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無爲)의 네 가지 개념에 관하여* 김 시 천
요약문
이 논문에서 필자는 고대 중국의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무위의 네 가지 개념에 대하서 서술함으로써, 무위가 어느 특정 학파나 개인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단일 개념이 아니라, 학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고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무위 개념은 주술의 무위, 소요의 무위, 양신의 무위, 덕화의 무위라는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정 학파의 전유 개념이 아니다.
특히 학파나 시대에 따라 ‘무위’는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되거나 주변 개념들과의 관계를 바꾸어가면서, 현실에 대한 태도나 영역 상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다양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무위는 어느 특정 학파의 발명이라기 보다는 이른바 고대 중국적 사유의 전형을 이루는 공통 개념이자, 역사성을 지닌 다의적 범주에 해당한다.
무위 개념에 대하여 이과 같이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느 고대 문헌에 혹은 특정 문헌의 각 편에 적용하여 분석하거나, 또한 학파의 성격이나 핵심 주장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설명하는 유용한 기준으로서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 제: 동양철학, 중국철학, 무위의 개념
핵심어: 무위, 주술, 양생, 소요, 덕화
* 이 논문은 본래 한국도가철학회에서 주관한 제1차 도가철학국제학술대회(대구계명대 성서캠퍼스, 2004년 10월 9일, 논평자: 정륜)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도가철학분과 세미나(2005년 1월 6일, 토론자: 최종덕, 전호근, 김세서리아, 심의용, 김경희)에서 발표하였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발표 당시의 논평과 토론은 이 글을 수정, 보완하는데 상당한 참고가 되었음을 밝힌다.
▪김시천|숭실대학교
1. 무위, 그 ‘도가적’ 신화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무위’는 동아시아 철학사에서 도가의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 알려져 있다. 『순자』를 제외하면 선진(先秦) 시대 유가 문헌 가운데 ‘무위’란 용어가 나오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의 강력한 증거로 이해되어 왔다.
크릴은『역경』의 경문과『서경』에는 ‘무위’가 나오지 않으며,『시경』에는 3회1), 『맹자』에는 2회2)가 나오지만, 이 두 문헌에서 ‘무위’는 어떤 독특한 활동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라’ 또는 ‘할 게 없다’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술어로 사용된다고 본다. 이것은『춘추좌씨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3)
이와 같이 고대 유가 문헌에서의 ‘무위’의 용례에 비추어 볼 때, 무위는 선진 유가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 크릴의 기본 입장이다.
특히 크릴은 1940년대에 발표한 「무위의 기원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무위’가 『노자』의 경우에는 12회, 『장자』의 경우에는 56회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노자』는 50%, 『장자』의 경우는 32%가 통치와 관련된다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그는『장자』「내편」에서 ‘무위’는 3회가 나오지만 이 용례들은 결코 통치술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면서, ‘무위’가 지닌 두 가지 측면을 구분한다.
하나가 신불해(申不害)로부터 비롯되는 통치술과 관련된 개념이라면, 다른 하나는 『장자』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듯이 인사(人事)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분석을 근거로 크릴은, 『장자』가 ‘관조적 도가’에 해당한다면 이와 달리『노자』는 ‘목적적 도가’이며 이 때의 ‘무위’는 정치적이라고 본다.4)
1) 『詩經』에는 ‘無爲’가 세 번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 「王風․免爰」: 有免爰爰, 雉離于羅. 我生之初, 尙無爲. 我生之後, 逢此百罹. 尙寐無吪.
㉯ 「陳風․澤陂」: 彼澤之陂, 有蒲與荷. 有美一人, 傷如之何. 寤寐無爲, 涕泗滂沱. 彼澤之陂, 有蒲與蕑. 有
美一人, 碩大且卷. 寤寐無爲, 中心悁悁. 彼澤之陂, 有蒲菡萏. 有美一人, 碩大且儼. 寤寐無爲, 輾轉伏枕.
㉰ 「大雅․生民之什․板」: 天之方懠, 無爲夸毗. 威儀卒迷, 善人載尸. 民之方殿屎, 則莫我敢葵. 喪亂蔑資, 曾莫惠我師.
2) 『孟子』에 나오는 ‘無爲’의 두 용례는 다음과 같다.
㉮ 「離婁下」 28: 非仁無爲也, 非禮無行也. 如有一朝之患, 則君子不患矣.
㉯ 「盡心上」 17: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如此而已矣.
3) Creel, Herrlee G., What is Taoism?, pp.56~60.
4) Creel, 같은 책의 제3장, 「On the origin of Wu-wei」 참조.
크릴의 이러한 주장은 ‘무위’가 도가의 전유물인 듯이 인식하는 것에 대한 경종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크릴 자신 또한 동일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무위의 개념적 기원을 도가적이라기보다 법가적이며, 기본적으로 정치적 개념이라는 데에만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지적과 같이 『시경』 ,『서경』,『역경』,『춘추좌씨전』 등의 유가 문헌에서 특정한 개념으로서의 ‘무위’의 용례를 찾기는 어렵다.
