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周易) 乾卦第一
선대 학자의 말에 의하면 역경은 세 성인을 거쳐서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세 성인은 곧 복희(伏羲),문왕(文王),공자(孔子)를 가리켜 말한 것으로 주공(周公)은 문왕에게 포함시켰다,복희는 아주 오래 된 분이니 문왕과 주공과 공자만을 가지고 말한다면,건(乾)자 아래의 원형리정(元亨利貞)은 문왕의 단사(彖辭)이고,초구(初九)아래의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주공(周公)의 효사(爻辭)이며,단왈(彖曰)과 상왈(象曰)은 공자가 경(經)을 풀이한 말로서 이것이 바로 대상(大象),소상(小象),단전(彖傳),상전(象傳)이다
성인의 생각은 다름이 없을 것 같다.그러나 원형이정으로 말하자면 크게 형통함을 위주로 하고 이로우이 정고(正固)함에 있는 것은 문왕의 생각이고,공자의 경우는 네 덕으로 나누어서 말하였으니,이는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단사와 효사로 말하자면 단사에서는 '순전히 길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라도 효사에서는 "쓰지 말라(勿用)"고하고 "위태롭다(厲)"고 하고 "후회가 있다(有悔)"고 하였으니,이는 주공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
괘사(卦辭)와 효사,계사(繫辭)에서는 점서(占書)의 응용을 위주로 말하였으나 단전과 상전에서는 오직 성인의 지위와 덕망의 측면에서만 말하였으니,이는 또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주공과 다른 점이다.원형이정을 이미 네 덕으로 나누어 놓고서도 둔괘(屯卦)이하에서는 문왕의 생각을 따랐으니,이는 공자의 말이 또 그 자체로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이는 모두 "역경"의 중요한 강령(綱領)인데 성인이 입언(立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 이렇게 다르니 어느 것을 따라야 하겠는가?(홍재전세 제101권,경사강의 건괘)
(윤행임/尹行恁이 대답하였다)
역경 한 부가 세 성인을 거쳐서야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으니 말의 표현은 비록 다르나 그 뜻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왕이 괘사를 붙이게 된 것은 복희의 괘에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원형이정이란 네 글자에는 이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괘의 기본 덕만을 말하고 괘의 응용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주공이 효사를 붙이게 된 것인데,효는 움직여 변하는 것으로서 길흉회인(吉凶悔吝)이 거기에서 생깁니다,그래서 "쓰지말라"고 하고 "후회가 있다"고 하고 "위태롭다"고하고 "흉하다"고 하였으나,사실은 그것이 문왕의 괘사 속에 들어 있는 뜻입니다.그러나 그 학설을 내세움에 있어서는 상(상)과 수(수)를 근본으로 하여 점(점)으로 쓰이는 것뿐이었고 행사(행사)에 절실한 의리(의리)에 대해서는 그래도 미비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단전과 상전을 지어서 네 덕의 명목(명목)을 나누고 성인의 지위를 설명하여 문왕과 주공때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공의 역은 곧 문왕의 역이고 공자의 역은 곧 주공의 역이니 이 어찌 다른 가운데에서도 자연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홍재전서)
<乾卦第一>
乾, 元, 亨, 利, 貞. 건은 원코 형코 이코 정하니라
乾/건 : 1)하늘(乾元亨利貞),
2)임금(乾爲君),
3)아비(乾爲父),
4)남자(乾 道成男),
5)괘이름,건괘(乾卦)=순양(純陽)의 괘로 양(陽),남(男)을 뜻하며,방위
로는 서북(西北),乾 西北之卦也,
6)굳세다,부지런하다,자강불식함(乾健也)
元/원 : 1)으뜸(처음,시초)(한해의 첫째되는 날/元旦)(연호및 연호의 제1년)
2)근원
3)크다
4)머리
5)백성,민중,창생
6)기운,천지의 대덕(大德).元 天地之大德 所以生生萬物也
亨/형 : 형통하다,아래 위로 통함.亨通,品物咸亨
利/리 : 날카롭다,화(和하다,통(通)하다,이롭다,유익하다,편리하다,이기다,
이자,이익(利益),승전
貞/정 : 곧다,정하다(안정함),정조(여자의 절개),진실한 마음(精誠),
貞固足以幹事,점치다(점을 쳐서 알아봄),역(易)의 사덕(四德)의 하나,
만물 성숙(成熟)의 德. 乾 元亨利貞,내괘(內卦)/64괘에서 아래 3효(爻)
<元亨利貞은 性이고 生長收藏은 情이다/朱子>
원형이정은 성(性)이고 發生하고 亨에 의해 자라나고 利에 의해 수렴되고 貞에의해 감추어지는 것은 정(情)이다
元에의해 발생하고 형에의해 자라나고 이에 의해 수렴되고 정에의해 감추어지는 것은 심(心)이다
<元亨利貞은 天道之常이요,仁義禮智는 人性之綱이다/小學題辭>
<仁義禮智는 性이고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情이다/ 朱子>
인의예지는 性이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사양하고 분별하는 것은 情이다
인에 의해 사랑하고 의에 의해 미워하고 예에 의해 사양하고 지에 의해 분별하는 것은 심(心)이다
<天地의 性은 太極 本然의 妙理로 만수(萬殊)의 一本이고
기질(氣質)의 性은 두 기(氣)가 어울려 운행하여 생긴 것으로 一本이면서 萬殊이다.
