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소요유(逍遙遊)와 정치적 자유
정종모(대만 국립중앙대학)
[주제분류] 중국고대철학, 정치철학 Ancient Chinese Philosophy, Philosophy of Politics
[주 제 어] 장자莊子, 곽상郭象,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소요유逍遙遊, 자유自由
[요 약 문]
장자(莊子)와 곽상(郭象)은 소요론을 통해서 각자의 자유론을 전개했다. 유소감 교수는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자유이론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자유론이 결국 근대적 자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신적 체험에 기초한 소극적, 도피적 자유관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즉 비록 양자가 갖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관점에서 보았을 적에 양자 모두 정치적 자유와는 무관한 출세주의(出世主義)의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전통과 근대라는 고정된 도식을 중국적 사유에 거칠게 덧쒸운 것이다. 또한 세부적으로는 장자철학이 현실과의 불화에서 탄생한 비판정신의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했으며, 곽상철학이 방외(方外)와 방내(方內)의 통일을 모색했고 독화론을 통해 주체관념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소홀히 했다. 또한 그들이 강조하는 ‘부득이(不得已)’의 관점 역시 외적 구속에 대한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주체의 덕성에 기초한 적극적 자기완성을 표방하는 인생관을 담고 있다.
따라서 장자와 곽상의 소요론을 내심의 자기만족 또는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을 조장하는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유산으로 단정할 수 없다. 비록 견강부회를 통한 옹호는 피해야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장자철학이 갖는 적극적 면모나 현실적 가치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Ⅰ. 들어가는 말
자유를 “속박이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또는 행동”으로 규정한다면 자유는 장자(莊子)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장자』속에 등장하는 ‘소요(逍遙)’, ‘천락(天樂)’, ‘현해(懸解)’, ‘독유(獨有)’ 등과 같은 일군의 개념들은 이러한 ‘자유’에 상응하는 관념이나 이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1)
따라서 장자철학이 과연 어떠한 자유의 관념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현대적 맥락 속에서 해명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장자 철학을 이해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리에게 『장자철학(원제:莊子哲學及其演變)』2)으로 잘 알려진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의 유소감(劉笑敢) 교수는 그의 논문 「두가지 소요와 두 가지 자유(兩種逍遙與兩種自由)」3)에서 장자의 자유론을 해명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장자와 곽상(郭象), 두 사람의 소요관이 (비록 구체적 함의는 다를지라도) 모두 중국의 고전적, 전통적 자유관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그는 이들 두 사람의 자유관과 현대적 자유개념의 상관성을 분석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1909~1997)이 제시한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와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 개념을 차용한다.4)
결론적으로 유소감 교수는 벌린의 개념을 기준으로 할 적에 장자와 곽상의 자유 개념은 비록 그것 나름대로 자유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자유와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고 결론짓는다.5)
1)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유(自由)’라는 개념은 일본 메이지(明治) 초기 ‘liberty’ 또는 ‘freedom’을 번역하면서 생겨난 말로서 거기에는 이미 근대적 이념의 가치와 서양 고유의 역사적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유’라는 말이 기존의 용례와 전혀 무관하게 고안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엄복(嚴復, 1854-1921)은 밀의 『자유론』을 번역한 『群己權界論』의 「譯凡例」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어의 자유(自繇/自由)에는 제멋대로임(放誕), 방종함(放睢), 거리낌 없음(無忌憚)과 같은 열등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지 본래의 뜻과는 무관하다. 그것의 본래 의미는 외물의 구속을 받지 않음을 지시할 뿐이었다. 거기에는 우월한 의미도 열등한 의미도 없었다.”
嚴復, 『群己權界論』(臺北: 臺灣商務印書館, 1968, 2판), 1쪽.
2) 劉笑敢, 최진석 역, 『장자철학』(소나무출판사, 1998, 개정판).
3) 劉笑敢, 「兩種逍遙與兩種自由」, 『哲學與文化』 33卷, 7期(臺北: 哲學與文化月刊雜誌社, 2006), 29~42쪽.
4) Isaiah Berlin, "Two Concept of Liberty", Four Essays on Liberty(Oxford: Oxford Univ. Press, 1975, 재판), 118~172쪽.
5) 劉笑敢, 앞의 논문, 30쪽.
본 논문은 유소감 교수의 논문에 대한 검토를 목적으로 한다.
그의 논문의 목적은 장자와 곽상 철학의 비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전통적 자유관’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서 근대적 자유개념과 비교분석 하는 것이다.
사실 장자 철학과 곽상 철학의 동이(同異)에 대해서 그는 양자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기 논문에서 그는 ‘전통사회의 자유 형태(傳統社會的自由形態)’라는 말로 양자의 사상체계를 하나의 틀로 포괄하고 이를 근대적 자유관과 대척시키고 있다. 그리고는 이러한 전통적 자유관이 벌린이 내향추구적, 자기축소적, 자아해탈적인 자유관이라고 비판한 계열, 예컨대 스토아학파, 금욕주의, 불교의 자유관과 동일한 맥락을 공유한다고 간주한다. 그렇다고 유소감 교수가 벌린처럼 이런 전통적 자유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통적 자유관이 현대사회에서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본 논문에서는 장자와 정치, 소요론과 자유, 곽상철학과 현실문제, 장자철학에서의 필연성, 곽상의 독화론 등을 순서로 유소감 교수의 견해의 타당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Ⅱ. 장자철학의 정치적 함의
유소감 교수는 장자의 소요관을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누는데, 하나는『장자』에 담겨 있는 장주(莊周)의 소요관이고 다른 하나는 『장자주(莊子注)』에 반영된 위진(魏晉) 인물인 곽상의 소요관이다. 주지하듯이, 곽상의 『장자주』는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장자』주해서이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적 맥락의 차이로 인해 곽상의 관점은 기존의『장자』텍스트나 장주(莊周)의 시각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 유소감 교수 자신이 이미 상세히 논의한 바 있다.6)
그러나 「두 가지 소요와 두 가지 자유」에서 그는 양자의 차이에 대해 별반 개의치 않은 채, “기본적으로 장자의 소요와 곽상의 소요를 포괄하여 양자를 중국고대의 소요관 개념이나 자유 개념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7)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장자와 곽상의 소요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6) 劉笑敢 교수는 논문 30~33쪽에서 양자의 차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마도 첫 번째 각주에서 언급한 2005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신의 논문 「莊子與郭象-超越的逍遙與足性的逍遙」을 요약한 부분 같다. 이밖에도 「經典詮釋中的兩種內在定向及其外化-以王弼
『老子注』與郭象『莊子注』」에서 그는 왕필의 『노자주』를 본래의 텍스트에 충실한 주석서의 대표적인 예로, 곽상의『장자주』를 해석자의 창조적 주관이 강하게 발휘된 주석서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전자를 ‘順向的’ 해석으로 후자를 ‘逆向的’ 해석으로 규정하는데, 장자와 곽상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서 계승보다는 단절을 강조하는 그의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中國文哲硏究集刊』26期(臺北: 中央硏究院 中國文哲硏究所, 2005年3月), 287~319쪽 참조.
