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槪念. conceptus. Begriff)
개념의 의의
사람들의 생각을 언표하는 기본적인 형식은 문장이고, 문장은 낱말[단어]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낱말은 근본적으로는 개념(槪念)을 언표한다. 개념들이 연이어져 한 덩어리의 생각이 이루어지는 만큼, 개념은 의미 있는 생각의 최소 단위이다. 그러므로 개념은 생각을 담고 있는 말과 글의 최소 의미 요소[意味素]라고도 할 수 있다. 개념들은 언표되는 생각[思考]의 틀[형식]을 이룸과 함께 생각의 내용도 형성한다.
사고의 형식 개념
사고의 형식을 이루는 근간 개념
언표되는 생각은 어떤 개념들을 바탕으로 전개되며, 생각의 전개에서 이 개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잘 살펴보면, 어떤 개념들은 생각의 기본 구조를 형성함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무엇이[누구는] 무엇이다", "언제 어디에 무엇이[누가] (어째서) 있다[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다" 등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 생각의 기본 틀[형식]을 이루는 것은 시간·장소, 주체[주어], 존재(방식) 또는 상태·동작(방식, 이유[원인·목적]) 등의 요소임을 말해 준다. 또 여기에 '무엇'[누구]에는 양[하나·여럿·모두와 같은 量]의 표상이, '어떠하다'에는 정도[전혀·조금·많이와 같은 질(質)의 정도]의 표상이 덧붙여짐을 볼 수 있다.
생각의 바탕에 놓여 생각을 틀 지우는 이런 요소들만으로도 '대개[大槪]의 생각[念]'은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일종의 개념(槪念)이다. 이런 개념은 생각의 뿌리이자 큰 줄기의 기능을 하는 것이므로, 다른 종류의 개념들과 구별해서, 근간 개념(根幹槪念)이라 부르기도 하고, 생각의 큰 틀이라는 의미에서 사고의 범주(範疇)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사고에서 근간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하자면, 시간·공간, 주체 및 주체의 양(量)적 규정, 존재·상태·동작방식들 사이의 (서로 주고받는 영향)관계, 주체와 존재·상태·동작방식 사이의 관계[예컨대, 능동·수동] 등의 표상이다.
우리는 '무엇이 있다' 하면 '언제·어디에?' 하고 묻는다. 무엇이 있는데 언제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면 당장 의아해 한다. 누군가가 "용이 있기는 있는데 언제 어디에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 "그런 것은 기껏해야 상상으로만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러니까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고 응대한다. 여기에 생각의 틀로 기능하는 '있다'·'없다'라는 개념도 '언제'·'어디서'라는 의식도 '대개의 생각'이라는 뜻에서 일종의 개념이다.
우리는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떠한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은 금이다", "그것은 구리가 아니다", "그것은 은인 것 같다", 또는 "그것은 노랗다", "그것은 노랗지 않다", "그것은 하얀 것 같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은 ∼이다[하다]'·'∼은 ∼가 아니다[∼지 않다]'·'∼은 ∼인 것 같다'는 모두 생각의 틀을 이루는 개념이다. 또 "한 마리의 개구리가 튀어 올랐다", "많은 정치가는 거짓말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처럼 '하나'·'여럿'·'모두'라는 것 역시 사고의 틀을 이루는 개념이다. 이런 수량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생각에서 중심이 되는 것, 곧 주체를 한정시킨다. 또 "폭풍우 때문에 다리가 무너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크고 튼튼한 다리를 새로 놓았다"는 생각이나, "모든 사람들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준이도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보이는 '∼때문에'·'그래서'·'그러므로' 따위의 개념 역시 한 생각의 중심과 다른 생각의 중심을 연관시켜 주는 사고의 형식으로 기능하는 개념이다.
요컨대, 문장에서 구조어(構造語) 내지는 논리어(論理語)로 나타나는 개념들은 모두 사고 자체의 작동의 틀인 기능 개념들이며, 인간의 이성 능력 자체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근간 개념의 유래
그러면 이러한 근간 개념, 다시 말해 생각의 기본 틀을 우리 인간은 어떻게 가지게 됐을까? 우리는 왜 "언제 어디서 몇몇의 무엇이 어떻게 있는가?"를 묻고, "현재 우리 동네 어귀에는 아름다운 공원 하나가 실제로 있다"고 대답하며, 우리는 어떻게 해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묻고, "해질 녘 공원에서 영준이와 나는 건강을 위해 즐겁게 산책을 하였다"고 대답하며, 우리는 왜 "언제 어디서 몇몇의 무엇이 어째서 어느 정도로 그러한가?" 하고 묻고, "영준이가 도랑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모든 개구리들은 위험을 느꼈는지 죽은 듯이 있었다"고 대답하는가?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그러니까 생각하는 형식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우리는 어째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시간·공간 의식을 가지며, 누가[무엇이] 그랬는가 하는 주체에 대한 의식을 가지며, 상태를 생각하고 분량을 생각하며 정도(程度)를 생각하고 연관 관계를 생각하는가? 왜 우리는 하필 이러한 틀에 따라 생각하는 것일까?
