으로 내려와 살면서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사냥감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머리털만 남겨둔 채, 몸에서 털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불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니 전기가 없다면 추운 겨울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밤은 캄캄하고 춥고, 멀리서 우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잠을 못 이룰 것이다. 우리는 아침 해가 떠오르기만 초초하게 기다리는 연약한 동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생선, 고기, 혹은 식물에 상관없이 날것이며 화롯가가 제공해 주는 따스함과 공동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동물들은 일반적으로 음식, 물, 그리고 잠잘 곳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들과 더불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불이다. 아니 불을 통해 음식, 물, 그리고 잠자는 곳이 인간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전해주는 집으로 변화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불이 필요했을까? 인간이 불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지만 불을 가지고 요리를 시작한 사건은 현생인류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찰스 다윈은 5년 동안 세상을 항해하면서 야생에서 생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불의 발견을 언어의 발견 다음으로 인간진화에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윈은 인간이 언제부터 불을 조절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한 20만 년 전에 석기와 창과 같은 도구가 제작되었고 예술, 낚시도구, 몸 장식품, 화살촉은 그 후에 등장했다. 다윈은 불을 다루고 요리를 하는 기술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후에 고안해냈다고 추정한 것 같다. 그의 진화론 계보에서 불의 발견과 요리는 인간의 생물적 진화에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류학자 A.R.래드클리프-브라운(1881~1955)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불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불은 추운 겨울밤에 따스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류조상들은 잡은 동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구워먹기 시작했다. 호모 에렉투스의 기본적인 삶의 형태는 ‘사냥채집’ 경제다. 인간이 두 발로 걷고 불을 발견하고 몸에서 털을 제거함으로 새로운 생존의 길을 열었지만, 아직 원숭이나 침팬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요리를 통해 호모 에렉투스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요리(料理)는 식물이나 동물의 고기를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누가 먹을 것인가, 왜 그리고 어디서 언제 먹을 것인가, 그런 후 그 음식을 어떻게 장만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예술이다. 인류는 아마도 요리를 통해 처음으로 다양한 사고를 하게 되었고 효과적으로 즐기기 위해 저장기술을 발전시켰다. 요리는 음식의 가치를 증가시킨다. 요리를 통해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불을 통해 요리된 음식은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킨다. 요리와 저장을 통해 인간은 처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인 활동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 중요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서로간의 신의를 다짐한다.

동물과 차별화된 ‘요리하는 동물’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며 문필가인 제임스 보스웰(1740~1795)은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플라톤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인간 정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고대 그리스인 철학자 플라톤이 인간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날개가 없는 동물’이라고 말하자 디오게네스가 닭의 털을 다 뽑아 그 닭을 ‘철학자’라고 놀려댔다고 전한다. 이족보행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았음을 상징한다. 미국 문필가 밴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인간을 ‘도구를 만드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도구를 만들지는 않는다. 보스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에 대한 나의 정의는 ‘요리하는 동물’이다. 짐승들은 기억하고 판단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과 열정을 어는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짐승에겐 요리사가 없다. 인간만이 요리를 하고 인간은 자신이 먹을 것을 요리할 수 있는 요리사다.” 요리는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서 호모 에렉투스의 신체와 정신을 근본적으로 혁신했다.

프랑스 법률가이자 식도락가였던 J-A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 Savarin, 1775~1826)은 8권으로 구성된 <맛의 생리학>이란 책에서 요리가 인간을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스토로스는 <날것과 요리된 것>(1964)에서 요리를 상징이라고 정의한다. 이 상징적인 행위가 인간을 다른 동물로부터 구분한다. 요리는 ‘날것’ 상태의 자연을 ‘요리된 문화’로 전환하는 인간의 상징적인 은유다. 학자들은 레비-스트로스의 정의를 축자적으로 수용해 요리의 발견이 온전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진화의 실마리를 푸는 마지막 열쇠라고 해석해왔다.

#3. 리차드 랭험 교수의 <요리본능>

레비-스트로스가 정의한 요리의 상징적인 의미를 확대해 진화의 완성으로 정리한 학자가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인류학자인 리차드 랭험이다. 그는 <요리본능>(원제)이란 책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요리의 발견은 도구의 발견, 육식 혹은 언어의 발견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인류는 이제 다른 유인원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인간이 되었다.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틀인 ‘문화’가 요리를 통해 인류에게 다가왔다.

