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노장자

자유의 스승 『장자』

rainbow3 2019. 10. 2. 01:44


자유의 스승 『장자』           장윤수

 

 

장자에 있어서 ‘자유’란, 과정으로 보면 천지와 내가 하나되는 ‘일즉전一卽全’의 방법이며, 결과로 보면 천지와 내가 하나된 상태이다. 자유란 내가 저절로 그러한 바로서(自然), 인위적이지 않으며(無爲) 아무런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自由) 모든 대립을 뛰어넘은(絶對) 통달무애의 경지(自在)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유롭지 못한가? 장자는 한 마디로 인간이 ‘물物’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물’이란 감각 대상이 되는 사물들은 말할 것도 없 고, 추상적인 사건들 그리고 일체의 심리 현상․사회 현상․자연 현상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장자가 제시하는 무물無物의 방법론, 즉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좌망坐忘이다. 좌망이란 ‘일즉전’의 절대경지에 이르기 위해 세상사의 잡다한 차별을 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장자는 이를 구체적으로 무기無己, 상망相忘, 망오忘吾, 망족忘足, 망요忘要, 망시비忘是非 등으로 표현한다.

 

* 이 논문은 1999년도 대구교육대학교 교내연구비에 의해 연구되었다.

 

 

Ⅰ. 들어가는 말

 

유가의 스승상은 한유韓愈(768∼824)의 사설師說에서 그 모범 답안을 얻을 수 있다. 한유는 ‘스승’을 정의하여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1)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두 종류의 스
승을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韓愈, 師說,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저 동자童子의 스승은 글을 가르치되 그 구두句讀를 전하고 익혀 줄 뿐이니, 이것은 내가 말하는 바 성현의 도道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 주는 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구두를 알지 못할 경우에는 스승을 두면서도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의혹을 풀지 못하는 일에 있어서는 스승을 두려 하지 않으니, 곧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다.2)"

2) 韓愈, 師說,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 非吾所爲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이러한 한유의 ‘스승론’은 당시의 직업적 교사, 즉 훈고학적 의미의 스승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한유가 생각한 참스승이란 ‘도를 전해 주고 의혹을 풀어 주는 자’로서, 이것은 곧 자각적이지 못하고 의혹을 풀어주지 못하는 무지無知의 스승에 대한 유지有知의 스승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가적 유지有知의 스승론을 비판해 볼 수 있다. 유지의 스승론은 결국 “절대絶對와 유일唯一의 권위를 자기 밖에서 찾게 되며 또한 스스로 옛 성현의 시녀가 되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福永光司, 1999: 12 재구성)는 비판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스승상은, 도를 깨달아 내적으로 충실한 자이기는 하나 인위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상대적인 세계관에 따라 포폄褒貶을 하지 않는 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협소한 가치관을 탈피하여 모든 구별과 대립을 초월한 절대자연의 경지에서 노니는 자이다.”(김효선 외, 1997: 100 재구성)

우리는 유가적 스승상을 극복한 새로운 스승의 모습을 ‘장자莊子’3)에게서 찾고자 하며, 이러한 새로운 스승상을 무지無知․유지有知의 스승과 구분되는 ‘비지非知의 스승’4)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3) 儒家의 代案 思想으로 道家를 주목했으며, 道家의 대표 인물인 老子와 莊子 중에서도 비교적 그 생애가 자세하며 사상 재료가 풍부한 莊子를 주제로 택했다.
4) 非知의 개념은 不知, 非合理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非知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馮友蘭, 1983: 161-165; 末木剛博, 1995: 179-180 참조.

 

비지非知는 특히 무지와 구분되어야 하는 용어이다. 무지가 아직 유지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지적 미성숙의 단계라고 한다면, 비지는 유지의 한계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유지이다. 동양 사상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유지의 전형은 유가 사상으로, 그리고 비지는 도가 사상으로 지칭된다.

따라서 다변多辯의 유지를 넘어서 무언無言의 비지의 가르침을 펼치며, 무위의 도를 터득하여 자연과 하나되는 이러한 새로운 스승상을 도가적 혹은 장자의 스승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타의 구분과 시비의 대립마저 초월하여 절대의 경지, 자연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인간의 이상이자 참된 스승이라 여겼으며, 또한 그 자신이 그렇게 살고자 염원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장자의 스승상5)을 ‘자유의 스승’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즉 ‘자유’ 이념을 중심으로 장자의 가르침과 스승상을 재구성해 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몇 가지 제약6)으로 인해 우리들의 공동 의도7)에 직접
논법으로 부응할 수는 없겠지만, 장자 자신의 언설과 우리의 추론을 통해 장자의 교학 이념과 스승상에 대해 간접적인 답변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5) 여기에서 의도하는 ‘莊子의 스승상’이란, 우선 莊子가 강조한 스승상이라는 뜻, 그리고 莊子 자신이 삶으로써 보여 준 스승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6) 道家의 경우에는 師弟 관계의 형성, 講學法, 교육 환경 등 그 敎育史的인 구성 요소를 직접적으로 검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7) 이 연구는 ‘동양 고전 속의 좋은 스승’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동양사회사상학회의 공동 작업의 하나이다.

 

 

논의 전개의 순서상 먼저 ‘장자’라는 인물에 대한 대표적 전기인『사기史記』 「열전列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의 사상적 배경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것은 곧 ‘장자가 왜 그토록 자유를 강조하였던가’에 대한 사회 사상사적 배경을 검토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작업은 ‘자유’ 개념의 철학적 반성이다. 앞서의 작업이 장자 사상8)의 객관적 검토라고 한다면, 장자 사상의 주관적․주체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은 자유 개념의 철학적 반성을 통해 장자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기본 개념들 간의 사상적 연계성을 추적하는 동시에 장자 사상 전반을 ‘자유’의 사상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선이해先理解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자유’ 이념이 중심이 되는 장자의 교학 이념을 구성해 보고자 한다.

그 주요 내용은, ‘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한가’,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자유로운 인간이란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으로 이루지게 된다.

