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6)] ‘화장하는 인간’ 호모 코스메티쿠스 (Homo cosmeticus)
인류 역사 탄생의 순간을 증언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화장판’은 파라오의 존재를 창조해주는 거룩한 물건…나르메르 부조들은 ‘리더’ 개념의 등장과 그 정의를 시도한 첫 예술품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인류가 야만이란 도전을 극복하면서 등장한 최초의 문명들 중 하나다. 야만과 문명의 경계는 무엇인가? 문명은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원칙이다. 첫째 요소는 도시다. 도시는 인위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만든 추상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가족의 일원 혹은 더 넓게는 친척의 구성원으로 태어난다. 인류가 직계 가족을 넘어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9000년경이다. 인류는 그 전에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도 되는 사냥-채집으로 연명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인류는 유럽에서 이동해 동쪽으로는 이집트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팔레스타인, 터키,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이란 지역으로 들어와 농업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이 지역을 하나로 엮으면 초승달 모양이 나온다고 하여 고고학자들은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이라고 부른다.
비옥한 초승달
비옥한 초승달은 오늘날 서양인들과 중-근동인들의 조상이 최초로 거주한 장소다. 인류는 이전에 채집사냥 경제에 의존해 살다가 농업을 통해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보리와 밀 같은 씨앗을 뿌려 수백 배를 수확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가축을 기르고 늑대와 같은 짐승을 길들여 사육하면서 동물들이 가진 병균과 접촉해 각종 전염병도 발생했다. 인류가 도시를 만들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100년경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장소가 아니라 정교한 행정망으로 하나가 된 추상적 공간이다. 이 추상적 공간을 하나로 묶어 도시를 완성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것이 문명의 둘째 원칙인 문자다. 문자는 낙서와는 달리 상호적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 기호가 돼야 한다. 기호는 자신의 정교한 생각을 전달할 만큼 다양하고 정교해 일정 기간 동안 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그 지역에서 거주하는 지식인들은 이 기호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고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이들의 다양성은 이곳에서 사용된 언어와 문자를 통해 추측 가능하다. 기원전 3000년경에 세 곳에서 문자가 거의 동시에 그림문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의 왼편인 이집트에서는 고대 이집트어, 초승달의 오른편인 이라크 남부에서 수메르어, 그리고 이란 남부에서 엘람어가 독립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리스와 라틴어가 속한 인도-유럽 어군의 가장 오래된 히타이트어가 기원전 1900년경 오늘날 터키에 등장했다.
고대 이집트어의 등장은 드라마틱하다. ‘나르메르’라고 불리는 왕이 상-이집트(남부 이집트)와 하-이집트(북부 이집트)를 통일한 과정을 눈과 얼굴 화장을 위한 화장판(化粧板)에 최초 이집트 문자와 함께 그 과정을 선명하게 새겨놓았다. 소위 ‘나르메르 화장판’에는 인류 최초의 문자와 인류 역사의 시작을 기록돼 있다. 그 중심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리더, 나르메르가 있었다.
이집트 문명의 중심은 통치자인 파라오다. 파라오와 그의 왕권은 고대 이집트 3000년 역사의 중심축이다. 이집트 문명은 초기 통치자들이 구축한 이집트 왕권을 기반으로 전개됐다. 나르메르는 이집트 문명을 건설한 초기 왕들 중 한 명이다. 그는 헤라콘폴리스에 위치한 호루스 신전에 양면이 박육조(薄肉彫)로 화려하게 새겨진 6.35㎝ 길이의 화장판을 바쳤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호루스 신전에서 파라오의 화장을 위해 실제 사용됐거나 전시됐다가, 후대에 다른 신전 용품들과 함께 근처에 의례를 통해 매장됐다. 그 후 거의 5000년이 지나, 고고학자 퀴벨이 이 화장판을 발굴했고 지금은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에 영구 소장 중이다. 이집트 당국은 투탕카멘의 보물들과는 달리, 이 화장판의 해외 전시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화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눈을 크게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휘안석(輝安石)에서 추출한 검은색 ‘콜(kohl)’을 사용해 눈 주위에 발랐다. 아이섀도의 기원이다. 그리고 초록색이 나는 ‘공작석(孔雀石·malachite)’ 가루로 얼굴 화장을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화장에 대한 열망은 ‘사자의 서’에 잘 드러나 있다. “왕들의 왕, 주인들의 주인, 통치자들의 통치자, 두 땅(‘상·하 이집트’)을 누트 여신(‘하늘 여신’)의 자궁에서도 소유하는 당신에게 찬양을 돌린다. 그는 조용한 땅의 평원을 통치하신다. 심지어 자기 육체의 금색을, 머리의 파란색을, 양팔의 청록색을 통치한다.”
