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불교

대기설법(對機說法), 근기설법(根機說法)

rainbow3 2020. 6. 20. 10:34

대기설법(對機說法), 근기설법(根機說法)

 

 

어떤 신도가 갑자기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서 절에 갔다. 그는 스님에게 참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보살님은 염불수행이 근기에 맞습니다. 저기 관음전에 가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십시오.”

근기가 낮아 고차원적인 참선을 할 수 없다는 말에 그 신도는 매우 기분이 언짢았다.

그녀는 자신이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근기가 따로 있는가?

염불 근기, 참선 근기, 주력 근기, 절 근기, 사경 근기, 독경 근기가 따로 있을까?

염불기도를 열심히 하는 법화행자들과 정토행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말법 시대 중생들은 근기가 낮아 염불을 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법을 설했다고 한다. 이것을 근기설법(根機說法),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한다. 이 말에 힘입고 핑계로 삼아 종파마다 교상판석을 하고 자신들이 서로 최상근기라고 주장한다. 대승은 소승의 아라한과 벽지불은 보살의 아랫단계라고 비하하며, 대승의 보살이야말로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밀교는 이에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은 대승 위에 있는 금강승이라고 주장하며 우월감을 드러낸다.

 

불교는 출세간의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출세간의 해탈을 향하여 가려면 명상과 참선을 해야 한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을 바르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가는 것이 어려운가? 상근기들만 가는 길인가? 붓다의 말씀에 의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전에서 그 증거를 찾아보자.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를 이와 같이 7년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최고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7년은 그만 두더라도 이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을 누구든지 이와 같이 6년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6년은 그만 두더라도…….

5년을, 4년을, 3년을, 2년을, 1년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1년을 그만 두더라도 누구든지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7개월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7개월을 그만 두더라도…….

6개월을, 5개월을, 4개월을, 3개월을, 2개월을, 1개월을, 반달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반달은 그만두더라도 누구든지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7일간 수행하면, 바로 이번 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의 경지에 이르는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 (대념처경, D22)

 

붓다께서는 누구든지 열심히 정진하면 최하근기는 7년, 최상근기는 7일이면 아나함과 또는 아라한과를 성취하리라는 것을 보증하신다. ‘누구든지’라는 말은 비구들만이 아니고 출세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누구나 한 생각 돌리면 거기에 깨달음이 있다는 선사들의 말씀도 깨달음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면 붓다께서 제자들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을 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법구경에 이것에 대한 예가 되는 이야기가 있다.

 

사리뿟따 장로는 금세공사의 아들이 출가하자 그에게 부정관을 하도록 하였다. 장로는 그가 혈기방장한 젊은이라서 성욕이 주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도 제자의 수행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장로는 제자를 데리고 붓다에게 갔다. 붓다께서는 숙명통으로 그의 과거생을 살펴보셨다. 그는 과거 500생 동안이나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금으로 연꽃을 만들며 살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부정관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붓다께서는 신통으로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주면서 연꽃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그는 황금연꽃을 보자마자 정신이 집중되면서 선정을 이루었다. 이때 붓다께서는 연꽃을 시들어버리게 하셨다. 그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소원하는 황금연꽃이 시들어버리자 충격을 받고 무상을 깨달았다. 이 순간 붓다의 말씀이 들려왔다.

“가을에 핀 연꽃을 손으로 꺾어버리듯이, 그대의 갈애를 꺾어버려라. 붓다께서 가르치신 닙바나, 그 평화로 가는 길을 닦아라.”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번뇌를 뽑아버리고 아라한이 되었다.(게송 258번 주석)

 

이 예를 보면 근기설법은 제자의 정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제자는 더러움에 대해 명상하는 것보다는 정반대로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제자의 과거생의 살펴보고 그의 잠재성향을 살펴볼 줄 아는 것이 붓다의 능력이다.

 

‘당신은 수행해도 깨달을 수 없으니 기도나 하라.’라고 말하며 불자들의 의지를 사정없이 꺾어버리는 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자이며, 불교를 망치는 자이며,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