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
필자는 ‘종교’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종교를 일반적인 문화현상으로 설명하자니 그 범위가 너무 넓고 한 종교에 국한해서 정의하자니 각 종교마다 나름대로 종교를 설명하는 방식인 ‘교리’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개별종교에서 저마다 주장하는 핵심교리가 공통점도 있지만, 각각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인-실존적인 상황에서 ‘고백’한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다양성이 종교의 위대한 유산들 중 하나이다.
인도의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자신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인 힌두교에 대해 <젊은 인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종교는 진리이며 모든 종교는 자기 나름의 약점도 있습니다. 저는 내가 믿는 힌두교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종교들도 힌두교만큼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만일 우리가 힌두교도들이면, 그리스도 교인들이 힌두교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기도는 힌두교도는 더 나은 힌두교도가 되고 그리스도 교인들은 더 나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간디의 말에 의하면, 종교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처럼 내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물건이 아니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온 가치들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믿거나 실존적인 경험을 통해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이끌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를 자신의 삶의 중요한 방식으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종교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필자를 굳이 종교적으로 구분한다면, 그리스도교 중 개신교 감리교인이다. 내가 감리교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감리교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님이 장로교인이었다면 장로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부모가 가톨릭이었다면,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부모가 원불교인이었다면 원불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이란 남부에 위치한 시아파의 본산지 ‘콤’에 태어났다면 나는 이슬람 시아파 무슬림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개신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은 일종의 운명이다. 만일 내 부모가 개신교인으로서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모범적인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개신교를 떠나 무신론자가 되거나 다른 신앙형태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개신교 감리교인이 된 사실은 일종의 ‘신비’이다.
그러나 요즘 그 신비를 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 교양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다보면, 그리스도교가 이런 식으로 사회를 이끌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면,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개신교회들 안에 팽배한 물신숭배와 권력숭배, 목사들의 교회 세습 문제와 사기 사건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바벨탑과 같은 대형교회 건축 등은 스스로 갱생의 길을 포기한 절망적인 모습들이다.
종교다원주의는 다양한 종교들 안에 유기적인 관계맺음과 상호존중이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다양성이 서로 간의 인정과 존경이 없이 종교들 간의 질시와 무시를 조장해 오기도 했다. 오늘날 종교들 간의 다양성은 현상이지만 종교다원주의는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만이 최고라는 무식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깨달음의 과정이다.
서로 알려는 마음과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없는 종교의 다양성은 우리사회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이며 파괴적인 오해만 증폭시킬 뿐이다.
자신이 속한 종교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본 경험이 없는 종교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종교만이 최선이며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하기 십상이다. 특히 내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고 언론이나 풍문에 의존하여 전해들은 종교들에는 자신이 습득한 왜곡된 지식으로 다른 종교들을 단죄한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초등학생이 수 천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양식이 된 지혜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무식함과 같다.
종교다원주의는 단순한 ‘톨레랑스’ 즉 ‘참아주기’가 아니다. ‘톨레랑스’의 문제점은 아직 자기중심적이란 점이다.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종교를 지닌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미덕을 배우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대철학자들은 ‘똘레랑스’의 가치를 높이 산다. 철학자 카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에서 현대인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참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우리는 공정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참을 수 없음을 참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톨레랑스’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똘레랑스’가 필요한 공공의 가치이지만 개별종교인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진심으로 알려는 마음은 없다.
이것은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는 글로벌 사회의 기초가 되기에는 빈약한 개념으로 자신의 무식함을 제거하려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이는 종교들 간의 분열과 폭력을 조장하는 상대방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 불완전한 이해를 고착화한다. 우리는 점점 더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오해받는 가장 큰 원인은 종교상대주의와 혼동되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다 좋다는 무책임한 종교상대주의가 아니다.
필자는 종교를 ‘어머니’라 생각한다. 내 자신의 어머니가 나한테 최고이지, 내 친구의 어머니가 나에게 최고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 어머니가 내게 최고인 것처럼, 내 친구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최고라고 상상할 수 있다.
종교상대주의는 각각의 종교가 가진 독특한 경험과 그 종교인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무시하는 개념이다. 내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인식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어머니의 심오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종교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체득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들에도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기 마련이다.
동굴과 영적인 인간
찰스 다윈이 1859년에 쓴 <종의 기원>은 인간과 그 문명을 해석하는 큰 틀을 제공하였다. 다윈에 의하면 수많은 유인원 가운데 인간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다음 두 가지 ‘무기’를 통해 생존했다.
