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지혜
꽃양배추에 사는 벌레는 꽃양배추를 자기 세상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무한히 넓다.
제아무리 제트기로 뉴욕까지 열 시간 만에 갈 수 있다 하여도,
세계는 역시 크고 넓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가 전세계인줄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 세계의 습관이나 관점으로 판단한다.
사람은 어떤 마을이나 나라와 같은 제한된 지역에만 갇혀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장이나 회사, 직업, 계급 같은 것에도 갇혀있게 된다.
꽃양배추는 각처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그러한 것에 갇혀 지냄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
유태인은 세계로 흩어져서 방랑했기 때문에 한 세계의 포로가 되는 일은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격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태인의 세계에도 꽃양배추가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꽃양배추 속에 안주하는 것도 인생이다.
떨치고 일어서는 데에는 무한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노인이라면 예상 밖으로 안주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 삶의 지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책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다.
유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주위에 2대째나 3대째로 보기에 역겨운 자가 있거든
한 번 써 먹어 보아라.
옛날에 가문이 매우 좋은 여우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가 길을 가다가 서로 마주쳤다.
여기서 가문이 좋은 여우와 나쁜 여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진짜로 혈통이 좋은 인간이나 그렇지 않은 인간도 없을 테니까.
어찌되었건 가문이 좋은 여우가
그렇지 않은 다른 여우에게 자기의 집안을 자랑하였다.
그러자 그 천한 집안의 여우가 말하였다.
[너의 집안은 너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태어남과 죽음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닌 것이 못 된다.
마치 장식과 같은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이다.
사는 방법의 내용이 중요하다.
♥ 삶의 지혜
휴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휴일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말에는 세계는 더욱 풍족해지고 휴가도 늘어 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하여 일한다는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노동이나 일은 자기 자신을 잃게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쉬고 즐겨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널리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열심히 놀기는 하지만,
그 쉬는 방법이나 즐기는 방법을 보면 자기를 되찾고 재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상실하려고 쉬는 것같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이건 놀이건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What I do)
보다는 어떤 인간(what I am)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일에 떠밀려 가듯 여가에도 떠밀려 가고 있다.
인간은 일이라는 괴수에게 던져진 먹이가 아니듯이
휴일이라는 괴수에게 먹이도 아니다.
휴일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한번쯤 휴일로부터 해방된 휴일도 생각해 봄직하다.
♥ 삶의 지혜
단번에 바다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선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한번에 바다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인간이 바다를 만들고 싶으면 우선 작은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번에 바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냇물은 지류를 가지면 많은 지류가 큰 내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작은 내라 업신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바다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은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면함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는 운좋게 행운을 타고 단번에 바다를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행운을 바라는 것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에 치이거나 항공기 사고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여 두려워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 쪽이
일확천금하기보다는 훨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 삶의 지혜
0에서 1까지의 거리가 1에서 100까지의 거리보다 길다.
사람들 중에는 1000을 구하려 한 나머지 1을 대수롭게 여겨
0 밖에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1을 만드는 데에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0에서 1을 만들고 이를 소중히 여긴다면,
1000을 만들기도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성공한 상인들을 보면, 모두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1000, 1만, 10만, 100만을 만들 수가 있다.
절약, 절약, 절약....
♥ 삶의 지혜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을 당신의 첫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탈무드>에 나오는 말로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
대개의 인간은 60년, 70년, 80년, 100년을 산다.
그러나 100년을 산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100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아가서 시간시간, 1분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이며,
나아가서는 1분 1처가 전인생인 것이다.
인간이 오늘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활기차고 희망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것은 지금 한순간이다.
단지 한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 삶의 지혜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에 걸리고,
오래 서 있으면 심장에 나쁘다.
또 너무 걸으면 눈에 나쁘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너무 걸으면 눈이 나쁘다'는 말이
동양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스라엘은 사막의 나라여서
너무 오래 걸으면 모래가 눈에 들어가 버린다.
유태인의 처세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든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인데,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정수인 것이다.
유태인의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자주 이와 같은 질문을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에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것이
힘의 원천이라는 것도 하나의 타당한 답이다.
이것은 하나의 비결이고 양식이다.
♥ 삶의 지혜
유태 민족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이 유태인을 지켜온 것이다.
