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론의 해석체계에 관한 연구 *이주향(수원대)
[한글 요약]
음양오행론에 기대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문화의 중요한 현상이다. 사주팔자란 만세력에 의해 개인의 생일을 뽑은 것이다. 태양력이 태양의 운행주기에 맞춰 만든 달력이고, 태음력이 달의 운행주기에 맞춰 만든 달력이라면 만세력은 태양력과 태음력을 통합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력이 태양의 운행주기를 알기 위한 것이었고 태음력이 달의 운행주기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면, 만세력은 그와 같은 순환적인 운행주기를 항해하는 개개인을 형상화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일은 소위 “동양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지만, 정작 철학에서는 철학이 아닌 한갓 미신이라 치부해왔을 뿐,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까지 문제인지에 대해서 긍정적 논의를 해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음양오행론의 해석체계에 관한 한 연구>는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서 음양오행론이 해석되어온 배경을 분석하고 그 속에 들어있는 남성중심적 전체주의의 흔적을 찾아가는 연구다. 동양사회에서 의미생성의 중요한 원리가 된 음양오행론 속에서 시대의 질곡이 된 허위의식을 제거하고 긍정적 의미를 살려낼 수 있는 단초를 찾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주제분야 : 동양철학, 음양론, 문화철학
주 제 어 : 음양론, 오행, 사주, 상생과 상극, 관계론
1. 들어가며
“세대가… 남성과 여성의 이중성에 의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합되어 있다.” 1]
니체가 예술정신의 핵으로 삼았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동양사회에서는 양적인 것과 음적인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이 논의는 중심적인 논의라기보다 주변적이지만, 동양철학에서 음양론은 핵심적인 것이고 동양사회에서 음양론은 의미생성의 중요한 원리다. 음양론은 도(道) 다음으로 일반화된 개념으로 선진시대에 태동하여 진한초에 확립된 이론이다 2]
니체도 간파했듯이 생명이 탄생하는 원리에서 추론된 그 이론은 동양의학, 풍수, 날씨, 달력, 방위, 건축, 점술, 식단 등 우리 삶 구석구석에 자리매김되어 왔다. 당연히 문화전반에서 확인되고 활용되는 그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려졌듯이 음양론은 우주를 경외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자연과 우주를 설명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의 도를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발전한 것이지만 그 음양론의 원리가 신분사회를 정당화시켜주는 맥락에서 차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봉건제적 신분사회라는 중심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부장제라는 중심을 강화함으로써, 왕과 양반과 남자를 중심으로 놓고 신하와 평민과 여자를 중심을 떠받치는 존재로 놓음으로써 이들의 성격과 역할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이론으로 기능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까지 문제인가? 음양오행 속에서 시대의 질곡이 된 허위의식을 제거하고 음양오행의 긍정적 의미를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1]니체, 『 비극의 탄생』(니체전집 KGWⅢⅰ2), 이진우옮김, 책세상 2005, 29쪽.
2]이숙인, 「동양적 여성철학의 모색」, 『 철학과 현실』97년 여름호, 187쪽.
2. 오행(五行)의 성격
사실 음과 양은 상대적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그 자체 양, 그 자체 음인 것이 존재할까? 양이 양인 것은 음과의 관계 하에서이며, 음이 음인 것도 양과의 관계 하에서이다. 이것이 노자가 음양을 만물에 내재한 이면적인 성질로 읽었던 이유라 믿는다. 3]
양이 언제나 변함없이 양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 속에서도 음이 출현하며, 마찬가지로 음 속에서도 양이 출현한다. 이것이 사상이 되고 오행이 되어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음양에서 어떻게 오행이 나오나?
주지하다시피 오행은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다.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신화의 세계를 접고 철학의 세계를 연 밀레토스학파의 대답은 물이거나 불이거나 흙이거나 공기였다.