7) 劉笑敢, 「兩種逍遙與兩種自由」, 30쪽.
"양자(兩者)의 소요관은 모두 현실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이미 주어진 처지를 인정, 수용한 뒤의 대응방식이다. 또한 양자 모두 일종의 순수한 정신적 만족이자 범인(凡人)을 뛰어넘는 사상경지, 인생경지이다. 장자와 곽상의 안명(安命)이나 소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실과 개체의 자유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양자 모두 어쩔 수 없는 주어진 처지를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소요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한마디로 자유와 필연의 모종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모두 개인적, 정신적인 것이어서 현실의 개조나 직접적인 현실적 목적의 실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8)"
8) 劉笑敢, 앞의 논문, 31쪽.
인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유소감 교수는 장자와 곽상의 소요관(자유관)을 이미 주어진 현실과의 충돌을 피하는 행동양식으로 이해한다. 그는 장자나 곽상이 말하는 자유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영역을 내면화 또는 축소함으로써 달성되는 수동적 가치라고 평가한다. 때문에 그는 “장자와 곽상을 통해 대표되는 구속과 속박을 벗어난 느낌이란 다만 현실과 마찰, 충돌하지 않는 내심(內心)의 상태에 불과하다. 그것은 현실의 개조나 현실생활 속에서 제기되는 요구와는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바로 중국고대의 자유관념의 주류이다”9)라고 말한다.
그러나 논자가 보기에 장자와 곽상이 현실적 속박과 강제로부터의 저항과 독립을 명시적으로 주장했다고 볼 수는 없더라고,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나 가치가 단순히 ‘약자의 도덕’ 혹은 ‘수동적 자기 보호’에 불과한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특히 유소감 교수가 말하는 “자유와 필연의 통일”이란 규정은 개인의 욕망과 현실적 속박 사이의 적당한 타협으로 읽힐 소지가 크다. 이러한 그의 해석은 “도통위일(道通爲一)”의 경지를 설파하는 장자의 소요관을 해명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현실의 모순과 압력에 순응, 동조하는 일련의 행위를 전통적, 소극적10)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비록 장자와 곽상의 소요관념이 전통적 자유 관념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정치적 성격 또는 근대적 가치와 무관하거나 상충되는 것인지, 나아가 현대적 해석의 여지는 없는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서구에서 발전한 근대적 자유개념과 비교한다면 장자나 곽상의 소요관념이 상대적으로 개인적, 정신적 향유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곧 구체적 현실을 이탈하여 내면적 자아나 정신의 영역으로의 퇴행을 강조했다고 단정할 수
는 없다. 장자의 자유관과 관련해서 진고응(陳鼓應) 선생은 장자 철학이 비록 정신적 영역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의미를 배제한 것은 아님을 피력하고 있다.
9) 劉笑敢, 앞의 논문, 33쪽.
10) 여기에서의 ‘소극적’이란 이사야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단순히 피동적, 수동적 행위양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장자가 말하는 자유는 모두 정치적인 의미에서라기보다는 주로 정신적인 의미에서이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장자는, 첫째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 둘째 백성들에게 자율성과 자주성을 줄 것, 셋째 일반화보다는 개체의 다양성과 특성을 존중할 것, 넷째 규범주의의 속박을 벗어날 것 등을 주장하였다11)"
11) 陳鼓應, 최진석 역, 『노장신론』(소나무, 1997), 402~403쪽.
논자는 장자의 정치관을 둘러싸고 두 장자 전문가의 관점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나 생각한다. 유소감 교수는 “장자와 곽상의 이러한 내재적 감수 방식의 자유전통은 현대적, 서구적인 개인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자유전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12)고 평가함으로써 내향과 외향, 전통과 근대의 간극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자는 노자(老子)처럼 현실적 정치나 통치에 적용 가능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도 아니며,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주체성, 소유권, 저항권 등을 논하지도 않았다.
그 점에서 장자를 무리하게 근대적 자유전통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선진(先秦)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장자철학 또한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담고 있으며, 누구나 인정하듯이, 거기에는 정치에 대한 비판과 사회의 비극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진고응 선생의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장자』에 담겨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 그리고 거기에 반영된 개인의 덕성에 대한 존중 등에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투영되어 있다.13)
비록 장자가 제시하는 ‘소요(逍遙)’가 내향적, 개인적 성향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러한 관념은 어디까지나 장자 자신이 겪은 현실과의 ‘불화(不和)’ 속에서 도출되었으며 거기에서 현실에의 순응이 아닌 권력에 대한 저항의 면모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자의 생각을 기초로 해서 아래에서는 유소감 교수의 논의를 보다 구체적 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2) 劉笑敢, 앞의 논문, 29쪽.
