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방법
그러면 이제, 여전히 '과학들'의 문제 영역 밖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위 '철학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일찍이 칸트는 자주 사람들에게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Kant, K.d.r.V., A837=B865 참조)고 강조했고, 이른바 철학하는 사람들이 '내용 없는 개념'을 농(弄)하고 '흉내내 얘기'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제 발로 설 것'을 요구하였다(Kant, 『전집』 XXIX,1.1, S. 6f. 참조). 이것은 철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소한의 철학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철학함을 배운다 함은 자기 이성을 스스로 사용함을 배운다는 뜻이다."(Kant, 『전집』 XXIV, S. 698) 철학의 의의가 '지혜의 추구'에 있다면, 우리는 오로지 자기 이성 사용의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칸트는 "사람들은 단지 문헌에 의한 작업만으로는, 한 저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 강의할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쩌면 저자 자신도 […] 이해하지 못했던' 사태 자체는 투시하지 못한다"(Kant, 『전집』 XXIX, S. 6f.)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철학한다'는 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남겨진 문헌을 문자에 따라 연구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가 되는 사태를 관조하고 사색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적 문제의 연구에서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결코 소홀히 해서도 안 되고,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도대체가 '철학적' 문제라는 것은 아직 미해결의 문제, 다시 말해 이미 '문제'로 부각이 되었건만, 해답은커녕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나 단서조차도 아직 찾아진 것이 없어 여전히 '설왕설래' 중인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앞서간 사상가들이 남긴 논설들 가운데에서, 설령 그 안에 착오가 포함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모습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드러나 있음을 포착해야 한다. 칸트의 말처럼, "우리가 위대한 발견들 곁에서 분명한 착오들과 마주치게 된다 해도, 이는 한 인간의 실수에서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일반의 인간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Kant, 『전집』 Ⅰ, S. 151) 그러나 인간성이라는 것이 고착되어 있고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착오는, 그것이 나타나면, 이성 자신에 의해 교정되고는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태 자체'에 대한 실험 관찰 외에도, 기존하는 개개 인간의 주관성에 입각한 이론들 중에서도 보편적 이성이라는 표준 척도에 따라 사태 자체에로 전진해 가는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를 통해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을 얻거나 아니면 물음 자체의 함축이나마 밝혀 낼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진지한 철학함의 한 자세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앞서간 탁월한, 그러나 서로 상충되는 이론을 주창한 사상가들을 대화시키고, 그 충돌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켜 나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철학 방법을 우리는 '변증법적'[대화법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으며, 그것은 '철학사 연구'를 통해 '철학 연구'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변증법을 '사태의 자기 전개 논리'라고 이해할 때, '이성'도 하나의 사태인 만큼 그 역시 자기 부정을 통하여 전진해 나갈 터이고, '철학함'도 하나의 사태인 만큼 이 역시 철학하는 개인과 개인,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단계적으로 발전해 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철학을 '자연과 인간 만상(萬象)의 궁극적 원리'를 찾는 학적 작업이라 규정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수학적인 방법으로도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이를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철학적인 문제들은 그 성격상, 자명한 진리를 전제하고 거기에서부터 연역(deductio)하는 방법으로나 개별적인 사태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보편성을 추리해 가는 귀납(inductio)의 방법으로는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상(現象)을 진상(眞相)으로 간주하고, 이 진상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충분 조건들을 사변(思辨, speculatio)적으로, 환원(reductio)적으로 추궁해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철학의 본래적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사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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