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 교수의 人間과 神 1

rainbow3 2019. 9. 15. 16:15

[배철현 교수의 人間과 神]

 

① 종교는 향기다

 

58764 기사의  이미지

 

 

 

1988년, 88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필자는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보스턴 로건비행장에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도착해, 그 후 12년간의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종교와 문명, 특히 그 근저가 되는 고전어를 전공하였다. 하버드대학 종교학대학원(Divinity School)에 입학하여 전혀 밟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 록펠러가 지어준 기숙사에서 1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기숙사는 4층 건물로 한 층에 20명 정도 살고 부엌을 공유한다. 한 층은 화장실과 샤워장을 둘러싸고 5개의 조그만 방이 있다. 5명이 싫든 좋든 1년 간 살아보라는 학교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해 보지도 못했고 배울 기회도 없어서 ‘종교적으로 무식한’ 나는 4명의 기숙사 동료를 보고 한참 적응해야 했다. 다섯 명의 프로필은 이러하다. 스탠리는 남침례교회 대형 교회 목사로 키가 2m 정도 되는 흑인이었고, 이브라힘은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이슬람 수니파 임맘(사제), 느왕은 티베트 출신 불교 라마승으로 현재는 시카고대 티베트어 교수, 존은 무신론자로 현재는 FBI 암호 해독가, 그리고 필자.

기숙사 생활은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필자는 공부 잘하고 좋은 학점 따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 특히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종교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여 사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과 샤워장 청소문제였다.

 

스탠리 흑인 목사가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사용하면 지독한 냄새로 한 시간은 족히 출입금지였다. 그 누구도 바쁜 아침에 화장실 가기를 꺼렸다. ‘머리 좋은’ 필자는 동료들에게 학교 헬스클럽에서 샤워를 해결할 테니, 화장실 청소를 면해달라고 통보했다. 나머지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든지 상관없이 나는 그 상황을 빠져나왔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나-먼저’라는 이기심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화장실과 샤워장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향까지 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알아보니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느왕이 항상 남모르게 청소하고 향을 피웠다.

 

그는 1년 간 묵묵히 자신의 수행처럼 청소했다. 나는 느왕을 보면서 붓다가 생각났다.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은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저 종교적 경험이나 자기증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깨달음을 경험한 후, 북적이는 시장에 돌아와서 모두를 향한 헌신적인 삶을 실행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붓다는 말한다. 그는 열반을 얻은 후에,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려는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그 대신에 남은 생애 40년을 길거리에서 자신이 터득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쳤다.

마하야나 불교에서 영웅은 ‘보살(bodhisattva)’이다.

그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고통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1년 뒤 기숙사를 떠나기 전 무신론자 존이 우리 모두를 불러놓고 하는 말이 자신이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티베트 불교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종교는 신념체계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종교에선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행동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선행을 위해 종교의 교리가 존재한다.

 

21세기는 세계화시대이다. 세계가 하나로 융합되고 문화가 그 융합의 DNA이다. ‘문화’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 행동의 일정한 형태와 상징이라고 정의하면, 문화 핵심들 중에 하나는 ‘종교’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 강력한 문화현상을 이해해야만 한다.

16억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류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날에 예배 드리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전 6세기 나라를 잃고 2500년 후에 국가를 건립한 이스라엘인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중국의 지도자들은 13억 인구를 이끌고 G1을 꿈꾸면서 그들이 채택한 ‘유교’란 무엇인가.

 

글로벌 사회에서 종교, 특히 세계 주요 종교들의 핵심과 그들의 현황, 더 나아가 각 종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일은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세계인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에게 필수이다.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종교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이해는 21세기 리더들의 기본 자질이다.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융합의 시대’에 성급한 종교의 비교는 종교간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그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상징체계와 행동양식이 있는데, 이것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다 보면, 개별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금 G1 미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17세기 유럽에서 종교박해와 경제자유를 위해 온 청교도들이 ‘언덕 위에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20세기 말 부시 정부 당시 ‘테러와의 전쟁’의 기조를 이루었고,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퇴락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의 동양에 대한 몰이해, 특히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의 이슬람 이해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기원전 7세기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목도한 예언자 미가는 당시 종교의 구태의연함과 자기기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전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의 의미는 ‘향기’이다.

