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문학

탈무드의 머리 1

rainbow3 2020. 3. 8. 23:19



♣ 탈무드의 머리


애정의 힘


세상에는 열두가지 종류의 강력한 것들이 있다. 먼저 돌을 강한 것으로 꼽을 수 있으나 그 돌은 쇠에 깎이고 만다. 그러나 이 쇠도 불에 녹고, 불은 또한 물로 꺼버려 그 힘을 누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막강한 물은 구름에 흡수되며, 물을 흡수한 구름은 바람이 불면 흩어지거나 날라 사라진다.


그러나 이 바람도 인간만은 흩어지게도 날라 없어지게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공포나 괴로움에는 비참하게 깨지고 만다.


이때 이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술은 잠을 자면 해결된다. 이 잠도 죽음을 꺾을 수는 없으며, 그러나 이 죽음은 애정을 눌러 이길수가 없다.

 


죽음


화물을 가득 실은 두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었다. 그 중 한 척은 이제 막 출항 차비를 하고 있었고, 또 한척은 항구에 입항한 상태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가 출항할 때는 떠들석하게 환송을 하지만, 반대로 배가 입항할 때는 환송 때와는 달리 별다른 환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이러한 것을 대단히 그릇된 습관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항한 배의 앞날은 풍랑을 만나 어떤 고난을 당할 지도 모른다.그런데도 떠들석하게 환송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오랜 항해의 길을 끝내고 무사히 귀항한 배한테는 진정으로 기쁘게 영접해 주어야 한다. 이 배야말로 어려운 역경을 뚫고 맡은 바 책임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많은 축복을 보낸다. 이 아이야말로 앞으로 어떠한 고난의 길을 걸어갈지 , 도중에 그만 죽을지, 아니면 흉포한 살인범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막 항해를 떠난 한 척의 배와는 같은 아기에게 축복을 보내는 모순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은 사람이 죽음이란 영원한 잠에 들어갔을 때 보내야 한다.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많이 사람들이 알고 있으므로, 이 때에야말로 진정한 축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이란 말


히브리어의 알파베트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때에는 그 한자한자의 알파베트에 의미를 갖게 한다. 히브리어로<진실>이란 말을 히브리어에서의 알파베트 첫글자와 맽 끝글자의 꼭 중간에 있는 글자를 사용한다.


이것은 유태인에게 있어 <진실>이란 것이 왼쪽도 오른쪽도 다 올바르며, 중간의 것도 역시 바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맥주


<탈무드>에 의하면 하인이나 노예에게도 주인이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을 먹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령 주인이 편한 의자에 앉으면 하인에게도 편한 의자를 내어주라는 것이다. 지위가 남보다 낫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데에 앉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일선 부대장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장병이 맥주를 가져왔는데 그것을 본 부대장이 사병들이 마실 맥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병은 오늘은 맥주가 부족해서 이 자리에만 가져왔다고 대답하였다. 사병의 말을 들은 부대장은 '그렇다면 오늘은 맥주를 마시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유태인들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인 것이다.



죄악


인간이라면 누구이고 죄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동양적인 철저한 도덕관에서처럼 엄격하고 짜여진 분위기는 적어도 유태인 사회에는 없다.


유태인이 죄를 범했어도 역시 유태인 것이다.
유태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죄에 대한 관념은 이렇다. 가령 화살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맞히지 못한 경우와 같이, 원래는 죄를 지을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실수를 한 것이라고 마음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유태인이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빌 때에는 ''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들'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혼자서 지은 죄인데도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유태인은 모두가 한 가족이라서 혼자서 죄를 범해도 이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자신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 의해 절도 행위가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하나님께 잘못을 빌어야 한다. 이것은 내 자신의 자선 행위가 부족한 탓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절도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에는 이와는 반대로 두 손을 펴고 죽는다.


왜 그럴까?이것은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기 때문이고, 죽을 때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주어 빈 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사


유태인들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탈무드>를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아버지가 자주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엄하게 다루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무서워 배울 마음을 상실하고 만다.


