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 1

rainbow3 2019. 10. 7. 01:29


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 - 예수의 위대한 질문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장 27절)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서아시아언어문명 학과 교수

 

예수의 삶이 암시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경외와 겸손’

…인간의 진정한 카리스마는 바로 이 ‘겸손’의 미덕에서 비롯된다

 

 

독일 화가 그뤼네발트(1455∼1528)의 <십자가 형(刑)>. 처절하게 찢긴 예수를 형상화해 그가 겪은 고통과 인류 구원을 향한 열망을 표현했다.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예수는 어떤 인간인가?

21세기 글로벌 환경 속 한국사회에서 예수라는 인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배철현 교수는 약 1년간 연재한 ‘구약의 위대한 질문’에 이어 이번 10월호부터 ‘예수의 위대한 질문’의 연재를 시작한다. 21세기 현대인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를 웅숭깊게 들여다보는 기획이며, 교리와 도그마를 초월하여 예수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근원적 성찰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예수는 자신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가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매력이 있어 내 삶의 우선순위가 자연적으로 정리되는 그런 삶의 원칙이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에 대한 소문이나 의견이 아니라, 제자들이 보고 듣고 느낀 예수의 실제 모습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었다. 예수에 대한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실존적인 평가를 원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리스도교가 21세기에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팔레스타인의 나사렛이란 시골에서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라는 인물이 일생 동안 떠돌이·노동자·목수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30세가 되어 세례 요한의 회개운동에 참여하여 세례를 받은 후, 40일간 사막에서 신과 인류,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천명을 받았다. 당시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로마와 한통속이 되어 민중들을 더욱 더 압박하고 있었을 때, 예수는 사회통념에 대해 전복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수사와 설교로 많은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원할 메시아가 곧 올 것으로 믿고 있었고 제자들은 그를 메시아로 믿게 되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은 예수가 자신이 생각하는 인류 최고의 가치인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직후, 베드로에게 물은 질문이다.

 

그는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도착하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人子)를 누구라고 부르느냐?”라고 물었다. ‘인자’는 예수의 자기 명칭이다. 이 명칭은 메시아 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기원전 2~3세기에 ‘메시아’를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그 근본적인 의미는 ‘보통사람’이다.

예수는 자신을 보통 인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화신이라 하기도 하고,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언자들 중 한 분이라고 말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는 자신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수학했던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말한 이런저런 소문이 아니라, 예수를 삶의 스승으로 삼은 12명의 제자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들은 처자식을 버리고 3년 동안 예수를 힘겹게 따라다닌, 어떻게 보면 가정을 버린 무책임한 실업자들이지만, 예수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만큼 통찰력과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풍문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어 했다.

 

우리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풍문에 기초한 정보는 편견이라는 필터를 통해 다시 한 번 왜곡된다. 우리는 이 편견을 버리기 위해 공부한다.

공부는 자기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지닌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벗어나 상대방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무아상태’를 연습하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미셀 푸코(1926~84)는 <지식의 고고학>(1972)이란 저서에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담화(discours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담화’란 권력과 상식이라고 알려진 자신들만의 지식, 혹은 ‘진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3년간 동고동락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묻다

 

어떤 실체를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을 심사숙고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묘사하거나 규정한 정의 안에 그 실체를 가둔다. 우리는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무아(無我)’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생소한 그 대상에 대한 표면적인 인상이나 얄팍한 소문을 상대방에게 적용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할 때, 흔히 ‘우리와 다른 부분’을 극대화하여 그 대상을 정의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푸코의 용어를 빌리자면 ‘담화의 대상’으로서 예수가 아닌, 자신들이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예수는 어떤 인간인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사회에서 예수라는 인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푸코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교리와 도그마를 통해 예수를 보지는 않는가?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예수의 위대한 질문들’ 연재는 교리와 도그마를 과감히 버리고 21세기 현대인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를 살펴보려 한다. 위에서 언급한 예수의 질문“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를 대답하려고 시도하고자 한다.

