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공자

논어(論語) 제 03편 ㅡ 팔일(八佾) 編

rainbow3 2020. 1. 24. 23:10


♣ 논어(論語) 제 03편 ㅡ 팔일(八佾) 編   

      
 <1>           
孔子 謂季氏(공자 위계씨)하시되 : 공자가 <계씨>를 일러 말씀하시기를,           
八佾(팔일)로 舞於庭(무어정)하니 : “자기 뜰에서 팔일무를 추게 하다니           
是可忍也(시가인야)면 : 이런 일도 저지르는데           
孰不可忍也(숙불가인야)리오 : 무슨 일인들 감히 하지 못할 것인가?”          
         
◇팔일무는 천자의 연회에서만 출 수 있는 춤이었다. 계씨 권문의 세도가 등등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2>           
三家者以雍徹(삼가자이옹철)이러니 : 세 대부의 집에서 제사를, (천자의 제례인) <옹>으로서 마치니           
子曰 相維辟公(자왈 상유벽공)이어늘 : 공자 말씀하시기를, “제후는 제사를 돕고,           
天子穆穆(천자목목)을 : 천자의 모습은 그윽하다는 노래를  (천자만 쓸 수 있는'雍(옹)'가를)         
奚取於三家之堂(해취어삼가지당)고 : 어찌 세 대부의 집에서 취할 수 있겠는가!”          
         
◇당시 노나라는 3대 명문가(맹씨, 숙씨, 계씨)의 힘이 왕의 힘을 능가하고 있었다. 공자는 이런 상황을 비판했다.         
         
 <3>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 “사람으로 어질지 아니하면        
如禮何(여례하)며 : 예절이 무슨 소용이며,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 사람이 어질지 아니하면        
如樂何(여락하)리오 : 음악을 해서 무슨 소용이리오.”      
      
 <4>           
林放(림방)이 問禮之本(문례지본)한대 : <방림>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子曰 大哉(자왈 대재)라 問(문)이여 : 공자 말씀하시기를, “중요한 질문이로다.           
禮(례)는 與其奢也(여기사야)론 : 예는, 그 사치함보다는           
寧儉(녕검)이요 : 검소한 것이 좋다.           
喪(상)은 與其易也(여기역야)론 : 상례는, 그 형식적인 예법보다는           
寧戚(녕척)이니라 : 진정 슬퍼하는 마음이 중요하니라.”          
         
<5>           
子曰 夷狄之有君(자왈 이적지유군)이 : 공자 말씀하시기를, “오랑캐에게 왕이 있음은           
不如諸夏之亡也(불여제하지망야)니라 : 왕이 없는(임금을 업수히 여기는) 중국보다 낫구나.”            
         
◇亡(망)을 無(무: 없을 무)로 읽었다.         
         
 <6>           
季氏旅於泰山(계씨려어태산)이러니 :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를 지내니           
子謂冉有曰(자위염유왈) : 공자께서 <염유>에게 말하기를,          
女弗能救與(녀불능구여)아 : “네가 (계씨의 잘못을) 막을 수 없느냐?”          
對曰 不能(대왈 불능)이로소이다 : 대답하여 말하기를, “못하겠습니다.”          
子曰 嗚呼(자왈 오호)라 : 공자 말씀하시기를, “아아,           
曾謂泰山不如林放乎(증위태산불여림방호)아 : 누가 태산이 (예의 근본을 묻던)<임방>만 못하다 하더냐?”          
         
◇태산은 천자가 旅(여)제사를 지내는 곳이어서, 노나라 지방 권문인 계씨가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곳이었다.         
◇태산이 임방처럼 예의 근본을 따져 계씨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꾸짖음이다.         
◇冉有(염유), 이름은 求(구), 자는 子有(자유). 염유 또는 염구로 불린다.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 어렸다. 이상보다는 현실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7>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君子無所爭(군자무소쟁)이나 :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으나           
必也射乎(필야사호)인저 :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다툰다.           
揖讓而升(읍양이승)하여 : 읍하고 겸양하여 (활쏘는 자리에) 오르고           
下而飮(하이음)하나니 : (활을 쏘고) 내려와서는 (같이 술을) 마신다.           
其爭也君子(기쟁야군자)니라 : 그러한 다툼이 군자의 다툼이니라.”         
         