히브리어에서 '화더'<교사>의 의미가 있는데, 영어에서 기독교 신부를 '화더'라고 하는 까닭도 히브리어에서의 <교사>의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 사회에서는 자신의 부친에 앞서 먼저 <교사>를 생각한다. 가령 아버지와 교사가 함께 감옥에 있을 때 이중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교사>를 먼저 구한다.


유태인들은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사>를 생각한다. 가령 아버지와 교사가 함께 감옥이 있을 때 이중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교사>를 먼저 구한다.


유태인들은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사>를 무엇보다도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진정 거룩한 것


우리 인간 사회에는 동물에서부터 천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차가 이는데, 이때 천사에 가까워질수록 성스러운 것에 접근하게 된다는 관념이 흐르고 있다.


랍비가 학생들에게 '거룩한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묻자 많은 학생들은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 했고, 몇몇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의 대답이 각각 다르자 랍비는 '무엇을 먹을 것이며, 또 섹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그렇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던가,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는 섹스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거룩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랍비가 일러주는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가 안식일을 정숙하게 보내는 것은 누구이고 쉽게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금방 세방에 알려지고 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집에서 무엇을 먹는지 밖의 사람은 모른다.


가령 유태인이 남의 집을 방문했거나 번화한 도시에 있을 때 유태인의 계율에 따른 식사를 한다해도, 그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또한 섹스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보면, 집안에서 식사를 할 때나 성 생활을 할 때 인간을 동물과 천사 사이의 어디쯤이고 마음대로 접근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때 자기 자신의 인격을 높일 수 있는 자가 진정 거룩한 사람인 것이다.

 


증오


유태 민족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른 민족에 의해 온갖 박해와 학살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증오에 찬 문학작품이나 문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유태인들은 뼈에 사무치는 증오심은 지니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나치에 의해 수백만의 동족이 비참하게 학살당했으나, 이를 저주하는 반독일이나 독일 민족을 원망하는 책도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랍민족과 전쟁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증오심은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인들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은 유태인들이지만 기독교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태인 샤일록이 증오심에 불타, 돈을 갚지 못하면 그 대신 상대방의 심장을 도려내라고 했다는 것은 적어도 유태인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혀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바울에 대한 베드로의 말은, 바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것보다는 베드로가 어떠한 인물인가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익스피어는 기독교인이었으므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생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결코 유태인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유태 민족이 탐욕스럽고 교활하고 부정직하고 증오심이 많은 잔인한 민족이라면 카톨릭협회가 기독교인이 아닌 유태인에게 자금을 융통해 가겠는가? 이를 보아도 유태인이 동정심이 많고 신뢰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태인은 언제이고 온화한 마음을 지지고 있어 만약 유태인에게 슬픈 사정을 말하면 반드시 동정의 마음을 베풀어 줄 것이다.


유태인들은 가지고 있던 돈을 강탈당해도 그를 벌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벌하기보다는 그로부터 돈을 되돌려받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돈 대신에 자동차, 시게와 같은 물건을 저당으로 잡지 심장을 도려내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인간은 모두가 한 가족이며 더 나아가 커다란 한 덩어리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이 오른손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있을 때 왼손을 잘라 냈다고 해서 보복하기 위해 오른손을 잘라내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탈무드> 시대에는 유태인 사회에 고리대금 업자는 없었다. 그 때는 농경이 주업인 사회였으므로 대부분 어려운 생활에 허덕이었다. 그러므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는 먼저 기독교인들이 유태인을 얼마나 증요하고 천대하였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약성서를 보면 예루살렘의 환전상은 대부분 유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이란 것을 ''의 근원으로 보고 있지만 유태인들은 돈을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돈을 차용했을 경우, 그 돈을 정확하게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탈무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옷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 주었을 때,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그 옷 한벌밖에 달리 가진 것이 없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없다.


집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주었다 해도 채무자가 그 집이 없을 때 만약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면 채권자라 해도 그 집을 자기 소유로 바꿀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단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 해도 이것이 사치를 위한 소유물일 경우에는 앞서의 경우와는 다르다. 다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일 때 이것을 채권자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먹고 살기 위해 당나귀 한마리를 가지고 있을때, 아무리 채권자라 해도 이 당나귀는 빼앗아 갈 수 없다. 하지만 당나귀를 이용하지 않는 밤에는 끌어갈 수 있다.


