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외편) 천운

rainbow3 2019. 10. 16. 11:15


♣ 장자(외편) 천운 1 - 상황이란

 

“하늘은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땅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은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인가? 누가 이것들을 주관하는가? 누가 이것들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가? 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들을 밀어 그렇게 되게 하는가?

땅은 틀로 묶여 있어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가? 하늘은 움직이며 돌아서 스스로 멈출 수도 없게 되어 있는 것인가? 구름이 비를 오게 하는가? 비가 구름을 만드는가? 누가 구름이 일고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재미로 그렇게 추진하는가? 바람은 북쪽에서 생겨나서 서쪽으로 불었다 동쪽으로 불었다 하기도 하며, 위쪽으로 불면서 빙빙 돌기도 한다. 누가 바람을 불고 마시고 하는 것일까? 누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바람을 부채질하는가? 왜 그런지 알고 싶다.”

무함이 말했다.

“내가 말해드리지요. 하늘에는 육극(六極)과 오상(五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왕이 이것을 따르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이것을 거스르면 흉해지는 것입니다. 구주(九疇)와 낙서(洛書)에 기록된 것을 보면, 정치가 완성되고 덕이 갖추어지면 온 세상을 햇볕처럼 비추게 되어, 세상사람들은 그 임금을 떠받들게 되는데, 이런 분을 상황(上皇)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2 - 지극한 어짊에는 친함이 없다

 

상나라 태재인 탕이 장자에게 어짊에 대해서 물었다.

장자가 말했다.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것이 어짊입니다.”

탕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아비와 새끼가 서로 친한데 어찌 어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탕이 말했다.

“지극한 어짊은 어떤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지극한 어짊에는 친함이 없습니다.”

탕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친함이 없다면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효성스러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극한 어짊은 효성스럽지 않은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한 어짊이란 고상한 것이어서 효성으로 그것을 말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이 효성보다 뛰어난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효성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쪽으로 가는 사람이 영땅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보면 명산(冥山)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멀리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공경함으로 효도를 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으로 효도를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잊는 것은 쉽지만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기는 쉽지만 천하를 모두 잊기는 어렵다. 천하를 모두 잊는 것은 쉽지만 천하로 하여금 나를 모두 잊게 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덕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잊고 그들이 한 것과 같은 일도 하지 않고, 이익과 은혜와 혜택이 오래도록 베풀어지게 하는데도 천하에서는 그를 알아주지 않는데, 어찌 크게 한숨지으며 어짊과 효성만을 얘기하겠습니까? 효도와 공경과 어짊과 의로움이나 충성과 신용과 정절과 청렴 같은 것은 모두가 스스로 힘씀으로써 자기의 덕을 부려먹는 것들이어서 존귀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존귀한 사람은 나라의 벼슬도 버리고, 지극한 부자는 나라의 재물도 물리치고, 지극한 소망을 얻은 사람은 명예도 물리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3 - 어리석기 때문에 도를 터득하게 된다

 

북문성이 황제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는 함지의 음악을 동정의 들에서 연주하셨는데, 저는 처음 듣고는 두려움을 느꼈고, 다시 듣고는 권태를 느꼈고, 마지막으로 듣고는 미혹되어 버렸습니다. 밋밋하고 멍멍해서 스스로를 어쩔 수도 없었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나는 음악을 연주함에는 사람을 따르고, 악기를 연주함에는 하늘을 따르고, 음악을 진행시킴에는 예의를 따르고, 음악을 조화시킴에는 하늘의 지극한 도를 따릅니다. 이른바 지극한 음악이라는 것은 먼저 사람의 일로 거기에 호응하고, 하늘의 도리로 거기에 따르고, 다섯 가지 덕으로 그것을 진행시키며, 자연으로 거기에 호응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사계절을 고르게 다스리고 만물을 크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계절이 바뀌고 만물이 바뀌어 생겨나듯이, 한번 성했다 한번 쇠했다 하면서 문무로써 조리 있게 다스리고, 한번은 맑게 한번은 흐리게 음양으로 조화시켜 그 소리가 널리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천둥소리가 그들을 놀라게 하듯이 나는 자연을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꼬리가 없고, 그 시작에는 머리가 없습니다. 한번은 죽었다 한번은 살았다 하며, 한 번은 넘어졌다 한 번은 일어나듯이 하며 연주를 합니다. 그 변화는 무궁해서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래서 두려웠을 것입니다.