또한 법가 문헌인『상군서』나 잡가 계열로 분류되는 여씨춘추 에서도 ‘무위’ 개념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무위’ 개념의 기원이 신불해라는 ‘형명지술’(刑名之術)을 중심으로 하는 법가 사상가에 그 기원이 있으며, 법을 중심으로 하는『상군서』와는 다른 갈래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크릴의 설명 방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노자』는 기원전 3세기 전국 시대의 작품이며, 따라서 ‘무위’의 기원을 『노자』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법가가 도가에서 나왔다고 보는 전통적인 견해는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릴 또한 자신의 논지를 위해『논어』나 『순자』,『예기』에 등장하는 ‘무위’를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이와 달리 에임스는 도가와 유가 모두에게서 ‘무위’와 ‘덕’(德)이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유가의 ‘무위’란 이상적인 성왕의 덕이 드러나는 것을 기술하는데 적절한 용어라고 본다. 특히『순자』에서
‘무위’는 통치자가 자신의 도덕성을 수양하고 실현하려는 데에서 비롯되는 덕의 표현 방식이다.5)
에임스의 입장에서 보면 ‘무위’는 단순히 도가적인 것의 증거 개념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도가와 법가는 물론 유가까지 포함하는 선진사상의 공통 용어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된다. 최근 슬린저랜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대 중국 철학의 ‘무위’가 이른바 자기 수양과 관련되는 공통의 개념적 은유이자 정신적 이상을 표현하는 용어라고 주장한다.6) 이 논문은 이와 같은 최근의 연구 경향을 의식하면서, 주요 고대 문헌들 속에 등장하는 ‘무위’의 개념이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상이한 개념들로 구성된 기본 범주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나는 고대 중국 철학 문헌에 등장하는 ‘무위’가양생(養生), 주술(主術), 소요(逍遙), 덕화(德化)라는 네 가지 개념적 차원을 가지며, 또한 동일한 하나의 문헌 속에서도 여러 가지 개념의 ‘무위’가 동시에 출현한다는 점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따라서 무위는 어느 특정 학파의 전유물이거나 독특한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함의와 의의를 갖는 범주임을 논증할 것이다.
다만『노자』,『장자』,『한비자』에 등장하는 ‘무위’ 개념은 기존의 많은 연구가 있으므로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하고, 이 글에서는 덕화와 양생이라 는 두 개념의 의미에 더 많은 논의의 비중을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개념이 선진 이후 중국 철학의 전개에서 커다란 의의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무위 개념의 분석이, 모든 학파에서 무위의 개념의 비중이 도가에서만큼이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위를 전적으로 ‘도가적’인 것으로 보거나 또는 이를 근거로 다른
여타 문헌에 등장하는 무위의 개념적 의의를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것의 문제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5) Roger T. Ames, The Art of Rulership, pp.28~33. 특히 크릴의 논증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에임스의 비판은 216쪽 주1) 참조.
6) Slingerland, Edward, Effortless Action, 참조.
2. 주술과 소요-현실과 초월의 이중주
‘무위’는 오늘날 상식적으로 인위적 행위를 지칭하는 ‘유위’와 대립되는 자연적 행위 방식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때의 자연적이란 말은 무척 애매한 용어이다. 왜냐하면 고전어 ‘自然’이 단지 ‘자연스러운’ 또는 ‘스스로 그렇게’라고 번역될 때, 그것은 완전히 대립되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자』의 ‘무위’는 어떤 이에게는 “모든 문명적 요소의 부정과 자유방임”7)으로 이해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자발적 복종을 강제하는”8) 고도의 정치적 술수로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위자연’이란 말은 ‘無爲’와 ‘自然’ 각각의 개념 그리고 양자의 관계와 위상을 어떻게 규정하면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상반된 의미로의 해석이 가능하며, 이는 『노자』철학의 성격 규정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필자는 선진 문헌에서 ‘무위’의 개념은 이와 같이 완전히 대립되는 의미로서 공존하며, 이는 철학자나 학파의 관심의 지향에 다라 상이한 ‘무위’의 개념이 도출된다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한 대립적 의미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은 이른바 현실과 초월이라는 말로 구별할 수 있다.
여기서 현실이 이른바 법가나 황로학의 지향을 대변한다면, 초월이란 장자9)의 철학적 지행을 대변한다.
7) 김갑수, 『장자와 문명』 , 24쪽.
8) 강신주, 『노자(老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 , 137쪽.
9) 이러한 맥락에서는 ‘장자’라는 인물과『장자』라는 책의 구분을 전제한다. 이 글에서『장자』가 아닌 ‘장자’라고 표기한 경우는 두 가지 의미의 함축을 갖는다. 하나는, 장주 자신의 저술 또는 거기에 담긴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장자』의 다른 편들과 일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이미 상식이다.