특기할 것은, 여기서 인용하는 장자의 언설은 장자 전편全篇9)을 통해서 자유롭게 채택된다는 점이다.
물론 장자 전편을 모두 장자 자신의 말로 볼 수는 없겠지만,10) 적어도 이 글에서 언급하려는 주제의 범위 안에서는 동일한 사상적 맥락에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11)

 

8) ‘莊子 思想’이라고 할 때의 ‘思想’은 ‘哲學’이나 ‘宗敎’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莊子의 생각들이 哲學이나 宗敎로 분화되기 이전의 복합적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思想’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9)『莊子』는 7편의 內篇과 15편의 外篇, 11편의 雜篇으로 이루어진 책이며, 內․外․雜篇 사이에는 형식과 내용면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10) 이강수, 1997: 111-114 참조.
11) 福永光司 또한 이러한 전제에 동의한다.(福永光司, 1999: 11, 280 참조)

 

 

Ⅱ. 생애와 문제 의식

 

선진 시대의 중국 사상가 대부분은 그 생애가 객관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도가 계열의 학자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수많은 전설적 기록들과 신비적 일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모습을
역사 속에서 찾아내기란 매우 힘들다. 장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는 우선 장자에 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인 『사기』 「열전」의 장자 관련 문헌의 전문全文을 소개해 보도록 한다.

 

 

"장자는 몽蒙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고, 일찍이 몽나라의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다. 양梁나라의 혜왕惠王이나 제齊나라의 선왕宣王과 같은 시대였는데, 그 학문은 박학했고 근본은 노자의 설에 귀착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지은 10만여 자의 저술은 대체로 우언寓言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어부漁父」, 「도척盜跖」, 「거협胠篋」 편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헐뜯고 노자의 술術을 밝혔다. 「외루허畏累虛」12), 「항상자亢桑子」13)와 같은 편들은 모두 헛된 말이며 사실이 아니다.

그는 문장을 교묘하게 잘 짓고 세상일을 지시하고 인정을 살폈으며, 이로써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니 당시의 석학들도 그의 날카로운 공격을 꺾지 못했다. 그의 말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면서 자유분방했기 때문에 왕공과 대인들이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 등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은 장주莊周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예물을 후히주고 그를 맞이하여 재상을 삼으려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면서 사신에게 말하기를, “천금은 막대한 돈이고 재상자리는 존귀한 자리이다. 자네는 교제郊祭에 쓰이는 희생물인 소를 보지 못했느냐? 몇 년 동안 잘 길러 비단 옷을 입히고 종묘로 끌고 들어간다. 이때 그 소가 차라리 돼지새끼가 되고 싶어도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자네는 빨리 돌아가 나를 괴롭히지 말게. 나는 차라리 흙탕물 속에서 헤엄이나 치며 여유작작하려네. 나라를 가진 주권자에게 구속받고 싶지는 않네. 평생 동안 출사出仕하지 않고 내 멋대로 즐기려 하네”라고 했다.14)"

 

14)『史記』卷63, 「老莊申韓列傳」,

“莊子者, 蒙人也, 名周, 周嘗爲蒙漆園吏. 與梁惠王․齊宣王同時, 其學無所不闚, 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 故其著書十餘萬言, 大抵率寓言也.

作漁父․盜跖․胠篋, 以詆訿孔子之徒, 以明老子之術. 畏累虛․亢桑子之屬, 皆空語無事實.

然善屬書離辭, 指事類情, 用剽剝儒․墨, 雖當世宿學不能自解免也. 其言洸洋自恣以適己, 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楚威王聞莊周賢, 使使厚幣迎之, 許以爲相.

莊周笑謂楚使者曰, 千金, 重利, 卿相, 尊位也.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養食之數歲, 衣以文繡, 以入大廟. 當是之時, 雖欲爲孤豚, 豈可得乎. 子亟去, 無汚我. 我寧游戲汚瀆之中自快, 無爲有國者所羈, 終身不仕, 以快吾志焉.”( 史記, 台北: 廣文書局, 1969: 859-860. 句讀는 필자에 의한 것임)

12) 현재 失傳되었음.
13) 「庚桑楚」를 말함.

 

 

이『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장자는 양혜왕梁惠王(기원전 370∼319)이나 제선왕齊宣王(기원전 319∼301)과 동시대의 인물이라고 한다. 마서륜馬敍倫(1884∼1970)은 위 설에 근거하여 장자의 생몰년을 대략 주周나라 열왕烈王 7년(기원전 367)에서 난왕赧王 29년(기원전 286)까지로 잡고 있다.15) 그리고 이 시기는 대략 맹자와 동시대이다. 장자와 맹자 두 사람간에 직접 논쟁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맹자가 양주楊朱를 공격하고 장자가 공자를 비판했던 점을 고려하면 둘 사이에 ‘포괄적인’ 논쟁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혼란스러운 때였으며, 반면 사상사적으로는 매우 다채로운 시대였다.

 

그리고 『사기』에서는 장자가 “몽蒙이라는 곳에서 칠원리漆園吏를 지냈다”고 한다. 몽은 현재 중국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 동북 지역에 있다. ‘칠원漆園’에 대해서는 단순한 지명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한 당시 제후나 귀족들이 경영하던 동산으로 보는 설도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 좀 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후자이다. 즉 당시의 고관대작들은 개인 전용의 과수원, 목장, 채소밭 등을 가지고 있었는데, 칠원이라는 곳도 귀족 전용의 옻나무를 재배하던 농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자가 이러한 농장의 관리인이었다면 그는 분명 하급 관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대표자는 전목錢穆(1895∼1990)이다. 전목은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그는 공자가 젊은 시절에 위리委吏와 승전乘田이라는 관직을 맡았던 것과, 또한 장자가 칠원리漆園吏를 역임하였던 점을 비교한다. 즉 위리는 창고의 출납을 맡은 관리이고 승전은 소와 양 같은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은 관리이므로 위리와 승전을 역임한 공자는 당연히 인간사人間事에 많은 관심을 두었을 것이며, 반면에 옻나무를 재배하던 산림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장자는 자연스럽게 대자연의 이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이다.16) 이러한 가설은 장자가 왜 대자연․대자유의 사상을 펼쳤던가 하는 점을 해명하는 하나의 논거가 된다.