13) 특히 내편의 「인간세」나 「응제왕」은 장자의 정치의식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비록 장자철학의 정수를 「소요유」, 「제물론」, 「대종사」에서 찾는 경우가 많지만 장자의 현실의식에 관해서 이 두 편을 빼놓고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덧붙여 본 논문에서는『장자』와 『장자주』모두 내편에 한정하여 다룬다. 왜냐하면 외, 잡편으로 논의를 확장했을 경우 사상적 함수가 너무나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Ⅲ. 소요유와 자유의 관계
「두 가지 소요와 두 가지 자유」에서 유소감 교수는 이사야 벌린의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와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 개념을 소개하고, 장자철학이 표방하는 자유관이 벌린이 구분한 두 가지 자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14) 여기에서 소극적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구속, 간섭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적극적 자유는 주체적, 능동적인 행동과 참여를 수반하는 자유를 말하는데, 유소감 교수는 벌린이 말하는 두 가지 자유형식이 모두 정치적 자유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자나 곽상이 말하는 내향적인 정신경험으로서의 자유와는 관련이 없다고 평가한다.15) 문제는 벌린의 자유개념과 장자, 곽상의 소요관 사이의 간극이 곧 장자 등에게 정치의식 또는 자유관념이 부재함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벌린의 자유개념은 무엇보다 서구 근대의 역사 속에 등장한 자유개념을 일차적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자유 그 자체는 역사적 특수성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요구와 본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벌린의 두 가지 자유개념이 곧 정치적 자유 전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든『장자』자체가 이미 당시의 정치적 현실과의 갈등
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거기에는 나름의 정치관이 투영되어 있다.16) 그러나 아쉽게도 유소감 교수은 이러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보편성과 원초성이 『장자』속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있고, 또 그것이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장자와 곽상의 소요관을 도피적, 소극적, 정신적 자유에 대한 지향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음의 인용에서 이러한 유소감 교수의 관점에 대한 진고응 선생의 우려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17)
14) 벌린이 이렇게 자유를 둘로 구분한 까닭은 적극적 자유가 갖는 억압적 요소를 지적하고 소극적 자유가 인간에게 보다 본질적이며 원초적인 가치임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적극적 자유를 향한 급진적 노력들이 오히려 미래의 목적을 명분으로 현재의 개인을 종속시키고 소극적 자유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벌린의 자유이론 및 그것이 갖는 서구적 맥락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이 도움이 된다. 문지영, 「자유의 자유주의적 맥락」, 『정치사상연구』, 10집 1호(한국정치사상학회, 2004).
15) 참고로 벌린의 자유개념에 대한 이택후(李澤厚)의 짤막한 논의도 참고할만하다. 특히 그는 소극적 자유는 개량적이고 적극적 자유를 혁명적이라고 평가하는데, 현대중국을 계몽(啓蒙)과 구망(求亡) 사이의 대립의 산물로 설명하는 그의 이론적 도식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李澤厚, 황희경 역, 『역사본체론』(들녘코기토, 2004), 91~106쪽 참조.
16) 현대적 중국철학사 서술의 효시로 평가받는 『중국고대철학사』에서 호적(胡適)은 장자철학을 출세주의(出世主義)란 말로 총평하고 장자가 말하는 시비를 떠난 달관이란 결국 사회의 진보와 정치적 혁명을 거부하는 수구성에 다름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가 말하는 달관이란 결국 소요의 이상이나 제물의 논리를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달관이 장자 당시에는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수직적 통치 질서, 전제정치에 대한 저항이나 원심력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장자의 출세주의를 비정치적 소극성과 등치시킬 수는 없다. 유소감 교수의 논지를 통해 장자철학의 정치적 성격을 재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胡適, 『中國古代哲學史』(合肥: 安徽敎育出版社, 2006), 246~248쪽 참조. 이 책의 원제는 『中國哲學史大綱卷上』으로 1919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후에 1958년 臺北商務印書館에서 『中國古代哲學史』란 이름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7) 장자의 소요론이나 정치관에 대한 유소감 교수의 관점은 그의 박사논문에 기초한 『장자철학(莊子哲學及其演變)』에 더욱 단호한 문장으로 피력되어 있다. 그는 “장자는 운명론의 기초 위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장자의 자유에 현실 개혁의 내용이란 전혀 없다. 이런 자유는 허위이다. (…) 장자의 자유는 유물주의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세계를 개조하는 자유도 아니고, 의지주의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세계를 주재하는 자유도 아니다. 장자의 자유는 순(純)정신적인 자아의 위안이고, 공허한 가상이며 현실을 도피한 결과이다.”
劉笑敢, 최진석 역, 『장자철학』』(소나무, 1998), 178~179쪽.
진고응 선생은 「장자연구의 몇 가지 관점: 유소감 박사의 『장자철학』에 붙이는 글」에서 장자의 치도론(治道論)과 정치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불행한 현실과 대면하여 장자가 추구한 것은 ‘소요유’라는 경지였다. 그의 소요유는 표면적으로 보면 여유가 있고 한가한 데에 깊이 빠져 유유자적한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처세의 걱정(憂患)으로 가득 차 있다. 「천하」편에서 “천하에는 방술을 닦는 자가 많다”고 한 것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난세를 구하는 문제에 관해 보편적인 관심을 가지고 많은 방안을 제출하였음을 보여준다. (…) 장자가 “십여만 마디나 되는 책을 저술했다”는 것은 그가 사회와 인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완전히 세상을 피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더욱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 사회 현실에 대한 심각한 비판도 사회 집단에 대한 그의 관심이 많았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장자의 생활태도가 출세적이 아니라 피세(避世)와 입세(入世)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라는 설명에는 근거가 충분하다.18)"
18) 陳鼓應, 앞의 책, 408~409쪽.
