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⑥] 도구의 발명과 ‘호모하빌리스’
인류 최초의 혁신가, 돌멩이에 생명을 불어넣다
원시인류가 발명한 석기는 필요에 의한 규칙성을 가진 결과물… 도구를 사용한 혁신 통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차별화해
#1. 진화의 원칙: 우연 혹은 필연?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들의 진화는 셀 수 없이 많은 역사적인 조건의 결과물이다. 진화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는 것들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조합들이다. 장미와 소나무, 인간과 진돗개, 삼엽충과 공룡은 가늠할 수 없는 환경과 유전자의 주사위가 복잡하게 얽혀서 던져져 만들어진 산물로 몇몇은 오늘날까지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생명 진화의 과정에는 예측 가능한 방향이나 구조가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생존해 온 복잡한 생물들은 이전의 단순한 단세포 조상으로부터 진화해왔고 자기보존이라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변신이 필요했다. 이 변신을 혁신(革新)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적응과 혁신을 통해 점점 복잡해진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의 기저에 어떤 원칙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생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마치 우주가 137억 년 전 빅뱅으로 탄생했듯이 38억 년 전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생겨남이 미래의 심오한 과학적인 분석과 발견을 통해 필연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연선택이라는 원칙과 물리학적 공식, 유전학적인 조합에 의해 강요된 외부적인 조건들 아래 탄생한 부산물이다. 진화의 과정을 긴 안목에서 분석해보자면, 생물들의 크기,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생화학자인 자크 뤼시앵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76)는 저서 <우연과 필연: 현대 생물학의 자연 철학에 관한 에세이>에서 생명의 기원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생물이 유전적으로 변화하거나 수정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돌연변이며, 우연만이 모든 형질적인 혁신과 창조의 필요한 조건이다.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그 방향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우연이 우주 진화와 그 안에 존재하는 생물 진화의 핵심이다.
#2. 자연과 인위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는 ‘인위(人爲)’를 자기생존을 위한 무기로 삼아왔다. 인위적인 물건과 자연적인 물건들은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산, 강, 바위, 새 이런 것은 누구나 주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반면에 스위스 칼, 벤츠 자동차, 애플 컴퓨터는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의 결과로 누군가의 의도된 목적을 위해 창작되었다. 스위스 칼이라는 물건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이 칼을 제작하기 전에, 자신이 계획한 어떤 의도와 필요에 의해 창작한 작품이다. 이 칼은 그것을 만들려는 사람의 상상을 물질적인 형태로 구체화한 아바타다.
칼의 모양은 이미 ‘칼’이라는 물건에 기대되는 기능에 어울리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용어를 빌리자면, ‘칼’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상상이라는 ‘이데아’의 추상적인 세계 안에만 존재한다. 창작자는 ‘칼’이라는 추상을 자신이 의도한 기능에 맞게 물건으로 만들기 위한 ‘연습(練習)’을 시작한다. ‘연습’이란 하늘에만 존재하는 이데아를 지상의 유용한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만들기 위한 영적이며 정신적인 훈련이다. 혹은 지상에 이미 존재하는 물건들을 변용하여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반복된 작업이다. 플라톤은 이 연습을 가리켜 ‘프락시스(praxis)’라고 했다. 프락시스를 영어로는 ‘프랙티스(practice: 연습)’다. 연습이란 이론을 실재로 만들려는 노력이며, 오랜 연습과 수련을 거쳐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
산이나 강은 그 기원이 다르다. 이것들은 자연의 자유롭고 물리적인 힘에 의해 형성되어, 그 안에서 어떤 예술가나 창작자의 디자인이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자연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어떤 의도가 투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산과 강은 ‘스스로 그렇게 생겨났다’고 해서 자연(自然)이라 부른다. 우리가 자연을 볼 때 생기는 감정은 쓸쓸함과 무심함이다. 자신에게만 완벽하게 의존하여, 자연을 관찰하는 인간을 섭섭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다른 동물과는 달라 오늘날 만물의 영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전략적 결단을 내린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다른 동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자신이 속한 부류 안에서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 의도적이며 계획적이고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인류 조상들의 주거지에서 이런 의도적인 유물들을 발견한다. 인간은 이 도구들을 가지고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전환시켰다.