이들 원소들이 사실적인 의미라기보다 상징적인 의미이듯, 오행도 사실적인 의미라기보도 자연을 읽고 세계를 보는 일종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 중의 양은 불(火)이라 하고, 계절로는 여름이며 방위로는 남쪽이고 주작(朱雀)이 관장한다. 양속에서 출현한 음은 나무(木)라 하고, 계절로는 봄이며 방위로는 동쪽이고 청룡(靑龍)이 관장한다.
음 중의 음은 물(水)이라 하고, 계절로는 겨울이며 방위로는 북쪽이고 현무(玄武)가 관장한다. 음 속에서 출현한 양을 금이라 하고, 계절로는 가을이며 방위로는 서쪽이고 백호(白虎)가 관장한다.
음양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음양이 흙(土)이다. 토(土)는 계절로는 환절기이고, 방위의 기준점인 중앙을 상징한다.
양의 성격이 분명한 목화(木火), 음의 성격이 분명한 금수(金水), 그리고 양성(兩性)적인 토(土),4] 이 다섯 원소가 음양오행의 기본이다. 물론 하나인 우주에서 각각의 원소는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우주는 하나다.
물(水)이 초목을 살리고, 목(木)은 불의 에너지원이 되며, 대지(土)는 불(火)이 만든 거대한 생명의 어머니로 만물을 산출한다. 그리고 그 대지의 아이들(金)이 다시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을 낸다. 물은 나무를 살리고, 나무는 불을 살리고, 불은 흙을 살리고, 흙은 금을 살리고, 금은 물을 살리는 이것이 상생의 그림이다.
상극의 원리도 상생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상생관계를 한 발 먼저 건너가면 상극관계가 된다. 물은 불을 끄고, 불은 금을 녹이고, 금은 도끼가 되어 나무를 치고, 나무는 흙의 뿌리를 내려 흙의 영양분을 축내며, 흙은 물을 진흙탕으로 만든다. 원소 각각은 그 자체로는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모든 것은 돌고 돌 뿐, 어떤 한 곳으로 흘러들지도, 모이지도 않는다. 금을 녹이는 불은 금을 이기지만 물 앞에서는 꼼짝없이 기세가 꺾이며, 흙의 뿌리를 내려 흙의 영양분을 취하는 나무는 흙을 이기지만 자신을 치는 도끼에는 영락없이 무릎을 꿇는다. 어떠한 것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 세상은 상생으로도 돌지만 상극으로도 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순환한다.
3]노자, 『 도덕경』 42장,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기를 포함하며, 충기로 조화되어 있다.
4]기본적으로 토는 “조절이 목적이다. 무토(戊土)의 의미는 木火의 기운이 서로 충돌되지 않고 폭발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다.” 박주현, 『 天干地支』, 동학사 1997, 162쪽.
돌고 돌면서 변화를 만드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이 다섯 원소는 또한 각각 음양으로 나뉜다.
양(陽)적 성격을 갖는 나무를 갑(甲)목이라 하고, 음(陰)적 성격을 갖는 목을 을(乙)목이라 한다.
양(陽)적 성격을 갖는 불을 병(丙)화라 하고, 음(陰)적 성격을 갖는 화를 정(丁)화이라 한다.
양(陽)적 성격을 갖는 토(土)를 무(戊)토라 하고, 음(陰)적 성격을 갖는 토를 기(己)토라 한다.
양(陽)적 성격을 갖는 금을 경(庚)금이라 하고, 음(陰)적 성격을 갖는 금을 신(辛)금이라 한다.
양(陽)적 성격을 갖는 물을 임(壬)수라 하고, 음(陰)적 성격을 갖는 물을 계(癸)수라 한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이 열 가지 원소가 하늘의 형상이다. 하늘 형상답게 각각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 순수하다. 이를 10갑 혹은 천간(天干)이라고 한다.
이 글자들이 사주팔자, 여덟 글자 중에 하늘에 있는 네 글자를 이루는 글자들이다. 여덟글자 중 땅을 이루는 네 글자가 될 수 있는 글자들을 지지(地支)라 한다.