신이 원하는 삶,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방의 기준 안에서 향기가 나는가?”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이런 삶이 바로 인간됨의 삶이 아닌가?

 

 

 

②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184274 기사의  이미지

 

 

우리는 ‘과학만능주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실증적이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진리’라고 믿고 있다. 인간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란 잠정적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표시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진리’라고 믿었던 그 ‘진리’도 ‘거짓’이 되고 만다.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를 출간하기 전까지,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그때까지 인간들의 과학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정지해 있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만원경을 만들어 과학적으로 지구의 자전을 실증하자, 그전까지 믿어왔던 ‘천동설’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진리란 가설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하늘에 별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성능이 더 좋은 망원경을 개발하면서 우주 안에 있는 셀 수 없는 별들의 지극히 일부를 관찰할 따름이다. 우리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관찰할 따름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동식물은 생식 작용을 통하여 태어난다. 그러나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에 생물이 태어났는지는 그 어떤 과학자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없다. 찰스 다윈(1809~1882)이 주장한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그리고 종의 분화를 통하여 새로운 종이 탄생하고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이다. 다윈은 인간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본성을 밝혀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과학적 설명인 것처럼 보인다. 과학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불가피하게 이기적이며 우리는 경쟁자에 대항하여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타주의’는 환상이며,인간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스러운 일루전이다. 기껏해야 그것은 ‘비유전적 문화요소(meme)’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문화적 아이디어, 상징, 혹은 실천들의 단위일 뿐이다. 이것은 ‘자연 선택’의 운 좋은 실수로,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유용한 생존 메커니즘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협동하는 법을 배운 무리들은 자원에 대한 절박한 경쟁에서 빠른 우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소위 ‘이타주의’라고 하는 것이 껍데기에 불과하고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이타주의자’는 스스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동족들에게 보답을 기대한다”라고 하버드 생물학자 E O 윌슨은 냉소적으로 주장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는 무자비하게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것은 대략 50억년전 원시 시대부터 고투했던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파충류에겐 생존이 가장 중요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은 ‘먹고’ ‘싸우고’ ‘도망치고’ 그리고 ‘번식’이었다. 파충류들은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쟁하고, 어떤 위협도 불사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과 도망을 반복하고, 번식을 위해 무슨 행동도 감행한다. 우리 파충류 선조들에게 이어받은 DNA가 바로 ‘이기적 유전자’이다. 우리는 지위, 권력, 명예, 섹스, 생존에 관심이 있으며, 대다수 인간들은 이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러나 수천년에 걸쳐, 인간은 또한 ‘새로운 뇌’를 발전시켰다. 즉 신피질을 진화시켜왔다. 이것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숙고하고 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격정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지는 추론 능력의 발상지이다. 1878년에 프랑스 해부학자인 폴 브로카(Paul Broca)는 모든 포유류가 파충류의 뇌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뇌 부분을 ‘르 그랑 로브 림빅’ (le grand lobe limbique)이라고 불렀다. 온혈 포유류의 도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생존을 보장하는 뇌의 진화로 이어졌다.

온혈 포유류의 뇌는 더 커졌다. 뇌가 커지면서, 어미의 산도(産道)를 통과할 수 있도록 새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나야만 했다. 새끼들은 무기력했고, 어미와 그 집단을 새끼의 생존을 위해 보살펴야 했다. 이것은 특히 호모 사피엔스에게 적용되었다. 그들이 점점 커다란 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온혈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걷고 자신 스스로 어미에게 수유를 한다.

 

인간은 상황이 달랐다. 그 어미가 털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아기는 어미에게 매달릴 수 없었다. 어미는 자신의 욕망과 배고픔을 억제하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수년 동안 아이를 돌봐야했다.