이 물건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이 되어야 한다. 문화상품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규칙성이다. 규칙성이란 다른 도구들과 구별된 특별한 모양을 규칙적으로 지닌다는 의미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돌들은 일정한 모양이 없다. 그러나 도구는, 그것이 아무리 초보적이라 할지라도, 인위적이며 의도적인 힘을 가해, 평평한 표면이나 날카로운 모서리를 적당한 각도와 정확한 대칭으로 만들어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다. 두 번째는 아마도 규칙성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반복성이다. 그것을 만든 창작자나 집단의 지속적인 의도인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 유사한 물건이나 도구들의 발견은 그것을 만든 집단이 문화란 틀로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다. 세 번째는 전달성이다. 규칙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만들어진 도구는 한 세대를 넘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다시 수용과 확장, 더 나아가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 도구가 다음 세대로 지속가능하게 전달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 매력이란 창작자의 철학이 담긴 규칙성과 반복성이다. 아파렌시스, 라미두스, 그리고 루시는 모두 ‘작은 원숭이’란 의미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불리는 속(屬)에 속한다. 이 속에서 탈출하여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속한 호모라는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도구제작’이었다.
#3.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인류가 등장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들은 무엇인가?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그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필요한 조건은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러나 충분조건이란 그 사건을 실제로 유발시키는 여러 조건의 복합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사는데 공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공기 없이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다’라는 문장에서 공기는 인간 생존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인간 생존에 충분조건은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도 필요하고, 불도 필요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충분조건은 이런 결정적인 필요조건들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형성된다.
유인원이 현생인류로 가는 위대한 여정에서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인가? 인류는 다른 유인원들처럼 아프리카 밀림지대 나무 위에서 살다가 기후의 변화로 먹이를 찾기 위해 사바나 지역으로 내려와 두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유인원들도 먹이를 찾거나 따기 위해 가끔 ‘기능적으로’ 두 발로 서는 경우가 있었지만, 사바나 지역으로 내려온 유인원들은 지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이족보행을 시작한다. 현생인류처럼 완벽한 이족보행은 아니지만 말이다. 표범과 같은 맹수가 공격하는지 살펴보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의 경쟁동물들은 하이에나와 들개와 같이 부식동물들이었다.
‘루시’와 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나무 열매와 근채류, 그리고 부식동물들이 남긴 사체를 먹고 연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루시를 보았다면, 동물원 원숭이와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루시의 이족보행이 인간이 되기 위해 중요한 필요조건이며 이 조건은 후대에 등장할 인류 조상에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이 필요조건의 우선순위를 따지기도 한다. 학자들은 언어와 불의 발견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은 상대적으로 후에 등장했다. 인류의 조상들은 이족보행 후에 척박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도구 제작은 현생인류로 가는 중요한 징검다리였다.
#4. 최초의 도구 제작 공장, 올두바이 협곡
탄자니아 북부에 자리 잡은 그 유명한 세렝게티 동부에 한 특별한 장소가 있다. 올두바이 협곡이다. 이곳에서 인류 조상들의 고고학적인 유물들, 특히 화석화된 뼈와 석기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 협곡은 서남아시아의 요르단에서부터 아프리카를 남쪽으로 관통해 모잠비크까지 6400㎞이르는 그레이트 리프트 계곡의 일부로 세렝게티에 형성된 가파른 계곡이다. ‘올두바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만 자라나는 용설란과에 속하는 식물로 그 잎 섬유가 로프·바닥 깔개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사이잘 삼을 의미하는 마사이족 언어인 ‘올두 파이’에서 유래했다.
