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64괘

주역(周易) 觀卦第二十

rainbow3 2020. 3. 21. 20:41


♣ 주역(周易) 觀卦第二十

   : 풍지관


巽上坤下(손상곤하)/풍지관(風地觀) 

 

"제사를 지낼 때 처음 손을 씻을 때처럼 하고 제수(祭需)를 다 올렸을 때처럼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즉 아직 발동하기 전의 기상이다(상촌집) 

 

임(臨)과 관(觀)의 뜻은 혹은 내가 가서 상대하고 혹은 상대방이 와서 구하는 것이다(臨觀之義 或與或求) 

觀卦는 네 음효(陰爻)가 위에다가 보기를 구하고 두 양효(陽爻)가 아래를 보는 것이다. 이는 서로 間에 더불어서 求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부자(夫子)가 칠조개(漆雕開)에게 벼슬을 하라고 권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의 학문이 벼슬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聖人께서 그에게 벼슬을 하도록 권한것인데, 그가 대답한 말을 보면 성인이 미처 알지 못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니, 이렇게 본다면 그는 참으로 자신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음은 물론이요, 도에 대한 믿음이 또한 독실한 사람이었다고 하겠다 

동년(同年)인 전동야(田東野)는 겨우 스승에게 나아갈 나이(10세)가 되었을 때에 7경(經)에 이미 통달하였고 약관(弱冠)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마침내 대과(大科)에 급제함으로써 하루아침에 그의 명성을 온 나라에 진동시켰다, 그러고 보면 東野의 학문이 과연 벼슬하기에 넉넉한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원래 논할 필요도 없다 할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하고는 벼슬 한 자리를 얻자마자 곧장 그의 향리로 물러갔다가 지금 5년이 지나서야 비롯 조정에 나아왔으니, 동야 역시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서 도의 큰 뜻을 알아본 사람이라고 하겠다 

내가 일찍이 동야가 행한 일을 역도(易道)에서 찾아보건대, 관괘(觀卦)의 육삼효(六三爻)가 이와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효사에 "나의 생을 관찰한 뒤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한다(觀我生 進退)"라고 하였는데, 본의를 보면 "나의 생이란 나의 소행을 가리킨다(我生 我之所行也)"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자기의 소행이 어떠한지를 관찰하고 나서 나아갈 만하면 나아가고 물러가야 하면 물러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선배학자가 칠조개의 행위를 관괘의 육삼효에 해당시켰던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 바야흐로 관괘의 구오효(九五爻)에 해당하는 임금님께서 높이 대관(大觀)의 위치에 계시는 상황에서 동야가 자기의 소행이 도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관찰하고 나서 조정에 나아왔고 보면, 지금까지의 육삼효가 이제는 변해서 점괘(漸卦)로 바뀌게 되었다고 할것이다. 대저 점(漸)이란 말은 순서에 따라 앞으로 차츰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점괘의 단사(彖辭)에 "나아가면 자리를 얻게 되나니, 이는 가는 곳마다 공을 세우기 때문이다(進得位 往有功也)" 

라고 하였는데, 이제 동야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고 보면 동야가 예전에 물러났던 것은 마치 칠조개처럼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혹시라도 빨리 이루려고 하는 잘못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요, 오늘 나아온 것은 일단 자신의 학문이 부족한 점을 성실히 보완함으로써 자득하지 못한 허점을 그런대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여겼기 때문 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나는 또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앞으로 나아오기 위한 준비 단계요, 앞으로 나아오는 것은 뒤로 물러난 효과가 드러난 것임을 알겠다. 이것이 어쩌면 동과 정은 상호 의존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그중에서도 정이 바로 동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 동야같은 사람이야말로 진퇴와 동정의 이치를 알고서 역의 도리를 깊이 터득한 자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 세상의 악착같은 무리를 보면 자기의 재질이 그  자리에 걸맞은지의 여부도 따지지 않은 채 무턱대고 덤벼들면서,앞으로 나아올 줄만 알 뿐 물러갈 줄은 모르다가 자기의 몸을 망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사람들이 우리 동야의 풍도를 접하면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자(韓子)가 말하기를 "내가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애당초 앞으로 나아오기 위한 것 아님이 없은데 반하여,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오는 것은 애당초 뒤로 물러나기 위한 거 아님이 없다(吾之退 未始不爲進 而衆人之退 未始不爲退也)"고 하였는데, 이 말이 그럴듯하지 아니한가. 도를 체득한 공문(孔門)의 君子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간이집제9권) 