氣質의 性은 곧 理가 氣質속에 떨어져 들어가 있는 것일 뿐 따로 한 性이 있는 것이 아니다/朱子>
주자가 말하기를"문왕의 본뜻은 건괘와 곤괘는 다른 괘와 마찬가지로 크게
형통하되 정도(正道)로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공자가 단전(彖傳)과 문언(文言)을 지음에 이르러 처음으로 건괘와 곤괘를 사덕(四德)으로 나누었고 다른 괘들은 예전 그대로 두었는데,문왕과 공자 두 성인의 뜻이 다름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기 하나의 이치를 밝혔을 뿐이다"하였다
朱子가 주자어류에서 말하기를
"원형이정은 이(理)에도 이 네 가지가 있고 기(氣)에도 이 네 가지가 있다"
주자는 또 말하기를 "천도로 말하면 원형이정이고 사계절로 말하면 춘하추동이고
기후로 말하면 온량조습(溫凉燥濕)이다"하였으니 이것은 理와 氣를 분별하되 오로지 理로써 원형이정을 말한 것이다
선대학자가 이르기를 "64괘는 이미 복희씨때에 갖추어졌으나 그 이름만 있었고 설명은 없었는데 문왕이 비로소 단사(단사)를 붙였으니 건자는 복희의 글이고 원형이정은 문왕의 글이다"라고 하였다.진실로 그 말대로라면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이호미)고 한 곳과 또는 "들에서 사람과 같이한다(동인우야)"고 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하여 배속시켜야 하는가?
(김계략이 답하기를)
복희 때에는 괘의 획만 있고 글은 없었는데 문왕이 비로소 설명을 붙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선대 학자들이 이미 자세히 논하였고 소자(소자)의 선천도(선천도)에서도 설명하여 밝힌바가 있습니다(홍재전서제 101권)
마치 太極이 다만 원형이정(元亨利貞)이고 원형이정밖에 따로 太極이 있지 아니한 것과 같습니다(송자대전)
원형이정을 정전(程傳)에서는 네 가지 덕으로 풀이하였는데 주자는 점사(占辭)로 보고서 "크게 형통하며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하였다.이것은 책 ㅁ첫머리의 제일가는 의의(意義)인데 정자와 주자의 말이 이렇게 차이가 나니 어느 학설을 따라야 하겠는가?
문언(文언)에서는 "원은 선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움의 모임이고 이는 의의 조화이고 정은 일의 근간이다"라고 하였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후로 여러 학자들이 모두 네 가지 덕으로 설명한 것도 대개 전수(傳受)한 바가 있는 것이다.그런데 주자같이 성인을 돈독하게 믿는 이로서 문언의 훈고를 따르지 않고,아름답지 못하다는 비평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당하게 점사로 단정을 지은 것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정동관이 답하기를)
주자가 반드시 점사로 풀이한 것은 다른 괘의 용례와 같게 하고자 한것입니다.<주자어류>에 "문왕의 뜻은 '크게 형통하며 정고함이 이롭다'고만 말한 것이지 애당초 네 계절에 분배한 것이 아닌데 공자가 이 네 글자의 의미가 좋은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네 가지로 나누어 말하였으니,공자의 역(易)은 문왕의 역과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이렇게 보면 주자의 <本義>는 애당초 문언의 뜻에 어긋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홍재전서105권 건괘)
그리고 건괘의 원형이정과 같은 경우 공자가 하늘의 도와 성의 깊이를 유추하여 설명하면서 이를 인의예지의 네가지 덕으로 밝혔고 여러 학자들도 네 가지 덕으로 해석하였는데 오직 주자만 이를 점사(점사)로 풀면서 "크게 형통하면서 정고(정고)함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하여 점사로 단정한 것인가?
계사에서는 "기구 만드는 것으로 보는 이는 괘효(卦爻)의 상(象)을 위주로 하고 복서(卜筮)로 보는 이는 괘효의 점을 위주로 한다"고 하였으니 기구를 만드는 것과 복서를 하는 것은 역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그런데 주자는 역경은 점(占)을 보는 책으로서 그 점을 통하여 의리(義理)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이는 위의 성현(聖賢)이 전수(傳受)한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安錫任이 답하기를)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주자의 "역경은 점을 보는 책으로서 그 점을 통하여 의리를 유추할 수 있다"라는 말은 대개 역경의 대의입니다.문왕과 주공의 단사(彖辭)와 상사(象飼)는 복희의 괘획을 근거로 상수(象數)를 깊이 연구하여 점치는 자가 길흉의 의심스러움을 단정할 수 있게 하였고,공자가 십익(十翼)을 지은 것은 세 성인의 상점(象占)을 바탕으로 의리를 미루어 넓혀서 배우는자가 진덕수업(進德修業)할 요체를 밝힐 수 있게 하였으니 이는 각각 따로 한 부의 역이 된 것이지만 마침내 병행을 하면서 사실상 서로 보충해 주는 것이 됩니다,소자(소자)는 오로지 상수(상수)로 보았고 정자(정자)는 주로 의리로 보았으나,이 역시 서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중략)
그러나 주자가 지은 <본의>의 경우는 단사(단사)와 십익(십익)에 대해 각각 그 근본 취지에 따라 풀이한 것입니다.그러므로 그 책의 이름을 <본의>라고 하였으니 그 의의는 아마 "이 책은 곧 세 성인의 본뜻이다"라고 한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건괘의 단사(단사)를 풀이하여 "크게 형통하면서 정고(정고)함이 이롭다"고 하면서 점사(점사)로 단정하였고 십익의 단사(단사)를 풀이할 적에는 마침내 '원형이정'의 네가지 덕에 입각하여 거듭 밝혔던 것입니다
대개 곤괘(곤괘)이하의 여러 괘(괘)에서 일컬은 원형(원형)과 이정(이정)은 마침내 네 가지 덕을 이룰 수가 없으니 이를 통하여 점사가 된다는 것을 증험할 수 있습니다(홍재전서 106권 역경)
元이 元에서 생겨나지 않고 貞에서 생겨나는 것은
곧 음양이 서로 근본이 되는 이치이며 천지의 氣는 모이지 않으면 발산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주자가 이른바 動함은 靜한데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음양에 대해서는 유행(流行)으로 말한 경우도 있고(이른바 變易으로 春夏秋冬과 같은 따위이다),
대대(對待)로 말한 경우도 있습니다(이른바 交易으로 동서남북과 같은 따위이다).원형이정은 유행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元이 끝나면 亨이 되고 亨이 끝나면 利가 되고 利가 끝나면 貞이되고 貞이 끝나면 다시 元이 됩니다.