부모의 ‘전적으로 이타적인’ 돌봄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며, 아이는 어미의 행동을 통해 ‘이타적인 노력과 헌신’이 인간생존의 기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셈족 언어에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 즉 ‘컴패션’을 ‘라흐민’(rahmin)이라고 한다. ‘라흐민’은 어원적으로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레헴’(rehem)에서 유래했다.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의 원형은 바로 ‘라흐민’이다.

이 단어는 아랍어에서도 ‘라흐만’(rahman)으로 등장한다. 특히 이슬람 경전인 꾸란은 모든 장이 “라흐만의 알라의 이름으로“으로 시작한다. 이슬람에선 ‘알라’신의 속성을 바로 ‘컴패션’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억제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조건적으로 이타적 인간성인 모성애를 배양시켰다. 아이에 대한 헌신적으로 사심없는 행위는 하루 종일 요구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집중하여 자신이 없어진다. 아이에 대한 염려가 그녀의 삶의 중심이 된다. 그녀가 싫건 좋건 아이가 밤에 울면 일어나 젖을 먹여야하고 아이가 아프면 자신의 피곤함과 분노를 절제하고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가 성년이 되어서도 계속되며 그 사랑은 자신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치게 된다. 인간의 ‘이타적 유전자’는 자기 자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소방관들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들어간다. 하루 종일 시청에서 쓰레기 수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주말에는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의대를 졸업하고 신학대에 들어가 신부가 됐다. 그는 스스로 내전 중이던 남수단의 톤즈로 들어가 간이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지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 오르간 연주자, 철학자였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31세에 모교 의학부의 청강생이 되어 의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가봉)에서 일생을 마쳤다.

위대한 종교와 사상을 전한 성인들은 바로 인간이 가진 ‘이기적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인간 안에 잠재되어있는 ‘이타적 유전자’를 설득력있게 선포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에 의존해 산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③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입니까

 

189295 기사의  이미지

 

 

필자가 1988년에 유학을 갔을 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종교를 공부해야 하는데, 종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도무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는 존 휴너가르드 교수(현재 텍사스 대학 근동학과 교수)가 있었다. 그는 셈족어와 인도-유럽어 등 거의 100개 정도의 언어를 판독하고, 자유자재로 읽고, 말까지 하는 세계 최고의 고전문헌학자였다.

필자는 그가 고전문헌을 원전으로 읽고 해석하는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막연히 나는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필자는 용기를 내서, 그가 가르치는 ‘고전 에티오피아어’를 수강 신청하였다. 고전 에티오피아어는 ‘게에즈’라고도 불리는데, 초기 그리스도교 경전들이 이 언어로 기록되어 성서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어이다. 첫 수업시간에 들어가니, 단 세 명만이 수강 신청했다. 두 명은 셈족어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갓 온, 영어도 떠듬거리는 유학생이라, 이 수업을 따라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필자는 수강 신청을 철회할 목적으로 휴너가르드 교수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휴너가르드 교수는 필자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종교 경전을 해석하는 훌륭한 고전문헌학자가 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종교 경전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특히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고고학자처럼 깨내야 하기 때문에, 고전어에 정통해야 한다.

독일어, 프랑스어와 같은 현대어뿐만 아니라, 고전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본격적으로 경전들을 연구할 수 있다. 필자는 영어 몇 마디 하고 미국에 갔는데, 이 언어들을 어떻게 공부하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과 경쟁하여 박사 과정에 입학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면담을 마치기 전, 휴너가르드 교수는 “Mr. Bae, Show Yourself!”라고 말했다. 나는 며칠 동안 “Show Yourself”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뭘 보여줄 수 있는가?

휴너가르드 교수는 현재 필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최선(最善)을 보길 원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어떤 실마리도 없었던 최선을 찾기 위해, 하버드 도서관들 중에 하나인 ‘힐레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나의 최선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서관 문을 닫으면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들 중 하나는 인간만이 최선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삶’이란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아담’이라고 했다. ‘아담’이란 히브리 단어는 ‘흙’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흙’이었다, 잠시 ‘숨’을 쉬는 생명체가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다소 비관적인 정의에 반기를 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앤스로포스’라고 정의하였다.

