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5)] ‘기호(記號)를 만드는 인간’ 호모 시그난스

rainbow3 2022. 8. 24. 20:37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5)] ‘기호(記號)를 만드는 인간’ 호모 시그난스(Homo Signans) 

 

인간의 말을 영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기술 

 

 

문자는 지식을 수용하고 소통하고 기록하기 위한 소통 체계…동그라미, 삼각형, 그리고 휘갈겨 쓴 기호가 인간이 만든 첫 문자 

 

인간의 등극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행위가 있다. 불의 발견, 동물의 사육, 노동의 분화 그리고 문자다. 문자란 지식을 수용하고 소통하고 기록하기 위한 소통의 체계다. 인간은 까마득한 시절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말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고, 그 대신 상대방의 기억 속에 불완전한 생각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가 점점 잊혀져 버린다. 문자는 인간의 말을 영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기술이다. 이 기술로 인간은 문명을 구가했다.

문자는 소통의 혁명이다. 예를 들어 편지는 소통의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편지의 내용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문자가 기록된 문헌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람의 기록한 정보들을 책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관하는 장소다. 이런 정보 축적은 개인이 모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유용하다.

이전에는 구전(口傳)에 의존하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신화·전설도 역사로 기록함으로써 소위 ‘역사’ 시대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개인 간의 소통이 빈번해지게 되자 서로에 대한 정확하고 정교한 거래가 문자로 기록됐다. 이제 문자로 기록된 상업과 행정 기록 없이 인간 문명은 불가능하다. 문자는 인간의 생각을 분류하고 검증하고 수정하고 증명하면서 논리의 엄격함과 생각의 심오함을 더해줬다.

<진흙 표면에 기록한 ‘쐐기문자’>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루기 위해 근간이 되는 문자는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어디에서 처음 등장시켰는가? 학자들은, 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됐고, 그 후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엘람(고대 이란), 그리고 기원전 2600년경 고대 인도 도시인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로 전파됐다고 가정한다. 그 후 중국과 남미에서 독립적으로 문자들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문자와 남미의 아즈텍 문명 문자의 기원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문자는 누가 의도를 가지고 창제했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훈민정음이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고대 페르시아어는 그 문자를 창제한 당사자를 아는 유일한 문자들이다. 그러나 그 외 모든 문자의 기원은 어두운 베일에 싸여 있다. 먼저 문자의 기원에 대한 신화들을 알아보자.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물질을 축적해 고고학과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다른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기 전, 그들이 알고 있는 신화와 경전을 통해 문자의 기원을 상상했다. 문헌에 기록된 문자의 발명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수메르 서사시 [엔메르카르와 아랏타의 주인]이다. 이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 도시 우룩-쿨라바의 통치자인 엔메르카르(Enmerkar)가 주변 도시국가 아랏타(Aratta)의 통치자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엔메르카르는 아랏타의 통치자에게 풍요의 여신이며 샛별 여신인 ‘인안나(Inanna)’를 위한 신전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백향나무·금·은·청금석과 그 외 다른 보석들을 요구한다. 엔메르카르는 인안나 여신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통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여겼다. 이때 두 통치자는 사신들을 통해 서로의 답신을 여러 번 주고받는다.

어느 날 엔메르카르의 주문이 사신이 암기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러자 엔메르카르는 문자를 창제해 자신의 말을 토판문서에 쐐기문자로 기록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이집트처럼 돌이 없다. 수십만 년 전부터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아라랏(Ararat) 산 수메르 지역으로 흘러 내려와 침적토를 쌓았다. 수메르인들은 이 침적토를 손바닥 크기로 다져 토판문서를 만들고, 갈대 가지를 뾰족하게 한 뒤 그 끝으로 진흙 표면을 긁어 문자를 기록했다. 생김새가 마치 못과 같아 학자들은 이 문자를 ‘쐐기문자’라 부른다. 엔메르카르의 사신은 자신의 입이 “너무 무거워” 아랏타 통치자의 말을 반복할 수 없다고 엔메르카르에게 말한다. 사신은 자신의 입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엔메르카르는 진흙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고 그 토판문서 위에 자신이 한 말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것이 수메르인들이 전하는 문자의 기원에 관한 최초의 서사시 내용이다. 후대 바빌론 시대 수메르 왕들의 연대를 기록한 [수메르 왕조실록](기원전 1800년)에 의하면 엔메르카르는 기원전 2700년에 살았다. 그때는 이미 문자가 600년 이상 사용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엔메르카르와 아랏타의 주인]은 문자의 창제에 대한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묘사가 아니다.