그러니 元은 貞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의예지는 대대(對待)로 말하여 각각 간가(間架)가 있고 각각 묘맥(苗脈)이 있어서 仁은 智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천지의 사이에는 어디를 가도 음양이 없는 곳이 없어서 이쪽을 보아도 역시 이것이고 저쪽으로 보아도 역시 이것이니 일정한 설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貞)이 四德의 끝에 있는 것은 바로 冬이 四序의 끝에 있는 것입니다
끝나고서 다시 시작되지 않으면 生成의 이치가 사그라지고 조화의 功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貞)이 되었다가 다시 元이되고 冬이 되었다가 또다시 春이 되며 밤이 되었다가 다시 아침이 되고 그믐이 되었다가 다시 초하루가 되는 것으로 이는 만고에 뻗쳐 있으면서도 능히 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자가 이른바 "動과 靜은 단서가 없고 陰과 陽은 始初가 없다"라고 한것과
주자가 이른바 "앞으로 미루어 나아가 보아도 그 시초를 볼 수가 없고 뒤로 끌어서 나아가 보아도 그 끝을 볼 수가 없다"라는 것은 모두 이것을 이른 것입니다(우복집 제 14권)
주역의 건괘(乾卦) 괘사(卦辭)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하였는데 공자는 이것을 네가지 덕으로 설명하였으니,단전(彖傳)에 이른바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해서 하늘을 통솔한다(萬物資始 乃統天)는 것은 원(元)의 사업이요,구름이 흘러다니고 비가 내림에 온갖 물건이 형체를 간직한다(雲行雨施 品物流形)는 것은 형(亨)의 사업이요,乾道가 변화함에 각각 性命을 간직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는 것은 이(利)의 사업이요,대화를 보합한다(保合大和)는 것은 정(貞)의 사업이다.그리고 문언전(文言傳)에 이른바 선(善)의 우두머리요,아름다움의 모임이요,의(義)의 화함이요,일의 근간(根幹)이라는 것은 원형이정의 실제이다.
천도의 조목은 네 가지 일 뿐인데 선(善)에 으뜸이 되고 아름다움을 모으고 의를 조화롭게 하고 일에 근간이 되어서 천하의 도가 이에 다하며 의뢰하여 시작하고 형체를 간직하고 각각 성명을 간직하게 하고 보화(保化)해서 천하의 물건이 이에 다한다.이것이 음양(陰陽) 및 오행(五行)과 명칭을 달리하는 까닭은 음양과 오행은 기(機)로써 말한 것이요.원형이정은 덕(덕)으로써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원과 형은 성(誠)이 통함이니 기운에 있어 양(陽)이요,이,정은 성(誠)이 돌아옴이니 기운에 있어 음(陰)이다.그렇다면 음양의 밖에 따로 원형이정의 네가지 덕이 있겠는가.