어느 때부터 어떤 계기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생각의 틀을 우리 인간이 가지게 되었는지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사고의 기본 형식을 이루는 이런 개념들을 우리 인간이 임의로 선택했거나 서로 약속을 해서 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들은 사고의 기본 법칙으로 기능하는 동일률·모순율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의식은 무엇인가를 겪으며 경험(經驗)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또한 현재와 같은 우리 인간의 경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의 우리의 경험 방식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사고 기능을 이성(理性)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개념들은 이성에 본래적이고 고유한 사고 기능의 틀이며, 이성은 이러한 본래적인 틀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개념들은 그러니까 경험으로부터 얻어졌다기보다는 경험에 선행해 이성의 경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표상이라는 뜻에서 선험적(先驗的)인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일은 우리에게 여전히 남겨져 있는 과제지만, 그러나 우리가 일단 '이성'의 기능을 납득하는 것은 그것이 일정한 성격을 가짐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때 일정한 성격이란 다름 아닌 선험적인 사고 규칙이나 개념들로 말미암는 것이다.
"우리 관념들 혹은 개념들은 명석 판명한 것인 한에서 실재적인 것들이고, 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참인 것이 아닐 수 없다."(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 Ⅳ, 7)
"이성은 우리의 모든 관념 혹은 개념이 진리의 어떤 토대를 가지고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일러준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전적으로 완전하고 전적으로 진실한 신이 이런 토대 없이 그 관념들을 우리 속에 집어넣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기 때문이다."(같은 책, Ⅳ, 8)
"우리가, 신이 자연 속에 확고하게 세우고 우리 영혼 속에 그에 대한 개념을 각인시켜 놓은 일정한 법칙들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기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들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같은 책, Ⅴ, 1)
사고의 내용 개념
사고의 내용을 이루는 개념
사고의 형식으로서 기능하는 개념들이 없으면 사고 자체가 발동이 안 되지만, 그러나 그렇게 기능하는 선험적 개념들만으로는 아무런 사고 내용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고가 내용을 가지려면 사고의 재료들이 있어야 한다.
사고의 기본 방식은 판단이고, 이 판단은 개념을 성분으로 갖는 것이니, 여기서 사고의 재료라는 것 역시 개념들이겠다. 사고의 내용을 이루는 개념들이 있어야 이성은 이것들을 그의 사고의 형식에 맞춰 조합하여 사고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고 내용을 이루는 개념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예컨대, "그것은 사과이다. 아직 풋사과인 걸 보니 맛이 새콤할 것 같다"나 "이것은 잘 익은 배인데 맛이 달다"라는 생각에서, '사과'·'배'·'맛'·'새콤하다'·'달다'·'풋'·'익은' 따위의 개념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생각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한 관념이나 대상을 지시하는 명칭[이름]이거나 아니면 개념들인데, 이때 개념이란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 요소를 추상하여 종합한 하나의 관념' 또는 '여러 대상에 공통적인 징표(徵表)를 매개로 해서 여러 대상을 함께 나타내는 표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하나의 개념이 생기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관념'이나 '여러 대상'이 주어져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개념을 만들기 위한 소재가 주어져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소재를 우리는 보통 상상이나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는다. 가령 '인어'라든지 '용'과 같은 개념은 그 소재를 상상을 통해 얻은 것이고, '사과'·'배'라든지 '개구리'와 같은 개념은 감각 경험을 통해 그 소재를 얻은 것이다.
