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1)]‘재배하는 인간’ 호모 플란탄스

rainbow3 2022. 3. 31. 23:40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1)]

‘재배하는 인간’ 호모 플란탄스(Homo Plantans)

 

<< 농업은 문명을 구축하는 발판 >> 

 

인간은 농업의 발견 이후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와… 농업은 인류문명의 기초인 ‘도시’와 ‘문자’의 등장을 위한 전제조건  

 

인간은 자신의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환경에 적극적으로 스스로 적응해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거나 자연을 변형시켜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발판으로 만든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도덕의 계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물건, 형태, 혹은 모임의 존재하는 목적과 유용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눈은 보기 위해, 손은 무엇을 쥐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긴 안목에서 보면, 인류는 우주의 거대한 변화 속에 운 좋게 살아남은 동물이다. 137억 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 왜 우주가 탄생하였는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는 현재의 지식으로 과거의 현상을 오늘날 일어난 결과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서 추론할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변화를 만나 다음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그 변화를 수용해 오히려 밝은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존 전략을 세워 새롭게 출발한다. 과거의 전략을 가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 행동으로 옮긴다.

이 태도가 혁신(革新)이다. 혁신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장점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인간이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淘汰)하기 마련이다. 자신들을 엄습한 변화를 두려워 해 오히려 과거의 자신에 매달려 더욱 더 그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습을 답습하다가 마침내 도태돼 사라진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부터 아프리카 북부와 동부에서 먹을 것을 찾아 서서히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날 중동을 거쳐 유럽에 들어와 정착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0만 년 전이다. 당시 유럽에 또 다른 유인원인 네안데르탈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16만 년 전부터 유럽 전역에 분포하여 탁월한 무기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이들은 분명한 사후세계가 있어 장례의식을 치렀고 몸 장식을 즐겨 했으며 심지어는 조그만 조각 작품까지 남기는 문화인이었다. 그들은 또한 신체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3만 년 전쯤에 도태돼 멸종됐다. 당시 지구는 그 당시 최악의 빙하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하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다니며 종종 마주치는 네안데르탈인과 경쟁했다.

<‘혁신’을 통해 생존한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는 오히려 경쟁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짓을 시작한다. 이 엉뚱한 짓이 혁신이다. 이 혁신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하고 네안데르탈인들은 사라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빙하기 시절 자연적으로 산맥에 만들어진 동굴 속으로 깊이 내려가 예술적인 작업, 특히 동물 벽화를 그렸다.

호모 사피엔스는 3만3000년 전부터 깊은 동굴로 내려와 노래를 하고 춤도 추고 사후세계를 위해 정교한 의례를 치렀다. 그들은 지하 동굴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존재의미를 묵상하면서, 정신적이며 영적인 동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을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하 동굴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공동 기억을 기반으로 한 의례행위를 정기적으로 행하여 연대의식을 높였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들은 지상에서 다른 네안데르탈인들과 경쟁하고, 가끔 마주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도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만 했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는 달리 예술을 통해 공동기억을 구축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습득한 사냥 기술이나 동족간의 연대는 강화하는 기억장치를 소홀하게 여겼다. 이들은 2만 8000년 전에 도태됐다.

혁신을 통해 기회는 항상 위기를 맞이할 때 등장한다. 기원전 1만 년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됐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초원지대가 등장해 먹을 것을 이전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투피아 시대(기원전 1만250~기원전 9500년) 동안 인류는 조그만 마을을 구축하여 간헐적인 식물재배와 가축사육을 시도했지만 정착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구는 또 다른 혹한기를 총체적으로 겪어야 했다. 인간으로 힘으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지구 스스로 우주 안에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후변화(氣候變化)라고 부른다.