인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도구를 제작했다.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은 이족보행과 함께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호모하빌리스는 250만 년 전부터 거의 100만 년 동안 석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류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들도 창과 같은 무기를 만들어 사냥하거나 땅이나 나무속에 있는 개미를 먹기 위해 특별한 도구를 나뭇가지로 만든다. 인류의 조상들과 침팬지는 400만 년 전에 갈라지기 전부터 나무 도구를 사용했다. 침팬지는 자기보다 약한 유인원들을 잡아먹기 위해 창을 만든다. 침팬지들은 나무에 사는 작은 동물인 부시베이비(갈라고원숭이)를 잡아먹기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부시베이비는 낮에는 움푹 파인 나무줄기 안에서 자다가 밤에 나온다. 침팬지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 잎사귀, 껍질을 제거하고 그 끝을 이빨로 물어뜯어 날카롭게 만든다. 침팬지들은 또 개미군대를 잡아먹기 위해 특별한 도구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개미가 사는 구멍에 식물 줄기를 집어넣고 들어 올려 구멍 안에 있을 개미군대를 자극하거나 줄기에 붙은 개미를 핥아먹는다.
인류가 인위적으로 만든 도구는 침팬지의 도구와 전혀 다르다. 그들이 만든 최초의 도구는 돌로 만든 연장이다. 인류는 아직 금속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는 돌을 다듬어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다. 인류는 이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방식인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영국의 저명한 은행가이자 정치가였던 존 루복 경(Sir John Lubbock)이다. 그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이며 동식물연구가였다. 그는 1864년에 발간한 <선사시대>라는 책에서 석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관해 다뤘다. 그는 석기시대를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 전반기를 ‘구석기시대’ 후반기를 ‘신석기시대’라고 명명했다. 구석기시대를 ‘인간이 매머드, 동굴에 사는 곰, 그리고 코뿔소와 다른 멸종된 동물들과 유럽을 공유한 시대’로, 신석기시대를 ‘후대 혹은 세련된 석기시대로 아름다운 무기들과 석기도구들이 만들어진 시기지만 아직 장식에 사용된 금을 제외한 어떤 금속도 존재하지 않은 시기’로 설명했다. 구석기시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유인원이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한 시기인 260만 년 전부터 빙하기가 끝나 새로운 산업인 농업이 시작된 기원전 1만2000년까지, 거의 260만 년에 이른다.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처음으로 집단을 이뤄 거주하며 식물 채집, 낚시, 그리고 야생동물들의 사체를 먹으면서 생활했다. 인류는 아직 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기를 구워먹지 못했다. 이 당시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시기였다.
#5. 타제석기
이 당시 사용된 석기를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부른다. 돌감 자체로 만든 연모를 몸돌석기(core tool)라 하고 돌감을 중심으로 떼기를 시도해 분리한 조각을 가지고 만든 연모를 격지석기(flake tool)이라고 부른다. 이를 총괄해 뗀석기라고 부른다. 호모 하빌리스들은 왜 이런 도구가 필요했을까?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점점 자신들의 먹거리 종류를 늘렸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한 종류 음식만 먹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 되었다. 뗀석기를 이용해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다. 손안에 들어가는 주먹도끼는 작은 짐승을 사냥하거나 털과 가죽을 분리하는 데 사용했다.
인류의 조상들은 타제석기를 무기로 이제 자신들의 식생활을 혁명적으로 개선했다. 당시 몸집이 작은 유인원들이 사방이 공개된 사바나에서 사자, 하이에나, 들개와 다른 위험한 동물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석기로 귀중한 고기를 신속하게 잘라, 언덕이나 나무 위와 같은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런 행위는 그들의 생존전략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몸돌석기나 격지석기가 초기 도구를 창작한 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리에게는 쉬워 보이나, 이 사건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인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인류의 첫 문화였다. 오늘날 원숭이에게 돌을 쳐서 석기를 만들도록 시도해본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알 수 있다. 몸돌을 다른 돌로 정확한 각도로 쳐서 격지석기를 생산하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것을 맨 처음 시도해 성공시킨 사람은 후대 미켈란젤로나 로댕에 버금가는 인류 최초의 조각가다.