지지는 하늘 형상의 육화(incarnation)다. 우리가 그 육화를 잊게 되는 것은 거기에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寅)목은 갑(甲)목의 육화지만 인(寅)목 속엔 무(戊)토와 병(丙)화가 숨어 있다. 또 미(未)토는 기(己)토의 육화지만 거기엔 신(辛)금과 정(丁)화가 숨어 있다. 그 불순물을 우리를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무거움 추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간(天干)의 열 글자가 지지(地支)로 육화하면 12글자가 된다.
그것이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辛), 유(酉), 술(戌), 해(亥)다.
왜 열 글자가 열 두 글자가 되는가?
그것은 무(戊)토와 기(己)토가 각각 두 글자로 육화하기 때문이다. 토는 존재와 존재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를 환절기라고 해서 계절과 계절의 매개한다고 믿은 것이다. 봄과 여름 사이를 매개하는 토는 무(戊)토의 체화인 진(辰)토이며, 여름과 가을 사이를 매개하는 토는 기(己)토의 체화인 미(未)토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매개하는 토는 무(戊)토의 체화인 술(戌)토이며,겨울과 봄 사이를 매개하는 토는 기(己)토의 체화인 축(丑)다. 그래서 지지는 12글자가 되는 것이다.
지지가 열 두 글자인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지지도 열 글자였다면 공망(空亡)되는 글자가 없으니 천간의 글자와 지지의 글자가 짝을 바꿀 리 없다. 하늘도 감추지 않고 땅도 고뇌를 모르는 세상은 또 얼마나 단조로운 세상이 되었을까? 지지가 열 두 글자가 되니 짝이 맞지 않고, 남는 두 글자 때문에 세상은 오행의 세상은 변화무쌍해지는 것이다.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육화된 것이기 때문에 양은 양과 짝을 이루고, 음은 음과 짝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만세력의 변화의 수는 10×12÷2=60이다. 만세력의 수많은 간지들은 60갑자(甲子)의 순환 순서대로 나열된다.
만세력은 우리의 달력이므로, 그 달력 속에 무엇이 있는 지는 우리의 세계인식이다. 태양력은 태양의 운행주기에 맞춰 만든 달력이고, 태음력은 달의 운행주기에 맞춰 만든 달력이다.
사주팔자를 뽑는데 필수불가결한 만세력은 태양력과 태음력을 통합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력이 태양의 운행주기를 알기 위한 것이었고, 태음력이 달의 운행주기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면 만세력은 그와 같은 순환적인 운행주기를 항해하는 개개인을 형상화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다.
예를 들면 2006년 7월 28일 10시는 음력으로는 7월 4일 10시이고 이 시간은 그저 흘러갈 시간의 한 점이지만, 만세력에 따르면 그 시점은 병술(丙戌)년, 을미(乙未)월, 무오(戊午)일, 정사(丁巳)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06년 7월 28일 사시(巳時)에 태어난 아이는 죽는 날까지 병술(丙戌), 을미(乙未), 무오(戊午), 정사(丁巳)라는 여덟 글자의 세례를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사주(四柱) 팔자(八字)인 것은 네 기둥의 여덟글자이기 때문이고, 그 중의 일주(日柱)의 머리글자가 자신의 얼굴이고 나머지 글자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그 머리글자를 받쳐주기도 하고 해(害)하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태양력이 태양의 운행주기에 관심을 갖고, 태음력이 달의 운행주기에 관심을 가진 것 5]이라면 음양오행은 그 여덞 글자를 품은 인생이 이 세상을 어떻게 항해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한 아이에게 세상이 열린 시간의 낙인은 강렬하고도 질긴 연(緣)이어서 그 인생을 한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태양의 운행주기나 달의 운행주기 못지않게 각각의 인생은 자기만의 독특한 운행주기가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여덟 글자로 형상화되는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상장역사를 가지며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팔자대로 사는가? 도대체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결혼약속이 파기되고 윤달 결혼을 꺼리고, 오행(五行)이 상생하는 좋은 날에는 예식장 예약이 몰리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수천 년이 넘도록 전승되어온 우리 문화의 한 단면 속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생각한다. 정말 인간이 사주대로 사는 지 알 수는 없어도 사주팔자의 해석체계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만날 수 있다고.