‘앤스로포스’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두 팔을 하늘로 향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땅을 보지 않고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하늘을 보고 최선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 최선의 길을 지향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을 바로 ‘도(道)’라 한다. ‘도’는 노력과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이 최선을 향한 ‘도’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아트’라고 불렀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3000년 동안 지탱시킨 매트릭스이다.

기원전 27세기 이집트 파라오 조세르는 당시 총리이자 수학자, 건축가였던 임호텝에게 자신의 무덤 건축을 부탁한다. 조세르 이전 무덤은 직사각형 육면체였다. 임호텝은 처음으로 피라미드식 무덤을 도입한 건축가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피라미드를 ‘계단식 피라미드’라고 하는데, 후대에 등장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피라미드, 메소아메리카 피라미드의 원조이다. 임호텝은 직사각형 육면체를 점점 작은 규모로 6개 올려 소위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임호텝이 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전 정교한 의례를 행했다. 그 의례는 2t이 넘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을 돌을 200만개 정도 올리기 위해 지면에 전체 구조의 중심을 찾는 일이었다. 고대 이집트는 남쪽 누비아와 수단에서 몰려와 기원전 3100년 처음으로 왕조를 이루었기에, 오래된 아프리카 의식이 이집트 문화에 흡수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건물의 중심, 신전의 중심, 우주의 중심을 ‘타조의 깃털’로 표시하였다. 바로 이 타조의 깃털을 마아트라 불렀다. 마아트가 그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수백만개의 돌들이 곧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마아트가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4700년이 지난 오늘날도 피라미드는 건재하여 우리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아트는 ‘진리’, ‘정의’, ‘조화’, ‘균형’, ‘우주의 원칙’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집트 문명과 종교의 핵심이다. 마아트는 후대에 여인 머리 위에 타조 깃털을 꽂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하늘의 별들과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조절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 마아트는 ‘마아’라는 형용사의 여성명사형이다. ‘마아’의 의미는 ‘적절한’, ‘최선을 다하는’, ‘올바른’이다. 마아트는 우주의 균형이자 원칙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조화이며, 심지어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생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개인의 최선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인의 최선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과 일치하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문헌인 <사자의 서>에서 마아트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관원이었던 ‘휴네페르’는 죽은 자는 자칼 가면을 쓴 시체방부처리신인 ‘아누비스’를 따라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 중앙에는 시장에서 보는 천칭이 있어 한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엔 타조 깃털인 마아트를 올려놓는다. 이 천칭은 사람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 평가는 시장의 천칭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그 옆에 웅크린 괴물 ‘암무트’는 죽은 자가 생전에 한 생각, 말, 행동을 낱낱이 기록한 생명의 책을 들고 있는 토트신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천칭이 평형을 이루면 그는 영원한 세계로 이동할 수 있지만, 천칭이 기울어진다면 그 옆에 있는 암무트가 그를 잡아 먹는다.

여기서 마아트는 휴네페르가 살아 있으면서 반드시 해야 할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해야 할 마아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내 자신의 마아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삶, 그 과정이 바로 도(道)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구원이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우주적인 명령을 깨닫고, 자신에게만 맡겨진 그 마아트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④ HOMO CARITAS

 

 

 

 

우리는 좀처럼 감동받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전쟁의 참상을 보고도 남의 일로 여기고 쉽게 넘어가기 십상이다. 나의 메마른 삶에 충격을 주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서 삶의 방향계를 새로 설정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2005년 어느 날, 신문에서 ‘벽안의 천사들’이란 신문기사를 읽었다. 필자하고 전혀 상관없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수녀 이야기인데, 글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신문기사의 제목은 ‘올 때 소리 없이 왔으니, 갈 때도 말없이 떠납니다’였다. 제목을 봐선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70세가 넘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란 수녀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에 온 것은 1962년.

