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⑧] 마라톤과 탈모(脫毛)
더 멀리, 더 오래 달려 문명을 일으키다
육식동물들과 생존경쟁 위해 오래 달리기에 적합하게 진화… 달리기는 취미의 한계를 넘고 문명을 세우려는 인류의 갈망적 행위
#1. 취미와 마라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취미(趣味)라는 행위를 즐긴다. 취미는 생존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이며 규칙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활동한다. 인간의 뇌 구성 중 척추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을 뇌간(腦幹)이라 부른데, 이곳에서는 생존과 본능에 관련된 활동을 조절한다. 파충류의 뇌는 전적으로 뇌간으로 되어 있어, 뇌간을 ‘파충류의 뇌(reptile brain)’라고 부르기도 한다. 뇌간에서 하는 본능적인 행위들은 다음 네 가지로 영어로는 소위 4F라고 부른다.
악어의 인생은 다음 네 가지 행위에 집중한다. 첫째, ‘feeding’, 즉 ‘몸 채우기’다. 자신의 허기진 몸을 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fighting’, 즉 ‘싸움’이다. 악어가 먹을 것을 차지하려고 다른 악어와 하는 일이 서로 물고 뜯는 행위다. 세 번째, ‘fleeing’, 즉 ‘도망가기’다. 먹을 것을 차지하려다 다른 악어나 자신보다 힘이 센 경우, 그 악어는 도망갈 수밖에 없다. 네 번째, ‘f’로 시작되는 생식과 관련된 단어, 즉 ‘성교하기(f***)’다. 발정기간에 자신의 욕망을 풀기 위해 섹스를 한다. 아마도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저술하면서 인간을 악어 수준으로 보고 인간의 본성과 자연을 ‘손톱과 발톱이 피로 물든(red in tooth and claw)’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인간은 이런 4F 외에 생존 목적이 아닌 정신적이며 미적인 만족감을 위해 하는 행위들이 있다. 그런 행위 자체가 큰 위안이 되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인간만이 그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특별한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취미’라고 부른다. 우표를 모으고 단풍잎을 따다 책갈피에 말리고 친구들과 만화방에 달려가 만화를 보거나 혹은 당구장에서 ‘쓸데없이’ 당구를 친다. 오히려 오랫동안 당구를 치면, 건강도 나빠진다. 혹은 야구나 축구경기장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욕망, 그 자체 때문에, 1년 동안 모은 돈을 해외여행에서 탕진하기도 한다. 왜 인간은 이런 취미를 자발적이며 지속적으로 하는가? 오히려 취미생활을 위해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것인가?
‘취미’라는 영어 단어(hobby)는 14세기부터 ‘조그만 말’이란 의미를 지닌 ‘호비(hobi)’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하비’는 나무를 깎아 만든 말 인형이다. 영국에서는 귀족이 되기 위한 신체-정신훈련으로 승마를 권장했다. 영국 어린아이들은 이 나무인형을 타고 노는 말 타기로 그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비’는 맨 처음엔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놀이처럼 여겨졌으나, 산업혁명 이후, 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도 여가가 생겨 ‘하비’가 자유 시간에 자발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행위, 즉 ‘패스타임(pastime)’이 되었다. ‘하비’는 ‘시간(time)’을 ‘흘려 보내는(pass)’ 행위인 것이다.
인간의 취미 중 이해하기 힘든 종목이 있다. 마라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너무 자학적이며 자기 파괴적으로 보인다. 인간은 왜 이런 고통스런 행위를 즐기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동호회를 만들어 자신을 훈련한다. 이들은 국내외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하여 오래 달리기를 훈련한다. 우리는 마라톤 경기를 스포츠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스포츠 경기인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도 맨 마지막에 거행되는 ‘마라톤’이다. 그런데 마라톤 경기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뛰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환희와 재미를 선사한다. 나는 올림픽 경기 중 마라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고 있는 내 모습에 가끔 놀란다. TV 화면에 나오는 장면은 선수들이 몰려가면서 뛰는 모습뿐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마라톤 경기 시청에 몰입되어, 선두그룹 선수들이 역주하는 모습을 관조한다. 나는 왜 거의 3시간 동안 이렇게 따분한 장면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한곳에 계속 앉아 중계방송을 하는 캐스터들의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듣고 있는 것일까?