 

하버드대의 종교학자 하이비 콕스는 2010년에 <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21세기 현대인에게 ‘종교인’, ‘비종교인’, 혹은 ‘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그는 오늘날 종교인들은 점점 각 종교나 종파의 교리보다는 윤리적 지침이나 영적 훈련에 더 관심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경향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여서 현대인은 종교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생각했던 조직이나 교리보다는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행복한 어떤 것을 찾고 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종교 근본주의 운동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에 대한 불안감의 표시였다.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의 발굴을 통해, 성서가 가장 오래된 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엄연한 현실이 대두되었다. 또한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과 그 책이 가져다준 인간과 우주의 이해에 대한 혁명적 시도는 감히 빅뱅과 같은 사건으로 성서를 축자적으로 받아들이는, 성서를 자기중심적인 필터로만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 당시 종교인들은 수천 년의 지혜를 통해 얻은 인류의 지혜나 과학적 지식을 통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찾기보다는 ‘근본주의’로 무장하였다. 아니, 비겁하게 근본주의라는 조잡한 건물 안에 숨었다. 근본주의로 무장한 신앙들은 점점 세력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각자 주장하는 정치적-경제적 이윤을 기초한 교리의 충돌로 좌초하고 있는 실정이다.

 

콕스는 21세기 현대인들은 더 이상 숨이 막히는 교리나 종교조직 혹은 4세기에 로마에서 일어났던 종교와 정치의 결합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21세기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의 성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 연안 ‘그레이트 오션 로드’ 바다 위로 기이하게 솟아오른 12사도상 바위들. 예수의 열두 제자의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랑의 실천보다 ‘교리 숭배’ 강요했던 기독교

 

콕스는 지난 2000년 동안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3단계로 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처음 등장한 1세기부터 3세기까지를 ‘신앙(faith)의 시대’라고 부른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느냐가 중요했다. 30년 남짓한 짧은 생을 산 청년 예수가 보여준 삶을 내가 오늘날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여 따르느냐가 관건이었다. 4세기에 들어와 제국을 형성한 로마가 제국의 통치수단으로 선택한 그리스도교는 이제 선과 악, 나와 너,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수단이 되었다.

 

콕스는 이 두 번째 시대를 ‘믿음(belief)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는 ‘믿음의 시대’가 지난 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진행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리스도교는 이 기간에 ‘정통’과 소위‘올바른 가르침’ 에 매몰되어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급급했다. 15~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 여파인 과학의 혁명으로 새로운 그리스도교가 요구되기 시작됐다. 긍정적인 형태가 아닌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근본주의가 등장하여 세를 부리는 것 같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점점 그 세력을 잃고 있다.

 

이 현상은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콕스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영성의 시대’로 진입하였다고 주장한다. 점점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도그마와 교리를 무시하고 종교들 간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있다. 콕스는 ‘영성’이 조직화된 종교를 대치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사실 초대 그리스도교는 기도, 예배 그리고 사랑의 행위를 강조했던 영적으로 유기적인 형태였다.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하여, 그 안에서 교파가 형성되어 교리문제로 싸웠을 리 만무하였지만, 이들이 가진 신앙은 로마의 그리스도교 학살에도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아 순교자가 될 정도로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들에게 신앙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을 정도로 소중한 생명이었다.

 

그런 약동하는 그리스도교가 4세기에 들어가 ‘정동교리’라고 알려진 일련의 고백에 동의하는 재미없는 사상으로 고체화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교는 자비 행위보다는 교리를 숭배하는 정책을 강조했고 슬프게도 그런 경향은 오늘날에도 만연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같은 자생적이고 감동적인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망망대해에서 침몰하는 그리스도교라는 타이타닉에서 구명보트를 탄 몇 명의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신들을 “한 종교나 종파에 속한 종교적 인간이 아닌 영적인 인간”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된 주장이 아니다. 필자가 대학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 과목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학생들이 종파의 편협한 교리나 교회에서 말하는 ‘올바른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관심은 사회의 취약계층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봉사하는 공동체에서 예배하고 섬기는 기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한 집단에 속하는 소속감을 강조하지만 현대인들은 종교를 통해 자신의 삶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교황이나 감독이 왜 있어야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또한 복잡한 삼위일체나 종말론과 같은 교리를 먼 과거의 이야기로 자신의 삶과는 유리된 소문으로 여긴다.

 

그들은 다른 종교에 관심이 많으며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교회에서 강조하는 사‘ 도권의 연속성’, 즉 예수, 베드로 그리고 사도들로 이어지는 종교적 권위는 뜬금없는 소설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제가 존재했을 리 없다.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놓았다는 바울은 천막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었다.