경험 개념
먼저 '사과'니 '배'니 하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사람들이 들에서 처음 보는 몇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는데, 살펴보니 나무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열매 모양도 서로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자세히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더니 크게 두 무더기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일부와 또 다른 일부는 서로 비슷한 점들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의 열매들을 '사과'라고 부르고, 다른 일부의 열매들을 '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이렇게 해서 '사과'라는 명칭과 '배'라는 명칭이 생겨났을 것이고, 이제 우리는 '배'하면 일정한 맛, 색깔, 모양을 가진 과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배'의 개념은 형성된 것이며, '배'라는 개념, 곧 배에 대한 '대체적인 관념'은 배들끼리도 맛이나 색깔, 모양 등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러나 '배'라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공통의 성질만을 뽑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통의 필수불가결의 성질을 본질(本質)이라고 부르니까, 어떤 것의 개념은 그와 같은 모든 것들의 본질 표상(表象)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개념 아래 포섭되는 사물들은 그러므로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조생종이든 만생종이든, 장십랑(長十郎)이든 신고(新古)든, 한국산이든 서양산이든 배는 '배'인 한에서 본질적으로는 한가지이다. 이런 성격은 '배'라는 개념에서뿐만 아니라 '사과'라는 개념에서도, '푸르다'나 '붉다'라는 개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개념이 생겨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개념들은 어떤 것에 대한 (수 차례의 감각적인) 경험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용'이라든지 '인어'와 같은 개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용'이나 '인어'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감각 경험을 소재로 갖는다. 우리는 '용'이나 '인어'를 직접적으로 감각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용이나 인어를 이루는 성질들을 분석해 보면, 그 성질들은 감각 경험적인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예컨대, 인어의 상체는 처녀의 모습이고 하체는 물고기의 모습인데, 그것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순전히 상상이 한 일은 약간의 변형과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이성은 어떤 소재가 상상을 통해서 또는 감각을 통해서 주어지면, 그것들을 서로 비교(比較)하고, 주어진 것들이 어떤 점에서 공통이고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른가를 반성(反省)하여, 서로 다른 점은 도외시하고 같은 점들만을 뽑아서 곧 추상(抽象)하여 주어진 것 모두에 대한 '대체적인 표상' 즉 개념을 만든다. 그러니까, 이성이 주어지는 소재들을 비교·반성·추상하여 개념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소재들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개념을 우리는 '경험적'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순수 (상상) 개념
그런데 개념들 가운데는 이런 경험적 개념이나 앞서 든 선험적 개념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개념들도 있다. '삼각형'이라든지 '진리'라든지 '선(善)'과 같은 개념이다. 이런 개념들은 사고의 형식을 이루는 사고 기능 자체의 표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엇인가 주어지는 것들을 비교·반성·추상하여 이성이 만들어 가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들이다. 오히려 이런 개념들은 이성이 먼저 '삼각형이란 어떠어떠한 것이다', '진리란 어떠어떠한 것이다'고 규정해 놓고서, 이 규정을 어떤 대상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들은 다시 '삼각형'처럼 상상 속에서나마 그 모양[像]을 그려 볼 수 있는 것과 '진리'나 '선'처럼 단지 이상(理想) - 이상도 일종의 상상으로 볼 수 있겠는데 - 적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것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의 개념들은 통틀어 '순수 상상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감각 경험에 의거함 없이 이성 스스로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뜻이다.
기타 파생 개념
이외에도 이성은 예상(豫想)이라든지 추상(追想)이라든지 또 다른 갖가지 상상의 방식을 통해 개념들을 만들기도 하고, 일단 경험적으로든 순수 상상적으로든 만들어진 개념들을 기초로 해서 또 다른 개념들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성은 임의적인 명명을 통해 얻은 '이름'이나 조작적인 정의(定義)를 통해 얻은 술어(術語)들과 논리적 규칙들을 바탕으로 제3의 개념을 만들기도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른바 많은 '파생적(派生的)'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의 수효의 면에서 볼 때 형식적인 근간 개념이나 내용적인 경험적 또는 순수한 기초 개념들보다는 오히려 파생적인 개념들이 훨씬 더 많다. '철학'·'과학'·'예술'·'문화' 따위의 개념들 또한 그런 파생적 개념들의 예들이라 하겠다.
개념 형성 능력의 의의
그래서 사고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는 개념은 변함이 없어도- 이런 개념의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사고의 혁명'을 얘기할 수 있다 - 사고의 내용을 이루는 개념들은 경험과 상상력 그리고 지성의 논리적 조작 등을 통해 증대한다. 개념의 증대는 사고의 풍부함을 가져오고, 사고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은 문화의 폭이 넓어짐을 뜻하며,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이런 뜻에서 개념 형성 능력은 문화 형성 능력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문헌
Descartes, R., Discours de la Méthode.
Kant I.,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1787).
_______, Gesammelte Schriften[『전집』], hrsg. v. der Kgl.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 // v. der Deut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 zu Berlin, Bde. I-XXIV, XXVII-XXIX, Berlin 1902∼.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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