5]김충섭, 『 메톤이 들려주는 달력이야기』, 자음과 모음 2005, 12쪽.
3. 음양(陰陽)에 붙은 유가적 이해
음양오행설을 이야기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남자는 양적인 존재고 여자는 음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자 사주가 지나치게 양(陽)적이거나, 남자 사주가 지나치게 음(陰)적이면 본성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리가 편하지 않아 신경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보자.
갑신(甲申)년, 정묘(丁卯)월, 갑오(甲午)일, 정묘(丁卯)시에 태어난 여자의 경우를 보자.
이 사주의 주인은 년주(年柱)에 앉아있는 신(申)금 때문에 목화통명격(木火通明格)은 되지 못하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목화(木火)를 이루고 있다. 이 사주의 주인이 여자일 경우, 금수(金水)가 기본인 여성의 본성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에 안에서 살림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서지만, 그렇게 바깥으로 자기자신을 풀어쓸 때도 신경증적인 요소는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남자는 바깥으로 뻗는 목화(木火)가 기본이고 여자는 안으로 수렴하는 금수(金水)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음양이 있다는 것, 그 중 양은 땅에 대해 하늘이고, 부드러운 것에 대해 강한 것이며, 정적인 것에 대해 동적인 것이라는 해석은 유가나 도가나 공통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유가에 오면 바로 양적인 것이 하늘이 높듯 존귀해지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존귀한 것이 있으면 천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땅인 것, 부드럽고 정적인 것은 그 자체로는 가치판단을 중지한 것이지만, 하늘이 하늘처럼 높고 존귀한 것의 상징이 되면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반면에 땅이, 땅처럼 낮은 것의 상징이 되면 낮은 땅은 섬겨야 하는 존재가 된다.
하늘이 높이 있는 자, 드러난 자, 지배자가 되면, 땅은 낮고 천한 자, 숨어있는 자, 복종해야 하는 자가 된다. 남자와 여자에 관한 한 양인 남자는 섬김을 받아야 하는 귀(貴)이고, 여자는 섬겨야 하는 천(賤)이다.
동양사회에서 지혜와 신비의 경전으로 알려진 ?주역?의 계사전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건곤(乾坤)이 정하여졌다. 낮은 것과 높은 곳이 진열되어 귀와 천이 자리를 잡았다. 동(動)과 정(靜)에 일정한 도리가 있어 강(剛)과 유(柔)가 판연하게 나뉘었다… 건의 법칙은 남자를 이루고 곤의 법칙은 여자를 이룬다” "
낮은 것과 높은 곳이 진열되어 귀와 천이 자리를 잡았다는데 무엇이 귀한 양이고 무엇이 천한 음인가?
가부장적 신분사회에서는 신하에 대해 왕이 양이지만, 상민에 대해서는 양반이 양이다. 여자에 대해서는 남자가 양이지만 남종에 대해서는 마님이 양이다.6]
이런 양태는 왕과 양반과 남자를 섬김을 받아야 하는 자로 드러내는 유교적인 봉건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질서는 왕에게는 충성을, 주인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순종을 강요하는 질서였던 것이다. 사실 신하 없는 왕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상민 없는 양반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여자 없는 남자가 가능할까? 존재하되 드러나 있지 않고, 없으면 안 되지만 천대받는 사람들, 그들이 음적이고 여성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렇다면 유가에서는 왜 이런 추론이 필요했을까? 유가는 전제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신분사회다. 나라가 왕의 나라이기 때문에 신하는 왕의 신하고, 백성은 왕의 백성이다. 여기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왕을 무너뜨리는 역모이고 왕에게 대항해서 일어나는 민란이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덕은 왕에 대한 충성이고 왕의 나라에 대한 충성이다. 그러니 충신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충성을 받아야 하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는 섬김을 받는 왕과 섬기는 신하의 유비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것이 가족 내에서는 부모와 자식, 상전과 종,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되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이 되는 것이다. 사실 ‘군신유의’나 ‘부자유친’, 그리고 ‘부부유별’은 그 자체로서는 상호적이고 이성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작동할 때는 이상하게도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가 된다. 예를 들면 ‘부부유별’은 여성에게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나 삼종도(三從道)가 되는 것이다.