거친 태양빛과 끝없이 펼쳐지는 하얗게 표백된 사막의 땅인 이집트에서 밝고 활력이 넘치는 색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특별하다. 색깔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이나 물건에 생명과 개성을 더해 준다. 고대 이집트어 단어 ‘이웬’(iwen)은 ‘색깔’이란 의미다. 그러나 이 단어는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자의 ‘본성’, ‘존재’ 혹은 ‘개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어떤 사람만의 ‘고유한 색깔’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그 사람만이 소유한 색으로 구별했다.
파라오는 화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화장판’은 파라오의 존재를 창조해주는 거룩한 물건이다. 화장판은 고대 이집트의 선왕조시대(기원전 3100~기원전2686년)에 얼굴과 몸 화장을 위해 화장 원료를 곱게 갈기 위한 유물이다. 화장판은 선왕조시대에 제사를 위한 장식으로 사용되다 후대에는 파라오와 귀족층의 실제 화장판으로 변했다. 장식을 위한 화장판은 그것이 발견된 헤에라콘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와디-함마마트(wadi-Hammamat)에서 채굴된 실트람(siltstone)으로 제작됐다.
5000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문명을 시작하는 시점에 등장한 나르메르 화장판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작업일 수 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와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광대해, 그것을 뛰어넘어 문명이 무엇인지, 리더가 누구인지에 관한 혜안을 얻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시도할 만큼 가치가 있다.
인류 역사 탄생의 순간을 화장판이 증언하고 있다. 이 초기 화장판에 등장하는 문자와 그림들은 이집트 사회의 원칙을 표현한다. 질서와 혼돈, 선과 악, 왕과 적군, 인간과 동물, 도시와 사막으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이원론을 표시한다. 리더는 질서와 선의 상징으로 혼돈과 악을 물리치는 선봉장이다. 리더의 이런 군사적인 면모는 후대에 등장하는 리더의 중요한 특징이 됐다.
이집트에서 아직 문자가 등장하기 전인 ‘선왕조시대’(?~기원전 3100년)에서 ‘초기왕조시대’ (기원전 3100~2686년)는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왕조, 왕권, 왕이라는 개념, 그리고 왕의 도상(圖像은) 오랜 기간을 거쳐 서서히 완성됐다. 나르메르 화장판이 발견된 헤라콘폴리스 신전은 초기왕조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화장품’이란 영어단어인 ‘코스메틱스(cosmetics)’는 인간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잘 알려준다. 인간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잠을 자기 마련이다. 잠을 잔다는 의미는 하루를 마감하고 새로운 날을 기약하는 의례다. 잠은 일종의 죽음이며, 혼돈의 상태로 저절로 또한 의도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다. 인간의 아침은 ‘혼돈’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깨워 새로운 ‘질서’도 진입해야 한다.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는 행위는 바로 자신의 ‘혼돈’에 빠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질서’를 주는 의식이다. ‘화장품’이란 밤새 혼돈에 빠진 얼굴에 인위적인 노력으로 ‘질서’를 주는 도구다. ‘질서’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인 ‘코스모스(kosmos)’에서 화장품이란 단어 ‘코스메틱스’가 유래한 것은 당연하다.