 

觀,盥而不薦, 有孚顒若.             관은 손을 씻고 제수를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엄숙하 

                                         백성들이 정성을 다하여 우러러 존경하리라 

       (제사에서 첫 술잔을 올려 강신(降神)한 뒤부터는 아무래도 정성이 처음만 같지 못하므로한 말이다/伊川) 

       (손을 씻고 아직 제수를 올리지 않았을적에는 이란 것은 경(敬)의 지극것이다.

        폐백을 아직 올리기 전을 말한다/순암집) 

 <관이불천(盥而不薦)이라는 말에 대해서 정이천(程伊川)은 "술을 땅에 부어 귀신이 降臨하도록 할 때까지는 성의와 공경하는 뜻이 그래도 남아 있다"라고 해설하였는데, 주희의 본의(本義)에서 다르게 해설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고는, 주희가 대답하기를 "盥(관)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지 손을 씻는다는 것이지, 술을 땅에 부어 귀신이 강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천은 先儒의 잘못을 답습하였다, 만약 제물을 올리고 난 뒤에는 성의가 줄어든다고 말한다면,

선왕이 제사를 지낼 적에 단지 강신(降神)할 때까지는 그래도 성의가 남아 있다가 막상 제물을 올린 뒤에는 모두 예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것이다(주자어류)> 

   盥/관 : 대야,강신제(내림굿),깨끗하다,씻다,양치질하다 

   薦/천 : 천거하다,드리다,올리다,늘어놓다 

   顒/옹 : 엄숙하다,크다,힘세다,우러르다,엄정한 모양,큰 머리통 

   

彖曰, 大觀在上, 順而巽, 中正以觀天下.    단에 이르기를 뭇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가장 윗자리에 거하여  

                                                    아랫사람들을 순종시키면서 중정한 덕으로 천하에 모범을 보여주니

“觀盥而不薦, 有孚顒若”,                      "손을 씻고 제수를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엄숙하면

                                                    백성들이 정성을 다하여 우러러 존경하리라"는 것은 

下觀而化也.                                     아랫사람들이 보고 교화되는 것이라  

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                     하늘의 神道를 보매 사시(四時)가 틀리지 않다 

 <天之神道는 두 陽이 하늘의 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四時는 여섯 爻의 자리에 四時의 象이 갖추어져 있는바,

음과 양이 여섯 효의 자리에서 유행하여 세공(歲功)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聖人以神道設敎,                               성인이 신묘한 하늘의 도리(神道)를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푸니  

         (聖人은 五爻를 가리킨다) 

而天下服矣.                                     천하가 복종하였다(복희씨가 팔괘를 그어 교화함) 

象曰, 風行地上, 觀,                            상에 이르기를 "바람이 땅위에 부는 것이 관괘이니  

先王以省方觀民設敎.                          선왕이 이 관괘를 보고서, 사방을 순행하며 두루 살피고 

                                                    백성의 풍속을 관찰하여 교화를 베풀었다 


初六, 童觀, 小人无咎, 君子吝.               초육은 동관이니 소인은 허물이 없고 군자는 수치스럽다 

  (소인은 무식한 백성을 말하고 동관은 식견이 얕아 어린아이와 같다) 

象曰, 初六“童觀”, 小人道也.                 상에 이르되 초육은 "어린아이가 보는것이다"는 것은 소인(小人)의 도이다 


六二, 闚觀, 利女貞.                            육이는 엿보는 것이니,여자가 貞하게 하는 것 같이 하면 이롭다 

象曰, “闚觀女貞”, 亦可醜也.                 상에 이르되 "엿보는 것이니, 여자가 貞하게 하는 것 같이 하는 것"도  

                                                   추하다 할수 있다 

 