1) 주술의 무위-현실과 정치
먼저 ‘무위’의 현실적 지향을 극단적으로 대변하는 주술적 무위 개념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크릴에 따르면, ‘무위’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전국 시대 한(韓)의 재상을 지냈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신불해(申不害)에게서 비롯된다. 본래 비천한 출신으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신불해는, 전란과 정치적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통치자가 정치적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요구되는 행정적 방법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상가로 규정된다. 그래서 신불해는 통치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하에 대해 전적인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불해가 제안하는 주장의 핵심은 관리의 선발과 임용, 감시와 처벌이라는 형명지술(刑名之術)을 핵심으로 한다.
크릴에 따르면 ‘형명’은 법을 중심으로 현실 정치를 개혁하려 했던 상앙 일파의 법가와는 다른 법가의 노선을 대변한다. 통치자가 관리의 선발과 임명을 관장하고 실제의 직무와 수행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감독한다면, 통치자는 이른바 거울이나 저울과 같이 스스로는 무위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불해는 이러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치자는 빛을 반사하는 거울과 같으니, 거울은 무위하지만 아름다움과 추함이 저절로 드러난다.
통치자는 균형을 잡는 저울과 같으니, 저울은 무위하지만 무거움과 가벼움이 저절로 얻어진다.
통치자가 이러한 방법에 따라 다스리면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일삼는 것이 없게 된다. 일삼음이 없음에도 천하는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10)"
10) Creel, Herrlee. G., The Shen Pu-Hai Fragments, 1(9):
“鏡設精無爲而美惡自備; 衡設平無爲而輕重自得. 凡因之道身與公無事無事而天下自極也.”
본래 이 문장의 출전은 群書治要이며, 크릴은 신불해의 단편들을 모아 앞의 신자단편 을 편찬하여 자신의 저서에 부록으로 붙였다. Herrlee. G. Creel, Shen Pu-Hai: A Chinese Political Philosopher of the Fourth Century B. C., pp. 351~352.
크릴에 따르면 이 문장의 맥락상의 주어는 통치자이다. 또한 이 문장 가운데 앞의 10자는 唐宋自孔六帖에 인용된 단편으로부터 보완한 것인데, 거기에는 ‘豈不如’가 앞에 첨가되어 있다.
크릴은 관리의 선발과 임용, 감독과 통제라는 관료제적 통제에 대한 관심을 핵심으로 하는 신불해 노선의 법가로부터 과거 제도라는 제도적 인재 등용 방식이 싹터 나오게 되는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러한 맥락에서 ‘무위’란 무엇보다 신하와는 구분되는 통치자 고유의 행위 방식, 관료 체제를 장악하는 방법적 전략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주와 신하의 엄격한 구분이다.
황로학 문헌으로 간주되는『장자』 「천도」에서 “제왕은 무위하고, 신하는 유위한다”라고 하듯이, 무위와 유위는 자연적 행위와 작위적 행위가 아니라 구체적 직무의 유무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여기서 ‘무위’는 구체적인 실무를 담당하는 신하의 행위 방식인 ‘유위’와 대비되는 말로서 제왕의 고유한 행위 양식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무위’는 나중에 주술(主術)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다.
‘주술’은 회남자 의 한 편명이기도 한데, 장(Leo S. Chang)은 이러한 주술에 대해, 전통적으로 주도(主道) 또는 남면술(南面術)로 불리는 것으로 때때로 권술(權術)―권모 술수적인 패덕 정치의 행태란 의미에서―이라는 조소적인 의미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이 보다 범위가 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들을 갖는다고 분석한다:
(1) 경쟁 국가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천하에 대한 유일한 지배에 이르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며, 모든 사람의 평안한 삶을 구현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마련된 정책들;
(2) 올바른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적절한 전략들;
(3) 정치 투쟁에서 군주의 지위를 강화하고 관료 계급을 통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술 또는 전술;
(4)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충분한 정력을 기를 수 있도록하는 정신적 훈련 또는 수양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규정한다.11)
‘무위’의 이러한 개념은『한비자』,『회남자』등에서 보다 정밀하게 다듬어지면서 발전하게 되는데, 회남자 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술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제시된 ‘주술’이란 용어에 따라, 이러한 무위의 개념은 ‘주술적 무위’라 부르고자 한다. 이 주술적 무위 개념은 고대 중국의 변법, 관료제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회에서 일어난 정치적,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무위’ 개념의 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술적 무위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정치적 성격의 개념이다.
이러한 성격의 무위 개념과 가장 대립되는 것이 소요의 무위이며, 이러한 개념의 무위는『장자』에서 분명하게 찾아 볼 수 있다.
11) Leo S. Chang and Yu Feng, The Four Political Treatises of the Yellow Emperor―Original Mawangdui Texts with Complete English Translations and an Introduction, Monograph No. 15, Society for Asian and Comparative Philosophy,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8. pp.22~23.
2) 소요의 무위-초월과 유희
소요의 ‘무위’은『장자』의 「소요유」 「제물론」 등에서 명확하게 드러내는 용례이다.