그의 ‘요리 가설’에 의하면 요리된 음식의 섭취는 인간진화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그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 상상하지도 못할 곳으로 돌렸다. 음식을 불로 가열함으로써 인류는 신체의 외적으로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는 신체의 내적인 변화와 더불어 정신적인 변화들로 이어졌다. 인류의 선조들은 에너지를 극대화하고 쉽게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함으로, 자연적으로 두 가지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먹은 음식을 오랫동안 소화시킬 필요가 없어 내장이 급격히 줄어들고 뇌가 커졌다. 날음식은 씹고 소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유인원들은 훨씬 크고 긴 소화기관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6시간 이상이 걸린다.

인류의 요리과정은 사실 음식을 씹고 소화시키는 과정을 몸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낸 것과 같다. 인류는 몸 밖에서 음식을 잘게 썰고 물에 데치고 불에 구워, 거의 완성한다. 인간의 신체 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불을 이용해 이 임무를 완성한다. 또한 요리는 음식 안에 존재하는 유해성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에너지를 섭취하면서 사용하는 열량을 고스란히 비축하여 신체의 다른 부분, 특히 뇌의 용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요리는 음식 안에 있는 에너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기 때문에 인간은 많은 양의 먹을 것을 더 이상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인간은 이제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사냥-채집을 넘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생존 위한 음식 섭취가 예절 의식으로 문명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신체 안에 숨겨진 여러 가지 내적인 변화와 그와 연계된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이 된다. 2세기 그리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플루타크는 영웅들의 삶을 탐구하고 저술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는 “우리는 내적으로 완벽해질 때, 외적인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호모(Homo)’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류가 출발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불의 발견과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불을 가지고 요리한 음식을 먹은 정기적인 식사(食事)라는 의식이다. 음식을 동일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먹는 습관은 인류가 행한 최초의 의례다. 의례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고, 변화하는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다. 식사는 또한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사람들과 단단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렇게 항상 식사를 같이 하는 구성원들을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이 행위는 인간사회의 핵심 단위인 부부와 가족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다른 동물들은 먹이를 찾으러 갔다가 그 장소에서 혼자 먹어 치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앉아 눈을 맞추고 음식을 나누며 특히 아무리 배고파도 자기 절제를 연습해야 했다. 예절의 시작이다. 식사라는 의식은 인간을 문명화시켜 왔다. ‘불’과 불이 만들어 낸 ‘음식’이 인간에게 에티켓이라는 추상적인 행동양식을 가르쳐주었다. 불에 구운 고기를 함께 잘라먹는 행위는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한 공동체라는 계약의 상징이다.

고대 히브리어에 ‘계약’이란 단어 ‘베리트(berit)’가 있다. 이 단어는 ‘음식을 자르다’란 의미를 가진 ‘바라(barah)’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축자적인 의미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다지는 결의’ 혹은 ‘잘라진 고깃덩어리’라는 의미다. 이런 결의를 다지는 최초의 계약 공동체가 바로 식구(食口)다. 우리는 중요한 계약이나 사건을 기념할 때, 예들 들어 결혼이나 회갑연, 혹은 비즈니스 계약을 완성할 때 만찬을 거행함으로 하나가 된다.

음식을 먹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처음으로 예의라는 것을 접한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부모와 자식이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음으로써 한 공동체가 되고, 서로 대화함으로써 그 식구에게만 유일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문을 만들고 집단을 형성한다. 이 식탁교육은 인간을 예의 바르게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지능력을 폭발적으로 신장하였다. 인간의 큰 뇌와 짧아진 내장은 요리된 음식이 가져다준 혁명의 결과다. 인간은 요리라는 의례를 행하여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고, 동시에 요리는 인간을 인지적인 동물로 전환시켰다.

#4. 신체의 변화

인간은 조리된 음식을 섭취하면서 침팬지나 다른 원숭이들과 비교하여 신체 중 소화기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음식 소화에 관련된 신체 부분들이 현격히 변화했다. 인간의 입은 작아졌다. 더 이상 음식을 물어뜯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턱 관절이 약해지고 치아가 줄어들었다. 신체 내 소화에 관련된 기관들, 특히 위, 대장, 내장이 모두 작아졌다.