처세의 걱정, 소위 우환의식은 결국 유가(儒家)만의 것이 아님을 위의 인용문은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장자를 비롯한 도가(道家)도 피해갈 수 없었던 선진사유의 공통분모였다. 따라서 장자의 소요관을 비정치적, 현실도피적인 관념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나 방관자의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이탈과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부당한 현실과 억압을 겨냥해서 개체의 삶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긍정하는 장자 나름의 시대적 구호로 해석되어야 한다.19) 『장자』의 서두를 장식하는 대붕(大鵬)의 도약과 비상이 내향적 자족을 넘어 적극적인 자아의 확립과 현실에 대한 도전으로 읽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20) 진고응 선생은 앞의 글에서 “비록 보편적인 참여의 개념이 장자에는 없지만 그는 만물의 평등을 강조하고 만물 각각에 그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며 개성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니, 이것은 유가의 도덕적인 교조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대안이다”21)라고 하여 장자와 당시 통치 이데올로기와의 대립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22)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유소감 교수가 ‘내향적 추구’, ‘소극적 자족(自足)’ 등과 같은 맥락으로 장자의 소요관을 규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장자철학의 부정적 면모-예컨대 그것이 허위적 요소를 가진다거나 무가치하다는 등-를 강조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록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自欺欺人)” 혐의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장자나 곽상의 이론이 현대의 서구 정치이론을 보충할 수 있다”23)는 사실이다. 그러나 논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장자철학의 현대적 의의의 확인 여부를 떠나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그의 논리의 적합성이다. 그는 “일단 현실로 돌아오면 자유의 논의는 현실적 처지의 제약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 없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환경 속에 있는 것이며, 변혁할 수 없는 환경 하에서의 선택과 대응, 결정을 포함한다”24)고 하면서 이상적 자유를 향한 추구에 따른 좌절과 실패보다는 현실과 필연에 대한 순응을 통해 제한된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장자철학의 소요론이 이러한 선택을 권고하는 현대적, 보완적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관점이 보완에 앞서 현대적 자유 개념에 위배되거나 자유에 관한 보편적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벌린의 이론에 근대적 이념의 과잉이 가져온 역설적 폐해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고, 이 지점에서 동양적 가치의 의미를 탐색하는 유소감 교수의 시도는 고무적이지만, 장자의 자유관에 대한 긍정이 결국 내면성, 소극성, 비정치성에 대한 옹호에 기초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긍정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
19) 앞서 각주 13)에서 말했듯 「인간세」와 「응제왕」에는 장자의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이 잘 드러나 있다. 예컨대 「응제왕」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너는 마음을 담담한 경지에서 노닐게 하고 기를 막막한 세계에 맞추며 모든 일을 자연에 따르게 하고 사심을 개입시키지 말라. 그러면 천하는 다스려진다(汝遊心於淡, 合氣於漠, 順物自然而無容私焉, 而天下治矣)”고 말한 것이나 “성인의 정치가 밖을 다스리는 것이겠는가? 다만 스스로를 바르게 해야 잘 다스려지는 것이니 결국 자기의 일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일 뿐이다(夫聖人之治也, 治外乎? 正而後行, 確乎能其事者而已矣)”라고 한 것은 모두 이른바 내성외왕(內聖外王)으로 일컬어지는 장자의 정치관을 나타내고 있다. 郭慶藩, 『莊子集釋』(北京: 中華書局, 2007) 294쪽 및 291쪽 참조.
20) 비슷한 맥락에서 장자를 무정부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특히 방임(放任)과 무치(無治)를 주장한 내편의 「應帝王」이나 외편의 「在宥」에 토대를 둔다(참고로 Watson은 在宥를 "Let It Be, Leave It
Alone"으로 번역했다). 실제로 신해혁명을 전후로 활약한 혁명가이자 국학자인 劉師培는 장자적 무정부주의를 구상했다. 그는 무위와 무간섭을 말하는 도가를 무정부주의의 선구적 형태로 보고 여기에 기초해서 중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쉽게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金觀濤, 劉靑峰, 『中國現代思想的起源』(香港: 中文大學出版社, 2000), 313~321쪽 참조. 덧붙여 錢穆 역시 장자의 군주론과 무정부주의를 관련시켜 서술했다. 錢穆, 『莊老通辨』(臺北: 東大出版, 1991), 119~122쪽 참조.
21) 陳鼓應, 앞의 책, 412쪽.
22) 「응제왕」에 대한 설명에서 陳鼓應 선생의 입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장자의 외왕(外王)의 도는 유가적 형태의 덕치와 인치를 비판하면서 무치주의(無治主義)의 관념을 제시한다. (…) 그는 기본적으로 어떤 형식의 통치도 반대했다. 그는 사람들이 보다 더 그 자신들의 자연성, 자유성, 자주성에 따라 생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응제왕」에서는 장자의 무치주의 사상을 드러내면서 정치의 바른 길은 되도록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의 본성을 따르며 백성의 의지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응제왕」은 고대 민주 정치 사상의 색체가 아주 짙은 글이다.” 陳鼓應, 최진석 역, 『노장신론』 (소나무, 1997), 315쪽.
23) 劉笑敢, 앞의 논문, 37쪽.
24) 劉笑敢 앞의 논문, 37쪽 참조. 각주 6)에서 언급했듯 劉笑敢은 곽상의 『장자주』가 갖는 이러한 뚜렷한 변형을 (‘順向的’ 해석에 대비시켜) ‘逆向的’ 해석이라고 규정한다.
곽상의 문제의식은 이른바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화해”라고 하는 위진(魏晉)시기의 철학적 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의 행적 측면에서도 곽상은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하며 막강한 권력을 향유한 방내적(方內的) 인물의 전형이다. 이러한 역사적, 개인적 배경의 차이가 『장자주』가 갖는 개성의 원인이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참고로 余英時는 漢代 전체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魏晉時期 도가사상에 기초한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 풍조가 확산되었다고 분석한다. 덧붙여 그는 당시의 僞作으로 간주되는 『列子』가 그러한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반영하며, 반대로 곽상의 『장자주』는 정치적 제도를 옹호하고 사회적 분열을 막으려는 보수파의 반격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곽상의 최종적 관심이(제도나 질서가 아니라) 개체 문제에 있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개인주의의 확대라고 하는 동일한 역사적 맥락을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余英時, 「魏晉時期個人主義和新道家運動」, 『人文與理性的中國』(臺北: 聯經, 2008), 23~58쪽.
Ⅳ. 곽상철학의 현실포용적 특질
앞에서는 장자와 현실 간의 대립이 이미 장자철학의 정치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장자의 자유관(소요관) 역시 소극적 자기 향유에 국한되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장자』내편의 원문을 통한 세부적인 확인 작업을 병행하지는 않고, 기본적 입장만을 개괄적으로 피력했다.
