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➊ 헬레니즘 문화의 시원은 욕망과 복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수많은 책들이 있으나 서울대 측에서는 토머스 불핀치와 에디스 해밀턴의 책을 추천한다. 불핀치의 저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혜원)’와 ‘미솔로지(오늘의책)’로 각기 다른 제목으로 번역됐고 해밀턴의 저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문예출판사)’로 출간됐다.
여기에 기원전 8세기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민음사)’를 곁들여 읽는다면 천지창조와 인간 탄생, 신들의 계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로마와 연관된 신화는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를 소개할 때 다룰 예정이다.
메데이아가 이아손과 자신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살해하는 모습(좌). 황소로 변신해 에우로페를 유혹하는 제우스(우).
Médée furieuse - Delacroix (1862)
The Rape of Europa. Simon Vouet
그리스 신화는 초자연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그 내용도 매우 복잡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이야기나 영웅전설, 그 밖의 내용이 담긴 이야기를 미토스(mythos)라고 했다. 미토스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는 천지창조와 인간의 탄생, 제우스를 비롯해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의 아내이자 불륜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네, 사랑과 욕망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등 신과 인간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구인들은 서구의 전통과 기억의 근원, 그리고 서구 문명의 원형을 고대 그리스인의 합리적 사유에서 찾고자 했다.
그리스인의 합리적 사유는 어떻게 형성됐는가? 그리스인의 사유적 원형은 다름 아닌 ‘신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한다. 신화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했다는 것이다. 신화는 우주의 생성, 자연현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물음에 답을 제시해주는 원시과학이며 나아가 신화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을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 문명의 원형이 담겨 있다는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무엇보다 그 악마성과 엽기성에 혀를 내두른다. 그리스 신화에는 동성애와 근친상간, 친부·친모 살해에 자식 살해, 납치와 유괴, 청부 살해 등 오늘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쇼킹한 사건들이 난무한다. 간통은 다반사고 부모 자식의 관계도 유린되는 등 가정공동체가 처참하게 파괴된다.
그리스 신들은 점잖고 전지전능한 신들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욕망하는 신’들이다. 배반도 예사다.
예컨대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는 황금 양털을 찾으러 온 아르고호의 원정대장인 이아손에게 빠져 동생마저 죽이고 이아손이 황금 양피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메데이아는 또 이아손의 아버지 아이손을 죽인 펠레우스 왕을 살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메데이아가 양의 살을 저며 끓는 물속에 넣고 주문을 외자 어린 양이 나왔다. 이를 보고 펠레우스 왕의 딸들은 늙은 아버지를 젊게 할 수 있다는 메데이아의 말에 속아 그만 아버지를 죽여 살을 조각내 끓는 독 속에 넣었다.
이렇게 천륜을 저버리는가 하면 잔인한 짓까지 해가며 이아손을 도왔지만 정작 메데이아에게 돌아온 것은 배반이었다.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복수를 결행한다.
먼저 이아손과 자신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살해하고 이어 남편의 새 여인이 될 글라우케와 그의 아버지인 코린트 왕을 태워 죽인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이야기 하나에서만도 우리는 온갖 파렴치한 인간상과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주축을 이루는 주제 중 한 가지는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처럼 ‘복수와 저주’다.
그리스 신화의 또 다른 핵심은 신들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현대적인 자유로운 성적 판타즘(phantasm)의 모든 원형이 그리스 신화 속에서 발견된다. 신화에는 동성애와 근친상간, 통음 난무 같은 성적 금기들이 거리낌 없이 묘사된다.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는 신들과 인간들이 벌이는, 복수와 저주에 얽힌 ‘욕망의 판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수많은 신들의 스캔들을 만날 수 있다. 제우스는 신들의 세계인 올림포스에서 단연 ‘올림포스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일명 ‘난봉꾼의 원형’인 셈이다. 동양보다 자유분방하다는 서구인들의 섹스 취향은 그 원형을 제우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우스는 본부인 헤라와 2남 4녀를 뒀는데 이 외에도 그가 유혹해 관계를 가진 여신과 여인이 30명에 그 자녀는 헤아릴 수 없다.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도 그를 아버지로 하고 있는 신들이 많다. 음악·의술·궁술·예언의 신 아폴론, 전령이며 나그네의 수호신인 헤르메스, 전쟁의 신 아레스 등이 모두 제우스의 아들이다. 또한 포세이돈은 27명, 헤라클레스는 20명의 여신,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 자녀를 낳았다. 지금의 잣대로 보자면 이들이야말로 권력자의 성폭력 내지는 성적 유린의 원조라고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 자신의 외도를 아내인 헤라에게 감추느라 온갖 술책을 다 쓴다는 점이다. ‘모든 신들의 왕의 자리에 있는 자가 어쩜 저리 경박한 행동을 하는 걸까’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제우스는 헤라의 눈을 피해 에우로페를 유혹하기 위해 황소로 변신했다. 바닷가에서 놀던,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는 그만 멋지게 생긴 황소를 쓰다듬다 그 등에 올라탄다. 그러자 황소는 하늘로 날아올라 크레타 섬으로 갔다. 크레타 섬은 어머니 레아가 아버지 크로노스로부터 제우스를 보호해준 곳이다.