당시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보다 못사는 후진국이었다. 20대 중반의 금발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늘씬한 두 수녀가 한국인들도 금기시하는 ‘문둥병 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살던 편안한 오스트리아에서 전혀 듣지 못한 한국, 그것도 소록도에 온 것일까? 한국에 찾아온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한센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우들이 한국이란 땅에서 집단수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사람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두 수녀는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 것이다.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컴패션(Compassion)’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최고의 지도자와 경영자는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고통을 인문학적인 소양을 통해서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들의 삶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컴패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 바로 이 마음은 자신으로부터 한걸음 밖으로 나가는 엑스타시(ek-stasis)의 단계이며 자신을 남으로 채우는 무아(無我)의 경지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우리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내가 더 강해져 남을 쉽게 이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시 한 번 뒤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배운다.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배우는 이유는 내 자신을 벗어나 남의 입장에 서보는 연습을 하여, 인간 마음에 내재한 ‘컴패션’을 ‘밖으로 꺼내기(e-ducation)’ 위함이다. 최고의 인문학적 소양이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암기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없애고 남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는 ‘컴패션’이다.

몇 년 전 필자는 인세반(스티브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린튼가(家) 선교사집안의 3대 자손으로, 그의 아버지 인휴(휴 린턴) 목사는 “성공이란 많은 사람을, 특히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라 말했다.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두 수녀에게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소록도에 도착한 두 수녀는 당시 한국에는 이들을 치료할 의료시설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의료품과 지원금을 신청하여, 한국의 한센인을 자신의 자녀로 품은 것이다. 이들은 한센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정성껏 43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상상해 보라! 우리의 자녀가 43년 동안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버린 이들과 생활한다면 우리는 찬성할 수 있는가? 도대체 이들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캠패션의 행위를 할 마음을 어떻게 가졌을까?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선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일을 극히 꺼려서 수백 개의 감사장과 공로패는 돌아가야만 했다. 일일 봉사랍시고 공개적으로 사진 찍은 연예인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이들에게 명예란 무엇인가?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두 수녀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하루 전 소록도 병원 측에 이별 통보를 했다. 소록도 주민들은 20대 처녀에서 70대 할머니가 된 금발 수녀들을 ‘할매’라고 불렀다. 이들은 이미 전라도 할매가 되었다. 두 수녀는 주민들에게 아픔을 준다며 편지 한 장을 남겼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인해 아프게 해드린 일을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라며 말문을 흐렸다.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이 수녀들의 짐이라곤 43년 전에 가져온 다 해진 검은색 가방 하나뿐! 이 낡은 가방은 세상의 어떤 명품보다 훨씬 더 명품이다. 그 안에 기막힌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감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은 전염성이 있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명품의 조건으로, ‘영적인 감동’으로 ‘전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아는 최고의 명품은 이 할머니들의 가방이다.

이들이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면서 “성당에 나오세요”라고 권유하거나 전도했을까? 필자는 그런 말을 낯간지러워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센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모마리아였기 때문이다. 사지가 녹아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였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예수도, 너희가 평상시 만나는 불쌍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상정한 신을 자신들이 만든 종교시설에 가두어 놓고 가끔 보러 간다.

‘장소’의 종교가 역사를 통해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화론자 E O 윌슨은 ‘이타주의자는 스스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동족에게 보답을 기대하며 그의 선한 행위는 종종 완전히 의식적이며 계산적이고, 그의 술책은 사회의 복잡한 승인과 요구에 따라 세밀히 조직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만일 이 수녀들의 행위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라고 억지 주장한다면, 인간의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시시하게 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서 주위로 밀어내고 이웃을 내 삶의 중심에 위치하게 될 때 가장 인간답지 않을까? ‘톨레랑스’나 ‘호모 심비우스’라는 개념도 그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컴패션’으로 자신을 승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 그 죽음의 강을 건널 때, 우리는 어떤 가방을 가져가야 할까?