「소요유」에서 혜시가 자신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으나 쓸모가 없다고 푸념하자―사실 이것은 장자의 주장이 무용하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장주는 자신의 ‘대용’(大用)의 철학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반박한다.
"“지금 당신은 커다란 나무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모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것을 무하유(無何有)의 마을 밖 드넓은 들판에 심어놓고서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무위하며 지내고 그 밑에 누워서 소요하면서 누워 자지는 못하는가.”12)"
12) 『莊子』 「逍遙遊」:
“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이 대화에서 대립점은 ‘用’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여기서 용이란 인간 존재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가치를 대변한다. 인간을 그 자체의 고귀한 생명으로보지 않고, 이러 저러한 능력, 사회적 기여도와 같이 개인적 삶의 외적 요소만을 강조하고 생명 가치가 유린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변법이 진행되던 당시 상황에서 인간이란 무엇보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력과 농업 생산물을 생산하는 노동력에 지나지 않는다.변법을 통한 부국강병이란 이와 같은 군사력이자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인간의 양산이다. 거기서 인간의 삶이란 들어설 곳이 없다.
장주가 여기서 말하는 대용이란 사회적으로 더 가치있는 커다란 쓰임새가 아니라 삶을 향유하는 것일 뿐이다.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낮잠을 잔다,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은유는 억압적 사회의 폭력과 제도적 강제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며, 가치의 전도를 외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여기서 ‘소용’(小用)에서 ‘대용’(大用)으로, 즉 인위적 가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억압하지 말고 생명의 향유라는 가치에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와 비슷한 대화가 「외물」편에서는 약간 다른 용어로 전개된다.
자신의 말이 쓸모가 없다는 혜시의 핀잔에 대해 장주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혜시의 논의를 뒤엎는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넓고 크다해도 사람이 쓰는 것은 발크기 정도의 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제외하고 다 파들어가 버린다면 어찌 쓸 것인가 하고 장주는 받아친다.
장주의 돌연한 반박에 혜시가 수긍하자 장주는 “쓸모 없는 것의 쓸모”가 증명되었다고 말한다.13)
13) 『莊子』 「外物」: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 天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廁足而墊之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無用之爲用也亦明矣.’”
「외물」의 논의는 「소요유」의 것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용과 무용이라는 사회적 논리에 삶이 희생되는 것에 반대하여 장주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 진인을 제안한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진인이란, 외적인 것에 의해 자신의 본질적 가치가 손상되는 않는 삶을 사는 존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소요’란 외적 요구에 의해 재단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향유하는 것이며, 「소요유」에서 그것은 ‘무위’와 같은 것으로 서술된다.
따라서 이러한 ‘무위’의 개념은 작위적 억압이나 지배에 대한 저항을 함축한다.14) 따라서 필자는 유소감처럼 장자의 무위를 “순 정신적인 자아의 위안이고, 공허한 가상이며 현실을 도피한 결과”15)라고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소요의 무위는 예술의 정신 혹은 유희의 정신과 통하며, 예술과 유희는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의 것을 현실화하는 위대한 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송대의 임희일은 그래서 장자의 ‘소요유’를 공자가 말하는 ‘遊於藝’의 경지로 풀이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개념의 무위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이것을 ‘소요의 무위’ 혹은 ‘방황의 무위’라 부르고자 한다.
14) 필자는 도가의 무위 개념이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에서 독재에 대한 항거이자 자유의 외침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비판 철학적 개념을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이는 장주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도가의 무위의 철학을 실천적으로 적용한 예는 함석헌 옹의 『씨알의 옛글풀이』가 대표적이다.
15) 劉笑敢, 「장자철학」 , 179쪽.
3. 양생과 덕화-생명과 의리의 두 차원
주술과 소요는 현실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서로 대립적이라면 이와 달리 양생과 덕화는 서로 대립적이지 않으면서 구별되는 무위의 개념들이다.
주술의 무위가 군주의 입장에서 입론된 정치 전략적 성격의 개념인데 반해, 소요의 무위가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가치 전도의 인간주의적 개념으로서 양자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태도에 있어 대립적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이제부터 다루게 될 양생의 무위와 덕화의 무위는 생명과 의리라는 삶의 독자적 영역에 관계함으로써 서로 쉽게 융화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양생의 무위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노자』의 주석서이면서 양생의 무위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하상공장구』를 이용할 것이다.
1) 양신의 무위-도가에서 도교까지
양생의 무위 개념은 일차적으로 ‘정신을 기르는 것’과 관련된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근원을 ‘정신’으로 보는 관점을 전제로 하는데, 예를 들어 『회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호오(好惡)․비우(悲優)․희노(喜怒)와 같은 격정(passions)들은 인간 생명력의 근원인 ‘정신’을 고갈시키고 피폐하게 하는 것들로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머무는 마음(心)을 허무(虛無)․염담(恬淡)․적막(寂寞)․무위(無爲)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이 때 양신(養神)이란 ‘신체를 기르는 것’(養形)16)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황제내경』에서는 인간 질병의 기원을 ‘정’(情)에서 찾는데, 이는 『회남자』의 논리와 유사하다. 다만 『황제내경』이 『회남자』에 비해 훨씬 정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러한 무위를 ‘양생의 무위’ 혹은 ‘양신(養神)의 무위’라고 부르고자 한다.