그는 석기 제작에 필요한 기본 기술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 도구가 사용될 용도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상상력을 동원해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원시인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을 보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석기를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과 생존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성이 모든 창조와 혁신의 어머니다. 그는 석기를 만들기 전에, 자신이 사냥한 작은 동물이나 혹은 다른 동물들이 버린 사체에서 신속하게 살점을 떼어 안전한 장소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격지석기로 동물의 살점을 잘 떼어내기 위해 가능하면 날카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도구를 만들 적당한 돌들을 찾아 들판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물들이 도살된 장소에 발견된 도구들은 그 근처에서 자연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돌이 아니었다. 도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멀리서 가져왔다. 오늘날 침팬지도 작은 포유류들을 사냥하지만 이런 도구를 멀리서 가져오지는 않는다. 이런 도구를 만든 인류들은 사냥이나 죽은 고기를 찾아다닐 때, 도살할 것을 예상해 스스로 도구들로 무장하고 다녔다. 그들에겐 예지력이 있었다. 이들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대치하기 위해 지금을 준비하는 기획자들이었다.
#6. 리차드 리키 가문
올두바이 협곡에서 이런 도구를 만든 인류는 누구인가? 그 인류와 깊숙이 연관된 고고학자 가족이 있다. 루이스 리키와 매리 리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다. 루이스 리키의 부모는 영국에서 케냐로 온 선교사였다. 1903년 케냐에서 태어난 루이스 리키는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도 논란거리가 된 고인류학자일 것이다. 그의 관심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는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과 언제 분리되었는지 근거가 되는 실마리를 평생 찾은 고고학자였다. 그는 케냐에서 자라나면서 자연히 키쿠유족의 언어와 관습을 습득했다. 키쿠유어(語)는 케냐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다. 그는 나중에 유럽인들을 위해 키쿠유 문법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새에 매료돼 사막이나 사바나로 나가 망원경으로 새를 관찰하면서 폭우에 쓸려나가 드러난 석기를 종종 주워왔다. 그는 이 돌들의 생김새에서 일정한 디자인을 발견했다. 이것이 세월에 의해 마모된 자연적인 돌들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인위적인 돌들이라고 상상했다.
20세기 초, 고고학자들은 이 석기들이 초기 인류의 존재를 증명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도구를 만드는 행위는 인간만의 고유한 지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894년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소위 ‘자바 유인원’이라고 불리는 뼈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아시아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리키는 이 가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22년 영국으로 돌아가 자기 관심 분야인 고고학과 인류학을 공부한다. 럭비경기를 하다 부상을 입어 휴학한 기간에 탄자니아로 탐사를 떠나는 대영박물관 고고학 팀에 합류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현생인류의 고향이 아시아가 아니라 아프리카라고 확신했다. 지도교수들은 그의 엉뚱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1926년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동아프리카, 특히 케냐로 돌아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1931년부터 많은 유물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 중 가장 오래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올두바이에서 발견된 180만 년 전 유물들이다.
리키는 이듬해 영국으로 돌아와 <아담의 조상>이라는 책을 준비하다가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매리 니콜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매리 니콜은 영국 데본지역 호니톤 근처에서 헴버리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물을 그리고 있었다. 리키는 193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매리와 결혼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3대에 걸쳐 유인원 유물을 연구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인류학 가문의 기초를 다졌다.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리키의 올두바이 협곡 탐사는 중단됐다. 그의 탐사는 1951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됐다. 1960년 11월 매리와 아들 조나단은 획기적인 유물을 발견했다. 13개 치아가 보존되어 있는 아래턱과 손가락, 손, 그리고 손목 뼈들이다. 이 발견은 이전에 발견된 유인원들, 특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보다 큰 유인원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뼈들이었다. 리키는 그 후 3년 동안 영장류 동물학자 존나피어, 남아공의 인류학자 필립 토비아스와 함께 이 화석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1964년 초 <네이처>지에 발표한다. 남아공 해부학자이며 1924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발견한 레이몬드 다트는 이 새로운 인종을 ‘호모하빌리스’라고 불렀다.