이집트 문명의 탄생, 혹은 인류 문명의 탄생의 과정을 ‘나르메르 화장판’보다 확실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혼돈 속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가 어떻게 문명이라는 질서를 구축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르메르의 통치는 왕권이 등장한 순간을 포착해 화장판에 새겨놓았다. 이 화장판은 이집트가 탄생한 선왕조시대의 삶과 이집트가 펼칠 미래 왕조문명의 특징을 모두 선명하게 담았다. 이 특징들을 분석하는 작업은 ‘리더’라는 개념 등장과 이집트 역사의 시작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파라오는 이집트 문명의 정점일 뿐만 아니라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중간적인 존재로서 파라오는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지만 신적인 속성을 지니는 경계적인 존재다. 파라오의 이름은 이집트 통치자의 특성을 선명하게 표현한다. 고대 이집트어로 이름은 ‘렌(ren)’이다. 고대 이집트어는 그림을 통해 단어의 의미와 발음을 말한다. 첫째 자음 r은 ‘벌린 입’을 형상화한 문자다. 둘째 자음 n은 바다 물결을 형상화한 문자로 ‘물’을 의미한다. 물결의 움직임을 표시하기 위해 지그재그를 세 번 반복한 문자다. n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혼돈의 신인 ‘누(nw)’와 깊이 연결돼 있다. 만물은 ‘물결’이 상징하는 ‘혼돈’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의 결과다.
이집트인들에게 ‘이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혼돈의 물에서 질서의 육지를 형성할 때, 그 창조된 대상에게 준 명칭이다. ‘렌’이란 성각문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가 창조되기 전 혼돈의 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신이 입을 열어 자신의 의지를 말로 표현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름’이다.
이집트 고왕조시대의 제 5왕조(기원전 2494~기원전 2345년)부터 파라오는 다섯 개의 공식적인 이름을 가졌다. 이 다섯 개 이름 중 첫 번째 이름인 소위 ‘호루스 이름’은 기원전 3100년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명칭이다. 호루스 이름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돼 있다. 맨 위에는 호루스신을 상징하는 송골매가 직사각형 모양 위에 앉아 있다. 두 번째 부분은 호루스가 앉아 있는 정형화된 궁궐 모양이다. 이것을 고대 이집트어로 ‘세렉(serekh)’이라고 부른다. ‘세렉’이란 단어는 ‘알다’라는 동사 rh의 사역형으로 ‘알게 만들다’라는 동사 srh에서 파생했다. 세렉은 요철 형태로 지어진 진흙으로 건설한 이집트 궁궐의 홈이 파진 정면모양이다. 파라오의 궁궐 세렉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만들고 알려주는 어떤 것”이란 의미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세렉 위에 새겨진 파라오의 이름이다.
나르메르는 누구인가? 학자들은 나르메르를 고대 이집트의 첫 번째 파라오인 ‘메네스(Menes)’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나르메르’는 호루스 이름이고 ‘메네스’는 본명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이집트 예술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해석의 복잡성과 모호성으로 모든 학자가 수용하는 해석은 없다. 특히 이 화장판이 이제 막 등장한 이집트 통치자가 실제로 감행한 행위인지, 혹은 단순히 이집트인들을 치리하기 위한 선전인지, 아니면 왕의 열망을 담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나르메르 화장판의 앞면은 세로로 세 장면으로 구분돼 있고, 뒷면은 네 장면으로 구분됐다. 앞면은 상부 이집트(남부)의 왕인 나르메르가 하부 이집트(북부 델타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을 묘사했고, 뒷면은 나르메르가 이집트 전체를 통일한 후, 그것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먼저 화장판 앞면의 맨 위에 파라오가 행사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표현했다. 나르메르 화장판에서는 호루스가 생략됐거나 혹은 양편에 있는 ‘바트’라는 암소여신으로 대치됐다.