 

15) 馬敍倫, 『天馬山房叢著』, 「莊子年表」 ; 馮友蘭, 1992: 212에서 재인용.
16) 錢穆, 1973: 3 참조.

 

또한『사기』에 의하면, 장자는 송宋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장자가 살았던 송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한 은殷(商)나라의 유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들은 주로 상업商業17)에 종사하는 등 지배 계층으로의 진출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받아야 했던 차별적․멸시적 대우는 당시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여 송인宋人이라 한 사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18) 장자의 언행이 출세간出世間을 지향하며 세간사世間事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을 보였던 것은 망국亡國의 유민流民으로 태어난 신분적 한계와 또한 이로 인한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송나라가 초楚나라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며 『장자』의 문체와 초사楚詞가 유사한 점을 들어 장자의 사상과 초나라 정신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풍우란馮友蘭(1895∼1990)이다.
그는 초사楚詞의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과 생각들이 뛰어나다는 점과,『장자』의 사상과 문체 또한 대단히 자유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점을 들어 둘 간의 관련성을 긍정한다. 즉 그는 장자 사상의 특징들이 초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영향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추론한다.19) 장자가 초나라 정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설은 송나라와 초나라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장자가 비록 거절하기는 했지만 초나라 위왕威王(기원전 339∼329 재위)이 장자를 초청한 기록20)들에서도 신빙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는『사기』에서 언급한 장자의 생애 중 다음 세 가지 점을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그가 칠원리漆園吏였고, 망국인 송나라 출신이었으며, 초나라 사람들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
징들은 모두가 장자 사상을 이해하는 ‘사회 사상사적 표지標識’가 된다.

 

17) 商業이란 말 자체가 ‘商나라 유민들이 하는 業’이라는 뜻을 지닌다.(김효선 외, 1997: 94 참조)
18) 그 대표적인 경우가 ‘守株待兎’(『韓非子』, 「五蠹」)와 ‘어리석은 宋人’ 즉 ‘苗助長의 故事’(『孟子』, 「公孫丑上」)이다.
19) 馮友蘭은 그 구체적 증거의 하나로, 莊子의 『莊子』, 「天運」과 屈原의 『天問篇』의 유사성을 예로 든다.(馮友蘭, 1992: 211-212 참조)

20) 이 기록은 『史記』, 「列傳」과 『莊子』, 「列禦寇」에서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Ⅲ. 자유 개념의 철학적 지평

 

장자 사상의 특징은 체계적인 설명이 힘들다는 난점과 동시에 찾을 수 있다. 장자 사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한편으로 그 사상의 본질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서 생겨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가설이 논리적 힘을 얻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역설 또한 분명 진리성을 갖는다. 아무리 체계를 거부하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타당성 있게 하나의 사상으
로 이해되고 평가되려면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이해되어야만 한다.21)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자유’를 언급한다. 즉 체계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장자 사상을 꿰뚫을 수 있는 관건으로 ‘자유’ 개념을 주목한 것이다. 우리는 장자 사상 전체의 특징이 ‘자유’ 이념에 있다고 보며, 또한 장자 사상을 풀어나가는 단서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자가 생각한 참된 스승의 모습과 스승으로서 장자가 보여준 삶의 본보기도 결국 ‘자유’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유’의 해명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개념이 그러하듯이 자유 또한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불분명해진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자유’ 의미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개념들이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자재自在, 자유자재自由自在, 소요자재
逍遙自在, 자연自然, 무위자연無爲自然, 자연이연自然而然 등의 의미들은 모두 자유自由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자유, 자연, 자재라는 3가지 주요 개념 중에서 『莊子』에 직접 등장하는 것은 ‘자연’뿐이다.22) 그런데도 ‘자유’23)를 주제로 삼은 이유는, 이 개념이 근대 이후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하며, 또한 장자 사상의 핵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현대적 어감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1) 박이문, 1983: 13-14 참조.
22) ‘自然’은 『莊子』에서 총7회 등장한다.
『莊子』, 「德充符」, “吾所謂无情者, 言人之不以好惡 內傷其身, 常因自然而不益生也.”
『莊子』, 「應帝王」, “汝遊心於淡, 合氣於漠, 順物自然而無容私焉, 而天下治矣.”
『莊子』, 「天運」, “吾又奏之以无怠之聲, 調之以自然之命, 故若混逐叢生, 林樂而无形.”

『莊子』, 「繕性」, “當是時也, 莫之爲而常自然.”
『莊子』, 「秋水」, “知堯桀之自然而相非, 則趣操覩矣.”
『莊子』, 「田子方」, “夫水之於汋也, 无爲而才自然矣.”
『莊子』, 「漁父」, “眞者, 所以受於天也, 自然不可易也.”

23) 自由의 용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는 것. 생각대로, 기분대로.
  『後漢書』, 「閻皇后紀」, “吾兄弟權要, 威福自由.”
  『後漢書』, 「五行志」, “樊崇等立劉盆子爲天子, 然視之如小兒, 百事自由, 初不恤錄也.”
   柳宗元, 「酬曹侍御過象縣見寄詩」, “春風無限瀟湘意, 欲採蘋花不自由.”
(2) 다른 사람에게 속박당하거나 구애받지 않는 것.
  白居易․「苦熱詩」, “始慙當此日, 得作自由身.”

 

 

‘자유’는 서구의 정치․사회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프리덤’(freedom)에 대한 번역어로 우리들에게 친숙해진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자유’ 개념에 대한 서구 사회의 전통 및 학문적 성찰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비
중을 두지 않고, 우선 동양 고전 속의 유사 용례를 통해 그 개략적 의미를 추출해 보고자 한다.

 

자유, 자재, 자유자재의 고전 속의 용례는 대체로 ‘내가 뜻하는 대로 하는 것’, ‘생각대로’, ‘기분대로’,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속박당하거나 구애받지 않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재自在의 용례이다. 자재는 유가적 용례와 불가적 용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유가적 용례는 대체로 ‘속박이나 구애됨이 없이 하고자 하는 바 마음대로’라는 의미를 지닌다.24) 이것은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즉 속박이나 구애됨이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러나 불가적 용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의 적극적인 의미인 ‘통달무애通達無碍의 경지’를 의미한다.25)

그리고 고전 속의 자연自然의 용례는 ‘인위를 가하지 않은 천연天然, 본래本來의 상태’로서 이른바 도를 의미한다.