두 오스트리아 두 할머니처럼 인생을 ‘호모 카리타스(Homo Caritas)’, 즉 이웃의 희로애락을 내 희로애락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컴패션’이라 보기에는 보잘것없지만, 감동이 있는 ‘검은 가방’을 가지고 가고 싶다.

 

 

 

 

 Time and Art

 

 

334538 기사의  이미지

 

 

 

인간은 아마도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흔적이 사후에도 기억되길 바라면서 ‘문명(文明)’을 이루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시간과 공간은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과거를 회상해보자. 우리의 과거가 아무리 화려하고 멋지다 할지라도 혹은 아무리 불행하다 할지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찰나(刹那)이다. 우리가 수십 년 후,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한다 할지라도 그 기간은 여전히 찰나일 것이다. 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기원전 11세기 고대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솔로몬 왕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최고의 삶에 대한 단상을 남겼다. 그것이 구약성서에 실려 있는 <전도서>다. 전도서의 원래 이름은 코헬렛(Qoheleth)으로 ‘외치는 자’라는 의미다. 솔로몬 왕은 이 전도사를 통해 우리에게 최선(最善)의 삶이 무엇인지 갈급하게 외친다. 전도서 3장 1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든 일에는 다 그것을 행해야 할 알맞은 때(zeman)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우주의 순환에 적당한 때(eth)가 있다.”

솔로몬은 인간의 유한한 시간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고대 히브리어 ‘제만’과 ‘에트’가 그것이다. 이 두 단어는 유사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다르다.

‘제만’은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시도하고 달성해야 할 시간을 의미하고, ‘에트’는 사계절의 흐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순환주기의 시간을 의미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일상적이며 수량적인’ 의미를 지닌 시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만’과 ‘에트’ 모두 신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시간이란 신이 마련한 우주와 시대의 흐름을 적은 달력이다. 고대 히브리인들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로 구분했다. 영화 <트로이>에서 영웅 아킬레스는 트로이 출정을 망설였다. 그는 어머니인 테티스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그녀는 아킬레스에게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날이 올 것이란 걸 알았다고 말한다.

테티스는 만일 아킬레스가 트로이로 가지 않는다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긴 하겠지만 그가 죽은 후 ‘아킬레스’라는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그가 트로이로 간다면 그는 전쟁을 통해 영광을 얻고 후대인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길 바라는 아킬레스는 전쟁에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흐르는 시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참전한다. 아킬레스에게 이 결정적인 순간은 다른 보통 시간과는 다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상적인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신이 이미 예정한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네이틱(Natick)’이란 도시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다. 백인 할머니만 60명 정도 모인 전형적인 미국교회에 취임하면서 교적부를 보니 1898년생 할머니가 계셨다. 이름은 에벌린 젠넬. 나이는 95세. 에벌린은 수요일이면 동네 할머니를 모아 포커를 치고, 핑크색 정장을 즐겨 입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그 당시 필자는 미국대학에서 과목을 맡아 학부와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목요일이면 에벌린과 함께 양로원에서 요양 중인 교인들을 심방하곤 했다. 심방이라야 자식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 노인들의 쌓인 이야기를 2~3시간 동안 듣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에 3명 정도, 6~9시간 동안 이들 삶의 이야기를 들은 게 내가 받은 최고의 교육이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매세추세츠 주 1월, 한밤중에 네이틱 시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에벌린이 응급실에서 날 찾는다는 전화였다. 병원으로 가니 가족들이 많이 와있었다. 거의 100년 동안 사용한 심장이 멈출 때가 된 것이다. 에벌린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심장박동기를 넣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에벌린은 가족을 다 내보낸 후, 나에게 난처한 부탁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신의 은총으로 건강하게 살았고 직계가족만으로도 3번 결혼을 통해 100명 가까이 된다며, 수술을 받지 않을 예정이니 이대로 하늘나라에 갈수 있도록 가족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에벌린에게 무엇을 조언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날 에벌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벌린, 당신의 삶은 양로원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삶을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 후 에벌린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필자가 그 교회를 떠난 후에도 100세까지 심방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이런 에벌린의 결정과 삶을 ‘예술’이라 부르고 싶다.