六三, 觀我生, 進退.                           육삼에 "나의 생을 관찰한 뒤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한다" 

<본의에 "나의 생이란 나의 소행을 가리킨다"> 

<아(我)는 본효(本爻)인 三爻를 가리킨다. 生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가리키니 言動이나 사위(事爲)가 그것이다.觀我生은 간체(艮體)의 독실(篤實)상으로 六三의 호체(互體)가 간(艮)이며 전체의 모양 역시 간(艮)과 비슷하다 

진퇴(進退)는 三爻가 위와 아래의 사이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의 象이 있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내가 행하는 것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는 것은 간(艮)의 상이다, 때에 맞게 행하고 때에 맞게 그쳐 동정(動靜)에 있어서 제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하였다(지산집)>  

象曰, “觀我生進退”, 未失道也.              상에 이르되 "내가 하는 것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감"은  

                                                   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나라의 빛나는 정치를 관찰함이니 조정에 벼슬함이 이로우리라 

                     <나라의 휘황한 빛을 봄이니, 왕에게 나아가 손님 노릇을 하며 

                      벼슬하는 것이 이롭다>(선진 문물을 접하여 견식을 넓힌다) 

                      (벼슬을 하면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함) 

象曰, “觀國之光”, 尙賓也.                   상에 이르되 "나라의 광채를 본다는 것"은 손님이 되려는 뜻이 간절한 것이다 


九五, 觀我生, 君子无咎.                     구오에 "자신의 행위를 살피는 임금이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生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가리키니, 풍속의 좋고 나쁨과 臣民의 따르고 거역함이 그것이다. 觀我生은 역시 艮의 象이다. 군자는 本爻인 五爻를 가리킨다 

내가 생각해보건대, 五爻와 上爻의 행함은 강양(剛陽)하고 오효는 또 중정(中正)하다. 그러므로 모두 군자를 칭하였다,三爻는 陰으로서 陰의 자리에 있으니 행하는 바가 음유(陰柔)하다>(지산집) 

 

<지존(至尊)인 임금으로서 온 천하 백성을 관찰할 때 백성들에게 모두 군자(君子)의 풍도가 있으면 허물이 없다는 뜻으로 正敎가 잘된 것을 의미함> 

<육삼효는 나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나서 다른 사람을 따르는 것인데 반해, 구오효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여 나 자신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내는 것을 보되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하였는데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내가 내는 것을 본다는 것은 백성을 봄이다"하였고 정자(程子)는 전(傳)을 지어 말하기를, "구오(九五)는 임금의 지위에 거하였으니, 때의 다스려지고 혼란함과 풍속의 좋고 나쁨이 자기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만일 천하의 풍속이 모두 군자답다면 이는 자기가 행한 정치와 교화가 선(善)한 것이니 바로 허물이 없는 것이요, 만일에 천하의 풍속이 군자의 도에  합하지 못하다면 이는 자기가 행한 정치와 敎化가 善하지 못한 것이니 허물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가 낸다(我生)"는 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니, 임금이 자기가 시행한 것이 선한가 선하지 못한가를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백성을 관찰해야 한다"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임금은 한나라의 근본이고 한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이 임금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심과 세도(世道)가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전하의 정치와 교화가 훌륭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율곡선생 전서제6권 중에)

  

象曰, “觀我生”, 觀民也.              상에 "자신에게서 나온 행위의 선악을 알려거든 백성의 선악을 보면 된다"

 

上九, 觀其生, 君子无咎.             상구에 "그 내는 것을 관찰하되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현인과 군자가 높은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도 도덕을 갖추어 천하의 추앙을 받는 상이다)   

象曰, “觀其生”, 志未平也.           상에 이르되 "그 내는 것을 관찰한다는 것"은 뜻을 평안히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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