기원전 9000년에서 기원전 8000년 사이에 생긴 급격한 기후변화는 지금 막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정타였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신드리아스기(Younger Dryas)라고 부른다. 지구는 거의 1000년 동안 지속된 신드리아스기에 다시 기온이 낮아져, 인류는 다시 멸종위기에 몰렸다. 특히 남서아시아에 위치한 훌레 호수(Lake Huleh)에서 채취한 화분(花粉)과 아부 후레이라(Abu Hureyra)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식물화석으로부터 그 시기가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인류는 신드리아스기에 혁신을 구축한다. 이전에는 지하 동굴에 내려가 자신과 공동체 삶을 반추하는 의례를 지냈는데, 이젠 지상에 멋진 종교시설을 건설해 ‘종교의례’를 치렀다. 터키 궤베클리 테페(Goebekli Tepe)에서 발견된 건물들은 인류가 정기적으로 신에게 제사들 드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상에 지은 최초의 종교 건축물이다. 인류는 신드리아스 기간 동안 농업의 정착과 동물 사육을 위한 준비를 했다. 신드리아스기는 인간이 사냥채집 경제에서 농경재배 경제로 변화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농업과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 신화> 

 

인류는 신드리아스기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인류는 자연이 주는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며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 자신에게 주어진 땅에서 식물을 개량하여, 먹을 것을 마련한다. 인류는 이제 농업정착생활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농업정착생활은 인류 문명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발판이다.

농업의 발견에 대한 신화가 있다. 고대 그리스 문헌을 통해 전해오는 데메테르 신화다. 데메테르(Demeter)는 농업과 풍요의 여신이다. 기원전 7세기 경 기록된 ‘데메테르에게 바치는 호메로스의 노래(Homeric Hymn to Demeter)’라는 시가 있다. 데메테르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 태어난 신으로 지상에서 나오는 곡식과 과실이 계절에 맞춰 열매 맺게 만드는 신이다. 데메테르(Demeter)라는 그리스 이름은 원래 ‘땅’을 의미하는 게(ge)와 어머니를 의미하는 메테르(meter)의 합성어다. 게(ge)가 후에 데(de)가 돼 데메테르라고 불리게 됐다. 데메테르를 번역하자면 ‘땅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어머니와 같은 분’이다. 데메테르는 올림푸스 산에서 다른 신들과 함께 지상을 다스렸다. 데메테르는 제우스 사이에서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페르세포네는 ‘소녀’라는 의미인 코레(Kore)라고도 불린다. 페르세포네는 인류의 농업을 발견하기 전 채집으로 연명하던 시절 인류의 삶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바다의 신인 오케아노스의 딸들과 들판에서 꽃을 따고 있는 동안, 땅의 신은 지상에 매혹적이며 화려한 수선화를 꽃피웠다. 나르키소스(Narcissus)라고 불리는 수선화는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에게 소중한 꽃이었다. 수선화는 지상과 지하세계를 연결하는 스틱스 강가에 자라는 금지의 땅을 표시하는 타부의 꽃이다. 수선화는 보기에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거부하기엔 향기가 매력적인 꽃이다. 페르세포네가 그 꽃을 따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땅이 열렸다. 지하신인 하데스가 황금마치를 타고 그녀를 지하로 납치했다. 제우스는 지하에서 혼자 지내는 동생 하데스가 결혼하도록 페르세포네 납치를 허용했다.

데메테르는 올림포스 산에서 지상에서 들려오는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3일은 온전히 최선을 다한 기한이다. 3일을 세 번이나 지내며 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데메테르는 지상에서 젊음을 영원히 유지시켜주는 넥타르도 마시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노인으로 변했다. 그녀는 양손에 횃불을 들고 납치당한 딸을 찾아 지상을 샅샅이 뒤진다.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묻자, 그녀는 자신은 신이 아니라 스스로를 도소(Doso)라고 부른다. 지상에서 이 불쌍한 노인을 반긴 유일한 자는 ‘켈레우스’다. 켈레우스는 데메테르에게 자신의 두 아들 데메폰과 트립톨레무스를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데메테르는 매일 저녁 데메폰을 화로에 태워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 시도했으나 발각돼 완성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트립톨레무스에게 지상에서 살면서 신처럼 살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 바로 ‘농업’이다. 인간이 농업을 발견해 한 곳에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신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데메테르가 지상에서 딸을 찾아 나선지 열흘째 되던 날,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는 태양신인 헬리오스가 지상에 일어난 일을 데메테르에게 알려준다. 헬리오스는 이 모든 일이 자연의 순리이며 우주를 지탱하기 위해 제우스가 허락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하데스가 페르세폴리스에게 좋은 남편이 될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더욱 분노한다. 데메테르 자신은 올림포스 산의 신들을 속이기 위해 사람으로 변장하고 다시 딸을 찾아 나선다.