이숙인에 따르면 “<춘추좌전>에는 부부의 별칭으로 항려(伉儷)가 나오는데 항려의 ‘항’에는 서로 대립적인 의미가 있다” 7]고 한다. 그러니까 부부는 ‘차이와 대립을 지닌 통일체’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이 부부가 ‘차이와 대립을 지닌 통일체’의 개념을 넘어 아내가 남편에게 일방적인 정절을 바치는 관계가 된 데에는 신분사회의 필연적 귀결인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있다.
그러면 귀한 양과 천한 음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했을까? 귀한 양인 남자와 천한 음인 여자가 지아비와 지어미로 만나면 그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는가? 음과 양은 상대적이고 대칭적인 개념인데 이상하게도 양인 남자는 음인 여자를 전적으로 품고 소유하고, 음인 여자는 양인 남자에게 전적으로 절개와 지조를 지켜야 한다. 이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서경덕의 사상에 오면 극에 달한다.
6]아들을 둔 양반가 며느리들이 만만치 않은 권리를 누렸음을 증거로 조선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는 주장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박용옥,[『조선여성사』 한국일보 사, 1975. 혹은 손직수, 「조선시대 여성교훈서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1. 참조
7]이숙인, 윗글, 194쪽.
"“양기는 완전하고 음기는 반이며, 양기는 충족하고 음기는 부족하며, 양성은 귀하고 음성은 천하다.” " 8]
상대적이고 대칭적인 개념인 음양이 조선중기에 오면 이면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완전한 ‘양’과, ‘반’이고 ‘부족’한 ‘음’이 된다. 그러니 완전한 양이 부족한 음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은 당연해지고 음의 영원한 꿈은 완전한 양으로 평가되는 아들을 낳는 것이다. 9]
‘반’이고 ‘부족’인 음은 존재자체가 결핍이기 때문에 얼굴을 싸가리기 전에는 바깥출입을 해서도 안 된다.
"“여자는 안에 거처할 뿐 아니라 깊숙한 내실의 문을 단단히 지키고 … 밖에 나가지 아니한다 … 바깥일에 관해 말하지 않고 … 문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그 얼굴을 싸서 가린다.” " 10]
사실 사주팔자에서 음양을 해석할 때는 양은 그 자체로 우월한 것이고, 음은 그 자체로는 열등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음양이 균형을 맞추고 있는 지, 글자와 글자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짜여져 있는 지, 필요한 글자가 운으로 들어오고 있는 지를 관찰한다. 그것은 음양오행이 유교 사회가 자리 잡히기 훨씬 이전에 생긴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자연법 사주학』에 나오는 균형잡힌 사주의 예다.
시 일 월 년
丙 甲 癸 己
寅 辰 酉 亥
"“甲 일주가 酉月에 태어나 金旺하니, 시주에 있는 병인을 용신으로 삼는다. 더욱 좋은 것은 월간(月干) 癸水가 丙火를 극하려 하나 연간의 己土가 癸水를 극해준 것이다. 또한 지지에서 일간(日干) 甲과 용신 丙의 뿌리인 寅이 金의 극을 받지 않고 옥토(沃土)에 심어져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용신이 튼튼하고 흉신을 제압한 명은 일생이 안락하다.” " 11]
용신은 편중된 글자들의 조화를 위해 활약하는 글자를 말하며 흉신은 그 반대다. 홍정은 용신을 병인으로 잡았지만 그것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유월(酉月)의 나무는 형체만 있을 뿐 뿌리가 약해, 저 사주의 주인은 화(火)를 용신으로 쓰기는 어렵다. 다만, 천간의 배열이 상생관계를 이루고 있어 병화가 대운에서 크게 힘을 얻게 되면 모를까 그 자체로는 크게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목(木)은 용신이 되고, 이 때 수(水)는 희신이 된다. 이렇게 볼 때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해석의 원리는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전체 사주의 해석에 있어서는 오행의 균형과 글자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8]서경덕, 『화담집』, 이배용, 「유교적 전통과 변형 속의 가족윤리와 여성의 지위」6쪽에서 재인용.