유태인은 옛부터 너무 완고하다 싶게 제사나 자기들의 습관을 지켜왔다.
그러나 유태인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이민족들 사이에 살아오면서
유태인다움을 상실하지 않았던 것은, 유태교의 규칙을 굳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습관이 없었고, 머리속으로만 유태인임을 생각해 왔다면
그들은 벌써 유태인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유태인답게 죽는 것은 대단한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유태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설사 온 세상의 바다가 잉크로 가득 차 있고,
온 세상의 갈대가 붓이며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1년간에 유태인이 받은 박해를 다 기록할 수는 없다.'
* 유태인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올리브 열매는 누를수록 기름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유태인은 박해 당할수록 큰 것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 유태인을 박해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번영하지 못한다.
* 세상이 잘 안 돌아갈 때 유태인은 제일 먼저 그것을 느낀다.
세상이 잘 돌아갈 때에는 맨 마지막으로 그것을 느낀다.
* 흔히 유태인은 비둘기에 비유된다.
다른 새들은 지치면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지만,
비둘기는 한쪽 날개로 날고, 한쪽 날개에 의지하며 쉰다.
* 한 왕국이 흥했다가 망하면 또 새로운 왕국이 흥했다가 망하게 된다.
그러나 유태인은 역사 속에서 결코 망하는 일이 없다.
♥ 삶의 지혜
이상주의란, 장미 향기를 맡고서 그 향기에 취하여
장미꽃으로 양배추 스프보다 맛있는 스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인생에는 중용의 도가 중요하며 그것이 양식이면 안전이다.
무의미한 모험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현실 세계나 생활은 여러 가지 요소로 성립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의 요소에 치우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장미를 먹고자 하는 이상주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는 것이다.
젊은 사람 가운데서 이상주의자가 많고 늙은 사람들 중에서
보수주의자가 많은 것은 경험의 양에 비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탈무드>나 유태의 고전들을 곰팡이 난 고서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지금 씌어진 책처럼 신선한 맛으로 읽는 것은
오랜 역사의 경험에서 얻어진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삶의 지혜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된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랍비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나이가
자기 집안의 돌을 길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랍비는 '왜 그런 짓을 하시오?'하고 물었으나 사나이는 웃기만 하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이 사나이는 자기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땅을 남의 손에 넘기고 다른 고장으로 가려고 첫발을 떼는 순간
전에 자기가 버렸던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가 한 짓을 설사 잊고 있었더라도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속담에,
'자기가 마실지도 모르는 우물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과
'화살을 만드는 자는 그로 인해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 삶의 지혜
기적을 바라는 것은 좋지만 그 기적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는 가르침이다.
'흔히 랍비가 바라던 것을 신이 이루면 기적이라고 하는데,
신이 바라던 것을 랍비가 이루는 것이 진짜 기적이다'라고 하는 조크가 있는데,
유태 사회에서는 랍비를 조롱하는 속담이 많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준엄한 표정을 하면서도
뒤로는 나쁜 짓을 하는 랍비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유태 민족은 합리적이어서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기적과 같은 행운을 바라고 기도한 것은
좋지만 행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 있다.
이것이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 삶의 지혜
행운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의지해서는 안 된다.
행운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떠들면서 유태인만큼 행운을 구하려 했던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한 땅에 오랫동안 정착하여 확고한 그들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해 받고, 차별 당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조차 갖지 못했던 유태인들은
행운이 찾아 들어도 그것은 나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붙잡으려 해야 한다.
행운을 나비에 비유한다면, 곱고 아름다우며 희귀한 나비가 가까이 온 것이다.
행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운이 찾아온 것을 확인하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저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행운은 많은 사람에게 찾아 들지만, 저절로 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금방 스쳐 지나가 버린다.
유럽의 가난한 유태인 지역의 사람들은 행운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생각하고 조급히 걱정하며 속을 태웠다.
이런 속담이 있다. '육감이 둔하면서도 행운을 잡으려 하는 것은,
뚫어진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 삶의 지혜
운 없는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등을 쳐도 코가 부러진다.
등이 치였는데 코가 부러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피카소의 그림처럼 괴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의 세계에는 '시레밀'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시레밀은 채플린의 영화에 나오는 사나이처럼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못된다.
예를 들어 그가 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반드시 잼이나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에 붙어 버린다.