16) 이 용어는 『莊子』 「達生」에 나오는 것으로 ‘생명의 보존’에 부족한 것이라 비판한다.
『莊子』 「達生」: “世之人以爲養形足以存生, 而養形果不足以存生, 則世奚足爲哉! 雖不足爲而不可不爲者, 其爲不免矣.”
이와 같은 양신의 무위 개념은 『장자』 내편과 연대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관자』 에도 보이며, 한대의 『노자』 주석서인 『하상공장구』 에서 매우 체계적으로 계승된다.
『하상공장구』 는 『노자』 1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말할 수 있는 도란] 경술과 정교의 도를 말한다. 자연장생(自然長生)의 도가 아니다. 늘 그러한 도는 마땅히 ‘무위’(無爲)로써 정신(精神)을 기르고 ‘무사’(無事)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이러한 도는] 빛을 머금고 밝음을 감추며 자취를 없애고 실마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지칭하여 말할 수가 없다.17)"
17) 『老子河上公章句』 1.1-4:
“謂經術政敎之道也. 非自然生長之道也. 常道當以無爲養神, 無事安民,
含光藏暉, 滅迹匿端, 不可稱道.
謂富貴尊榮, 高世之名也. 非自然常在之名也. 常名當如嬰兒之未言, 雞子之未分, 明珠在蚌中, 美玉處石間, 內雖昭昭, 外如愚頑.”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무위’는 ‘정신’을 기르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도’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또한 그러한 생명의 근원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사유는 인간의 생명이 창달되는 과정이 바로 도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하상공장구』에서 ‘도’는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이다.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하는 것으로서, 만물의 생명이 움터 나올 수 있는 근원이며 또한 모든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로부터 벗어나거나 이 도―이 때의 의미는 태화(太和)의 정기(精氣)이다―를 잃을 때 생명은 숨을 멈추게 된다. 따라서 모든 생명이 계속될 수 있는 방법이나 힘의 근원 또한 이 도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하상공장구』는 2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만이 홀로 황홀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있으니 [이 하나가] 만물을 ‘경영’(經營)하고 ‘생화’(生化)하며 [그 각각의] ‘기’(氣)에 따라 ‘질’(質)을 세운다.
도만이 그윽하고 어두워 일정한 형체가 없는데 그 가운데 정기의 ‘실’(實)이 있어 신명이 서로 갈마들고 음양의 두 기운이 교감한다.
도의 정기가 신묘하고 지극히 참되어 꾸밈이 있지 아니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도는 ‘공’(功)과 이름을 안에 감추고 있으니 그 믿음이 그 속에 있다.18)"
18) 『老子河上公章句』 21.4-8:
“道唯忽怳無形, 其中獨有萬物法象.
道唯怳忽, 其中有一, 經營生化, 因氣立質.
道唯窈冥無形, 其中有精實, 神明相薄, 陰陽交會也.
言道精氣神妙甚眞, 非有飾也.
道匿功藏名, 其信在中也.”
하지만 궁극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도 또는 ‘하나’가 모든 생명에게 고르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에 따라 질을 세운다”라는 구절은, 『노자』1.11의 “玄之又玄”에 대한 주석에 따르면 기에는 질적 차이가 있고, 이 질적 차이에 따라 인간의 성품을 결정한다.
"하늘 가운데 또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기에 두텁고 얇음의 차이가 있으니, 중화(中和)의 자액(滋液)을 얻으면 성현(聖賢)이 나고, 혼란스럽고 더러운 기를 얻으면 탐욕스럽고 음란함을 낳게 된다.19)"
19) 『老子河上公章句』 1.11:
“天中復有天也. 稟氣有厚薄, 得中和滋液則生賢聖, 得錯亂汚辱則生貪淫也.”
도로부터 모든 생명이 품부받게 되는 기에는 조화로운가 아니면 혼란스럽고 더러운가 하는 질적 차이가 있다. 기의 질적 차이에 따라 사람의 ‘성품’(性品) 또한 구분이 된다. 즉, 중화의 기운을 얻게 되면 거기에서 성인이나 현인의 덕을 지닌 사람이 나오지만, 그렇지 못한 기를 받게 되면 갖가지 좋지 않는 품성을 낳는다.