에우로페는 크레타에서 제우스의 아들을 셋 낳았는데 그중 미노아 문명을 건설한 미노스가 가장 유명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 에우로페는 유럽 대륙의 이름으로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제우스는 레다(아이톨리아의 왕 테스티오스와 에우리테미스가 낳은 딸)에게 접근할 때는 백조로 변신했다. 레다는 백조의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된 미녀 납치 사건의 주인공)가 태어났다. 암피트리온이 전장에 나가 있을 무렵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의 모습을 빌려 그의 아내 알크메네에게 욕정을 불태웠는데 그 결과 생긴 아들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또한 아르고스의 왕녀 다나에가 부왕에 의해 밀실에 감금돼 있을 때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내림으로써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 유명해진 영웅 페르세우스를 잉태했다고 한다. 성서에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예수를 잉태했다는 마리아 숭배 사상은 다나에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리스 신들의 이 같은 끝없는 욕망은 인간의 가정공동체 파괴로 이어졌다. 그 속성이 근대의 제국주의와 오늘날 서구의 탐욕적 자본주의 사회와 닮아 있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예컨대 이아손이 주도한 ‘아르고호’ 원정대는 인류사에서 약탈의 기원이 된 인류 최초 대항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영웅 이아손이 콜키스(흑해 동안) 왕국에 숨겨져 있다는 전설의 ‘황금 양털’을 손에 넣으려고 원정에 나설 때 선원을 모집했는데 이때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테세우스 등 당대의 영웅들이 대거 원정 길에 오른다. 아르고호 원정대를 시작으로 대항해에 나서면서 식민지를 건설하는 정복과 팽창의 제국주의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어쩌면 서구세계를 만든 헬레니즘 문화의 시원은 투쟁과 배반, 복수와 저주, 끝없는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 ➋ 신들의 왕 제우스는 쿠데타의 원조
Jordaens Jacob - Promethee attache
john-william-waterhouse-pandora-18961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영웅들의 비범한 행위와 고통을 그렸다면 헤시오도스(기원전 740~670년)는 ‘신통기’에서 그리스인에게 신의 계보를 만들어줬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제우스가 신들의 제왕이 된 것은 주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권력투쟁을 한 결과였다. 신들의 세계는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는 권력투쟁으로부터 시작됐다.
헤시오도스는 카오스 상태에서 등장한 최초의 신은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대지)라고 했다. 이 두 신에게는 티탄(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족이 등장하기 이전에 세계를 지배하던 거인족의 신족)이라고 알려진 6명의 아들과 6명의 딸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막내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의 고환을 잘라 바다에 던져버렸다. 자식에게 거세당한 우라노스는 결국 열두 자녀에게 신들의 지배권을 넘겨줬다.
신티탄족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크로노스의 막내인 제우스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제우스는 신티탄족과 10년 전쟁을 치른 후 아버지 크로노스를 쫓아내고 최고신이 됐다.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는 올림포스 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이 바로 신들의 세상을 다스리는 올림포스의 12신이다.
신들의 지배자는 우라노스에서 크로노스로,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크로노스와 그의 아들 제우스로 이어지는 신들의 정권교체인 셈. 쿠데타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 제우스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세상의 3대 영역을 지배하는데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땅 밑 죽은 자들의 세계를 맡았으며 제우스는 하늘의 왕으로 구름을 모으고 비를 부르며 천둥번개를 부린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의 분할통치는 오늘날 민주정치의 삼권분립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됐지만 아직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제우스는 인간 창조에 나선다. 먼저 제우스는 사촌인 프로메테우스와 그 아우인 에피메테우스라는 두 티탄에게 인간 창조를 맡겼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생각이 깊다’라는 의미다. 에피메테우스는 ‘뒷걱정’을 의미하는데 무엇이나 충동적으로 해치우고선 나중에 후회한다는 뜻이다. 에피메테우스는 경솔한 성격대로 인간을 만들어내기 전에 이미 다른 동물들에게 용기, 힘, 민첩함, 영리함과 날개, 털가죽 등 뛰어난 능력을 거의 다 줘버렸다. 막상 인간에게 줄 것이 없자 에피메테우스는 당황해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하고 신들과 마찬가지로 서서 걸어 다니게 했다. 그리고 태양 가까이까지 가서 인간을 위해 불을 갖고 왔다.