 

초기 공동체에는 여성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당시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통해 그 역할이 재조명 받고 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는 전도자였던 네 명의 여성이 존재했고 적어도 유니아는 사도였다. 아직도 그리스도교 안에서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제도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콕스가 말한 ‘영성의 시대’의 핵심은 무엇인가? 오늘 종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 길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두 사람으로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를 언급하고 싶다.

 

1929년 4월 랍비 헐버트 골드스타인은 베를린에 거주하던 위대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다급하게 보냈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답신에 필요한 값은 지불했습니다. 50단어 이내로 설명해주세요.”

당시 미국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발표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특히 보스톤 지역 가톨릭 주교였던 윌리엄 헨리 오코넬은 그의 상대성이론을 ‘모호한 궤변’으로 ‘무신론의 흉악한 망령’이라고 조롱하였다.

 

 

 

 

 

“신은 세상의 규칙적 조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골드스타인은 보스톤뿐만 아니라 전 미국에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가톨릭교회의 주교의 화를 달래기 위해 특단의 처방전으로 아이슈타인에게 전보를 쳤다. 박해를 떠나 대거 뉴욕으로 이민한 유대인들은 유대인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아인슈타인의 입에서 직접 그가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사회 내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종교에 관해 전보 답장을 보냈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 그 신은 이 세상의 규칙적인 조화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들에 관심이 있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독일어로 전보 답신을 보낸 아인스타인은 25 단어로 간단히 대답하였다. 아인슈타인의 답은 간결하지만 함축적인 답변이었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였으며 과학자였던 스피노자를 언급하였다.

스피노자의 가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자신의 특별한 신관으로 암스테르담의 세파르디 유대인공동체에서 추방당한다.

 

스피노자는 전통적 유대교와 당시 암스테르담의 지배종교였던 칼뱅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무시하고 신은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는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그 만물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유지하는 내재적 신비라고 주장 하였다. 인간은 이 신비를 인식하기 위해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나 자연 안에서 숨겨진 신비를 경험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 친구들과 스피노자의 사상에 심취했고 심지어는 네덜란드 린스부르그 마을, 구두 수선 거리에 있는 스피노자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는 스피노자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다.

 

“내가 그 숭고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 나는 스피노자가 자신의 머리 위에 거룩한 후광을 입고 ‘홀로’ 앉아 있다고 생각해.”

스피노자는 일생을 ‘홀로’ 지낸 인물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복잡한 과거를 가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휩쓸던 종교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스도교로 개종한 ‘마라노스’(‘돼지들’이란의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유대교를 재건하고 있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자유로운 신관으로 유대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고, 다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느니 ‘종교’ 없이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당시 기술산업의 최고 인기 분야였던 ‘렌즈 깎기’로 돈을 벌면서 과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재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처럼 전통적인 신으로부터 위안을 얻거나 그 종교로부터 도덕적인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자연의 법칙은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교할 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하고 심오하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 탐구할수록 우리는 경외심에 가득 차고 우리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는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주에 있어서 신의 섭리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당대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것과는 달리, 아인슈타인은 더 운이 좋은 시대에 살았다. 아인슈타인은 1950년대부터 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살았다.

 

사람들이 점점 그의 종교관에 관심을 갖자, 그는 용감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종교와 그 핵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인간이 맹목적으로 동의하여 자신도 모르게 신‘ 념’으로 받아들이는 권위에 도전했다. 도전했다기보다 스스로 자신이 그 진리를 찾아 나섰다. 그는 과학에서처럼, 종교에서도 기존에 맹목적으로 수용된 아이디어, 이론, 모델 그리고 교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찾아나선 것이다.

 

 

사제 계급의 존재 가치를 부인했던 아인슈타인

 

 

1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경외와 존경심’이 모든 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2 스피노자는 초월적 신관을 거부하고 신은 만물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유지하는 ‘내재적 신비’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1930년에 미국 잡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종교와 과학’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하며 자신의 영적인 우주에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는 ‘우주적인 종교’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여 인간 심리의 새 단계를 추적하였다.