 <8>           
子夏問曰 巧笑倩兮(자하문왈 교소천혜)며 : <자하>가 묻기를,           
美目盼兮(미목반혜)여 : “고운 미소 청초하고 예쁜 눈은 반짝인다.           
素以爲絢兮(소이위현혜)라하니 : 소박한 흰색으로 현란한 무늬 이루었구나. 하니           
何謂也(하위야)잇고 : 이 시는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繪事後素(회사후소)니라 :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뒤라는 뜻이니라.”         
曰 禮後乎(왈 례후호)인저 : 말하기를 “예절은(마음가짐을 갖추고 난) 그 뒤입니까?”         
子曰 起予者(자왈 기여자)는 :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를 일으키는 자는           
商也(상야)로다 : <상:자하>로구나.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로다 :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도다.”          
         
 <9>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夏禮(하례)를 吾能言之(오능언지)나 : “하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는 있으나,           
杞不足徵也(기부족징야)며 : 기나라의 일은 충분히 증명할 수 없으니라.           
殷禮(은례)를 吾能言之(오능언지)나 : 은나라의 예도 내가 능히 말할 수는 있으나           
宋不足徵也(송부족징야)는 : 송나라의 일은 충분히 증명할 수 없다.           
文獻不足故也(문헌부족고야)니 : 문헌이 부족한 까닭이니라.           
足則吾能徵之矣(족칙오능징지의)로리라 : 충분하다면야 (선대의 예를)내가 증명할 수 있다.”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손이 이어 받은 나라다.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손이 이어 받은 나라다.         
◇고대 중국의 역사는 하나라를 거쳐 은나라(상나라)로, 그리고 주나라로 이어졌다.          
◇그래서 주나라가 천하를 정복한 공자 때에도 멸망한 나라의 후손들이 기나라와 송나라에 존재할 수 있었다.         
         
 <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자왈 체자기관이왕자)는 : 공자 말씀하시기를, “<체제>는 이미 정성이 없으니,           
吾不欲觀之矣(오불욕관지의)로라 : 내가 보려고 하지 않는다.”         
         
◇禘(체)제사는 주나라의 국가적인 큰 행사였다.          
◇중요한 제사가 진심 없이 형식적으로만 치러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신 것이다.         
         
 <11>           
或問禘之說(혹문체지설)한대 : 어떤 사람이 <체제>의 뜻을 물으니           
子曰 不知也(자왈 부지야)로라 : 공자 말씀하시기를, “알지 못하노라.           
知其說者之於天下也(지기설자지어천하야)에 : 그 뜻을 아는 자는 천하의 일을 함에도           
其如示諸斯乎(기여시제사호)인저하시고 : 이처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하시고           
指其掌(지기장)하시다 : 그 손바닥을 가리키시었다.             
         
 <12>           
祭如在(제여재)하시며 : 제사를 지내심에 조상이 함께 계신 듯이 하시고,           
祭神如神在(제신여신재)러시다 : 신을 제사지내되 신이 함께 있는 듯이 하시었다.           
子曰 吾不與祭(자왈 오불여제)면 : 공자 말씀하시기를, “내가 함께 제사에 참여치 않으면,           
如不祭(여부제)니라 :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같으니라.”          
         
<13>           
王孫賈問曰(왕손가문왈) : <왕손가>가 묻기를,          
與其媚於奧(여기미어오)론 : “그 <오신: 집안 최고의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는           
寧媚於竈(녕미어조)라하니 : 차라리 <조신: 부뚜막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낫다는데.          
何謂也(하위야)잇고 :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子曰 不然(자왈 불연)하다 :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獲罪於天(획죄어천)이면 : 죄를 하늘에서 얻으면           
無所禱也(무소도야)니라 : 기도할 곳이 없습니다.”         
         
 <14>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周監於二代(주감어이대)하니 : “주나라는 하나라 은나라 이대를 본받았으니           
郁郁乎文哉(욱욱호문재)라 : 빛나고 성대하구나, 그 문물이여.           
吾從周(오종주)하리라 : 나는 주나라를 쫓으리라.”         
         