<문자의 기원에 관한 수메르 신화들>

 

문자의 기원에 관한 두 번째 수메르 신화는 [인안나와 엔키, 에리두에서 우룩으로 문명의 전달]이라는 시다. 수메르 전설에 따르면 에리두는 하늘의 왕권이 내려온 최초의 도시다. 그러나 수메르 문명은 우룩에서 완성됐다. 이 시는 문명이 어떻게 우룩에서 완성됐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에 의하면 지혜의 신이며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관장하는 신(神) 엔키(Enki)는 인간 문명의 근간들을 창조했다. 인안나 여신이 자신의 도시인 우룩을 위해 문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략을 꾸민다. 인안나는 엔키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취중에 문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자신에게 넘기도록 한다. 이 부분을 기록한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지자 엔키가 선포한다. ‘오, 나의 권력의 ‘메’들이여, 나의 권력의 ‘메’들이여, 나는 나의 딸 눈부신 인안나에게 이 이름들(문명의 기술들)을 선사한다. 나무를 다루는 예술, 금속을 다루는 예술, 문자·도구를 만드는 기술, 가죽을 만드는 기술, 건물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바구니를 만드는 기술이다.”

여기서 ‘메’는 특별한 수메르 용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구가한 수메르 문명을 푸는 열쇠가 바로 ‘메’(me)다. ‘메’는 그림문자에서 땅을 의미하는 가로 평행선과 하늘의 원칙을 의미하는 세로 직선이 결합돼 만들어졌다. 지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 임무가 있고, 수메르인들은 그것을 ‘메’라고 불렀다. 가로선과 그 위 세로선이 결합해 만들어진 그림문자 ‘메’는 기원전 2600년경 90도 오른쪽으로 돌려져 지금의 쐐기문자 ‘메’가 됐다. ‘메’는 문명을 구축하는 국가 조직, 종교의례, 기술, 도덕, 인간 개인의 품성과 개성을 총괄하는 거대한 원칙이다.

“그러자 순결한 인안나는 이 모든 메를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 인안나는 문자와 다른 문명의 기술들을 ‘천상의 배’에 싣고 자신이 주신으로 있는 우룩으로 내려온다. 엔키는 술에서 깨어나 자신의 모든 기술들이 탈취된 사실을 알게 되자 폭풍우와 바다 괴물들을 보내 인안나의 배가 우룩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인안나는 이 괴물들을 물리치고 도시에 도착해 이 문명의 이기들을 우룩 시민들을 위해 하역한다. 우룩은 명실공히 인류 최초의 문명이 꽃핀 도시다. 기원전 3300년경에 해당하는 우룩 지층 ‘우룩 IV’에서 최초의 그림문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룩의 전성기인 기원전 2900년에는 가로세로 6㎞ 정도 크기에 5만~8만 명이 거주하는 초기 도시 형태를 보여준다.

문자의 기원을 일러주는 또 다른 고대 근동의 이야기가 후대 헬레니즘 시대에 기록됐다. 기원전 3세기, 바빌로니아 마드룩 신을 섬기는 사제 베로수스(Berossus)가 있었다. 그는 기원전 290~278년에 [바빌로니아카]라는 세 권의 바빌로니아 역사서를 저술했다. 이 책에 바다 괴물 오아네스(Oannes)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아네스는 물고기의 몸과 사람의 머리, 발, 그리고 목소리를 지닌 바다 괴물이다. 오아네스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문자·언어·과학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술을 가르쳤다.

<18세기 그림문자 이론과 최근 이론들>

 

근대 이전 서양인들은 신이 직접 문자를 만들어 인간에게 줬다고 믿었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다. 십계명은 ‘신의 손가락이 직접 써서’ 모세에게 준 법이다. [로빈슨 크루소]를 저술한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1660~1731)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신이 쓴 두 개의 글자 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에 관한 에세이](1726)라는 책에서 두 가지 글자 표를 소개한다. 하나는 신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십계명과 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이 창제한 히브리어다. 그는 유럽의 모든 알파벳이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다. 수메르 신화에서 대니엘 디포에 이르기까지 문자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문자는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들 중 어느 것도 단순한 소통체계에서 복잡한 소통체계로 진화된 과정을 가정하지 않는다. 문자가 완벽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생각은 18세기까지 지속됐다.