일상적인 순간이 특별한 순간, 신이 개입하는 순간으로 만드는 솜씨를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는 아주 오래된 유럽어 어근 ‘르타(*rta-)’에서 유래했다. 서양문헌 중 가장 오래된 문헌 중에 하나인 힌두교의 베다(Veda)에 등장하는 르타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작동을 지배하고 조절하는 자연 질서의 원칙’이다. 르타는 자연과 사회의 도덕, 그리고 의례가 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의례, 예배’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itual(라틴어 ritus)’는 ‘일정한 생각, 말, 행동을 통해 우주의 원칙을 회복하는 시도’이다.

 

르타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명령들을 ‘다르마(Dharma)’라고 하며, 개인에 주어진 명령을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아트’란 시공간에 갇혀있는 유한한 인간에게 그것을 초월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最善)을 선택하고 추구해 ‘영원’을 만들려는 솜씨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자를 ‘아티스트’라고 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삶의 최선을 알려고 노력하고,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에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전염시킨다.

 

기원전 4세기,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다.

 

“Vita brevis, ars longa,

occasio praeceps experimentum periculosum,

iudicium difficile.”

이 라틴어의 문장을 번역하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금방 사라지고 경험은 위험이며,

판단은 어렵다.”

 

우리가 걸어온 지난날을 잠시 생각해보자. 히포크라테스의 말대로 그것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으로 멋있게 만든 예술가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성인들은 모두 우주의 소리를 ‘귀(耳)’로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주위사람들에게 ‘입(口)’으로 전하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壬)’ 사람들이다. 오늘 나만의 시간을 내서 우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배철현 교수는? 

 

우주기원을 성서를 통해 탐구하고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허송세월하다 정신 차려, 인류를 변화시킨 위대한 성인들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성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경전들의 언어인 고대근동언어, 특히 쐐기문자와 성각문자, 셈족어에 매료되어 하버드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와 올해부터 신설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이며, 2009~2013년까지 베이징대 고대근동학과 연구교수로 고대근동언어들을 격주로 가르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축의시대’. 인류를 변화시킨 성인들과 그들이 남긴 경전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고대오리엔트언어들에 매료되어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 주임교수이다. 또한 베이징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격주로 베이징에 가서 가르치고 있다.

주요관심사는 고대오리엔트문명인 후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일이다. 주요저서로는 <타르굼옹켈로스 창세기><타르굼아람어문법><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그리다> 등이 있다.

  

 

소록도 떠난 천사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

 

43년 묵었던 방문 앞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우리말로 써 있어

 

지금 소록도는 슬픔에 빠져 있다고 아녜스 란 세례명을 가진 분이 편지를 써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통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했다.

 

43년동안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향년 71세)수녀, 마가레트(향년 70세) 수녀가 조용히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이었다고 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도 않고 상처에 약을 발라줬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해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이 두 수녀는‘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이들 편지에는“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도 적혀 있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 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져주고 어느 때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우친 두 수녀를 이곳 사람들은 ‘할매’라고 불렀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 외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기도하러 간다”며 피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돈으로 나눠줬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

 

"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 "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이다.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 두 수녀는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났다.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녀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가시는 고향,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낯선 땅처럼 느껴진 고국.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다.

그 두 수녀가 묵었던 방문 앞에는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었다.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고 적은 편지는 과연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절실이 느끼게 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두 수녀의 이야기는 또 있다.

 

어느 여름, 나이 든 수녀님과 젊은 수녀 두 분이 서울 명동에서 서울역까지 걸어 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가는 도중에 만난 걸인은 6명, 구걸하며 손을 내미는 걸인에게 나이 든 수녀님은 손가방에 있는 동전 한닢까지 다 내 주었다. 이를 본 젊은 수녀는 갈 길이 불안했는지 “차비까지 다 주시면 어떡하세요.”걱정했다.

그러나 나이든 수년님은 태연히“ 이 성한 두다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