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자가 세워야 할 서원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닦아 성취하리라'고 생각하고 부처님께 이 뜻을 말했다. 부처님은 이를 계기로 수행자가 어떤 원을 세우고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서원을 세워야한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친족이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내게 음식과 의복과 모든 생활도구를 보시하는 사람에게 큰 공덕이 있도록 하기 위해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모기와 등에의 욕설과 매질을 참으며 몸에 병이 들어 목숨이 끊어지려 한다 하더라도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즐겁지 않은 일을 견디고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두려움을 견디고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내게 만약 욕심과 분노, 해침의 생각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욕심을 떠나고 초선과 내지 4선을 성취하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모든 번뇌를 끊고 수다원과를 얻기 위하여, 사다함과를 얻기 위하여, 아나함과를 얻기 위하여, 아라한과를 얻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중아함 26권 105경 <원경(願經)>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소원을 품고 산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타보는 것이 소원이다. 운동선수는 운동을 잘해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 음반이 100만장쯤 팔리나갔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 정치가는 국민의 마음을 얻어 국회의원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문학가는 불멸의 명착을 남기고 싶고 학자는 남들이 모두 감탄할 논문을 쓰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나 이런 소원이 누구나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절대자에게 소원을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이른바 기원(祈願)이다. 그러나 불교에는 이렇게 절대자에게 소원을 비는 '기원(祈願)'이 없다. 팔만대장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부처님에게 기도하고 소원을 빌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부처님은 절대자를 상정하고 그에게 공양하고 소원을 비는 행위를 무익하다고 했다.
불교에는 기원이 없는 대신 서원과 발원이 있다.
서원(誓願)이란 어떤 일을 하겠다는 다짐이고 발원(發願)은 그러한 다짐을 지속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이 경에서도 부처님은 수행자가 어떤 다짐을 해야 하는가에 말하고 있을 뿐 기도를 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서원의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특히 강조한다. 모든 불보살은 불도를 성취해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아미타불 48대원, 약사여래 12대원, 보현보살 12대원 등이 대표적이다. 대승불교의 불보살이 갖는 서원의 특징은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그 방법도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다. 유명한 이산교연(怡山皎然)이나 나옹혜근(懶翁慧勤) 화상의 발원문도 읽어보면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서원사상의 연원을 대승불교 보살사상에서 찾았다. 또 이타적 서원을 강조하지 않는 불교는 소승이라고 매도해왔다. 그러나 이 경에서 보듯이 초기불교시대에도 이미 서원사상이 있었다. 수행자들이 진지한 수행을 다짐하는 이유는 나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결론은 이렇다. 대승불교의 이타적 서원사상도 실은 초기시대 부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전이 그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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