마라톤은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훈련이다. 이 훈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넘어선 인내에 대한 도전이며 수련이다. 42.195㎞를 일정한 속도로 뛰어가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우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내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과 그 위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을 보면서 한계에 도전한 인간의 처절한 모습을 통해 자신이 정화된다. 마라톤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을 관람하는 것처럼, 도로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다른 인간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2. 마라톤, 프로메테우스의 회향(茴香)
‘마라톤’이라는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장거리 달리기’ 혹은 육상선수와 관련된 단어가 아니다. ‘마라톤’은 ‘회향(茴香)’이란 식물이름이다. 회향은 유럽 남부와 소아시아가 원산지로 향기가 나 맛을 내는 데 쓰이며 키가 약 1m까지 자라는 식물이다. 마라톤이 맺는 열매는 지중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통용되던 건강차였다. 지중해 사람들은 마라톤 차를 마시면서 소통하고 공동체의식을 고양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화장품의 부향제와 향신료, 그리고 음식에 들어가 향을 더하고 특히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지상에서 문명을 구축하기 위해 태양의 불을 훔쳐 지상에 몰래 전달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모든 자족을 지하 세계에 감금시킨 올림푸스 산에 거주하는 신들보다 인간을 더 사랑했다. 하늘의 신인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동물을 희생시켜 제사 지낼 것을 요구했다. 프로메테우스는 화가나 고기 기름 덩어리로 싼 뼈와 가죽으로 싼 양질의 고기를 제우스 앞에 놓고 선택을 유도했다. 제우스는 겉보기가 번드르르한 고기 기름 덩어리로 싼 뼈를 선택했다. 후에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속인 것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인간들로부터 ‘불’과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앗아가 버렸다.
인간이 지상에서 인간답게 살고 문명을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 바로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줄 목적으로, 회향 줄기를 태양에 가져다가 불을 붙여 지상으로 가져왔다. 인류는 불의 사용으로 작은 원숭이에서 처음으로 인간이 되었다. ‘마라톤’이라는 식물이 하늘의 불을 땅에 전달한 매개체인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마라톤이라는 식물 없이 불을 지상에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며 동시에 인류는 영원히 작은 원숭이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다. ‘마라톤’이란 식물은 신들만이 가지고 있다는, 신들을 나머지 우주 만물과 구분하는 신적인 DNA인 불을 지상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자신을 불태워야만 했다. 인류문명을 가능하게 한 식물로서 ‘마라톤’ 외에 서양 문명을 가능하게 한 ‘마라톤’도 있다.
#3. 마라톤전쟁과 서양문명의 시작
마라톤이란 식물은 신화적인 의미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매개체였다. 자신을 불살라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마라톤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서양역사를 바꾸는 획기적인 개념이 되었다. 인류 문명은 두 가지 필요충분 조건들이 있다. 하나는 도시고, 또 다른 하나는 문자다. 이 두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인류는 문명을 이루었다. 도시는 기원전 5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 즉 이라크 남부지역에서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지형이 완만한 하구지역에선 천천히 흘러 자연히 침적토가 쌓였다. 산처럼 높아지는 침적토를 퍼올리지 않는다면, 마을이 물에 잠기고 페르시아 만에서 바닷물이 유입되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듯이 새로운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환경적인 도전이나 전쟁과 같은 인위적인 도전은 사람들을 극단적인 어려움으로 몰아, 그들이 협력을 통해 문명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제공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세계문명의 4대 발상지가 모두 강을 중심으로 탄생했는데 본래 강이란 자연적으로 인간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수원이 아니다. 인간들로 하여금 인위적으로 강물을 조정하기 위한 수로개발을 필요로 했다.
소위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알려진 지역들, 즉 이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이라크, 그리고 이란지역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농업을 발견하여 정착생활 시작했고, 그 후 도시문명과 그것을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소프트웨어인 문자를 발명했다. 이라크에서는 기원전 3300년, 이란에서는 기원전 3200년,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100년 문명이 탄생한다. 이 오리엔트 문명은 그 후 거의 2500년 동안 지속되었다가 기원전 6세기경 새로운 문명으로 대치된다. 오래된 오리엔트 문명이 새로운 유럽 문명으로 옮겨가는 데에는 페르시아 문명이 가교 역할을 한다. 이란을 중심으로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했다. 이들은 특히 터키 해안도시를 점령하면서 이곳에 이주해와 식민지를 개척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조우한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상업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분쟁을 통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세기, 인류 역사의 중심은 오리엔트 지역에서 그리스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자 촉매제가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에 일어난 마라톤전쟁이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인들은 슈퍼파워였다. 오늘날 터키 서부 해안에 거주하던 이오니아인들은 그리스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곳을 정복해 식민지로 삼았다. 이오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페르시아 제국은 더욱더 억압적인 통치를 실시했다. 그러자 이오니아인들의 친척인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이 아드리안 해를 건너 소아시아로 건너와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도왔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제국은 복수라는 명분 아래,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대함대를 이끌고 기원전 490년 회향이 많이 자라는 그리스의 평원 마라톤 만(灣)에 상륙했다.