인간의 위장의 크기는 같은 몸무게의 유인원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위장 밑에 위치한 내장과 대장도 마찬가지다. 입과 치아에서 시작해 내장기관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축척할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원래 채식주의자들이었다. 약 200만 년 전까지 존재했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다른 육식동물들이 남겨놓은 사체를 하이에나와 같은 동물과 경쟁해 겨우 먹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이에나를 피해 근처도 가지 못했다. 이들은 분명 고릴라나 침팬지처럼 거대한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신체구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엉덩이뼈와 흉곽은 허리까지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 이들의 커다랗고 둥근 뼈는 상당한 양의 내장이 흉곽과 엉덩이뼈로 지탱됐다는 증거다.

음식을 씹을 때 사용하는 어금니도 작아지고 둔탁해졌다. 개, 늑대, 혹은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날고기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날카롭고 크다. 그들은 먹은 고기를 장시간 동안 위에 머물게 만들면서 소화가 잘 되게 위벽을 움직여 잘게 쪼개기 시작한다. 개는 위장에 음식을 두 시간 정도 보관하고 고양이는 5~6시간 보존한다. 인간은 음식을 위에 한 시간 정도 머물게 한 후 대장으로 보낸다. 인간은 자신이 먹은 것으로 생존하지 않고 소화한 것을 통해 생존한다.

#5. 뇌 크기의 변화

 

호모 에렉투스의 신체 중 소화기관과 치아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커진 부분이 있다. 바로 뇌다. 뇌가 언제부터 커졌는지 추적하기 위해,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사실 그 시점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실마리는 없다. 그러나 신체의 구조 변화를 통해 그 시점을 간접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신체 구조가 현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호모 에렉투스들이 남긴 유골을 분석하고 그러한 급격한 신체 변화는 주식(主食)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불을 처음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추운 겨울에 살아남고 몸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을 지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 속(屬)은 호모 에렉투스(180만 년 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80만 년 전)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20만 년 전)다. 최근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라고 불리는 조상으로부터 파생됐다고 말한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유골은 1907년에 독일 하이델베르그 옆 마우어에서 발견됐다. 여기서 발견된 아래 턱 뼈는 6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다. 독일 쉐닝엔의 너도밤나무 재배지역에서 모닥불 흔적이 발견됐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얼굴에 작은 뇌를 지녔다. 이들은 다시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생김새의 특징들을 추적할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해부학적인 차이는 뇌 용량의 차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뇌 용량은 30% 더 큰 1100~1300㏄ 정도였고 납작한 얼굴을 지녔다. 뇌 크기로는 거의 현생인류와 같다. 이들은 불을 지피고 초기형태 움막집을 만들고 처음으로 야생 사슴, 말, 코끼리, 하마, 코뿔소와 같은 큰 동물을 사냥하고 이들의 뼈에 뾰족한 도구로 기호를 남겨 놓았다. 쉐닝엔에서는 나무 창, 석기 도구, 그리고 도축된 말들도 발견됐는데 이들이 본격으로 사냥을 시작했고, 특히 사냥감을 불에 구워 먹음으로 뇌 크기가 현격히 커졌음을 의미한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뇌 크기는 이미 호모 에렉투스가 생존한 18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가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호모 에렉투스는 다른 유인원들, 즉 침팬지나 원숭이와 비교하여 몸집이 상당히 크다. 호모 에렉투스의 신체는 남겨진 뼈들의 크기로 추정해본 결과 키는 145~185㎝이며 몸무게는 40~69㎏이다. 이들의 큰 몸집은 이들의 섭생이 다른 유인원들과 달랐다는 증거다. 고기를 불에 구워 먹고 올리브, 호두와 같은 영양분이 농축되어 있는 식물을 섭취하여 그 영양분이 짧은 시간에 소화기관에 흡수돼 에너지로 전환됐다. 이들은 또 ‘아슐리아’라는 특별한 석기를 제작했다. 아슐리아 석기는 이전의 올두바이 석기보다 더 날카롭게 효과적이다. 이 석기는 프랑스 생트-아슐(Saint Acheul)에서도 발견되어 아슐리아 석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석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칭적이며 미적이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규암이나 화산암 몸돌에서 석기로 여러 번 내려쳐 정교한 박편을 골라내 주먹도끼로 사용했다. 주먹도끼는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둥글게 되어 있어 망치로 혹은 송곳 용도로도 쓰였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처음으로 땅에서 잠을 잤다. 불을 피워 다른 야생 동물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들은 땅에서 거주하면서 점점 나무를 타는 기술을 잊고 대신 먹이를 찾으러 장거리 여행을 하기 위해 하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6. 신피질과 추상적인 사고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기쁨과 슬픔을 공감한다. 인간의 감정, 이성, 그리고 기억을 관장하는 기관은 바로 뇌다. 최근 뇌과학의 발전으로 뇌의 복잡한 현상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뇌의 기능은 생명의 기원이나 우주의 기원을 푸는 과정만큼 수수께끼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과 마음은 뇌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뇌와 마음은 동일하지 않지만, 신경세포의 화학적인 반응으로 마음이 결정된다.