원(元)이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게 하는 것은 목(木)의 기운이 행하는 것이요,형(亨)이 만물의 형체를 간직하게 하는 것은 화(火)의 기운이 행하는 것이요,이(利)가 각기 만물의 성명을 간직하게 하는 것은 금(金)의 기운이 행하는 것이요,정(精)이 만물을 보합(保合)하게 하는 것은 수(水)의 기운이 행하는 것이요,네 가지 덕(德)이 모두 그 쓰임을 진실하게 하는 것은 토(土)의 기운이 행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오행의 밖에 따로 네가지 덕이 있겠는가.음양의 두 기운이 왕래함과 오행이 순히 펴짐은 모두가 네 가지 덕이 제때에 행해지기 때문이다.굴신(屈伸)으로써 말하기 때문에 음양이라 이르고 변화(變化)로써 말하기 때문에 목화금수토라 이른다.만약 덕(德)으로써 말하면 이것을 원형이정이라 하는 것이니 진실로 음양과 오행과 네 가지 덕이 각기 그들 나름의 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네 가지 덕이 나뉘어서 넷이 된 것은 이치 가운데에 본래 이 네 쪽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조화가 유행하는 즈음에 나아가매 곧 이 선후(先후)와 시종(始終)의 차서(次序)와 분한(分限)이 있는 것 뿐이다,네 가지 덕은 본래 한 이치이니 처음에 어찌 이른바 원과 형과 이와 정이라는 명칭이 있을 수 있겠는가.공용(功用)에 나타남에 이르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였으므로 원이라 이르고 형체를 부여받았으므로 형이라 이르고 각각 성명을 간직하였으므로 이라 이르고 보합하였으므로 정이라 이른 것이다.다만 똑같은 한 태극인데 원할 수 있고 형 할 수 있고 이 할 수 있고,정 할수 있으므로 원할때를 당하면 원하고 형할때를 당하면 형하고 이 할때를 당하면 이하고 정할때를 당하면 정하는 것이다.덕의 수(首)로써 말하면 亨이 되고 利가 되고 貞이 됨은 곧 한 원(元)이 변(變)한 것이요,덕의 종(終)으로써 말하면 元이 되고 亨이되고 利가 됨은 곧 한 貞이 화(化)한 것이다.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 있는 형(亨)과 이(利)는 곧 元을 받들어서 貞을 이루는 것이다
덕은 네 가지에 그치나 위로는 천지의 도를 다하고 아래로는 만물의 성을 다하니 어찌 네가지 덕이 한 태극이 아니겠는가(여헌선생 문집 제6권)
다산이 이여홍에게 답하는 서(書)에서
주신 편지에 인성(人性)의 인의예지를 천도(天道)의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배합하셨는데,이런 의논은 익히 듣고 본것이니,누가 의심을 하겠습니까,그러나 원형이정은 본래 인사(人事)이지 천도가 아니며,본래 점례(占例)이지 이론이 아닙니다,건(乾)의 원형이정과 곤(坤)의 원형이정과 둔(屯)의 원형이정과 수(隨)의 원형이정과 임(臨)의 원형이정과 혁(革)의 원형이정과 무망(无妄)의 원형이정이 인사의 점례가 되는 것은 똑같습니다,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주역"을 읽기 좋아하지 않아 다만 건(乾卦)의 원형이정만을 보고는 문득 천도에 이 사덕(四德 元亨利貞)이 있다고 하고 건괘에서 논한 것이 본래 天道가 아닌 것인 줄을 모릅니다,잠룡물룡(潛龍勿龍)과 종일 건건 석척약(終日 乾乾夕惕若)이 모두 人事를 主로 하여 말한 것인데,어찌 元亨利貞만이 홀로 천도가 되겠습니까.
건(乾)이 천상(天象)이 되기 때문에 만물이 의지하여 비로소 생겨나고(萬物資始),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것(雲行雨施)은 천도이지만 그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원형(元亨)이 되고 각각 성명을 갖추어 주고(各正性命) 태화를 보합하는 것(保合太和)은 천도이지만 사람에 있어서는 이정(利貞)이 됩니다.그리고 또 원형이정은 본래 두가지 일이고 네 가지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원형은 처음으로 태어나서 형통한 것이고(始而亨)利貞은 性情이다"하였으며,그 여러 괘에서도 모두 '크게 형통하여 정하다(大亨以貞)하기도 하고 혹은 "크게 형통하고 정하다(大亨貞)하기도 한데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오직 문언(文言)에서만은 이것을 四德으로 풀었는데 이는 본시 "주역'을 담론하는 사람들이 글자마다에서 상(象)을 취하는 법인 것이요."주역"의 본의(本義)가 아닙니다.그러므로 주자(朱子)는 "이천(伊川)이 저 四德에 구애되었다"<정이(程頤)는 정전(程傳)에서,"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고 하여 네가지로 말하였고 주희(朱熹)는 본의(本義)에서 "乾은 元亨하고 利貞하다"하여 두가지로 보았다>하였으니 이 元亨利貞을 확정하여 네 가지로 만들어서는 불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주자가 '소학(小學) 제사(題辭)'에 "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함이고 인의예지는 인성의 벼리이다(元亨利貞天道之常 仁義禮智人性之綱)하고 규봉(圭峯)의 "원각경" 서(序)에 "원형리정은 하늘의 도이고 상락아정(常樂我淨)<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오(汚)에 대칭한 말로 득도의 경지를 말함>은 부처의 덕이다(元亨利貞天之道也常樂我淨佛之德也)한것은 바로 문장(文章)의 대비법(對比法)이니 근거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천(天)에 있어서는 이(理)라하고 물(物)에 있어서는 성(性)이라한다
천에 있어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하고 물(物)에 있어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 한다.그 실은 하나이다(湛軒西,心性問)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고,태어난 만물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으니,이른바 인(仁)입니다.하늘에 있어서는 원형리정(元亨利貞)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인의예지(仁義禮知)가 되는데 원(元)이란 만물을 낳는 것의 시작이고 형(亨)이란 낳은 만물이 성장하는 것이고,이(利)란 낳은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고,정(貞)이란 낳은 만물을 저장하는 것이니,원(元),형(亨),리(利),정(貞)을 포함하는 것이며 인(仁)또한 그렇습니다/시강관 표연말이 성종에게 晝講에 나아가서 아룀>