<데메테르가 지상에서 가르친 신비의례>

 

그녀가 도착한 곳은 신비의식의 장소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 도시인 엘레우시스다. 데메테르가 딸을 찾기 위해 애도하자, 땅이 말라 어떤 곡식이나 과일도 나지 않았다. 데메테르의 슬픔은 심각한 기근으로 인간 전체를 아사 직전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올림포스 신들은 인간들의 과일과 동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제우스신은 아이리스 신을 엘레우시스 신전에서 애도하고 있는 데메테르에게 보낸다. 데메테르가 다시 올림포스 산으로 올라와야 지상의 곡식과 과실이 계절에 맞게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데메테르가 거절하자, 제우스는 천상의 모든 신을 동원해 데메테르에게 선물을 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다시 봐야 올림포스 산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한다.

 

제우스는 데메테르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헤르메스신을 하데스가 있는 지하세계로 보내 데메테르가 한 말과 지상에서 일어난 기근을 설명한다. 그는 또한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서 나와 그녀의 어머니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말을 듣고 그녀를 지상으로 올려 보낸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의 여왕으로 영화를 누리며 잘 지내고 있다는 말도 전한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부인으로 만들기 위해 지하 세계의 음식 석류과일을 먹게 만든다. 이 석류열매는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처럼, 우주의 이치를 깨닫게 만드는 열매다. 페르세포네는 우주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1년 중 3분의 1은 지하로 내려와 하데스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데스는 불멸의 말들이 끄는 황금마차를 준비하여 헤르메스에게 준다. 헤르메스는 페르세포네를 마차에 태워 바로 엘레우시스 신전에서 애도하고 있는 어머니 데메테르 앞으로 갔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보자마자 신전에서 뛰어나와 극적으로 상봉한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에게 지하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묻는다. 만일 그녀가 먹지 않았다면, 올림포스 산에서 살 수 있지만, 먹었다면 1년 중 넉 달을 지하에서 머물고 나머지 여덟 달을 지상에서 머무를 수 있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자 우주가 원래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데메테르는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엘레우시스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쳤다. 신비의례와 농업이다. 신비의례의 내용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사후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후세계를 준비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사는 삶에 대한 경외이자 윤리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올림포스 산으로 올라간 후, 풍요의 신인 플루투스를 지상에 보낸다.

엘레우시스 신비의례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이 신비의식을 보는 지상의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이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이 죽었을 때, 지하 어두운 영역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케레스의 아들, 트립톨레무스에게 가르친 농업이다.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있는 동안인 봄부터 가을까지(3~11월)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한다. 그러나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 감금되는 겨울(12월~이듬해 2월) 동안에는 지상의 모든 식물이 죽게 된다.

농업은 적어도 지구상 네 군데 이상에서 기원전 8000년경 독립적으로 등장했다. 그 당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연에서 찾은 식물을 채집해 먹었다. 그러나 이때 시작한 농업으로, 인류의 대부분은 농업을 통해 수확한 곡물을 요리하여 섭취했다. 인류의 먼 조상인 유인원이 500만 년 전에 등장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30만 년 전에 등장한 것을 감안하면, 인류가 농업을 발견한 기원전 8000년은 최근 사건이다. 그러나 농업의 발견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문명을 구축하는 발판이 됐다.

<‘팽창화’에서 ‘집중화’로 변화시키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자신들의 삶의 기반인 사냥-채집을 버리고 왜 농업을 시작하였을까? 우리가 삼시세끼를 먹기 위해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고고학자들은 고기를 먹다가 재배된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의 질의 퇴보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먹을 것을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왜 자신의 먹을 것을 변화시켰는가? 농업으로 전환하지 않는 자들은 도태해 결국 소멸하기 때문이다.