 

24) 自在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漢書』, 「王嘉傳」, “大臣擧錯, 恣心自在.”
  『維摩經』, “已於諸法得自在.”의 注, “世王自在於民, 法王自在於法.”
   杜甫, 「放船詩」, “江流太自在, 坐穩興悠哉.”
그리고 自由自在는 ‘생각대로’ ‘마음대로’라는 뜻으로서 출전은 다음과 같다.
  『通俗編』, 「性情․自由」, “五燈會元, 華光範有自由自在語.”

25) 『法華經』, “盡諸有結, 心得自在.”

 

 

여기서 자유, 자재, 자연을 삼면일체의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정리해 보면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다른 사람(혹은 사물)에게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 둘째, 마음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즉 통달무애의 경지, 셋째, 인위를 가하지 않았다는 천연天然, 본래本來의 뜻이 바로 그것이다.

즉 ‘자유’는, 일차적으로 다른 무엇의 속박이나 억압을 받지 않는 상태이며,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무한 의식의 상태 즉 통달무애의 경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다름 아닌 인위를 가하지 않은 본래 그러한 무위자연이며, 우리는 이것을 일러 도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바로 이러한 ‘자유’의 이념을 장자의 가르침 속에서 찾고자하며, 또한 거꾸로 이러한 이념을 통해 장자의 사상을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이제 ‘자유’ 개념을 좀더 본격적으로 이 글의 필요와 관점에 맞추어 재구성해 보자.

그러기 위해 먼저 ‘자유’라는 주어에 대한 ‘절대’라는 술어를 중심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자유의 의미는 감각적 경험의 대상인 현상계의 현실성을 지시하는 것도 아니고, 초월적인 실재성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적인 초월 행위 자체를 지시하기 때문에 인과 현상의 추정이나 초월적 실재의 상정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즉 자유의 논리는 어떠한 대상에 관한 어떠한 표상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는 오직 자기 성찰적인 자기 인식에 의해 체험될 수 있을 뿐이다.(신오현, 1993: 165)
즉 자유는 ‘자기’일 수밖에 없으므로 자유는 천연, 본연, 자연일 수밖에 없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자유는 자기 이외의 타자에 의해 대립되지 않는 ‘절대’일 수밖에 없다. 상대 관계에서는 절대를 찾을 수 없다.(신오현,1993: 169)

절대는 ‘상대를 단절함’(絶對)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유는 철두철미하게 상대를 끊은 ‘절대’일 수밖에 없다.26)

 

26) Absolute라는 영․독․프랑스어는 라틴어 ‘absolutus’에서 유래하며, absolutus의 동사형 absolvo는
ab+solvo 즉 해방과 자유를 의미한다.(신오현, 1993: 172 참조)

 

 

자유의 의미는 필연적으로 자기․자연․절대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즉전一卽全, 전즉일全卽一’의 세계관에서 잘 읽혀진다.
장자는 자유의 경지에서 체득한 이러한 ‘일즉전’의 세계관을 도처에서 강조한다.

 

"한쪽에서의 분산은 다른 쪽에서의 완성이며, 한쪽에서의 완성은 다른 쪽에서의 파괴이다. 모든 사물은 완성이건 파괴이건 다같이 하나이다. 다만 도에 다다른 자만이 다같이 하나임을 깨달아, 자기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사물을 평상시의 자연스런 상태 속에 맡겨 둔다. 평상시의 상태란 아무 쓸모가 없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크게 쓸모가 있으며, 이런 쓸모가 있는 것은 무슨 일에나 스스로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의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충분히 자기의 삶을 즐길 수 있으면 도에 가깝다고 한다. 모든 것을 그저 자연에 맡길 뿐, 그러면서도 그런 따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것을 도라고 한다.27)"

27)『莊子』, 「齊物論」,

其分也, 成也. 其成也, 毁也. 凡物無成與毁, 復通爲一. 唯達者知通爲一, 爲是不用而寓諸庸. 因是已. 已而不知其然, 謂之道.”

(이 글에서 인용하는 모든 莊子 원문은 陳鼓應, 1983에 의거한다. 그리고 번역은 안동림, 1993에 기본적으로 의거하고, 陳鼓應의 莊子今註今譯과 기타 역본을 참고하고 필자 자신의 譯解로써 부분적으로 改譯한다.)

 

"천지와 내가 함께 살아가고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28)"

28)『莊子』, 「齊物論」,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일즉전’의 세계관에서 비로소 모든 상대성이 단절되고 절대에 대한 확실성 즉 자명성을 자득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곧 주체를 ‘일즉전’의 세계관에서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모든 추상적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결국 자유는 과정으로 보면 천지와 내가 하나되는 ‘일즉전’의 방법이며, 결과로 보면 천지와 내가 하나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란, 내가 저절로 그러한 바로서(自然), 인위적이지 않으며(無爲), 아무런 속
박에도 얽매이지 않고(自由), 모든 대립을 뛰어넘은(絶對) 통달무애의 경지(自在)인 것이다.

 

 

Ⅳ. 자유의 교학 이념

 

1. 자유의 반대 요인 ― ‘물’

 

자유에 대한 장자의 논설은 ‘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한가’라고 하는 자유의 반대 요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왜 자유롭지 못한가?

이 질문에 대한 장자의 답변은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이 ‘물物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物이란 무엇인가?

 

『장자』에서 사용되는 물物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모든 사건․사물들이 ‘물’이다. 그러므로 인간도 하나의 ‘물’이며 인간의 지식․욕망․감정․인의예악이 모두 ‘물’이다.29)

『장자』에서 언급되는 ‘물’의 의미를 범주화해 보면 대략 다섯 종류로 구분된다.30)

29) 한국동양철학회 편, 1996: 247 참조.
30) 김만겸, 2000: 91-93; 이강수, 1997: 168-176 참조.

 

첫째, 감각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무릇 모양과 상象과 소리와 색色을 갖는 것은 모두 ‘물’이다.”31)

31)『莊子』, 「達生」, “凡有貌象聲色者, 皆物也.”

