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리더의 조건]
공감과 연민의 경험
아킬레우스는 왜 敵將의 아버지와 함께 울었을까?
인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라는 독특한 틀을 구축한다. 문화의 내용들은 ‘기억’과, ‘구전’과 ‘문전’이라는 기억 전달의 매개로 보존된다. 자신의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간직하는 체계가 ‘기억’이며, 그 기억을 세대를 걸쳐 전달하고 재해석하는 틀이자 마당이 ‘문화’다.
인류는 문자를 발견하기 이전에, 이런 기억을 말과 귀, 그리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전달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자신이 속한 가족, 공동체, 마을, 더 나아가 도시를 구축하는 근간이 되었다.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끈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억에 도움을 주는 운율을 붙여 노래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를 ‘서사시(敍事詩)’라고 부른다. 이 노래는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서사시는 한 공동체 안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과 사건의 주인공인 영웅이 상징하는 가치를 찬양하는 오래된 문헌이다. 서사시는 인류에서 전형적인 인간인 영웅, 그 공동체의 위대한 리더만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관한 찬양시다. 서양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우리는 이 서사시의 저자인 호메로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장님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여자라고 말한다. 고대로부터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회자되어왔다. 호메로스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를 노래로 잘 정리한 최종 편집자다.
인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라는 독특한 틀을 구축한다. 문화의 내용들은 ‘기억’과, ‘구전’과 ‘문전’이라는 기억 전달의 매개로 보존된다. 자신의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간직하는 체계가 ‘기억’이며, 그 기억을 세대를 걸쳐 전달하고 재해석하는 틀이자 마당이 ‘문화’다.
인류는 문자를 발견하기 이전에, 이런 기억을 말과 귀, 그리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오랫동안 전달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자신이 속한 가족, 공동체, 마을, 더 나아가 도시를 구축하는 근간이 되었다.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끈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억에 도움을 주는 운율을 붙여 노래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를 ‘서사시(敍事詩)’라고 부른다. 이 노래는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서사시는 한 공동체 안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과 사건의 주인공인 영웅이 상징하는 가치를 찬양하는 오래된 문헌이다. 서사시는 인류에서 전형적인 인간인 영웅, 그 공동체의 위대한 리더만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관한 찬양시다. 서양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우리는 이 서사시의 저자인 호메로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장님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여자라고 말한다. 고대로부터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회자되어왔다. 호메로스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를 노래로 잘 정리한 최종 편집자다.
이 두 권의 책은 무슨 내용인가?
‘일리아스’는 ‘일리움(트로이의 옛 지명)에 관한 노래’라는 의미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 노래를 ‘일리아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일리아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렌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도망친다. 그러자 고대 그리스 도시 연합군이 트로이와 전쟁을 벌인다. ‘일리아스’는 한 여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도시들과 트로이가 지중해 해상 상업권을 쟁취하기 위해 충돌한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한쪽은 불타 없어져야 한다. 결국 트로이는 불에 타 사라지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지중해를 장악한다. 만일 트로이가 승리했다면 서양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의 시조가 된 그리스 비극이 존재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인 삶’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신화적이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이타카로 귀향하는 이야기다. 그는 귀향 중에,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무스를 만나 살해하고 도망하고, 아름다운 마술사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 섬에 감금되고,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라는 바다괴물에 의해 거의 죽을 뻔한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와 20년 동안 정절을 지키며 자신을 기다린 페넬로페와 조우하여 그리스 문명을 세운다. 서양인들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인하였다.
누구나, 혹은 어느 민족이나 이런 서사시를 창출해낼 수 있었을까? 오늘날 베트남이나 케냐와 같은 나라가 이런 서사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문명의 중심이 아닌 주변 나라들에서는 문학이나 위대한 문학을 배출할 순 있지만, 서사시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노벨상 수상작가 솔 벨로(Saul Bellow)는 다음과 같은 다소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언으로 서사시의 희귀성을 주장한다.
“아프리카 줄루의 톨스토이는 어디 있는가? 파푸아뉴기니의 프루스트는 어디 있는가?”
솔 벨로는 위대한 문명을 창조해낸 나라만이 위대한 문학을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위대한 국가들 중 최고만이 서사시를 만든다. 이 서사시 안에는 세계 권력의 비밀인 영원한 가치가 담겨 있다.
서사시의 특징은 네 가지다.
길이가 장대하며, 주인공은 보통 사람에서 출발하여 거의 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영웅이며, 그 내용은 국가를 건립하는 민족적인 성격을 지녔다. 무엇보다도 가장 순수한 문학 형태인 ‘시’로 서술된다.
