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주류 경제학 ‘구멍’ 파고든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생뚱맞게도 심리학 교수였다. 경제학 이외의 학문을 연구한 교수가 상을 받은 것은 1969년 노벨경제학상 제정 후 처음이었다. 수상자의 이론도 파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뒤엎고 인간이 매우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펼친 그의 이론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1. 물리학자, 화학자, 경제학자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됐다. 먹을 게 없어 쫄쫄 굶던 와중에 파도에 휩쓸려온 통조림 캔을 발견한 세 사람.
제일 먼저 물리학자가 말했다. “돌로 내리쳐 캔을 땁시다.”
화학자가 가세했다. “불로 가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경제학자가 나섰다. “우선 여기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2. 유명한 경제학 교수가 제자와 열띤 토론을 하며 교정을 걷고 있었다. 제자가 운동장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제자 왈 “교수님, 저기 100달러짜리 지폐가 있습니다. 어서 가서 주워 오겠습니다.”
교수가 제자의 행동을 점잖게 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어떻게 저게 진짜 100달러짜리 지폐일 수 있겠는가. 진짜였다면 벌써 다른 사람이 주워 갔을 것이네.”
경제학자들은 듣기에 다소 불편할지 모르나 오직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경제학자들을 비판할 때 단골로 사용되는 우스개다. 경제학은 자원의 희소성을 둘러싼 인간의 의사결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이성에 근거해 항상 합리적인 결정만을 하는 존재라고 본다. 컴퓨터나 계산기와 비슷하다. 100달러짜리 지폐가 진짜라면 합리적인 인간인 다른 누군가가 먼저 가져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이후 300년 넘게 굳어져온 ‘인간=합리적 존재’라는 인식에 도전장이 날아든 시기는 1979년이다. 이스라엘 출신 이민자 1세대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두 교수가 ‘전망이론(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 er risk econometrica)’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전망이론을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인간은 주식 투자로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달러를 잃었을 때 훨씬 큰 괴로움을 느낀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면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기쁨보다 괴로움을 더 많이 느낄까. 인간은 늘 합리적인 존재라고 알려져 있는데 왜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편향적이며 오류투성이 행동을 서슴지 않을까.
인간을 이성적인 판단을 지닌 주체,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본 여느 경제학자들과 달리 심리학자인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통해 경제 현상을 풀어내려고 했다. 또한 경제학이 비경험적인 과학, 즉 자연과학과 달리 연구실의 실험을 통해 입증하거나 해결 방안을 찾을 수는 없는 학문이라는 기존 통념도 완전히 허물어뜨렸다.
정통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이유와 경로를 탐구하다 그가 창시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합해 태어난 일종의 퓨전 학문이다. 경제학계보다 먼저 이 퓨전 학문을 지지한 세력은 금융시장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자본시장 종사자가 합리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집단적 광기나 손실회피 심리 등으로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월가 경영진이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행동경제학과 카너먼 교수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
카너먼은 1934년 3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원래 프랑스 파리에 거주했으나 친척을 만나러 간 이스라엘에서 아들을 낳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카너먼은 여섯 살 때인 1940년 파리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에 쫓겨 숨어 살았다. 유년시절에 겪은 끔찍한 공포는 카너먼에게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게 만들었다. 카너먼은 2003년 나치 점령 기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1940년대 초 파리에 살던 유대인은 모두 ‘다윗의 별’(유대인을 구분하는 육각형의 독특한 별 모양 표시. 현재 이스라엘 국기에도 있음) 표시를 해야 했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집 밖에 나설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놀다가 6시 통금시간을 어기고 말았다.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한 독일 병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군인은 지갑을 열어 그의 아들인 듯한 소년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돈까지 쥐여줬다. 집에 와서 기묘한 느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너무나 복잡하고 흥미로운 존재’라고 한 어머니의 말씀이 맞다고 확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헤브루대학에 진학한 카너먼은 심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1954년 졸업 후 입대해 장교로 활동하다 1958년 미국 유학을 선택한다. 6년 만인 196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지만 미국 대학에서 바로 자리를 잡지는 못한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모교인 헤브루대를 거쳐 1978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로 부임했다. 전망이론의 공저자인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 또한 헤브루대 출신인 데다 이스라엘군 복무 경험이 있어 둘은 잘 통했다. 1970년대엔 혁신적이었던,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하려는 시도 또한 궁합이 잘 맞는 학문적 동료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하지만 트버스키 교수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1996년 59세로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지 못한다.