영국 글로스터의 주교였던 윌리엄 워버튼(William Warburton, 1698~1779)은 문자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첫 번째 학자다. 그는 중동·남미 그리고 동양 여행자들이 가져온 고대 이집트어·중국어 그리고 아즈텍 문헌들을 비교 분석해 이야기를 설명하는 그림에서 모든 문자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림문자들로 시작된 문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간소화되고 나중에는 원래 그림을 추적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으로 남게 됐다. 그는 자신의 저서 [모세, 신의 사절](1738)에서 이 같은 그림문자 이론을 주장했다. 워버튼의 주장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와 달랑베르가 공동 편집한 사전 이전인 [백과사전]에 ‘에크리튀르(écriture, 문자)’라는 항목에 실려 많은 사람이 문자의 기원에 대한 그림문자 이론을 수용했다.

워버튼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문자 기원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문자학의 가장 권위가 있는 도서 중에 하나인 겔브의 [문자 이야기](1974)에서 겔브(Gelb)도 워버튼의 이론을 수용해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그림문자로 시작됐다”고 기록했다. 학자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충분한 고고학적 자료가 마련된 후에야 그림문자 이론에 도전했다. 프랑스의 선사학자 민족학자 앙드레 르루아 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86)은 에스키모인이나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그림문자들을 통해 이들의 문자 이전 사회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문자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한 두 가지 문자의 기원 이론이 20세기 후반 등장했다. 하나는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Denise Schmandt-Besserat)의 ‘물표(物票)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 학자인 제네비브 폰 펫징어(Genevieve von Petzinger)의 동굴벽화 기하학 문양인 ‘기호(記號) 이론’이다.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는 문자와 숫자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 근동 지방을 지난 50년간 발굴한 고고학자다. 그녀는 문자의 기원을 기원전 800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인간이 정착해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그만 진흙 덩어리에 특별한 표식을 통해 물건을 인식하거나 숫자를 표시했다. 수메르의 우룩에서 발견된 그림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이지만, 특별한 표식을 지닌 진흙 물표는 훨씬 이전이다. 그녀는 이런 표식을 지닌 진흙을 ‘물표’라고 불렀다. 물표는 구형·원뿔형·원반형 등이다. 물표에는 선이나 구멍을 새겨 넣어 다른 물표와 구분한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물표들을 장난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드니스 슈만트-베세라트의 연구로 물표는 문자가 등장하면서 사라진 최초의 기록 방식으로 원문자(proto-writing)라고 불린다.

<폰 펫징어의 기하학적 기호 이론>

 

또 다른 최근 이론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동굴로 내려가 동굴벽화를 그린 기원전 3만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네비브 폰 펫징어는 2010년부터 원시인들이 남긴 기하학적 기호가 새겨진 벽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 이전에는 동굴벽화에나 가끔 등장하는 기학학적 기호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거의 없었다. 앙드레 르루아 구랑이 프랑스 아르시쉬르 퀴르에 있는 동굴들을 발굴하면서 기호 연구를 시도했지만 문자의 기원까지는 연결시키지 못했다. 폰 펫징어는 자신이 탐사한 146개 동굴벽화에서 발견한 기하학적 기호들을 컴퓨터를 이용한 대량 분석 방법을 통해 이 기호들이 후대에 등장한 상징들, 특히 후대 문자의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굴벽화 기호들의 범위를 유럽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7만5000년 전 블롬보스 동굴(Blombos Cave)로 확장한다. 선사시대 상징의 권위자인 프랑스 고고학자 장 클르트(Jean Clottes)는 폰 펫징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폰 펫징어의 연구는 문자기원 연구의 새로운 시작이 됐다.