만약 의복을 저당으로 잡았을 경우, 추운 밤이면 그 옷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돈을 빙자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마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담벽


유태인은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녀원이나 결혼하지 않는 승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탈무드>에는 '1미터의 담이 100미터의 담벽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1미터의 담벽은 오랫동안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지만, 100미터의 담벽은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생을 성 행위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것을 100미터의 담벽에 비유한 것이다.


아내가 없는 유태인은 생활 속에 행복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선행도 많이 쌓지 못한다. 남자는 18세에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학자


유태인은 모든 재산을 팔아서라도 딸을 학자와 혼인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학자의 딸을 맞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잃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7의 숫자


유태인에게 '7'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1주일 중에는 7일째에 안식일이 온다.


또한 7년째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혀 쉬게 한다. 그리고 49년째 되는 해는 대단히 경사스런 해로, 이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히며, 남에게 빌린 돈도 채무가 소멸된다.


일년에 두번 있는 대축제인 패스오버(출애굽 기념)와 스코트(수확제)는각각 7일동안이나 계속된다.


유태의 달력은 세게에서 가장 정확하다. 지난달 모두가 노예였던 유태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날, 이것은 유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만큼, 그것을 첫번째 달로 삼고, 그때부터 7개월 후에 신년을 맞이한다. 미국의 신년은 11일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첫달은 미국이 독립한 7월이다. 회계년도나 학교의 연도도 모두 7월에 시작된다. 그외 마찬가지로, 유태인들도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얻은 때를 첫달로 삼는다. 그래서, 이 첫달에 패스오버 축제를 열고, 7개월째에 새해를 맞아 스코트를 축제를 갖는다.

 


먹을 수 없는 것


유태인들은, 고기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갔을 때 비로소 고기를 먹는다. 피는 곧 생명이다. 그래서,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 그 피를 모두 제거하므로 유태인들이 먹는 고기는 매우 건조되어 있고 깨끗하다. 동물을 때려서 잡으면 피가 굳어 버리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또한 전기로 죽이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태인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서 피를 모두 빼내는 방법을 실험해 왔다. 먼저 동물을 죽여서 30분 동안 물에 담갔다가, 굵은 소금을 뿌려서 그 소금이 피를 흡수하게 한다.


굵은 소금을 뿌리면 소금 주변에 피가 흡수되어 붉은 피의 테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생긴다. 이때 흡수된 피는 물로 씻는다. 고기 중에서 간장이나 심장과 같이 특히 피가 많은 부분은 피를 모두 증발시키기 위해 불에 구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가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닭이나 소를 도살하는 사람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랍비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은 해부학의 권위자들이며, 그들은 신앙심도 대단히 두터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유태인들은 이미 4천년 전부터 해부학에는 특히 조예가 깊었다.<탈무드>에도 랍비가 인체 해부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데, 당시는 이미 해부의 지식은 완전히 알았던 것으로 추축되고 있다.


짐승을 도살하거나 해부할 때는 매우 잘 듣는 칼을 사용하는데, 칼은 쓸 때마다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운다. 그리고 도살할 짐승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목을 잘라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게한다.


짐승을 죽인 사람은 그 짐승을 자세하게 조사하는데, 그것은 어느 나라의 식욕 검사보다도 철저하다. 다른 나라의 검사에서는 먹어도 좋다고 판정한 것도, 먹지 못한다고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유태인들에게는 피를 기피하는 관념은 없다. 제단에 양을 제물로 바칠 때에도 피를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탈무드>, 는 다른 사람은 새우를 먹고 있는데 유태인들은 새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유태인들이 더 위생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령, 유태인들이 새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새우가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으며, 다만 하나님이 유태인들에게 새우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먹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유태인들은 네 발을 가진 동물 중에서도 두 개 이상의 위를 가지고 있는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돼지는 위가 하나뿐이고, 말은 발굽이 갈라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식용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고기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으면 먹지 않기 때문에, 미꾸라지와 뱀장어도 먹지 않는다.또 고기를 먹고 사는 새 종류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독수리나 매 같은 새도 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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