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문학

탈무드의 손 1

rainbow3 2020. 3. 8. 23:24



♣ 탈무드의 손


형제애


두 형제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중 어느쪽 의견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다툼이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해석해 보면 제각기 일리가 있었다.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전쟁 때문에 독일,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 등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숨어다닌 탓으로 형제애가 남달리 두터웠다. 그런데 이 유언을 놓고 다투면서 서로 중상하고 반목하였으므로, 형은 동생을 잃게 되고 동생은 형을 잃게 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형제는 서로 말도 끊은 데다다 한방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였다.


어느날 두 형제는 따로 나를 찾아와 형은 동생을 잃었음을, 동생은 아끼던 형을 잃었음을 크게 한탄하였다. 이것을 보면, 이 두 형제는 애초부터 다툴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아메리칸 클럽의 강사로 초빙된 기회가 생겨, 나눈 주최측에 부탁하여 두 형제가 서로 모르게 참석할 수 있도록 특별히 부탁하였다. 서로가 불편한 평소였으면 얼굴을 마주치면 이내 헤어져 돌아갔겠지만, 이날만은 초청자의 체면을 생각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필자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끝내고 한편의 <탈무드>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때인가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나이가 들어 결혼하였으므로 아내와 자식까지 두었고, 동생은 아직 미혼자였다.


두형제는 하나같이 아주 부지런한 농군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였다.


형제는 수확한 사과와 옥수수를 똑같이 나누어 각각 자기 몫을 각자의 곳간에 저장하였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지자 동생은 '형님은 딸린 식구가 많아 식량이 부족할 터이니, 내 몫을 좀 덜어 드려야지"하고 형님 곳간으로 많은 양을 옮겨 놓았다.


그런데 형은 형대로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늙어서도 별 걱정이 없겠지만 동생은 혼자몸이니 미리 저축해 놓아야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기 몫을 떼어 동생 곳간에다 옮겨 놓았다.


날이 밝아 형제는 각기 자기 곳간을 가 보니 웬일인지 자기 몫들이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은 다음날 밤에도 또 그 다음날 밤에도 반복되어 사흘 밤이나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두 형제는 전날 밤과 같이 자기 몫을 떼어 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다가 그만 중간에서 서로 부딪쳤다. 그래 두 형제는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두 형제는 뜨거운 형제애에 그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는데, 이 울었던 곳이 예루살렘의 가장 고귀한 장소로 지금도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이 강연회를 통해 한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다투었던 두 형제는 그동안 반목을 풀고 다시 옛날과 같은 사이로 돌아갔던 것이다.


개와 우유


개를 기르고 있는 어떤 집이 있었다. 개는 이 집 식구들과 오랜 동안 함께 생활하여 식구들도 이 개를 아주 귀여워 했다. 특히 식구 중에서도 어린 아들 하나가 개를 더욱 좋아했다. 아들은 잠잘 때까지도 침대 밑에다 재우는 등 개와는 한마음이 되어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그 개가 그만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슬퍼하는 아들에게 개는 언젠가는 꼭 죽게 됨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달랬다.


아들은 제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아주 충직한 친구를 잃어 슬퍼하면서 집 뒷뜰에 묻겠다고 말했다. 물론 아들도 개와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개를 아무곳에나 내다 버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개를 집안에다 묻는 것을 반대하여 식구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아버지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태 전통에 개를 묻어주는 의식도 있는가를 물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숱한 상담을 해 왔지만, 개에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핏 머리에 떠오른 것은 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어린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 집을 한번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랍비는 관례상 그런 상담을 전화로 하지 않는다. 본인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것이 통상적인 자세이다.