9]이배용,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 청년사 1999, 8쪽.
10]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율곡전서 5』 ISBN 1996, ‘율곡전서 23권, 성학집요5, 제3 正家 제6장 謹嚴.’
11]홍정, 『자연법 사주학』, 가교출판 2001, 56쪽.
그러나 남자의 사주를 해석하는 원리와 여자의 사주를 해석하는 원리에 오면 확실히 유교사회의 세례를 많이 받고 있다. 그 중요한 예가 재(財)와 관(官)에 관한 해석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재(財)가 부인이며, 재 중에서도 정재(正財) 12]가 안정적이다. 여자는 관(官)이 남편이며 관 중에서도 정관(正官) 13]이 안정적이다.
남자에게 제대로 된 아내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사주팔자 속에 재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여자에게 제대로 된 남편이 없다는 것은 사주팔자 속에 관에 궁핍하거나 과다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글자를 해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배경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남자의 여자인 재(財)는 ‘나’를 상징하는 일주의 천간이 극하는 글자다. 이것이 재물이 되기도 하는 것은 재물이란 근본적으로 싸워 승리한 이후 취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임(壬)수일 경우 천간의 경우는 병(丙)화나 정(丁)화가, 지지의 경우는 사화(巳火)나 오화(午火)가 재다. 물이 불을 끄기 때문에 불이 물을 당하지 못하는 이치다. 남자의 여자가 재(財)라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기고 불이 금을 이기듯 남자는 여자를 이겨야 한다는 가치관의 변형이다. 물론 적은 물은 많은 불을 감당하지 못한다. 약한 불은 금을 녹이지 못한다.
남자가 신왕(기가 강)하지 않으면 재가 든든할 수 없다. 신약한 사주에 재만 왕하면 자기 재물이 아니고,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해석한다. 그러니 재를 간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신왕하면서 재가 든든한 남자는 여자가 많아도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 남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룰 능력이 있는 남자이기 때문에 스캔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가치관의 바닥을 드러낸다.
12]재에는 정재와 편재(騙財)가 있다. 정재는 음양이 다르면서 일주의 천간이 극하는 글자이고, 편재는 음양이 같으면서 일주의 천간이 극하는 글자다.
13]관에도 정관과 편관(扁官)이 있다. 정관은 음양이 다르면서 일주의 천간을 극하는 글자이고, 편관은 같으면서 일주의 천간을 극하는 글자다.
여자의 경우는 남자와 다르게 해석한다. 여자의 남자는 재가 아니라 관이다. 관이란 ‘나’를 극하는 글자, ‘나’를 지배하는 글자, ‘나’를 치는 글자다. ‘나’를 상징하는 글자가 나무일 경우, 금이 남자가 되고, 내가 금일 경우는 불이 남자며, 내가 불일 경우는 물이 남자다.
나무는 도끼(金)에 찍혀 나가고, 금을 녹이는 용광로의 불이며, 불을 끄는 것은 물이라는 이미지다. 여기에 들어있는 것은 분명하다. 도끼가 나무를 가지치기 하듯, 용광로가 금을 녹여 칼을 만들듯, 물이 불길을 잡듯, 아내는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이 든든한 여자는 좋은 남자가 있다고 해석한다. 이 경우 신왕한 남자의 재운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가 많아도 건사할 능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남편이 있어 바람피울 일이 없다고 해석한다. 신왕한 사주에 관은 힘이 있어야 하지만 여자 사주에 관이 많거나 관살혼잡이고 도화살이라도 있으면 바람이 날 사주라고 해석하여 결혼을 꺼린다.