나는 또한 음양의 조화로써 그것을 연주하고, 해와 달의 밝음으로써 그것을 밝힙니다. 그래서 그 소리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억세기도 한 것입니다.

변화는 한결같이 가지런하여 옛 법도만을 위주로 하지는 않습니다. 골짜기에서는 골짜기에 가득 차고, 굴속에서는 굴속에 가득 찹니다. 마음의 빈틈을 막아주고 정신을 지켜주며 물건에 따라 양을 변화시킵니다. 그 소리는 넓게 진동하고, 그 이름은 높고 맑음이라 할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그 그윽함을 지키고, 해와 달과 별들은 그 법도에 따라 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궁극에 머물러 있게 하고, 정지 없는 상태로 흘러가게 합니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무심히 사방으로 트인 길에 서서 금에 몸을 기대고 읊조려 보십시오. 눈과 지혜는 보고자 하는 데서 막히게 될 것이며, 능력은 뒤쫓으려 하는 데서 다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형체가 공허한 세계로 채워지며 마음이 부드럽게 되었기 때문에 권태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는 또한 음악을 연주함에 있어서 권태로움이 없는 소리를 사용하였고, 그것을 조화시킴에 있어서 자연의 생명으로써 했습니다. 그러므로 뒤섞여 한꺼번에 생겨나는 듯 했고, 음악이 고조되자 아무런 형체도 없는 듯이 되었습니다. 널리 진동하여 퍼지며 멈추지 않고 흐릿해져서 소리가 없는 듯이 되었습니다. 방향도 없는 곳으로 움직이고, 아득한 곳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죽은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있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혹은 열매가 열린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혹은 꽃만 핀 듯이 생각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움직이며 흐르고 흩어지며 옮겨가서 일정한 소리를 위주로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의심하고 성인들에게 물어보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란 진실에 통달하고 운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기틀은 움직여지지 않아도 오관(五官)은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하늘의 음악이라 하는데,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염씨가 기리어 말했습니다.

「그것을 들어보아도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것을 보아도 그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과 땅에 가득 차고 천지사방을 포용한다」

당신이 그것을 들으려해도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니, 그래서 미혹되었던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두려움 때문에 재난을 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그 다음에는 권태로움으로써 그것을 계속합니다. 권태롭기 때문에 모든 의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미혹됨으로써 음악을 끝내는 것이니, 미혹되기 때문에 어리석은 듯 모든 것을 잊습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도를 터득하게 됩니다. 도를 터득하면 모든 것을 거기에 싣고서 도와 더불어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4 - 처지와 시대에 맞아야 한다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안연이 사금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이번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님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안연이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사금이 말했다.

 “무당이 쓰는 개허수아비는 귀신 앞에 진열되기 전에는 상자에 담겨 무늬를 수놓은 보자기에 싸여집니다. 시동과 축관은 제계를 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치고 난 다음에는 길가는 사람들이 그 머리와 등을 짓밟고, 풀 베는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다시 그것을 가져다가 상자에 담고 무늬가 수놓인 보자기에 싸놓고 그 곁에서 자고 눕고 한다면, 그가 악몽을 꾸게 되거나 자주 가위에 눌리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의 선생님은 옛 임금들이 이미 사용한 개허수아비를 가져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함께 그 곁에 지내면서 자고 눕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넘기는 협박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국까지 지우며 다녀야 할 정도로 쫓기며 두 나라에서 궁지에 몰렸었습니다.  이것이 악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하여 칠일동안이나 익힌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음과 삶 사이에서 지냈습니다. 이것이 가위눌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 위를 여행하기에는 배를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땅 위를 여행하는 데는 수레를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배로 물 위를 여행할 수 있다고 해서 땅 위에서도 배를 저어가려 한다면 평생을 가도 얼마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이나 육지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나 수레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육지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힘들기만 하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들은 방향이 없는 작용이 사물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궁지에 몰리는 일이 없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두레박틀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끌어올리면 내려가고 놓으면 올라갑니다. 그것은 사람이 끌어당기는 것이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려가든 올라가든 사람에게 책잡히지 않습니다.