첫째 이유는 유소감 교수의 논문이 세부적 실증보다는 전체적 구도와 전망을 제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다루는 장자철학의 정치적 함의나 자유문제는 첨예한 이론적 해석을 수반하는 철학의 내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장자철학의 기조나 관점에 대한 입장, 즉 상대적으로 철학의 외부를 다룬 것이고, 때문에 세부적 논증을 보류하고 논할 수 있는 문제이다.
둘째 이유는 장자보다 곽상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기 위해서인데, 『장자주』의 정치성 함의 또는 소요론은 단순히 관점의 차이를 넘어 철학 내부의 이론적 해석과 연동된 문제이며, 따라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장자철학의 정치적 성격은 그것이 기존의 제도와 갖는 긴장 속에서 주어지는 것인 반면, 곽상의 『장자주』는 장자의 철학을 제도정치 안으로 끌어들여 양자 사이의 오랜 불화와 긴장을 해소시키고자 한다. 결국 곽상은 장자의 논리를 방외(方外)에서 방내(方內)로, 출세(出世)에서 입세(入世)로 전환하며, 그것을 위해 『장자』내부로 깊숙이 침투하여 기존의 이론의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적 성격과 관련한 소요론의 특성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전통적 자유관’이란 말로 양자의 소요관을 뭉뚱그려 논하기보다 그들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아래에서는 『장자주』의 정치적 함의와 소요관의 특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장자와 마찬가지로 곽상도 역시 소요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장자의 소요관이 현실정치와의 갈등의 산물이라면, 곽상의 소요관은 현실과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실 장주(莊周)의 본의에서 볼 적에 이는 명백히 이론의 전복이다. 유소감 교수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는 유소감 교수가 이사야 벌린의 자유개념을 차용하면서 장자와 곽상 사이의 거리를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설명한 “모종의 본질적 차이”는 온데간데없고 ‘전통식(傳統式) 자유관념’이란 이름하에 양자를 압축해 버리는 것이다. 특히 현실과의 연계성이 특징인 곽상의 철학은 별다른 해명 없이 홀연 피동적, 소극적인 것으로 단정되고 만다. 그러나 곽상은 그러한 소극적 현실 타협이나 출세주의(出世主義)적 도피를 거부한다. 예컨대 「소요유」의 허유(許由)와 요(堯)가 등장하는 고사에 대해 곽상은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무릇 다스림이란 것은 다스리지 않음에서 말미암고, 유위(有爲)는 무위(無僞)에서 말미암는다.
요(堯)에서 취하면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허유를 빌리겠는가! 만약 산림 속에서 가만히 은둔하는 것을 가지고 무위(無爲)하는 것이라 간주한다면 이런 생각이야말로 장자나 노자가 현실정치의 실권자들(當塗者)로부터 버림받는 이유이다. 현실정치의 실권자들이 필시 유위(有爲)의 영역에 투신하면서 (산림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25)"
25) 郭慶藩, 『莊子集釋』, 24쪽. “夫治之由乎不治, 爲之出乎無爲也, 取於堯而足, 豈借之許由哉! 若謂拱默乎山林之中而後得稱無爲者, 此莊老之談所以見棄於當塗. 當塗者自必於有爲之域而不反者, 斯之由也.”
전통적 해석에서 허유는 은일지사(隱逸之士)나 방외지인(方外之人)의 대표적 인물로 간주된다. 위의 고사 역시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드러내는, 보다 정확하게는 허유가 요임금을 골탕 먹임으로써 유가의 외치(外治)를 격하하고 도가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연출이다. 그러나 곽상은 그러한 기존의 해석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요(堯)야말로 유위와 무위를 넘나드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인물이다! 반면 허유는 시야 좁은 산골 구석의 인물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곽상이 허유의 경계를 부정하고 유가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그가 제기하려는 것은 ‘요(堯)의 소요론’이라는 일련의 역설의 정당화이다. 그것은 유가로의 전향이 아니라 도가 내부의 전환이자 확장이다. 곽상은 말한다.
"요리사(庖人)와 시축(尸祝)이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편안히 여기고, 새나 짐승도 저마다 자기가 받은 바에 만족하며, 요(堯)와 허유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순응하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이상적 본분(實)이다. 각자가 본분을 얻으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자득할 뿐이다. 따라서 요(堯)와 허유의 궤적은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이 소요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26)"
26) 郭慶藩, 『莊子集釋』, 26쪽. “庖人尸祝, 各安其所司. 鳥獸萬物, 各足於所受. 帝堯許由, 各靜其所遇. 此乃天下之至實也. 各得其實, 又何所爲乎哉? 自得而已矣. 故堯許之行雖異, 其於逍遙一也.”
주지하듯이 요(堯)는 현실정치를 책임지는 성군(聖君)이다. 곽상이 볼 적에 유위와 무위, 방외와 방내의 세계는 중첩 가능하다.소요는 현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따라서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이 속한 현실에 충실한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따라서 요(堯)야 말로 진정한 소요의 경지를 구현한 인물이다. 곽상의 이러한 관점은 이른바 대붕(大鵬)과 작은 새(小鳥)의 차이를 논하면서 제시한 소대지변(小大之辯)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곽상은 말한다.
“진실로 자기의 본성(性)에 만족하기만 하면 비록 거대한 대붕일지라도 작은 새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고, 작은 새도 천지(天池)를 부러워 할 것이 없이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크고 작음은 비록 다르지만 소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27)
27) 郭慶藩, 『莊子集釋』, 9쪽. “苟足於其性, 則雖大鵬無以自貴於小鳥. 小鳥無羨於天池, 而榮願有餘矣. 故小大雖殊, 逍遙一也.”
여기에서 말하는 본성(性)은 단순히 심성론의 영역을 넘어 선천성과 후천성, 내면과 외면, 차안과 피안을 포괄하는 존재를 둘러싼 일체의 조건과 환경을 말한다. 곽상은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소요가 가능하며, 때문에 소요가 현실의 일탈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님을 ‘요(堯)의 소요론’을 통해 주장한다.
유소감 교수 역시 “곽상의 소요는 현실적인 성분(性分)이나 생명 가운데 입각해 있으며, 현실에 만족하고 개체의 생명을 편안하게 여긴다”28)고 설명했고, 또 “장자의 소요가 관심을 갖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정신체험일 뿐 현실사회의 질서문제에 관계되지 않는다.