결혼을 꺼리는 여자 사주 중에는 상관(傷官)이 발달한 사주가 있다. 상관이란 본시 내가 낳은 글자 중에 음양이 다른 것이다.14] 처음에 제시한 예를 제대로 써보자.
시 일 월 년
丁 甲 丁 甲
卯 午 卯 申
위의 사주에서는 정(丁)화가 상관이며 상관이 아주 발달한 사주다. 더구나 상관이 힘 있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상관은 관을 해하는 글자다. 기가 강한 여자가 상관도 발달했으면 똑똑한 만큼 남자의 지배를 싫어해서 시집살이에 맞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상관이 왜 관(官)을 해(害)한다는 의미의 상관(傷官)인가?
내가 목일 경우, 금이 관인데 그 금이 내가 낳은 화에 의해 단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이 거센 불기운 때문에 힘을 얻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경우다. 당연히 상관이 강한 여자는 팔자가 세서 이혼을 하거나 결혼생활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라고 해석한다. 관을 치는 그녀는 남편을 치고 남편의 앞길을 막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관이 발달한 남자의 경우는 해석이 다르다. 상관이 발달한 남자는 여자의 뿌리가 든든하다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상관은 재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체계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분명하지만 그 해석체계가 보여주는 것이 있다. 남자는 지배하고 섬김을 받는 하늘이요, 여자는 지배를 당하고 섬기는 땅이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에 의해 섬김을 받아야 하는 남자는 그저 하늘인가? 남자의 하늘은 없는가?
남자의 관은 직업, 즉, 관직이나 조직생활이다. 물론 관이 어떤 오행이며 어떻게 짜여있는 지에 따라 품격은 다르다. 직업은 여자에게도 관이다. 남자든 여자든, 궁극적으로는 관이 발달해야 조직생활에 적합한 사주라 해석된다. ‘나’를 지배하는 관은 냉정하나 관이 발달한 사람은 그 냉정함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직은 조직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조직의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조직에 이길 수 없으며, 금이 용광로의 불에 단련되어야만 무기가 될 수 있듯이 조직의 쓴맛을 경험해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이 해석은 전체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까. 그 전체주의는 물론 정치적인 체제라기보다 사회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유교사회에서는 신분사회였다면,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매개가 되는 돈을 만들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14]음양이 같은 것은 식신이라 한다.
4. 결론: 관계 의미론으로서 음양오행
부성승계, 호주제, 성차별이 엄존하는 우리 사회는 많이 힘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가 힘을 갖는 사회다. 아직도 유교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의 정체성의 의미가 생산되는 주요 맥락” 15] 이며 그런 점에서 볼 때 사주팔자 해석의 배경에 유교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에서 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이 변화에 가부장적 전체주의의 전통은 사회의 질곡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주팔자 해석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요즘 들어서 여자 사주도 기본은 신왕한 것이 좋다거나, 여자 사주에 관이 없으면 재를 남편으로 본다거나 하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확실히 우리 사회가 야성평등의 사회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가부장제가 유지되기 힘든 상황인데도 남편은 지배하고 섬김 받아야 하는 하늘이고, 아내는 “천한 사람처럼 몸을 스스로 낮추고 뜻을 숙이고 오로지 순종함으로써 남편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16] 는 원리에서 음양오행을 해석한다면 그것은 여성에게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질곡이 된다.
15]허라금, 「유교와 페미니즘의 만남」 『철학과 현실』2000봄호,110쪽.
16]소혜왕후, 『내훈』부부장.