그런데 불 때문에 인간은 점차 오만해지고 타락해 갔다. 불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자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신을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불로 오만해진 인간에 대한 분노로 제우스는 원인 제공자인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도록 하는 벌을 내린다.
그런데 제우스에게는 예지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우스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 중 누군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를 왕좌에서 몰아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누가 그 반역을 할 자식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가 프로메테우스뿐이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헤르메스를 전령으로 보내 그 비밀을 알려주면 사슬을 풀어주겠다는 ‘사면’ 제의를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단호히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저항의 상징이 된다.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응징으로 제우스가 보냈다고 한다. 모든 신들의 재능을 모아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이 판도라다. 판도라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는 마지막으로 그녀 입속에 ‘거짓말’과 ‘도둑 근성’을 함께 넣었다.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말은 진실과 감정을 왜곡하고 위장한다는 것이다.
판도라는 이 세상으로 상자 하나를 가져왔는데 신들은 거기에 전쟁, 역병, 기근 등 세상의 온갖 해악을 넣어 놓았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이 상자를 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일렀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 못 이겨 그만 상자 뚜껑을 열고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문제들을 인간 세상에 쏟아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모든 불행을 이겨내도록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만 상자 속에 남겨 놓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이후 인간의 타락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신의 노여움을 사 멸망의 길에 이른다. 마치 성서 속 아담과 이브의 타락과 종말을 연상시킨다.
제우스는 판도라가 상자를 열면서 촉발된 재앙과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행태에 분노하고 신들의 회의를 소집한다. 여기서 제우스는 인간을 멸하고 다른 종족을 만들겠다며 세상을 물바다로 만든다. 이때 오직 파르나소스 산만이 물 위에 솟아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서 생겨난 딸)만이 유일하게 이곳에 피신했다. 예지력을 가진 프로메테우스가 홍수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아들에게 나무상자를 만들게 하고 그 속에 필요한 것을 넣고 아내와 함께 타게 했던 것이다. 제우스는 신실한 이들 부부를 물의 재앙에서 구해내고 이들에 의해 ‘신인류’가 다시 창조된다. 이들 부부는 신탁에 의해 ‘돌’을 주워 뒤로 던졌는데 남편이 던진 돌은 남자, 아내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됐다. 이 또한 성서 속의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스토리다. 제우스는 대홍수 후 데우칼리온 부부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게 하면서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신인류에게 ‘정의(dike)’와 ‘수치심(aidos)’을 줬다고 한다. 인간이 오만해져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했고 다시 인간을 멸망시켰다. 이후 신인류를 창조하고 이들에게 정의와 수치심을 줘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면서 인간에게 불을 줬고 이로 인해 고난을 겪었지만 위압에 굴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자유’를 창조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신보다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소설과 음악, 미술 등에서 수많은 창작품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을 창조한 제우스보다 어떤 위압에도 굴하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이 오히려 인간을 구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스 로마 신화 ➌ 전쟁과 문학과 예술의 원천 ‘헤라의 저주’
‘아트레우스가의 저주’에서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하는 오레스테스.
그리스 신들은 숭고한 면과 비속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헤라는 ‘혼인의 신’이지만 제우스가 사랑한 여성에게는 끝까지 복수하고 응징하는 ‘저주의 화신’이기도 하다. ‘내 사전에 남편의 불륜은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이다. 상대 여성이 제우스의 술책에 넘어갔을 경우나 강제로 당했을 경우나 상관하지 않는다. 여성 쪽에 죄가 있거나 없거나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우스와 관계를 가진 여성은 누구든 간에 징벌하려 든다. 또한 제우스의 유혹에 넘어간 불륜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식까지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은 바로 다름 아닌 ‘헤라의 저주’에서 출발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툭하면 시비를 잘 걸어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바다의 정령인 테티스와 인간의 영웅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에리스는 이를 앙갚음하려고 결혼식에 나타나서 ‘황금사과’를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kallistei)’라고 적혀 있었다. 그 자리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세력 있고 허영심이 강한 세 여신이 있었는데 신들의 여왕인 헤라와 지혜의 여신 아테네, 사랑과 욕망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세 여신은 서로 자기가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한 신들 중에는 누가 가장 아름답다고 결정해줄 용감한 신이 없었다. 이들 여신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중재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러자 세 여신 모두 파리스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황금사과의 주인이라고 말해주면 헤라는 파리스를 유럽과 아시아의 왕으로, 아테네는 전투에서 절대 지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 헬레네와 결혼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이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줬다. 그 공으로 아프로디테는 헬레네를 선물로 줬는데 노여움을 삭이지 못한 헤라의 부추김으로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고 결국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죽게 된다.