폰 펫징어는 유럽의 동굴벽화 연구를 통해 문자의 조상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호 32가지를 밝혔다. 그녀는 동굴벽화에 흔히 등장하는 낙서와 같은 기호들 안에서 기하학적 모형을 찾았다.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황소·말·들소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려져 있는 작은 기하학적인 상징에 매료됐다. 이 기하학적 표식들은 낙서와는 다르다. 이 표식들은 일정한 모형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공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3300년 메소포타미아 우룩 문자 단일 기원설이 다른 문자들, 특히 이집트 문자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다. 폰 펫징어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이집트의 성각문자 등 복잡한 문자들로 진화될 수 있는 원문자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은 곳은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의 그림과 기호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는 동굴들이다. 이 당시 누군가 단순하지만 강력한 추상적인 기호를 창안해냈고, 이것이 당시 구석기인들의 소통을 위한 ‘문자’가 됐다. 그녀는 이 동굴벽화에서 발견된 동그라미·삼각형 그리고 휘갈겨 쓴 기호가 인간의 첫 기호라고 가정했다.

이런 단순한 기호들은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정교한 표식이다. 인간만이 추상적인 기호를 통해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이 의도적인 기호를 만들 수 없다. 소통의 도구로 기호를 만드는 행위는 인간만의 문화다.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는 동굴벽화들의 장소와 연대를 측정한 후, 그 안에서 발견된 기호들을 살펴 반복되는 모양을 선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 라스 치메네아스에서 발견된 검은색 기호들을 일일이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폰 펫징어는 2013~2014년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에서 52개의 동굴을 방문했다. 그녀가 발견한 기호들은 점, 선, 삼각형, 네모, 지그재그 모형, 그리고 사다리, 손을 묘사한 스텐실 같은 복잡한 형태들이다. 그리고 기둥이 있고 지붕이 덮인 형태인 ‘지붕 모형’들과 동물 가죽 모습인 ‘가죽 모형’ 등이 발견됐다. 스페인 엘 가스티요 동굴에서도 지붕 모형이 다수 발견됐다. 이 모형들은 이후에도 북부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된 기호다. 학자들은 이 모형이 구석기 시대 거주지 혹은 배, 부족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기호라고 해석한다.

<소통을 위해 쓰인 32개 기호>

 

폰 펫징어는 수많은 기호의 분류를 통해 32개 기호를 추려냈다. 그녀는 이 표식은 기원전 10만 년 전부터 등장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하는 기원전 4만 년경 특별한 기호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손도장 스텐실과 수많은 점의 기호다. 기원전 1만6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붉은 사슴 치아로 만든 목걸이가 남서 프랑스 생제르맹 드 라 리비에르(Saint-Germain-de-la-Rivière)의 어린아이 무덤에서 발굴됐다. 이 치아에는 X, 별 모양, 그리고 직선들이 새겨져 있다. 이 기호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정한 모형의 반복성 때문에 어떤 것을 상징하는 기호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폰 펫징어는 이 기호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한다. 말이나 맘모스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그러나 누구나 단순한 기호로는 남길 수 있다. 이런 기호의 단순성은 인간들 간의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중요하다.

폰 펫징어는 빙하기 시절 유럽 동굴벽화에서 발견된 32개의 기호를 정리했다. 이 기호들은 동물 모형을 그리지 않은 추상적인 형태들로 기원전 4만 년에서 기원전 1만 년까지 사용됐다. 3만 년 동안 사용된 이 기호들은 누군가 소통의 목적을 가지고 창제한 문자다. 이 기호들 가운데 1인칭 대명사인 ‘나’에 해당하는 기호가 있을까? 빙하기 시대 예술가들은 이 기호들을 붉은색으로 장식했다. 그들은 황토를 일정한 온도로 열을 가해 자신들이 원하는 색을 추출하고 자신들의 새긴 기호에 입혔다.

이 32가지 기호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소통을 위해 사용한 일종의 구석기 시대 문자다. 이런 기호들이 유럽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다. 북미·남미·아프리카·호주·동남아·인도 그리고 중국에서도 유사한 기호들이 빙하기 시대에 기록됐다. 아쉽게도 현재의 연구 수준으로는 이들의 정확한 개별 의미와 연관성을 증명해낼 수 없다.

문자의 기원을 학문적으로 증명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은 21세기에 와서는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 남긴 기호들로 거슬러 올라갔다. 폰 펫징어와는 달리 슈만트-베세라트는 문자의 기원을 고대 근동에서 기원전 8000년부터 발견된 ‘물표’로 추적했다. 다음 호에서는 그 문자의 물표 기원설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