하나는 ‘적자생존’이다. 인간은 뛰어난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추구해왔다. ‘적자생존’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약육강식’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환경에 더 잘 적응했고, 경쟁하는 다른 인종들을 무참히 짓밟고 결국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종의 기원>에는 영국 시인 A. 테니슨의 시구 ‘nature, red in tooth and claw’가 등장한다. 번역하자면, ‘이빨과 손발톱이 피로 물든 자연, 혹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유전자를 적자생존과 양육강식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드러내 살아 온 동물이다.
이 틀은 아직도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바이블이 되었다. 정말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은 ‘예술’에서 극명하게 등장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음미하거나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관찰하면 인간의 최고의 경지를 감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해 신비한 합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남긴 최초의 예술작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프랑스와 스페인 동굴에 남긴 지금부터 3만~1만 년 전까지의 벽화들일 것이다. 물론 이들이 정교하고 숭고한 음악이나 무용도 즐겼겠지만, 그것을 기록할 도구가 없어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깊은 계곡의 동굴 안에 남긴 그림들은 인간이 누구이며,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강력하게 질문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가 처음 발견된 장소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이다. 이 동굴은 한 마리 여우를 쫓던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 후 이 지역의 영주였던 사우투올라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다. 그는 취미로 계곡 안으로 들어가 석기를 캐내곤 했다. 어느 날, 사우투올라는 다섯 살 난 딸 마리아를 데리고 한 동굴에 들어가 머리를 숙이고 석기를 찾고 있었는데, 마리아는 머리를 들고 동굴 천장을 쳐다보면서 “아빠, 소가 있어요!”라고 소리친다. 사우투올라는 자신의 램프를 천장에 비추니, 들소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림들이 어제 그린 것과 같이 선명한 모습이었기에 놀랐다.
사우투올라는 연필을 들고 그 짐승들을 스케치한 후, 프랑스 학회에 이 그림들을 보여주며 구석기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학회는 물론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우투올라가 학문적인 명성에 눈이 멀어 사기극을 벌였다고 의심했다. 사우투올라는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쓸쓸이 죽었다.
당시 이 그림들의 위작을 주장한 학자는 프랑스의 저명한 고고미술학자인 에밀 까르따이약(1845-1921)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한 그는 2만 년 전 구석기 ‘동물’들은 그런 정교한 그림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림은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문명사회에서나 가능한 귀족들의 전유물로 생각한 것이다.
<추상과 공감> (Abstraktion und Einfulung)이란 책의 저자인 빌헬름 보링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서양예술은 ‘공감’을 기초하며, 공감이란 감정은 원시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구석기 시대 예술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점은 에밀 까르따이약의 (Mea Culpa d’un Sceptique,1902) 즉 <의심하는 자의 고해성사>라는 책의 출판이었다. 그는 이전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구석기 시대의 작품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곳을 방문한 피카소는 ‘알타미라 이후에 모든 것이 쇠퇴했다’고 고백하였다.
2만 년 전의 벽화가 구석기 시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작품이란 사실이 확정되었으나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이들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처음 발견할 때부터 이 동굴들을 연구한 고고학자 앙리 브루이 (AbbeHenri Breuil,1877-1961)는 동굴의 그림들은 원시인들이 잡고 싶은 동물들을 그림으로써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원시적인 풍요제사의식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동굴벽화에 남겨진 동물들 중 뾰족한 칼이나 창으로 긁힌 흔적이 있어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이 이론은 간단명료하여 매력적으로 보이나 원시인들이 가진 신비에 대한 경외심을 설명하지 않았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장소가 아닌 지하로 내려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질문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과 연결되지 않을까.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에는 3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00개 이상 정교한 벽화들이 발견된다. 지금은 사라진 맘모스, 순록, 곰, 사자 등이 그려졌는데, 이것들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식이 아니었다.
또한 이곳은 그들의 거주 장소가 아닌 특별한 행위를 위해 숭고하게 마련한 ‘구석기식 시스틴 성당’ 이라고 생각한다. 빙하기 시대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생활하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하 50m이상 세계로 진입한다. 그 어둠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한 순간에 앗아가는 신비한 장소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동굴에서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횃불을 듣고 자신과 더불어 사는 위대한 동물들을 그리면서 동물, 자연과 하나가 되고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을 조절하는 절대자와 만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동굴이다. 그 안에서 몰입하는 연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유를 묵상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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