농업의 발견은 단순히 인간의 식탁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인류문명의 기초인 ‘도시’와 ‘문자’의 등장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학자들은 흔히 농업이 인류에게 여가를 선물했고, 여가를 통해 문자, 금속가공, 그리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계급이 생겼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식의 주장은 다음 두 가지 이념에 기초한다. 첫째, 고든 차일드가 ‘신석기 혁명’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면서 주장했듯이, 음식을 생산해 내는 효율적인 경제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신석기 혁명’과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궤베클리 테페의 경우처럼 정신적인 혁명이 오히려 물질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농업은 오랫동안 진행된 관찰과 실행, 실패로 점철된 실험의 결과다.

둘째는 집중화(執中化, intensification)다. 농업을 발견하기 전 인류는 넓은 곳을 샅샅이 조사해 자신들이 식량을 찾을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들로 퍼져나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데 정통하다. 이런 삶의 형태를 팽창화(膨脹化, extensification)라고 부른다. 이전까지 인류는 보다 넓은 지역을 두루 다니며, 그곳에 있는 식용 가능한 근채류와 과실을 관찰했고, 자신들의 추적을 통해 사냥 가능한 동물들을 보았다.

그러나 인간은 농업의 발견 이후,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인류는 이 과정을 거쳐 다른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개척했다. 인간은 이제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먹을 것을 찾지 않고 자신이 정한 제한된 공간 안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인류는 이제 ‘집중화’라는 전략을 통해 생존한다. 새로운 기술과 생활방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주어진 땅에서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훨씬 많이 생산한다. 사냥-채집인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한 다양한 동물과 식물을 걷어들일 뿐이다. 농부는 항상 소수의 식물을 재배하고 소수의 동물을 사육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소출을 극대화한다. 사냥-채집인이나 농부나 모두 자연을 현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절하지만, 농부는 집중화를 통해 단시간에 현저한 변화를 일으킨다.

‘농업’을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농업은 “식물, 동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인간에게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농업은 인구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우리가 마을이나 촌락이라고 부르는 경계가 있는 넓은 지역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거주한다는 사실은 이들 간의 소통이 빈번하고 집단지성을 발동시켜 기술적인 변화를 가속화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사회적이며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다.

<식물재배와 가축사육이 만든 농업시대>

 

농업이 야기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해진 근본적인 시도를 ‘문명’이라 부른다. 농업이 등장하면서 이전에 사냥-채집인들이 거주하던 장소에 50~100배의 인구가 살게 됐다. 기원전 1만 년경 전 세계 인구가 60만 명에서 기원전 5000년에는 5000만 명이 됐다.

농업을 가능하게 만든 계기는 식물재배와 가축사육이다. 식물을 재배한다는 의미는 경작을 통해 야생식물을 인간의 식성에 맞게 개량했다. 식물재배는 인간과 식물간의 공생이다. 재배되고 개량된 식물에 일어난 변화는 그 식물을 주식으로 삼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첫째, 동물과 식물의 상호교류가 강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한 식물과 지속적이며 독점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둘째,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자신이 재배한 식물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곡물 재배는 인간과 그것을 주식으로 하는 식물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인간의 일방적인 행동만 강조한다면, 재배된 식물이 농업에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농업은 재배된 식물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식물재배는 동물과 식물이 상호간의 생존을 강화하기 위한 자연적인 진화의 과정이다.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종 간의 진화인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는 그것에 참여하는 유기물들의 생존 잠재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 발생한다. 공진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분화와 파종이 그런 예다. 인간은 식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식물의 분포와 모양에 개입한다. 인간의 행위가 단시간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곡물과 가축은 이미 사냥-채집으로 연명하던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오랫동안 채집하거나 사냥한 것으로부터 선별돼 집중적으로 관리대상이 된 것들이다. 곡물과 가축은 야생 식물이나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의도적인 선택을 통해 개량된 종자들이다.

인간이 몇몇 품종을 특별 관리하는 동안, 자연상태의 식물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의도한 특징들을 관찰하게 됐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곡물과 가축들은 서서히 의도적인 선택을 통해 그들의 야생 조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재배라는 인위적인 선택의 결과도 원래 야생형태의 식물보다 인간에게 훨씬 유용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인류는 자신이 선택한 식물과 동물을 통해 공진화를 통해, 자신도 변하고 자연도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