반면 곽상이 말하는 소요는 사실상 현실의 사회질서에 귀착하고 있다. (…) 장자의 소요는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곽상의 소요는 사회질서를 고려하고 있다”29)고 하여 장자의 소요관과 곽상의 소요관이 구분됨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결국 말하고자하는 최종결론은 다음 문장에 담겨 있다.
“장자나 곽상을 막론하고 그들이 말하는 소요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기껏해야 일종의 도피적, 소극적 자유이다. (…) 장자, 곽상이 대표하는 구속과 속박이 없는 느낌은 다만 내심적(內心的)인 것이어서 현실과의 마찰이나 충돌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다.”30)
그러나 본 단락에서 논의했듯 장자철학 역시 현실과의 불화의 산물이며, 곽상은 상대적으로 내향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온 기존의 장자관을 전복시킨 인물이다. 유소감 교수가 자신이 제시한 단서들을 활용하여『장자주』가 갖는 정치적 함의와 자유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28) 劉笑敢, 앞의 논문, 31쪽.
29) 劉笑敢, 앞의 논문, 32쪽.
30) 劉笑敢, 앞의 논문, 33쪽.
정리하자면 장자와 곽상 모두 정치에 대한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이다. 현실 및 제도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장자는 갈등과 긴장을, 곽상은 화해와 포용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상반되지만 결국 거기에는 적극적인 현실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은 각자의 소요론을 통해 전개되었다.
여러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에 대한 이사야 벌린의 옹호는 자유가 서구적 근대의 독점적 가치이기 이전에 인간의 보편적 욕구와 원초적 의지에 뿌리박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서구의 역사로부터 근대적 이념의 배타적 소유권을 환수하여 평범한 인간 개인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과 근대라는 도식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오히려 장자와 곽상을 인간의 자유라는 원초적 문제에 천착한 인물로 재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이 벌린의 이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아닐까?
Ⅴ. 필연성에 대한 장자의 이해
본 장에서는 ‘필연성’에 대한 곽상의 이론을 다루고자 한다. 왜냐하면 논자가 보기에 곽상의 자유관에 대한 유소감 교수의 주장 배후에는 필연성의 의미에 대한 그의 ‘오해’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득이(不得已)’의 관념에서 출발하여 곽상이 이해한 필연성이 자유와 대립되는 피동적 관념이 아니라 개체성, 자주성을 함축하는 능동적 개념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그러한 성격이 이미 장자의 덕성(德性) 개념에 연원을 두고 있음도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자와 곽상의 소요론이 갖는 적극적 면모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이 이 장절의 목적이다.
논문에서 유소감 교수는 필연적 현실과 개체의 자유 사이의 모순관계를 논의한다. 이 경우 그가 말하는 ‘필연’이란 “어쩔 수 없는 이미 정해진 상태(無可奈何的旣定境遇)”,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의 장벽(無法改變的現實障壁)”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성 개념은 장자가 강조한 필연의 의미와 혼동될 우려가 있다.
유소감 교수는 말한다.
"일단 현실로 눈을 돌리면 자유의 논의는 현실적 상황의 제약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특정한 환경 속에 있는 것이며, 변화시킬 수 없는 환경 속에서의 선택과 대응, 결정을 포함한다.
어쩔 수 없는 이미 정해진상태를 무시한 채 오로지 이미 정해진 목표를 실현하고자하는 의지의 자유는 결국 뜻대로 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실패하여 원했던 자유를 전혀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종의 필연적 혹은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동경과 추구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며, 적어도 자유를 체험할 가능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과도 전혀 다르다."
여기에서 “전혀 다르다”는 구문은 보다 정확히는 “~보다 더 낫다”는 의미이다. 즉 모든 자유를 잃는 것보다는 제한된 자유에 만족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물론 그 자체로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장자와 곽상이 강조하는 ‘필연’의 개념이 그런 취지에서 고안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논자가 보기에 그런 해석은 완전히 『장자』나 『장자주』를 오독한 것이다.
장자의 필연성을 논할 적에 ‘안명(安命)’, ‘부득이(不得已)’와 같은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장자는 「인간세」에서는 공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편안하게 여기는 것, 이것을 최고의 덕이라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잘 알고 편안히 천명에 내맡기는 것이 덕의 지극함이다. 신하나 자식으로서 본래 어쩔 수 없는 애초부터 부득이한 바가 있는 것이니 오직 실정(情)에 맞게 행동하고 자신을 잊어야 한다.”31)
31) 郭慶藩, 『莊子集釋』, 155쪽. “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 爲人臣子者, 固有所不得已, 行事之情而忘其身.”
또한 「덕충부」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32)고 했다.
32) 郭慶藩, 『莊子集釋』, 199쪽. “知不可柰何而安之若命, 唯有德者能之.”
곽상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득이(不得已)란 이치의 필연성을 말한다. 지극히 순일(純一)한 바를 체득하고 필연에 대한 순응을 깨닫는 것이다.”33)
33) 郭慶藩, 『莊子集釋』, 149쪽. “不得已者, 理之必然者也. 體至一之宅而會乎必然之符者也.”
또 「인간세」의 “어쩔 수 없는 바에 자기를 맡겨 내면(中)을 기른다(託不得已以養中)”는 구절에 대해서는 “이치의 필연에 맡기는 것은 중용(中庸)에 온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이것이 사물(物)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이다”34)라고 풀이하고 있다.
34) 郭慶藩, 『莊子集釋』, 163쪽. “任理之必然者, 中庸之符全矣, 斯接物之至者也.”
결국 안명(安命)과 부득이(不得已)는 언뜻 보면 현실에 순응하라는 숙명론을 말하는 것 같지만 핵심은 자신의 내면적 본성과 이치에 순응하라는 의미이다. 즉 그것은 외부적 강압에 대한 순응이나 현실적 한계에 대한 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러한 속박과 한계를 넘어 자기의 본성과 가치를 발휘하라는 권고이다. 장자에게 필연의 강조는 외부적 속박을 감안해서 자유의 영역을 적당히 양보하라는 보수적 이념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원리와 개체의 자유의지를 궁극적으로 합일시키라는 적극적 권고인것이다.