 <15>           
子入太廟(자입태묘)하사 :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시어           
每事問(매사문)하신대 : 매사를 물으시니           
或曰(혹왈)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孰謂鄹人之子知禮乎(숙위추인지자지례호)아 : “누가 <추>지방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하였느냐.           
入太廟(입태묘)하여 : 태묘에 들어가서           
每事問(매사문)이온여 : 매사를 묻는구나.”          
子聞之(자문지)하시고 : 공자께서 들으시고           
曰 是禮也(왈 시례야)니라 :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예이니라.”         
         
◇大廟(태묘)는 노나라의 사당이다. 鄹(추)는 공자의 고향이다.         
◇공자께서는 모르는 것 묻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배움에 있어 담백했다. 권위주의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6>           
子曰(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射不主皮(사부주피)는 : “활을 쏘는데 과녁을 뚫는 것을 주로하지 않음은           
爲力不同科(위력불동과)니 : 사람의 힘이 동등하지 않은 것을 말함이니           
古之道也(고지도야)라 하니라 : 옛사람들의 도가 이와 같았다.”          
         
 <17>           
子貢欲去告朔之餼羊(자공욕거고삭지희양)한대 : <자공>이 고삭제에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절차를 없애려하니           
子曰 賜也(자왈 사야)아 : 공자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爾愛其羊(이애기양)가 : 너는 그 양을 아껴서 그러했겠지만,          
我愛其禮(아애기례)하노라 : 나는 고삭제의 예를 아끼고 싶구나.”         
         
 <18>           
子曰 事君盡禮(자왈 사군진례)를 : 공자 말씀하시기를,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니           
人以爲諂也(인이위첨야)로다 : 사람들이 이것을 아첨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쉽게 오해한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19>           
定公問 君使臣(정공문 군사신)하며 :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臣事君(신사군)하되 :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           
如之何(여지하)잇고 :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孔子對曰(공자대왈) : 공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君使臣以禮(군사신이례)하며 : “임금이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며           
臣事君以忠(신사군이충)이니이다 : 신하가 임금을 섬기기를 충성으로써 해야 합니다.”         
         
◇정공은 노나라의 군주로, 애공의 아버지다.         
◇忠(충)은 자기 진심을 다한다는 뜻이다. 임금이나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20>           
子曰 關雎(자왈 관저)는 : 공자 말씀하시기를, “시경,<관저>편은           
樂而不淫(락이불음)하고 : 화락하되 음란하지 않고           
哀而不傷(애이불상)이니라 : 슬퍼하되 감상에 빠지지 아니하였다.”         
         
 <21>           
哀公(애공)이 問社於宰我(문사어재아)한대 : <애공>이  <제아>에게 <사>를 물으시니           
宰我對曰(재아대왈) : <재아>가 대답하기를,          
夏后氏(하후씨)는 以松(이송)이요 :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고           
殷人(은인)은 以柏(이백)이요 :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심고           
周人(주인)은 以栗(이률)이니 :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曰 使民戰栗(왈 사민전률)이니이다 : 백성들이 두려워(전율)하게 함을 말합니다.”         
子聞之(자문지)하시고 : 공자 이를 들으시고           
曰 成事(왈 성사)라 不說(불설)하며 : 말씀하시기를, “다 된 일이니 말하지 않겠다.           
遂事(수사)라 不諫(불간)하며 :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旣往(기왕)이라 不咎(불구)로라 : 이미 지나간 일이라 나무라지 않겠다.”         
         
◇社(사)는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社稷(사직)이라고도 한다.         
         