 

둘째, 우리 의식의 대상을 말한다.

“언어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물’의 조야粗野한 것이요, 의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물’의 정미精微한 것이다.”32)

“지사知士는 변란으로 지모智謀를 쓸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변사辯士는 제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으면 즐겁지 않으며, 찰사察士는 말다툼을 해서 상대방에게 이기지 않으면 즐겁지 않다. 이들은 모두 ‘물’에 구속되어 있다.”33)

32)『莊子』, 「秋水」, “可以言論者, 物之粗也. 可以意致者, 物之精也.”

33)『莊子』, 「徐无鬼」, “知士无思慮之變則不樂, 辯士无談說之序則不樂, 察士无凌誶之事則不樂, 皆囿於物者也.”

 

셋째, 도덕적 가치를 말한다.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인의仁義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달린다. 이야말로 인의로써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짓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을 한 번 말해 보자. 하․은․주 삼대三代 이후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물’(仁義) 때문에 자기의 본성을 바꾸지 않는 이가 없다.”34)

“무엇 때문에 ‘물’로써 일을 삼겠는가?”35)

34)『莊子』, 「騈拇」, “天下莫不奔命於仁義, 是非以仁義易其性與. 故嘗試論之, 自三代以下者, 天下莫不以物易其性矣.”
35)『莊子』, 「逍遙遊」, “孰肯以物爲事.”

 

넷째, 사람을 의미한다.

“자연으로부터 명을 받아 오직 요․순 임금이 우뚝하고 바르니, 만물의 으뜸이다.”36)

36)『莊子』, 「德充符」, “受命於天, 唯堯舜獨也正, 在萬物之首.”

 

다섯째, 정치 제도와 세상사를 말한다.

“막고야邈姑射 산에 어떤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피곤하게 천하를 일로 삼으리요?
그 사람은…… 그의 티끌과 먼지와 겨 등으로 또한 요․순을 지어 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물’로써 일을 삼겠는가?”37)

37)『莊子』, 「逍遙遊」, “邈姑射之山, 有神人居焉……孰弊弊焉以天下爲事. 之人也.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分分然以物爲事.”

 

‘물’이란 감각 대상이 되는 사물들은 물론이고 사려․담론 등 추상적인 사건들, 그리고 일체의 심리 현상․사회 현상․자연 현상 등을 말한다. 즉 현상계의 일체 사물․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38)

장자는 인간이 이러한 ‘물’에 구속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채 자유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장자는 ‘물’의 구속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어떠한 모순이나 대립도 없는 도추道樞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38) 이광세 외, 1996: 341 참조.

 

 

"‘주체(是)와 객체(彼)를 갈라놓을 수 없는 것’(대립이 해소된 경지)을 일러 도추道樞라고 한다.39)"

39)『莊子』, 「齊物論」,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물’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자기를 떠나 ‘그’의 처지에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자기의 입장에서는 환히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 때문에 생겨나고, 이것이라는 개념은 저것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곧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으로 생겨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생生에 대립하여 사死가 있고 사에 대립하여 생이 있으며, 가可에 대립하여 불가不可가 있고 불가에 대립하여 가가 있으며, 시是에 기인하여 비非가 있고 비에 기인하여 시가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런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인위를 초월한 대자연(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是 즉 천天에 기인한 것이다.

말하자면 시비의 상대성을 넘어서 진정 옳은 입장에 입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절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곧 저것이요 저것이 곧 이것이다. 저것에도 그것을 근거로 할 시비의 판단이 있고 이것에도 이것을 근거로 할 시비의 판단이 있다.40)"

40)『莊子』, 「齊物論」,

“物无非彼 ,物无非是.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故曰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장자 사상의 핵심은 ‘자유’이다. 즉 장자 철학은 ‘물’에 구속된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부자유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자기’가 될 수 있는가를 밝힌 것이다.41)

이러한 무물無物의 경지를 소요유逍遙遊, 자유자재自由自在, 절대자연絶對自然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장자에게 있어서 ‘물’은 현실적 실용성, 전통적 가치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가 무물無物의 경지를 강조한 것은 곧 합리성과 실용성의 기준을 넘어선 보다 큰
세계의 사람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그는 자유로운 정신의 관점에서 ‘물’에 구속된 협소한 자아의 인간상을 비판하고, 본연의 자유를 만끽하는 새로운 자아관을 모색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장자가 제시하는 무물의 방법론, 즉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자.

 

41) 福永光司, 1991: 16 참조.

 

 

2. 자유에 이르는 길 ― 좌망

 

모든 상대성을 뛰어넘어 절대에 대한 확실성, 즉 자명성을 얻으려는 장자 교육의 최대 목표는 이미 앞에서 강조하였듯이 자유의 경지에 이르려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장자는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 ‘좌망’을 강조한다. 저 유명한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구절을 인용해 보도록 하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엇 말이냐?”
“저는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 “됐다. 하지만 아직 미흡해.”

얼마 후의 다른 날, 다시 안회가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무엇 말이냐?”

“저는 예악禮樂을 잊었습니다.” “됐다. 하지만 아직 미흡해.”

다시 며칠이 지난 후인 다른 날, 또 안회가 찾아와서 말했다. “저는 얻는 바가 있었습니다.” “무엇 말이냐?” “저는 좌망坐忘하게 됐습니다.” 공자는 놀라서 물었다. “무엇을 좌망이라고 하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손발이나 몸을 잊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 지식을 버리고 저 위대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고 합니다.”

공자는 말했다. “도와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 하는 차별따위가 없어지고, 도와 하나가 되어 변하면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겠다.”42)"

42)『莊子』, 「大宗師」,

“顔回曰. 回益矣. 仲尼曰. 何謂也.

曰. 回忘禮樂矣. 曰. 可矣, 猶未也.

他日, 復見, 曰. 回益矣. 曰. 何謂也.

曰. 回忘仁義矣. 曰. 可矣, 猶未也.

他日, 復見, 曰. 回益矣. 曰. 何謂也.

曰. 回坐忘矣. 仲尼蹴然曰. 何謂坐忘.