1977~78년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미국 프린스턴대 행동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은 프린스턴대로 온 젊은 경제학자와 친해졌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너지(Nudge)’의 저자이자 현재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인 리처드 탈러였다. 탈러는 경제학자였지만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 양식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세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됐고 그들의 교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1979년 전망이론을 발표한 직후인 1980년 탈러 교수 또한 ‘소비자 선택의 긍정이론(Toward a positive theory of consumer choice)’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너지 이론의 토대를 닦는다. 카너먼 교수는 후에 탈러의 이 논문을 “행동경제학의 시초”라고 극찬했다.
확증 편향과 휴리스틱
카너먼이 트버스키와 오랫동안 연구한 주제는 인간의 의사결정 편향(bias)이다.
심리학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비슷한 개념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사실로 믿지 않는 경향을 말한다.
미국 국방부는 2012년 미군 사망자들을 조사한 결과 자살한 군인 수가 349명으로 교전 중 전사한 313명보다 많다고 밝혔다. 일반인으로 확대해봐도 타살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절대 다수가 ‘자살보다 타살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답한다.
왜 이런 오류가 생길까. 뉴스에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참상, 강력 범죄로 인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훨씬 많이 보도되기 때문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토머스라는 소년이 있다. 어른이 된 토머스가 도서관 사서와 농부 중 어떤 직업을 택할 가능성이 높을까. 사람들은 토머스의 성격을 감안해 대부분 사서라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토머스는 농부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의 농부 수는 사서보다 20배나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엄연히 객관적 사실(fact)이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관습 등을 통해 판단을 내린다. 카너먼은 이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일컫는다.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휴리스틱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근거다.
휴리스틱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기준점과 조정(Anchoring and Adjustment)’을 살펴보자.
기준점과 조정은 소비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수치로 모종의 기준선을 설정한 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표시가격이 8000원인 인삼 드링크를 보고 대다수 소비자는 다른 음료에 비해 비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망소비자가격이 1만 원인데 8000원에 판매된다는 사실을 알면 이 드링크가 싸다고 여긴다. 기준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빈도나 확률을 판단할 때, 최근 발생한 사례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요즘 스마트폰에 관한 뉴스가 몇 초마다 쏟아져 나오다보니 통화와 문자 기능만 사용하는 노년층 소비자까지 피처폰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중국산 식품의 유해성 논란이 일면 국산 친환경 식품의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소비자가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은 어떤 집합에 속하는 사상이 그 집합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뜻에서 대표한다고 간주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후광 효과(halo effect)다. 원조 음식점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북적대지만 바로 옆의 모방 음식점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릴 때가 많다. 소비자가 대표성 휴리스틱에 따라 음식점을 고르는 까닭이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
어떤 사람이 당장 얻을 수 있는 1000만 원과 손에 넣을 수 있는 확률이 90%인 2000만 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절대 다수가 안전하게 1000만 원을 얻겠다고 대답한다.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1000만 원의 가치가 2000만 원을 얻을 90%의 가치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확률 90%인 2000만 원이 훨씬 이익인데도 말이다.
인간은 이득을 얻고픈 욕구보다 손해를 최소화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2000만 원을 잃을 10%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확실한 1000만 원을 향해 손을 내민다.
이처럼 인간은 경제적 이익과 경제적 손실이 동일한 가치인데도 이익을 얻기 위한 위험보다 현재 보유한 것의 손실을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익과 손실에 대한 인간의 효용함수가 각각 다르다는 의미다. 이익을 봤을 때는 효용함수가 완만하게 증가하지만, 손실을 보면 이 함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한다. 이 손실 회피 심리에 따라 인간은 이기는 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지는 것을 통해 잃는 손실을 더 두려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손실이 두려워 내린 인간의 많은 선택이 종종 더 큰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며 내린 선택이 스스로의 족쇄로 작용해 더 큰 손실을 낳는다는 뜻이다.