필자는 그 집을 찾아가기 전에 <탈무드>에 개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찾아보았다. 그런데 <탈무드>엔 마침 다음과 같은 좋은 이야기가 있었다. 집 안에 우유가 있었는데 뱀 한마리가 마침 그 우유 속으로 들어갔다. 옛날 이스라엘의 농촌에는 뱀이 자주 많았다. 그런데 그 뱀이 독사였으므로, 우유에는 뱀의 독이 녹아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집에 있던 개뿐이었다. 그뒤 식구들이 우유를 꺼내 먹으려하자 개가 몹시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식구들은 그 개가 왜 그렇게 심하게 짖어 대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때 식구 중 한 사람이 그 우유를 마시려하자 개가 갑자기 덤벼드는 바람에 우유가 엎질러지고 말았다.개는 그것을 핥아 먹고는 곧 죽었다. 그제서야 식구들은 그 우유에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죽은 개는 랍비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필자는 그 집을 찾아가 식구들에게 <탈무드>에 있는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마음도 풀어졌고, 어린 아들의 희망대로 그 개는 집안 뒷뜰에 묻혀졌다.



나귀와 다이아몬드


어떤 유태 부인이 백화점에 들려 물건을 샀다. 집에 돌아와 집꾸러미를 풀어보니, 짐 속에는 자기가 사지 않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보석이어서 매우 값이 비싼듯 보였다.부인이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은 양복과 외투였다. 부인은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어 생활의 여유같은 것은 없었지만, 보석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말해 주고, 둘이 랍비인 필자를 찾아와 의논하였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랍비 한 사람이 나무장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는 산에서 나무를 해 시내로 져다 팔았다. 그는 나무를 팔기 위해 오고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그 시간에 <탈무드>공부를 할 생각으로 당나귀를 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시내 장터의 한 아랍인으로부터 당나귀를 사들였다. 랍비의 제자들은 랍비가 당나귀를 산 것을 기뻐하며, 냇가에서 당나귀를 물로 씻어 주었다. 그러자 당나귀의 목에서 다이아몬드 한 개가 떨어졌다.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이제 랍비는 가난을 면하고 자기들을 가르칠 시간이 많아지겠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랍비는 당나귀를 판 아랍인에게 얻은 다이아몬드를 즉시 돌려 주라고 제자에게 명하였다. 그러자 제자가 '선생님이 산 당나귀가 아닙니까?'하고 묻자 랍비는 '내가 산 것은 당나귀이지 다이아몬드는 산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돈으로 주고 산 것만 가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였다.


그래서 랍비는 아랍인에게 다이아몬드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아랍인은 '당신은 이 당나귀를 삿고 다이아몬드도 이 당나귀에서 나왔는데, 왜 그것을 내게 돌려주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랍비가 대답하기를 '유태의 전통은 돈을 내고 산 물건 이외에 더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돌려 주는 것입니다'했다. 이에 아랍인은 '유태인들의 신은 참으로 훌륭한 신이군요' 하며 칭송하였다. 여기까지 말을 들은 부인은, 곧 돌려주러 갈 생각인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보석은 백화점이 주인인지 물건을 팔던 점원이 주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왜 돌려주느냐고 물으면 유태인이기 때문이라고만 말하시오. 그리고 돌려주려고 갈 때에는 아들을 데리고 가 그 모습을 보여주시오. 아들은 어머니의 정직함을 영원힌 잊지 않을 테니까요?'하고 말하였다.



벌금의 규칙


어떤 유태인 회사에서 유태인 사원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원이 회사 공급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사장은 크게 화가 나서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회사 책임자가 필자를 찾아와 처리 문제를 의논하였다.


그래서 나는 신고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정말 돈을 가지고 달아났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만일 그 사람이 공금을 가지고 도망했다 하여 경찰에 고발하면 그가 감옥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유태인이 취할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왜냐하면, 그 절도범이 감옥에 갇히면 공금을 받기가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먼저 가져간 돈을 돌려받고, 거기에 덧붙여 벌금을 물게 하는게 낫겠다고 하였다.


공금을 갖고 달아난 사람을 찾아내어 그 말을 전하자.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이 전혀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내방에서 재판을 받았다.


감옥에 가 갇혀 있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일을 해 버는 돈 중에서 조금씩 나누어 갚기로 합의하였고, 동시에 벌금을 물게하여 그 벌금의 금액은 자선 행사에 쓰기로 하였다.