삼황오제의 예의와 법도는 모두 공통됨을 숭상하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숭상했습니다. 그러니 삼황오제의 예의와 법도를 비유로 들면 마치 돌배와 배와 귤과 유자나 같은 것입니다. 그 맛은 모두 틀리지만 모두가 입에 넣으면 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서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주공의 옷을 입혀준다면 원숭이는 반드시 물어뜯고 찢어발겨 모두 벗어야 만족을 할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보면 마치 원숭이가 주공과는 다른 것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서시가 가슴이 아파서 그의 동네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자, 그 동네에 사는 못난 여자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 생각하고는 돌아와서 자기도 역시 가슴에 두 손을 얹고서 남이 보는 데서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마을의 부자는 그를 보고는 문을 굳게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처자를 거느리고 다른 고장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아름다운 얼굴에 찌푸림이 있음만을 알았지 찌푸린 얼굴이 아름다운 이유는 몰랐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의 선생님도 이와 같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5 - 명예란 공용의 기구와 같다

 

공자가 나이 쉰한살이 되도록 도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남쪽 패땅으로 노자를 찾아갔다.

노자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을 북방의 현자라고들 하던데 선생님께서도 도를 터득하고 계시겠군요.”

공자가 말했다.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도를 구하려 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는 도를 음양의 변화에서 구해보려 하였으나 십이 년이 지나도록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렇겠지요. 도를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임금에게 바칠 것입니다. 도를 가져다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부모에게 갖다 드릴 것입니다. 도를 일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형제들에게 일러줄 것입니다. 도를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자손들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마음속에 도의 주인이 될만한 것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밖이 올바르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밖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성인은 그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 주인노릇을 할 만한 것이 없으면 성인은 그것에 따르지 않습니다.

명예란 공용의 기구와 같은 것이어서 혼자 많이 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짊과 의로움은 임금의 여관과 같은 것이어서, 단지 하루저녁 묵는 것은 괜찮겠지만 오래 묵어 있을 곳은 못됩니다. 오래 머물러 있으면 책망만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옛날의 지극한 사람은 어짊을 가는 길로 삼고, 의로움을 숙소로 삼아 몸을 기탁함으로써 소요하는 고장에 노닐었습니다. 그는 자기 먹을 정도의 것만이 생산되는 땅을 지니고, 먹고 남을 것이 없는 정도의 채소밭만을 가꾸었습니다.

소요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먹을 것만을 생산한다는 것은 몸을 보양하기 쉬움을 뜻합니다. 먹고 남는 것이 없을 정도란 남에게 내놓지도 않음을 뜻합니다. 옛날에는 이것을「참됨을 취하는 노닒」이라 불렀습니다.

부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재산을 사양하지 못하며, 출세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명예를 양보하지 못하고, 권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남에게 권력을 맡기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자니 두렵고, 그것들을 버리자니 슬퍼질 것입니다.

전혀 도에 대해 살핀 것이 없어서 언제나 쉬지 않고 변동하는 것들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하늘의 벌을 받을 백성들인 것입니다.

원한·은혜·취하는 것·주는 것·간하는 것·가르치는 것·살리는 것·죽이는 것의 여덟 가지는 일을 바로잡는 기구입니다. 오직 위대한 변화를 따라서 막히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하려면 자신부터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6 - 인위적인 행동은 결과가 좋지 않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서 어짊과 의로움에 대해 물었다.

노자가 말했다.