첫 단계는 ‘공포의 종교’다. 이 종교는 원시인들이 기아·야생동물·병·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의존하는 형태다. 그들은 이런 두려움이 ‘간절히 바라는’ 행위와 희생 제사 등 기도와 의례의 초창기 시도들에 의해 사라진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의 두 번째 단계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는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신에 대한 관념의 종교’이다. 인간은 신을 자신과 유사한 인간 형태로 만들어, 신이 인간처럼 감정을 지니게 만든다. 그 신인동형적인 신은 사제를 통해 소통하고, 도덕적 기준으로 인간들에게 상과 벌을 주는 존재다.

 

무엇보다 고통에 처한 인간을 위로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며, 생전에 신을 믿고 따른 자들에게는 영생을 허락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두 번째 단계의 종교를 ‘사춘기 종교’라고 부른다.

 

그가 원하는 세 번째, 그리고 궁극적인 종교경험의 단계에서는 인간이 자신이 처한 역사적 순간에서 나름대로 만든 교리를 넘어선다. 인간은 어느 종교에서나 이 교리를 신주 모시듯 간직하며 점차로 신을 이 교리 안에 감금시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태어나 생존이 가능하게 한 우주와 자연을 통해 신을 탐구한다.

이 신은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신’에 대한 도그마나 믿음을 통해 다가갈 수 없는 존재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우주적인 종교 감정’이라고 불렀고 성서의 예언자들과 다른 종교, 특히 불교의 가르침에서 그 예를 찾았다.

 

우주적 종교 감정은 아인슈타인의 반권위적인 본성과 일치했고, 그는 종교의 제2단계에 필수요소인 사제계급을 거절한다. 아인슈타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종교는 사제나 종교단체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가 되기를 권유하는 종교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라만상에 숨겨진 신비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는 종교집단의 권위가 필요 없다. 종교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이런 단계의 종교적 감정으로 충일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당시 종교인들에게 ‘이단’이란 낙인이 찍힌 자들이다. 이들은 그 당시 동료들에 의해 무신론자들로 혹은 성인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견해는 당시 신학자들을 화나게 했다. 당시 ‘미국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신부인 풀톤 신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가장 멍청한 넌센스’라고 조롱하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아인슈타인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반박문들을 실었다. 그러나 자숙하는 글들도 있었다. 사제와 유대 교회가 유대인들을 2500년 동안 지탱해온 젖줄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표현한 ‘경외와 존경심’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뉴욕유대교인스티튜트’의 랍비 나단 크라스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가 교파 안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모든 유대인은 인정해야만 한다”는 다소 혼돈스럽지만 새로운 종교 이해의 가능성을 열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유대인은 그의 견해를 부정했지만 신실한 유대인이라면 아인슈타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심오하게 종교적인 비종교인’의 고백은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신앙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아인슈타인은 1936년 뉴욕에 거주하는 한 개신교 어린아이의 편지를 공개하였다. 그 아이는 “과학자도 기도하나요?”라고 아인슈타인에게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기도에 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동문서답한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사람들이 부르고 싶은 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지는 못할 거야.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우주의 법칙은 거의 없어서 자연 안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법칙이 존재한 것이라는 믿음도 일종의 신앙이지. 앞으로 과학적 연구가 더 성공하면 이런 식의 설명이 정당화될 거야.”

 

그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천재적인 비유로 다시 설명한다.

“만일 어린아이가 많은 언어로 기록된 책들이 많은 도서관에 들어간다면 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은 누군가가 이 책들을 저술했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는 이 책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이 책들이 기록된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게 과학적 탐구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만일 그런 모든 것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했다면, 스피노자도 아인슈타인도 예언자나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유사한 정의를 내린 종교학자가 바로 독일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이다. 그는 1917년 <성스러움의 개념>이란 책을 저술한다. 이 책의 부제는 ‘신에 대한 개념의 비합리성과 그것이 가지는 합리성과 관계에 관하여’이다. 오토는 ‘성스러움’ 즉 ‘거룩’이라는 개념을 ‘누미노제’로 정의한다.

 

‘누미노제’는 비이성적이며 인간의 오감을 초월하여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오토의 ‘누미노제’는 라틴어 단어에서 ‘신적인 힘’을 의미하는 ‘누멘(numen)’에서 고안된 것이다. 인간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단계로, 인간에게 익숙한 경험을 통해 표현하는 은유나 직유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다.

 

 

인도 동부 휴양지 골든비치에 세워진 모래로 만든 예수의 거상. 예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위대한 삶’의 표상이다.