이 궁궐 안에 두 개의 그림글자가 등장한다. 위에는 ‘메기’, 아래쪽에는 건축할 때 사용하는 ‘정’이 그려져 있다. 왜 궁궐 안에 ‘메기’와 ‘정’을 표시했을까. 이 두 단어가 모여 무슨 의미를 창출하는가. 고대 이집트어로 ‘메기’는 ‘나아르(na‘ar)’으로 발음했고 ‘정’은 ‘압(ab)’ 혹은 ‘메르(mer)’라는 음가를 지녔다. 나르메르의 이름은 종종 ‘싸우는 메기’로 해석된다. ‘메기’는 공격적이며 다른 물고기를 지배하는 특성이 있다. 호루스를 대치한 두 황소 모양은 암소여신 ‘바트’를 묘사했다. 바트 여신의 뿔은 남성의 상징이 아니라 신성을 표시한다. 바트 여신은 후대에 다른 암소여신인 하쏘르 여신으로 대치됐다.
‘나르메르’라는 발음과 이름은 인류역사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이 오늘날과 같은 구강구조를 가지고 말을 하기 시작한 시점, 적어도 30만 년 전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 특히 치아와 목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들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다양한 말을 구사하는 동물이 진화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생인류가 문자를 발견해 문명을 시작한 시기는 불과 5100년 전이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바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성각문자의 탄생과 이름
이집트 왕조의 시작은 이집트 성각문자의 탄생에서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100년, 인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소통의 도구인 ‘문자’를 발명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할 수 있는 특별한 법칙을 발명했다. 이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의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첫째, 표의문자(ideogram)다. 각각의 성각문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사물들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므로 일단 표의문자로 분류될 수 있다. 표의문자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문자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을 표현하기 위해 입 모양을 직접 그렸고 ‘르(r)’로 발음했다.
둘째, 표음문자(phonogram)다. 표의문자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표의문자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은 직접적으로 묘사가 가능한 사물로 제한된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낼 수 없는 대상이나 개념은 그 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언어의 음을 나타내는 문자를 표음문자라고 한다.
예를 들어 파라오 자신의 이름 ‘나르메르’를 표의문자로 표시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둘로 나누어 ‘나르’와 ‘메르’로 구분한 후, ‘나르’에 해당하는 문자와 ‘메르’에 해당하는 문자를 추적했다. 그는 ‘나르’라는 음가를 지닌 ‘메기’ 그림과 ‘메르’라는 음가를 지닌 ‘정’ 그림을 그렸다. 그런 후 ‘나르’와 ‘메르’는 이 단어들이 표현하는 그림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음가를 표시하는 기호로 사용했다. ‘나르메르’ 왕의 이름을 훌륭하게 표현한 셈이다. 이렇게 나르메르는 인류에게 문자를 가져다주며 역사를 시작했다.
이런 방식을 ‘레부스 법칙(rebus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의 음가를 빌려 발음하는 문자 체계다. 하나의 레부스는 특정 사물을 표현하는 그림으로서의 문자가 그 시각적인 의미를 잃고 문자 고유의 음가를 통해, 혹은 이러한 음가의 결합을 통해, 표의문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음가를 가진 또 다른 사물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결정사(determinative)다. 중기 이집트어의 경우 표음문자로 표기된 단어 맨 뒤에 표음문자를 첨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단어 말미에 첨가된 표의문자를 결정사라고 한다. 결정사에는 다음 두 가지 문법적 기능이 있다. 첫째, 결정사를 선행하는 문자들은 모두 표음문자로 간주돼야 한다. 둘째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 일반적인 범위와 종류를 규정한다. 예를 들어 ‘가다’라는 동사는 ‘페리(pri)’다. 이 동사는 ‘걷는다’라는 의미를 결정짓기 위해, 이 동사 뒤에 ‘걷고 있는 두 다리’ 기호를 첨가한다. 이 기호를 ‘결정사’라고 부른다.
기원을 수백 년 전까지 추정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나 한자와는 달리 이집트 문자체계는 기원전 3100년 갑자기 등장했다. 학자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유를 첫째, 이전의 문자체계가 목재 등과 같이 영속적이지 않은 매체에 기록됐기 때문에 소실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3100년, 나르메르를 포함한 일부 지식인이 레부스 방식이라는 과감한 방식을 통해 문자를 발명했다. 인류는 한 사회 안에서 그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징체계인 문자를 통해, 문명을 구축했다.