유태인의 사회에서, 이틀레면 A는 사람이 백만원을 훔쳤기 때문에 랍비에게 재판을 받고 벌금까지 백십만원을 갚으면, 그때부터 그는 전과가 없어지고 결백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돈을 잃었던 사람이 '저 녀석은 훔친 놈이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욕을 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취급된다.


대개 이런 경우 벌금이 약 20%이상이 되는데, 이때에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예를들면 무엇을 언제 훔쳤는가, 그것으로 돈을 벌였는가를 따져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벌금이 정해지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말을 훔쳤을 때 가장 많은 벌금을 문다. 왜냐하면, 훔친 말로 돈을 벌 수도 있으며, 반대로 말을 잃은 사람은 그만큼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말과 같은 것이 있다면 화물차가 되겠지만, 이 경우엔 400%이상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리고 보통 당나귀가 말보다는 벌금이 적다.이것은 말이 순하고 훔치기도 용이해서이다.


남의 것을 훔친 사람도 앞의 경우와 같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면 20% 정도의 비교적 적은 벌금이 부과된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벌금이나 이자를 물지 않으면 관청에서 대신 지불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감옥에 가두기도 하는데, 그러나 감옥에 감금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 유태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아기와 산모중 누구를?


어느 유태인 산모가 심한 난산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나는 한밤중에 산모 남편의 부름을 받고 병원에 갔다. 산모는 출혈이 심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산모는 처음 낳는 아기였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 산모의 목숨을 건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뱃속의 아기는 어떠냐고 물었다. 잘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대답이었다. 결국 산모와 아기 중 누구를 구하느냐 하는 심각한 순간에 서게 되었다.


두 부부는 이 첫아기를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산모는 자기가 죽더라도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결론이 나지 앉자 결국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졌다.


나는 먼저 내가 내리는 결정은 내 개인 생각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 <탈무드>와 유태인의 오랜 전통에 입각한 결정임으로 이에 반드시 따르겠는가를 다짐하였다. 두 부부는 유태인의 전통이라면 결정에 따르겠다고 동의하였다.


나는 곧 산모를 살리고 아기를 포기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자 산모는 그것은 살인 행위라고 반대하였다.하지만 유태인의 전통에 의하면 태어나기 전의 아기는 생명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뱃속의 태아는 산모의 몸 일부분인 것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몸의 일부분 즉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는 일도 있다. 유태의 전통에는 만약 이러한 경우엔 반드시 산모의 생명을 구하도로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카톨릭 신부도 있었는데 그는 아기를 구하고 산모가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카톨릭에서는 임신이 되면 이미 새 생명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김으로, 카톨릭측 입장에서 보면 산모는 이미 세례를 받아 구원되었으나 뱃속의 태아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할 경우가 되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결정은 수긍이 되지 않는다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나의 결정에 따랐기 때문에 산모는 생명을 구했고, 그뒤 곧 두번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불공정 거래


어느날 한 상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다른 상점에서 물건들을 터무니없이 싸게 팔고 있어 자기집 단골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탈무드>에는 부당한 경쟁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크게다루고 있다.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탈무드>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나는 일주일 동안의 말미를 얻어 <탈무드>를 공부한 다음에 이 일에 당한 판단을 내려 주기로 하였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있었다.


물건을 팔고 있는 상점의 옆에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를 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가령 두 상점 가운데 한 상점에서 아이들에게 팝콘같은 하찮은 경품을 붙여 팔았다고 하자. 그래서 아이들이 어머니를 끌고 와 그 물건 사가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값을 내려가며 서로 경쟁하는 것은, 물건을 사가는 손님쪽에는 이익이 됨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랍비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랍비는 손님을 끌기 위해 제값을 받지 않고는 경품을 붙여파는 것은 부당한 경쟁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랍비들은 경품을 붙여 파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 아니라고 결정을 내렸다. 물건을 사는 손님쪽에 이익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이었다.