이 시는 찬양시와 애가로 구성된다. 찬양시와 애가는 각기 중요한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영웅의 ‘명성’이며 다른 하나는 영웅의 ‘영생과 죽음’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길가메시는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괴물들과 싸운 명성을 다루는 부분과, 자신의 친구인 엔키두가 죽고 난 후 영생을 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가 영원히 살고 있는 우트나피시팀을 만나는 영생과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명성의 찬양에 관한 것이며, ‘오디세이아’는 영생과 죽음에 관한 애가로 가득 차 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만들어진 로마제국의 기원 서사시인 ‘아이네이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저술한 베르길리우스도 이 두 주제를 가지고 저술하였다. ‘아이네이스’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아르마 비룸퀘 카노(arma virum-que cano)’.
라틴어로 된 이 문장을 번역하면 ‘나는 전쟁(arma)과 영웅(virum)을 찬양한다’인데, 전쟁은 명성을, 영웅은 운명과 죽음을 상징하는 은유다. 서사시는 까마득한 옛날에 기록된 문학이지만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연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리아스’는 전쟁에서 명성을 쟁취하려는 영웅 아킬레우스에 관한 노래다. 명성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초인적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인 24장에서 명성이나 전쟁을 찬양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가치를 부각시킨다.
호메로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특히 인간이 죽음에 직면할 때 보이는 숨겨진 고귀한 인격을 묘사한다. 전쟁은 인간에게 상대방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기계적이며 이성적인 게임이 아니라, 비록 적이라고 할지라도 적들의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문명의 필연적 과정이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세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그 시대에는 아직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세 문명이 각축하였다.
오늘날 터키 서쪽 해변 지역인 트로이를 중심으로 일어난 트로이 문명, 지중해 남부 크노소스섬을 중심으로 한 크레타 문명, 그리고 아테네 남서쪽에 위치한 미케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미케네 문명이다. 미케네 문명 안에 아테네, 코린도, 테베, 스파르타 지역이 포함된다.
이 당시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 안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아카이오이’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감행하였다. 이 원정의 대장은 미케네 왕 아가멤논과 스파르타의 왕이자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오스다.
아카이오이인들이 소아시아 해안 트로이 근처에서 진을 친 지 10년이 지났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이 원정의 리더인 아가멤논과 연합군으로 참여한 영웅 아킬레우스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또 아카이오이인들이 간헐적으로 기습공격을 하다 문제가 발생한다. 그들은 트로이 근처에 있는 크리세라는 지역의 아폴로 신전을 급습하여, 크리세이스라는 아폴로 사제의 딸을 납치한다. 아가멤논은 이 전쟁 노획물인 크리세이스를 첩으로 삼는다. 크리세이스의 아버지인 사제 크리세스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아가멤논에게 가 자신의 딸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아가멤논이 거절하자 크리세스는 아폴로 신에게 기도하여 그리스 군대가 9일 동안 곤경에 처한다.
아킬레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카이오이인들을 모아 중재한다. 그들은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를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는 대신, 아킬레우스가 포로로 데리고 있던 브리세이스를 가로챈다.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오디세우스가 크리세이스를 돌려주자 아폴로 신은 재앙을 멈춘다.
한편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분노’가 치밀어 자신의 어머니자 여신인 테티스에게 기도하여, 아카이오이인들이 전쟁에서 패하기를 부탁한다.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의 철없는 요구를 받아들여 하늘의 주신인 제우스에게 기도하여, 아카이오이인들이 전쟁에서 패하게 만든다.
실제로 트로이 왕자인 헥토르가 아카이오이인들을 공격하여 그들은 해변가로 몰렸고 자신들이 타고 왔던 배는 불에 타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위기에 빠졌다. 이 모든 일이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하였다.
‘일리아스’ 1장 1~7행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셨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졌도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참가한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의 명성을 높이 세우기 위해서다.
‘명성’을 그리스어로 ‘클레오스(kleos)’라고 부른다. 클레오스는 전쟁에 참가하여 목숨을 내놓고 승리할 때 주어지는 명성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원정을 통해 두 가지를 완성해야 한다.