이와 같은 『하상공장구』의 사상은 유가적인 천명론(天命論) 혹은 수명론(受命論)이라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우주-창생론적 혹은 생명-발생론적 차원으로 전환된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 가운데 또 하늘이 있어 품부 받은 기에 두텁고 얇음이 있음을 알아서 ‘정욕’(情欲)을 없애고 중화의 기운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도의 요체로 들어가는 문을 알았다고 한다.”20)
여기서 ‘도의 요체로 들어가는 문’(道要之門戶)이란 ‘천문’(天門)을 의미하는데, 인간에게서 ‘천문’이란 하늘과 소통하는 문인 코이다. 양생의 실천은 구체적으로는, 중화의 기운을 지키는 것이며 달리 말하자면 곧 ‘정욕을 제거하는 것’(除情去欲)이다.21)
이와 같이 『하상공장구』에서의 ‘무위’란 도로부터 비롯되는 거대한 생명 세계의 기원에 대한 전제로부터 도 혹은 기라는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무위’, 달리 말하여 ‘양신의 무위’ 개념을 특징으로 한다. 바로 이 점은 황로학적 사유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하상공장구』의 핵심 개념들인 ‘포일’(抱一), 태화의 정기, 오장신 사상 등은 이와 같은 양신론을 중심축으로 하여 구축되어 있다.
20) 『老子河上公章句』 1.12:
“能知天中復有天, 稟氣有厚薄, 除情去欲, 守中和, 是謂知道要之門戶也.”
21) 老子 10.9의 “天門開闔”에 대해 『老子河上公章句』는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여기의 천문이란 북극의 자미궁을 일컬으며, 열리고 닫힘이란 다섯 간격(五際)에 따라 마치고 시작함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것을] 몸을 다스리는 경우에 적용해 본다면, 하늘의 문이란 콧구멍을 일컬으며, ‘개’(開)란 입으로 쉬는 숨이고 ‘합’(闔)이란 코로 쉬는 숨이다.”
(天門謂北極紫微宮, 開闔謂終始五際也. 治身, 天門謂鼻孔, 開謂喘息, 闔謂呼吸也.)
여기서 天門은 세 가지 해석이 있는데, 『老子河上公章句』에서처럼 콧구멍으로 보는 경우가 있고, 『黃庭內景經』에서처럼 ‘미간’으로 그리고 『黃庭外景經』에서처럼 ‘입’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해석을 따르든 이것은 ‘태화의 정기’ 혹은 ‘중화의 기’가 드나드는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호흡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신비주의 수련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내용인 듯 싶다. 왜냐하면 앞의 1.7의 주석에 나오는 ‘道之要’가 ‘一’이고 이 때의 一이 ‘태화의 정기’이므로, 여기서의 ‘門戶’란 ‘태화의 정기’가 드나드는 문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출입하는 것은 心과 관련되며, 이곳은 神明이 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 덕화의 무위-유학에서 현학까지
이제 마지막으로 다루게 될 무위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유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위의 개념은 유가적 무위 개념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무위가 이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용례는『논어』이다.22)
『논어』위령공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위하면서 천하를 다스린 사람은 아마도 순 임금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자기 몸을 공손히 하고 임금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23)
22) 이와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예는 예기 「애공문」에도 있다:
애공이 물었다. “묻겠습니다. 군자가 어떻게 해야 하늘의 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하늘의 도가 그침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해와 달이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이어짐이 그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도입니다. 그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늘의 도입니다. 무위하면서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 이것이 하늘의 도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진 후에는 밝혀주는 것 이것이 하늘의 도입니다.”
( 『禮記』 「哀公問」: “公曰, ‘敢問君子何貴乎天道也?’
孔子對曰, ‘貴其不已. 如日月東西相從而不已也, 是天道也. 不閉其久, 是天道也. 無爲而物成, 是天道也. 已成而明, 是天道也.’”)
23) 『論語』 衛靈公: “子曰, ‘無爲而治者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여기서 공자는 유가의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를 묘사하는데 ‘무위’를 사용하고 있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란, 백성을 다스리되 스스로가 적극적인 모범을 보이거나 또는 자신이 지닌 덕(德)의 감화력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올바른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 성취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위령공의 언명은 이와 같은 유가의 이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에임스는 해석한다.24) 이것은 유가에서 흔히 말하는 ‘덕에 의한 교화’와 같은 의미이다. 무위가 행위라면 덕화란 그 행위의 작용이며 이 때문에 맹자는 이러한 개념을 무위라 하지 않고 ‘대유위’(大有爲)라고 표현하기도 했다.25)
따라서 무위의 이러한 개념은 ‘덕화의 무위’는 『순자』에 이르러 훨씬 명확한 표현을 얻는다.
24) Roger T. Ames, The Art of Rulership, p. 28.
25) 『孟子』 「公孫丑下」 2: “故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 맹자는 이 대화에서 진정으로 인의를 실천하려는 마음을 가진 군주, 즉 왕도 정치를 행하는 군주에 대해 ‘대유위(大有爲)의 군주’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孟子』에서 ‘有爲’는 ‘有司’(담당 관리)의 고유한 행위나 업무 수행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孟子』등장하는 ‘유위’는 도가에서 비판하였던 ‘인위적 행위’로서의 유위 개념으로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공자가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들이 큰 물을 보기만하면 반드시 그것을 살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강물은 두루두루 생명을 주면서도 무위하니 이는 덕이 있는 사람과 비슷하다. 그것은 낮은 쪽으로 흘러가지만 반드시 이치를 따른다. 또 의로운 사람과도 비슷하다. 출렁거리며 흘러가지만 결코 다하는 법이 없다.”26)"
26) 『荀子』 「宥坐」:
“孔子觀於東流之水, 子貢問於孔子曰:
‘君子之所以見大水必觀焉者, 是何?’