나르메르 화장판의 앞면 둘째 칸에 나르메르가 전쟁포로의 머리를 정으로 내려치고 있다. 전쟁포로는 하이집트(북부) 리더인 ‘와아쉬’(w‘š)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돌려 죽음을 받고 있는 ‘와아쉬’의 이름이 성각문자로 그의 머리 오른편에 새겨져 있다. ‘와아쉬’는 이집트 북부 델타의 ‘물이 많은 지역(š)의 유일한 자(w‘)’란 의미다.
그 부조물 위 송골매의 신인 호루스가 하이집트에서 자라는 파피루스 위에 앉아 와아쉬의 코를 줄로 묶어 나르메르에게 건네주고 있다. 파피루스는 카이로 근처 델타 지역에서 나는 식물로 하이집트 전체를 상징한다. 이 화장판을 제작한 사람은 나르메르가 하이집트를 정벌하는데, 호루스 신이 도와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르메르는 맨발이다. 그는 자신이 정벌한 땅을 발로 밟는 행위를 단순한 군사 행위를 넘어선 거룩한 행위로 생각했다. 그는 지상의 신전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천상의 존재다. 나르메르 뒤로 그의 샌들을 들고 있는 사제가 등장한다. 사제는 오른손에 의례에 사용할 정화수를 담고 있는 조그만 항아리를 들고 있다.
고대 근동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세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거룩한 공간이라는 표시다. 성서 [출애굽기]에도 신이 모세에게 ‘샌들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그 이유는 ‘네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나르메르는 자신이 일으킨 이 정벌전쟁이 세속적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행위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샌들을 벗었다.
화장판의 맨 아래 칸에는 살해당한 두 명이 있다. 두 명은 남자이며 이집트인이 아니다. 왼쪽 남자는 성기와 음낭이 잘려 나가 없으며, 오른쪽 남자는 이집트 관습에 맞게 할례 시술을 받았다. 이들의 머리는 바로 위 칸에서 나르메르에게 살해당하는 포로처럼 반대쪽이 젖혀져 있다. 나르메르와 총리대신의 시선과는 대조적이다. 나르메르의 정면 시선은 ‘질서’를 상징하고 후면 시선은 ‘혼돈’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어로 ‘질서’를 ‘마아트(maat)’라고 부른다. 마아트와는 반대로 ‘혼돈’을 ‘이스페트(izfet)’라고 부른다. 이스페트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해 길을 잃은 상태로 ‘거짓’ ‘진부함’ ‘오류’라는 뜻도 있다.
지상의 신전에 있는 천상의 존재
나르메르 화장판 뒷면은 앞면과는 달리 네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칸은 앞면 위칸과 동일하게 두 황소 여신 바트 사이에 궁궐을 상징하는 세렉,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이름 나르메르를 성각문자로 새겨놓았다.
둘째 칸은 좀 복잡하다. 우선 나르메르의 왕관이 앞면 왕관과는 달리 파피루스처럼 보이는 장식이 부착돼 있다. 나르메르는 파피루스로 상징하는 하이집트를 정복해 (뒷면에 묘사) 통일이집트의 왕으로 등극, 뒤쪽에 위치한 직사각형으로 표시된 신전으로부터 나와 행진하고 있다. 그는 구슬이 달린 직사각형 주머니와 그물망처럼 보이는 주머니를 허리춤에 달았다. 그 그물망엔 부적처럼 보이는 것이 달려 있다.
나르메르는 오른손에 ‘네카카(nekhakha)’라고 불리는 도리깨를 들고 있다. 도리깨는 목동이 양떼를 몰 때 사용하거나, 타작마당에서 곡식의 알갱이를 추수할 때 사용한다. 이집트 예술에서 파라오가 들은 도리깨는 지배와 풍요의 상징이다. 파라오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메이스는 권력의 상징이다. 파라오의 벨트에 힘의 상징인 황소의 꼬리가 매달려 있다. 이중 왕관을 쓴 나르메르의 이름이 세렉 없이 성각문자로 새겨져 있다.