 

 

‘미스테리움’ 통해 ‘절대 타자’를 경험한다

 

우리가 신에 대해 표현하는 것들, 경전이나 교리는 기껏해야 은유다. 오토는 누미노제를 ‘신비(神秘)’라고 정의한다. 라틴어로 ‘미스테리움(mysterium)’이라 부르는 신비는 무엇보다도 독일어로 ‘das ganz Andere’, 번역하자면 ‘절대타자(絶對他者)’에 대한 경험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서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하면서도 압도적인 경험이다. 인간은 미스테리움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자신에게 생소한 전적인 타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종교 창시자들은 모두 이 경험을 통해 자기를 넘어 무아상태로 진입한다. 그래서 태어날 때 부여받는 자연적인 존재에서 그 누구하고도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된다. 자신의 의지를 통해 이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영적인 수련을 통해, 그 경지에 자연스럽게 입문한다.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빌리자면, 자신이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여 어마어마한 도서관에 있는 신기한 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그는 그 자신이 읽은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매료된다.

 

오토는 이 신비감이 인간에게 다음 두 가지 반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트러멘둠(tremendum)’이라 불리는 ‘전율(戰慄)’과 ‘파시노숨(fascinosum)’이라 불리는 ‘매력(魅力)’이다. 그 ‘전율’은 아마도 1969년 7월 20일 달에 첫발을 디딜 때의 닐 암스트롱이 느낀 감정과 같은 것이다. 암스트롱은 달에서 “신비는 경외심을 낳고 경외심은 인간이 알고자 하는 욕망의 기초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이 간직했던 세계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자신이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심오하면서도 기쁨으로 충만한 ‘경외심’으로 가득 찬다. 세상에서 닫아 놓았던 몸에 출구가 열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만물이 신비로 가득 차 신기하게만 보인다.

 

‘전율’은 또한 그것을 경험한 자를 겸손하게 만든다.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한 세계를 목격한 그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 덕목인 ‘겸손’을 배운다.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한 세계를 옳은 것으로 여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절감한다. ‘전율’을 경험한 자는 활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힘을 얻게 된다.

오감으로 느끼는 것마다 ‘경외’를 발견하여 ‘겸손’을 배우지만,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힘을 선사하게 된다. 이런 힘을 바로 ‘카리스마’라고 한다.

 

카리스마는 내가 자신의 존재를 권력이나 재력을 통해 조절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외’와 ‘겸손’을 경험한 자가 알게 모르게 체득하는 신의 알 수 없는 선물이다. 이 경험은 인간의 전적인 충성을 촉발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는데,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을 목숨까지 버리는 순교자가 될 만큼,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온 몸으로 느낀 자들이다.

 

절체절명의 미션 수행한 예수에게 무엇을 배웠는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면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절대 타자’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우리는 ‘성인’이라 부른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들의 인생도 우리의 인생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 아브라함 종교인 중의 한 명으로 기원전 13세기경 인물로 추정되는 모세는 당시 동료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40년간 중동의 미디안 사막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의 아들’로 추앙받는 예수는 1세기 이스라엘의 변방지역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나 서른 살까지 무명의 떠돌이 목수로 지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어떠한가? 그는 7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상업도시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났고, 5세에는 어머니마저 죽어 고아가 되었다.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는 어떻게 평범한 인간에서 출발하여, 그의 추종자들이 종교를 만들 만큼 카리스마를 지닌 위대한 인물이 되었을까?

라틴어 표현에 ‘코인키덴티아 옵포시토룸(coincidentia oppositorum)’ 즉 ‘상극 의 일치’이란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이 위대한 인물들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 서로 융합할 수 없는 두 개의 독특한 개체가 하나가 되어 상상하지도 못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주체가 된다.

 

예수는 30세부터 자신이 깨달은 우주의 신비와 경외심을 토대로 팔레스타인에서 3년 동안 동료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삶’에 대해 설교하였다.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 자신이 반드시 이뤄야 할 의무와 꿈을 확신하고 1세기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삶의 좌표를 제시하였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은, 예수에 관한 역사적이며 과학적인 평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에게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절체절명의 미션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예수 자신의 삶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위대한 질문들’이란 주제의 연재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위대한 예수의 질문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의 좌표를 확인하고 우리 내면에 감추어진 위대함을 예수의 삶과 견주어 찾아보자는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