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외편) 선성

rainbow3 2019. 10. 16. 11:44


♣ 장자(외편) 선성 1 - 속된 학문과 지혜로는 본성을 기를 수 없다

 

통속적인 학문으로 본성을 닦아 그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통속적인 생각으로 욕망을 다스려 그의 밝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몽매한 백성이라 한다.

옛날의 도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욕심을 끊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지혜를 길렀다. 나면서부터 지혜로써 행동하는 일이 없었으니, 그를 두고서 지혜로써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을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지혜와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이 서로를 길러줌으로써 조화와 이치가 그의 본성에 생겨나는 것이다.

덕이란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도란 이치에 맞는 것이다. 덕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것이 어짊이다. 도가 모두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 의로움이다. 의로움이 밝음으로써 사물과 친근하게 되는 것이 충실함이다. 속마음이 순수하고 충실하여 그 성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음악이다. 자기 몸이 행하는 대로 맡겨 두고도 절도에 알맞게 따르게 되는 것이 예의이다.

그런데 예의와 음악이 한곳에 치우쳐 행해지면 곧 천하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남을 바로잡아주려 하면서도 자기의 덕을 어둡게 만드는데, 덕이란 물건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가리게 되면 물건은 반드시 그의 본성을 잃게 된다.

 

 

♣ 장자(외편) 선성 2 - 인위적인 지혜로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옛날 사람들은 혼돈하여 어두운 가운데 온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담백하고도 적막한 생활을 했다. 그 때는 음양이 조화되어 고요했고, 귀신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사계절은 절도에 맞았고, 만물은 훼손됨이 없었으며, 모든 생물은 일찍 죽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은 비록 지혜를 가졌다 해도 쓸 곳이 없었다. 이것을 지극한 통일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 때에는 일부러 하는 일이란 없이 언제나 자연스러웠다.

덕이 쇠퇴하자 수인과 복희가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연을 따르기는 했지만 통하여 하나가 되지는 않았다. 덕이 더 쇠퇴하자 신농과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래서 안락하기는 하였지만 자연을 따르지는 않게 되었다. 덕이 더 쇠퇴하자 요와 순이 세상을 다스렸다. 정치와 교화의 나쁜 풍속을 일으켰고, 순진함이 없어지고 소박함이 사라졌으며, 선을 위해 도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했고, 덕을 저버리고 행동하게 했다. 그렇게 된 뒤에는 사람의 본성을 버리고 자기 마음을 따르게 되었다. 마음과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펴 알았으나 천하를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 뒤에 문채를 거기에 더해졌고, 넓은 지식을 더했다. 문채란 본질을 멸실케 하고, 넓은 지식은 마음을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뒤에는 백성들이 미혹되어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그들의 본성과 진실로 되돌아가거나 그들의 원래상태로 복귀할 수가 없게 되었다.

 

 

♣ 장자(외편) 선성 3 - 세상을 떠나 몸을 보존하며 때를 기다린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은 도를 잃었고, 도는 세상을 잃었다. 세상과 도가 서로를 잃었던 것이다. 그러니 도를 닦는 사람인들 무슨 수로 세상을 일으키겠으며, 세상 역시 무슨 수로 도를 일으키겠는가?

도는 세상에 일어날 수 없고, 세상은 도를 따라 일어날 수 없으니, 비록 성인이 산 속에 숨어 있지 않다 해도 그의 덕은 숨겨지는 것이다.

덕이 숨겨진다는 것은 성인 스스로가 덕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옛날의 숨어 있는 선비라는 사람들은 그의 몸을 감추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입을 닫고서 말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혜를 감추어 두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시대의 운명이 그와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운명이 들어맞아 크게 자기 뜻을 전하여 폈다면 백성을 옛날의 지극한 통일로 되돌려 놓되 자기의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의 운명이 들어맞지 않아 자기가 천하에서 크게 궁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자신의 본성을 깊이 간직하고 자기의 운명을 편안히 받아들이면서 때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인 것이다.

 

 

♣ 장자(외편) 선성 4 - 본성을 버리고 인위적인 것만 추구하여 혼란에 빠진다

 

옛날 몸을 보존하던 사람들은 변설로 지혜를 꾸미지 않았고, 지혜로 천하의 일을 다 밝혀 알려 하지 않았으며, 지혜로 덕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의 본성으로 돌아갔으니, 자기가 또 무슨 일을 인위적으로 하였겠는가?

도란 본래 행동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덕이란 본래 지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지식이란 덕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작은 행동이란 도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올바르게 할 따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즐거움이 완전해지는데 그것을 뜻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옛날의 뜻을 얻었던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지금의 뜻을 얻은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은 것을 두고 말한다. 높은 벼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자기의 본성이나 운명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물건이 갑자기 와서 자기에게 붙은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에게 붙은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그것이 떠나는 것을 붙들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하여 뜻을 방자히 두지 않고, 곤궁하다 해도 세속을 쫓지 않아야 한다. 그 즐거움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을 것이다.

자기에게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면 즐겁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것을 보면 비록 즐긴다 해도 전혀 마음은 본성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건에 의해 자기를 잃게 되고, 세속 때문에 본성을 잃는 것을 두고 근본과 말단을 거꾸로 하는 백성들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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