인간의 뇌는 수십억 년에 걸친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다. 뇌는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이 세 부분은 원초적인 부분에 다른 부분들이 더해진 진화와 자연선택을 거쳐 우리의 뇌가 되었다. 우선 가장 원초적인 부분은 척추에 붙어있는 뇌간(腦幹)이다. 이 부분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움직임, 예를 들어 숨쉬기와 공격에 반응하는 즉각적인 움직임을 조절한다. 이 뇌는 생각하거나 배우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공격을 하면, 그것에 반응하여 싸우고 먹을 음식이 향기를 내면, 그것에 반응하여 먹이를 찾아 나선다. 파충류는 이 뇌만을 가지고 있어 파충류의 뇌라고도 부른다.

포유류가 등장하면서 두 번째 뇌인 변연계가 그 주위에 더해졌다. 변연계는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 이외에 학습과 기억이 더해진다. 포유류는 과거의 학습을 통해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한다. 만일 자신이 맛본 식물에 독성이 있다면, 그 식물에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는다. 또한 이곳에서 감정이 표현된다. 인간도 변연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감정이 격해져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거나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 변연계가 우리를 사로잡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원숭이와 침팬지,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에게 새로운 뇌가 더해졌다. 신피질이다. 신피질은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는 장소다. 호모 에렉투스의 남성이 다른 여성을 보고 성적인 욕구를 느꼈다면, 그것은 변연계가 작동한 것이지만, 한 여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안정적인 생활을 원한다면 신피질을 동원해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오스트탈로피테쿠스와 같은 작은 원숭이와 호모 에렉투스의 뇌를 비교하면 거의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의 뇌는 뇌간, 변연계, 그리고 신피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침팬지와 호모 에렉투스를 구분했을까? 그것은 뇌 용량의 크기다. 인간 뇌에서 신피질이 차지하는 부분은 76%이며 침팬지는 72%이다. 별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이 4%의 차이가 다른 유인원과 인간의 차이를 유발시켰다. 인간은 뇌신경세포가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연결되어 관찰, 성찰, 그리고 배움을 강화한다. 침팬지도 자신이 보는 것을 관찰하지만, 인간은 그 관찰한 것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하고 추상적으로 사고한다. 오랑우탄은 화가 나면 그 화를 못 참고 파괴적으로 표현하나 인간은 그런 행동의 결과를 예측해 화를 절제한다. 인간은 이렇게 예측한 정보를 자신의 자녀에게 전달해 지식을 축적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유전자뿐만 아니라 이렇게 축적된 문화적인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한다. 이런 방식으로 후손은 이 지식을 전수받아 다시 확장한다. 이 지식은 세월이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문화와 문명을 이루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다. 그리고 문화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로 상상하지 못할 경지로 인간을 인도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불을 통해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인간의 뇌는 다른 유인원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특히 인간은 어머니의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그 뱃속에서 1년 먼저 나온다. 태아는 1년 동안 어머니의 젖을 수유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걷게 된 후엔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통해 예절과 문화를 배운다.

#7. 요리, 인간 문명의 씨앗

호모 에렉투스는 요리를 발견해 다른 유인원들과 다른 온전한 인간이 되는 혁신적인 길에 들어섰다. 이 혁신은 인간을 유인원들 중 한 일원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인도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우연히 발견한 불을 통해 자신이 잡은 동물을 구워먹기 시작했다. 맨 처음 이것을 시도한 호모 에렉투스는 인류를 동물이 아닌 문화와 문명을 개척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향하는 길을 닦은 것이다. 요리가 인간을 변혁시켜 찬란한 문명을 만든 씨앗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