孔子曰: ‘夫水遍與諸生而無爲也, 似德. 其流也埤下, 裾拘必循其理, 似義. 其洸洸乎不淈盡.’”
『순자』 에 이르러 무위의 개념은 군자에게 체화되어 있는 덕과 보다 긴밀하게 연관이 된다. 즉 무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진 유가에서 무위는 유가의 이상적 군주가 백성들을 자신의 덕으로써 교화하는 정치적 이상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더 나아가 유가적 덕화의 이념인 무위는 위진 시대의 현학자 왕필과 곽상에 의해 두 가지 방향에서 보완된다.
위진 현학은 한 나라가 무너진 폐허 속에서 새롭게 유학을 긍정하고자한 유가적 사조이다. 비록 그것이 『노자』 와 『장자』 라는 문헌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되었다 할지라도, 그 정신 속에는 공자를 계승하고자 하는 유가적 심성이 자리하고 있다. 왕필은 공자가 말하는 인을 ‘도’와 ‘자연’의 영역과 연결시킴으로써 ‘무위자연’을 통한 인의 실현이라는 논리를 세운다.
"인(仁)이란 것은 만들어 세우고 베풀어 변화시키니, 은혜가 있고 억지로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만들어 세우고 베풀어 변화시키면 사물들은 제 참된 본성을 잃게 된다
... 저절로 그렇게 부모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효라면, 바로 그 자연스럽게 되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이 인이다.27)"
27) 『老子王弼注 』5.1 및 『論語釋疑』:
“仁者必造立施化, 有恩有爲. 造立施化, 則物失其眞... 自然親愛爲孝, 推愛及物爲仁.”
위진의 현학자들은 무위를 ‘자연’과 연결시키고, 이 ‘자연’을 인을 현하는 방법적 통로로 설정함으로써, 무위는 마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듯이 저절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실천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왕필이 경계하고자 했던 것은 ‘억지로 인한 척 하는 것’[爲仁]이 었지 부모에 대한 효성과 같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인’[自然]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러한 무위의 실천은 인의 실현, 사회적 조화의 실현까지 달성한다: “만물에 대해 무위를 하게 되면 만물이 각기 제가 쓰일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28)
왕필의 ‘무위’ 해석의 특징을 이루는 ‘各得其所’는『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는, “내가 위 나라에서 노 나라로 돌아온 후에 악곡을 정리하여 아악과 송악이 각각 제자리를 얻게 되었다.”(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고 말한다.
왕필은 공자의 이 말을 음악에 관한 언명이 아니라 정치의 요체를 담은 의미로서, 즉 ‘의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서 더 나아가 곽상은 무위가 분명한 실천이며, 곧 각자 제 할 일을 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무위는 팔짱을 끼고 침묵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다.”29)
28) 老子王弼注 5.1:
“無爲於萬物而萬物各適其所用, 則莫不贍矣.” 이러한 생각은 곽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9) 『莊子』注 在宥: “無爲者, 非拱黙之謂也, 直各任其自爲.”
왕필의 ‘무위’ 개념은 ‘덕화의 무위’에 해당한다. 왕필은 공자가 무위의 모범적 성왕으로 지칭하였던 순과 요를 통해 유가적 무위 정치의 이상을 이렇게 노래한다.
"오로지 성인(聖人)만이 하늘과 같은 덕이 있도다. 이 때문에 공자께서 “오로지 요 임금만이 하늘을 본받았구나”라고 칭탄한 것이니, 이는 당시에 요 임금만이 하늘에 필적할 만한 도를 온전히 실현하였다는 뜻이다. 또 공자께서 “높고 높아라”라고 한 것은, 형체가 없고 이름이 없는 것에 대한 칭탄한 것이다.
대저 어떤 이름을 이름짓는다 하는 것은, 밝게 드러낼 만한 훌륭한 것이 있거나 또는 길이 보존할 만한 은혜로운 것이 있을 때이다.
그런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서로가 따르기 마련이고, 명분(名分)이란 바로 거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랑에는 전혀 사사로움이 없으니 거기에 어떤 은혜로움이 개입되겠는가? 또 지극한 아름다움이란 본래 치우침이 없으니 도대체 어디에서 이름이 생겨나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하늘과 같은 덕으로 교화를 완성한 저 요 임금의 도는 본래 그러함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제 자식만을 사사로이 하지 않고 자신의 신하였던 순을 임금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흉포한 자는 스스로 벌을 자초할 것이요, 훌륭한 자는 스스로가 공을 세울 것이다.