대니얼 카너먼(왼쪽)은 인간의 의사결정 편향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이몽룡은 춘향전자의 주식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주식을 5000만 원어치 사들였다. 하지만 이 정보는 완전히 틀린 것이었고 춘향전자 주가는 쭉쭉 떨어져 이몽룡의 5000만 원은 반으로 줄었다.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위험을 피하려면 당연히 지금에라도 손절매를 해야 하지만 이몽룡은 주식을 구매할 당시의 가격 5000만 원과 현재 가격 2500만 원의 차이에 따른 손실(2500만 원)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편향된 논리에 따라 그는 처음에 자신이 주식을 구매했던 것이 올바른 판단이며 이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주식 가격이 하락해도 계속 보유하려 하며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이라고 여긴다. 결국 춘향전자의 주가는 더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그는 더 큰 손해를 입고 만다.
자기 과신의 오류
즉 손실 회피 성향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지닌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거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거나, 자신의 판단에 따른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주가 하락기나 부동산 하락기에도 과거의 성공 경험이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위험한 투자를 즐기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운전사에게 ‘자신의 운전 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90% 이상이 ‘나는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간의 ‘낙관주의적 편향’의 좋은 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소기업이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은 35% 정도다. 하지만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이 큰 성공을 거둘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고 물어보면 60%가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답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때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사들여 시너지 효과는 달성하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상황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의 저주 또한 낙관주의적 편향으로 인한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수 기업의 경영자가 피인수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한 데는 ‘저 기업을 내가 경영하면 훨씬 큰 성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과신 때문이다.
카너먼 교수는 “사회적으로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불확실성보다 자신감이 더욱 인정받기 때문에 자기 과신의 오류가 나타난다”며 “이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게 대다수 인간의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과신의 오류 또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때가 많다. 많은 개인 투자자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돈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몇몇 펀드매니저가 포함된 주가 예측실험을 보면 정확도가 47%에 불과했다. 이는 동전 던지기를 해서 나온 결과 50%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기예측의 정확성에 65%의 신뢰도를 보였다. 자신의 판단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사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뿐 아니라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다.
행동경제학의 의의
인간은,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활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경제학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연과학 학문 위주로 수여되는 노벨상에 경제학이 신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너먼 이전의 경제학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다소 단선적이고 표피적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니 다양성이 부족했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경제학자도 아닌 외부자가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카너먼 교수의 업적은 작지 않다. 그의 이론은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의 물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행동경제학은 이미 상당수 기업과 정부, 각종 조직이 활용하고 있으나 광범위한 학문 연구가 진행된 것은 2002년 카너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후부터다. 이제 10년 정도밖에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달리 말해 행동경제학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경제학, 심리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큰 영감을 줄 여지가 크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인간의 오류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의사결정 인자를 2개로 나눈다.
그는 ‘빠른 직관과 즉각적인 반응’으로 구성된 시스템 1과 ‘정확하지만 느리고 게으른 이성’이 지배하는 시스템 2가 우리의 두뇌 속에서 상호 작용한다고 말한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누구나 시스템 2의 영향 속에 있기를 바라겠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카너먼 교수는 시스템 1, 즉 직관이 인간의 판단과 생활을 지배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단언한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장점을 모두 혼합한 결정, 즉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소 맥 빠지는 대답이지만 그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한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하는 힘을 연마하라는 뜻이다. 너무 뻔한 대답이라고?
진실은 언제나 가장 통속적인 법이다.
(끝)
새겨볼 말들이 너무 많다.
주식을 한다면 꼭 챙겨야 할 사항들.
잔고에 + 20% 수익난 것보다 -2% 있는것이 더 거슬린다.
내려가면 팔고 오르면 사라는 것이 행동으로 되기까지 엄청난 세월이 걸린다.
맘에 드는 종목을 선택해놓고 내가 원하는 위치까지 몇달이고 일년이고 기다리면 손해 안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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