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외편) 지락 1 - 절대적인 가치란 없는 것이다
천하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자기 몸을 잘 살리는 길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몸담아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 나가야 하고, 무엇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가? 무엇을 즐거워해야 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중하는 것은 부귀와 장수와 명예이다.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몸의 안락과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옷과 좋은 빛깔과 음악 같은 것들이다.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은 빈천과 일찍 죽는 것과 비난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괴롭게 여기는 것은 몸이 편안하지 않은 것과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과 아름다운 옷을 걸치지 못하는 것과 좋은 빛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들을 얻지 못하게 되면 크게 근심하며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육체만을 위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짓이다. 부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면서 애써서 일하여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도 다 쓰지 못한다. 이것은 그의 육체만을 위한 것이니 원리에 벗어난 짓이다.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여 일이 잘 되고 잘못 되는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니 원리로부터 멀리 벗어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근심과 더불어 태어나는 것이다. 장수한다고 해도 정신이 희미한 채 오래도록 근심하며 죽지 않는 것이니 얼마나 그것이 괴로울 것인가? 이것은 그의 육신만을 위한 때문이니 원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이다.
열사들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그의 몸을 잘 살리지는 못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훌륭함이 정말로 훌륭한 것인지 훌륭하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훌륭하다고 하자니 그의 몸도 살리지 못한 것이어서 안 될 일이고, 훌륭하지 않다고 하자니 남은 잘 살려줄 수 있으니 또한 안될 일이다.
그러므로「충실히 간해도 듣지 않을 때에는 눈치껏 물러서야지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자서는 임금과 다투다가 그의 육신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다투지 않았다면 명성이 이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훌륭한 것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 장자(외편) 지락 2 - 지극한 명예는 명예를 초월하는데 있다
지금 세속에서 하는 짓이나 즐기는 것을 보아도 그 즐거움이 정말 즐거움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세속에서 즐기는 것을 관찰한 바로는 모두가 무리 지어 나가면서 꼭 해야할 말, 안하고는 못 배길 일처럼 하면서 모두가 즐겁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즐거운 것인지, 즐겁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과연 즐거움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나는 무위야말로 진실한 즐거움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그것을 크게 괴로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지극한 즐거움이란 즐거움을 초월하는데 있고, 지극한 명예란 명예를 초월하는데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정말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위만은 옳고 그름의 판단에 단정을 내릴 수가 있다. 지극한 즐거움과 몸을 살려주는 길은 오직 무위에 있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맑다. 땅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안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두 가지 무위가 서로 합쳐져 만물 모두가 변화하는 것이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형체를 알 수가 없다. 만물이 번성하고 있지만 모두가 무위로부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무위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으로 그 누가 무위할 수 있겠는가?
♣ 장자(외편) 지락 3 - 죽음이란 자연의 변화에 불과하다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상하러 갔다.
장자는 그 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그 분과 함께 살았고, 자식을 길렀으며, 함께 늙었다.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은 안하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녀가 죽고서 처음에는 나라고 어찌 슬픔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생각해 보니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었고, 삶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조차 없었으며, 형체만이 아니라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흐리멍덩한 사이에 섞여 있었으나 그것이 변화하여 기운이 있게 되었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으며,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아내가 또 변화하여 죽어간 것이다.
이것은 봄·가을과 여름·겨울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다.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이라는 거대한 방 속에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소리내어 그의 죽음을 따라 곡을 한다면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짓이라 스스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곡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 장자(외편) 지락 4 - 죽고 사는 것은 밤과 낮과 같다
지리숙과 활개숙이 명백의 언덕과 곤륜산 봉우리 같은 황제가 전에 노닐다 쉬던 곳을 구경갔다. 그런데 갑자기 활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혹이 생겨 그는 마음속으로 놀라면서 언짢게 생각하는 듯 했다.
지리숙이 말했다.
“자네는 그것이 언짢은가?”
활개숙이 대답했다.
“아닐세, 내가 어찌 언짢게 생각하겠는가? 무엇이 생겨나려면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하네. 무엇이건 힘을 빌려야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 생겨난다는 것은 먼지나 때가 묻는 것과 같고. 죽고 사는 것은 밤과 낮이나 같네. 나와 자네는 그런 변화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변화가 나에게 미친 것이네. 내 어찌 무엇을 언짢게 생각하겠는가?”