나르메르 왼쪽으로 사제가 샌들과 정화수를 들고 있다. 나르메르 앞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총리대신인 것 같다. 파라오 뒤쪽에는 로제트 문양이 새겨져 있다. 로제트 문양은 메소포타미아 우룩(Uruk)에서 고대 이집트로 수입된 문화 상징으로, 권력을 의미한다. 나르메르 오른쪽에 황소꼬리 장식이 달린 그물망 옷을 입은 고관이 걸어가고 있다. 그의 몸에서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가 부착돼 있다. 학자들 간에 나르메르 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머리 쪽에 새겨진 성각문자를 읽으면 ‘체트(tt)’다. 체트는 ‘총리’라는 의미를 지닌 ‘차티’의 초기 철자다. 혹은 ‘자손’이란 의미를 지닌 (w)tt(w)의 축약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위대한 리더 나르메르
체트 앞에는 네 명의 기수가 자신이 속한 통치 구역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한다. 깃발 위에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 모양의 토템이 묘사돼 있다. 이 깃발 앞에는 목이 잘려 다리 사이에 끼워져 있고 팔꿈치가 뒤로 묶여 있는 적들이 두 줄로 진열돼 있다. 이들의 성기도 모두 잘려 있다. 이 시체들 위로 거룩한 배가 있다. 이 배는 ‘호루스 성문(hrw-‘3)’을 행하고 있다. 배의 이름은 성각문자로 배 위에 새겨져 있다. 배의 이름은 ‘유일한 배(hrw-w‘)’다.
이 배를 둘러싼 그림들은 상징이기도 하다. 태양신 라의 아침 범선이다. 이 범선 앞에 앉아있는 참새는 일출을 상징한다. 호루스는 범선을 보호하고 있다. 배 앞에 있는 성문은 태양을 실은 범선에 통과해 새벽을 연다. 송골매로 등장하는 태양신은 머리가 잘려진 채 가지런히 누어있는 시신을 쪼아 먹을 것이다. 파라오는 지상에서 호루스의 화신이며, 그는 몸에 지닌 그물로 그의 적들을 잡을 것이다.
나르메르가 쓴 이중왕관 중 파피루스 모양의 왕관을 ‘붉은 왕관’이라고 부른다. 붉은 왕관은 피의 상징이며, 적을 살해하고 정복하는 군사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새벽녘 하늘이 붉은 이유를 태양신 ‘라’가 밤에 적을 물리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칸은 커다란 뱀 두 마리가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목이 교차해 동그란 공간을 만들었다. 이 원은 눈 화장을 위해 회안석이나 공작석을 분말로 가는 장소다. 원초적인 괴물이 목을 감싸며 싸우고 있는 전투를 벌이는 한 복판에서 파라오와 신들의 얼굴을 화장할 분말을 제조할 것이다. 자연에서 축출될 미네랄이 이 원안에서 화장품으로 변신할 것이다.
괴물이 목을 서로 엮는 도상도 고대 근동의 오래된 상징이다. 이 상징도 우룩에서 건너왔다. 두 명의 신하가 서로 머리를 교차하고 두 마리 용의 머리를 제어하는 모습이다. 나르메르가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행위는 우주의 질서인 마아트를 회복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칸엔 나르메르가 강력한 황소가 머리를 숙여 요새의 문을 부순다. 고대 이집트어로 ‘강력한 황소’란 의미의 ‘카 네하트(k3 nht)’는 파라오의 별칭이다. 그 중간에 황소는 죽어가는 적의 팔을 누르고 있다.
나르메르 화장판 그림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했는지, 왕권의 등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은유인지, 혹은 호루스 신전의 성물이었는지 확실하게 단정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부조들은 리더라는 개념의 등장과 그 정의를 시도한 첫 예술품이다. 나르메르는 자신의 왕관과 왕복을 통해 자신이 태양신 ‘라’의 ‘마아트’를 지키는 자 일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라’로 여겼다. 마아트는 우주의 원칙이자 질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성취해야 할 최선이다. 5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나르메르를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남긴 화장판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우주의 질서인 마아트라는 원칙에 맞춰 행동으로 옮겼다. 나르메르가 위대한 리더인 이유는 자신의 마아트를 실질적 행동으로 옮겨 이야기로 남겨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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