다음날 또다시 찾아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는 분명히 금해져 있으나, 물건값을 경우에 따라 다소간 내려 파는 것은 정당한 행위입니다. 


지금과 같이 자유 경쟁의 원리에 따라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경우에는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내도 언제나 물건값이 비싸다고 불평하고 있다.

 


위기를 면한 부부


결혼 10년을 맞이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서 겉으로는 퍽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되는 사람이 나를 찾아와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도 그 부부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터라, 설마 부부 사이가 불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사정인즉,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어 그들은 친척들로부터 이혼할 것을 강요 받아왔다는 것이다. 유태의 전통에 의하면, 결혼한지 10년이 되어서도 아이를 얻지 못하면 이혼 조건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들 부부들은 헤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척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랍비인 나를 찾아와 의논하게 되었다.


두 부부가 함께 나를 찾아왔을 때도 나는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랍비들은 이혼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재혼하여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하더라도 아내에게만은 굴욕감을 주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헤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에서의 요령을 쓰기로 하였다.


먼저 아내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보여준 아내의 훌륭했던 점을 자랑하고, 아내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인사말을 하도록 하였다. 이들 부부는 서로 싫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명백하게 밝히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에게 해야할 말을 귀뜸해주어 유도하였다.


남편은 이제 헤어져야 할 아내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그것은 아내가 계속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그래서 나는 잔치가 끝나면 아내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하게 하였고, 아내에게도 똑같이 말하도록 권유하였다. 잔치가 끝나자 남편이 아내에게 간직하고 싶은 것을 하나만 말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내가 자리를 같이 한 자리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한가지만 요구하게 되었다. 아내는 곧 '남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헤어지지 않았고, 그후 아이까지도 낳게 되었다.

 


남아있는 양심


어느날 두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갚을 기일이 돌아오자 빌려준 사람은 5백만원이라 하는데 빌린 사람은 2백만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먼저 나는 두 사람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이번에는 두 사람을 함께 불러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만날 때까지는 결정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두 사람을 돌려보낸 뒤 나는 서재에서 이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틀림없이 5백만원을 차용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2백만원밖에는 빌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는 어떠한가를 연구해본 것이다.


물론 돈을 주고받을 때 증서가 만들어지면 간단하지만, 유태인 사회에서는 친구 사이의 돈거래에는 증서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가령 2백만원밖에 빌려가지 않았다는 사람은, 가령 단 한푼도 빌린 일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어도 결과는 지금과 같지 않겠는가? 그리고 5백만원을 빌려주지 않았는데도 빌려주었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탈무드>에는 이에 관한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위선자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거짓말이라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조금이라도 말할 때에는, 그의 말은 믿기가 쉽다. 왜냐8하면 그에게는 아직 조금 양심이란게 있으니까. 당사자 두 사람이 함께 만나면 거짓말의 정도가 가벼울 수 밖에 없다.


나는 가령 5백만원을 약속한 날에 꼭 갚겠다고 생각했다가 날짜가 되었을 때, 빌린 사람은 2백만원을 빌려갔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5백만원을 빌려준 사람도 잘못 기억한 탓으로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5백만원씩이나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큰 부자이므로 평소에 돈이 별로 부족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만약 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돈이 필요하여서 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면, 남에게 빌려준 돈을 깨끗하게 받지 못한 그 사람은 결코 또 돈을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돈이란 항상 회전하고 있어야만 한다. 어쨌든 빌려간 사람은 2백만원밖에 빌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예배소에서 그에게 구약성경에 손을 얹게 하고 틀림없는 사실임을 서약할 수 있는가를 다짐하였다.그때서야 그는 잘못을 뉘우쳤고, 틀림없이 5백만원을 차용하였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가 어렵겠지만, 유태인들은 예배소에서 구약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일은 대단히 엄숙한 행위이다. 구약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말을 하는 자는 범죄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자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므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는 이런 절차가 없다. 성서에 손을 얹으면 99.8%의 사람은 절대로 허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약은 중대한 일이며, 모두들 이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크리스도교 예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것도 이런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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