페르시아와 아테네는 5일 동안 마라톤에서 대치했다. 아테네 장군 밀리아데스(Miliades)는 피딥피데스(Phidippides)라는 달리기 전령을 시켜 그리스 남쪽에 위치한 스파르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스 군대에는 장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전령이 있었다. 이 전령들을 헤메로드로모스(hemerodromos)라고 불렀다. 피딥피데스는 이틀 동안 달려 스파르타에 도착했다. 스파르타인들은 매우 종교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보름달이 뜨는 기간에는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테네의 원군 요청을 거절했다. 아테네인들은 수적인 열세로 더 이상 대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기가 충천해있던 아테네 군대는 페르시아군대를 선제공격해 소아시아로 퇴각시켰다.
전설에 의하면, 42세의 피딥피데스는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외쳤다.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그는 승전보를 전하고 탈진해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역사 학자들은 피딥피데스 이야기는 후에 덧붙여진 이야기라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은 특별한 점을 시사한다. 마라톤전쟁은 서양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헤드라인이었을 것이다. 이제 문명의 중심이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이양되고 마라톤전쟁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의 산파가 되었다.
근대 올림픽 경기는 1 1898년 4월에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마라톤전쟁을 기념해 마라톤 경주를 공식 경기로 채택했다. 이 경주에서 스물다섯 살 난 그리스인 스퓌리돈 루이스가 우승했는데, 그는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도와 샘물을 퍼나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13명의 건장한 선수와 4명의 외국대표와 당당히 겨뤄 2시간58분50초 기록으로 우승했다. 첫 마라톤 경주는 마라톤평원에서 아테네까지 25마일, 즉 40㎞ 정도였다가 1924년 올림픽부터 26.22 마일(42.195㎞)로 확정되었다.
#4. 오래 달리기, 발바닥, 그리고 코
마라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옮겨다 주어 인간 문명 창조의 기초가 되었고, 기원전 490년 마라톤평원에서 그리스의 승리를 통해 서양문명이 시작됐다. 그 후 마라톤 경기는 인간의 한계를 측정하는 올림픽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왜 오래 달리기가 인간의 특징이 되었고, 인간 진화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는가?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두 발로 걷고, 덥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걷고 달릴 수 있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20% 정도 빨리 걸으며 에너지를 25% 정도 사용한다. 특히 인간은 장거리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에겐 특별한 걸음걸이 방식과 몸에서 나는 열을 식히는 신체구조가 있었던 덕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을 살펴보면, 이들의 몸 크기와 비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유사하지만, 이들의 발 모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발은 세로로 둥근 형태다. 호모 에렉투스가 남긴 발자국을 살펴보면 발가락이 짧고 발바닥의 가운데가 움푹 파여 현생인류의 발과 거의 같다. 왜 호모 에렉투스의 발바닥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다른가? 무엇이 그런 발바닥 모양으로 진화하게 했을까? 호모 에렉투스의 둥근 발바닥은 오랫동안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변화한 것이다. 오래 달리기 위해 아킬레스건이 중심을 잡고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응축하고 발산해야 하는데, 이때 둥그런 발바닥이 스프링처럼 기능한다. 발바닥이 평평하면, 달릴 때 지표면에 발바닥 전체가 닿아 다리와 무릎에 무리를 주고 빨리 달릴 수도, 오래 달릴 수도 없다. 호모 에렉투스는 더 이상 나무에 올라가 먹이를 찾지 않기 때문에, 어깨는 몸 쪽으로 내려와 머리 부분 근육과 점점 분리되고, 목이 길어지고 팔은 짧아지고, 발가락은 짧고 곧게 펴졌으며, 다리는 점점 길어졌다. 이로서 인간은 유인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무를 잘 타지 못하는 동물이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둥근 발바닥과 함께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진화된 부분은 코다. 유인원들 중에서 인간만이 앞으로 툭 튀어나온 코를 가졌다. 안면 중심부에 돌출되어있다. 이마에서 시작해 코 뿌리에서 함몰되다가 서서히 돌출해 콧등을 형성하고 코끝에서 절정을 이룬다. 거기에서 양쪽 사선으로 둥그런 콧구멍을 형성하고 가운데 부분은 바로 아래로 떨어져 코 기둥을 형성하고 인중을 지나 윗입술과 연결된다. 코가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호흡, 발성, 그리고 후각 기능이다. 이런 코 구조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돌출된 코는 두개안면부와 치아가 현격히 줄어들면서 동시에 일어난 신체의 변화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불의 발견으로 고기를 날로 먹지 않고 불에 구워 먹게 되자, 그렇게 튼튼하고 날카로운 그리고 커다란 치아가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돌출된 치아 부분이 점점 줄어들고 얼굴 쪽으로 낮아지게 된 것이다. 인간의 돌출된 코는 연골과 부드러운 조직으로 구성됐다. 코는 먼지를 직접적으로 흡입하는 것을 막고 습기로 정화한다. 또 냄새를 맡고 말을 발성하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기능은 습기를 간직하고 흡입된 공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특히 흡인된 공기로부터 습기를 보존한다.