顔回曰. 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

仲尼曰. 同則無好也, 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

 

일즉전一卽全의 절대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상사의 잡다한 차별을 잊어버리고 초월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우선 지知를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성內聖’의 방법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지식의 과제는 사물의 구별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것과 다른 사물의 차이를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知를 버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별, 즉 상대를 잊어버리고 넘어서는 일이다.

모든 차별을 넘어서서 이르게 되는 하나의 무차별의 세계가 바로 ‘일즉전’의 세계이며 절대의 세계이며 또한 자유의 세계이다. 이러한 망지忘知의 지知를 장자는 무지의 지와 구분하여 비지非知의 지라고 한다.

 

장자는 지인至人이나 신인神人 혹은 진인眞人을 말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무기無己43), 상망相忘44), 망오忘吾45), 망족忘足46), 망요忘要47), 망시비忘是非48), 망기간담忘其肝膽49), 망기일忘其一50) 등을 강조한다.51) 이것은 모두 놀이에 빠져 자의식을 망각한 어린아이와 같은 것으로서 절대자유의 경지를 체득하기 위한 전前단계, 혹은 방법으로 강조되는 개념들이다. 모두 중요한 표현들이므로 관련 용례를 재구성해 보도록 한다.

 

43)『莊子』, 「逍遙遊」, “故曰, 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 ; 莊子, 「在宥」, “大同而无己. 無己, 惡乎得有有.”
44)『莊子』, 「大宗師」,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莊子』, 「天運」,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若相忘於江湖.”
45)『莊子』, 「達生」, “齊七日, 輒然忘吾有四枝形體也.”
46)『莊子』, 「達生」, “忘足, 屨之適也.”
47)『莊子』, 「達生」, “忘要, 帶之適也.”
48)『莊子』, 「達生」, “忘是非, 心之適也.”
49)『莊子』, 「達生」, “忘其肝膽, 遺其耳目,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无事之業, 是謂爲而不恃, 長而不宰.”
50)『莊子』, 「徐无鬼」, “上之質若忘其一.”
51) 이 用例는 김형효, 1999, 241에 의거함.

 

 

"지인至人에게는 ‘자기(사심)가 없다’(無己).
샘물이 말라 물고기가 메마른 땅 위에 모여 서로 축축한 물기를 끼얹고, 서로 물거품으로 적셔 줌은 물이 가득한 드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相忘)만 못하다.

7일을 재계齋戒하면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사지四肢와 육체를 지녔다는 것조차 잊고 만다’(忘吾有四肢形體).
신이 꼭 맞으면 ‘발을 잊게 되고’(忘足), 허리띠가 꼭 맞으면 ‘허리를 잊으며’(忘要), 마음이 자연스러움에 알맞으면 ‘시비를 잊게 된다’(忘是非).
‘간담肝膽 따위 몸 안의 기관을 잊고’(忘其肝膽) 눈, 귀 따위 감각 기관까지도 잊어버린 채 무심하게 세속 밖에서 떠다니고 인위를 일삼지 않는 자연 속에서 노닌다.
최상의 개는 ‘스스로를 잊은 듯 정신이 움직이지 않는다’(忘其一)."

 

 

이 개념들은 모두 좌망을 달리 표현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장자는 자유자재의 경지를 체득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좌망’류의 개념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개념을 언급한다. 그것은 바로 심재心齋이다.

심재는 좌망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여, 심재는 좌망 이전의 수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안회는 말한다. “부디 심재心齋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다. “너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하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듣도록 하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밖에서 들어온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기란 공허하여 무엇이나 다받아들인다. 그리고 참된 도는 오직 허虛 속에 모인다. 이러한 허가 곧 심재이다.52)"

52)『莊子』, 「人間世」,

“回曰. 敢問心齋.

仲尼曰. 若一志,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 聽之以心而聽之以氣. 耳止於聽,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여기서 말하는 심재는 마음의 재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자유 체득의 기점이 된다. 심재의 요체는 ‘허’이다. 장자는 “마음이 공허해지면 일체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자연히 충실해지거나 고요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
로 심재는 사려나 욕망을 배제할 수 있는 정신 수양의 방법이며, 좌망의 전단계에 있다. 그러나 장자의 강조처는 어디까지나 좌망이다. 전자, 즉 심재의 단계에서는 아직 사려와 욕망을 배제하는 주체가 있다. 그러나
후자는 이러한 주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넘어선 단계 즉 몰아沒我의 경지, 대자유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는 그러한 단계이다. 장자는 좌망이야말로 나와 천지만물이 ‘혼연일체’가 되는 초월의 경지에 접근할 수 있는
관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좌망을 통해 비로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대자연 상호간의 차별과 분별의 한계가 해소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과연 좌망이 방법인가, 상태인가, 아니면 이상인가 하는 점이다. 즉 좌망은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방법인가, 아니면 자유의 경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술어인가, 그도 아니면 그러함에 이르고자 하는 목표나 이상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장자가 하는 말 속에 이러한 가능성 모두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의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은 다른 대부분의 주요 개념, 예를 들면 소요逍遙, 무대無待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좌망이 방법론이 되려면 구체적인 하위 방법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고 다만 대자유의 경지를 획득할 수 있는 관건과 전제로만 간주된다.53) 그러나 여기서는 ‘좌망’이라는 개념 자체가 목표와 이념일 수 없다고 판단과, 좌망 자체가 초언어성超言語性을 지닌 개념으로서 체험이나 증명의 방법이 아니라 자각自覺과 자증自證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고려 아래, 비록 구체적인 하위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유 자재의 이념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좌망을 다루고자 한다.

53) 김득만․장윤수, 2000: 163-164 참조.