<원(元)/건곤(乾坤) 양괘(兩卦)의 사덕(四德)인 원형리정(元亨利貞)의 하나로서 만물의 시발을 뜻하며 사시(四時) 중의 봄(春)에 해당하고 그 덕(德)은 인(仁) 이라고 함>
<하늘의 사시(四時)는 모두 다르지만 그 근본은 사물을 살아가게 하는 마음이며,사람의 사단(四端)은 다른 듯하지만 그 근본은 측은해하는 마음입니다,하늘이 가을과 겨울에 만물을 죽이니 매우 엄한 듯하지만 천지의 본심은 장차 살리고자 함입니다.그러므로 원형리정(元亨利貞)중에 원(元)이 으뜸이 되는 것이며,제왕이 형벌로 아랫사람을 다스리지만 그 본심은 사람을 죽여 선을 행하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인의예지(仁義禮智)중에 인(仁)이 으뜸인 것입니다.인(仁)이라는 것은 사물을 살아가게 하는 한 덩어리 마음이니 하늘이 본디 이 마음을 가지고 있고,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만약 사사로운 뜻이 발현된다면 생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인조 3년 자정전에서 석강시 최명길>
<貞而復元/정(貞)에서 다시 원(元)이 된다는 뜻,정(貞)는 겨울(冬),원(元)은 봄(春)을 말함인데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원형리정(元亨利貞)에 대비하고 이것이 순환함을 가리킨 말임."性理大全"理氣篇에 朱子는 "以一歲言之 有春夏秋冬 以乾言之 有元亨利貞"이라하였는바 일세로 말하면 춘하추동이 있고 건으로 말하면 원형리정이 있다.즉,모든 것이 두루 돌아 제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사덕(四德)을 원,형,이,정이라고 말하고 오상(五常)을 인의예지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였다.김진강이 대답하기를,"사덕은 그 유행하는 순서를 말한 것이고,오상은 그 대대(對待)의 체(體)를 말한 것이다"고 하였더니 선생이 옳다고 하였다.어떤 사람이 묻기를 "복괘(復卦)의 아래에서 양효(陽爻)하나가 생기기 전에는 순전히 곤괘(坤卦)인데,그 사이에 시작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김진강이 대답하기를"복괘의 양효하나가 아직 생기기 전에 그 기는 은밀하게 옮겨져서 쉼이 없는 것이다.대개 괘(卦)의 효(爻)는 점차 생겨나는 것으로 30분(分)이 쌓여 陽爻 하나가 생기고,30분(分)이 사라져서 陰爻 하나가 생긴다.그러므로 괘효(卦爻)가 30分에 차기 전에는 爻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쌓인 분수의 기(氣)는 휴식을 용납할 사이가 없다"고 하니 선생이 말씀하기를 "옳다.또 이른바 끝과 처음이 없다는 것은 음양의 두 氣가 순환하여 끝과 처음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이지 陽은 처음이 없고 陰은 시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율곡선생 전서 제31권)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초구는"못에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지라"
初九는 下卦 陽爻의 이름이다
卦의 획은 아래로부터 위로하기 때문에 맨 아래 爻를 初라 한다
陽爻는 九라하고 陰爻는 六이라한다
潛龍勿用은 한 爻의 吉凶을 판단하는 爻辭이다
龍은 陽物인데 陽이 아래에 있어 아직 쓸 수 없기 때문에 그 象이 潛龍이 된것이다
그 점괘에 勿用이라 했으니 聖人은 이 象을 보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잠룡(潛龍)은 성인의 덕을 지닌 채로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하여 자신의 도를 즐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공자는 이에 대하여
"龍德而隱者也 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不可拔 潛龍也"하였다
즉,"용의 덕을 가지고 은둔한 자이니,세상을 따라 자신의 지킨 의리를 변하지 아니하며 명성을 이루려 하지 않아,세상에서 은둔하되 애태움이 없으며,옳게 여겨주지 아니하여도 애태우지 아니하며,의리에 맞고 즐거운 세상이면 도를 행하고 어그러져 걱정이 되면 떠나가서,뜻이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잠룡이다"하였다
여기서는 시대 상황이 맞지 않아 세상에 나가지 말고 은거하란 뜻이다
역서(易書)는 의당 주선생(朱先生)의 說에 의하여 다만 복서(卜書)로 보아야 하네 가령 잠룡물룡(潛龍勿龍)의 경우,상(象)과 점(占)을 나누어
잠룡(潛龍)을 상(象)으로 삼고,점을 쳐서 이 상(象)을 얻은 사람은 의당 등용하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이른바 점(占)일세.이와 같이 보면 의미도 있고 조리도 있어 독해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제가(諸家)의 설(說)들은 실로 애매하고 현란하여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네.정전(程傳/程頤가 낸 周易의 傳)의 경우는 朱子가 물샐틈없다고 칭탄하셨으나 "易"과 뜻이 서로 관련되지 않는 병폐가 있으니 이는 대개 卜書로 보지 않고 또象과 占을 분리하지 않은 때문일세.후학들은 이 글을 읽으려면 먼저 이것을 알지 않아서는 안 되네<송자대전 제52권 서(書),김기지(金起之)에 답한 글 중에서,1678년12월20일>
주자께서 정이(程頤)의 역전(易傳)을 가지고 물샐틈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의리의 정밀함을 가리켜 말한 것으로 보네,그러나 역(易)은 실로 복서(卜書)의 글이데 정이(程頤)의 역전(易傳)은 오로지 의리만을 주장하였으니 역(易)에 대해서는 실로 본디의 의미가 없는 것이네.