여기서 ‘파리스의 선택’이란 표현이 나왔다. 여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기분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제우스의 불륜으로 인해 태어난 헤라클레스 역시 평생을 헤라의 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날 밤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잠깐 미치게 해서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게 했다. 헤라클레스는 테베에 무거운 조공을 물리던 나라 오르코메노스를 물리쳤고 그 공로로 왕녀 메가라와 결혼하게 됐다. 메가라가 셋째 아이를 낳았을 때 헤라클레스는 갑자기 미쳐 버렸다. 그는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막내둥이를 감싸려는 메가라까지 죽여 버렸다.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피바다가 된 홀에 홀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는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헤라가 미워한 데서 연유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헤라의 저주였던 셈이다. 헤라클레스가 갓난아이 때 뱀에 물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헤라클레스가 뱀을 손으로 잡아 죽였다고 한다. 갓난아이 헤라클레스의 침실에 뱀을 넣은 것은 헤라의 소행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아내와 자식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 신탁을 받으러 갔다. 무녀가 내린 신탁은 ‘미케네의 왕으로서 그의 사촌인 에우리스테우스한테로 가 어떤 일이라도 그 명령에 따르라는 것’.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열두 가지 고난을 겪게 했다.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시련’이다. 이 열두 가지 시련의 뒤에도 역시 헤라가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헤라는 끝내 헤라클레스를 죽게 만든다. 헤라클레스가 데이아네이라를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리고 오는 도중 어느 강에 이르렀다. 네소스라는 켄타우로스(반인반마의 괴물)가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업어 강을 건네주고 삯을 받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혼자 먼저 건넜고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에게 업혔다. 그러나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를 업고 건네주는 도중에 희롱을 했다. 아내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화살을 쏘아 네소스를 죽였다. 숨이 넘어가면서 네소스는 복수를 위해 “자기 피를 받아서 간수해두면 언젠가 헤라클레스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려고 할 때 부적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고 데이아네이라는 그 피를 받아뒀다.
사실 네소스의 피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네소스의 말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옷에 네소스의 피를 발라 남편에게 보내는데 이 옷을 입자마자 마치 불로 지지는 것과 같은 무서운 고통이 헤라클레스를 엄습했다. 그는 계속 괴로워하며 집까지 왔다. 고통스러워하는 헤라클레스를 본 데이아네이라는 자기 때문에 이런 큰 변이 난 것을 알고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헤라클레스도 고통을 견디다 못해 결국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 참으로 모진 여신의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인간보다 더 끈질기고 독한 복수다.
그리스 신화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복수와 저주의 이야기는 ‘아트레우스가의 저주’를 들 수 있다.
아트레우스는 자신의 아내와 간통한 동생 티에스테스를 추방한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키운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보내 아버지를 죽이게 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아들이 아버지인 아트레우스의 손에 죽고 말았다. 모르고 친아들을 죽인 아트레우스는 화해를 가장하고 티에스테스와 그의 두 아들을 초청해 두 아들을 몰래 죽인 다음 그 살코기로 요리해 아버지인 티에스테스의 식탁에 내놓고 머리와 손발을 내보였다. 그야말로 끔찍한 복수를 행한 것.
그러자 티에스테스가 이번에는 형인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탁대로 자신의 친딸 펠로피아를 강제로 범해 아이기스토스를 낳게 한다. 이 아이가 장성해 티에스테스를 죽이려는 순간 친부인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딸 펠로피아가 그 칼로 자신을 찌르고 아이기스토스는 그 칼로 아트레우스에게 복수를 한다.
아트레우스가 죽고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왕국을 이어받은 후에도 복수는 계속된다.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간통하고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귀국하자마자 살해한다. 이에 아가멤논의 자녀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법과 질서의 신 아폴론의 변호하에 아테나이 법정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로써 저주받은 일족에 얽힌 죄와 벌의 긴 연쇄는 끝이 났다.
헤라의 저주와 아트레우스가에 얽힌 저주의 전설은 고대 비극 작가들뿐 아니라 2000년 넘게 문학과 회화 작품에 즐겨 이용됐다.
그리스 신화의 상상력에 예술적 창조성이 가미된 게 바로 서양의 예술사이자 문화사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에 난무하는 ‘복수와 저주’의 헬레니즘 문화는 성서에서처럼 엄격한 율법과 가정을 중시하는 헤브라이즘을 통해 일종의 ‘정화’ 내지 ‘승화’를 달성하면서 조화를 이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게 바로 투쟁과 복수, 저주, 욕망으로 점철된 헬레니즘 문화와 ‘사랑과 용서’를 강조한 헤브라이즘 문화가 하나의 융합문화를 이루면서 문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는 서구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우리가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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