 

그렇다면 장자는 ‘자아’ 이외의 외재 사물이나 타자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나와 우주가 ‘혼연일체’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을 무너뜨리고 총명을 내쫓으며 육체의 구속을 떠나고 시비의 소견을 버려서 대도大道와 동화하는 것을 일컬어 좌망이라고 한다”54)라고 하였다. 장자는, 인간이 알고 있는 사물은 다만 우주 안에서 인간의 자아와 관련된 단편적인 사물의 모습일 뿐 우주 본래의 진면목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혼연일체로서의 우주 본연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궁극적 실재를 객관적 표준에 두고 변증법적인 요소를 강조한 노자의 입장과 비교하면 장자는 근원적 실체의 체득을 ‘직관’에 둠으로써 변증법적 요소마저 완전히 일탈해 버린 주관주의의 절정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55) 좌망은 ‘체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는 허무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띠고 있으나,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이러한 허무주의적 색채를 적극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편, 장자의 이러한 좌망의 사상은 이미 노자에게서도 보인다. 즉 노자는, “자신을 뒤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앞서게 되고, ‘자신을 바깥으로 함으로써’(外其身) 자신은 오히려 존재하게 된다”56)라고 하였다. 물론 이 때 ‘외기신外其身’은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망기신忘其身’ 즉 ‘좌망’의 의미를 지닌다.

 

‘좌망’은 흔히 놀이(遊)에 비유되기도 한다. 놀이의 참된 모습은 놀이에 몰입하여 놀이 안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는 것이 가장 잘 노는 것인가?

그것은, 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노는 것이 가장 잘 노는 것이다.57) 그러므로 장자는, “물고기는 강호江湖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술道術에서 서로 잊는다”58)라고 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장자가 그토록 염원한 자유의 이념, 즉 소요자재의 경지를 좀더 직접적으로 그려 보는 것이다.

 

54)『莊子』, 「大宗師」, “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
55) 김득만․장윤수, 2000: 165 참조.
56) 『老子』 7장,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57) 임수무, 1997: 206-207 참조.
58)『莊子』, 「大宗師」, “魚相忘乎江湖, 人相忘乎道術.”

 

 

3. 자유의 경지 ― 소요자재

 

장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은 없다. 그리고 삶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삶의 외부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은 가능한 한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59)

이 세상은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에 비유할 수 있다. 삶이 비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우리들이 의식을 갖고 무엇인가를 욕망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이 이러한 욕망과 어긋나는데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욕망을 버리고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아픔과 비극일 수 없다.60)

 

59) 박이문, 1983: 111-112 참조.
60) 박이문, 1983: 121 참조.

 

삶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 고통을 낙樂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바로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관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전환 이후에 다다르는 정신적 경지를 장자는 소요자재 즉 자유의
경지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경지에서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노래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惠子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아내와 함께 살고 자식을 키워 함께 늙은 처지에 이제 그 아내가 죽었는데 곡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무정하다 하겠는데, 거기다가 더욱 질그릇을 두드리고 노래까지 하다니 이거 심하지 않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자는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가 않소. 아내가 죽은 당초에는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러나 그 태어나기 이전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그저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소. 비단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氣도 없었소.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해서 삶을 갖추게 된 거요.
그리고 이제 다시 변해서 죽어 가는 거요. 이것은 춘․하․추․동이 서로 사계절을 되풀이하여 운행함과 같소.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커다란 방에 편안히 누워 있소. 그런데 내가 소리를 질러 울고불고 한다면 이는 하늘의 운명을 모르는 거라 생각하여 곡을 그쳤던 것이오.”61)"

61)『莊子』, 「至樂」,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長者․老, 身死,不哭,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无槪然. 察其始而本无生, 非徒无生也而本无形, 非徒无形也而本无氣. 雜乎芒芴之間,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소요자재는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장자의 가장 적절한 대답이다. 그것은 인생을 하나의 놀이와 산책으로 보는 것이다. 즉 삶을 그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본다. 성공․업적 등을 인생의 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것이다.62) 이러한 경지는 상대적․소아적小我的 세계관으로부터 절대적․일즉전一卽全 세계관으로의 관점 전환으로 가능한 대자연․대자유의 경지이다.

 

장자는 자유의 경지를 소요자재 또는 소요유逍遙遊라 한다. 소요자재(소요유)는 어떠한 외물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통달무애의 경지를 뜻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경지를 체득한 인간을 일러 지인
至人이나 신인神人 혹은 성인聖人이라고 한다.63) 저 유명한 장자 「소요유」의 구절을 살펴보자.

 

62) 박이문, 1983: 122-126 참조.
63) 至人은 충분히 덕을 쌓은 사람, 神人은 신묘한 능력을 갖춘 사람, 聖人은 自得通達한 사람을 일컫는데, 세 경우 모두 이상적 인격을 가리킨다. 成玄英은 莊子疏에서, 그 형체를 至라 하고 그 작용을 神이라 하며 그 명목을 聖이라고 할 뿐 사실은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①그러므로 그 지식이 불과 한 관직에 효과가 있고 그 행위가 한 고을에 알맞으며, 그 덕은 한 임금의 신임을 얻을 만하고, 그 재능은 한 나라에 빛낼 정도인 그런 인물은 스스로를 보는 눈이 메추라기와 같이 비좁다.

②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인물을 싱긋이 비웃는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칭찬한다고 더욱 애쓰는 일도 없고, 세상 모두가 헐뜯는다고 기가 죽지도 않는다. 다만 내심內心과 외물外物의 분별을 뚜렷이 하고 영예와 치욕의 경계를 구분할 뿐이다. 그는 세상일을 좇아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안정되지 못한 데가 있다.

③저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다니니 가뿐하고 좋다. 15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온다. 그는 편하게 복을 갖다 주는 것(바람)을 좇아 허둥지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도 스스로 걷는 불편은 면했으나 역시 ‘기대는 데가 있다’(有待).

④만약 천지 본연의 모습을 따르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무한의 세계에 노니는 자가 되면 대체 ‘무엇을 의존할 게 있으랴’(無待). 그래서 지인至人에게는 사심이 없고 신인에게는 공적이 없으며 성인에게는 명예
가 없다고 한다.64)

64)『莊子』, 「逍遙遊」,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鄕, 德合一君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而宋榮子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境, 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冷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无窮者, 彼且惡乎待哉. 故曰, 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

 

우리는 편의상 위에서 언급한 네 경지를 유명有名, 무명無名, 무공無功, 무기無己의 경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말하기를, “지인은 무기하고 신인은 무공하며 성인은 무명하다”65)라고 하였다.