하나는 ‘무사 귀향’이며 둘째는 ‘명성 획득’이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그리스어로 ‘노토스(notos)’라고 부른다. ‘노토스’와 ‘클레오스’는 둘이자 하나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명성’(클레오스 아프시톤)을 획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가멤논이 자신이 전쟁에서 획득한 ‘명성’의 한 가시적 상징물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가자,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명성과 명성을 얻지 못한 분노에 대해 노래한다. ‘일리아스’의 시작 첫 단어가 바로 ‘분노’를 의미하는 단어인 ‘메닌(menin)’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꼬리를 무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추구하다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 안에 숨겨진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괴물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그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로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가 이끄는 정예부대인 뮈르미도네스족도 후방에서 쉬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의 사랑하는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전쟁에 참가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갑옷을 파트로클로스에게 입힌다.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군대가 자신을 아킬레우스로 착각하여 두려움에 떨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트로이 왕자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를 살해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친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진 후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가 헥토르로 향한 분노로 바뀐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새로운 갑옷을 얻는다.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그를 위해 불멸의 갑옷을 다시 만들었다. 아킬레우스와 그의 군대는 전쟁에 참가하여 많은 트로이인을 죽인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아킬레우스에게 “만일 헥토르가 죽는다면, 너도 곧 죽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아킬레우스는 분노에 휩싸여 어머니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어리석은 행위를 완수한다. 특히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위해 헥토르를 죽이는 행위는 ‘청동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인들 중 최고’인 아킬레우스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는 행위였다.
그는 특히 헥토르의 아버지이며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성벽 위에서 보는 가운데, 헥토르와 일대일로 대결하여 무참히 살해하고 그 시신을 자신의 전차에 묶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명성을 찾기 위해 트로이로 와 전쟁에 승리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비극적인 ‘분노’뿐이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24장에서 ‘누가 진정한 리더인가’를 두 명을 통해 보여준다.
한 명은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이고, 다른 한 명은 아킬레우스다.
프리아모스는 자신의 아들이 만신창이가 된 시체로 아킬레우스 텐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조용히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그는 마침내 아킬레우스의 텐트로 들어간다. 아킬레우스는 두 명의 영웅과 함께 식사를 막 마칠 참이었다. 그 순간을 호메로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위대한(megas) 프리아모스는 그들 몰래 텐트 안으로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자기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남자를 죽이는 그 무시무시한 손에 입 맞추었다.’
아카이오이인들과 트로이가 전쟁하는 가운데, 적군의 왕이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영웅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의 무릎을 잡고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원수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며 경의를 표한다.
두 손으로 무릎을 잡는 행위는 고대 그리스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간청할 때 하는 행위다.
호메로스는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세상의 최고 권력인 왕의 지위도 내려놓고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은 프리아모스가 ‘위대하다’(그리스 megas)고 묘사한다.
이 위대함은 전쟁에서 얻는 명성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다. 그는 아들의 장례를 위해 시신을 가져가려는, 왕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위대함’을 발현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런 프리아모스를 ‘신과 같다’고 묘사한다. 프리아모스는 말을 이어간다.
‘신과 같은(theoidea)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처럼 늙었고 슬픈 노령의 문턱에 서 있는 그대 아버지를./
혹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그분을 괴롭히더라도 그분을/
파멸과 재앙에서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래도 그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날이면 날마다 사랑하는 아들이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를 상기시킨다. 이 말을 통해 기적이 일어난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를 트로이의 왕, 적군의 리더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킬레우스는 이 대화 중에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허약한 아버지를 생각한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를 언급한 후, 자신의 처지를 이어 호소한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을 낳았지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소./
아카이오이인들이 왔을 때, 나는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어요. 그중 열아홉 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소실들이 나를 위해 낳아주었소./
그런데 그들 대부분의 무릎을 사나운 아레스(전쟁의 신)가 풀어버렸소.’
프리아모스는 쉰 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모두 전사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세상의 어떤 아버지보다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이 밤에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이유를 밝힌다.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얼마 전에 그대의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인들의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더 동정 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한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의 목숨보다 고귀하고, 아킬레우스의 칼보다 강력하다. 이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경계나 터부가 없다. 이렇게 말을 하자 아킬레우스의 마음속에 아버지를 위해 통곡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전쟁에서 죽어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울기 시작한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 발 앞에 쓰러져 죽어간 헥토르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아킬레우스는 멀리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프리아모스처럼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측은한 마음에 울었고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울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프리아모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바로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신이 당신을 내게 보냈지만 나를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화가 나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여종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이 닦고 다른 아카이오이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하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자신의 침대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밖에서 자겠다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장례하기 위해 12일 동안 전쟁을 멈추고, 그 후에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한다.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호메로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삶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인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는 문명의 불가피한 통과의례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을 분노와 무력으로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공감과 연민의 경험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인 24장에서 아킬레우스의 영웅으로서의 완전무결함을 찬양하지 않는다. 그는 ‘일리아스’를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찬양하면서 시작했지만 24장에서는 자신의 적인 프리아모스를 ‘신과 같이’ 보고 그를 위해 우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호메로스는 이 위대한 서사시를 통해 원수를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인 ‘연민’을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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