♣ 장자(외편) 지락 5 -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다
장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앙상한 해골을 보았는데, 바싹 말라 겨우 형체만이 남아 있었다.
장자가 말채찍으로 해골을 두드리며 해골에게 물었다.
“그대는 삶을 탐하여 이치를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망치는 일을 하여 처형을 당해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선하지 못한 행동을 함으로써 부모처자에게까지 치욕을 남겨주게 될까 두려워 이렇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헐벗고 굶주려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리고는 해골을 끌어다 베고 누워 잤다.
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한 얘기는 변사와 같은 말이었다. 당신이 말한 것은 모두가 살아 있는 사람의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죽어 버리면 그런 것이 없다. 당신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해골이 말했다.
“죽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위로는 임금이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다. 대범히 하늘과 땅을 봄과 가을로 삼고 있다. 비록 임금 노릇이 즐겁다지만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
장자가 그것을 믿지 않고 말했다.
“내가 사람의 목숨을 주관하는 신에게 부탁하여 당신의 육체를 만들게 하고 당신의 뼈와 살과 살갗을 갖추게 해서 당신의 부모처자와 마을 사람과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내 주도록 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해골은 심하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어찌 이 즐거움을 버리고서 다시 산 사람의 고생스러움으로 돌아가겠는가?”
♣ 장자(외편) 지락 6 - 본성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가 걱정하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자공이 자리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옛날 관자가 한 말 중에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고,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운명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고, 형체에는 적절히 맞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안연은 제나라 임금에게 가서 요순과 황제의 도를 얘기하며, 수인과 신농의 말을 강조할 것이지만, 제나라 임금은 마음 속으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아도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못하면 안연에게 의혹을 품을 것이고, 의혹을 품으면 안연을 죽이고 말 것이다.
너는 이런 얘기를 듣지 못하였느냐?
옛날에 어떤 새가 노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았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인 자기를 양육하는 방법으로 새를 양육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그 새를 기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가 살던 곳에 살게 하고, 호숫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아먹게 하고,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해야만 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 듣기 싫어하건만 어떻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디겠느냐? 함지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한다면, 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나 버리고, 물고기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깊숙이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사람들만이 그것을 들으면 흥이 나서 서로 모여들어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 속에 들어가면 죽어 버린다. 이 둘은 서로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옛날 성인들은 그들의 능력을 같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할 일을 같게 맡기지 않았다.
이름은 사실을 근거로 하고, 법도는 모두 본성에 어울리도록 설정했다. 그래서 그것을 조리가 통달하고 행복이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장자(외편) 지락 7 - 나고 죽는 변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열자가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마침 백년은 된 듯 한 해골을 보고서 쑥대를 뽑아 가지고 해골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직 나와 그대만이 진정한 죽음도 없고, 진정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죽어 있는 그대는 슬픈 것인가? 살아 있는 나는 기쁜 것인가?
여러 가지 물건은 각기 생겨난 기틀이 있다. 물을 만나면 물때가 되고, 물에 젖은 흙 사이에 있게 되면 푸른 이끼가 되며, 언덕 위에 나면 질경이가 된다. 질경이가 썩은 흙을 만나면 오족이 된다. 뿌리는 굼벵이가 되며, 그 잎새는 나비가 된다. 나비는 변화하여 벌레가 되는데, 아궁이 밑에 생겨날 때에는 매미껍질 같은데 그 이름을 구철이라 한다. 이 구철이 천 날이 지나면 변화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건여골이라 한다. 건여골이 밷는 침이 사미라는 벌레가 되고, 사미는 식혜가 된다. 이노라는 벌레는 식혜에서 생겨난다. 황황이라는 벌레는 구유에서 생겨나고, 구유는 무예에서 생겨나며, 무예는 부권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양해라는 풀은 죽순이 나지 않는 오래된 대와 합치어서 청녕이란 벌레를 낳는데, 청녕이 표범을 낳고, 표범이 말을 낳고, 말이 사람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또 변화의 오묘한 기틀로 들어가 변화한다. 만물은 모두 변화의 기틀에서 생겨나서, 모두가 변화의 기틀에 의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