따라서 공적이 이루어졌다해도 그 명예를 세우지 아니하고, 벌이 가할 때에도 형벌에 맡기지 않는 법이다. 백성들은 날마다 쓰면서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어찌 또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30)"
30) 『論語釋義』 626:
“聖人有則天之德. 所以稱唯堯則之者, 唯堯於時全則天之道也. 蕩蕩, 無形無名之稱也.
夫名所名者, 生於善有所章而惠有所存.
善惡相須, 而名分形焉. 若夫大愛無私, 惠將安在? 至美無偏, 名將何生?
故則天成化, 道同自然, 不私其子而君其臣.
凶者自罰, 善者自功;
功成而不其譽, 罰加而不任其刑.
百姓日用而不知所以然, 夫又何可名也!”
여기서 “百姓日用而不知所以然”은 「繫辭傳」 上40에서 道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한 것임이 상기되어야 한다.
이 인용문은 『노자주』에 나타난 왕필 사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인용문에서 왕필은 요 임금에 대해 공자가 ‘탕탕’(蕩蕩)이라 한말의 뜻이, 곧 “이름이 없고 형체가 없는” 본래 그러한 경지에 이른 요를 찬양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왕필은 이러한 도의 성취의 요점을, “자신의 자식만을 사사로이 여기지 않고 자신의 신하였던 순을 임금으로 삼아 선양하였던 것”에 돌리고 있다. 이것은 『노자주』에서 말하는 ‘무위’의 의미로서 ‘무사’와 ‘적용’의 내용과 일치한다.31)
그리고 요 임금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을 본받을 줄 아는 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의 논의는 우(禹)에게 선양하였던 순(舜)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래서 요나 순은 성왕으로 칭송받았지만 어떠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무위’의 군주인 것이다. 이 것은 스스로 모범을 보여 백성들을 교화한다는 유가적 정치 이상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왕필이 말하는 ‘무위’는 유가적 무위이며 ‘덕화의 무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31) 왕필에게서 무위는 ‘적용’(適用)이라는 논의는 다음 논문에서 이미 자세하게 논의한 바 있다. 김시천, 「有無論을 통해 본 왕필의 ‘自然’과 ‘認識’의 문제」, 『시대와철학』1996 가을호 참조.
4. 맺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무위의 네 가지 개념에 대하서 서술하면서 무위가 어느 특정 학파나 개인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학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무위 개념은 주술의 무위, 소요의 무위, 양신의 무위, 덕화의 무위라는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정 학파의 전유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보았다.
특히 학파나 시대에 따라 ‘무위’는 새로운 사유나 주변 개념들과의 관계를 바꾸어 가면서, 현실에 대한 태도나 영역상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다양한 의미가 비롯되었음을 보았다. 무위는 어느 특정 학파의 발명이라기보다는 이른바 고대 중국적 사유의 전형을 이루는 공통 개념이자, 역사성을 지닌 다의적 범주임이 밝혀진 듯하다. 이과 같은 구분을 어느 고대 문헌에 혹은 특정 문헌의 각 편에 적용하여 분석해 본다면, 또한 학파의 성격이나 핵심 주장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구분하는 유용한 기준으로서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일반적인 상식과 같이 ‘무위’가 도가의 전유물이거나 적어도 가장 특징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서는 선진 시대의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무위’ 개념의 다의적 성격을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무위’를 가장 특징적인 용어로 하는 『노자』의 경우에도 그것이 왕필본을 통해 읽혀졌는가 아니면 하상공본을 통해 읽혀졌는가에 따라 노자 의 ‘무위’ 개념에 대한 이해 또한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판단하기에 ‘무위’ 개념을 인위와 문명, 비자연적인 것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오늘날의 시각은 20세기 서구 과학 문명과의 조우로 인한 것이다.32)
『노자』가 당(唐), 송대(宋代)의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하상공본이나 ‘집해’(集解)의 형식으로 다양하게 읽혀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왕필본에 의거하여 『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분명 일부의 견해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본론에서 논의하였던 것처럼 왕필의 ‘무위’는『노자』적이기보다『논어』의 개념을 따르고 있으며, 성격상 유가적이다. 이렇게 같은 텍스트를 통하는 경우에도 주석서에 따라 ‘무위’의 이해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중국 철학에 등장하는 ‘무위’ 개념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이러한 개념적 다양성을 묶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나 원칙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작업의 예비적 단계로서 무위의 개념이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차원을 갖는다는 것을 논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33
32) 필자는 80-90년대 한국에서의 『노자』유행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노자』의 유행이라기보다 왕필의 유행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즉 『노자』의 번역서의 주종이 왕필의 주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전국 시대나 한대의 『노자』 , 도교적 이해와는 다른 왕필식의 『노자』해석이며, 따라서 왕필의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시천, 「역사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우리 시대 노자 번역을 돌아보며」, 오늘의 동양사상 , 제11호, 2004 가을․겨울호, 254~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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