시레밀이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하루 종일 햇볕이 내리쬔다.
그가 초를 팔면 그날부터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도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위로할 수가 있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지'라고
아무튼 이 속담은 운이 나쁠 때에는 인간은
정말 운이 나빠서 어떤 것도 잘 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유태인은 오랜 동안 유럽에서 가난하고 박해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유태인은 거리에는 수많은 시레밀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유태인 이야기에는 시레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 유태인은 참으로 운이 없다.
부스럼이 났을 때에는 약이 없고, 모처럼 약이 생기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
* 시레밀은 영락없이 뜨거운 스프를 흘린다.
다른 시레밀의 옷 속에다가,
♥ 삶의 지혜
선행에 대한 가장 큰 댓가는 무엇인가?
또 다른 선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죄악을 두려워하던 사람도 한 번 악을 저지르고 나면 그 다음은 쉬운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아주 간단하게 악의 포로가 되어서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버린다.
인간의 적응력은 높다.
잠시동안 못 보는 사이에 사람이 갑자기 변해 버리는 수가 있다.
[아니, 자네가 그럴 수가 있나?]
[설마... 그 사람이.]
이런 대화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종종 듣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처럼
선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당신도 한번 시험해 보라.
♥ 삶의 지혜
선보다는 악이 빨리 번진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날 랍비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항상 신에게 경건한 사람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신에게 기도하고 착한 행동을 하도록 강력하게 권하지 않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이에 랍비는 반문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항상 착한 일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 것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악한 자들은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강한 힘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자기네들의 패거리를 늘여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우리들보다도 훨씬 열심히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랍비는 다시 대답했다.
[그것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서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쁜 짓을 하려는 자들은 혼자 걷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 삶의 지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은 성서에서 나온 말이다.
한 유태인이 같은 유태인을 속였다고 하자.
가령 1만 파운드를 속여서 빼앗았다면 오늘날에도 유태인은 재판소에
가기보다는 둘이 함께 랍비에게로 갈 것이다
(아니면 피해를 입힌 자가 랍비에게 소환당할 것이다).
랍비는 자기가 믿고 있는 지역 사회의 재판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랍비는 당연히 1만 파운드를 돌려주라고 할 것이다.
일단 반환만 하면 가해자의 죄는 없어져 버린다.
정신적으로 흰 옷감처럼 하얗게, 완전히 결백하게 된다.
그는 옛날의 그로 돌아가고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반환하기만 하면 죄는 없어진다. 이것이 유태의 전통적인 정의이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잔인한 말이라고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 결코 그렇지는 않다.
가령 어떤 사람의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깨뜨렸으면
그에 상당 하는 것으로 반환하라는 것이 유태의 율법이다.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를 깼는데
값비싼 자동차 한 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이발사가 잘못하여 손님의 귀를 자르게 되면
손님이 이발사의 팔 하나를 요구하기로 하고,
밭의 올리브나무가 하나 잘리게 되면
상대의 재산 전부를 빼앗으려는 일이 많았으므로
배상이 타당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이것은 복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복수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 삶의 지혜
사람들은 돈을 시간보다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로 인하여 잃는 시간은 금전으로도 사지 못한다.
평생 동안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 이유를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돈이나 부는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으나
일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탈무드>에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며 시간이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쓸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한 인간은 남의 돈을 맡아서 쓸 때에는 특히 신경을 써서 규모 있게 돈을 쓴다.
그리고 남에게 금전적인 신세를 지는 것에도 매우 신경을 쓴다.
그러면서도 약속 시간에 늦거나
쓸데없는 일로 남의 시간은 빼앗는 것에는 무신경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시간보다도
돈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시간과 돈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둘 중에서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간의 부자, 시간의 가난뱅이,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금전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시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간으로 돈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 삶의 지혜
정원을 보면 그 집의 정원사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모두 한평생을 살아가며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와 같다.
정원에는 갖가지 수목이 우거지고,
계절마다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꽃밭이 있다.
또 연못이나 냇물을 만들수도 있다.
그리고 항상 나무나 잔디같은 것을 관리해야 한다.
입으로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고
자신을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실제로 쌓아놓은 업적밖에 없다.
정원은 실제로 쌓아놓은 업적이다.
지금 막 만들기 시작한 정원이라도
한 번만 보면 믿을 수 있는 정원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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