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일반

시대를 앞서간 초인 프리드리히 니체

rainbow3 2019. 9. 14. 11:54


시대를 앞서간 초인 프리드리히 니체…실패를 공유하는 조직이 성공한다

 

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아, 그때 내가 그 인간에게 엮이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 고생은 안하고 있을 텐데….”

“그때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어!”

오늘도 이런 후회와 질책으로 아까운 시간을 소모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그 이름만큼은 너무도 친숙한 철학자,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니체는 목사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목사 집에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했을까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신을 인간들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자 죽어버린 겁니다. 유럽 여행 가서 웅장하게 만들어진 성당에서 신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카메라를 손에 든 또 다른 관광객들만 보셨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미 니체 시대에 벌써 시작됐기 때문에 니체가 그런 말을 한 겁니다.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의 변증법

 

그는 자신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정신 발달에는 3단계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이것을 동물에 비유해 아주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첫째, 낙타의 단계입니다. 낙타는 참을성이 많고 복종을 잘하기 때문에 더운 사막에서 주인이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지워도 불평 한 마디 안하고 묵묵히 앞에 가는 낙타의 뒤를 따라가기만 합니다. 힘이 없고 소심하기 때문에 주인에게 대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사막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그러는 것이죠. 그래서 낙타의 마음속에는 르상티망, 우리말로 원한 감정이 쌓여 갑니다. 한 마디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둘째, 사자의 단계입니다. 사자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면 주인에게도 달려들 정도로 용맹하고 사납습니다. 문제는 늘 혼자 불안하고 고독하다는 겁니다. 같이 어울려 일을 추구하기가 힘듭니다. 인간이 사자와 달리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서로 협동하는 윈-윈 시스템을 만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같이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혼자 똑똑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궁극의 세 번째 존재는 어떤 동물이 차지했을까요.

이게 좀 의외입니다.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왜 그럴까요. 니체의 설명을 듣겠습니다.

어린아이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잘 잊어버립니다. 둘째,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즐깁니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세요. 조금 전까지 싸우던 친구와도 금방 헤헤 웃으면서 또 같이 놀고 있습니다. 장난감을 놓고 싸울 때는 평생 원수가 될 것 같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손잡고 놉니다. 그게 바로 애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역시 뭐든지 마음에 꽁하고 담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니체는 이런 비유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옛날에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밭에 나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토끼 한마리가 깡충깡충 뛰어 오는 것이 아닙니까? 뭘 하나 봤더니 자기 혼자서 나무 밑동에 머리를 꽁하고 쥐어박더니 나동그라지면서 기절합니다. 농부는 이렇게 불로소득으로 토끼 한 마리를 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그 다음날 농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죠? 나무 뒤에 숨어서 ‘또 어디서 멍청한 토끼 한 마리가 오지 않나’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이것이 ‘한비자’에 나오는 수주대토의 우화입니다.

과거의 성공에 안착하는 사람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과거 성공한 전략을 또 안이하게 써먹으려고 하면 상대방이 그냥 당하고 있겠습니까. 과거의 성공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 또한 잊어버려야 합니다.

“아 그때가 기회였는데. 옆에서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이렇게 과거 실패에 집착하는 것은 쓸데없이 감정 소모만 일으키는 겁니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중입니다.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는 한 연구원이 있었습니다. 개발하는 접착제마다 접착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이 쓸모없는 접착제를 갖다 쓸 사람은 쓰시오”라고 합니다. 이때 “그 접착제를 제가 쓰겠습니다”라고 다른 연구원이 말합니다. 그 다른 연구원은 북마크용 접착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발하는 접착제마다 접착력이 너무 세 책에 붙였다 떼면 책이 다 찢어집니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접착제를 갖다 붙였더니 뗐다 붙였다 계속 반복됩니다. 대박이 터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포스트잇 개발 스토리입니다.

저는 이를 볼 때마다 첫 번째 연구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실패한 결과물을 다른 동료들과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포스트잇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실패를 공유하고 있습니까. 만약 리더가 “나는 수치로 나타난 성과만 보고 직원들을 평가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부하가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동료와 공유하겠습니까.

 

 

과거를 잊고 현재에 몰입하라

 

실패를 보상하십시오. 그것이 실패를 공유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 그렇다면 과거의 성공도 실패도 싹 잊어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겁니다. 교훈을 얻기 전에 우리는 과거를 잊지 못합니다. 교훈을 얻는 방법은 참 단순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 것이 교훈을 얻는 첫걸음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한 교훈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자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의 첫걸음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비로소 과거를 향한 시선이 현재로 옮겨오게 됩니다. 이때야 비로소 현재를 진정으로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즐긴다는 것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한다는 겁니다. 몰입한다는 것은 선택한 후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진정한 리더는 “자신에게 명령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상사의 명령에 싫으면서도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낙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사자처럼 팀플레이를 할 줄 모르는 독불장군, 모든 일을 혼자 끌어안고 독식하는 사람도 역시 위험합니다. 비즈니스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자신에게 명령만 내리지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의지가 약한 사람입니다. 머릿속에만 알고 있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해야 성과가 나옵니다.

그러니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어린아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몰입해 보세요.

몰입은 선택과 집중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은 전략과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과거를 잊고 현재를 즐기면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전략을 취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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