주자께서 스스로 만든 <周易本義>는 卜書를 주장한 것인데 예를 들어
잠룡물룡(潛龍勿龍)을 말한다면 건괘(乾卦)초구(初九)에 잠룡(潛龍)의 상(象)이 있으니 점치는 자가 만약 이 효(爻)를 얻으면 일을 시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네,이와같이 한 다음에 비로소 본디의 의미가 있고 또 활용할 점이 있을 것이네,주자는 정자를 지극히 추존하였으나 역전(易前)에 이르러서는 취하지 않은 것이 매우 많았던 것이니 후학이 이것을 알면 그 선후와 완급의 순서를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네 <송자대전 제54권,김구지에 답함의 글에서>
조선 숙종 12년 병인(1686년,강희2년) 수찬 강현(姜鋧)이 상소(上疏)하여
진계(陳戒)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건(乾)괘의 초구(初九) 효에 이른바 ‘잠재한 용이니, 쓰지 말라[潛龍勿用]’함은 괘유(卦縲/괘효의 풀이)로 본다면, 양기가 잠재해 있는 때를 말함에 불과하나, 이를 나의 마음속으로 돌이켜서 말한다면 사려(思慮)가 아직 싹트지도 않고 사물에 접하지도 않아서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이며, 곤(坤)괘의 초육(初六) 효에 이른바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온다[履霜堅氷至]’함은 괘유로 본다면 음기가 장차 움직이려는 징후를 이름에 불과하지만, 이를 나의 마음속으로 돌이켜서 말한다면, 도심(道心)은 잠재하나 인욕(人慾)이 싹터서 뾰족하게 장차 발동하려고 하는 기상입니다.
한 모퉁이를 들어서 나머지 세 모퉁이를 반증해 본다면 64괘, 3백 80효의 체용(體用)과 동정(動靜)이 어찌 일심(一心)상의 태극(太極)에 벗어나겠습니까?”
九二는, 見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
九二는 아래로부터 위로 두번째 효이다
田은 地上이니 큰 덕을 지닌 君子가 地上에 있으니
만나봄이 이로운 것이다
九五는 윗자리(君位)에 있기 때문에 大人이다
九三은, 君子終日乾乾하야, 夕惕若하면, 厲하나 无咎리라.
구삼은 군자는 온종일 쉬지않고 노력하고 저녁에는 조심하고 두려워하니,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乾乾/건건 : 쉬지 않고 나가는 모양,조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는 모양
惕/척 : 삼가다,두려워하여 조심함
厲/려 : 갈다,괴롭다,힘쓰다,위태롭다
九四는, 或躍在淵하면, 无咎리라.
구사는 용이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니 허물은 없으리라
九四는 陽爻가 陰位에 있고 上卦의 아래에 있다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상구는 극한까지 오른 용은 후회함이 있다
上九는 가장 위의 爻名이다
九五는 地位의 끝이며 中正이다
上九는 높은 끝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用九는, 見羣龍호대 无首하면, 吉하리라.
用九(九를 쓰는 것은)는 여러 용을 보되 머리가 없게하면 길하리라
彖曰,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資始하나니, 乃統天이로다.
彖曰/단왈 : 彖은 文王이 지은 繫辭이다
(계사/주역의 괘를 설명하여 상세히 풀어놓은 註釋)
彖傳에 이르기를 " 크도다,건원(乾元)이여! 만물이 비로소 시작되었으니 하늘
을 통괄하리도다
雲行雨施하야, 品物이 流形하나니라.
구름이 가고 비가 내려 만물이 형체를 갖춘다
品/품 : 물건,여러가지 물품,
品物/품물 : 형체를 갖춘 온갖 물건의 총칭
流形/유형 : 각각 형상을 갖추어 지상(地上)에 널려퍼짐, 지상(地上)에 널리
퍼져 있는 만물의 형상,삼라만상
(形은 자취(迹)와 같은바,조화(造化)운행(運行) 자취이다)
乾의 亨을 풀이한것이다
大明終始하면, 천도의 마침(貞)과 비롯함(元)을 크게 밝히면
終은 貞,始는 元
六位時成하나니, 여섯위가 때에 이루어지니
時乘六龍하야 以御天하나니라. 때에 맞춰 여섯 용을 타서 하늘을 어거하니라
乾道變化에, 건도(乾道)가 변화함으로써
各正性命하나니, 제각기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타고나니
保合太和하야, 保合하고 太和하여
乃利貞하니라. 이에 곧 利貞케하느니라
首出庶物에, 성인이 뭇 물건에 머리로 나옴에
萬國이咸寧하나니라. 만국이 다 편안하니라
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以하야 自强不息하나니라.
象曰/상왈 : 괘의 상(象)을 살펴보면
상전(象傳)에 이르기를,하늘의 운행이 굳세니,군자가 하늘이 행하는 乾을 보고서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다
“潛龍勿用”은 , 陽在下也오, 潛龍勿龍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見龍在田”은, 德施普也오, 見龍在田은 덕을 베푸는것이 넓음이고
“終日乾乾”, 反復道也오, 終日乾乾은 반복하는 것을 도로 하는 것이요
“或躍在淵”은, 進이无咎也오, 或躍在淵은 나아감이 허물이 없는것이고
“飛龍在天”은, 大人造也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의 조(造)이고
“亢龍有悔”는, 盈不可久也오, 亢龍有悔는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용이니 후회가 있다는 것은 차서 오래하지 못함이고
“用九”는, 天德은不可爲首也라. 用九(九에 대처하는 방법)는 천덕은 가히 머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文言曰, 元者는, 善之長也오, 문언전에 가로대 원은 선의 어른이고
亨者, 嘉之會也오, 형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모이는 것을 말하고
<文言(문언)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한하여 그 괘사(卦辭).효사(爻辭)를 확대하여 해석한 글인데 공자가 지었다>
利者는, 義之和也오, 이(利)는 의(義)에 화합함이고
貞者는, 事之幹也니 정은 일의 줄기이니
君子體仁이足以長人이며, 군자가 인에 의거함이 족히 사람을 기르며
嘉會足以合禮며, 모임을 아름답게함이 족히 예에 합하며
利物이足以和義며, 만물을 이롭게함이 족히 의리에 화합하며
貞固足以幹事니. 마음이 곧고 굳음이 萬事의 根幹이 될것이니
貞固/정고 : 마음이 곧고 굳음,정도(正道)를 굳게 지킴
君子行此四德者라, 군자는 이 네가지 덕을 행하는 자라
故로 曰“乾, 元, 亨, 利, 貞.”이라 그러므로 "건은 원,형,리,정"이라 한것이다
初九曰“潛龍勿用”은, 何謂也오? 초구에 말하기를 “潛龍勿用”은 무엇을 말합니까?