#7. 호모하빌리스가 최초 인간 종인가?
리키의 발표는 인류학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180만 년 전, 케냐 투르카나 호수 동편 쿠비 포라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189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최근 고고학자들은 250만 년에서 200만 년 전 사이로 추정되는 새로운 화석을 발견했다. 에티오피아 부리라는 곳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에서 인위적인 표시가 발견됐다. 그러나 부리라는 장소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들에서 멀지 않아 호모하빌리스의 표시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호모하빌리스의 분류가 어려운 점은 지금까지 발견한 화석들이 충분한 분석을 하기에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특히 호모하빌리스의 뇌 크기가 500㏄에서 700㏄ 정도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인간 종으로 분류하기를 주저한다. 영국의 해부학자 아서 키스는 인간이 되기 위한 최소의 조건으로 뇌 크기가 750㏄이상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모하빌리스의 다리는 아직 원숭이와 유사하고 나무를 잘 타는 손 모양을 하고 있어 호모 속 안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호모하빌리스가 아니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하빌리스로 분류하기도 한다. 태양계의 행성으로 불리다가 2006년 이후 행성의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명왕성처럼, 호모라는 분류를 잃게 되는 것인가? 유인원 중 ‘호모’라는 계통군을 유지하기 위해, 호모라는 속은 그 명칭을 단 모든 구성원이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호모’라는 속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구성원들은 동시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구성이 될 수 없다.
최초의 도구 제작자가 나중에 등장하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처럼 뇌가 커야 할까? 이 혁신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작은 머리와 몸의 소유자일수도 있다. 이런 행동 혁신은 이전에 존재하던 속의 일원이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혹은 그녀는 도구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부모와 신체상으로 동일할 것이다. 도구 제작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새로운 속의 등장과 함께 설명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그와는 반대로 새로운 속의 등장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혁신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는다.
#8. 호모하빌리스의 뇌와 지적인 능력
필립 토비아스는 쿠비 포라에서 발견된 호모하빌리스의 두개골 안쪽을 뜬 틀인 엔도캐스트를 분석한 결과, 호모하빌리스의 두개골의 전두엽과 두정엽이 원숭이보다 크며 언어를 관장하는 브로카 영역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오늘날의 원숭이보다 확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두엽은 미리 계획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조절하는 장소이며, 전두엽 뒤쪽과 양 옆에 위치한 두정엽은 거리감과 일체의 감각인식을 조절한다. 현생인류의 두뇌 중 브로카 영역은 인간의 언어와 관련된 부분으로 19세기부터 알려져왔다. 프랑스 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피에르폴 브로카(1824~1880)는 실어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전두엽 좌측에 병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로카는 뇌의 기능이 그 위치에 따라 다르다는 해부학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찾았다. 이 부분을 다치면 말을 할 수 없거나 언어장애를 일으킨다.
호모하빌리스나 현생 인류는 코끼리나 고래보다 훨씬 작은 뇌를 가졌다. 뇌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똑똑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의 체중과 뇌중량과의 관계지수를 의미하는 뇌중량비인 EQ(encephalization quotient)다. 헨리 맥헨리 교수는 포유류가 물고기나 파충류보다, 유인원들이 다른 포유류보다 더 높은 EQ를 지녔다고 측정했다. 그의 측정에 의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2.4~3.1, 호모하빌리스는 3.1이다. 침팬지가 2.0이며 인간이 5.8인 것을 감안하면 호모 하빌리스는 인간보다 침팬지 쪽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지적인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호모하빌리스는 안정적으로 초기 호모군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에서 호모 속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호모하빌리스는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고 사냥과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기도 하며,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등 자신의 생존을 위해 환경에 맞게 최적화했다. ‘호모하빌리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지 아니면 호모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식습관을 다양화하였고 그것을 위해 돌연변이인 ‘도구’를 만들어냈다. 호모하빌리스가 거의 100만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혁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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