건조한 환경에서 습기를 보존하기 위해 달리기와 같은 활동을 통해 숨을 몰아 쉬는 상황에서 습기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오늘날 인간의 코 모습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사파리와 같은 공개되고 건조한 환경에서 사냥과 채집을 통한 생존활동에 적합한 변화였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사냥감을 일정한 속도로 추적한다. 들이마신 뜨거운 공기는 코를 통해 식으면서 습기를 간직하고, 폐에서부터 올라와 내쉬는 공기에서 습기를 걸러내 몸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숨이 헐떡거림을 효과적으로 막는다.
#5. 오래 달리기와 탈모
호모 에렉투스가 오랫동안 달리 수 있는 이유는 땀내기를 통해 몸에서 나는 열을 효과적으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오래 달릴 수 없는 이유는 호흡이 쉽게 가빠져 숨을 몰아쉬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땀을 효과적으로 내보내기 위해 몸에서 털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포유동물의 몸은 수북한 털로 덮여 있다. 털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벌레물림이나 가시, 그리고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숲 속에서 위장하거나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데 유리하다. 그런데 털을 제거하는 것은 유지하는 것보다 진화론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에 인간의 털은 퇴화된 것이다.
인간은 보통 200만~500만 개의 털을 가지고 있다. 머리, 겨드랑이, 그리고 음부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털은 2㎜ 이하의 얇고 약한 연모(軟毛)다.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인간만이 이런 연모를 가진 이유는 몸에서 나는 열을 땀으로 분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후, 그들의 몸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머리카락만 남겨두고, 땀을 내 몸을 용이하게 식히기 위해 벌거숭이가 되었다. 특히 사냥-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호모 에렉투스는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맹수가 남긴 사체를 먹이고 구했거나 직접 사냥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현존하는 5000여 종의 포유류 중 거의 유일하게 몸에서 털을 대부분 제거했다. 코끼리, 코뿔소, 하마, 바다표범, 몇 종류의 돼지, 고래, 그리고 벌거숭이 두더지 정도가 인간처럼 털이 없다. 인간도 다른 대부분의 포유류처럼 온몸이 털로 덮여있었다. 검은색 피부는 털이 없는 살갗이 자외선 자극에 취약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피부가 검은색으로 된 시기는 인간의 몸에서 털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할 것이다.
탈모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은 피터 윌러 교수의 주장이다. 인류의 조상은 약 300만 년 전에 기후가 추워지고 건조해지면서 동아프리카 지역이 밀림지대에서 사바나로 환경이 변하자 나무에서 내려와 더 멀리 먹이를 구하려 다녀야 했다. 초기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먹잇감을 쫓아갈 때, 몸에서 나는 열을 쉽게 내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털을 없애고 땀을 충분히 배출하게 됐다. 두발로 걷는 인간에게 털이 필요한 곳은 뜨거운 태양광선이 직접 닿는 머리뿐이었다.
다른 가설에 의하면, 탈모는 외부기생충이 인간의 몸에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은 180만년 전부터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서 온 인간으로부터 이나 벼룩과 같은 외부기생충을 옮겨 받기가 쉬웠다. 특히 동물가죽으로 옷을 제작해 입기 시작하면서, 가죽에 붙어 있던 벌레들이 인간의 털에 옮겨 붙기도 했다. 벌레들이 자신들의 털에 기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은 점점 더 몸으로부터 털을 제거하였다. 실제로 몸에 털이 적은 사람이 건강한 배우자의 조건이 되었다.