“겨가 눈에 들어가면 곧 하늘과 땅과 사방의 위치를 혼동하게 됩니다. 모기가 살갗을 물면 밤새도록 잠을 못 잡니다. 어짊과 의로움이란 잔인한 것이어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이보다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소박함을 잃게 하지 마십시오. 선생께서 바람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모든 덕이 아울러 처신하게 될 것입니다. 어찌 애쓰면서 큰북을 짊어지고 두드리고 다니면서 잃은 자식을 찾듯 지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백조는 매일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물을 들이지 않아도 검습니다. 검고 흰 소박한 바탕은 좋고 나쁨을 따질 것이 못됩니다. 명예라는 겉모양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샘물이 마르면 그 곳에 사는 물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모여 서로 물을 뿜어주고 침으로 적셔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물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장자(외편) 천운 7 - 인위로 다스림은 다스리지 않음만 못하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고 돌아와 사흘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노자를 만나서 무엇을 가르쳐주려 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제야 용을 본 것 같다. 용은 합쳐지면 훌륭한 몸을 이루고, 흩어지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다.  구름의 기운을 타고 다니며 음양 속을 날아다닌다. 나는 입이 벌어져 다물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노자에게 가르쳐줄 수 있었겠느냐.”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 중에는 본시 시체처럼 있다가도 용처럼 나타나고, 천둥 소리를 내다가도 심연 같은 침묵을 지키고, 활동이 하늘과 땅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도 그 분을 뵐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공자의 주선으로 자공이 노자를 만났다. 노자는 대청에 앉아 있다가 마중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미 다 늙어버렸는데 내게 무엇을 얘기해주려 하십니까?”

자공이 말했다.

“삼황과 오제의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은 같지 않았지만 그 분들이 명성을 누렸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분들이 성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니 어째서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들의 방법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으며, 우임금은 힘을 사용하였고, 탕임금은 군사를 사용했습니다. 문왕은 주왕에게 순종하여 감히 거스르려 하지 않았으나, 무왕은 주왕을 거슬러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당신에게 삼황과 오제의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을 얘기해 주겠습니다.

황제가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중에는 그의 부모가 죽어도 곡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도 백성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서로 친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중에는 그들의 친분 때문에 친하게 지내고 따돌리는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래도 백성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려 백성들의 마음을 서로 다투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는 부인이 아기를 배어 가지고 열 달 안에 자식을 낳고,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달만에 말을 하게 되고, 방긋방긋 웃기도 전에 사람들을 분별하는 경우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사람들에게 어려서 죽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우임금이 천하를 다스려 백성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고, 전쟁은 도리를 따른다는 구실이 생겼으며,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닌 것으로 되었고, 자기만을 중히 여기고 보고 듣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천하 사람들은 크게 놀라 유가와 묵가들이 한꺼번에 생겨났던 것입니다. 시작할 때는 그런 대로 법도가 있었으나, 결과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당신에게 삼황과 오제가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을 얘기해 주겠습니다.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말할 수 없이 천하를 어지럽혔던 것입니다. 삼황의 지혜는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은 빛을 거슬렸고, 아래로는 산과 냇물의 정기를 배반하였으며, 가운데로는 사계절의 순환을 파괴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지혜는 전갈의 꼬리보다도 잔혹한 것입니다.

작은 짐승들도 모두가 그의 본성과 생명의 진실한 모습을 따라 편안히 지냅니다. 그런데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수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공은 다리를 떨면서 불안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장자(외편) 천운 8 - 발자국은 발이 아니다

 

공자가 노자에게 말했다.

“저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의 다섯 가지 경전을 공부했는데, 스스로 오랫동안 공부하여 그 뜻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임금들에게 쓰여지기를 바라면서 옛 임금들의 도를 논하고 주공과 소공의 업적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한 임금도 저를 등용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고, 도란 밝히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당신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임금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여섯 가지 경서란 옛 임금들이 남겨놓은 발자취입니다. 어찌 그 발자취를 남긴 장본인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은 발자취나 같은 것입니다. 발자취란 것은 신발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발자취가 어찌 신발이겠습니까?  백역이라는 새는 암수가 서로 바라보면서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데도 정이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충이라는 벌레는 수컷이 바람 부는 위쪽에서 울고 암컷은 바람 부는 아래쪽에서 호응하기만 해도 새끼를 뱁니다. 류란 짐승은 자신이 암컷 수컷을 다 겸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을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본성은 바뀌어질 수가 없고, 천명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멈출 수가 없고, 도는 막히는 경우가 없습니다. 진실로 도를 터득하기만 한다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도를 잃으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석달 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들어앉아 있다가 다시 노자를 찾아갔다.

“저도 터득했습니다. 까마귀와 까치는 알에서 부화하고, 물고기는 물거품에 붙어서 새끼를 치고, 나나니벌은 배추벌레 속에서 자라 변하여 되고, 아우를 보게 되면 형은 울게 됩니다. 제가 이런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되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됐습니다. 당신은 도를 터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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