 <22>           
子曰 (자왈) : 공자 말씀하시기를,          
管仲之器小哉(관중지기소재)라 : “<관중>의 그릇이 작구나.”         
或曰(혹왈)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管仲(관중)은 儉乎(검호)잇가 : “<관중>은  검소합니까?“          
曰 管氏有三歸(왈 관씨유삼귀)하며 : “<관중씨>가 부인이 셋이나 있고,           
官事(관사)를 不攝(불섭)하니 : 집안일을 보는 사람도 일을 겸하지 않았으니           
焉得儉(언득검)이리오 : 어찌 검소하다고 하겠느냐?”         
然則管仲(연칙관중)은 知禮乎(지례호)잇가 :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압니까?”          
曰 邦君(왈 방군)이야 : 말씀하시기를, “나라의 임금이라야           
樹塞門(수새문)이어늘 : 수새문(집안의 낮은 담장, 제후들만 함)을 쓸 수 있거늘           
管氏亦樹塞門(관씨역수새문)하며 : <관씨> 또한 수색문을 썼고,           
邦君(방군)이야 : 나라의 임금이라야           
爲兩君之好(위량군지호)에 : 다른 임금을 맞아 잔치에 쓰기 위하여           
有反坫(유반점)이어늘 : <반점:술잔 받침, 제후들만 사용>을 사용하거늘           
管氏亦有反坫(관씨역유반점)하니 : <관씨>가 또한 반점을 쓰고 있으니           
管氏而知禮(관씨이지례)면 : <관씨>가 예를 안다고 하면           
孰不知禮(숙부지례)리오 : 누군들 예를 알지 못 한다고 하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당시 전설적인 명재상이었다. 공자보다 100년 전 사람이다.         
◇관중의 행적을 빌어 스스로의 세도를 정당화 하는 당시 노나라 권문들을 비판한 것이다.         
         
 <23>           
子語魯太師樂曰(자어로태사락왈) : 공자께서 노나라 <태사악(음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말씀하시기를,           
樂 其可知也(락 기가지야)니 : “음악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始作(시작)에 翕如也(흡여야)하여: 시작함에 흩어진 모든 가락을 잘 합해지고           
從之(종지)에 純如也(순여야)하며 : 끝나갈수록 잘 조화되고           
皦如也(교여야)하며 繹如也(역여야)하여 : 명료해지고, 찬란해집니다.           
以成(이성)이니라 : 이렇게 한곡이 이루어집니다.”         
         
◇공자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악기도 좋아했고, 노래도 좋아했다.         
         
 <24>           
儀封人(의봉인)이 請見曰(청견왈) : <의> 땅을 지키는 국경 관리인이  뵙기를 청하여 말하기를,          
君子之至於斯也(군자지지어사야)에 : “군자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吾未嘗不得見也(오미상불득견야)로라 : 내가 일찍이 뵙지 못한 분은 없었소.”         
從者見之(종자견지)한대 : 종자가 뵙게 하였더니,           
出曰 二三子(출왈이삼자)는 :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何患於喪乎(하환어상호)리오 : “당신들은 어찌 그리 근심하십니까?           
天下之無道也久矣(천하지무도야구의)라 : 천하가 무도한지 오래 되었으나,           
天將以夫子爲木鐸(천장이부자위목탁)이시리라 :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공자가 정치 이상을 펴기 위해 천하를 떠돌다 곤궁에 처한 시절의 이야기다.         
◇그저 그런 장삼이사들에게도 인생과 배움과 깨우침은 귀한 것이다. 의봉인은 본질을 볼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25>           
子謂韶(자위소)하시되 : 공자께서 소악을 이르시기를,           
盡美矣(진미의)요 : “지극히 아름답도다.           
又盡善也(우진선야)라하시고 : 또 더할 것 없이 좋구나.”          
謂武(위무)하시되 : <무악>을 이르시기를,           
盡美矣(진미의)요 : “지극히 아름답도다.           
未盡善也(미진선야)라하시다 : 그러나 지극히 아름답지는 않도다.”         
         
◇韶(소)는 순임금의 음악이고, 武(무)는 주나라의 시조 무왕의 음악이다.         
         
 <26>           
子曰 居上不寬(자왈 거상불관)하며 : 공자 말씀하시기를,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아니하며,           
爲禮不敬(위례불경)하며 : 예를 하되 공경하지 아니하며,           
臨喪不哀(림상불애)면 : 상예에 임하여 슬퍼함이 없다면,           
吾何以觀之哉(오하이관지재)리오 : 내가 어찌 그런 모습을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관용, 공경, 슬픔, 이런 것들이 제사와 음악과 무용과 禮(예)의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