65)『莊子』, 「逍遙遊」, “故曰,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즉 ①은 세상 명성에 민감하고 입신영달에 애쓰는 그런 단계이다. 그런데 송영자란 인물은 “세상 모두가 칭찬한다고 더욱 애쓰는 일도 없고, 세상 모두가 헐뜯는다고 기가 죽지도 않는다”고 한 것을 보아서 분명 무명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내심과 외물을 분별하고 영예와 치욕을 구분하고 있으니 무공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열자는 복을 구하는 일에도 연연하지 않으니 무명뿐만 아니라 무공까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언뜻 보기에 소요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러나 장자는 이러한 열자의 경지마저 비판한다.

비판의 요지는 ‘유대有待’에 있다. 즉 장자는 열자의 소요의 경지는 ‘유대소요有待逍遙’라고 보았다. 열자가 무명과 무공의 경지에 이르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무언가 의존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열자가 무기의 경지, 즉 무대소요無待逍遙의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말이다.66)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이상적 인간, 즉 지인은 명예를 떠나며 공功을 떠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존재마저 의식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무명과 무공은 무기의 파생이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경지, 즉 무대소요의 경지에 이르면67) 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되므로 자연히 무명․무공하게 될 것이다. 무기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떠한 사물․사건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어떠한 일에도 얽매이거나 이끌려 다니지 않는 ‘절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무대소요, 소요자재, 자유자재의 경지는 곧 정신의 ‘절대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장자 의 첫 편이자 가장 핵심 편이기도 한 「소요유」는 수사학적으로 과장된 대붕大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장법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가 만드는 절대성이나 전체성을 부수고
이성의 제한적 사고 방식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생긴다.

대붕의 이야기는 분명 허구이다. 그러나 이 허구는 사실의 세계, 경험적 인식의 한계를 박차고 싶을 때 쓰이는 초현실의 논리이다. 세세한 인간 현실을 훨훨 벗어나서 무한의 자유 세계를 여유작작하려는 대붕의 이야기를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과 허구적 우화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66) 劉笑敢, 1998: 130-137, “有待와 無待에 관한 문제” 참조.
67) 王先謙은 『莊子集解』의 “以遊無窮者, 彼且惡乎待哉.” 註釋에서, ‘無待逍遙’가 「逍遙遊」 全篇의 綱要라고 하였다.

 

 

Ⅴ. 나오는 말

 

장자는 인간이 현실 세계의 초월과 달관을 통하여 절대의 세계인 자연으로 돌아가서 무한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문제에 근본 관심이 있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의 교육 사상은 실존적 자연주의 교육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68) 그는 교육 방법으로 역설적 논법과 우화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또 자증自證․자득自得이라는 내관적內觀的 인식법69)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그의 교육 목표는 물物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한 인
간, 즉 통달무애한 인간의 지향에 있었다. 그는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음’을 강조하였다. 세상 교육이 모두 물고기를 잡는 목적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수단인 통발에 집착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68) 김효선 외, 1997: 100-101 참조.
69) ‘內觀’이란 개념은 列子에서 유래하는데, 陳鼓應은 이것을 莊子 認識論의 특색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발전시켜 사용하였다.(김득만, 1987: 4 참조)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으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 따위는 잊혀지게 마련이다. 또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필요하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혀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말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알고 나면 말 따위는 잊고 만다. 나도 이렇듯 말을 잊은 사람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구나.70)"

70)『莊子』, 「外物」,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이러한 장자 사상의 근원을 우리는 주역周易에서 찾을 수 있다. 『주역』은 중국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데, 그 주요 이념을 거론하면 ‘조화調和’와 ‘복귀復歸’라 할 수 있다. 이 두 이념은 ‘유가적’ 조화 사상과 ‘도가적’ 복귀(혼돈) 사상으로 계승․발전되어 중국 사상의 2대 조류를 이루게 된다.

전자는 근대적․합리적 의미를 담고 주도 사상의 역할을 하며, 후자는 탈근대적․비합리적 의미의 안티(Anti) 사상으로 발전되면서 중국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 스승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자가 강조하는 스승상이 정명正名에 입각한 조화의 모습이라고 한다면71) 후자의 경우는 복귀와 혼돈72)으로 상징되는 자유의 스승상이다. 너무도 유명한 『장자』 「응제왕應帝王」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 보자.

 

70)『莊子』, 「外物」,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71)『周易』의 正名, 調和, 復歸思想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末木剛博, 1995: 212-224 참조.

 

 

"남해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한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으므로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보답할 방법을 의논했다.

“사람은 누구나 눈․귀․코․입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이 혼돈에게만 없다. 어디 시험삼아 구멍을 뚫어 주자.”
그래서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73)"

73)『莊子』, 「應帝王」,

“南海之帝爲儵,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儵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混沌之德,

曰. 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 此獨無有, 嘗試鑿之.

日鑿一竅,七日而混沌死.”

 

 

‘유가적’74) 교육관에서 그토록 배격하는 ‘혼돈’75)은 여기 장자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조화 혹은 질서의 의미를 뛰어넘는 ‘대안적代案的’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혼돈’이라 함은 인위적 조작을 가하지 않은 ‘자연적 모습’ 그대로를 말하며, 또한 아무것에도 구애됨이 없는 자유스러움을 말한다.

 

장자 사상은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즉 유가 사상을 의식하지 않고 장자 사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장자사상은 유가 사상의 지나친 형식주의와 인위적인 합리주의의 한계를 충분히 자각한 이후에 생겨난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장자를 곧이곧대로 ‘훌륭한’ 스승이라는 범본範本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의예지’라는 형식적 도덕주의의 포장 하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덮어 버리는 유가적 교육 형태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비판적’ 스승의 모습으로서는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經師)을 만나기는 쉬워도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人師)을 만나기는 어렵다76)고 개탄한 사마광司馬光(1019∼1086)의 탄식을, 우리는 여기서 입신영달의 세간학문世間學問을 가르치는 스승은 많아도 소요자재의 자유이념을 가르치는 참스승은 없다는 말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74) ‘儒家的’이라는 의미는 적어도 이 맥락에서는 ‘合理的’ 혹은 ‘近代的’이라는 의미와 상통함.
75) ‘混沌’은 ‘무질서’라는 의미와 상통하나, 그러나 ‘混亂’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76) 司馬光, 資治通鑑; 오천석, 1996: 205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