서복관(徐復觀)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득이(不得已)’는 주관적으로 아무런 유위(有爲)의 욕망을 갖지 않고 다만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자발적 요구에 쫓겨 거기에 순응하는 모양을 말한다. 부득이한 마음은 곧 정치에서는 인심(仁心)을 말하고, 부득이한 일이란 정치에서의 인정(仁政)을 말한다. 장자는 당시의 혼란에 대해 매우 절박한 감정을 지녔다.
(…) 한편으로는 마치 세속의 더러움을 초탈한 것 같아도 장자는 동시에 한순간도 중생 속에서 침잠하고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유가와 마찬가지로 “만물이 함께 자라면서 서로를 해치지 않고 도(道)와 함께 나가면서 어그러지지 않는(『중용』)”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였다.35)"
35) 徐復觀, 『中國人性論史』(臺北: 臺灣常務印書館, 2003), 411~412쪽.
맹자는 왕도정치의 근본을 “차마 남에게 잔혹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에 두면서 그것을 인간의 타고난 도덕성(性善)이라고 규정했다. 서복관 선생은 동일한 맥락에서 장자의 부득이(不得已)를 설명하고 있다. 맹자와 장자 모두 “차마 어쩌지 못하는” “부득이함”에서 시작해서 “도와 함께 나아가는(道並行)” 경지를 지향한다. 따라서 장자의 부득이(不得已) 속에 담긴 순응은 외부적 강압의 수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한 순응과 보편적 원리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요는 도피적, 소극적 타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체의 덕성을 발휘함으로써 성취되는 가치이다. 따라서 장자가 느긋하게 노님(逍遙)을 뽐내고 휴식(休乎天均)을 논하며 마음의 유유자적(乘物以遊心)을 권하지만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에서 오는 안도감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역설적으로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아득한(任重而道遠)” 종교적 엄숙함이 담겨 있다.
진고응 선생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장자가 고대 지식인들 가운데 첫 번째로 ‘자유’에 대해서 깊이 있는 사유를 제시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소요유」의 자유문제를 해명할 적에 나는 편(篇)의 마지막 구절 “쓸모가 없다고 어찌 괴로워한단 말인가(安所困苦哉)”에 주목했는데 이 구절은 장자가 살던 시대의 생존 환경에 대해 일러준다.
「소요유」 말미에서 장자는 너구리와 살쾡이(狸狌)의 뛰어다님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은 당시 지식인들 행태를 암시하고 생생하게 지식인의 언행을 묘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너구리와 살쾡이는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中於機辟, 死於罔罟)”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정치적 환경의 압력 하에서 사상의 자유와 언로(言路)의 개방을 갈구했던 일군의 선현들의 모습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꼈다. 때문에 나는 장자의 소요가 결코 허구적 고탑(高塔)에 걸린 청량제가 아니라, 오히려 비통함이 배어있는 여유로움이라는 것을, 곧 생명 깊숙한 곳에서 발출되는 격분의 감정이자 세찬 파도와 같은 것임을 항상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36)"
36) 2008년 6월 14~15일 臺北의 東吳大學에서 열린 도가철학국제학술회에서 진고응 선생이 발표한 논문 「莊子內篇的心學-開放的心靈與審美的心境」에 실려 있는 문장이다.
Ⅵ. 독화론과 개체의 관계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장자의 초월적 소요와 곽상의 참여적 소요를 막론하고 양자 모두 적극적 사회변혁이 배제된 개인의 인격 수양론에 불과하다. 과연 그것이 역사적 변혁과 공동체의 진보를 촉발시킨 근대적 자유개념과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근대와 전통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곽상이 갖는 철학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곽상은『장자』를 해석하면서 개별적 주체에 대한 관념을 강화했다. 그는 ‘자연(自然)’, ‘자성(自性)’ 등의 개념을 통해 장자의 논의를 확장시켰는데, 특히 그는 독화(獨化)라는 말로 개체 관념을 종합했다.37)
이미 설명했듯 곽상은 방외(方外)와 방내(方內)의 통일을 중시하고 인사(人事) 속에서의 소요론을 피력했다. 견오와 연숙의 대화를 담은 「소요유」의 고사에 대한 곽상의 해설이 이를 잘 표현해 준다.
“무릇 성인은 비록 몸은 조정에 있지만 마음은 산림 속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夫聖人雖在廟堂之上,然其心無異於山林之中)”,
“(요임금은) 만물 위에 앉아 있어도 소요하지 않은 적이 없다(雖寄坐萬物之上而未始不逍遙也).”38)
또한 「대종사(大宗師)」에 실려 있는 방외, 방내를 둘러싼 공자와 자공 사이의 대화를 주석하면서 곽상은 “(물고기는 서로 물에 나아가고 사람은 서로 도에 나아간다.) 나아가는 바는 비록 다르지만 무사(無事)를 통해 일을 완성하고(得事) 방외(方外)로부터 방내(方內)를 아우른 다음에야 충만해지고 생명이 안정된다는 점에서는 양자 모두 차이가 없다”39)고 주석하며, 이어서 기인(畸人)에 대한 공자의 언급에 대해서는 “무릇 방내를 감싸 안는 자는 방외에서 노닌다. 홀로 방외에서 노닐면서도 방내를 묵묵히 감싸 안으며 만물의 자연스러움에 맡겨 천성(天性)이 저마다 충족되고 제왕(帝王)의 도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고 (畸於人) 하늘과 함께 하는 모습이다”40)라고 설명한다.
“방외에 노닐면서 방내를 감싸 안는다(遊外以冥內)”는 곽상의 관점은 구체적 사회현실(方外) 속에서의 소요를 적극적으로 긍정함으로써 소요의 공간을 확장했다는 철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장자해석에 있어서의 전환을 뒷받침하면서 개체관념을 선명하게 드러낸것이 바로 곽상의 독화(獨化) 개념이다.