子曰, “龍德而隱者也니. 공자 가로대 "용의 덕이 있으면서 은둔한 자이니
不易乎世하며, 세상을 따라 자신의 지킨 의리를 바꾸지 아니하며
不成乎名하야, 알려짐을 구하여 명성을 이루지 아니하며
遯世无悶하며, 세속으로부터 은둔하여도 마음의 번거로움이 없으며
遯世/둔세 : 현실 사회에서 도피함,은둔함
悶/민 : 번민하다,마음이 답답함
遯世无悶/둔세무민 : 은거하여 마음의 번거로움이 없음
不見是而无悶하야, 옳게 여겨주지 아니하여도 번민하지 않아서
樂則行之하고, 의리에 맞아 즐거우면 행하고
憂則違之하야, 의리에 어그러져 걱정이 되면 피하여
確乎其不可拔이, ‘潛龍’也.”라 확고해서 빼앗을 수 없는 사람이 잠룡이니라"
九二曰“見龍在田, 利見大人”은, 何謂也오?
구이에 가로대 “見龍在田,利見大人”은 무엇을 말합니까?
子曰, “龍德而正中者也니. 공자 가로대 "용의 덕을 갖추고 중정의 자리에 있는자이니
庸言之信하며, 일상으로 쓰는 말이 미더우며
庸言/용언 : 평범함 말,일상(日常)쓰는 말
庸行之謹하야, 평상시 행실을 삼가하여
閑邪存其誠하며, 간사함을 막고 그 진실함을 보존하며
閑/한 : 막다,막힘
善世而不伐하며, 세상을 좋게하였어도 자랑하지 않으며
伐/벌 : 자랑하다
德博而和니. 덕을 두루 미치게 하여 만인을 화평하게 하니
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하니, 역에 이르기를 ‘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 하였으니
君德也.”라 이는 군주의 덕이다"
九三曰“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는, 何謂也오? 九三에 말하기를
"君子終日乾乾,夕惕若, 厲无咎”는, 무엇을 말합니까?
子曰, “君子進德脩業하나니. 공자왈 " 군자가 덕에 나아가 일을 닦으니
忠信이, 所以進德也오, 충과 신을 쌓는 것이 덕을 향상시키는 것이요
脩辭立其誠이, 所以居業也라. 말을 경계하여(할말,안할말 가려서 하여)
그 성(誠)을 세움이 일을 자리하는 것이라
知至至之라, 이를데를 알고서 이르는 것이라
可與言幾也며, 더불어 분기점을 선별할수 있으며
知終終之라, 마칠 데를 알아 마치는 것이라
可與存義也니. 더불어 의리를 함께 보존할 수 있으니
是故로居上位而不驕하며, 이 때문에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在下位而不憂하나니.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니
故로乾乾하야 그러므로 힘쓰고 힘써
乾乾/건건 : 조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는 모양
因其時而惕하면, 그 때를 따라 두려워하면
雖危나无咎矣.”리라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리라
九四曰“或躍在淵, 无咎”는, 何謂也오? 구사에 말하기를 “或躍在淵, 无咎”는
무엇을 말합니까?