#6. 사체 먹잇감 구하기와 사냥
호모 에렉투스가 맨 처음부터 사냥을 직접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맹수들이 먹다 남긴 사체를 먹는 것이다. 이 때 호모 에렉투스의 경쟁 상대는 하이에나였다. 이들은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채취하러 갔다 우연히 이런 먹잇감을 찾았을 것이다. 혹은 다른 맹수들이 사냥한 먹잇감을 둔 장소를 감지하였다가 전략적으로 사체 먹잇감을 구했다. 예들 들어 수많은 맹금류가 하늘에서 맴돌고 있다면, 그들은 다른 맹수들보다 신속하게 먹잇감이 있을 그곳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이들의 달리기는 다른 맹수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위해 주로 뜨거운 대낮에 이뤄졌다.
그러다 호모 에렉투스는 스스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모래가 가장 길게 뻗어 있는 곳이 칼라하리 사막이다. 현재의 보츠와나, 나미비아, 앙골라, 잠비아 그리고 짐바브웨에 걸쳐 있다.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아직도 원시적인 사냥법으로 먹잇감을 찾는다. 이들이 사냥하는 시간은 해가 지고 난 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저녁, 밤, 혹은 새벽이 아니다. 이때는 아프리카 맹수들이 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칼라하리의 사냥꾼들은 맹수들이 활동하지 않는 대낮에 사냥을 시작한다. 태양이 중천으로 향해 온도가 섭씨 39~42도까지 치솟았을 때, 사냥을 떠난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 이들은 물을 충분히 마시고 재빨리 도망가는 사슴이나 쿠두와 같은 사냥감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동물들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어 오래 달리지 못하고 반드시 숨을 몰아 쉬기위해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사냥꾼들은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 동물들이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지쳐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계속 쫓아간다. 3~4명이 한 팀이 되어 뛰기 시작한다. 맨 처음에서는 가장 잘 뛰는 자가 앞장서 속도를 조절하고 나머지는 동물이 남긴 발자국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뛴다. 이들은 가끔 그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경우, 달리기를 중단하고 단서를 찾는다. 이들은 시속 6㎞에서 10㎞사이의 속도로 3시간에서 4시간을 달린다.
대낮에 쫓기는 사슴은 불과 몇십 분도 뛰지 못하고 몸의 열을 발산하지 못한 채 지쳐 주저앉거나 달리기를 멈춘다. 사냥꾼은 그때 창이나 화살로 사슴을 죽인다. 태반이 있는 포유동물인 진수류(眞獸類) 동물들의 체온은 보통 36~38도다. 체온이 42~44도로 올라가면 생명에 치명적이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몸 온도는 41.6~42도로 알려져 있으나 이 역시 수십 분 간 지속되면 죽을 수도 있다. 포유류가 열을 식히는 방법은 입이나 코를 통한 헐떡거림이나 몸에서 분출하는 땀이다. 인류는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오래 달려 만물의 영장이 되는 굳건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7.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오래 달리기가 인간의 생존전략이 되면서, 인체에선 신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라톤과 같이 극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운동과정 중에 혹은 그 후에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으로 평안함을 느꼈다고 보고하기도 한다. 10㎞ 정도를 습관적으로 뛰는 사람들은 더 이상 뛸 수 없는 신체적인 한계는 9㎞ 이후가 아니라 7~8㎞라고 말한다.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에게 가장 큰 고비는 30㎞이다. 이를 ‘마의 30㎞’라고 한다. 금방 숨이 멎고 다리가 풀리면서 죽고 싶은 생각만 드는 임계점이다. 대부분이 이 단계에 오면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이 단계를 인내하고 넘어가면 자신의 몸과 다리가 마치 무슨 특별한 약을 투여한 것처럼 힘이 난다고 말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의 전두엽과 변연계의 특정부분이 바로 이 임계점에서 특별한 화학성분을 분비하는 것을 측정확인했다. 이 화학성분을 엔돌핀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이 사랑에 빠지거나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도 분출된다고 한다. 이 현상을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진화와 생존을 위해 오래 달리기를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선택하였고, 오래 달리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엔돌핀을 분출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은 자신들이 오래 달리는 것이 생존에 필수조건이란 사실을 알고 몸에서 털을 점점 제거하였고, 오래 달려도 괴롭지 않도록 뇌를 변화시켜 고통을 줄이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혁신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인류의 진화는 토인비의 말대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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