이에 대해 탕일개(湯一介)선생은 『곽상과 위진현학(郭象與魏晉玄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37) 곽상의 ‘자연’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의 견해를 참조할 수 있겠다. “(곽상에게 있어서) ‘자연’은 곧 ‘나(我)’의 본질 및 형태이며 곧 모든 개별적 ‘나(我)’의 필연이다. 서구사상의 관념을 가지고 말하면 ‘자연’은 결국 ‘개체화’의 본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이 곧 하나의 존재가 독화(獨化)할 수 있는 논리적 전제이다.” 復旦大學中國哲學硏究室, 『中國古代哲學史』(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 298쪽.
38) 郭慶藩, 『莊子集釋』, 28쪽 및 34쪽.
39) 郭慶藩, 『莊子集釋』, 272쪽. “所造雖異, 其於由無事以得事, 自方外以共內, 然後養給而生定, 則莫不皆然也.”
40) 郭慶藩, 『莊子集釋』, 273쪽. “夫與內冥者, 遊於外也. 獨能遊外以冥內, 任萬物之自然, 使天性各足而帝王道成, 斯乃畸於人而侔於天也.”
"“깊고 심원한 경지에서 독화한다(獨化於玄冥之境)”는 것은 곽상의 철학이 제시한 최종 명제이다.
이른바 ‘독화(獨化)’란 독립자족하면서 존재, 변화하여 “밖으로는 도에 의지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에게 말미암지 않으며 홀연히 자득하여 스스로 변화하는 것(獨化)”이다.
또한 ‘심오한 경지(玄冥之境)’란 현실세계 바깥에 있는 현실을 초월한 피안(彼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 속에서 누리는 정신적 경지이다.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를 절대적인 독립존재로 바라 볼 수 있다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인식과 생활태도를 갖는 것이 바로 “심오한 경지에서 독화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인식과 태도에 입각해서 통치를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천하를 다스린다면 모든 사람이 본성에 따라 언제든 편안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서 곧 내성외왕을 구현한 사회일 것이다.41)"
41) 高柏園, 『莊子內七篇思想硏究』(臺北: 文津出版社, 2000), 16~17쪽 재인용.
곽상은 자연(自然), 자득(自得), 자조(自造), 자성(自性) 등과 같은 일군의 개념을 통해 독화론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개체에 대한 자각이 놓여 있다.42) 인용문에서 말하는 독화(獨化)에 기초한 내성외왕의 실현은 완벽한 인격을 갖춘 성인(聖人)이 통치자로 군림하는, 소위 철인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적 주체의 자기완성(獨化)을 말한다.
송대 주희(朱熹)는 『대학』을 소수의 통치 엘리트 육성을 위한 교본에서 성숙한 어른이면 누구나 습득해야 할 자기계발서로 바꿔 버림으로써 통치 주체의 확장을 도모하고 동치천하(同治天下)의 이상을 담아냈다. 즉 외왕(外王)을 군주의 수직적 지배를 둘러싼 담론에서 사회구성원 일반 및 관료계층을 겨냥한 공공의식의 내면화 문제로 그 외연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여영시(余英時) 교수는 위진(魏晉)의 역사적 특성을 ‘개인의 발견’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성격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성과 접목됨을 지적하기도 했다.43) 그렇다면 개체의 발견이라는 진보적 전환이 (적어도 철학적 사유에서는) 곽상의 독화론(獨化論)에 예비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체는 반드시 근대적 주체여야만 하고 모든 중국의 전통사상은 동양적 전제주의에 복속되어 있는 지나간 유산에 불과한 것일까?
42) “장자는 개체 및 개체성의 원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관심을 기울였다” 는 양국영의 지적처럼, 장자에게 개체관념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楊國榮, 『以道觀之:莊子哲學思想闡釋』(臺北:水牛出版社, 2007), 197쪽. 특히 같은 책 7장 「個體與自我」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택후 역시 장자가 노자와는 달리 개체로서의 인간을 부각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李澤厚, 정병석 역, 『중국고대사상사론』(한길사, 2005), 366쪽 참조.
43) 余英時의 이러한 언급은 중국에서의 근대적 가치의 수용을 內因과 外因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는 그의 일관된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결코 단편적 인상의 노출이 아니다. 그의 언급 이면에는 魏晉, 唐宋, 明末 淸初, 五四時期를 포괄하는 치밀하고 광범위한 자신의 연구 성과가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中國近世宗敎倫理與商人精神』(1987)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Ⅶ. 나오는 말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장자와 곽상의 정치관, 그들의 주창한 소요론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또한 유소감 교수의 논문을 계기로 논자 스스로 기존의 이해를 거듭 반성하고 논의를 진척시킬 수 있었다. 이 글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그의 논문을 통한 배움과 훈련의 과정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세기 근대적 이념과 서구의 철학 방법론이 유입되면서 중국 철학은 봉건적 가치, 억압의 도구, 비논리적 관념 등으로 쉽게 폄하되곤 했다. 또한 앞서 호적(胡適)의 견해에서 보았듯 장자철학은 소극적, 도피적, 자기기만적 사고를 조장하는 보수적 유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자의 정치관, 소요론 및 거기에 담긴 주체성과 자유문제는 전통과 근대라는 도식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보다 풍부한 주제 의식 속에서 장자나 곽상의 사유가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요관을 논하면서 장자철학이 가진 미학(美學)적 자아관이나 그것이 지닌 철학적 의미에 대해 전혀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사광(勞思光)은 장자의 자아는 곧 ‘심미적 자아(情意我, Aesthetic Self)’임을 지적했고,44) 이택후 역시 “장자철학은 종교적 경험을 근거로 삼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심미적 태도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말하면 장자철학은 바로 미학이다. (…) 우주론, 인식론으로부터 장자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미학의 관점에서 장자철학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45)고 하여 장자철학이 갖는 미학적 성격을 강조했다.
따라서 장자의 소요가 갖는 특성, 나아가 장자의 주체관념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자의 미학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적 태도가 곽상에 이르러 어떻게 변형 또는 축소되었고, 그것이 주체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족함이 논문을 마무리하며 보다 나은 비판과 반성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44) 勞思光, 정인재 역, 『중국철학사』(탐구당, 1992), 237쪽, 267쪽 등.
45) 李澤厚, 정병석 역, 『중국고대사상사론』(한길사, 2005), 380쪽.
참고 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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