그러면 의미생성의 원리인 음과 양을 포기해야만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음양론에서 신분질서적인 가부장적 편향을 지워내면 음양론은 얼마나 유효한 개념인가. 모든 사물의 대립면이 있는 한 음과 양은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개념이고,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양과 음, 남성과 여성, 강함과 부드러움, 뜨거움과 차가움, 빛과 어두움(그림자), 이성과 감성, 아름다움과 추함, 문명과 자연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들의 매력은 단순한 대립에 있지 않다. 서로 대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는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대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대대는 ‘for'와 ‘against’라는 ‘pro-corn'의 개념이다. 곧 상대하고 반대하는 대(對)요, 대접하고 대우하는 대(待)다. 이는 곧 음과 양의 이분법적인 ‘대(對)’의 개념이요, 음과 양이 ‘대(待)’의 혼합으로 만물을 회생시키는 개념이다. 대대는 다름 아닌 이러한 상보적인 음양의 관계작용을 말한다.” " 17]
음과 양은 대립적이지만 서로는 선택이나 결단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보적인 존재다. 노자에 따르면 유와 무, 어렵고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음(音)과 성(聲), 전과 후는 서로의 존재 근거다.18]
음양은 완전히 다른 실체가 아니라 서로는 서로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양이 지극한데서 음이 나오고, 음이 지극한데서 양이 출현한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음 중의 음인 수(水) 기운이 가장 왕성한 동지날에 일양(一陽)이 싹튼다고 하고, 반대로 양중의 양인 화(火) 기운이 가장 왕성한 하지날에 일음(一陰)이 싹튼다고 한다. 그러니까 음과 양은 각각이 실체인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해 있는 하나의 실체인 셈이다. 물론 그 실체는 살아있는 실체다. 그것은, 노자의 ‘도(道)’나 불가의 ‘공(空)’을 실체의 개념으로 고정화할 수 없는 것처럼 고정적인 부동의 실체로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음양오행론에서는 어떤 것도 배타적으로 실체적인 본질을 갖지 않고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이러한 음양오행론의 해석체계가 겨우 학운, 결혼운, 직업운, 재물운, 명예운을 점쳐주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신비의 이름으로 물질만능주의의 세계를 옹호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재색신명수(財色身名壽)를 쫒아가는 중생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일 뿐이다. 차라리 모든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고통과 상실의 경험도 우리가 품어야 할 인생수업이라고 인지하는 태도가 훨씬 성숙한 것이 아닐까. 팔자 해석이나 신기의 지향점이 부나 권력, 혹은 명예가 모이는 삶이라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헛되고 기만적인 가치들이 지배하는 현실일 뿐이다.
필자는 사주팔자로 길흉화복을 예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19]
그러나 점술 뿐 아니라 동양의학, 풍수, 건축, 달력 심지어 우리의 밥상에까지 자리 잡고 있는 음양오행은 그렇게 허술하지도, 무의미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음양오행을 이루는 글자 중에는 그 자체로 중심인 글자, 그 자체로 주변인 글자는 없다. 금은 물을 살리고 물은 나무를 살리고 나무는 불을 살리고 불은 흙은 살리고 흙은 금을 살린다. 모든 것은 돌고 돌 뿐 중심을 향해 모이지 않는다. 물론 함께 존재함으로써 도움이 되는 상생의 글자도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함께 있음으로 해를 끼치는 상극의 글자도 언제나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은 불을 극하고 불은 금을 극하고 금은 나무를 극하고 나무는 흙을 극하고 흙은 물을 극한다. 극의 관계에서도 모든 것은 돌고 돌 뿐 거기에 제왕은 없다. 어느 것도 독자적인 본질을 배타적으로 갖지 않고, 다른 것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음양오행론은 중심을 부정하는 관계론의 중요한 의미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7] 강신표, 『한국문화연구』 현암사, 49쪽.
18] 『도덕경』, 제2장.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恒也”
19] 왜냐하면 그 점을 검증할 방법도, 반증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신왕한 사주에 비겁운이기 때문에 취직하기가 어렵다 ’든가, ‘남자사주 속에 재가 부족하고 인성운이니 이혼할 수밖에 없겠다’라는 말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설혹 당사자가 취직되지 않고 이혼했더라도 그 자체는 검증된 것도, 반증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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