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상황과 정체성(Ⅱ)
인문학 강의 _ 격동의 시대와 자아의 인식
한국적 상황과 국가 발전
한 국가의 발전 정도를 측정할때 경제, 정치, 문화의 측면을 고려한다. 국민 대다수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발전한 국가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질적 재화를 비롯한 모든 가치가 잘 배분돼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데, 이 역할을 정치가 담당한다.
하지만 정의가 실현됐다 하더라도 물질적 가치의 추구에만 급급하고, 정신적 도야를 게을리하면 그 국가는 아직 불균형의 상태임은 물론이고 발전 또한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 수준을 높이려면 문화적 발전이 필요하다. 만약 대다수의 국민들이 격조 높은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고 말초 신경이나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문화에만 심취한다면, 국가의 발전은 머지않아 장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각 분야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온전하게 전수하고, 외래문화를 능동적으로 흡수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나라의 위상 자체가 추락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건국 이래 온갖 혼란 속에서도 급진적인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은 많이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돼 왔던 우리의 과학기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학기술은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분야에서도 파격적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줬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생산 기술의 발달과 대중 매체의 보급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현대인에게 반드시 바람직한 삶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환경을 파괴하고 문명의 위기를 자초했고, 더군다나 한국의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가 너무 급속히 이뤄져 반성의 여유마저 모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이 과학기술에만 주목하고 기초과학이나 과학 정신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 지식인들의 시대적 사명이 절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을 조정하고 완화하려면 정신적 태도와 직결되는 문화적 영역, 그 중에서도 인문적 사고의 함양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 현상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 체계가 아직 정립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은 식민지 시대의 문화 정책과 분단 구조, 급진적인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때문에 그 괴리가 더 심각하다.
이 와중에서 세대와 남녀 간의 불화, 사회 계층과 정치 이념 사이의 갈등, 인권의 개념과 정의에 관한 기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빈부의 격차 등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비판적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이런 난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첫째,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합리주의자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둘째,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극단적 입장을 피한다.
셋째, 그러나 비판적 합리주의는 일종의 회의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비록 절대적 지식이나 영원한 진리를 갖추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성에 의해 어느 정도 객관적 지식과 타당한 진리, 최소한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넷째,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능력 중에서 획일적인 독단적 합리성보다는 반성적인 비판적 합리성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다섯째, 비판적 합리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개방적 사회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자유와 개방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과 근거를 모색한다.
진정한 합리주의라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경제와 정치현실 뿐만 아니라 정신문화 혹은 도덕적 상황에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과학기술 문명에 의해 촉진된 급속한 산업화와 급진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비롯된 독단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합리적 접근은 과학기술 시대의 인간답게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가능하며, 그렇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본질을 좀 더 온전하게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은 애초부터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구호를 내세워 정신과 태도는 동양의 전통을 따르고, 서양의 기술만 습득하면 된다는 태도를 지녔다. 하지만 보편적 인식능력에 호소하는 합리성,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율성, 모든 비판을 수용하는 비판성, 개방성 등을 체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물질적 생활이 편해져도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 국가 발전 차원에서도 경제, 정치, 문화의 불균형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더욱 악화돼 극도의 혼란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단 독단과 아집에서 벗어나고 절대성과 폐쇄성에서 헤어난다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멀리 보게 되고 결국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적 상황과 정체성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특성을 간단히 살펴봤다.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의 산업화와 정치 분야에서의 민주화를 통해 단시일에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는 쾌거를 이뤘으나 문화적 측면, 특히 도덕적 해이와 정신적 고양의 부분에서는 매우 낙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가속화된 산업화와 민주화 현상이 오히려 역기능적으로 작용해 균형 있는 국가 발전을 저해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현철들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과학기술 시대의 시대정신인 과학 정신, 그중에서도 비판적 합리성을 터득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지혜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한국인에게 남북문제와 국가적·개인적 차원의 갈등 구조를 완화시키는 데 있어서 단서를 마련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판적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크라테스적 자아 인식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족적 차원에서나 국가적 측면에서,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서나 개인적 입장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인식하지 않으면, 갈등을 해소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제로서의 비판적 합리성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아 인식의 구조와 그 한계를 체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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