子曰, “上下无常이, 非爲邪也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오르고 내리기를
일정하게 하지 않는것이 간사함이 되는 것은 아니며
進退无恒이, 非離羣也라. 나아가고 물러남에 항상함이 없는 것이 동류(同類)를
떠난 것은 아니다
(동류를 떠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과 달리한다는 뜻과 같다)
君子進德修業은, 欲及時也니, 군자가 덕을 나아감과 업을 닦는것은 때에
미처서 도를 펴고자 하는 것이다
故로‘无咎’.”니라 그러므로 이런 행동이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五曰“飛龍在天, 利見大人”은, 何謂也오? 九五에 말하기를 “飛龍在天,
利見大人”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子曰,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求하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은 서로 찾아가서
水流濕하며, 물은 습한곳으로 흐르며
火就燥하며,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雲從龍하며, 구름은 용을 따르며
風從虎라, 바람은 범을 따른다
聖人이作而萬物이覩하나니, 성인이 일어나면 만인이 우러러보나니
覩/도 : 보다,가리다,분별하다,자세히 보다,예견하다
本乎天者는親上하고, 하늘에 근본한것은 위를 가까이하고
本乎地者는親下하나니, 땅에 근본한것은 아래를 가까이 하나니
則各從其類也.”니라 곧 각기 그 류(類)를 따르는 것이다"
上九曰“亢龍有悔”는, 何謂也오? 上九에 말하기를 극한까지 올라간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上九라함은 제일 윗자리에 있는 양효(陽爻)를 말한다,원래 6획괘는 6개의 爻가 모여 한 괘를 구성한다.그것을 아래에서부터 초효,2효,3효,4효,5효,상효(上爻)라 부르며,또 양효(陽爻)를 9,음효(陰爻)를 6이라 한다,따라서 상구는 상효가 양효인 경우이다)
子曰, “貴而无位하며,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귀하기는 하나 지위가 없으며
高而无民하며, 높기는 하나 백성이 없으며
賢人이在下位而无輔라, 현인이 아랫자리에 있기는 하나 나를 도울 수 없다
是以動而‘有悔’也.”니라 이때문에 움직이면 후회함이 있을것이니라"
“潛龍勿用”은, 下也오, 잠룡은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見龍在田”은, 時舍也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에 멈추라는 것이고
“終日乾乾”은, 行事也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일을 한다는 것이고
“或躍在淵”, 自試也오, 시기가 알맞은 때에는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는 것은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고
“飛龍在天”은, 上治也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윗자리에 있어서 다스리는 것이고
“亢龍有悔”는, 窮之災也오, 항룡이니 뉘우침이 있다함은 궁극에 있는 재앙이고
乾元“用九”는, 天下治也라. 건원의 용구는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潛龍勿用”은, 陽氣潛藏이오, 잠룡은 쓰지말라는 것은 양기가 잠겨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고
“見龍在田”은, 天下文明이오, 현룡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시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終日乾乾”은, 與時偕行이오, 종일토록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시대와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고
偕行/해행 : 함께 감,여럿이 함께 잇달아 줄지어 감
偕/해 : 함께,다 같이,함께 행동하다,굳세다,적합하다
“或躍在淵”은, 乾道乃革이오, 시기가 알맞은 때에는 뛰어 오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편히 있다는 것은 건도가 이에 변혁하는 것이고
“飛龍在天”은, 乃位乎天德이오, 비룡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마침내 천덕에 있는 것이고
“亢龍有悔”는, 與時偕極이오, 항룡이니 뉘우침이 있다함은 때와 더불어 함께 다한 것이고
乾元“用九”는, 乃見天則이라. 건원의 용구(用九)는 이에 하늘의 법칙을 볼수 있다
“乾, 元”者는, 始而亨者也오, 건,원은 시작하여 형통한 것이고
“利, 貞”者는, 性情也라. 利와 貞은 건(건)의 性情이다
乾始能以美利로利天下라, 乾의 시작하게 해주는 덕이 능히 美利로 천하를 이롭게 함이라
不言所利하니 大矣哉라!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이로운 바를 말하지 않으니 크도다
大哉라乾乎여! 위대하구나! 건이여!
剛健中正, 純粹精也오, 강건하고 중정하고 순수한것이 정함이여
六爻發揮는, 旁通情也오, 육효로 알려주는 것은 건덕의 實情을 자세하고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요
發揮 /발휘 : 재능을 떨쳐서 드러냄
旁通/방통 : 자세하고 분명하게 앎
時乘六龍하야, 以御天也니, 때에 맞추어 육룡을 타고 천도를 운행하니
雲行雨施라, 天下平也라. 구름이 다니고 비가 내려 천하가 태평하다
君子以成德爲行하나니, 군자는 덕을 이루어 행함을 삼나니
日可見之行也라. 매일 볼 수 있는 행함이라
“潛”之爲言也는, 잠이라 말하는 것은
隱而未見하며,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하며
行而未成이라, 행이 이루어지지 않음이라
是以君子弗用也하나니라. 이때문에 군자가 쓰지 않는 것이다
君子學以聚之하고, 군자가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問以辯之하며, 물어서 분별하며
寬以居之하고, 너그러이 생활하고
仁以行之하나니. 어짐으로 행하나니
易曰“見龍在田, 利見大人”이라하니, 역에 이르기를 “見龍在田, 利見大人” 이라 하니
君德也라. 이것이 군주의 덕이다
九三은重剛而不中하야, 구삼은 거듭된 剛이고 中의 자리에 있지 못하여
上不在天하며,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下不在田이라, 아래로는 지상에 있지 않음이라
故로乾乾하야 그러므로 건건하여
因其時而惕하면, 그 때를 인하여 두려워하면
雖危나无咎矣리라.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九四는重剛而不中하야, 구사는 거듭되 剛이고 中의 자리에 있지 못하여
上不在天하며,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下不在田하며, 아래로는 지상에 있지 않으며
中不在人이라, 가운데로는 사람에 있지 않음이라
故로“或”之하니. 그러므로 혹이라고 하였으니
“或”之者는, 疑之也니, 혹이란 의심하는 말이니
故로无咎라.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夫“大人”者는, 與天地合其德하며, 무릇 대인이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사시와 더불어 그 차례를 합하며
與鬼神合其吉凶하야.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하여
先天而天弗違하며, 하늘보다 먼저라도 하늘에 어긋남이 없으며
後天而奉天時하나니.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천시를 받들어 행하나니
天且弗違온, 하늘도 또한 대인을 어기지 않는데
而況於人乎며? 하물며 사람이 어길것이며
況於鬼神乎여? 하물며 귀신이 어기랴?
“亢”之爲言也는, 항이란 말은
知進而不知退하며, 나아감은 알고 물러남을 모르며
知存而不知亡하며, 생존할줄은 알고 망하는 것을 모르며
知得而不知喪이니, 얻은것은 알고 잃는것을 모르는 것이니
其唯聖人乎아! 그 오직 성인뿐이다!
知進退存亡, 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뎌! 진퇴,존망을 알고 그 바른것을
잃지 않은것은 그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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